• 최종편집 2024-02-19(일)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장신대 무지개 퍼포먼스 학생, 법 이전 신앙 양심 고백이 우선"
    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샬롬나비는 장신대 동성애 무지개 사태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다. 이들은 “서울 동부지법은 장신대가 경건을 모토로 목회자를 양성하는 특수기관”이라며 “절차상의 이유로 장신대의 징계를 무효화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들은 “서울 동부지법 판결은 신학대의 특수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동성애 옹호를 금지하는 통합교단의 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징계 무효 소송을 낸 학생들을 향해 “법의 판단 이전 신앙 양심의 고백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사도 바울은 ‘세상 법정을 향해 고소하지 말라’고 했다”며 “이 말씀을 무시하고 학생들은 신앙적 양심을 버리고, 대규모 변호인단에 도움을 요청해 소송을 벌렸다”고 밝혔다. 이에 이들은 “장차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마저 외면한 파렴치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들은 “지난 9월 총회고시위원회는 목회자의 마음으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4시간 심층 면접을 통해 기회를 줬다”고 전했다. 즉 이들은 “동성애 인권 옹호 사상을 버린다면, 구제하겠다는 고시위원회위원장의 간곡한 지도와 충언이 있었다”며 “그러나 학생들은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하여 이들은 “학생들은 회개하고 돌이켜 자신들의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라”고 외쳤다. 나아가 이들은 “총회와 학교규칙을 어긴 것에 대해 처벌을 받겠다고 선언할 것”도 촉구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동성애 무지개 사태 처리 과정에 대한 논평서> 동성애 시위 학생들의 징계무효를 결정한 동부지법은 신학대의 특수성에 간섭하지 말라 통합교단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장신대의 동성애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하여 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 경건과 학문을 모토로 목회자 양성기관인 장로회신학대학교(장신대)는 총회 직영 신학교로 국내외에 3만여 동문을 배출하여 지난 12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는 영적인 지도자를 양성한 곳으로 일반 대학과는 엄연히 다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수 상황에서 장신대는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죄악으로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시기에 철저하게 그 위험성을 강조해야 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2016년과 2018년 5월 17일의 성소수자 기념일을 맞아 한경직 기념예배당에서 동성애를 지지하는 학생들이 무지개 옷을 입고 무지개 깃발을 날리며 심지어는 예배 위원도 아닌데 강대상 위에 올라가서 십자가 아래서 기념촬영을 하여 자신들의 페이스 북에 보란 듯이 동성애 지지 홍보를 하였다. 이 사건은 한국교계와 사회에서 큰 물의를 야기하였고, 교단 내에서는 학교당국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였다.이런 학칙에 어긋하는 시위 행동에 대해서 장신대는 학칙에 의거하여 학부생을 제외하고 목사후보생인 신대원생에 대해서 징계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해당 학생들은 무효 소송을 냈고, 2019년에 동부지법은 이 학생들의 소송을 받아들이고 나서 ‘절차상의 하자’를 문제 삼아 징계 무효판결을 내렸다. 이런 일은 장신대뿐만 아니라, 직영 신학교를 관리 감독하는 통합교단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이들 학생 2명은 군목후보생으로 2019년 5월 목사고시에 응했으나 총회고시위원회는 심층면담을 통해서 이들이 동성애 인권신학을 버리지 않음을 확인하고 불합격시켰다. 총회 고시위원회는 정당한 판결을 하였다. 샬롬나비는 동성애 무지개 사태에 대하여 다음 문제를 제기하며 장신대와 통합교단의 결단을 촉구한다. 1. 동생애 인권 주장하는 학생들은 신앙 양심에 따라 스스로 처벌을 받겠다고 나서야 한다.법의 판단 이전에 양심의 고백이 우선이다. 고소하지 말라고 가르친 사도바울의 말씀이 무색할 정도로, 징계를 받은 학생들은 목회자 후보생과 신학생의 본질과 신앙적 양심을 저버리고 대규모 변호인단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장신대를 상대로 징계무효 소송을 벌렸다. 이는 장차 교회에서 영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마저 외면한 파렴치한 행동이다. 누가 이런 사람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인정하고 영혼의 파수꾼으로 세우겠는가? 법에 호소하여 자신들의 징계를 푼 학생들은 신학생의 자격뿐만 아니라 목회자 후보생의 자격이 없으며, 더 나아가서 교회에서 일할 기본적인 소양마저 저버린 자들이다. 성경은 양심을 속이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경솔하게 대하는 이들은 스스로 버림받은 자들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지난 2019년 9월 총회고시위원회에서 목회자의 심정으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4시간 동안이나 심층면접을 하여 동성애 인권사상을 버리겠다고 서약하면 구제하겠다는 고시위원장의 간곡한 지도와 충언을 이들 학생들은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들 학생들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켜 자신들의 잘못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총회 규칙과 학교 규칙을 어긴 것에 대하여 스스로 처벌을 받겠다고 양심선언을 하라. 2. 장신대는 법원 무효결정에 대해 항소하고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해당자들을 다시 징계하라.장신대가 징계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항소하지 않는다면, 이는 직무유기이다.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리고도 학칙대로 징계를 한 학생들에 대해 법원이 절차상의 하자를 근거로 징계무효 판결을 내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장신대의 안이한 대응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법원이 징계무효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학생사랑이라는 미명으로 내심으로 환영하고 있는 일부 교수들의 보이지 않는 태도는 지극히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학생들이 징계에 불복하고 세상 법정에 장신대를 고소하였으니, 당연히 장신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학생징계가 정당함을 항소를 통하여 끝까지 보여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신대는 잠잠하다. 그러므로 장신대는 세상 법정에 항소하여 신학교가 학칙에 따라 동성애 지지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정당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동시에 절차상의 문제로 징계무효 처분이 내려졌으므로, 학교 당국은 지적된 절차상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다시 징계를 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장신대의 학칙이 정당하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분명하게 각인을 시키고 한국교회 전체를 동성애로부터 지켜 나가야 한다. 3. 국가기관(법원과 국가인권위)은 신학교의 특수성과 목회자 양성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간섭하지 말라.신학교는 일반대학과 다르다. 일반대학은 세상일에 필요한 지도자를 세우는 곳이지만, 장신대는 하나님의 일꾼을 키우는 하나님의 학교이다. 정교분리와 제정분리의 원칙이 국가가 교회를 간섭하지 말라는 의미이건만, 동부지법은 막강한 국가 권력을 통하여 종교 교육기관의 내부 일에 간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분명히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동이다. 아직도 대법원에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사상누각처럼 초법적인 자세로 장신대 내부의 자율적 교육방침에 간섭하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 이사장과 총장은 1년 5개월 지난 데도 미해결인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장신대는 이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늘날 장신대 동성애 사태는 온건한 보수신학의 입장을 지닌 대다수의 훌륭한 교수들보다는 표면적으로는 동성애 반대를 표명하나 동성애 인권신학을 학교 행정적으로 시행해온 학교 총장의 친동성애 행보와 이를 묵인해온 이사장의 학교 행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신대 당국인 총장과 이사장은 동성애 무지개 사태에 대하여 학생을 바르게 지도하기 위하여 교회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학생징계를 절차상 이의없이 했어야 했다. 그런데 학생 징계를 하지 않고 미루고 있다가 총회와 노회 및 교계의 압력에 밀려 졸속으로 하여 절차상 하자로 무효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장과 총장은 단 한마디 사과나 책임을 지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이것은 신학대의 행정과 운영 책임자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학생지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법원에서 징계무효 소송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상하게 관여한 이사장과 총장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당장 책임지고 사퇴하는 것이 장신대에서 학생지도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일꾼을 세울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구태의연하게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5. 통합교단 6개 노회 대책위원회가 장신대 남문에서 장신대치동성애 규탄 성명 발표했다. 지난 2019년 2월과 3월에는 통합교단 6개 노회 대책위원회는 장신대 남문에서 장신대가 총회가 동성애 이단 결정에 대한 이행을 재대로 하지 않고 있음에 대한 규탄 집회가 있었다. 2019년 2월 7일 오후 장로회신학대학교 남문 앞에서 총회장 예장 통합총회 내 6개 노회 동성애(함해, 강동, 충청)·이단사이비(포항, 포항남)·이슬람(대전서) 대책위원회는 제 103회 총회 결정에 반하는 장신대 측의 친동성애 행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6개 노회 대책위원회는 특히 아직도 장신대가 동성애 운동가 초청, 동성애 인권 강좌 개최 등 친동성애 행보를 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장신대와 장신대 교수들이 동성애를 죄라고 하면서 동성애 인권화를 묵인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친동성애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103회 총회가 끝난 직후에 교수가 채플 시간에 동성애를 옹호하는 설교를 하는가 하면, 신학춘추가 반동성애 운동가 25인을 가짜 뉴스로 매도하고, 동성애 운동가를 데려다가 동성애인권 강좌를 열며,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교육지침 간담회'를 빙자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동성애 인권화 논리를 펴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6개 노회 대책 위원회는 103회 예장 총회 이후에도 총회결정을 이행하지 않고 장신대 당국이 동성애 인권 강사를 초빙하는 등 친동성애 행보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규탄한 것이다. 6. 통합교단은 교단의 중심 교육기관인 장신대의 동성애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이라.예장 통합의 대표적인 장로회신학대학이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처럼 동성애 수용대학이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이에 대하여는 총회교육부와 동성애대책위원회가 1년 반 전에 동성애 지지사태가 일어났으나 아직도 해결하지 않고 작년 103회 총회의 동성애 이단 결정 이후에도 여전히 친동성애 행보를 그치지 않는 장신대에 대하여 특별한 진상 조사하는 것이 요청된다. 2016년부터 2019년에 이르기까지 장신대 안에서는 크고 작은 동성애 문제가 끊이지를 않았다. 이런 와중에도 ‘젠더와 사회’라는 과목이 개설되어 있으며, 각종 세미나와 특강에서 친동성애 강사들이 초청되어 강연을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개인적인 비리라고 징계가 내려지기 전에 외부에 피의자 사실 공표에 해당하는 언사가 총장에 의해 여러 차례 반복되는 와중에 S교수를 세 차례나 징계를 한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또한, 신학교에 대한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통합교단은 지난 4년 동안 장신대에 있었던 일들과 특히 현재 이사장과 총장의 재임 시절에 있었던 동성애 문제에 관해 철저한 조사를 하여 장신대의 영적인 지도력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 예장 통합 산하 노회는 신학생의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라.예장 통합교단은 작년 103회 총회에서 동성애 퀴어신학을 이단사상으로 결정하고 이러한 사상을 옹호가는 신학생들이나 동조하는 지원자들을 총회 산하 목회자로 세우기를 금지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는 교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교딘의 올바른 결정이라고 평가된다. 이 결정이 제대로 효력을 가지려면 실제로 총회 산하 노회들이 신학생 감독을 보다 철저히 해야만 한다. 이번 동성애 인권을 주장하는 학생 두 명이 목사고시에 응했으나 고시위원회의 4시간 동안 심층면접에 있어서 동성애 인권신학을 버리지 않곘다고 주장함으로써 불합격 처리되었다. 이런 사태가 생기지 않으려면 각 노회가 목사고시생들의 품행과 신학사상을 철저히 정검하여 이런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신학생이 소속된 교회는 개개인과의 안면과 친밀한 관계로 아무리 문제를 일으켜도 쉬쉬하면서 덮어가려고만 하기에, 목회후보생에 대해 매학기 신학계속추천서를 써주는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노회는 신학생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형식적으로 불러서 도서비만 주지 말아야 한다. 식사대접을 하는 격려의 차원도 필요하지만, 동성애 지지에 관한 지수를 확인할 수 있는 면담 질문을 활용하여 신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 자료를 통해서 개개인에 대한 지도를 강화해야 한다. 이런 심층 면접은 신학생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제대로 된 영적인 지도자를 키우는 해당 노회에 대한 소속감과 자긍심을 갖게 하는데 귀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8. 지교회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신학생들이 교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라.신학생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자기들이 사역하고자 하는 교회의 장로이다. 이 점에서 장로들은 철저하게 보수적이며 예장 통합교단의 전통을 지키려는 분들이므로, 인사문제를 목회자에게만 일임하지 말고, 인선 위원회에 들어가서 새롭게 지원한 신학후보생들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지교회마다 전통이 있는데 평생 동안 한 교회에서만 섬긴 장로들의 영적 지도력은 현대 목회에서 평신도 사역이라는 측면에서도 아주 필요한 부분이다. 과거 장신대에 수도 없는 데모가 있을 때마다 장로들이 ‘저런 문제아를 교회에서 청빙하면 안 된다’라는 목소리를 높일 때, 신학생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중하던 일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므로 지교회의 목회자는 장로와의 두터운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교육전도사를 청빙하는 단계에서부터 평신도의 인사 참여를 보장해 줌으로써, 목사후보생이 지교회의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는 풍토를 처음부터 존중하게 해야 한다.                                 2019년 10월 7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 신학대학
    • 신학대학
    2019-10-07
  • 해양학의 아버지, 매튜 머리의 학문과 신앙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겸 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겸 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   ◈바다 속에도 길이 있을까? 오랜 옛날부터 바다를 자주 항해하는 사람들은 바닷물이 가만히 고여 있지 않고 일정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10여 척의 배로 130척이나 되는 왜적의 배를 물리쳐서 유명해진 명량대첩 때 이용했다는 울돌목의 빠른 물살도 바로 해류의 일종이었다. 해류는 바다 가운데 있는 하천과 같은 것이다. 예전에는 이 해류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힐 수가 없었다. 해류의 원인은 바람에 의한 취송류(吹送流 , drift current), 해수의 밀도에 의한 밀도류(密度流 ) 등 다양하다. 이렇게 바람만이 해류의 유일한 직접적 원인이 아니라는 것은 배를 타는 옛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풍향과 해류의 방향은 무조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뱃사람들은 일찍부터 경험으로 알았던 셈이다. ◈팔방미인 과학자, 매튜 머리 그런데 이와 같은 바다의 길을 최초로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해양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 있다. 바로 매튜 머리(Matthew Fontaine Maury, 1806-1873)다. 정확하게는 그는 "바다의 길잡이 (Pathfinder of the Seas)"와 "현대 해양학 및 해상 기상학의 아버지 (Father of Modern Oceanography and Naval Meteorology)"라는 별명을 얻었고, 훗날 그의 저서 가운데 특히 "바다의 물리 지리학(The Physical Geography of the Sea, 1855)"을 통해 그는 "해양 과학자(Scientist of the Seas)"로 불려졌다. 왜냐하면 머리(Maury)는 해상 선박이 통행하기위한 해로를 포함하여 바람과 해류를 도표화하는 데 많은 중요한 새로운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단순한 해류 학자가 아니었다. 미국의 천문학자요 해군 장교, 역사가, 해양학자, 기상학자, 지도 제작자, 작가, 지질학자 및 교육자 등 아주 다채로운 삶을 산 대단히 다양한 재능을 가진 팔방미인 과학자였다. ◈매튜 머리의 신앙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바다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일찌감치 선원이 되었다. 그런데 그만 항해 중 불의의 부상을 입게 되는데 그때부터 머리는 해양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1842년에는 워싱턴에 있는 해양 관측소의 소장이 되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가 바다의 길을 발견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성경에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1927년 찰스 루이스라는 사람이 쓴 해군 연구소에서 출판한 '해류의 발견자 매튜 머리'라는 책에 보면 그가 아파서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고 있을 때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부탁으로 밤마다 그에게 성경을 읽어주었는데 그날의 내용은 시편 8편이었다. 시편 8편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잘 보여주는 여러 시편 말씀 가운데 하나이다.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아다"라는 8절의 말씀을 듣는 순간 머리에게는 커다란 영감이 떠올랐다. '하나님께서 해로(海路)가 있다고 말씀하셨다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병상에서 일어나면 그것을 찾아야겠다!' 그런가 하면 1888년 매튜 머리의 딸 다이아나 폰테인 머리 코빈(Diana Fontaine Maury Corbin)이 편집한 "매튜 머리의 생애"에 보면 7-8 페이지에 걸쳐 자신의 부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내용이 있다. "매튜의 아버지(곧 머리 코빈의 할아버지)는 가족의 종교 훈련에 매우 엄격했다. 자녀들(5명의 아들과 4명의 딸, 즉 John Minor, Mary, Walker, Matilda, Betsy, Richard Launcelot, Matthew Fontaine, Catherine, Charles)은 밤낮으로 시편을 읽었고 결국 시편 구절은 기념비의 왼편 다리 옆에 새겨졌다." ◈해양학의 아버지 매튜 머리 매튜 머리가 얼마나 신앙적 분위기에서 자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튼 그는 대서양 바닷물의 온도와 해류 그리고 바람의 흐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시작한다. 그리고 바람과 해류의 순환 사이에는 상호 관련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낸다. 1855년 그는 항해 일지를 참고하고 바람과 해류에 관한 보다 자세한 연구 끝에 북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항로와 기상도를 작성하였다. 이 항로는 후에 국제협정의 기초가 된다. 이것은 최초의 해도와 해상 기상도였다. 이 업적으로 인해 해운 회사들은 항해 일수의 단축에 의한 엄청난 비용을 절감하게 되었으며 사고도 크게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멕시코만은 "미국의 지중해"라고도 불리는 미국 남동부의 바다다. 이곳에도 적도의 북쪽을 흐르던 해류가 쿠바의 남쪽에 위치한 카리브 해를 거쳐 흘러 들어와서는 플로리다 해협을 지나 대서양으로 나가게 된다. 이 해류는 적도 부근의 따뜻한 바닷물을 몰고 와 대서양을 거쳐 멀리 서유럽까지 이르게 되는데, 서부 유럽의 온화한 기후는 바로 이 해류가 만들어내고 있다. 이 해류를 멕시코만류라고 부르는데 바로 매튜 머리가 발견한 것이다. 1923년, 머리가 태어난 버지니아 주의 리치몬드와 고센 지방에서는 그의 동상을 세워 업적을 찬양하였다. 고센에 있는 머리 동상의 비명에는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가 성경을 읽음으로써 영감을 얻게 되었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쓰여 있다. "해로의 발견자인 그는 대양과 바다로부터 처음으로 그 법칙을 찾아낸 천재였다. 바다를 오가며 항해하는 모든 세대의 항해자들은 해도를 볼 때마다 당신을 생각하리라. 특히 성경의 시편 8편 8절과 23, 24절, 전도서 1장 7절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음을 밝힌다." 이처럼 오늘날 대양 사이를 많은 배들이 큰 어려움 없이 오고 가며 세계가 뱃길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게 된 데에는 해양학의 선구자 매튜 머리의 노고가 있었다. 그는 바로 이 바다의 뱃길을 찾는 데 놀랍게도 성경에서 그 아이디어를 발견한 것이다. 1871년 2월 1일, 매튜 머리는 고향 버지니아주 렉싱턴에서 조용히 주님 곁으로 갔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뱃사람들은 바다를 오가면서 바닷길을 개척한 그의 공로를 "해양학의 아버지"라고 칭송하며 영원히 기억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10-02
