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0-2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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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교회 도로점용허가 최종 취소
    ▲사랑의교회 서초 예배당 전경   17일 대법원이 사랑의교회(담임 오정현 목사) '도로점용허가무효확인 등' 소송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10년 사랑의교회가 서초구청으로부터 받은 도로점용허가가 최종 취소됐으며, 교회는 막대한 액수를 들여 원상복구를 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2012년부터 7년 간 진행된 소송은 2011년 서초구민 293명이 사랑의교회 도로점용허가가 위법하다는 내용의 감사를 서울시장에게 청구하며 시작됐던 것이다. 서울시장은 2012년 시정 조치를 서초구청에 요구했고, 서초구청이 불복해 같은해 주민소송이 시작됐다.   당시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주민소송 대상이 성립되지 않는다며 각하 판결을 내렸지만, 2016년 5월 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일부를 파기하고 소를 서울행정법원으로 환송시켰다. 이후 1심과 2심에서 모두 허가처분 취소 판결이 내려졌고, 마침내 대법원도 이를 인정한 것이다. 한편 사랑의교회 당회는 같은날 공지를 통해 "지난 8년 간 피고인 서초구청장 보조참가인 자격으로 소송에 참여해 종교 단체가 가진 고도의 자율성은 물론 교회 시설의 공익적 측면과 여러 가지 합당한 법적인 측면에 대해 최선을 다해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이 같은 사안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최종적으로 '구청의 재량권 남용'으로 결론 내려지게 됨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교회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되 참나리길 지하점용허가와 건축의 모든 과정은 적법하게 진행되어 왔기에 앞으로도 교회의 본분을 다하며, 교회에 주어진 열린공간으로서의 공공재 역할을 더욱 충실히 감당하며 실천해 나갈 것"이라 했다. 아울러 교회는 "도로 관련법령의 흐름과 세계도시 도로 지하 활용의 추세 등을 반영하고, 소송 과정에서 제기된 쟁점 사항들에 대해 가능한 모든 법적, 행정적 대안을 마련해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성도들에게는 "계속 마음을 모아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 교계뉴스
    • 교단
    2019-10-21
  • "장자 교단 예장합동, 한 해 교인수 32,092명 줄어"
        장자 교단이라 불리는 예장 합동의 교세는 국내 최대로 2017년에는 2,688,858명이었다. 그러나 2018년은 32,092명이 감소한 총 2,656,776명으로 보고됐다. -1.2% 가량 줄어든 것이다. 이외에도 2018년 교회 수는 11,885개로 2017년의 11,922개 보다 37개 줄었다. 이와 같이 강도사 수는 850명에서 805명, 전도사수는 12,514명에서 12,443명으로 감소했다. 다만 목사 수는 23,726명에서 24,395명, 장로수는 21,671명에서 21,893명으로 늘었다.         예장 합동 총무 최우식 목사가 104회기 예장합동 총회 첫째날인 23일에 발표했다.              
    • 교계뉴스
    • 총회
    2019-10-21
  • "모방자살이 걱정된다"... 미디어의 사회적책임
      한국생명의전화 하상훈 원장   최근 아이돌 출신 연예인의 죽음 이후 청소년들의 상담이 많이 늘었다. 대부분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큰 충격과 고통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가슴이 뛰고 우울하고 불안하여 잠이 오지 않는다거나 자신들도 힘겹게 살고 있는데 그 기사를 보니 자살 충동까지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의 죽음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깊이 각인되고 전염된 것 같아 보여 상담원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많은 청소년들이 학업과 진로 문제, 대인관계 갈등문제, 우울증과 같은 정신과적 문제 등을 경험하고 있다. 필자는 이번 사건으로 청소년들이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모방 행위가 발생될 것 같아 염려가 된다.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의 사회학습이론에서는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모방학습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모방학습은 타인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는 단계, 관찰한 행동을 기억하는 단계, 그리고 이에 따라 기억한 행동을 자신의 행동지침으로 받아들이는 단계, 관찰행동의 수행여부를 결정하는 동기화 단계 총 4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팬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각종 언론 및 매체에는 그녀의 죽음 기사가 넘쳐난다. 그녀를 죽음을 이해하고 애도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마치 죽음을 문제해결의 한 방법인 것처럼 미화하고 합리화한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던 사람들이 그녀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녀의 행동을 모방하여 자살이나 자살시도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통계청 사망원인 발표(2019)와 여러 연구에서 나타난 유명 가수, 배우, 정치인의 죽음 이후에 자살률이 증가했다는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행히 보건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에서는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만들어 신중하게 보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 이후 보도를 보면서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권고기준에 의하면 자살 사건은 주요 기사로 다루지 말아야 하는데, 일부 매체에서는 자살을 너무 지나치게 부각하였으며 ‘사망’, ‘숨지다’와 같이 객관적 사망 사실을 표현해야 하지만 ‘스스로 목숨끊다’ 또는 ‘극단적인 선택’과 같이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였다. 또한 구체적인 자살방법,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말도록 권고하고 있는데 이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살과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 사용을 자제하고 보도 말미에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 정보를 제공한 것은 바람직한 변화이다.   유명인의 자살보도는 모방자살을 일으킬 수 있다. 만약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잘못된 자살보도를 보고 자살 시도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사람의 생명보다 더 큰 보도의 가치는 없다. 다시 높아진 자살률을 낮추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언론의 자율적인 규제 노력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하상훈 원장 (한국생명의전화)              
    • 오피니언
    • 칼럼
    2019-10-21
