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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평화당 국회의원 박주현 집사(전주현암교회)가 ‘전북희망연구소’ 출범식 갖고, 지역 살리기에 나서
      “제가 항상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잘 섬기며 관계형성이 막힘이 없을 경우 대부분 추진하는 일들이 주 안에서 형통합니다.” 삶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의 삶의 문제점을 파악하는데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형성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평화당 국회의원 박주현 집사(전주현암교회)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것인가? 라며 스스로의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계획과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려 한다고 아쉬워했다. 박주현 의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형성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의 뜻에 서 있어야 한다”며 “이것이 신뢰관계이다. 즉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오늘의 반열에 이르렀다며 자신의 삶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다고 고백한다. 박 의원은 전주여자고등학교(51회 졸업)에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입학한 최초의 동문이 됐다. 박 의원은 학교와 가족 그리고 지역의 보배가 되기도 했다. 또, 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여성단체연합 정책위원, 청와대 국민참여수석과 참여혁신수석,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초대 민간운영위원장, 국민의당 최고위원, 20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하는 등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길을 걸어왔다. 박 의원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축복의 통로로 사용해 주셨다. 이제부터는 지역발전과 나라발전을 위한 모퉁이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정직과 성실 그리고 신실함으로 지역을 섬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 의원은 지역 섬기기 그 첫걸음으로 군산조선소 가동중단 및 GM군산공장 폐쇄 등으로 전라북도 경제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전북경제 회복과 차세대 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민주평화당 전북도당 산하 ‘전북희망연구소’ 출범식을 지난 3월 20일 가졌다. 이날 열린 출범식에서는 현판식을 비롯해 ‘전북경제 살릴 5대 비전’ 선포식도 가졌다. 박 의원은 “전북의 핵심 대기업 3개 중 2개가 문을 닫아 일자리 재난에 처한 전북경제를 살리고, 전북의 미래전략산업을 견인하기 위해서 전북희망연구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전북 내 산적한 현안을 국회·지자체·중앙부처와 함께 공론화시켜 전북이 위기를 극복하고 대도약 시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박 의원은 또, “전북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민주평화당이 개혁야당으로서 전북도당과 함께 발전전략을 고민하고, 필요할 때는 전북도와 협력하면서 전북경제 살리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내일이 기대되는 전라북도, 매일이 희망찬 전북경제를 위해 전북희망연구소가 도민 곁에서 늘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주현 의원은 1988년 변호사를 시작한 이래 보육, 복지, 노동문제 등 정책을 만드는 일을 시민사회와 함께 깊이 관여해왔다. 특히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참여혁신수석을 거치면서 정책연구의 필요성을 느껴 시민경제사회연구소를 출범, 연구소장을 역임하면서 20대 국회에 입성한 지금까지 부동산정책, 교육정책, 보육정책 등을 포함해 대한민국 양극화와 지역격차 해소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오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추구하는 신앙관은 “제가 항상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잘 섬기며 관계형성이 막힘이 없을 경우 대부분 추진하는 일들이 주 안에서 평탄합니다. 때로는 힘든 일들이 부딪쳐와도 그 일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거나 물러나지 않고 한발자국씩 전진해 갑니다. 또 하나의 축복은 지금도 성가대를 섬겨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그 자리에 나갑니다.” -어릴적 신앙생활은. “저희 어머니께서 군산성광교회를 섬기며 유명한 구역장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릴적 저에게 구역의 성미를 받아오도록 했습니다. 그당시 제가 월명공원 입구에 살았습니다. 성미를 받아오면서 저희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의 형편과 처지를 알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구역예배 등에서 오래 기도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특히 사소한 것까지 기도 하셨습니다. 성미를 거두는 일이나 구역예배 등을 통해 삶과 신앙을 배워왔습니다. 어머니는 현재 88세이며, 지금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군산성광교회를 섬기셨던 이진희 목사님의 아들이 저희 형부입니다. 저희 형부는 바울선교회 선교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전주안디옥교회 이동휘 목사님이 저희 형부 이규준 목사님의 작은아버지입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한번도 교회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인데 저의 신앙의 기초가 이때 다져진 것 같습니다.” -. 어릴적 특별히 영향을 끼친 또다른 사람은 “저희 이모인데요. 옥구에서 이름난 갑부집 딸이었고, 옥구 선연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면서 일찍 개화된 학문과 삶을 추구한 이모였습니다. 중학교 교사도 역임한 김순희 집사입니다. 이모를 지켜보면서 성장했습니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하는 등 여장부였습니다. 특히 안팍으로 오가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추구해 갔습니다. 나라의 일들에 대해 관여하는 등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던 이모였습니다. 제가 출산할 때 11개월이 지나도록 어머니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에도 이모의 도움으로 제가 살아났습니다. 제가 태어났으나 숨을 쉬지 않고 있을 때도 교회 전도사님을 초청해 다시 숨을 쉴 수 있도록 이모가 해결했습니다. 이모의 전도로 가족이 복음화가 이뤄지고, 외할머니는 나라를 위한 기도를 소천하실 때까지 이어가셨습니다. 이모를 통한 자화상이 오늘 제가 정치의 현장에 서 있는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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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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