  • 판타지와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너희는 그곳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털끝만큼도 상상하지 못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 이야기만 듣고 신문 기사만 읽어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 너희가 직접 그 안에 들어가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어.”- 네티바 벤예후다(Netiva Ben-Yehuda) 중세 전쟁사를 전공한 유발 하라리는 전쟁을 통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지 추적하여 ‘극한의 경험’을 썼다. “피를 뒤집어쓰고 사지를 늘어뜨린 채 이미 죽음이 목을 조여 오는 듯 쉰 목소리로 살려달라 외치는 형체를 바라볼 때 비현실적인 느낌이 나를 옥죄었다.” 1914년 일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에른스트 윙거(Ernst Junger)는 고백했다. 전쟁은 인간을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고, 인간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며, 세상에 대한 이해도 변화시킨다(Harari, 41/555).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J.R.R. Tolkien)도 1차 세계대전을 참전하였다. 수많은 젊은이가 무의미하게 목숨을 d잃고 가장 친한 친구들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는 전장에서 얻은 전염병으로 18개월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다. 그는 고백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 얼마나 암울한 공포에 뒤덮여 있으며 얼마나 슬픔에 빠져 있는지.”(고명섭, 207) 1세기 교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전쟁의 경험은 아니겠지만, 그와 버금갈 정도로 끔찍한 경험들을 하였다. 로마 검투사의 칼날에 살점이 찢겨나가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 형틀에 묶여서 갈고리 채찍으로 수도 없이 맞아 뼈가 허옇게 노출된 사람, 십자가에 매달려 일주일 내내 신음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그들은 현대인이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신앙생활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그들은 어떻게 신앙을 지켰을까? 유발 하라리는 ‘극한의 경험’이 종교적 계시 경험과 맞닿아 있다고 하였다. 최악의 상황에서 사람은 현실을 뛰어넘는 신비한 경험을 하고, 평생 그것이 가슴에 남아 때로는 트라우마로 고생하고, 때로는 현실을 초월하는 경건을 배운다.   톨킨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 인간의 모든 노력은 헛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고명섭, 208). 이러한 경험과 생각에서 톨킨은 판타지 문학에 빠져들었다. 반면 현대인은 실용주의자이다. 계산적이고 합리적이며 예측 가능한 것을 좋아한다. 복음주의자들 역시 실용주의의 함정에 빠져들어, 성경에서 이론(교리)을 도출하여 ‘해야 한다’든지 ‘필요가 있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어떤 설교자들은 이야기를 경멸하고 신학과 교리를 설명하는 가르침만 추구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고 생명을 바쳐 헌신하게 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은 위대한 이야기꾼이다. 최고의 설득을 쓴 카민 갤로(Carmine Gallo)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의 방법은 ‘이야기’라고 하였다. 그는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John Scully)에게 했던 말로 책을 시작한다. 스컬리는 37살 나이에 펩시콜라의 사장이 되었다. 8년이 지나고, '마케팅의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스컬리는 최고로 촉망받는 CEO가 되었다. 그때, 26살 청년 스티브 잡스는 45살 대기업 회장에게 신생기업 애플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스컬리는 당연히 거절하였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실망하지 않았다. 1983년 3월 마침내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를 설득하였다. 스티브 잡스의 메시지는 간단하지만 힘이 있었다. “남은 평생 설탕물을 팔 건가요. 아니면 저와 함께 세상을 바꿀 건가요?”   오늘날 설교자들의 문제 중 하나는 뻔한 이야기를 뻔한 방법으로 전한다. 어느 교회를 가도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아무런 감동 없이 전한다. 대개 교인들은 졸거나 딴생각하기 일쑤이다. 그나마 귀를 기울여 듣는 성도들도 다음 주가 되면 지난주 설교를 다 잊어버린다. 말씀을 실천하는 교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학교에서는 감동과 열정을 쏙 빼버린 이론(신학과 교리)만 열심히 가르친다. 마치 회사에서 세일즈맨에게 물건 사용설명서만 열심히 외우게 한 뒤, 물건을 팔라고 내보내는 것과 같다. 그 물건을 사용할 때 누릴 수 있는 행복(설령 그것이 가짜일지라도)을 열성적으로 전달해도 살둥말둥한데 말이다. 이런 회사와 신학교는 매우 유사하다. 신학교는 차갑게 식어버린 교리나 죽어있는 신학만 가르친다. 영혼을 살리는 말씀의 능력, 감동, 흥분, 기쁨은 가르치지 못한다. 그러니 목회 현장의 설교는 언제나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하다. 그렇게 기독교는 점점 죽어가고 있다.   성경은 다양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시, 잠언, 사랑 노래, 역사 이야기, 편지, 묵시 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중에도 묵시 문학인 요한계시록은 이야기 중의 최고다. 처음 요한계시록을 읽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현대 유행하는 판타지 문학을 생각하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해리 포터’ 등은 상상의 세계를 묘사하지만, 누구도 어렵다고 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은 초대교회의 판타지 문학과 같다. 판타지 문학이나 묵시 문학은 현실 도피적 성향이 있다. 끔찍한 전쟁 경험이나 박해 경험은 현실 세상에 환멸을 느끼게 만든다. 1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경험을 통해 판타지 문학에 심취했던 톨킨은 기독교 신앙 자체가 “도피가 영혼에 유익하다”는 믿음에 근거한 모험 인지도 모른다고 하였다(Yancey, 154).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람은 도피를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옥 밖의 자유로운 세상을 그린다고 해서 죄수를 경멸해야 하는가(Yancey, 153)? 얀시는 되묻는다. 톨킨은 ‘판타지라는 도피적인 매체를 이용하여 현실을 넘어선 영혼의 여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성경의 묵시 이야기를 한번 생각해 보자.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의 부패와 쇠락을 보고 괴로웠다. 어떻게 하면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잠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깨울 수 있을까? 시스템을 바꾸고, 성전 관리와 경영을 잘하면 될까? 성전(교회)을 고치고, 개혁하고, 갱신하고, 재구성하기 위하여 계획과 전략을 짜면 될까? 온갖 인간의 방법과 생각을 동원했지만,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 그러다 포로로 끌려간 후 (성전이 아니라) 그발 강가에서 놀라운 환상(해답)을 본다. 그는 아주 기괴하게 생긴 네 생물의 형상을 본다. 그 형상은 밧모 섬에 있던 요한이 보았던 형상과 비슷하다. 네 생물은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의 형상이었다(계 4:7, 겔 1:10) 그 후 에스겔은 마른 뼈들만 가득한 골짜기로 간다(겔 37:1-14). 뼈들만 가득한 그곳은 끔찍한 장소다.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한 곳이지만, 에스겔은 환상 속에서 놀라운 희망을 발견한다(Roxburgh, 90-91). 에스겔이나 요한이 보았던 환상은 톨킨이나 C.S. 루이스의 판타지 문학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감동적이고 흥미 있다. 불행한 사실은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서 감동과 흥분과 열정을 잘 발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도 요한은 절망의 환경 속에서 끔찍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환상의 이야기로 이끈다. 그리고 말한다. 세상이 아무리 절망적이고, 끔찍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나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묵시 이야기에서 초대 교인들이 느꼈을 감동과 흥분을 맛보게 된다.   비록 지금 교회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천상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할 것이라는 놀라운 환상을 듣는 초대교인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묵시로 전달하는 사도 요한의 뛰는 가슴을 상상해 본다. 나는 점점 소망을 잃어가는 현대 교인들이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묵시 문학이 가지는 복음과 희망과 영감을 발견하고 맛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배경락 목사는 기독교 인문학 연구소 강연자로, '곧게 난 길은 하나도 없더라' '성경 속 왕조실록' 등의 저자이다. 그는 일상의 여백 속에 담아내는 묵상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인문학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25
  • 솔직한 글쓰기와 한국교회 논객
      ▲이효상 목사ㅣ교회건강연구원장   사람은 솔직한 글과 말, 마음을 열고 진정성을 가지고 하는 말과 살아있는 글을 대하게 되면 굳게 닫아 놓은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솔직함을 너그러움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가슴 깊이 묻어 두고 밖으로 마음껏 나타내지 못한다. 그러면서 마음에도 없는 입술의 언어로 겉만 번지르하게 꾸며 낸다. 이것이 예의바르다고 착각한다. 솔직한 말이 어떤 땐 자신의 생각이나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버릇없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벽을 넘어야 성도들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진 비밀스럽고 부끄러운 일들을 가슴에 깊이 묻어 두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산다면, 교회공동체가 건강하게 미래로 나갈 수 없다. 성도들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도록 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과 같은 모든 것, 모든 일을 사랑의 눈으로 살펴 볼 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힘없고, 불쌍하고, 보잘 것 없고, 작고,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 남에게 버림받은 것들을 사랑할 줄 알게 해야 한다. 더욱이 그들의 아픔을 사랑할 줄 아는 신앙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 마치 예수님처럼 말이다. 세상에는 진정 아름다운 것도 많지만, 겉으로만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많다. 겉은 번드르 하게 꾸며져 있어 남 보기에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한 번쯤은 따져 보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와 반대로 겉은 볼품없어도 속은 아름답고 쓸모 있는 것도 많으니 그 또한 살려보도록 할 일이다. 거룩함 속에 속된 것이 있고, 속된 것 속에 거룩함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세상사는 참으로 묘한 것들이 많다. 20여 년간 15권의 책을 출간하고 매주 칼럼을 쓰다보니 간혹 이런 분들이 있다. 그냥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면 될 것이지 굳이 썩고 병든 것까지 들추고 파헤쳐 보여서 무얼 배우겠느냐고. 그렇게 걱정 아닌 걱정들을 주시곤 한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찍, 될 수 있는 대로 일찍 찾아내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썩은 원인을 여러 면에서 찾아보게 하고 그 원인에 따라 스스로 치료하면서 바르게 살아가려는 능력을 가진 곳이 ‘교회’요, ‘개혁주의신앙’이 아닐까. 카톨릭교회는 ‘교황’을 만들고 이단 사이비는 ‘교주’를 만들지만, 교황도 교주도 아닌 개혁교회는 건강한 ‘목회자’를 세운다. 그런 가운데 목회자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으로 바르게 세워 가면 쓰임받게 된다. 이렇게 자라고 커야 제대로 사람 구실, 직분자로 사명 감당할 수 있다. 요즘처럼 가령 ‘연합기관들이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존재감 제로라면 해체해야 한다’고 말하고 글을 쓰면 이익집단으로부터 온갖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이렇듯 솔직한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그렇게 쓸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은 깨끗하다. 솔직한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가 꾀나 요령이나 거짓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바보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땀 흘리며 일 할 줄 알고, 어려움을 이겨 낼 줄 알며, 옳지 못한 일에 대해서 강하게 대항할 줄 알고, 그릇된 일은 비판하여 올바른 길을 찾을 줄도 안다. 또한 보는 눈이 넓고, 생각이 깊고, 앞서 가서 멀리 내다볼 줄도 안다. 그것뿐 아니라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며 아름다운 마음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논객’이라고 부르고, 한국교회에도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이루는 중심추이자 개혁의 아이콘 정성진 목사와 시인으로 가장 왕성한 집필과 반기독 운동에 대처하는 사역을 하며 ‘창조적 퍼스트무버’를 자처하는 소강석 목사가 이런 일들을 하고 있지만, 이런 예언자적 지성인 ‘논객’이 한국교회에는 더 많이 필요하다. 꾀나 요령으로, 거짓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눈앞의 이익에만 어두워 자기 밥그릇 지키기 위하여 아웅다웅 다투며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남의 괴로움 따위는 모르거나 알아도 모르는 척 한다. 사실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척 하지만 정말 어렵게 더불어 살아야 할 일에는 발뺌한다. 참되게 사는 맛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아주 불행한 사람이다. 한국교회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기쁜 일, 슬픈 일, 억울한 일, 답답한 일, 따져 볼 일, 외로움, 놀라움, 신비로움 등 수 도 없이 많다. 신앙이나 인생은 매일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하나의 과정같다. 그래서 끝까지 가본 사람만 이 시작을 알 수 있다. 듣는 이들이나 글을 읽는 사람 중에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은 큰 위로가 될 것이고, 그와 같은 처지에 있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처지를 잘 이해하게 되어 결국 모두 한마음, 한 뜻, 한 방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사성 있는 주제를 다루는 논객이 생각할 것은 시대정신과 역사, 그리고 사람 등 일 것이다. 이런 깊이와 넓이, 그리고 안목을 가지고 슬기로운 신앙생활과 나라사랑, 사명감당의 말과 글로 사회와 소통하며 마음껏 풀어 놓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설교문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논객, 즉 글쟁이들은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세상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마음의 눈을 크게 뜨도록 해야 한다. 솔직한 글쓰기를 통해 최근 집필한 '나이롱 집사와 기둥같은 제직'이라는 책은 한국교회와 직분자와 청지기들을 세우기 위해 다시 3·1운동을 시작한다는 관점에서 펜에 피땀과 교회를 향한 사랑을 찍어 썼다. 글 쓰는 재주가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며 쓰다가 죽을 뻔 했지만 제 두 어깨는 교회를 향한 소명감으로 항상 무겁고, 제 가슴은 건강한 교회를 만들 열정으로 뜨거웠다. 제 머리에는 온통 주님이 디자인 하신 새로운 교회를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예수님을 닮아가고 싶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24
  • 마취제 없는 수술? 심프슨 경의 신앙과 학문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겸 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조직신학, 평택대 '과학과 신학' 교수)   ◈마취제 없는 수술은 어땠을까? 만일 급성 충수염(일명 맹장염)으로 곧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르렀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마취제가 없어 그대로 수술대 위에 오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비명을 지르거나 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이전만 해도 마취라는 것은 일반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외과적 수술을 하려면 환자가 요동치지 않도록 의사는 사람을 소·돼지처럼 수술대 위에 단단히 잡아두어야만 했다. 마취가 없이 수술이 행해졌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것은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19세기도 아닌 지금도 북한은 마취제 부족으로 인해 지방에서는 일부 마취제 사용 없이 수술을 한다는 언론 보도가 수년전 있었다. 물론 공산주체귀족들은 예외일 것이다. 서민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아프다. 마취는 환자의 의식을 잃게 하여 고통을 없애준다. 마취가 진행되는 동안 수술 받은 환자는 아주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필자의 장녀도 과거 겨우 5세가 되던 어느 해 작은 사고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딸아이는 수술실에 들어가 나오기까지 수 시간 동안 아무런 두려움이나 고통 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가 자연스럽게 깨어났다. 마취를 하면 환자는 설령 자신의 살을 도려내고 뼈를 잘라도 잘 모른다. 고통은 마취가 제거되었을 때에야 시작된다. 이와 같이 오늘날 의학에 있어 필요불가결한 마취제는 심프슨 경(Sir James Young Simpson, 1811-1870)에 의해 비로소 보급되기 시작했다. ◈심프슨 경은 누구인가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였던 심프슨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배스게이트 지방에서 빵을 만드는 가난한 직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영리한 심프슨은 14세 때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하여 의학(산과학, 産科學)을 배우고 1832년 졸업하였다. 잠시 시골에서 병원을 개업하기도 했던 심프슨은 곧바로 병리학의 조수와 동시에 산과학의 강사가 되었고, 1846년에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에든버러 대학의 산과학 교수가 되었다.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섬세함을 동시에 갖추었다고 전해지는 심프슨은 1843년, 오늘날 간호학과 산파학에 아주 중요한 의학 도구인 자궁소식자(子宮消息子, Uterus-Sonde)를 고안하였고 많은 논문을 쓴 의학자였다. 그가 1853년 고안한 산과겸자(産科鉗子, Obstetrical forceps)는 오늘날도 사용되고 있으며 말년에는 병원 환경이 환자 건강에 아주 중요한 요소임을 알리고 환경 개선에 노력한 의사였다. 무엇보다 그는 산과 마취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1847년 1월, 그는 처음으로 임산부에게 에테르마취를 하였고, 그 해 11월에는 역시 최초로 클로르포름마취를 시도하였다. 마취 문제로 종교적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던 그가 성경을 가지고 반론을 편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마취제를 발견한 심프슨 경 성경을 믿는 심프슨 경은 당시 많은 외과 수술을 하면서 수술 중 환자가 받는 고통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던 중, 창세기 2장 21절, 22절을 읽고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매우 희화적인 하와에 대한 이 창조의 이야기를 심프슨 경은 그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의사의 지식으로 볼 때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떼어내는 것은 매우 큰 수술이다. 그런데 그 수술을 받은 아담은 잠에서 깨어나 고통은 느끼지도 못한 듯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세기 2장 23절)고 탄성을 울렸다. '하나님이 아담을 잠재우시듯, 환자를 잠재워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무사히 수술을 끝낼 수는 없을까?' 더욱이 환자가 수술 중 고통 때문에 움직이는 것은 수술시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심프슨 경은 위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수술용 마취제의 개발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마취제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다. 18세기 여러 가지 기체들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그중에는 치과에서 이를 뺄 때 사용하는 이산화질소(NO)도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의 윌리엄 모튼(1819-1868)이라는 치과 의사는 1846년, 이산화질소 대신에 에테르라는 물질을 사용하였더니 아프지 않게 이를 뺄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물질은 곧 영국의 외과 의사들에게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에테르는 불쾌한 부작용이 있었다. 그래서 심프슨은 '좀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물질이 없을까?'하고 찾기 시작했다. 1847년 11월의 어느 날, 심프슨 경은 그의 조수이자 친구였던 키이스 박사, 던컨 박사와 함께 '클로로포름'이라는 무거운 액체를 시험해 보았다. 클로로포름은 이미 1831년 알려진 물질이었지만 오랫동안 아무도 그 용도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심프슨과 그 동료들은 컵에 클로로포름을 붓고 그 증기를 조금씩 마셔 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보통 때 느끼지 못했던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그들의 눈은 빛났고, 매우 행복해 보였으며, 수다스러워졌고, 말끝마다 이 향긋한 향기를 칭찬하였다. 그 기체에는 약간의 단맛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곧 이 기체를 마신 사람들은 바닥에 모두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이 실험을 통해 클로로포름이 안전한 마취제라는 확신을 갖게 된 심프슨은 에든버러 왕립 병원에서 이 물체를 실험하기로 결정한다. 1847년 11월 어느 날, 심프슨은 아일랜드에서 온 너 댓살 먹은 소년의 작은 수술에 드디어 클로로포름을 사용하였다. 이 소년의 곪은 팔 부위에서 뼈를 잘라낼 때 클로로포름을 사용한 것이다. 마취는 클로로포름을 약간 손수건에 묻혀 소년의 얼굴에 대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이 마취제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잇따른 수술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거둔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심프슨 경은 분만의 고통을 더는 데도 이 클로로포름을 사용하였다. 최초 환자는 그의 친구인 동료의사의 딸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성공은 무통분만법을 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으며, 그는 수십 회 이 방법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마취법의 성공적 활용은 1853년 영국의 유명한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여덟 번째 자녀인 레오폴드 왕자를 분만할 때 활용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이 마취법은 공인되었으며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심프슨 경의 믿음과 고백 지금은 클로로포름이 사람에게 독성(참고: 독성 없는 약은 없다)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 더욱 발전된 마취제를 쓰고 있다. 이런 의학 발전에 있어 심프슨 경이야말로 마취제의 선구자였으며, 그 시작은 바로 성경이었다. 성경 말씀을 한낱 설화나 신화 또는 단순한 교훈서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른 한 진실한 외과 의사에 의해, 인류는 많은 고통스런 수술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보다 안전한 수술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심프슨은 자신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마취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가 찾은 가장 위대한 발견은 바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가 쓴 신앙에 관한 고백록에서 심프슨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나의 대속(代贖) 제물이 되시며 나를 위해 징벌을 받고 십자가 위에 죽으신 예수님을 찾았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찾았고 부르짖었으며 용서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전하는 것은 나의 의무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심프슨은 다음의 성경 구절을 소개하고 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이사야서 53장 5-6절). 참으로 심프슨 경은 위대한 과학자이자 진실 된 그리스도인이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23
  • 영성 충만한 가정을 만드는 8가지 방법