  • 월드비전, 아이티 재건복구 사업 후원 위한 자선경매 ‘I DREAM(아이 드림)’ 개최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회장 양호승)이 배우 이광기, 케이옥션과 함께 아이티 재건복구 사업 후원을 위한 자선경매 ‘I DREAM(아이 드림)’을 진행한다. 이번 행사에는 월드비전 꿈 지원사업 대상 학생들이 참여, 아이티 아동들의 꿈을 돕는 일에 힘을 보탠다. 오는 30일(수)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아트타워에서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는 월드비전 꿈 지원사업 참여 아동과 아트놈 작가의 콜라보 작품을 비롯한 국내 유명 작가 48명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 외에도 축구선수 기성용의 사인이 새겨진 유니폼과 축구화도 만나볼 수 있다. 샘소나이트, 약손명가, 파리스토 등 월드비전 후원 기업의 제품도 시장판매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출품될 예정이다. 출품 작품은 케이옥션 공식 홈페이지(www.k-auction.com)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또한 10월 22일(화)에는 자선경매 오프닝 행사인 예술 나눔 토크와 갤러리 콘서트가 진행된다. 이날 행사에는 후원기업, 방송인 등 예술과 나눔에 관심 있는 VIP들이 참석한다. 또한 월드비전 꿈 지원사업 참여 아동인 미술 특기생 김명성(19세) 학생과 음악특기생 차유빈 학생(16세)도 참석해 이번 자선경매의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 자선경매 현장에서는 비니, 티셔츠 등 아이티 아동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모티브로 제작한 굿즈가 판매될 예정이다. 수익금은 아이티를 돕는데 활용되며, 10월 말부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도 구입이 가능하다.   월드비전 김순이 국내사업본부장은 “이번 행사는 월드비전 꿈 지원 사업 참여 학생들이 행사에 참해 아이티 아동들의 꿈을 돕는데 나서 더 의미가 깊다”며, “올해도 많은 분들이 경매에 참석하셔서 따뜻한 마음을 나누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자선경매 ‘아이드림’은 월드비전이 배우 이광기와 함께 자연재해로 폐허가 된 아이티를 돕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나눔 행사로 올해 8회 째를 맞았다. 이 행사는 작가와 구매자가 하나되어 나눔을 확산할 수 있는 장이 된다는 점에서 뜻 깊다. 또한 지난해부터 미술품 전문 경매사 케이옥션과의 협업으로 전문성을 높여 전문 경매 행사로서의 입지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자선경매를 통해 모인 후원금은 아이티 아동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데 사용되며 현재까지 자선경매를 통해 누적 5억 2천여만 원이 아이티 재건 복구 사업을 위해 후원됐다.   한편 배우 이광기는 지난 2010년 세상을 떠난 아들의 보험금을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티 아동들에게 기부한 것을 계기로 현재까지 월드비전과 함께 자선경매를 진행하는 등 나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 선교뉴스
    • 선교단체
    2019-10-21
  • "병 숨기지 마세요…한계점에 이르렀다면, 공개하고 도움 받으세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한인장로교회 최승관 목사와 그의 목회자 팀.  4명 모두 1.5세대 들이다. 미국, 호주, 몽고, 뉴질랜드 등 살아온 환경도 다양하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설교하는 목회자도, 사실 연약한 사람이다. 그를 하나님께서 들어쓰실 뿐, 그도 쉽게 지치고, 넘어지고, 때론 고통스러워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 있다. 그럴 때 누군가 옆에 있을 수만 있다면. 바울은 편지를 통해 갈라디아 교우들에게 바른 신앙을 권면하면서,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자신에게 눈까지 빼어주리라 했던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을 다시금 회상시켜 그들을 다독거린다. 너희는 정말 나를 사랑해 줬던 소중한 사람들이라며. 최승관 목사(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한인장로교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목회 스트레스로 공황장애와 화병이 와 쓰러지기 직전, 그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설 수 있었다. 또 교회 성도들은 그를 걱정해 주고, 기도로 중보했다. 잠시 한국에 들어와 2개월 가량의 휴식을 마무리 하고 다시 사역지로 돌아가기 직전의 그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최 목사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 혹은 체험을 하는 목회자들이 많을 것이라 보고,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며 자신의 부족함을 용기 있게 털어놓았다. 다음의 그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Q. 안녕하십니까. 자신의 소개를 간단하게 부탁드립니다. A.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담임목사인 최승관 목사입니다. 저는 40살까지 한국에서 14년간 목회를 하다가, 안식년으로 방문했던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라는 도시의 한인장로교회에 2000년도 2월에 부임했습니다.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뉴질랜드 장로교회 목사로 편목 과정을 밟아 현재 20년째 이민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왜 나를 이민목회자로 부르셨는가'를 몰랐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사역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는데, 목회자로 부름 받았을 때,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행13:47)라는 사명을 받았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원래 제 바램은 한국에서 교회를 부흥시켜 한국과 세계교회 앞에 이방의 빛이 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민목회자로 부름 받아서 사역을 하다 보니, 뉴질랜드에서 이방의 빛이 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대로, 쓰임 받는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동자 농민을 위해서 한번 살아보겠다고 결단, 100여 명도 안 사는 낙도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는데, 결국은 섬에서 시작한 사역을 섬에서 끝맺게 되었습니다. Q. 뉴질랜드크라이스트 한인장로교회는 뉴질랜드 대표 교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A. 뉴질랜드와 크라이스트치처지는 영국의 마지막 신민지로 개척된 가장 영국적인 나라이며 도시입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 내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 출신들이 180여 년 전에 도시를 세웠는데, 초기에는 98%가 교회에 출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4%도 안되는 무신론 국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복음이 2세대 이상 단절되어 버린 상태입니다. 우리 교회는 1988년에 개척한,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시작한 한인교회입니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으로 나뉘어 있는데, 우리 교회는 남섬 제일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 있습니다. 제가 부임하기 전에 교회가 두 개로 나뉘어 졌다가, 2000년 1월에 다시 하나로 합치면서 4대 목사로 부임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이민문이 열려서 2년 만에 200명에서 500명이 되고, 5년만에 800명이 되었습니다. 다운타운 바로 옆에 대지 3000평을 구입하여 본당을 건축했고, 교육관을 매입했습니다. 1000명 시대를 내다 보면서, 뉴질랜드 부흥과 전세계 디아스포라 이민교회들과 선교사들을 연결하는, 사람을 보내는 베이스 캠프 교회가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월드 미션 트레이닝 센터'가 되는 교회를 꿈 꾸었습니다.     ©최승관 목사 SNS Q. 그런데 그간 어려움이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인지 이야기 해주셔도 괜찮을까요. A. 2010년 9월 1000년 동안 잠자고 있던 지진대가 깨어나 진도 7.1의 지진이 뉴질랜드에 발생했습니다. 첫번째 지진이 일어났을 때 건물이 흔들리고 집들이 무너졌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6개월 후 다시 진도 6.7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번에는 가까운 앞 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해서 건물이 무너지고 184명이 사망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계속해서 흔들리는 지진으로 패닉(panic)에 빠졌습니다. 그 후 2년 동안 진도 6.0 이상의 지진이 2번 더 발생했고, 몸으로 느끼는 지진 2000여 번,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지진 2만 번 이상의 여진이 발생했습니다. 사람들은 지진의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심한 분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무너졌습니다. 때문에 교민들은 5000여 명에서 반으로 줄었습니다. 