      그래함바이블 처치 담임 목사인 가렛 켈 목사는 지난 16일 목회전문 칼럼사이트 처치리더스에 ‘영성이 충만한 가정을 만드는 방법 8가지’라는 제목의 기고 글을 게재했다. 켈 목사는 신명기 6장의 말씀을 따라 영성이 풍성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4-7) 부모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그들의 자녀가 하나님의 세상에서 사는 법을 배우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은 가끔씩 해야 되는 일이 아니라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해야 하는 일이다. 1. 가정 예배 가정에서 매일 성경을 읽는 습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성경을 읽는 것에 대한 어떤 마법적 공식이 없다. 그냥 함께 성경을 펴서 읽는 것뿐이다. 한 장 한 장 읽고 하나님과 성경의 인물들 그리고 삶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깨달은 것을 토론해보라. 그리고 하나님께 동무을 요청하라. 성경의 읽는 양보다 꾸준히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족들이 매일 만나를 함께 먹으면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함께 자라나게 될 것이다. 2. 경건의 훈련 아이들이 성경을 스스로 읽을 수 있도록 격려하라. 그러나 성경을 읽는 것이 강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다만 스스로 읽을 수 있게 격려해줘야 한다. 양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격려하라. 자녀들이 성경의 어떤 부분을 읽었는지 대화하고 질문이 있다면 적어보게 하라. 또한 부모 역시 말씀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부모가 말씀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을 자녀들에게 보이는 것보다 더 강력한 동기부여는 없다. 3. 함께 기도하기 함께 기도하라. 만약 돈이 부족할 때 함께 모여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실 것을 간구하라. 학교에서 괴롭힘을 받거나 직장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함께 모여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당신 가정의 필요를 채워주셨다면 함께 모여 기뻐하라. 슬픔, 고난, 질병으로 힘든 순간 함께 모여 하나님께 기도하라. 기도로 가정의 분위기를 바꿔보라.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지 않는 순간은 없다. 그렇기에 항상 함께 모여 기도하라. 4. 기도 훈련 아이들이 스스로 기도할 수 있도록 격려하라. 아이들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모를 뿐 아니라 기도 훈련도 되어 있지 않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주기도문을 알려주라. 강제적으로 기도하라고 할 수 없지만 기도에 대해 꾸준히 격려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5.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에 대해 대화하기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에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우리 주위의 모든 풀잎, 물 한 모금, 음악과 영화 등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가리킨다. 아이들이 이런 세계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라. 방금 본 영화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우리가 들은 노래에는 어떤 메시지가 들어 있을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잠을 주셨을까?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질문들과 경험은 우리 마음을 완성해 가는 무궁무진한 기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렌즈를 통해 가족들이 볼 수 있도록 노력해보라. 6. 죄에 대해 고백하기 모든 가정마다 문제아가 있고 그것이 누구인지 다들 알고 있다. 아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라. 부모가 겸손하게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는 것을 먼저 보이라. 가족여행보다 이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거친 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함께 하나님께 고백해보라. 그리고 서로의 허물을 용서해줄 것을 구해보라. 부모는 자녀들에 앞에 무엇을 고백할지 현명하게 생각해야 한다. 죄를 함께 고백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방법으로 이를 통해 복음의 힘을 깨닫게 될 것이다. 7. 꾸준한 교회 생활 가정의 삶을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지향해야 한다. 스포츠나 주말 휴가로 중리 에배를 빠지는 것은 아이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을 가르치는 것과 다름없다.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다른 크리스천들이 함께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큰 특권임을 알게 해야 한다. 가족들이 함께 하는 다른 활동들이 있지만 건강한 지역 교회의 일원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충실히 섬기는 것이 가장 필수적인 일 중 하나이다. 8. 자녀와 개별시간 갖기 모든 아이들은 각자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각각에 맞는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 많은 자녀들을 둔 가정에서는 특히 각 자녀와의 개별시간이 중요하다. 어떤 아이는 아주 부드러운 목양이 필요하다. 죄의 문제를 다루는데 힘들어 하는 아이도 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각자의 자녀에게 고유한 특성을 주신 것 같이 고유의 특성에 맞는 양육이 필요하다. 완벽한 아이를 기르는 완벽한 전략은 없다. 그러나 믿음을 따라 양육해 갈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면 영성이 풍성한 아이들로 양육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23
  • (이창엽 선교사칼럼)하나님 말씀으로 천지창조
                                           하나님 말씀으로 천지창조  학계에서 태극신학을 주장하고 있는데 지극히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을 포함한 동양 문화권에유교와 불교, 민족종교를 토착화하면서 기독교를 전파할수 있는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그러나 우려하고 신중을 기할 것은 혼합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음양오행과 천지창조-태극신학   주역의 계사전에 의하면 우주 만물이 있기 이전에 공허하고 혼돈한 상태를 ‘태극’이라 한다. 극심한 혼돈 속에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며, 음은 가라앉는 기운이라 땅으로 내려앉고 양은 뜨는 기운이라 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이른바 태극이 음· 양으로 나뉘고, 음· 양이 사상으로 변화하여 팔괘, 육십 사괘로 점차 발전되어 나가며 여기에 수· 화· 목· 금· 토라고 불리는 오행이 덧붙여졌다. 서양이 일주일을 일곱으로 나누고 7음계를 사용하였다면, 우리는 다섯 손가락으로 오일장을 세며 궁상각치우 5음계를 사용하였다. 대부분의 집에서는 용마루를 만들 때 마룻장 기와를 다섯 장씩 눌러놓는 것이 보통이다. 경주 양동마을 심수정 용마루 적새 기와         (TIP )천지창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느라.(창 1:1~2)(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19-09-19
  • "동성애 수용 교회는 거룩성을 표지로 하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김영한 전 숭실대 기독대학원장   김영한 박사(전 숭실대 기독대학원장)는 손봉호 교수의 ‘동성애 반대 투쟁 과유불급’론에 대한 비판 논평을 발표했다. 그는 “손봉호 교수는 동성애 반대는 하루살이와 같고, 세습 등 각종 비리 투쟁에 보다 더 집중해야 함을 말했다”고 전했다. 물론 그는 “손 교수가 제안한 한국교회 윤리 문제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동성애 반대, 목회자의 윤리성, 정의와 긍휼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닌 모두 다 지켜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영한 박사는 "동성애 반대는 하루살이 같은 사소한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신구약 전체에서 동성애는 교회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가증한 죄로 보았다”며 “교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동성애 반대를 외쳐야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독일 신학자 판넨부르크는 동성애 수용 교회는 사도성, 거룩성을 표지로 하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말했다”고 인용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대한민국이 차별금지법 등 동성애 반대를 차단하는 법제화를 추진하려한다”며 “이는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로서, 한국 교회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효과적으로 맞서 싸워야한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동성애, 전세는 기울었다”는 손봉호 교수의 ‘동성애 반대 투쟁 과유불급’론에 대한 논평>동성애 반대는 하루살이 걸러내기 아닌, 교회의 본질 지키는 일.(III) -세계적 동성애 허용 대세에 교회는 굴복하거나 영적 투쟁을 멈추어서는 안된다-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9. 한국교회는 동성애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싸우지 말고 전략적으로 싸워야 한다. 1) 손 교수의 반동성애 전략: 동성애 투쟁보다는 교회의 각종 비리와 우상숭배 투쟁이 효과적. 손 교수는 반동성애 전략을 강조한다: 그 전략이란 현상황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정확한 전략이며, 교회가 동성애에 전력을 소진하여 교회의 세습, 각종 비리와 부패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전략을 다음같이 피력한다: “반대에도 올바른 평가와 정확한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낙타는 통과시키고 하루살이는 걸러내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그보다 더 정죄하는 것은 거짓말과 우상숭배다....교회 돈을 횡령해서 유죄판결을 받은 목사가 설교를 계속해도, 대형교회의 목회세습이 일어나는데도, 논문과 설교의 표절이 발각되었는데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동성애는 마치 기독교의 사활이 거기에 걸린 것처럼 맹렬하게 비판하고 나선다.” 손 교수에 의하면 “기독교는 동성애 반대라는 사소한 일에 목 멜 이유가 없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중시했던 십일조를 하루살이에 그들이 무시했던 정의와 긍휼은 낙타에 비유했다(마 23:23-34).” 그는 말한다: “둘 다 지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낙타를 택해야 한다. 적어도 하루살이를 지키느라 낙타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에 동감하면서 동성애와 교회의 윤리적 책임을 양자 택일로 보지 않고 한국교회가 둘 다 지키도록 했으면 제안하고 싶다. 한국의 일부 보수주의자들이 성수주일, 새벽 기도, 십일조, 십계명, 반동성애 등은 금과옥조처럼 여기면서, 목회자로서 교인들에게 행한 공적 약속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거짓말 안하기, 각종 교회권력 탐욕 투쟁과 제거, 율법의 정신인 사회 정의와 주변의 소외자들에 대한 긍휼 실천 등은 등한시하거나 지나치는 것에 대한 손 교수의 지적은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한국 복음주의자들은 그냥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략으로 싸워야 한다. 그래야 이길 수 있다. 2) 동성애 반대는 사소한 일 아닌 교회의 본질 지키는 일 필자의 좁은 생각으로는 동성애 반대는 기독교의 본질을 지키는 문제로 생각된다. 성경이 구약과 신약 전체에서 동성애를 “가증한 일”(죄)로 보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는 하루살이 걸러내는 사소한 일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스와 헬레니즘 문화는 동성애를 수용했으나 히브리 유대교 문화는 동성애를 금기했다. 그 중요한 이유란 전자는 인본주의 문화인데 반하여, 후자는 신본주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는 계몽주의를 통하여 현대의 해체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해체주의 문화에 합리성과 윤리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유대 기독교 문화 전통이다. 신마르크스주의의 본산지 프랑크푸르트학파 출신인 비판사회학자 하버마스는 가치와 윤리의 합리성과 보편성을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면서 정의, 사랑, 평등의 보편주의의 가치성을 인정하고 문화적으로 키워온 모더니즘을 옹호하였다. 그리고 모더니즘이 가져다 준 자유와 연대적 공존, 자율적 삶의 영위와 해방, 개인적 양심도덕,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평등한 보편주의는 바로 유대교의 정의 윤리와 기독교의 사랑 윤리의 직접적인 유산이라고 천명하였다. 하버마스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고 모더니즘이 가져온 정의, 사랑, 평등의 보편주의의 가치성을 인정하고 그것이 유래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을 인정한 것은 주목할만하다. 기독교 문화는 모더니즘이 가지고 있는 비판적 합리성과 전통의 아름다운 유산을 수용하고 있다. 창세기 19장은 동성애 폭력으로 인한 소돔 고모라의 유황불 심판, 사사기 19장은 동성애 폭력으로 인한 베냐민 지파에 대한 심판, 로마서에 바울이 로마서 1:24-27에서 로마 헬라니즘 시대 만연한 동성애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고린도전서 6:9-10에서 동성애자들이 하나님 나라 들어감 배제 언급 등이 명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의 보편사 이성신학자 판넨베르그는 동성애 수용 교회는 보편성, 사도성, 거룩성을 표지로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고 했다. 10. 동성애 투쟁은 하루살이 걸러내기가 아니라 낙타(차별금지법 등 법제화 방지)를 잡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하루살이는 열심히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 자들’이라는 비판하는 것은 동성애 투쟁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동성애 투쟁은 다음 다섯 가지 중요한 목적을 갖는다. 1) 동성애 제도화 방지 첫째, 동성애 퀴어 축제나 풍조가 한국사회에 제도적으로 발붙이지 못하도록 한다.오늘날 영국이나 미국사회에서 동성애 비판적 설교를 하거나, 동성애자들의 요구에 거절하게 되면 법적으로 혐오 내지 차별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실증법 위반일 경우 벌금이 부과되거나 감옥에 가게된다. 그리고 많은 복음주의 목회자들과 성도들도 이러한 동성애 제도화에 의한 영적 황폐함에 영향을 받는다. 이들은 동성애를 비판하면 경찰서에 불러가서 조사를 받고 조사관이 조서(調書)를 쓰게 되고, 다시 법원에 불러가서 재판을 받이야 하는 등 당사자들은 많은 신경이 쓰이고 다른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들을 구상할 시간과 에너지를 뻬앗기게 된다. 동성애 허용 그리고 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영국이나 미국, 캐나다 등 유럽과 북미 사회에서 교회는 영적의 피폐함으로 교인수가 격감하고 영적인 황폐함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2010년대 들어와 동성애 퀴어축제가 서울광장에서 대규모적으로 개최되었는데 만일 한국교회가 영국이나 미국교회처럼 이를 조용히 보기만하고 침묵했더라면 이들 동성애 퀴어축제 세력은 벌써 한국사회를 점령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동성애대책협의회를 구성하여 이에 대응하여 맞불 축제를 평화로운 문화마당으로 개최하여, 동성애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성윤리를 해방하고, 보건학적으로는 에이즈 유발의 중요요인이 되며 각종 질병을 야기시키는 부작용을 폭로함으로써 교회와 사회의 각성을 일으켜서 이만큼 그 창궐을 막아 온 것이다. 2) 정부의 성평등 정책 반대 둘째, 동성애 허용하는 정부의 성평등 정책을 반대하는 것이다.정부가 2018년 8월 대통령령으로 행하고 있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으로 실시하는 성평등정책을 집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대통령령으로 하고 있는 NAP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양성평등정책에 위배되고 있다. 국가의 NAP성평등정책은 각 공공기관 뿐 아니라 심지어는 교회에까지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심각한 정교분리 원칙의 위반이다. 경기도 의회의 개정된 조례에 따르면 ‘사용자’에 해당하는 기업과 종교단체에도 성평등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데, 이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채용하라고 강요하는 차별금지법과 같은 효과를 내는 조례의 형태로, 그것도 위법적인 독소조항까지 마음대로 포함시키고 있다. 영국도 2006년부터 평등법을 통해, 성적 지향·젠더를 넣었다. 이처럼 서구교회는 정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것을 방관하였고 오늘날 교회와 선량한 시민들이 폐해를 입고 있다. 2019년 7월 29일 경기도 성평등 개정 조례안 제정 반대대회에서 전윤성 변호사는 최근 폭발적으로 성 평등 조례 발의가 생긴 이유를 전했다. 그는 “정부는 성 평등 지수에 따라 지자체에 예산 분담을 달리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라며 “지자체들이 예산을 더 얻기 위해, 성 평등 조례를 서둘러 발의·통과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2016년 경기 성 평등 백서에는 ‘양성평등 기본법에서 동성애 차별을 다룰 수 없기에, 동성애를 포함한 성 평등 조례를 추진하라’고 나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는 “경기도는 성급히 성 평등 조례 개정안을 추진하려 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NAP 성평등정책은 우리 사회는 초기 단계니까 그 피해의 시례를 감지하기가 쉽지 않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성평등정책의 구체적인 실례는 남성이 여성의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으며 심지어는 남성이 여성 샤위실이나 목욕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황당한 일이다. 유치원에는 엄마 아빠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양친1 양친2 등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스코틀랜드 국가 보건소는 엄마 아빠 용어는 유치원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용어가 동성 부모를 차별하기 때문으로 본다. 스위스 연방총리원은 엄마, 아빠 용어를 “부모”(Parent) 같은 젠더 중립적 용어(gender-neutral language)로 대치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엄마 아빠라고 불러질 때 젠더주의자 부모들은 강한 차별을 느끼기 때문에 행정 관리들이 언어를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에서는 엄마, 아빠 대신에 “부모1,” “부모2”로 부르고 있다. 3) 차별금지법 제정 사전 봉쇄 셋째, 동성애 반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사전에 봉쇄하는 것이다.동성애 반대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동성애 성행위를 죄라고 지적하고, 당사자가 이런 성중독에서 벗어나도록 사랑과 인내로 권면하고 기도하며 상담하며 도와주며, 사회적 차원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우리 사회와 교회에 제도적 역차별로 주어지는 정상적인 성다수자의 비판을 자갈 물리는 인권 침해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 비판 등 양심, 표현, 출판, 비판이라는 민주시민의 기본권이 제약 당하게 된다. 성소수자의 편의를 위하여 성다수자의 비판, 심리치료사들의 전환치료 자유, 목회자들의 회심 전도 자유가 침해당하며, 각종 사회시설이 성소수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고쳐짐으로써 사회적 제도와 시설이 바뀐다. 제3의 성, 중성 화장실 등이 그 예다. 따라서 동성애 투쟁의 문제는 단지 교회 내의 부정부패와 탐욕의 제거에 그치지 않고 성다수자와 불의를 고발하는 복음 전파자에게 족쇄를 채우는 민주시민의 양심, 표현, 비판, 출판의 기본 자유권을 제도적으로 지키는 것이다. 시민들이 동성애가 죄라고 비판할 수 있는 시민적 양심, 표현과 출판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동성애자들 가운데 전환치료를 원하는 자들에게 상담치료 상담심리학자들의 접근을 자유스럽게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법적으로 동성혼을 인정함으로써 친족상속법을 포함한 민사법 전반을 개정해야 하는 혁명이 일어난다. 성전환 수술 받은 남자가 여성의 전용공간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가능한가? 서구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젠더는 자기마음으로 생각하는 성”이며, 수십 가지의 성을 인정하는데, 여기에는 뉴트로이드(Neutrois),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 바이 젠더(Bigender) 등이 있다고 한다. 젠더 플루이드는 성이 유동적이어서, 아침에는 남자였다가 밤에는 여자가 되는 것이다. 또 바이 젠더는 남자인 동시에 여자이다. 이러한 성평등이 제도화되는 것을 막는 것을 하루살이 제거라고 말할 수 없다. 영국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교회가 동성애 허용 결과에 대한 정보 부족과 소극 대응으로 국가가 동성애 소수자들을 인권차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동성애 차별 금지법 제정을 막지 못했다. 캐나다는 2005년 “인권법”, 프랑스는 2008년 “차별 금지법”, 영국은 2010년 “평등법”, 미국은 2016년 9월 현재 32개주에서 “증오 법죄법”의 이름으로 법제화되어 있다. 이러한 차별금지법의 법제화는 실제적으로 미국에서는 성다수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며 평범한 일상적인 생업에 다음같이 거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역차별의 구체적인 예로 2017년 미네소타주 웨딩포토 사진사 앤젤과 칼 라슨(Angel &Carl Larsen)부부의 경우다. 결혼 15년 차인 이들 부부는 Telescope Media Group이란 회사를 미네소타주 세인트 클라우드시에 설립하여 웨딩 사진영역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면서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옹호 조장하는 웨딩사진은 찍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차별금지법 위반이 되었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원치 않는 동성결혼 사진을 억지로 찍어야 하고 이를 거부하는 경우, 매 번 상당한 금액의 벌금을 내거나 90일씩 감옥에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다른 역차별 경우는 스코틀랜드 학교에서 양성만 있다고 주장한 학생의 퇴학 처분이다.한 스코틀랜드 학교의 경우 ‘남자·여자 외에 다른 성은 없다’고 말한 학생을 퇴학시켰다고 한다. 그 학생은 ‘표현의 자유로서 말했다’고 항변했지만, 교사는 ‘학교 규칙에 어긋 난다’고 입 막았다”고 했다.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이렇게 동성애·젠더를 반대하는 표현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다. 이것들은 이미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외국의 경우인데 한국사회에서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실시될 경우 여러 가지 역차별이 일어나게 되는데 한국교회가 이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며, 이는 지혜로운 일이다 4) 교회는 동성애 도피처, 안식처, 치료처 상(像) 정립 넷째, 한국교회 동성애 반대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긍휼과 사랑과 관용 처방과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지나치게 반대 투쟁에 애쓰다가 보면 동성애 성중독에 빠져 고통하며 신음하는 자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과 긍휼을 놓칠 수 있다. 이는 혹시 한국교회 동성애 투쟁이 놓칠 수 있는 다른 측면일 수 있다. 한국교회 동성애 반대가 ‘정직하고 공정한 정의 실천, 하나님과 믿음을 돈, 명예, 권력 같은 하급가치를 얻는 수단으로 착각하는 우상숭배 배척, 복음을 약한 자에 대한 긍휼로 사용함’을 놓칠 수 있다. 손 교수는 원로로서 젊은 세대들이 놓치기 쉬운 이 면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중요한 측면이며 지혜로운 권면이다. 동성애 반대와 투쟁에만 열정을 다한 나머지 기독교인의 진리에 대한 헌신이 사회적으로는 “율법주의자”의 행동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 투쟁에 임하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저들과 다른 나는 의인이 아니라 나도 저들의 처지에 빠질 수 있는 죄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겸허하고 겸손하게 “성령이시여, 저들의 눈을 여셔서 진리를 알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이 운동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외면적으로 동성애가 죄(성중독)이라고 말하나, 내면적으로는 동성애자들 인격에 대한 연민과 긍휼과 사랑의 처방을 가지고 이 사역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야말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박해자가 아니라 도피처와 안식처와 치료처라는 상(像)을 우리 사회 가운데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사회의 동성애 허용 역사를 보면 1969년 스톤웰 항쟁(Stonewall riots)에서 보듯이 당시 동성애자들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고 사회적으로 심한 소외자로 취급받아 경찰들의 습격을 받아 강제로 해산당하는 가운데서 동성애자들의 폭동이 일어났고 이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회적 연민과 동정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 예수께서 세리와 창녀들의 친구와 상담자가 된 것처럼 한국교회는 오늘날 동성애 성중독에 의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저들을 이해해주고 상담해주며 성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해주고 도와주고 인도해주는 상담소, 도피처, 안식처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종로3가에서 동성애자 카페를 운영하면서 탈동성애 운동을 이끌고 있는 이요나 목사, 박진권 선교사가 이 일을 선도해주고 있다. 모든 각 지역교회 목회자들, 의사들, 상담가들, 심리치료가들이 이 일에 함께 협력해야 할 것이다. 5) 교회의 영적 정체성 보존을 위하여 동성애 반대는 필요하다.다섯째, 동성애 반대는 교회의 영적 정체성 보존을 위하여 필요하다.동성애를 허용하는 교회나 목회자나 신자들의 경우 영적 공허감이나 허탈감에 지배되게 된다, 이런 상황에 대하여 아모스는 말세에 온 지구촌에 미칠 영적 기근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11절)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12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암 8:11-13). 아모스는 이 구절에서 이스라엘의 배교적 신앙 시대를 향한 영적 상황을 예언하고 있다.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영적 갈함으로 쓰러지는 이유에 관하여 14절(“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들은 사마리아(Samaria)의 죄된 우상인 단(Dan)의 신들이나 브엘세바(Beersheba)의 신들을 섬기는 자들이다. 단(Dan)에는 예루살렘에 이어 둘째 왕립 성소가 있었는데 여기에 금송아지 우상이 있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이러한 우상들을 섬겼다. 그래서 이들은 영적 공허나 굶주림에 빠진 것이다. 신약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야곱의 우물 마주보고 있는 그리심 산(Mt. Gerizim)에서 우상을 섬겼다. 역사적 예수는 삶에 지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예배, 성령과 진정의 예배 드릴 것을 말씀하셨다(요 4: 21-24). 오늘날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교회들은 종교다원주의에 노출되어 참된 성경적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벗어난 혼합 종교의 예배를 드린 데서 영적 황폐함과 진정한 내면의 위로와 평안이 없는 영적 공허함에 빠져 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17
  • 마취제 없는 수술? 심프슨 경의 신앙과 학문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겸 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조직신학, 평택대 '과학과 신학' 교수   ◈마취제 없는 수술은 어땠을까? 만일 급성 충수염(일명 맹장염)으로 곧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르렀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마취제가 없어 그대로 수술대 위에 오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비명을 지르거나 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이전만 해도 마취라는 것은 일반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외과적 수술을 하려면 환자가 요동치지 않도록 의사는 사람을 소·돼지처럼 수술대 위에 단단히 잡아두어야만 했다. 마취가 없이 수술이 행해졌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것은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19세기도 아닌 지금도 북한은 마취제 부족으로 인해 지방에서는 일부 마취제 사용 없이 수술을 한다는 언론 보도가 수년전 있었다. 물론 공산주체귀족들은 예외일 것이다. 서민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아프다. 마취는 환자의 의식을 잃게 하여 고통을 없애준다. 마취가 진행되는 동안 수술 받은 환자는 아주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필자의 장녀도 과거 겨우 5세가 되던 어느 해 작은 사고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딸아이는 수술실에 들어가 나오기까지 수 시간 동안 아무런 두려움이나 고통 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가 자연스럽게 깨어났다. 마취를 하면 환자는 설령 자신의 살을 도려내고 뼈를 잘라도 잘 모른다. 고통은 마취가 제거되었을 때에야 시작된다. 이와 같이 오늘날 의학에 있어 필요불가결한 마취제는 심프슨 경(Sir James Young Simpson, 1811-1870)에 의해 비로소 보급되기 시작했다. ◈심프슨 경은 누구인가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였던 심프슨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배스게이트 지방에서 빵을 만드는 가난한 직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영리한 심프슨은 14세 때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하여 의학(산과학, 産科學)을 배우고 1832년 졸업하였다. 잠시 시골에서 병원을 개업하기도 했던 심프슨은 곧바로 병리학의 조수와 동시에 산과학의 강사가 되었고, 1846년에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에든버러 대학의 산과학 교수가 되었다.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섬세함을 동시에 갖추었다고 전해지는 심프슨은 1843년, 오늘날 간호학과 산파학에 아주 중요한 의학 도구인 자궁소식자(子宮消息子, Uterus-Sonde)를 고안하였고 많은 논문을 쓴 의학자였다. 그가 1853년 고안한 산과겸자(産科鉗子, Obstetrical forceps)는 오늘날도 사용되고 있으며 말년에는 병원 환경이 환자 건강에 아주 중요한 요소임을 알리고 환경 개선에 노력한 의사였다. 무엇보다 그는 산과 마취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1847년 1월, 그는 처음으로 임산부에게 에테르마취를 하였고, 그 해 11월에는 역시 최초로 클로르포름마취를 시도하였다. 마취 문제로 종교적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던 그가 성경을 가지고 반론을 편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마취제를 발견한 심프슨 경 성경을 믿는 심프슨 경은 당시 많은 외과 수술을 하면서 수술 중 환자가 받는 고통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던 중, 창세기 2장 21절, 22절을 읽고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매우 희화적인 하와에 대한 이 창조의 이야기를 심프슨 경은 그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의사의 지식으로 볼 때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떼어내는 것은 매우 큰 수술이다. 그런데 그 수술을 받은 아담은 잠에서 깨어나 고통은 느끼지도 못한 듯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세기 2장 23절)고 탄성을 울렸다. '하나님이 아담을 잠재우시듯, 환자를 잠재워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무사히 수술을 끝낼 수는 없을까?' 더욱이 환자가 수술 중 고통 때문에 움직이는 것은 수술시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심프슨 경은 위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수술용 마취제의 개발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마취제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다. 18세기 여러 가지 기체들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그중에는 치과에서 이를 뺄 때 사용하는 이산화질소(NO)도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의 윌리엄 모튼(1819-1868)이라는 치과 의사는 1846년, 이산화질소 대신에 에테르라는 물질을 사용하였더니 아프지 않게 이를 뺄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물질은 곧 영국의 외과 의사들에게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에테르는 불쾌한 부작용이 있었다. 그래서 심프슨은 '좀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물질이 없을까?'하고 찾기 시작했다. 1847년 11월의 어느 날, 심프슨 경은 그의 조수이자 친구였던 키이스 박사, 던컨 박사와 함께 '클로로포름'이라는 무거운 액체를 시험해 보았다. 클로로포름은 이미 1831년 알려진 물질이었지만 오랫동안 아무도 그 용도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심프슨과 그 동료들은 컵에 클로로포름을 붓고 그 증기를 조금씩 마셔 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보통 때 느끼지 못했던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그들의 눈은 빛났고, 매우 행복해 보였으며, 수다스러워졌고, 말끝마다 이 향긋한 향기를 칭찬하였다. 그 기체에는 약간의 단맛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곧 이 기체를 마신 사람들은 바닥에 모두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이 실험을 통해 클로로포름이 안전한 마취제라는 확신을 갖게 된 심프슨은 에든버러 왕립 병원에서 이 물체를 실험하기로 결정한다. 1847년 11월 어느 날, 심프슨은 아일랜드에서 온 너 댓살 먹은 소년의 작은 수술에 드디어 클로로포름을 사용하였다. 이 소년의 곪은 팔 부위에서 뼈를 잘라낼 때 클로로포름을 사용한 것이다. 마취는 클로로포름을 약간 손수건에 묻혀 소년의 얼굴에 대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이 마취제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잇따른 수술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거둔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심프슨 경은 분만의 고통을 더는 데도 이 클로로포름을 사용하였다. 최초 환자는 그의 친구인 동료의사의 딸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성공은 무통분만법을 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으며, 그는 수십 회 이 방법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마취법의 성공적 활용은 1853년 영국의 유명한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여덟 번째 자녀인 레오폴드 왕자를 분만할 때 활용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이 마취법은 공인되었으며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심프슨 경의 믿음과 고백 지금은 클로로포름이 사람에게 독성(참고: 독성 없는 약은 없다)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 더욱 발전된 마취제를 쓰고 있다. 이런 의학 발전에 있어 심프슨 경이야말로 마취제의 선구자였으며, 그 시작은 바로 성경이었다. 성경 말씀을 한낱 설화나 신화 또는 단순한 교훈서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른 한 진실한 외과 의사에 의해, 인류는 많은 고통스런 수술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보다 안전한 수술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심프슨은 자신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마취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가 찾은 가장 위대한 발견은 바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가 쓴 신앙에 관한 고백록에서 심프슨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나의 대속(代贖) 제물이 되시며 나를 위해 징벌을 받고 십자가 위에 죽으신 예수님을 찾았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찾았고 부르짖었으며 용서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전하는 것은 나의 의무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심프슨은 다음의 성경 구절을 소개하고 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이사야서 53장 5-6절). 참으로 심프슨 경은 위대한 과학자이자 진실 된 그리스도인이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17
  •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한 황의석 검찰개혁추진단장, 작년에 '기독교는 혐오집단'이라 발언"
    ©반동연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대표 : 주요셉 목사)는 조국 법무부장관이 민변 출신 황의석 법무부인권국장을 검찰개혁추진단장으로 임명한 부분을 비판했다.   이들은 “황 국장은 지난해 8월 7일 차별금지법을 목적으로 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을 통과시키는 데 1등 공신”이라며 “특히 황 국장은 NAP 종합토론회에서 동성애 옹호 시민단체 측만 초청시켜 편향 논란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은 NAP 수립 과정 중 “황 국장은 기독교는 혐오집단이며, 기독교와 타협할 생각 없다는 발언을 했다”고 밝히며, “동성애 반대 시민단체들을 혐오세력이라고 매도해 기독교계를 격앙시켰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들은 “비리 덩어리 조국 법무부장관이 황 국장을 검찰개혁단장에 임명한 것은 자신의 비리를 덮기 위한 술책”이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논평] 오늘 조국 법무부장관이 좌파 성향 변호사단체인 민변 출신 황희석 법무부 인권국장을 검찰개혁추진단장에 서둘러 임명했다. 그런데 황 국장은 지난해 8월 7일 다수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 시행 등을 목적으로 설계한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을 통과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특히 황 국장은 모든 시민단체와 함께해야 할 NAP 종합토론회를 배제한 채 동성애 옹호 및 편향된 인권 주장하는 시민단체들과만 18차례 주제별 정부·시민사회 간담회(2018년 1월~3월)를 개최했었는데, 국가인권정책협의회 규정에도 없던 것이었다. 그는 동성애 반대 시민단체 대표들과 19차 간담회에 참석한 현장에서 "혐오세력이 왜 참석했냐?"는 안하무인격 혐오발언을 서슴없이 자행한 황○○ 변호사를 제지하지 않았고, 우리 쪽 시민단체 대표의 무소불위 인권 폐해 예시한 <브레이크장치 필요성> 제기에 <반인권적 발언>이라고 매도해 큰 충돌을 빚었던 인물이다.   또한 NAP 수립 과정에서 면담 중 “기독교는 혐오집단이며 기독교와 타협은 없다.”고 발언한 일로 기독교계를 격앙시키기도 했었다. 비리덩어리 조국 법무부장관이 부적격자 황희석 인권국장을 검찰개혁추진단장에 임명한 건 비웃음 사기에 충분한 일이며, 국민적 공분을 일으킬 뿐이다. 자신의 비리를 덮기 위해 검찰개혁추진단장을 서둘러 임명한 걸로 보이는데, 이는 국민적 지지를 얻기 힘들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코드인사에 불과한 최악의 선택일 뿐이다. 2019년 9월 10일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16
  •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의 신앙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겸 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 사람이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타고난 원초적 소망인지도 모른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다이달로스의 아들 이카로스는 큰새의 깃을 백랍으로 붙여 날개를 달고 미궁을 탈출하다 태양에 가까워지자 그만 백랍이 녹아버려 바다에 추락해 죽는다. 이렇게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것은 커다란 소원이었으면서도 성취하기 어려운 희망 사항이었다. 오늘날 독수리를 하늘의 왕자라 하나 실은 과거에는 독수리보다 훨씬 더 큰 비행 생명체들이 많았다는 것이 화석으로 밝혀지고 있다. 독수리는 한쪽 날개가 1미터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테라노돈은 양 날개의 길이가 7미터나 되었고, 아즈텍 신의 이름에서 따온 케찰코틀러스는 날개 사이의 길이가 15미터나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전투기의 날개 길이만큼 큰 것이다. 그렇다면 노아 홍수 전후에는 사람들이 이들 괴조들을 가축처럼 길들여 날고 싶은 욕구를 일부 채웠을지도 모른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일부 민족들에는 거대한 새와 새를 부리는 사람들에 관한 전설이 남아 있다. 특히 인디언들에게는 거대한 새에 관한 생생한 전설이 많이 남아 있다.   ◈목사의 아들들-라이트 형제 라이트 형제가 동화처럼 느껴지는 이런 인류의 오랜 소원을 이룬 인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미국의 언론인 루드윅은 "그들은 우리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라고 직접적으로 그들의 업적을 칭송하기도 했다. 아주 사이가 좋았다고 알려지고 있는 윌버 라이트(W.Wright, 1867-1912)와 오빌 라이트(O.Wright, 1871-1948) 형제는 미국 연합 형제단 교회의 청빈한 목사였던 밀턴 라이트의 셋째와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3년의 어느 토요일 오후, 이들 형제는 역사상 최초로 비행기를 띄우기위해 마지막 최종 점검과 수리를 끝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으며 날씨도 그들을 돕는지 시험 비행을 하기에는 바람 한 점 없는 완벽한 날씨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비행기는 전혀 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가 뜨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날은 바로 주일이었다! 이들 형제는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주일에는 누구도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안식하는데 훈련되어있었다.   ◈비행에 대한 호기심 이들 형제가 처음으로 비행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879년에 부친이 여행의 선물로 프랑스의 페노라는 사람이 고안한 장난감 헬리콥터를 선물한 이후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비록 장난감이었지만 헬리콥터의 모형은, 연날리기를 무척 좋아하던 이들 10대 소년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형제는 곧 지방의 연날리기 클럽에도 가입하게 된다. 라이트 형제는 공부도 무척 잘했는데, 원래 형 윌버는 예일대학교에 진학하여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스하키 도중 그만 대부분의 이빨이 부러지는 커다란 사고를 당하게 된다. 대학을 진학하지 않은 이들 형제들은 오하이오 주의 기계 제작소, 신문 인쇄업을 전전하다 1892년, 자전거 판매업을 시작한다. 당시 자전거는 영국과 독일, 프랑스의 치열한 개발 경쟁 끝에 50여 년 전 영국의 맥밀란이 페달 달린 자전거를 개발하여 신속하게 전파되고 있었다. 손재주 많은 이들 형제에게 자전거 제작은 수입도 괜찮고 적성에도 맞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역시 비행기의 제작이었다. 1895년경, 라이트 형제는 릴리엔탈이 지은 책을 읽게 된다. 그는 글라이더의 전문가로 무려 2,000여회에 달하는 비행 실험의 경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런데 릴리엔탈은 1896년, 시험 중이던 비행기가 추락하여 그만 사망하게 되었다. 1899년, 과학 지식을 보급하는 국가 기관인 스미소니언협회에 편지를 보내는 등 라이트 형제는 꾸준히 비행에 관한 자료를 입수하면서 비행기의 제작에 열중하고 있었다. 1900년에는 사람의 몸을 지탱할 수 있는 튼튼한 글라이더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조종하느냐가 커다란 문제였다. "하나님이 만드신, 나는 기계인 새가 있지 않은가!" 어느 날 형 윌버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관찰이 쉬운 날을 하루 잡아 자신이 살던 미국 오하이오 주 데이튼의 들판으로 나갔다. 그리고 오랜 관찰 끝에 새들이 수시로 날개의 모양을 바꾸어 가면서 좌우상하 여러 방향으로 날며 속도도 조절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행기도 좌우의 날개 면에 변화를 준다면 새처럼 불편 없이 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기체의 좌우가 기울었을 때 떠오르는 힘에 차이가 생기게 함으로써 기울기를 줄이는 방법으로, 오늘날에도 모든 비행기에 응용되고 있는 보조날개의 원리였다. 1900년 6월, 라이트형제는 이것을 연과 글라이더 실험을 통해 거듭 확인하게 된다. 글라이더에는 동생 오빌이 엎드려 탔으며, 언덕 위를 미끄러져 30미터를 날아 잔디 위에 무사히 착륙하였다. 동력 장치가 없이 그저 날기만 하였던 실험이었지만 라이트 형제에게는 큰 용기를 불어넣은 시험이었다. "형! 글라이더에 엔진이나 프로펠러가 달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생의 말에 형 윌버는 작고 가벼우면서도 힘이 센 자동차 엔진을 개발하여 글라이더에 장착할 구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라이트 형제보다도 먼저 글라이더에 엔진을 달아 실험하려는 사람이 나타났다. 랭글리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1903년 10월 7일 글라이더에 엔진을 달고 커다란 강 가운데 있는 배 위에서 실험 비행을 하였다. 그런데 비행기는 배를 떠나자마자 곧 물속에 잠겨버리고 말았다. 랭글리는 그 해 12월 8일에 2차 시도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날기도 전에 뒷날개가 갑판 위의 물체에 부딪혀 실패하고 말았다. 이 일로 랭글리의 비행체 연구는 종말을 고하게 말았다. 랭글리처럼 라이트 형제도 독자적인 비행기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랭글리가 비행 실험을 하던 그 해 마침내 라이트 형제는 12마력의 엔진을 개발하였다. 라이트 형제는 이 엔진으로 두 개의 프로펠러를 돌릴 수 있는 비행기를 제작한다. 그리고 랭글리가 비행을 시도하다 실패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는 비행을 계획하게 된다.   ◈라이트 형제의 신앙과 비행 실험 날씨도 추웠던 데다가 랭글리의 비행 실험이 아무런 소득도 없이 끝나버린 직후라 언론과 대중들은 학벌도 시원찮은 이들 형제의 실험에 조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더욱이 어느 누구의 경제적 도움도 없는 아주 어려운 여건에서 독자적으로 제작된 비행기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면에는 이들 형제의 지나칠 정도로 검소하고 조용한 성격에도 원인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고지식하고 청빈한 목사였던 라이트 형제 아버지의 영향이 많았던 것 같다. 미국의 유명한 롤스로이스 자동차 회사의 공동 설립자였던 롤스는 그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밀턴 라이트(라이트 형제의 아버지) 목사는 성경이 그들 자녀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그 긍정적 효과에 관하여 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라이트 형제의 이 유명한 역사적 비행 실험에는 겨우 5명의 구경꾼만이 참석하였다. "라이트 비행기"라고 이름을 붙이고 동생 오빌이 탄 이 비행기는 1차 실험 비행에서 12초 동안 37미터를 날았다. 역사적 비행은 이렇게 그들의 성격대로 아주 조촐(?)하게 마감되었다. "라이트 비행기"는 그 다음 제2차 실험에서는 59초 동안 260미터나 비행하였다. 이렇게 모든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1908년, 윌버는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에서 그 위용을 세상에 공개적으로 과시하였다. 그런데 그 해 사고로 승객이 죽고 오빌이 다치는 사고도 발생한다. 그렇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라이트 형제는 1909년 비행기 생산을 위한 항공 회사도 설립하였다. 1909년 7월 25일에는 1개의 날개를 가진 단엽기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도버 해협을 37분 만에 횡단에 성공한다. 항공 산업의 시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목사인 아버지 덕분으로 어린 시절 일찍이 주님을 영접하고 일생 동안 술과 담배를 전혀 입에 대지 않았으며, 그 당시 흔하던 도박에도 전혀 손 한번대지 않고 검소하고 절제된 삶을 살아간 이들 형제의 모습은 오늘날 물질적 욕구에만 눈이 어두워 어수선한 우리 사회의 모습과 크게 대비가 된다. 그렇게도 우애 깊던 이들 형제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형 윌버는 1912년 5월 30일 45세로, 동생 오빌은 1948년 1월 30일 76세로 주님 곁으로 갔다. 그들의 공헌으로 인류는 오늘날 하늘을 통해 지구촌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목격하며 더욱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11
  • "경기도 성평등 조례에 의해, 초·중·고등학교에서 '동성애=정상' 교육 가능하다"
      ©옳은가치시민연합 김수진 대표 제공   경기도 성평등 조례에 따라, 유치원·초·중·고등학교도 동성애·젠더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제 18조의 2은 “공공기관의 장 및 사용자는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제24조부터 제26조까지 및 제 31조에 따른 양성평등 참여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성평등위원회를 설치”를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사용자에 '초·중·고'도 포함되기 때문에, 자칫 성 평등 교육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윤성 미국 변호사는 “성평등은 동성애·트랜스젠더·제 3의 성의 평등을 주창하는 개념”이라며 “경기도 성평등 조례에 따라, 사용자는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며, 사용자에는 어린이집, 초·중·고등학교도 포함된다”고 전했다. 때문에 그는 “초·중·고등학교에 성평등위원회가 설치된다면, 동성애·트랜스젠더·제 3의 성인 젠더 차별을 금지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에 의하면, 양성평등기본법 31조는 성희롱 예방교육실시, 성희롱 방지조치, 지침마련을 대략적으로 제시했다. 그에 따라 경기도 성평등 조례는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명시했기 때문에, ‘동성애·트렌스 젠더도 정상’이라는 교육도 초·중·고등학교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다. 전 변호사는 “성평등위원회이기에 동성애자·트랜스젠더 채용 차별금지로도 충분히 해석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11