오히려 대륙에서 온갖 경험을 다 겪은 중국인들이 지진 이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예측하고 더 적극적으로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무너진 집들과 건물과 땅을 사들여서 돈을 벌었고, 인구수도 3배 가 넘는 3만명 이상으로 늘어났더군요. 현재 크라이스트처치는 다운타운의 건물들 90% 가까이를 허물고, 진도 9도 이상을 견뎌낼 수 있는 최첨단 건물로 건축했습니다. 예술적인 건물들로 가득한 최첨단 도시로, 명품 도시로 탈바꿈 했습니다. 지진은 사라졌고, 있어도 문제 없는 안전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10년 간의 지진을 견뎌내면서, 800명이 400명 대로 줄어들었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감당하기 위해서 교육관을 건축회사에 임대로 내 놓아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다음 세대, 특히 1.5세대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차세대 지도자를 양육하는데 집중했습니다. 2명의 부목사님들 중에 한 명은 LA출신 1.5세대 지도자, 다른 한 명은 호주 1.5세대 출신을 청빙했습니다. 아주 어렵게 그 분들을 청빙했는데, 그 분들이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설교하는 목회로 다음 세대들을 양육했고, 그 결과 3살에 이민 온 뉴질랜드 1.8세 전도사와 3살에 몽골 선교사 가족으로 이민 갔던 전도사를 배출해 내기도 했습니다. 또 해 마다 지역 교회들과 연합해 1.5세대들을 위한 부흥집회를 20여 년 째 이어오고 있다. 7~8년 전부터는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소화하는 부흥집회를 개최하고, 뉴질랜드 전역과 여러 나라에 고립되어 있는 청년과 청소년들이 몰려오는 청년 청소년 집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지진 때문에 유학생 가족들이 돌아가서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이민자 자녀들을 집중적으로 양육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어, 지난 10년간 새로운 형태(이중언어 사용)의 신앙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도시 전체가 안전을 찾을 즈음, 올해 3월 호주에 사는 백인 한 명이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사원에 침입해 연발총으로 무참하게 무슬림 42명을 학살하는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테러의 공포는 지진 10년간의 트라우마를 뛰어넘는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공포에 시달리는 교인들을 돌보기 위해 전념을 다했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의 신속한 대응으로 테러의 상처가 그런대로 빨리 아물었지만, 사람들의 내상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정말 깊은 내상을 입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순간 저 개인에게도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주일날 예배를 인도하려고 강대상에 섰는데, 세상이 갑자기 정지되어 있는 듯한 현상을 느꼈습니다. 어질어질해서 그대로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겨우 예배를 인도했는데, 그 후 증상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날은 교회 앞에 설 수가 없어서 맨 뒤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여차 하면 뛰쳐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부목사들에게 사회를 맡기고 뒤에서 안절부절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여 뛰쳐 나가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면서 겨우 설교를 마쳤습니다. 2주간 증상은 더 악화 되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현기증이 심해졌으며, 무기력증에 빠지고, 일하기가 싫어지고, 감정이 없어진 것 같고, 감정조절이 안되고, 수면장애가 심각해 지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근육통이 심해지고, 갑자기 무언가에 확 해딩하고 싶은 충동이 찾아오고, 두통이 지속되고, 밤마다 2-3시간 밖에 잘 수 없고, 몸이 수축되어 들어가는 느낌이 오고, 복부에 심한 비만이 발생했습니다. 정신력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정신을 놓기 직전, 뉴질랜드 홈 닥터에게 찾아갔습니다. 공황장애(Panic disorder)와 화병 같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의사는 무조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최소한 2달 이상은 쉬어야 한다는 소견을 냈습니다. 기로에 서 있을 때, 무언가 폭발하기 직전, 용기를 내서 나의 증상을 선배들에게 글로 보냈습니다. 한 목회자는 “몸이 일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니, 6개월 안식년을 가지라”고 조언해 줬고, 다른 한 목회자는 “우울증이니 무조건 2달 쉬라”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 서울씨티교회 조희서 목사는 “급하다. 하루라도 빨리 (그곳에서) 나와야 산다. 머뭇거리다가 폭발하면 평생 문제가 될 것”이라는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교회 장로들에게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장로들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용기를 줬습니다. 밀린 휴가로 한 달, 병가로 한 달, 모두 두 달 휴가를 얻어 한국으로 나왔습니다. 일단 한국에 오자마자 먼저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는 “큰 병으로 가기 직전이다. 다행히 아직 약 먹을 단계는 아니다. 머리에 너무 많은 것들이 꽉 차 있고, 스트레스가 꽉 차 있으니, 비워내야 한다. 걸어라 걸으면서 비워내라”고 조언했습니다. 한의사는 “탈진이다. 치료약을 먹고, 소고기와 잎사귀 채소를 먹어야 하는 체질이다. 그리고 잘 먹고 하루에 2-3시간이상 걸어라. 악착같이 많이 걸을수록 빨리 회복된다”고 했습니다. 약사 역시 몸의 영양분을 제공해 주는 약들을 추천해 주며, 걸으라고 조언했습니다. 결론은 비워내라,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으라, 그리고 걸으라는 진단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몸에 맞는 음식들을 섭취하며, 하루 평균 2만보 가까이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걸을 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니 조금 힘이 났습니다. 10일이 지나니 소화불량과 불면증이 사라졌습니다. 한 달을 걸으니 몸의 체질이 바뀌었습니다. 조금만 추워도 내복을 입어야 했는데, 지금은 몸에서 열이 납니다. 그렇게 육체가 돌아오니,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육체가 약해지면 면역력이 떨이지고, 뇌에 세라토닌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자꾸만 허무한 생각과 무력증에 빠진다고 하네요.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말이 진짜인듯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최대한 잘 먹고, 악착같이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육체가 돌아오니 정신이 돌아왔고, 다시 일할 의욕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을 피하던 태도도 바뀌어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그들에게 새 힘을 불어 넣어줄 정도까지 회복 되었습니다. 다행히 2달 만에 회복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가족들은 그의 목회 든든한 버팀목이다. ©최승관 목사 SNS Q. 2년 전 미국의 한 대형교회 자살방지 사역을 하는 목회자가 자살했죠. 목회자의 우울증 문제를 직접 겪어 본 당사자로써 그 일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A. 내가 아파 보기 전에는 우울증이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기도가 약하구나, 믿음이 약하네’라는 생각을 속으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자, 그런 연약함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에너지가 0.001%라도 남아 있다면 돌아서면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선을 넘어버리면, 큰 병 되어 버립니다. 분명 한계선을 넘기 전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저는 마지막 단계까지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완전히 탈진된 사람들은 회복에 7-8년 혹은 평생을 고통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0.0001%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 용기를 내고 도움을 받은 덕분에, 두 달 만에 아쉬운대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쉬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지만, 복귀하기로 했습니다. 위기가 찾아온 후 40일이 지났을 때, 내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를 지나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죽다가 살아난 심정입니다. 지옥 문턱에까지 갔다 왔습니다. 맨탈 문제를 두고 지도자의 자격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에게도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때 머뭇거렸다면, 2달 만에 회복할 기회를 놓쳤을 것입니다. 물론 정신이 온전하지 않으면 당연히 (강단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을 두고 휴식을 취하고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병이라면, 주변 사람들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공황장애나 화병은 빨리 휴식을 취하고 치료하면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회복이 안되더라도 병든 목회자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아주고 기다려 주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런 곳이 진정한 교회가 아닐까요? 목회자가 성도를 돌보는 것만이 아니라, 성도들이 병든 목회자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그런 성숙한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그런 고통을 함께 할 때, 더 깊은 사랑과 함께하는 삶이 이루어 지리라 믿습니다. Q.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약물치료가 필요한 부분을 영적문제로 터부시하는 교회 분위기가 존재하죠.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A. 병은 숨기면 안 됩니다. 한계점에 이르렀다면, 공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작은 암 덩어리가 발견되면 바로 수술하지 않습니까. 정신적으로도 이상 증상이 발생하면 공개하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Q. 같은 문제로 힘들어 하는 목회자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주시고 싶으신가요. A. 저는 이제 제 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이렇게 빠르게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은 중요한 때 저를 보듬고 도와준 사람들 때문입니다. 내가 무력감에 빠져 있을 때, 아낌없는 사랑으로 나를 안아 주었던 가족들과, 동료들, 교인들의 중보기도와 후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저를 살렸습니다. Q. 이제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실텐데, 복귀 소감은 어떠신가요. A. 죽었다 살아난 느낌입니다. 새로운 의욕이 생기고 있습니다. 다시 처음 목회지에 부임하는 심정으로, 첫 목회지 낙도를 향하여 나아갔던 순수했던 그 때 그 마음 그 믿음 그 열정으로, 개척하는 심정으로 교회로 복귀합니다.   ©최승관 목사 SNS   Q. 그렇다면 목사님을 위해 걱정하고 기도했을 교회 성도들을 위해 한 말씀 해주시죠. A. 목회자의 힘은 성도들의 격려와 응원에서 나옵니다. 내가 힘들어 지치고 넘어졌을 때, 아낌없는 응원과 중보기도와 실제적인 도움을 준 성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성도들이 나를 살렸습니다. 때론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나를 책망했던 성도들 덕분에 좀 더 세밀해지고,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좀 더 신중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연단 시키신 것이죠. 건강할 때는 몰랐는데, 아파 보니 아픈 사람들이 보입니다. 환자들이 보입니다. 제가 그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지도 보입니다. 공동체적인 접근 보다는, 개인적인 교감이 더 필요하다는 자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응원하는 성도분들로 저는 살았습니다. 그저 내 곁에 있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합니다. Q. 뉴질랜드크라이스트 한인장로교회의 비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사역하고 싶으신지요. A. 뉴질랜드는 한 때 인구 대비 전세계에서 선교사를 가장 많이 내보냈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신론 국가로 전락했습니다. 뉴질랜드 선교가 급합니다. 뉴질랜드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는 차세대 영적 지도자를 배출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제1 과제입니다. 차세대 지도자 100명 양성을 목표로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고립되어 있는 이민교회와 선교사들을 돕고, 협력하고 지친 이들을 재충전하게 하는 베이스 캠프 교회 역할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모든 병든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고, 재충전 할 수 있는 힐링 터 역할을 하는 교회로 쓰임 받기를 꿈꿉니다.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A. 20살에 부름 받아 40년을 달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런데 뒤돌아 보니 헛점 투성이 입니다. 부족하기 그지 없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저 같은 사람은 목회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평범합니다. 지력도, 영력도, 능력도, 인격도, 너무 평범합니다. 목회자는 좀 뛰어난 사람들이 해야 하는데, 완벽한 사람들이 해야 하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너무 많았습니다. 포기하고 절망한 고통의 시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절망하고 울부짖으며 기도할 때마다 "너는 내 종이다. 내가 너를 불렀다"라는 말씀으로 저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주깨서 주신 용기 때문에, 그 말씀 때문에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멋진 분입니다. 저 같은 사람을 들어 쓰시는 솜씨가 위대하십니다. 돌아보니, 저를 통해서 힘과 용기를 얻고 거듭난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 때문에 상처받고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도 참 많았습니다. 순종하고 바르게 정직하게 살면 사랑 받고 존경만 받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상처받은 이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미안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붙잡아 주시지 않았으면 벌써 수 십, 수 백 번 그만 두었을 겁니다. "너는 내 종이다. 내가 너를 세웠다"는 응답 때문에, 그 말씀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포기하고 무너질 때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응원해 주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최고의 밥상으로 40년째 응원해 주는 고마운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 때문에 저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 때문에 지치고 힘들어서 울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옆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옆을 보니 저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좋아해 주는 이들이 가득했습니다. 저를 반대하는 사람들 보다 저를 응원하는 이들이 더욱 많았습니다. 그들의 힘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들이 다가 옵니다.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 있을 때, 옆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최고의 밥상으로 응원해 주는 그런 따뜻한 목회자로 살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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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1