  • 스마트폰의 원조는 누구일까? 사무엘 모르스의 신앙과 학문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겸 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   ◈스마트폰의 원조는 누구일까? 역사 속에서 스마트폰만큼 가난하던 우리 민족의 저력을 세상에 알리고 우리 민족을 선진국 문턱까지 밀어올린 고마운 제품이 있을까? 그렇다면 오늘날 스마트폰의 모퉁이돌이 된 인물은 누구였을까? 당연히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 같은 한국인은 아니었다. 아마도 역사 속에서 오직 세 명만 꼽는다면 그 공로는 파스칼과 폰 노이만 같은 천재들에게 돌아가야 하고 나머지 한명이 더 있다면 바로 오늘 우리가 다룰 사무엘 모르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최고 직장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장차 근무하기를 가장 선호하는 직장은 과연 어디일까? 과거 한 통계 조사에서, 놀랍게도 젊은이들은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대기업이 아닌 통신관련 한 공기업을 꼽아 커다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금은 민영화된 이 기업이 당시 정부 투자 기관이라는 안정성에도 매력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은 정보 통신 분야가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 갈 대표적인 업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오늘날 정보 통신 분야는 빠르게 세상을 변혁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모르스는 19세기 중반 전신기를 발명하여 디지털과 정보 통신 산업의 시발을 알린 사람이었다. ◈사무엘 모르스의 어린 시절 사무엘 모르스(Samuel F. B. Morse:1791-1872)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찰스타운이라는 곳에서 유복한 기독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사무엘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그의 아버지 제디디아 모르스(Jedidiah Morse:1761-1826)는 그의 아버지는 칼빈주의 신앙의 유명한 설교자이자 미국 연방주의의 지지자로 지리학 책을 내기도 한 학자였다. 그가 쓴 지리학 서적은 미국의 최초 지리학 교과서로 25판이나 인쇄할 정도로 권위와 인기를 끈 책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지리 교과서가 노아의 홍수를 강력하게 옹호하고 있으며 성경적 연대기를 그대로 지구 역사에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노아의 방주 안에 과연 어떻게 모든 동물을 실을 수 있었는지를 학문적으로 논하는 등 성경적 관점으로 일관한 책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독립 초기부터 미국은 청교도 정신에 따라 모든 교육을 성경적 관점에서 행하고 있었으며, 자연과학의 해석도 진화론적 관점이 아닌 성경적, 창조론적 관점으로 일관되게 다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미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이 마음대로 교육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된 것은 1925년 스콥스 재판 이후였다. 오늘날 우리 중·고등학교 검정교과서에 진화론을 비판하는 내용을 조금도 싣기 어려운 현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부친의 신앙을 이어 받은 사무엘을 포함한 세 아들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는 철저한 기독교 학교와 기독교 대학인 예일대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사무엘이 한평생 그리스도인으로 커다란 업적과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다. 사무엘 모르스가 자신이 발명한 전신기로 최초로 송신한 내용이 성경 구절이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져 내려오는 사실이다. 훗날 전신기를 개발하기까지 고난과 경제적 어려움과 주위의 냉대 가운데서도 그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였으며, 선교 사업과 성직자 양성 기관을 후원하던, 평생을 한결같이 하나님께 충성한 열심있는 신앙인이었다. ◈미술에 뛰어난 아이 사무엘은 어린 시절, 미술에 대단한 관심과 재능을 보인다. 아마 전신기의 개발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면 모르스는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그는 화가와 조각가로서 상당한 경지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장남인 사무엘의 이런 예술적 취향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어 마침내 그를 영국으로 유학을 보내게 된다. 사무엘의 나이 20세 되던 1811년의 일이었다. 모르스의 예술적 재능은 바로 이 영국 유학에서 꽃피우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에게 명성도 얻게 되었다. <헤라클레스의 죽음>이라는 작품을 이름난 조각전에 출품하여 특선을 차지한 것도 이때였다. 그가 제 5 대 미국 대통령 제임스 먼로의 초상화와, 프랑스 태생으로 미국남북전쟁의 영웅으로 알려진 라파엣(Marquis de Lafayette) 장군의 초상을 그린 것이나, 25세 되던 1815년, 국립미술관의 초대 관장을 역임한 것만 보아도 그의 예술적 재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예술적 재능이 고도의 과학적 재능으로 옮겨져 위대한 발명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런 예술적 재능을 가졌던 그가 무슨 이유로 조금은 엉뚱하게 느껴질 만큼 전혀 생소한 전신기의 개발에 매달리게 되었던 것일까? 여기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전해지는 일화 1832년 12월, 모르스는 유럽으로부터 대서양을 횡단하여 미국으로 가는 슈리호라는 배를 타게 되었다. 슈리호는 사람과 우편물을 함께 태우고 다니는 여객선이었다. 여기서 모르스는 찰스 잭슨이라는 미국인 의사를 만나게 된다. 그는 당시로서는 매우 희귀했던 전기에 대한 실험을 프랑스에서 구경을 하고는 그 자랑을 함께 배를 탄 사람들에게 늘어놓고 있었다. 잭슨은 프랑스에서 전자석도 하나 선물로 받아가지고 와서 배 안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전류가 통하면 쇠붙이가 자석으로 변하게 되는 전자석은 영국의 윌리엄 스타전이라는 사람이 7년 전에 발명한 것이었는데, 당시로서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여객들 틈에서 전자석과 전기 실험에 관한 잭슨의 이야기를 말없이 경청하던 예술가 모르스에게는 어떤 청사진이 하나 떠오르기 시작한다. '전기의 흐름과 전자석을 이용해 먼 곳으로 신호를 보내는 통신 수단에 이용할 수는 없을까?' 모르스는 전신전송(電信電送)은 숫자를 점의 수와 그 간격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은어표(隱語表)를 만들면 문자로 전송이 가능할 것이라는 착상을 하였다. 이렇게 화가인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설계도가 마련되고 있었고 그것은 점점 구체화되었다. "선장님, 이제 얼마 후에는 세계가 깜짝 놀랄 전신기의 개발 소식을 듣게 될 겁니다. 그러면 그 발명품이 바로 이 슈리호 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렇게 그는 선장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일화는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그의 전신기 개발이 본격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주일학교 원조의 한 사람 하지만 그가 전신기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었다.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가 고향 교회에서 시작한 주일학교는 미국 최초의 주일학교 가운데 하나였다. "종교가 없는 교육이란 기독교의 건전한 규범을 무모한 이론으로 바꾸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그는 기독교 교육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칼빈주의 청교도 목회자 자녀로 자란 그는 또한 반가톨릭운동을 지지한 사람이기도 했다. 로마 방문 시 모르스는 당시 관례를 거부하고 교황 앞에서 모자를 벗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전신기 개발에 관한 에피소드를 하나 더 살펴보자. ◈전신기 개발의 직접적 계기 전신기 개발을 본격화하기 훨씬 이전, 모르스는 또 다른 전신기의 발명에 대한 소명과 동기가 있었던 것 같다. 미술을 공부하러 그가 영국 런던에 도착하던 1811년은 미국과 영국 사이에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듯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당시 영국은 미국 선박들이 적성국인 프랑스에 물품을 공급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미국 선박들을 선제공격하였다. 선박 공격 이후 곧바로 영국은 미국과 화해를 모색하게 되는데, 대서양을 건너 수개월 후에 이 메시지가 미국에 전달되었을 때, 이미 미국은 영국에 대해 선전 포고를 한 이후였다. 결국 이 분쟁은 2년이 지나서야 끝이 났지만, 평화 협정이 서명된 이후에도 양국의 일부 군함들은 분쟁이 해결되었다는 정보를 듣지 못한 채 전투를 지속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었다. 신속한 통신의 부재가 이런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1825년, 모르스는 개인적 불행도 맞게 된다. 미국 코네티컷 주의 뉴헤븐이라는 곳에 있던 그의 아내가 급작스럽게 사망하게 되었는데, 당시 그는 아내로부터 5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었으므로 장례식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편지가 일주일이나 지난 후에야 그에게 배달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통신이 발달되었다면 이런 모든 일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일들이었다. 이런 거듭된 일들이 그에게 전신기를 개발하는 데 촉매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손재주 좋은 다재다능한 발명가 모르스 발명가로서 모르스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의 동생 시드니와 함께 개발한 물 펌프와 대리석 절단 기계가 있다. 또한 그는 당시 프랑스에서 시작된 사진 기술을 배워 미국에 전한 미국 최초의 사진사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인물 사진을 찍으려면 10분 이상을 꼼짝없이 서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사실상 인물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르스는 뉴욕대학의 동료 교수 존 드래퍼와의 공동 연구로 노출 시간을 1분으로 단축하였으며, 은판 사진 기구를 개발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모르스는 당시 학생들에게는 별난 것에 관심이 많은 괴짜 미술교수였다. 아무튼 전자 통신에 대한 구체적 아이디어를 갖고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모르스는 뉴욕대학의 미술과 조각 교수로 있으면서 5년 동안 같은 대학 화학 교수로 있던 레오날드 게일(Leonard Gale) 교수의 도움을 받아 연구에 전념하게 된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그에게 하나 더 필요한 것은 바로 실험에 따르는 재정문제였다. 그는 돈 많은 사람들과 미국 정부에 이 일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자금 지원을 요청하였지만, 누구도 이 일에 재정적으로 후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는 영국 등 유럽을 오고 가면서 동분서주하였지만 아무런 소득도 얻을 수 없었다. 재정적 어려움과 더불어,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는 완전히 무일푼이 되어 끼니를 걱정할 만큼 방황을 거듭하게 된다. ◈고난을 통한 신앙의 성숙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그러하듯, 그도 환난을 통해 인내하는 법을 배우고 연단을 거쳐 성숙된 신앙인이 되어 갔는지도 모른다. 그런 고통스런 기간은 무려 11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그렇지만 결코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떠난 적이 없었다. 마치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이 다가올 때마다 모세와 하나님께 불평하였지만 모세는 묵묵히 때로는 부르짖어 하나님께 기도하였듯, 모르스는 인내하며 묵묵히 하나님을 찾았다. 이때의 상황을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렇게 일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 모든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른 섭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 아닐 수 없다. 1843년, 끈질긴 노력 끝에 결국 모르스는 전신기에 관한 정부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가 개발한 전신기를 사용하게 된다. 최초의 전선은 수도 워싱턴으로부터 약 64킬로미터 떨어진 볼티모어까지 연결되었다. 1844년 5월 24일 금요일, 마침내 역사적인 날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신기하고 놀라운 발명품을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다. 모르스는 조금은 긴장되면서도 감격스런 표정이었지만 먼저 전신기 앞에 앉아 조용히 묵상 기도를 드렸다. 최초로 전송되는 공식 문장은 믿음 좋은 그의 오랜 친구의 어린 딸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모르스 아저씨를 통해 사무엘 모르스의 일생을 지탱하고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준 분이 누구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하나님이었다! 당연히 그 내용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믿음의 고백이었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민수기 23장 23 후반절의 이 말씀은 이렇게 전신기를 통해 모르스의 부호로 최초로 볼티모어에 전해졌다. 모르스 부호는 점과 선으로 알파벳을 표현한 아주 과학적인 기호였다. 전신기는 이 부호들을 종이에 써내려 갔던 것이다. 이 내용을 수신한 볼티모어에서는 똑같은 내용을 워싱턴으로 다시 보냄으로써 통신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이 커다란 사건은 단번에 모르스를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더욱이 전신기가 산업화됨에 따라 엄청난 물질적인 부(富)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시기하는 일부 사람들은 발명가로서의 그에게 로얄티를 지불하지 않으려고 소송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미 대법원은 모르스야말로 1837년 이래 완벽한 전신기를 개발한 유일한 발명가임을 확인해 주었다. 1858 년에는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결코 자만하거나 이 모든 과정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도 의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오직 그분만이 나의 이 모든 시도를 통해 지금의 나를 이 위치에 이르게 하셨을 뿐이다. 영광 받으실 분은 오직 우리 주님일 뿐이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동생에게 고백하고 있다. 만일 그가 최초로 송신한 말이 "미국 국민 만세다!"식의 지극히 평범한 감격의 표현이었다면, 아마도 그는 평범한 과학자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뒤돌아보면 이렇게 사소한 결정이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는 경우를 우리는 상당히 많이 목격하게 된다. 지극히 작은 일에 관심을 가지신 우리 하나님이 아니신가(눅 16:10 ; 마 25:40). 사무엘 모르스가 전신기를 통해 최초로 송신한 말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이었다는 것은 미래 디지털 정보 시대와 더불어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되고 기념될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10
  • 판타지와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너희는 그곳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털끝만큼도 상상하지 못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 이야기만 듣고 신문 기사만 읽어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 너희가 직접 그 안에 들어가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어.”- 네티바 벤예후다(Netiva Ben-Yehuda) 중세 전쟁사를 전공한 유발 하라리는 전쟁을 통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지 추적하여 ‘극한의 경험’을 썼다. “피를 뒤집어쓰고 사지를 늘어뜨린 채 이미 죽음이 목을 조여 오는 듯 쉰 목소리로 살려달라 외치는 형체를 바라볼 때 비현실적인 느낌이 나를 옥죄었다.” 1914년 일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에른스트 윙거(Ernst Junger)는 고백했다. 전쟁은 인간을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고, 인간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며, 세상에 대한 이해도 변화시킨다(Harari, 41/555).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J.R.R. Tolkien)도 1차 세계대전을 참전하였다. 수많은 젊은이가 무의미하게 목숨을 잃고 가장 친한 친구들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는 전장에서 얻은 전염병으로 18개월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다. 그는 고백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 얼마나 암울한 공포에 뒤덮여 있으며 얼마나 슬픔에 빠져 있는지.”(고명섭, 207) 1세기 교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전쟁의 경험은 아니겠지만, 그와 버금갈 정도로 끔찍한 경험들을 하였다. 로마 검투사의 칼날에 살점이 찢겨나가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 형틀에 묶여서 갈고리 채찍으로 수도 없이 맞아 뼈가 허옇게 노출된 사람, 십자가에 매달려 일주일 내내 신음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그들은 현대인이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신앙생활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그들은 어떻게 신앙을 지켰을까? 유발 하라리는 ‘극한의 경험’이 종교적 계시 경험과 맞닿아 있다고 하였다. 최악의 상황에서 사람은 현실을 뛰어넘는 신비한 경험을 하고, 평생 그것이 가슴에 남아 때로는 트라우마로 고생하고, 때로는 현실을 초월하는 경건을 배운다.   톨킨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 인간의 모든 노력은 헛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고명섭, 208). 이러한 경험과 생각에서 톨킨은 판타지 문학에 빠져들었다. 반면 현대인은 실용주의자이다. 계산적이고 합리적이며 예측 가능한 것을 좋아한다. 복음주의자들 역시 실용주의의 함정에 빠져들어, 성경에서 이론(교리)을 도출하여 ‘해야 한다’든지 ‘필요가 있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어떤 설교자들은 이야기를 경멸하고 신학과 교리를 설명하는 가르침만 추구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고 생명을 바쳐 헌신하게 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은 위대한 이야기꾼이다. 최고의 설득을 쓴 카민 갤로(Carmine Gallo)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의 방법은 ‘이야기’라고 하였다. 그는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John Scully)에게 했던 말로 책을 시작한다. 스컬리는 37살 나이에 펩시콜라의 사장이 되었다. 8년이 지나고, '마케팅의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스컬리는 최고로 촉망받는 CEO가 되었다. 그때, 26살 청년 스티브 잡스는 45살 대기업 회장에게 신생기업 애플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스컬리는 당연히 거절하였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실망하지 않았다. 1983년 3월 마침내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를 설득하였다. 스티브 잡스의 메시지는 간단하지만 힘이 있었다. “남은 평생 설탕물을 팔 건가요. 아니면 저와 함께 세상을 바꿀 건가요?”   오늘날 설교자들의 문제 중 하나는 뻔한 이야기를 뻔한 방법으로 전한다. 어느 교회를 가도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아무런 감동 없이 전한다. 대개 교인들은 졸거나 딴생각하기 일쑤이다. 그나마 귀를 기울여 듣는 성도들도 다음 주가 되면 지난주 설교를 다 잊어버린다. 말씀을 실천하는 교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학교에서는 감동과 열정을 쏙 빼버린 이론(신학과 교리)만 열심히 가르친다. 마치 회사에서 세일즈맨에게 물건 사용설명서만 열심히 외우게 한 뒤, 물건을 팔라고 내보내는 것과 같다. 그 물건을 사용할 때 누릴 수 있는 행복(설령 그것이 가짜일지라도)을 열성적으로 전달해도 살둥말둥한데 말이다. 이런 회사와 신학교는 매우 유사하다. 신학교는 차갑게 식어버린 교리나 죽어있는 신학만 가르친다. 영혼을 살리는 말씀의 능력, 감동, 흥분, 기쁨은 가르치지 못한다. 그러니 목회 현장의 설교는 언제나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하다. 그렇게 기독교는 점점 죽어가고 있다.   성경은 다양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시, 잠언, 사랑 노래, 역사 이야기, 편지, 묵시 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중에도 묵시 문학인 요한계시록은 이야기 중의 최고다. 처음 요한계시록을 읽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현대 유행하는 판타지 문학을 생각하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해리 포터’ 등은 상상의 세계를 묘사하지만, 누구도 어렵다고 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은 초대교회의 판타지 문학과 같다.   판타지 문학이나 묵시 문학은 현실 도피적 성향이 있다. 끔찍한 전쟁 경험이나 박해 경험은 현실 세상에 환멸을 느끼게 만든다. 1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경험을 통해 판타지 문학에 심취했던 톨킨은 기독교 신앙 자체가 “도피가 영혼에 유익하다”는 믿음에 근거한 모험 인지도 모른다고 하였다(Yancey, 154).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람은 도피를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옥 밖의 자유로운 세상을 그린다고 해서 죄수를 경멸해야 하는가(Yancey, 153)? 얀시는 되묻는다. 톨킨은 ‘판타지라는 도피적인 매체를 이용하여 현실을 넘어선 영혼의 여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성경의 묵시 이야기를 한번 생각해 보자.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의 부패와 쇠락을 보고 괴로웠다. 어떻게 하면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잠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깨울 수 있을까? 시스템을 바꾸고, 성전 관리와 경영을 잘하면 될까? 성전(교회)을 고치고, 개혁하고, 갱신하고, 재구성하기 위하여 계획과 전략을 짜면 될까? 온갖 인간의 방법과 생각을 동원했지만,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 그러다 포로로 끌려간 후 (성전이 아니라) 그발 강가에서 놀라운 환상(해답)을 본다. 그는 아주 기괴하게 생긴 네 생물의 형상을 본다. 그 형상은 밧모 섬에 있던 요한이 보았던 형상과 비슷하다. 네 생물은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의 형상이었다(계 4:7, 겔 1:10) 그 후 에스겔은 마른 뼈들만 가득한 골짜기로 간다(겔 37:1-14). 뼈들만 가득한 그곳은 끔찍한 장소다.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한 곳이지만, 에스겔은 환상 속에서 놀라운 희망을 발견한다(Roxburgh, 90-91). 에스겔이나 요한이 보았던 환상은 톨킨이나 C.S. 루이스의 판타지 문학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감동적이고 흥미 있다. 불행한 사실은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서 감동과 흥분과 열정을 잘 발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도 요한은 절망의 환경 속에서 끔찍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환상의 이야기로 이끈다. 그리고 말한다. 세상이 아무리 절망적이고, 끔찍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나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묵시 이야기에서 초대 교인들이 느꼈을 감동과 흥분을 맛보게 된다.   비록 지금 교회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천상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할 것이라는 놀라운 환상을 듣는 초대교인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묵시로 전달하는 사도 요한의 뛰는 가슴을 상상해 본다. 나는 점점 소망을 잃어가는 현대 교인들이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묵시 문학이 가지는 복음과 희망과 영감을 발견하고 맛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배경락 목사는 기독교 인문학 연구소 강연자로, '곧게 난 길은 하나도 없더라' '성경 속 왕조실록' 등의 저자이다. 그는 일상의 여백 속에 담아내는 묵상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인문학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06
  • ‘피로사회’에서 살아남기, 교회는?
      ▲이효상 목사ㅣ교회건강연구원장   ‘오늘도 행복하세요.’ 채팅이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종종 주고받는 말이다. 이런 문자를 받으면 ‘행복이 뭔지’ 고민하게 된다. 2018년 연말 발표된 전 세계 나라별 행복지수에서 우리나라는 57위에 올라있다. 행복지수는 그 나라 △국민1인당 GDP(국민총생산)△건강하게 사는 기대수명, △어려울 때 도와줄 친구, 친척, △선택의 자유, △관용(어려운 이웃을 지난날 도왔는가), △부패지수 등을 반영한 것이다. 한국인이 바라는 행복한 모습은 아마도 능력(업적)과 성공의 일치일 것이다. 그러나 모 언론사가 조사한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도 결과 100점 만점에 55.95점으로 매년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능력(업적)=성공이 행복이라는 생각은 능력(업적)을 최상의 가치로 만드는 성과사회의 패러다임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결코 경제적 요소나 성공이 행복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성공’이 ‘행복’이라는 성과사회의 모습은 한국사회의 현실과 일치한다. 이 점은 긍정의 힘을 통한 성공을 설교하는 처세 관련 책들이 한국의 도서 시장에서 얼마나 많이 팔리고 있는지를 보더라도 확인되는 점이다. 이런 현대사회의 성과주의에 대하여 날카롭게 비판한 철학 서적이 한병철 교수의『피로사회』이다. 이 책에선 냉전, 규율사회 등 부정성을 바탕으로 한 과거의 사회에서 현재는 부정성이 제거되고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화했다며. 이 새로운 사회를 ‘성과사회’, 그리고 이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을 ‘성과주체’라고 말한다. 과거의 사회가 “해서는 안 된다”라는 금지에 의해 이루어진 ‘부정의 사회’였다면,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된 ‘긍정의 사회’라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는 성공하라는 것이 유일한 규율처럼 여겨지며, 성공을 위해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Yes, we can!”의 긍정의 정신이다. 이런 부정성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 긍정성은 긍정성의 과잉으로 귀결되며 타자의 위협이나 억압과는 다른 의미에서 자아를 짓누른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자아는 피로해지고,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은 우울증을 낳는다. 한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성과위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진화가 가져온 결과라는 것이다. 더 큰 성과를 올려서, 더 큰 성공을 거두고자 하는 개개인의 욕망을 부추김으로써 자본주의는 전체적인 생산성을 극대화해간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착취는 이렇게 해서 자발적인 착취의 양상을 띤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을 노동수용소에 스스로 가두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존재하려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가 모든 개개인의 마음속에 고착화된 지상과제가 될 때, 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양산하게 된다. 현대사회의 시대적 질병으로 ‘우울증’을 들 수 있다. 근현대에 접어들면서 인간 착취의 동력은 억압으로 부터 자유(롭다는 느낌)으로 전환됐다. 타자보다 스스로 자신을 착취하며, 자아는 자아에게 무한으로 긍정되며 착취에 매혹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이렇게 긍정성으로 무장된 자아들은 그럴 수 없는 현실의 자아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마주치며 갈등하고 소모된다. 활동하는 인간의 소진은 여기에서 온다. ‘성취할 수 있다, 그러면 좋은 사람일 수 있다’라고 착각한다.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인간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양극단이다.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이런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상태에 만들게 된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성과위주의 사회가 주는 피로도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이다. 이런 피로는 인간을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몰아넣는다. 오직 자아만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러므로 극단으로 치닫게 한다.   모든 권위를 타파하고 가장 완전한 개인의 자유를 실현한 서구사회나 현대사회에서, 부정성이 거의 완전히 제거된 듯한 긍정성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의문이 있다. 다시 말해 “왜 우리는 여전히 진정 자유롭지 못한가?”,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한가?”라는 의문이다.   교회는 성과사회의 과잉활동, 과잉자극에 맞서 사색적 삶, 영감을 주는 무위와 심심함, 쉼과 안식이라는 영성적 가치를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피로’의 개념도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성과사회에서 보면 ‘피로’란 할 수 있는 능력의 감소이고, 그저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무위의 가치에서 출발하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피로는 폭력이다. 그것은 개인의 자아나 모든 공동체, 모든 공동의 삶, 모든 친밀함을, 심지어 언어 자체마저 파괴하기 때문이다. 깊은 사고의 부재 상태, 천박성은 "자극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 자극에 대해 아니라고 대꾸하지 못하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 즉각 반응하는 것, 모든 충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이미 일종의 병이며 몰락이며 탈진이라고 보아 한다. 모든 것을 ‘예’라고 긍정하던 자아는 "아니오(NO)” 라는 선을 설정하고 말해야 한다. 적당히 얼버무리는 처세가 지혜로운듯해도 양심이 신음하는 소리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인 동시에 그로 인해 악화(惡化)가 악화(惡化)를 더 견고히 구축케 한다. 아니라고 말할 용기는 깊은 자아 성찰을 불러온다. 막간의 시간이 주어지고 사유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부정’인 것이다. 부정되는 것이 자아인지, 타자인지, 자아의 긍정성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부정하는 행위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 교수는 평화로운 ‘막간의 시간’에서 ‘쓸모없음의 쓸모’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쓸모없음의 쓸모를 깨닫고 나서야 치유적 피로, 피로의 공동체적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어찌보면 "깊은 심심함"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현상이 극대화된 긍정의 징후는 아닐까. 현대인들이 일이나 스마트폰 등 여러 중독에 빠지는 이유라는 점에서 유감을 표시한다. ‘깊은 말씀묵상으로 멍’때리기’나 ‘거룩한 독서’가 정신건강과 자아에 오히려 큰 도움과 유익이 될 수 있다.   현대인의 자아는 리비도적 에너지의 대부분을 자기 자신에게 사용한다. 그렇게 쓰고 남은 리비도는 계속 늘어나는 연락처와 일시적 관계에 배분되고 사용한다. 매우 약한 리비도를 타자에게서 빼내어 새로운 대상에 투여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므로 소중한 사람의 가치를 외면하고 관계성이 가장 낮은 수준의 스치는 만남 정도로 그친다. 이렇듯 현대인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성과위주의 피로사회에서 살아남기가 참 힘들다. ‘수고하고 무거운 짊진 자들’을 부르시고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의 교회는 그들에게 쉼과 안식을 주는 그런 ‘공동체’가 되고 있는가? 대안이 되고 있는가?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04
  • "중국은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기치권 보장하라"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민주화를 외치고 있는 홍콩 시위대의 모습     강경진압으로 말미암아 홍콩 민주화 시위가 점점 격화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회 행동하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모임인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이하 샬롬나비)이 논평을 통해 "중국은 홍콩에 대한 ‘1국가 2체제’ 약속 준수와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기치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더불어 "한국교회는 홍콩의 자유를 수호하고자 나선 홍콩 기독교인들을 지지하고 기도하자"고 했다. 구체적으로 샬롬나비는 "홍콩 행정당국이 긴급법 발동 검토 아닌 송환법 폐기에 대한 실체적인 조처를 취하라"고 촉구하고, "중국은 자치령인 홍콩 시민의 기본권과 자치권을 보장하라"며 "우리는 홍콩 시민의 인권과 자치권 보장을 위한 기독교인들의 정치적 참여를 지지한다"고 했다. 이어 "중국 정부의 인터넷 통제는 국제사회 비난을 비겨날 수 없다. 홍콩 시민의 인권과 자치권 보존 요구를 군대로 무력진압 하지 말라"면서 "홍콩시위대에 대한 백석테러는 인류의 양심으로 규탄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샬롬나비는 "중국이 홍콩 반환 시에 영국과 맺은 일국양제 협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홍콩 행정수반 선출은 민주적 절차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홍콩은 '자치시'로 자유세계에 대한 문으로서 남는 것이 중국에 이득이 된다"고 밝히고, "한국 정부는 홍콩의 촛불 시위에 중립적인 태도 아닌 지지를 보내어야 한다"면서 "한국교회는 홍콩시민들이 자유와 자치권의 보호 속에서 살기를 지지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홍콩 시민의 송환법 반대 시위에 대한 논평서] "중국은 홍콩에 대한 ‘1국가 2체제’ 약속 준수와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기치권을 보장하라." "한국교회는 홍콩의 자유를 수호하고자 나선 홍콩 기독교인들을 지지하고 기도하자." 2019년 6월 9일 홍콩에서 행정당국이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여 벌인 대규모 시위가 지금까지 3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주최측 추산에 따르면 지난 6월에는 103만명의 홍콩시민이 참가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2017년 기준 홍콩의 인구는 739만명으로 홍콩 인구 7분의 1이 참가한 셈이다. 또한 시드니, 타이페이, 런던, 뉴욕, 시카고, 도쿄 등 세계 20여개 도시에서도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이러한 규모는 홍콩이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역대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수천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며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심상치 않은 시위 확산에 홍콩 국제공항은 폐쇄되고 항공편이 무더기로 취소되면서 전 세계인들의 발목을 잡았다. 2019년 8월 18일 빅토리아공원 일대서 송환법 반대 ‘비폭력 평화시위’ 시위가 또다시 있었다. 최대 170만 명(주최 측 추산)의 홍콩 시민들이 폭우를 뚫고 다시 "자유"를 외치며 비폭력 평화시위에 나섰다. 지난 6월 4일(100만 명)과 15일(200만 명)에 이어 2달여 만에 다시 대규모 집회에 나선 것이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8월 25일 시위에는 총 발사와 물대표가 등장했다고 한다. 홍콩 야권 단체 연합 민간인권전선이 8월 31일로 예정됐던 집회를 취소했다. 홍콩 정부가 시위를 불허했고 시위핵심 조슈아 웡(黃之鋒·22세)을 체포했다가 풀어주었다. 하지만, 8월 31일과 9월 1일 거리로 나와 자발적으로 거리를 메운 시위대는 '자유를 위해 싸우자', '홍콩 힘내라'의 구호를 외치며 송환법 완전 철폐와 행정장관 퇴진 등을 요구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의 기폭제가 된 송환법('범죄인 인도 법안')이란 홍콩 정부가 중국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홍콩은 1997년 일국양제의 기치 아래 자치권을 획득한 이래 중국 정부가 부당한 정치적 탄압 목적으로 홍콩의 반중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다는 걸 계산하고 범죄인 송환 국가를 철저하게 제한해 왔다. 시민들은 이 법안이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보내는 데 악용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즉 홍콩 내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하거나 중국 공산당의 정치인이나 시진핑을 비판하면 범죄인이 되어 중국으로 송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8월 18일 오후(현지시간) 홍콩 빅토리아공원 일대에서 "송환법 철회"(Withdraw the bill), "홍콩의 자유"(Free Hong Kong)라는 구호를 부르짖었고, 일부 시민들은 홍콩 경찰의 과잉진압을 규탄하는 그림의 피켓을 들기도 했다. 홍콩 시민들은 크게 다섯 가지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송환법 철폐 △시위대 '폭도' 명령 철회 △시위 체포자 석방 △독립 조사기구 설립 △보통선거 실시다. 이러한 홍콩 시위를 보면서 샬롬나비는 홍콩 시위대의 자유와 자치권 보장 주장을 지지하면서 다음같이 우리의 견해를 천명한다. 1. 홍콩 행정당국은 긴급법 발동 검토 아닌 송환법 폐기에 대한 실체적인 조처를 취하라. 홍콩행정 당국은 인권 침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을 철회하는 실제적인 조처를 취하기 바란다. 홍콩 당국의 송환법('범죄인 인도 법안')제정이 시위를 초래한 것이다.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시민들은 이 법안이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보내는 데 악용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결국 시민들은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치로 6월 이래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홍콩 당국은 시위가 그치도록 송환법 폐기에 실제적인 조처를 취하기 바란다. 홍콩 행정장관은 중국 건국 70 주년인 10월 1일 이전에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긴급법이라는 초강수를 검토한다는 현지 언론의 소식이 들린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홍콩대 사이먼 영 교수의 지적처럼 "긴급법은 사실상 계엄령 상태였던 1922년 제정된 법"이며 "(시행된다면) 법치의 근간을 흔들 것"이다. 강제진압은 홍콩의 자유경제와 번영을 후퇴시키는 재앙이 될 것이다. 홍콩 당국은 홍콩의 미래를 생각하기 바란다. 2. 중국은 자치령인 홍콩 시민의 기본권과 자치권을 보장하라. 2019년 6월 첫 시위에 참여한 인원은 주최측 추산으로 103만 명에 달했으며, 이는 홍콩이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후 발생한 최대 규모였다. 2003년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던 ‘우산혁명’ 당시는 각각 최대 50만 명 정도였다. 홍콩 시민들은 이 송환법안이 홍콩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제한시킬 수 있다고 반발하며 거리로 나선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홍콩은 권리와 자유의 도시인데 (중국으로부터) 이같은 정체성이 끊임없이 위협을 받게 되자 시위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정부가 시위대의 저항에 6월 12일 예정됐던 법안 심사를 연기하고, 캐리 람 행정장관이 7월 9일 마침내 범죄인 인도법를 폐기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시위대는 이제 캐리 람 행정장관의 퇴진까지 요구하고 있다. AP통신은 “홍콩의 청년들은 시진핑 주석이 홍콩을 베이징 같은 도시처럼 만들려는 시도를 포기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자유도시인 홍콩을 더 이상 억압하지 말고 본래의 자유로운 도시로 그대로 두기 바란다. 3. 우리는 홍콩 시민의 인권과 자치권 보장을 위한 기독교인들의 정치적 참여를 지지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주도하는 등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6월 미국 뉴욕타임즈(NYT)는 "홍콩 시위대들이 복음성가인 '싱 할렐루야 투 더 로드'(Sing Hallelujah to the Lord)를 합창할 정도로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홍콩 기독교인들은 시위대에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고,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는 경찰을 비난하고 있다. 시위에 참석한 홍콩인들이 종교의 유무를 떠나 송환법을 비판하는 교회와 신자들의 메시지와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NYT는 “이들은 모일 때마다 복음성가 ‘싱 할렐루야 투 더 로드’를 불렀고, 이 노래가 시위대에 영향을 주면서 공식 ‘합창곡’이 되었다. 이번 시위에 청년들의 참가도 두드려졌는데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정치의 회복과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기독교협의회 회장 등 21개 종단 지도자들은 시위 현장 인근에서 미사와 밤샘기도 등으로 지난달 송환법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NYT는 “750만 홍콩 인구 중 개신교인과 가톨릭 신자는 전체 9분의 1에 해당되지만, 비폭력 시위를 주도하며 시위대에 위로와 격려, 영감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는 이들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4. 중국 정부의 인터넷 통제는 국제사회 비난을 비겨날 수 없다. 홍콩 시민의 인권과 자치권 보존 요구를 군대로 무력진압 하지 말라. 중국 정부는 중국 국민이 해외 미디어에 직접 접속하지 못하게 방화벽을 세웠다. 중국 국민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접할 때도 중국에서 접속할 수 있게 허용한 '중국 버전'만 접하게 된다. 이 점을 이용해 중국 공산당은 인터넷에 뜨는 정보와 여론의 흐름을 통제하고, 중국 국민의 반응을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정부의 폐쇄성이 국제사회에 드러내고 있다. 홍콩과 인접하여 10분 거리인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서는 지난 8월 10일 물대포 등을 장착한 중국 무장경찰의 장갑차량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모습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됐다. 중국군 개입이 우려되던 상황에서 "홍콩 시민들이 평화시위를 통해 자유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중국에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들은 시위의 정당성을 알리는 홍보 활동을 하며 평화적으로 시위를 마쳤으나 11일 밤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한 여성이 경찰이 쏜 주머니탄에 오른쪽 눈이 맞아 실명 위기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흥분한 시위대가 정오부터 공항으로 몰려들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중국 지도부가 홍콩 사태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우리는 중국이 무력진압으로 나서 중국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제2의 천안문 사태를 유발하게 될가 우려한다. 중국 군대가 진압봉과 총으로 홍콩 시위대를 무너뜨리면 중국 정부는 이중의 타격을 입게 된다. 우선 중국 정부는 '인권 탄압'의 오명을 뒤집어쓸 거예요. 또 중국이 홍콩 시위를 무력 진압하고 홍콩을 직접 통치하겠다고 나서면, 홍콩 시장경제는 재앙에 가까운 타격을 입게 되고 자본이 외부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는 중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5. 홍콩시위대에 대한 백석테러는 인류의 양심으로 규탄되어야 한다. 지난 7월 21일 밤 위엔룽 전철역에서 흰옷 상의를 맞춰입은 100여 명이 몽둥이를 들고 역사(驛舍) 안으로 난입했다. 이들은 전철에서 내리는 시위대와 시민들에게 쇠막대기와 각목을 휘둘렀으며, 정차한 전철의 객차로 피신한 시민들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했다. 이로 인해 임산부, 취재 기자 등 45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현지 언론들은 이 사건을 송환법 반대 시위에 불만을 품은 친중파의 소행으로 보았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들이 폭력조직 삼합회 조직원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의 ‘반중국’분위기가 더욱 격해지면서 침묵하던 친중국 진영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7월 20일에는 송환법 반대 시위에 맞서 공권력을 지지하고 질서의 회복을 촉구하는 대규모 친중파 집회가 홍콩 도시에서 열리기도 했다. SCMP는 “송환법 반대 시위의 정국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이 같은 대립과 갈등이 홍콩의 새로운 일상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홍콩 시위대는 지난 주(7월 29일 기준) 위엔룽 전철역에서 발생했던 백색 테러에 항의하기 위해 위엔룽 전철역 주변에서 홍콩 시민 11만 여명이 29일 새벽까지 시위를 벌였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이날 보도했다. 우리는 백석테러를 규탄하며 이는 문명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천명한다. 6. 중국은 홍콩 반환 시에 영국과 맺은 일국양제 협정을 지키라. 한때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지난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독립적인 통화, 법, 경찰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중국은 50년간 본토의 체제와 분리해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보장하는 ‘1국가 2체제’를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1백만여 명의 시민들이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에 반대해 시위에 나서면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영국의 제레미 헌트 외무장관은 1일 “여전히 1국가 2체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콩의 교인들은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중국이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인정해야 한다. 협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중국인들에게 지워진 의무”라고 말했다. 홍콩의 교인들은 시위 현장 인근에서 미사와 밤샘기도로 송환법안의 조속한 철회와 정부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국은 홍콩반환 시 영국과 맺은 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기 바란다. 7. 홍콩 행정수반 선출은 민주적 절차로 이루어져야 한다. 