  • “생명을 나눈 가족들이 함께 만든 1박 2일의 행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뇌사 장기기증인들의 숭고한 사랑을 기리고, 가족을 잃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기 위한 고귀한 결정을 내린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특별히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식인들이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생명 나눔 가족들의 위로와 격려의 자리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이하 본부)가 10월 19~20일, 한화생명(대표이사 부회장 차남규·여승주)의 후원으로 한화리조트 양평으로 ‘2019 도너패밀리와 이식인이 함께하는 1박 2일 캠프’를 다녀왔다. 생명 나눔의 주인공들이 참여한 이번 캠프는 지난해에 이어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도너패밀리)과 이식인들이 함께하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장기기증으로 숭고한 사랑을 실천한 도너패밀리와 장기이식을 통해 새 삶을 선물 받은 이식인들이 만나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이식인-도너패밀리, 서로의 마음 담아 전하다 모든 순서는 도너패밀리와 이식인들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돕는 데 모든 초점이 맞춰졌다. 먼저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참가자들은 조별로 나눠 모여 장기자랑을 준비했다. 각 조에서 도너패밀리와 이식인들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일체와 연대의 감정을 나눴고, 저녁에 진행된 어울림 축제를 통해 서로 준비한 무대를 즐기며 기쁨을 표현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자리도 준비됐다. 지난 2014년 세상을 떠나며 9명에게 아름다운 생명을 선물한 故 정동윤 씨의 사연은 최은준 작가의 손을 통해 샌드아트로 꾸며져 참석자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고인의 부모인 정대규, 남기주 씨는 지난해 행사에서 우연히 아들과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이식인을 만나 두 사람은 물론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준 바 있다.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이들은 공연을 통해 다시 한 번 그날의 감동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 자리에서는 장기를 이식받고 새 삶을 살고 있는 이식인들이 자신의 사연과 이식 이후의 삶을 소개하며 기증인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지난 1994년 신장을 이식받고 25년째 건강하게 살고 있는 정종철 씨는 이식인을 대표해 편지를 낭독했다. 현재 송곡관광고등학교에서 교목으로 근무하고 있는 정 씨는 28세이던 당시, 같은 나이의 뇌사자로부터 신장을 이식받았다. 그는 “절망과 고통으로 얼룩진 골짜기를 지나 서른이 넘은 나이에 대학을 들어가 지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것도,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것 모두 기증인과 유가족 분들이 베푼 사랑 덕분”이라며 “늘 고마운 마음을 안고 살아왔는데 직접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 씨 외에도 이날 행사에 참석한 신·췌장이식인협회 소속 이식인들은 직접 도너패밀리와 포옹하며 기증인들의 숭고한 사랑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함께 전했다. 이식인들이 감사를 전한 뒤 도너패밀리를 대표해 장부순 씨(故 이종훈 씨 유가족)가 이식인에게 격려와 당부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화답했다. 이밖에도 소프라노 이진희 씨의 성악 무대와 전자바이올리니스트 그레이스의 축하 공연 등이 마련돼 생명 나눔의 현장을 더욱 풍성히 꾸몄고, 이튿날에는 야외로 나가 바람을 쐬고 관광을 하며 도너패밀리와 이식자들 간의 추억을 쌓았다. 양평 두물머리와 세미원을 둘러보며 못 다한 대화를 나누며 함께 사진을 찍었고, 특히 먼저 떠나간 가족들을 추억하며 새로운 인생을 얻게 된 이식인들의 건강한 삶을 기원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쳤다. 본부 박진탁 이사장은 “장기기증이라는 숭고한 실천으로 생명 나눔의 가치를 널리 알려주신 도너패밀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며 “기증인의 사랑을 마음 깊이 새기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식인들과 교류하는 따뜻하고 행복한 1박 2일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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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1
  • "지옥과 심판 없는 만인 구원론은 타당할까?"
    전 장신대 총장 김명용 박사 전 장신대 총장 김명용 박사는 온신학회 아카데미 4회차 마지막 강연을 천호동 광성교회에서 7일 오후 7시에 전했다. 제목은 ‘믿지 않고 죽은 자들에게도 희망이 있을까-몰트만의 만유구원론과 새 지평에 대한 신학적 평가’이다. 김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에게 구원의 문이 열렸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에 그는 “몰트만은 믿음 없이 죽은 자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신학적 이론을 제시했다”고 했다. 또 그는 “몰트만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도 배격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생명처럼 여기는 개신교인들에게도 절충점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김 박사에 따르면, 바로 몰트만 박사는 칼 바르트의 만인 화해론에서 희망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이 지점에서 김명용 박사는 칼 바르트의 만인 화해론을 설명했다. 칼 바르트는 1942년 ‘교회교의학’에서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버리신 이유는 모든 인류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하여 칼 바르트는 “예정은 하나님 사랑에 근거한 극단적 대리 교환”이라며 “하나님은 버림받아야할 인류를 살리기 위해, 버림받을 수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리셨다”고 전했다.   다만 김 박사는 “칼 바르트의 예정론은 구원이 만민에게 열려있음을 뜻 한다”고 밝히며,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른다고 단언하진 않았다”고 했다. 왜냐면 그는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과 의 만남을 통해서 구현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예정하셨지만, 이에 대한 인간의 반응 곧 믿음”도 역설했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만, 구원은 확증될 수 있다”고 칼 바르트의 견해를 전했다.   여기서 칼 바르트가 한층 발전시킨 신학적 산물은 바로 ‘객관적 화해론’이라고 김 박사는 설명했다. 그는 “이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민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이미’ 화해됐다”고 말하며, “이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는 상관없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그는 “모든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있고, 하나님과 화해되어 있다”며 “이는 ‘객관적’ 화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바르트 견해를 전하며 “하나님과 화해된 순간은 믿는 순간이 아니고, 이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라고 역설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바르트는 “만인이 그리스도와 화해된 상태를 말한 것”일뿐, “만인이 구원받았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바르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한 예화를 전했다. 2차 대전 때, 나치를 피해 어떤 사람은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깊은 산골로 숨었다. 그가 엄청난 고생을 겪는 와중, 나치가 패망하고 오스트리아가 해방됐다. 오스트리아에는 이미 객관적인 평화와 자유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알프스 산골에 숨어있고, 나치가 망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 누군가 이 사실을 이 사람에게 전해야 하고, 이를 믿어야 하며, 믿고 도시에 내려와야만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이에 김 박사는 “나치가 망한 사실은 화해의 사건이고, 자유와 평화는 객관적 실체”라며 “그러나 알프스에 은신한 사람은 이 사실을 모르기에, 구원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셈”이라 부연했다. 때문에 그는 “누군가는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고, 소식을 듣고 믿어야만 구원은 확증 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화해와 구원 사이의 간극은 ‘교회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선교’를 통해 메워야 하는 것이다.   2018년 8월 31일 한신대 강연에서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발언하고 있다 ©한신대 제공   이 대목에서, 김 총장은 칼 바르트의 신학적 의문을 제기한 위르겐 몰트만을 인용해 논지를 전개했다. 바로 그는 “하나님과 인간은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화해됐다”고 가정하면, “끝까지 복음을 거부한 사람은 결국 심판받을 것인가”를 되물었다. 이에 그는 “칼 바르트는 만인 화해론을 만인 구원론으로 연결시키는 것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반면 그는 신학자들의 견해를 빌려 “칼 바르트의 만인 화해론은 만인 구원론으로 향해간다”며 “대표적으로 몰트만(J. Moltmann)은 1995년도 책 ‘오시는 하나님’을 통해 만유구원론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김 박사는 몰트만을 인용해 “그리스도의 은혜가 만민을 구원하고 살릴 것을 선포하고 있다”며 “구원의 보편성을 말했지, 그 제한성을 말하진 않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몰트만은 성경구절을 인용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11; 32) 따라서 몰트만은 “그리스도의 은혜는 만민에게 미치는 긍휼”이라며 “하나님은 바로 이 긍휼로 만민을 구원하고, 만유를 구원하고자 하신다”고 확증했다. 더불어 그는 “몰트만에 의하면 영원한 지옥 형벌이 있다면 십자가에 계시된 자비와 사랑의 신은 무의미해진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명용 박사는 몰트만을 견해를 빌려“영원을 의미하는 헬라어 ‘아이오니오스’(aionios)와 히브리어 ‘올람’(olam)은 끝을 제한할 수 없는 긴 시간이지, 절대적 영원은 아니”라고 전했다. 하여 그는 “성서는 저주의 기간을 말하면서, 이 단어를 차용했다”는 점에서, “지옥은 절대적 의미의 영원은 아니”라고 재차 말했다. 나아가 그는 몰트만이 주장한 희망의 신학은 “모든 것을 회복하실 하나님의 의지”라면 “그분의 속성 상 영원한 지옥은 선포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래서 김 박사는 몰트만을 인용해 “교회의 희망은 하나님께서 지옥도 없애고, 지옥의 고통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라 밝혔다. 그래서 몰트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속죄뿐만 아닌, 지옥을 파괴하는 구원 사건임”을 강조했다고 김명용 박사는 부연했다. 몰트만이 바라본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속죄'만이 아닌 '지옥을 파괴하신 구원 사건'인 것이다. 김 박사에 따르면, 몰트만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없는 세계에 떨어진 ‘하나님의 현재·미래 그리고 미래의 지옥 고통’까지 겪으셨다”고 했다. 몰트만은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가 지옥의 고통을 당하셨기에, 그렇지 않으면 모든 희망이 떠날 수밖에 없는 그곳에도 희망은 존재하게 됐다” (J. 몰트만,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서울 기독교 서회, 이신건 역) 때문에 김명용 박사는 “이 그리스도의 지옥의 경험은 지옥을 열고, 지옥을 파괴시킨 결정적 근거”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몰트만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지옥을 파괴시키기 위해, 지옥의 고통을 겪으셨다’고 말했다”며 “십자가는 지옥이 파괴되었다는 결정적인 보증”이라고 역설했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속죄뿐만 아닌 지옥을 여시고, 지옥과 죽음을 하나님 안에서 폐기한 사건”이라고 재차 밝혔다. 논의를 확장해, 김 박사는 “몰트만은 바르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십자가 속에 만민의 화해 및 만민을 구원할 하나님의 의지를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에 이미 하나님의 의지는 구현됐고, 교회는 계속적 복음 선포를 통해 희망이 구현될 것”을 역설했다. 한편 김 박사는 몰트만의 만유구원론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전했다. 그는 에밀 브룬너(E. Brunner)를 빌려 “성서는 모든 사람의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이중적 결과에 대해 곧 몰락과 저주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계속해서 브루너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말씀인데, 우리가 믿는 경우에만 구원을 주시는 말씀”이며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은혜로우신 분이시지, 그리스도 밖에서는 진노하시는 분”이라고 못 박았다. 또 김 박사는 만유구원론은 전도의 절박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더욱 괄목할만한 점은 몰트만의 논리 전개가 다소 비약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몰트만이 바르트의 만인 화해론에서 만유구원론으로 도출할 때, ‘십자가는 만유를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이를 거부할 가능성을 묵살했다”고 지적했다. 즉 그는 “하나님의 주도권과 인간의 결단 사이, 하나님이 결국 이기실 것으로 보았다”며 “이는 기계론적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하여 그는 “만유구원에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변수가 개입하기 때문에, 만유구원은 하나님께도 열려진 미래”라고 했다. 물론 “몰트만 또한 만유가 구원에 이른다고 단정 짓지는 않았다”며 김 박사는 몰트만을 인용했다. 다음은 2003년도 몰트만의 책 ‘희망의 신학’에 나온 대목이다. “만유구원(Allversöhnung)은 이단도 아니고 더 이상 책망할 이론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와 희망의 표현이다. 그러나 만유구원에 대한 결정은 하나님의 일(Gottes Sache)이다. p.166) 때문에 김 박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이란 결론은 성서의 가르침을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 만인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의지는 분명하다”며 “몰트만은 하나님의 의지는 관철될 것이란 이유로, 만유구원론의 희망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박사는 “그런데 십자가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지는 만인을 구원하겠다는 의지만 계시된 것은 아니”라고 꼬집었다. 다시 말해 그는 “그 의지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믿고, 감사하는 자들을 구원하겠다는 의지가 동시에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하여 그는 “이 후자의 의지도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몰트만은 이 두 번째 의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며 “믿지 않는 자들은 이미 심판 속에 있고, 이 심판의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끝으로 그는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상상을 초월하는 자비가 계시돼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이 자비를 알고, 믿는 일은 온 인류에게 주어진 시급하고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십자가에는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도 있지만, “믿는 자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있음을 강조했다.     김명용 전 장신대 총장이 강연하고 있다                      