홍콩 행정수반 선출과 의회구성을 위해 보통선거를 도입하는 등 진정한 민주주의 정착만이 최근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중국은 홍콩의 자치령에 간섭하지 말고 일국 양제의 협정에 따라 홍콩의 자치령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5년 전 우산운동 때 시진핑은 주석이었지만 지금은 황제가 된 후 많은 활동가가 투옥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입법회 의원들이 자격을 박탈당했다. 홍콩은 '양제(two-system)'가 아니라, '1과 2분의 1'제도가 되었다. 이는 약속 위반이다. 홍콩 행정수반은 홍콩주민들의 자유로운 민주적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어야 한다. 중국도 경제에 걸맞게 정치를 민주화해야 하고 특히 중국내의 종교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시진핑 집권 후기에 들어와 중국 안의 가정교회가 공안당국에 의하여 해체되는 것은 종교 자유에 대한 박해로서 이를 세계인들이 우려한다는 사실을 시진핑은 알아야 한다. 8. 홍콩은 “자치시”로 자유세계에 대한 문으로서 남는 것이 중국에 이득이 된다. 2014년 홍콩 행정수반의 자유 입후보와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운동(Umbrel la Movement)에서 학생 시위를 79일간 이끌어 당시 국제사회의 아이콘이 되었고, 이번 13주간의 데모시스토(Demosistō)를 이끄는 사무총장 조슈아 웡은 8월 27일 "홍콩인들도 스스로의 주인이 되고 싶다"며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의 공개 지지를 호소했다: "우리는 독립이 아니라, 진정한 자치(自治)를 원한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 꿈을 이루려고 싸운다." 홍콩은 여태까지 중국 안의 시장 경제가 고도로 발달한 도시국가로서 중국의 경제 발전에도 역동성을 부여하였다. 홍콩은 오랫동안 아시아의 국제도시로 번영해왔다. 홍콩은 국제적인 금융 허브이자 기업의 중심지, 관광지로 통하고 있다. 홍콩은 한국인들에게도 중국에 진출하는 자유세계의 교두보로서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홍콩이 중국 공산당의 폐쇄적 권위 안에 들어가게 될 때 중국의 민주화와 세계 개방성은 더 늦추어지게 되고 중국은 많은 부정적인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홍콩을 여태까지 그대로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남도록 하는 것이 중국의 민주화와 세계 개방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9. 한국 정부는 홍콩의 촛불 시위에 중립적인 태도 아닌 지지를 보내어야 한다. 홍콩시위 지도자 윙은 "타이완은 물론 일본의 아베 총리까지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데 한국은 수동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수십 년 전 민주화를 위해 일하지 않았느냐"며 "중국과의 어떠한 상업적 이익도 기본적 인권을 앞설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 대통령은 선군정치에 매몰되어 핵과 대량살상무기(미사일) 개발에 븍한 군사독재 김정은의 선심을 사려고 하기보다는 우리 이웃인 홍콩의 민주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외교적 지원을 보내어야 한다. 그리고 홍콩 주민을 억압하고 개인숭배로 나아가면서 중국내 기독교를 박해하는 시진핑과는 멀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사대주의로 나아가 대중 미사일 방어장치인 사드 반입의 대가로 시진핑에게 3불 약속을 했고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홍콩 시위대를 방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홍콩 민주화에 지지 보낼 때 대한민국은 동북아 평화나라 위상을 갖을 수 있다. 10. 한국교회는 홍콩시민들이 자유와 자치권의 보호 속에서 살기를 지지하고 기도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번 시위에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하여 봉사로 나선 홍콩 기독교인들을 지지하며 저들이 홍콩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으며, 평화롭게 마무리되고 홍콩 안에 자유와 자치권이 보호받는 민주적 질서와 법질서가 집행되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2019년 9월 2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03
  • 교회는 상아탑일 수 없다
    ▲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흔히들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국가 또는 나라란 국토와 인구와 주권을 가진 정치적 실체이다. 이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의 뜻인 사랑과 공의를 실현하는 국가, 즉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국가를 의미 한다. 현실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고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함을 보장하는 헌법을 운영하는 국가이다. 초대교회 신자들 못지않게 복음주의적 크리스천들인 퓨리턴들이 신대륙에 세운 USA야 말로 이 땅에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라고 아니할 수 없다. 자유대한민국은 일본제국주의가 미국에 항복함으로써 해방을 맞게 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의 영단에 의하여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에 도입함으로써 대한민국은 미국 다음가는 하나님의 나라로 독립하게 된 것이다. 지난 70여 년 동한 자유대한민국이 최빈국에서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기적인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탄핵 이후 탄생한 이 정권은 하나님의 나라인 자유대한민국을 허물고 마침내 대한민국을 국제적 고아로, 경제는 마비되고 국경선을 지키는 모든 장치들을 허물어진 상태에 빠뜨리고 만 것 같다. 십계명은 먼저 4번째 까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명령한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으로 자신들의 개인적 바램을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도 세워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처참 지경에 빠진 하나님의 나라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고 투쟁하는 교회와 목사들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 믿기만 하면 행위에 무관하게 천국에 간다고 달콤한 설교로 교인들의 숫자만 불려온 대형교회의 목사들이여 당신들은 하나님의 진짜 종인가? 요한복음은 3장 16절이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이여, 요한복음의 처음에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한 말씀은 모르는가 모르는 척 하는 건가? 너희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징표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과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당신들이 오직 믿음 구원론의 근거로 삼고 있는 로마서의 저자 사도 바울이 고전 9:27에서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서 내가 오히려 구원에서 탈락할까 보아 매일 같이 내 자신을 처 복종시킨다”는 고백과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나 없을 때에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성도들에 대한 권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님은 분명히 산상수훈 중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이리 저리 성경 구절들을 편파적으로 인용하여 믿기만 하면 행위가 없이도 천국에 간다고 확신을 가지라고 가르치는 삯꾼 목회자들이여 당신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붕괴직전에 놓인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당신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사탕발림 설교를 스스로 믿고 어떤 삶을 살아 왔는가 생각해 보라. 교회당 증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자기 교회가 마치 유일한 하나님 나라인양 교회성장을 위하여 성도들의 희생과 헌신을 독촉했지 하나님의 나라인 자유대한 민국을 위해 제대로 기도라도 한 적이 몇 번이나 되는가? 그리고 당신들의 달콤한 구원 설교 한번 믿기만 하면 행위에 무관하게 반드시 천국에 간다는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 성도들은 어떤 삶을 살아 왔는가? 대부분의 교인들이 믿음으로 구원은 얻은 것이니 이제 멋대로 육신을 쫓아 살아도 된다는 자세로 양심 있는 불신자 보다고 더 육신적 삶을 살아온 것 아닌가? 수많은 목회자들이 편파적으로 그릇된 구원론을 설교 합으로써 수많은 신자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실추시켜 온 죄악을 어찌할 것인가? 회개하라! 그리고 가던 길로부터 돌아서라. 자신의 부와 명예만을 쫓던 길로부터 돌아서 하나님의 나라인 자유대한민국을 촉박한 멸망에서부터 구하기 위하여 전 교인들을 이끌고 국민저항운동에 참여하라. 한국 교회의 장로들이여, 하나님께서 당신을 장로로 기름 부으신 목적이 무엇인가? 목사를 보필하고 감독하라는 영적 지도자의 사명을 주신 것 아닌가? 영적 지도커녕 목사 비위 맞추는데 애써온 장로들이여 당신의 죄악도 목회자들의 그것에 비하여 결코 작지 않음을 깨닫고 회개하고 자유대한민국을 위하여 국민저항 운동에 참여하라. 자유대한민국이 적화되면 제일 먼저 처벌받을 사람은 바로 당신들이 아닌가? 물이 뜨거워져 오는지도 모르고 꼼작하지 않고 물어 데어 죽어가는 개구리 신세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교회는 상아탑일 수가 없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명령하였지 교회 속에서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이 혼동과 절망 일보 직전의 하나님의 나라 자유대한민국을 위하여 당신이 해야 할인은 너무나 분명한 것 아닌가. 교회에서 나와 이 망해가는 자유대한민국을 위하여 국민저항 운동이라도 선도해야 할 것 아닌가. 세무당국이 세무조사를 나올 것이 두려워 하나님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투쟁하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의 당신의 그 믿음 없는 행위가 심판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어떤 심판을 받을 것인가를 자문해보기 바란다. ◆ 김병구 장로는 싱가폴 장로교단 장립 장로, 시카고 '약속의 교회' 은퇴장로로서 바른구원관선교회를 섬기며 기독교신문 '크리스천투데이'에서 칼럼니스트로도 기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원한 성공을 주는 온전한 복음>(한솜미디어 펴냄)이 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03
  • “감동적이라도, 같은 설교 한다면…”
    ▲김남준 목사.   김남준 목사(열린교회)가 지난 8월 26일 오전 국내 교계 언론들과의 기자간담회를 갖고 개혁주의에 대한 설명과 함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전편에 이은 김남준 목사와의 일문일답.   교회 내 세대 차이, 자연스러운 것   기성 세대, 현 문화 이해하려 해야 -갈수록 심각해지는 교회 내 세대간 차이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요. “사실 각 세대는 서로를 모르게 돼 있기 때문에, 그 간극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도 앞세대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듯, 우리 다음 세대도 우리를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세대 간의 격차를 강조하기보다, 세대 차이로 사고방식이 조금 다르더라도 주님을 깊이 만나고 한 말씀 안에 모든 세대가 함께 영향을 받으면 소통이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사회는 자신의 경험에 의해 변화를 두려워하는 앞선 세대와, 경험에 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세대가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재 기성 세대가 현 문화의 흐름에 너무 무지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공부하고 다음 세대를 이해하려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우리와의 대화를 별로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웃음). 우리도 어렸을 때 그러지 않았습니까. 노력은 하되, 사고방식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복음 안에서 통합을 이뤄가야 할 것입니다.” 다음 세대 위해 필요한 것1. 그들이 자라나는 건강한 ‘가정’2. 죄 깨닫고 예수 믿게 하는 ‘회심’3. 그들이 배워야 할 ‘성경과 학문’     -다음 세대 위기에 대한 말들이 많은데, 열린교회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30년 프로젝트나 거대한 기금을 모아 학교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는 법이지요. 다음 세대 문제에는 다음 3가지가 매우 중요하고 강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실제로 열린교회에서 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첫째, 가정의 역할입니다. 다음 세대를 콩나물에 비유한다면 가정은 콩나물 시루와 같습니다. 그 안에서 자라나게 되지요. 어떤 가정에서 어떤 영향을 받으며 자라느냐가, 건강한 다음 세대를 만들 수 있느냐의 가장 큰 관건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지만, 그 모든 혁명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바람직하다면, 모든 기술과 변화를 사용해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모든 것들이 주어지더라도 좋은 사회를 만들기 힘들 것이고요. 결국 가정을 통해 좋은 사람들이 자라나야 합니다. 부모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을 잘 믿으면서, 인생을 슬기롭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가정이라는 전체 맥락에서 다음 세대를 교육해야 하기에 가정 사역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둘째, 회심입니다. 오늘날 이 단어가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로 믿는 것, 거기에 헌신하는 것이 회심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사상과 콘텐츠로 교육을 시키더라도, 영혼이 변화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다음 세대가 어떤 식으로 바뀌든 확실한 보증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음 세대의 회심에 깊은 관심을 갖고, 매년 그들을 위한 회심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성경과 학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주 친숙하게 배우고, 그 배운 지식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학문 영역, 즉 역사나 문학, 사회, 그리고 자연과학 등에 대해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세계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통치되고 다스려지고 있음을 끊임없는 지식의 습득을 통해 확신하게 만들어야, 다음 세대의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도 믿음으로 자라나는 세대로 그들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 교회에는 도서관이 3곳 있습니다. 평신도들을 위한 도서관, 저를 위한 도서관,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입니다. 책과 친숙하게 지내면서 모든 지식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들이 교회가 다음 세대를 위해 힘쓰고 있는 일들입니다.” 20세기 이후 목회자 교육 쉬워져 신학 교육 종사자들 하나님 사랑 모든 위선과 거짓 지름길은 ‘무지’ -목회자와 신학생들의 ‘공부’는 어떠해야 하나요. “쉽게 길러낸 목회자는 항상 교회에 부담을 줍니다. 18세기까지를 기준으로, 목사가 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가능했습니다. 우선 인문학 교육을 받고, 철학을 이해해야 했으며, 그 이해한 철학을 신학으로 비판하면서 진리를 세워야 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깊은 교육 없이도 목회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이후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얼마 전에 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가 감동적이긴 하지만 TV <아침마당>에서 나오는 이야기 같다면 어떠러까요? 설교는 감동만으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는 감동적인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한 편의 설교를 들었을 때 기독교가 가진 고유한 사상에 대해 들을 수 있어야지, 흔히 말하는 일반적 상식 선에서 인생에 대한 생각 같은 것이 전달돼선 안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려면 철저하게 신학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높은 수준의 신학 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신학 교육을 받고 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은혜를 받은, 대학 학문 과정에서 잘 준비된 사람들이 신학교에 들어와 철저한 훈련을 받으면서 신학 공부에 헌신해야 합니다. 결국 모든 위선과 거짓에 이르는 지름길은 ‘무지’입니다. 목회자는 잘 모르더라도 아는 척할 수밖에 없고, 자기가 아는 조그만 것을 과장해서 크게 말하다 보니 ‘위선’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부터 역사, 과학, 사회, 문화, 법률, 예술 등에 대해 철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 토대 위에 인간으로서 고민하는 내용들을 어떻게 복음으로 해결할 것인지 깊은 성찰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우선 신학교육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목회자가 되기 전, 충분한 훈련 과정이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목숨 걸고 목회를 배운 사람들과, 그냥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교회를 섬기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회는 현저하게 다릅니다. 그런 점에서 신학생들이 훨씬 높은 수준의 강도 높은 신학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실존, 진리, 은혜, 타인, 영광, 행복 -목사님의 삶에 있어 5가지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그 때마다 생각과 관심이 달라지지만, 요즘 같으면 먼저 ‘실존’입니다. 인간으로서 살 힘이 있든지 없든지, 그것과 상관없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명제입니다. 그렇게 내가 진짜로 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진리’입니다. 그렇게 살아있다는 것을 어디서도 해명받을 수 없지만, 진리를 통해서만 내가 누구인지를 해명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명이 된다 해도, 살 수 없는 것은 살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내 안에 ‘은혜’가 없이는 내 안의 진리에 부합한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삶을 살아낸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우리는 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래서 ‘타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모두 살아가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 더 든다면, 그 영광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키워드입니다.” 요즘 설교, 교단 구분 힘들 정도 설교에서 신학이 서서히 사라져 보수-진보 한쪽으로 치우친 신학,미미한 영향 그치거나 섞여 사라져 -‘통합적 신학’에 대한 말씀에 공감합니다. 요즘 교단들의 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예장 합동 총회는 <기독교 강요>에 나오는 칼빈의 5대 교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실제 현장에 가 보면 그 5대 교리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있음을 입증하려면 5대 교리의 요점들이 설교 속에 강하게 묻어나서, 언제나 그것이 핵심이 돼야 할 것입니다. 비평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에는 설교만 놓고 보면 합동인지 순복음인지 감리교인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탈신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에서 신학이 서서히 배제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신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 감동을 주고 들으면 살 힘이 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쪽으로 설교자들의 관심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 각 교단의 독특한 신학들이 설교에서 표명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지도자들이 모여 ‘우리는 이런 교리를 지지한다’고 이야기해도, 평신도들에게는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웃음). 저는 칼빈을 만나고 깊이 심취하면서 칼빈주의를 배우고, 그 후에는 존 오웬이라는 아주 탁월한 신학자를 만나서 많이 배웠으며, 어거스틴이나 조나단 에드워즈나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을 만나면서 사상의 터전들을 닦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죽은 후에 칼빈주의자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공식 석상에서 고백했습니다. 존 오웬을 좋아했지만, 오웬주의자로 보여지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을 그렇게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어거스틴 추종자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신학자들을 제게 주신 것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게 하시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 온 학자 분들과 이야기하면서, ‘무슨 무슨 주의자로 불리고 싶지 않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불리고 싶은 것은 김남준으로 태어나 하나님 앞에 김남준 앞에서 살다 죽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나를 그렇게 살게 한 훌륭한 하나님의 도구들이었습니다.”   ▲김남준 목사   -개혁주의 신학이 ‘통전성’을 강조하는 예장 통합의 신학에도 접목될 수 있을까요.   “예장 합동과 통합의 신학에 대해 짧은 시간에 말씀드리기 쉽지 않지만, 신학이 통전적이어야 함은 너무 분명합니다. 보수 신학이 컨텍스트를 무시하고 텍스트에 집착한다면, 자유주의 신학은 텍스트를 경시하고 컨텍스트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학의 역사를 보면, 그런 식으로 어느 한쪽으로 갔던 신학은 깊은 영향을 남기지 못하고 미미한 영향에 그치거나 섞여서 동화되고 사라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확고한 신앙을 바탕으로 성경과 계시와 사상에 깊은 뿌리를 두고도, 자기 시대를 두고 충분히 고민하는 신학을 하는 일입니다. 