    • 교계뉴스
    • 총회
    2019-10-21
  • "학교 교육에 침투한 젠더 '전체주의'"
        ‘학교 교육에 침투한 젠더 전체주의’가 8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우리 공화당 홍문종 의원, 동성애동성혼 반대 국민연합이 공동 주최했다. 홍문종 의원은 축사에서 “젠더 이데올로기가 공교육에서 정상인 것처럼 아이들에게 주입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성중독, 성문란을 일으키는 급진적 성교육이 우리 아이들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그는 “이런 왜곡된 성을 가르치는 교과 내용은 지금이라도 당장 중단, 폐지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충남대 로스쿨 명재진 교수가 나섰다. 그는 “젠더 이데올로기는 생물학적 성(Sex)을 부정하고, 사회적 성 곧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성을 긍정 한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그는 “헌법이 적시하고 있는 ‘생물학적 성을 기초로 한 가정질서’를 부정하는 행태”라고 비판하며, “젠더는 헌법이 견지하고 있는 보편적 인권을 부정했다는 점”을 두고, “인권은 아니”라고 목소리 높였다.         특히 그는 젠더 이데올로기를 두고 “성 소수자의 편향적 취향을 인권으로 포장 한다”며 “성 중독, 성적 타락마저 정상적 도덕으로 간주하려든다”고 지적했다. 하여 그는 “젠더 인권은 선천적·보편적 가치가 아니”라며 “창조 섭리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 꼬집었다.         명재진 교수는 젠더 이데올로기에는 배후 정치 세력이 숨어있음도 강조했다. 그는 “68혁명 때 네오 맑시즘 세력은 젠더 이데올로기 확산을 통해, 건강한 가정·사회 질서 해체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그는 헌재·대법원 판결을 빌려 “젠더 이데올로기는 건강한 사회와 가정 질서를 추구하는 헌법과 배치됨”을 강조했다. 가령 그는 “헌재는 ‘군대 내 동성 간 성관계’를 금지한 군형법을 ‘합헌’이라 했고, 대법원도 마찬가지”라며 판결 이유를 제시했다. 다음과 같다.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8도2222판결) 덧붙여 그는 “대법원은 혼인 중 성전환을 불허한다는 판결을 했다”고 밝혔다. “무릇 혼인이란 남녀 간의 육체적, 정신적 결합으로 성립하는 것으로서, 우리 민법은 이성 간의 혼인만을 허용하고 동선 간의 혼인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대법원 2011. 9. 2. 자 2009스117 전원합의체 결정) 아울러 그는 “양성평등기본법에 충실히 남녀평등을 담고 있다”며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현 시점에선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유로 그는 “젠더 이데올로기가 추구하는 성차별 철폐는 ‘성별 해체’를 통해, 건강한 가족 질서 파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헌법 31조 제 4항을 놓고 “교육의 자주성·정치적 중립성·전문성 등은 법률에 의해 보장 된다”고 말하며, “젠더 이데올로기는 편향적이기에, 헌법 정신을 훼파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젠더 이데올로기는 특정한 정치적 이념”이라며, 주디스 버틀러의 “사회의 이성애적 표징은 제거돼야한다”며 이유를 제시했다. 게다가 그는 헌법 제 11조를 두고 “평등권은 ‘성별’(Sex)을 기초로 했지, 젠더는 아니”라고 밝혔다. 때문에 그는 “수 십 가지의 사회적 성 곧 자기 맘대로의 주관적 성을 포함하는 젠더 이데올로기는 결코 헌법에 합치하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21세기교회와신학포럼 대표 곽혜원 박사   이어 21세기 교회와 신학포럼 대표 곽혜원 박사는 “20세기는 냉전 체제를 이끌었던 맑시즘의 종언”이라며 “그러나 21세기, 마르크스주의(Marxism)가 회생했는데 바로 젠더 이데올로기”라고 강조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Marxism)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며 “또한 전체주의적 속성도 지니고 있다”고 그는 밝혔다. 아울러 그는 “젠더 이데올로기는 남녀 성별 질서를 해체하고, 인류 문명의 근간인 결혼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인권·성적 다양성의 이름으로, 괴기한 성 소수자의 성적 타락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그는 “패륜적 성 혁명의 목표는 바로 건강한 가정질서 파괴가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때문에 그는 “젠더 주류화 정책은 부도덕한 성 행위를 즐기는 사람들을 법적·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방패”라고 꼬집었다. 이 대목에서 곽 박사는 젠더 주류화 전략 중 하나로 조기 성애화 교육을 설명했다. 그는 “성애화는 인간을 성적으로 탐닉하도록 촉발 시킨다”며 ‘다음 세대를 표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왜냐면 그는 “조기 성애화를 통해 아이들이 성에 집착하도록 한다면, 가정·교회·국가가 차례로 붕괴 된다”며 “젠더 세력은 UN 등 사회 상층부에 침투해, 젠더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가 제시한 국제단체는 “국제 가족연맹, 전국 교육협회, 인구위원회, 유네스코, 성교육 포럼 등”이 있다. 곽 박사에 따르면, 이들의 기치는 “성은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생명의 잉태는 부작용이므로 피임법으로 예방하거나 낙태로 제거하면 되고, 깨어진 인간관계의 심리적 상처와 성병은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이다. 아울러 그는 “네오 맑시즘(Neo-Marxism)은 성해방을 통해, 공산주의를 부활시키고 교회를 파괴하려는 목적이 있다”며 공산주의자 겸 심리학자 빌헬름 라이히의 말을 인용했다. “억압적 성 규범으로부터 해방되어, 너의 성충동을 만족시켜라. 자유로운 성을 추구해서 자유로운 사회라는 낙원을 창조하라” 곽 박사는 “젠더 이데올로기는 폴리 아모리(다자성애) 등을 주장하며, 사람들에게 성적 방종을 부추겼다”며 “이를 정상적 규범으로 포장해, 일반대중에게 침전 시킨다”고 지적했다. 하여 그는 “성적 타락은 가속화 되고, 건강한 가정질서는 붕괴 된다”고 역설했다.         독일 조기 성애화 교육의 단면   이런 잘못된 성애화 교육이 반영된 예로, 곽혜원 박사는 독일 성교육 교과서를 제시했다. 때문에 그는 “한국 성교육도 피임교육 위주가 아닌 생명과 책임교육으로 전환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그는 “교회와 부모의 과제”라며 “학교 공교육이 무너지면 교회와 가정이 결국 메워야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사회 구성원이 건강하게 살려면, 도덕적 하부 구조가 튼튼해야한다”며 “이를 교회와 가정이 제공 한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그는 “결혼의 최후보루를 지키는 문제는 기독교만이 감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여 그는 “교회는 사랑과 성에 대한 보석 같은 기독교적 가르침을 이행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예로 그는 “교회와 부모는 혼전순결에 대한 성스런 부부관계를 적극 가르쳐야한다”며 “가정 중심의 성결한 성윤리도 또한 요구된다”고 밝혔다.   한국가족보건협회 대표 김지연 약사   한국가족보건협회 김지연 약사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맞서기 위해, “추상성을 배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젠더에서) 더 부각돼야 하는 것은 성별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라며 “이것이 핵심”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그는 “그간 반 동성애 진영은 젠더를 두고 ‘다양한 성이 있다’며 단순히 반대를 외쳤다”며 “(젠더)는 기존 생물학적 질서를 해체할 뿐만 아니라, 내 맘대로 생각하는 성별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음”도 지적했다. 