이미 다 죽은 옛 신학자들을 공격하면서 핏대를 올리기보다, 현재 우리 시대에 범람하는 이교적·이단적 사상과 세속주의 등에 대해 반기를 들고 비판할 수 있는 신학이 돼야 합니다. 신학이 통전적이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동의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수 신학은 오히려 오늘날 전체적인 신학을 공부하고, 그 신학적 깨달음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곳으로 영향을 미치는 방식들을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예장 합동과 통합은 몇 가지 신학적 쟁점에 대해 여러 이견을 갖고 있지만, 아직도 충분히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그래도 가장 가까운 복음주의의 두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리 어렵다? 배우면 신앙 쉽게 와 닿아 초신자들, 교리 가르치면 굉장히 좋아해 교리 지식 쌓다 보면 기독교 재미있어져 -열린교회의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신다면. “교리는 어렵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하지만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교리를 이해하면, 신앙에 대한 모든 가르침들이 아주 쉽게 와 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관점으로, 교리를 가르치면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힘들어할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비근한 예로 기독교 역사상 아주 오래 전부터, 신자가 되는 신앙고백을 할 때는 교리를 배웠습니다. 칼빈 시대만 해도 주기도문 1년, 십계명 1년, 사도신경 1년씩 배울 정도로 깊이 있는 교육을 시켰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으려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믿는 것의 전체가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이 있고, 의외로 그것을 가르쳐 주면 굉장히 좋아합니다. 운전을 배울 때도 자동차가 무엇이고 운전이 무엇인지 전체를 가르친 다음, 도로교통법을 배우고 자동차의 구조를 배우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을 때 기독교가 무엇인가에 대해 전체적으로 알고 싶은데, 그것을 가장 최소한으로 응축해 놓은 것이 사도신경이고 최대한 확대시킨 것이 세례 받을 때 가르치는 교리문답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어린 나이 때부터 교리교육을 시킵니다. 주일학교는 물론이고, 유치원 아이들부터 가르칩니다. 주일학교와 중고등부에 교리반이 있고, 청장년들에게는 제가 직접 교리반을 가르칩니다. 매년 가르치다 요즘엔 2년에 한 번씩 가르치는데, 12주 과정에 중간·기말고사까지 85점 이상 나와야 합니다. 교리반을 수료하지 않으면 구역장과 교사를 할 수 없고, 임직자 투표에도 나올 수 없습니다. 지난 학기에 320여명 들어와 하루 1시간 40분씩 루이스 벌코프의 <조직신학> 한 권을 끝냅니다. 가르쳐 주면, 오히려 교인들이 굉장히 좋아합니다. 320여명 중 50명 정도는 다시 들으려는 분들이고, 나머지 280여명 중 50여명이 탈락하고 230여명이 수료합니다. 저희 교회는 여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구역 성경공부도 교리 공부의 연장입니다. 최근 나온 저서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도 그 결과물이고, 1년에 4-5권을 공부한지 25년 정도 됐습니다. 저희 교회를 10년 정도 다니면, 신학책 30여권을 통독하게 됩니다. 교리적 지식을 쌓다 보면, 기독교가 재미있어집니다. 그리고 책을 훨씬 쉽게 읽게 되고, 어떤 책이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 분별할 수 있는 여유도 생깁니다. 그리고 설교도 교리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80여권 썼지만, 요즘 책 너무 안 읽어 믿음의 규칙과 삶의 교훈에 대해 쓴다 객관적 계시와, 찾아가는 인간의 마음 -많은 책을 쓰셨는데, 궁극적으로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몇 권 썼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80여권 정도 아닐까 합니다. 하나님의 소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든 온 힘을 다해 책을 써 왔는데, 요즘은 좀 실망스럽습니다. 책을 잘 안 읽어요(웃음). 책 시장이 인기를 누리던 1990년대 중반에 비하면.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거의 안 읽습니다. 심각합니다. 시각 자료나 동영상 등이 굉장히 유행하면서, 사람들이 긴 호흡을 가지고 생각하면서 읽고 사색하는 일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새 작가로써 힘이 좀 빠졌습니다. 예전에는 책만 쓰면 사람들이 몇만 권씩 샀는데, 요즘에는 제 책뿐 아니라 모든 책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출판사들도 굉장히 힘들어하고, 기독교뿐 아니라 일반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을 때까지 작가, 기독교 저술가로서 살아갈텐데, 수십 권의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결국 주변 무언가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자신이 누구인지도 결정됩니다. 문제는 ‘나’라는 존재가 인식하든 못하든, 바깥에는 도(道)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도는 바깥으로 수많은 계명들을 전달합니다. 이 계명은 결국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렇게 믿으라, 다른 하나는 이렇게 살아라입니다. 믿음의 규칙과 삶의 교훈이지요. 내가 인식하든 못하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겨선 안 되고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등 계명이 주어집니다. 이 계명을 따라 살면 행복하고, 살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런 계명과 도가 있는데, 이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객관적인 것이지요. 두 번째는 어떻게 내가 이 객관적 진리를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살아갈 것인가 하는 일입니다.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진리가 무엇인지 인식해야 하고, 인식해도 만약 그대로 믿고 살려는 의지가 없다면 ‘진리 따로 나 따로’ 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의지를 가지려면 당연히 마음에 감정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나 자신은 순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의 빛도 있지만, 한편으로 죄악과 어두움이 남아있는 복잡한 존재입니다. 이런 존재가 나이고, 이러한 내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나라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영역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결국 관심사는 한쪽에 객관적인 진리인 신학과 지식, 세계, 그리고 다른 한쪽에 신앙과 은혜, 인간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풀어서, 나라는 인간이 이웃과 사랑의 관계를 갖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이 도와 계명들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할까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욕해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말씀에 따라 살게 하시는 이유는, 그렇게 살아야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 5:1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인류를 당신 안에서 행복하게 하기 위해,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라고 하시고, 죄 가운데 빠지는 사람들을 변화시키셔서 하나님 은혜 안에 살도록 하십니다. 제 책은 이 두 가지, 객관적 계시의 진리와 그것을 찾아가는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원리들을 성경심리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 외의 독서 굉장히 바람직하나 말씀으로 비평하면서 읽으면 좋아 비기독교인들 생각 이해하는 통로 -일각에서는 성경 외의 서적을 읽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독서와 자세에 대해 조언해 주신다면. “성경 외의 책을 읽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하지만, 본인이 충분한 말씀의 지식으로 그런 책들을 비평하면서 읽을 수 있을 때, 아주 굉장한 마음의 양식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목사가 되고 나니 소설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읽고 싶어도 양심에 찔려서 읽지 못했습니다(웃음). 지난 2월 작심하고 하루키 소설들을 독파했습니다. 한 번에 연달아 8-9권 읽었습니다. 그 중에서 <노르웨이의 숲>과 <1Q84>가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릿했습니다. 하나님을 몰라 괴로워하고 고뇌하는 장면들을 그림처럼 그려냈습니다. 외로움과 자기 삶의 근거 없음에 대한 무서움, 그 출구로서의 사랑 등입니다. 하루키가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저는 그의 책들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됐습니다. 신학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할 수 있다면 무엇을 읽어도 소화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안 되어 있을 때 그런 소설에 빠져들면, 신앙에 어려운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이문열 작가 소설 읽으면서 많은 청년들이 기독교 신앙에 회의를 느꼈듯, 하루키도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지도할 수 있는 신학적 역량이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읽는다면 굉장히 좋을 것입니다. 그런 책들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생각은 방향이 매우 다른데, 우리에게 비기독교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통찰들을 제공합니다. 한창 심취해서 하루키에 대해 강의하고 싶은 마음이 열렬했는데, 기회가 없었습니다(웃음). 음악이나 미술이나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읽으면 하나님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그런 독서지도사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전쯤 체계적으로 양육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하지 못했습니다. ‘어린이 독서지도사’들처럼 청장년들도 독서지도사들이 있어, 성경에 비춰 해석해 주면 굉장히 좋아하고 복음에 대해 마음을 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알게 하신 진리와 말씀 가르쳐 신앙 갖게 하고 더 견고해지게 해서 하나님 사랑하고 교회답게 세우는 일 -마지막으로, 비전이 무엇인지요. 그리고 저술중인 책이 있다면. “제 비전은 하나님이 제게 알게 하신 진리, 그리고 나를 깨우친 하나님 말씀, 지금도 깨우쳐 주시는 말씀들을 계속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돌아오게 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견고해져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는 것입니다. 운동가는 아니지만, 그런 일들을 위해 목회자와 저술가로서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자 합니다. 지금 4-5권을 동시에 쓰고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에 완성하고 싶은 것이 2권 있습니다.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했다> 2권입니다. 초고는 다 썼고, 교정과 함께 각종 자료를 찾는 지루한 작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대한 책을 쓰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가을 학기에는 기도에 대해, 봄에는 마음에 대해 강의합니다. 현대가 될수록 자기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일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책들이 일반 시장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 이론들 가운데 우리가 받아들일 것들도, 버려야 할 것도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읽으면 ‘아, 내 마음이 이랬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하는 책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원고도 어느 정도 되어 있습니다.” 국내 대표적인 개혁주의 목회자이자 신학자로 불리는 안양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는 <가족>, <게으름>, <돌이킴>, <서른통>, <개념없음>, <목자와 양>, <존 오웬의 신학>, <부교역자 리바이벌>,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했다> 등 신학서적과 신앙서적을 막론하고 여러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02
  • 서울시교육청 한일간 갈등을 토론수업을 해결하라
      서울시 교육청 한•일간 갈등을 토론수업으로 해결하라.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무슨 토론이 되나? 최근 한/일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관계가 고조되고 있다. 지난 8월 2일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우방국가간에 수출 때 허가를 면제해 주는 관행)에서 제외하였다. 그 역사적 배경이 있다. 과거 일본은 한국을 침략하여 36년간 지배하였다. 해방 후에도 20년간은 국교가 정상화되지 못하다가, 1965년 국교를 정상화하고 당시 3억 달러를 일본이 한국에 배상한다.(금액의 많고 적고를 떠나서, 보편적으로는 여기에 여러 가지 배상이 포함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또 수억 달러의 차관(借款)도 제공한다.   그리고 2015년 위안부 문제를 불가역적으로 종결하였고, 위안부 문제 치유를 위해서 양국 간에 ‘화해치유재단’을 2016년에 만들었다. 그래서 양국 간에는 과거의 문제가 아닌, 미래지향적인 우호적 관계로 나가는 듯하였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이후, 우리나라 대법원에서는 2018년 10월 30일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이때부터 한/일간에는 갈등이 심화되고, 그해 11월 21일에는 화해치유재단이 해체된다. 그리고 2019년부터 양국 간에 갈등이 더욱 증폭되다가, 일본 정부가 한국을 8월 초에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시키고, 우리 정부는 8월 23일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를 연장하지 않기로 한다. 이에 대한 국제적 시각은 한국이 더 많은 손해를 볼 것이란 전망이 있다.   한/일 양국은 미국을 매개로 하여,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북한의 핵 위협 등에 일본과 군사협력을 할 필요가 있고, 반도체, 정유, 철강, 화학, 기계 등 1,100개 이상의 품목에서 일본과 교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서울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은 지난 8월 18일 각급학교에 한/일 갈등 문제를 토론 수업으로 해결하는 것을 모색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서울시교육청 홈 페이지를 보면, ‘한일 갈등문제를 사회 현안 논쟁/토론 수업으로 해결 모색 추진하라’는 것인데, 이는 학교민주시민교육 진흥 조례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에 보면, ‘우리 사회에서 논쟁적인 것은 학교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사적인 이해관계나 특정한 정치적 의견을 주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학생들이 한/일간 갈등의 문제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토론을 통하여, 그 진실성을 어떻게 학습하게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참고 자료로는 △남산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용산 강제 노동피해자 노동자상 등 체험학습 장소. △한일청구권협정과 일제 강제노동피해자의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의 대법원 판결문. △일제 강제노동 피해자 수업 사례. △여성가족부가 제작한 위안부 피해자 교수 학습자료 등을 예시하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런 토론 수업을 권고하는 지는 알 수 없으나, 학생들의 토론 수업에 앞서, 먼저 점검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는 정확한 토론을 위한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나 이를 바르게 가르칠 교사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 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들은 편향적인 것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둘째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한/일간 갈등의 문제는 우리나라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보는데, 이를 정확히 가르쳐줄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셋째는 서울시 교육청이 예시한 쟁점이나 토론 자료는 대부분 반일적인 요소가 강한 것들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역사 이해에 대한 깊이가 부족한 학생들이 객관적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겠는가? 넷째는 일선 학교에서 토론식 수업이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일간 첨예한 갈등 쟁점을 부각시키므로, 자칫하면 반일 역사 교육이 이뤄지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결국 서울시교육청의 한/일간 갈등에 대한 토론식 수업 권고는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만약에 한/일 간에 갈등과 또 이것을 풀어서 양국이 미래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학생들 간의 토론으로는 부족하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 서 있는 전문가에 의한, 바른 역사 교육을 통해서만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으며, 지금의 갈등 국면을 학생들에게 전가시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자칫하면, 과거에 대한 부정적 역사를 부각시켜, 오히려 다음 세대를 대표할 학생들에게, 과거에 발목을 잡히는 역기능적인 교육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02
  • 최광 선교사의 탈북자 선교,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세종대 트루스포럼 황선우 대표.   북한의 통치 이념인 주체사상은, 소련의 스탈린 공산주의에 조선의 유교 주자학이 더해져 만들어졌다. 주자학이란 '국가는 부모'라는 개념을 이론화한 것인데, 이 때문에 북한은 김일성을 '어버이 수령'이라 부른다. 단순한 통치 철학을 넘어 교주, 교인, 교리를 갖춘 세계 10대 종교가 되었다. 성경 인물들은 거듭나면서 이름이 바뀐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사울은 바울로, …. 한반도의 유교 국가, 조선은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대한민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한반도의 북쪽을 점거하고 있는 북한은, 여전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조선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북한을 대한민국으로, 조선을 대한민국으로 개화시켜야 한다. 조선에 기독교가 들어와  대한민국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최광 선교사의 탈북자 선교 3년 1998년 8월, 최광 선교사는 중국에서 탈북자 선교를 시작했다. 굶는 게 싫어 탈북했지만 여전히 굶고 있고, 북송될 위기에 처해 있어 숨어다니는 이들을 위한 사역이었다. 이들은 주체사상 세뇌로 인해 인격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고, 그 세뇌에서도 완벽히는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다.최광 선교사는 탈북자들을 북한 선교사로 기르고자 했다. 그래서 탈북자들을 집에서 먹이고 재우며, 선교사로의 양육을 했다. 그 시작은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북한에서의 악한 것들을 털어버리고 새로이 거듭나자는 의미였다. 상수는 무디로, 상국은 선주로, …. 둘째는, 북한에서의 험한 말투를 고치는 것이었다. 반드시 존댓말을 쓰고, 서로 '형제', '자매'라 부르도록 규칙을 세웠다. 셋째로는, 술과 담배를 끊는 것이었다. 둘째와 셋째 지시사항을 지키려면 그동안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야했기에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광 선교사는 첫째로서 이들의 이름을 바꿀 때부터 그 기반은 기도와 말씀이었다. 그래서 이들도 기도와 말씀을 기반으로 생활하도록 가르쳤고, 결국 이들은 지시사항을 지킨 후 거듭나 1기 선교사가 되었다. 2001년 6월 11일, 최광 선교사를 포함한 76명이 중국 공안과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면서 탈북자 사역은 끝났다. 최광 선교사는 한국으로 추방되었다. 이로써 최광 선교사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3년 동안 총 350여 명의 탈북자들을 먹이고 재웠다. 그리고 3기까지, 연변과 중국 중동부, 중서부로 파송된 80여 명의 선교사를 길렀다. ◈통일한국,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조선이 망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되기까지 일제시대라는 36년의 고난과 미군정이라는 3년의 혼란기가 있었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껏 71년간, 일제시대보다 더 길고 추악한 상황에 놓여왔다. 그래서 북한이 해방되고 완성된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미군정 3년보다 더 긴, 더 혼란스러운 시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최광 선교사는 2000년, 북한 선교사 3기생으로 130여 명의 학생들이 모집되는 것을 보고 5000명의 북한 선교사를 양육하겠다는 비전을 가졌다. 이후 추방되면서 비전을 잠시 내려놨지만, 2006년에 책 『내래, 죽어도 좋습네다』를 쓰며 다시 비전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의 황금종교회(열방빛선교회)에서 탈북자 선교를 계속해서 하고 있다. 우리는 최광 선교사에게서 배운다. 최광 선교사가 중국에서 3년 동안 탈북자들에게 보여줬던 그 모습을 한국 교회가 갖춰야 하지 않을까? 그 모습이 북한이 해방되는 시기에, 엄청 혼란스러울 수 있는 그 때에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8-27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