즉 젠더의 핵심은 ‘내 마음대로’, ‘성별을 바꿀 수 있다’라고 김지연 약사는 힘주어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성별(Sex)이란 단어는 안 위험하고, 젠더(Gender)는 위험하다는 종래 반 동성애 진영의 주장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즉 그는 “‘섹스’라는 단어가 주는 외설적 느낌 때문에, 젠더 사용이 더욱 탄력을 받은 측면도 있다”며 “조기 성애화의 위험을 생각한다면, 무조건적 성별(Sex) 사용도 되짚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캐나다 자녀 출생신고서의 성별(Sex)란에는 여전히 Male, Female과 더불어 Unknown도 있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그는 “젠더를 무조건 반대한다는 개념”에서, 나아가 “젠더는 ‘여러 가지 성으로 변환될 수 있다’는 개념을 꼬집고, 이에 적극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결국 그는 “우리가 막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이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남자’ 같은, 젠더가 메인이 된 정책적 결과물들”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전교조 특별결의문에 “양성평등 해체, 성 평등 주장”이 ‘적시됐음’도 밝혔다. 그는 “성 주류화 정책을 연구하는 여성단체들도 성 주류화의 개념을 정확히 모른다”며 “여기에 수 백 억 원의 국가 예산이 계속 투입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여 그는 “개념의 명확화 대신, 붕 뜬 이론으로 계속해서 사람들 인식 속에 젠더 이념을 불어 넣고 있다”고 유추했다. 끝으로 그는 생활 속에 실천 할 수 있는 부분을 전했다. 다음과 같다. ▲ 교과 과정 모니터링과 개정 요구 ▲학교 등 성교육전에 상세사항 공지의무/부모참관이나 학생 불참 요구 ▲생물학적 성별의 뚜렷하고 광범위한 차이를 지속적으로 가르치기 ▲양성평등 개념 해체하고 성평등 개념으로 진입한 도시와 나라의 폐해 알리기 ▲젠더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단체 등에 의견서 제출하기 등이다. 한편 토론에는 한효관 대표(건강한 사회를 위한 국민연대), 염안섭 원장(수동연세요양병원), 김혜윤 대표(건강과 가정을 위한 학부모 연합)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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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1
  • 콜게이트치약을 만든 콜게이트(Colgate)의 신앙과 삶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겸 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 ©기독일보DB   ◈미국 명문 콜게이트대학 미국 뉴욕 주의 중심부인 해밀턴(Hamilton)에는 콜게이트대학(Colgate University)이 있다. 바로 콜게이트의 이름을 딴 대학이다. 1819년 설립된 콜게이트 대학은 약 70년 동안 콜게이트가(家)의 지원으로 1890년 지금의 콜게이트 대학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이 학교는 뉴스위크지가 뽑은 25개의 신 아이비리그 대학에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지가 발표한 미국의 Liberal Arts College 16위에도 선정된 바 있는 미국의 명문대학이다. 이 콜케이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영국의 한 가난한 소년 오래 전, 미 뉴욕의 맨해튼으로 가려고 나룻배에 오른 18세의 한 영국 소년이 있었다. 아주 가난한 소년이었다. 참으로 비참하고 불행한 소년이었다. 유년 시절 그의 가정은 항상 중환자실 같았다. 아버지는 중풍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필자도 10살 때 가장인 부친께서 중풍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처럼 늘 안방의 내 곁에 누워있었기에 그 심정을 잘 이해한다.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늘 심한 기침이 멈추지를 않았다. 하지만 이 소년에게도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 '나는 꼭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부모님 병을 고쳐드려야 한다.' 소년은 어려운 처지에도 반드시 부자가 되어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소년이 18세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되는 의식을 마친 소년은 동네 어르신을 찾았다. ◈한 노인의 충고 "할아버지, 제가 이제 성인이 되었어요. 가난한 제가 이 험한 세상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요!" 노인이 소년에게 물었다. "소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야! 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지?" 청년이 된 이 소년이 대답했다. "할아버지,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일만큼은 제가 자신이 있습니다." 노인은 조용히 이 청년의 손을 잡고 격려와 충고를 해주었다. "윌리엄!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거라. 너는 꼭 성공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단다. 내가 하는 이 말을 꼭 들어야 한다. 네 사업의 주인은 예수님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네 어머니의 신실한 믿음이 윌리엄 너에게도 있다는 것을 내가 잘 안다. 훗날 사업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네 수입의 10분지 1은 반드시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그건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몫이란다." ◈미국으로의 밀항과 생명의 은인 청년은 이 할아버지의 충고를 가슴에 꼭 간직한다. 그리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떠나는 배에 몰래 오른다. 밀항이었다. 하지만 그만 승선자들을 검표하는 선원에게 그는 발각되고 만다. "어린 것이 감히 배 삯도 안내고 배에 올라타다니---" 소년이 애원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편찮으십니다. 저는 돈이 없답니다. 그러나 꼭 돈을 벌어야 해요. 뉴욕으로 보내주신다면 평생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마침 그 배의 선장은 신앙심이 아주 깊은 사람이었다. "그 아이를 용서해 주게! 내가 이 아이를 책임지겠네!" 선장은 불쌍한 이 소년을 자기의 양자(養子)로 삼았다. 선장의 도움으로 그는 무사히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장의 주선으로 미국에서 비누제조 회사에 취직까지 할 수 있었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지배인이 되었고, 얼마안가 곧 비누회사의 주인이 된다. 이 사람이 바로 오늘날 세계적 치약 상표가 된 콜게이트 사를 만든 윌리엄 콜게이트(william Colgate, 1783-1857)였다. ◈콜게이트와 십일조의 복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가 평생을 실천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의 어머니와 노인의 말을 평생 잊지 않고 수입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콜게이트는 '하나님과의 계산'이라는 장부를 만들어 수익금의 10분지 1을 장부에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어찌 보면 계산 빠른 사업가답지 않은 대책 없는 지독한 신앙의 결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익은 날로 늘어갔다. 회사는 점점 더 확장되어 치약과 화장품까지 생산하게 되었다. 이 가운데 그의 이름을 상표로 붙인 "콜케이트 치약"은 세계적 상표가 되었다. 처음 그는 수입의 10분지 1을 바쳤으나, 그 다음에는 10분의 5를 드렸다. 나중에는 아예 수익금 전액을 하나님 사업에 바치는 경우도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그의 사업은 오히려 날로 커졌다. 훗날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콜케이트는 이런 말을 즐겨했다고 알려져 있다. "나의 성공 비결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교육받아 온 십일조 생활에 있습니다. 수입의 10분의 1은 항상 구별하여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 두었고 나머지 10의 9를 가지고 사업에 투자했습니다. 한 때, 하루의 수입이 네 사람이 겨우 옮길만한 무게의 큰 금덩이만 했을 때에도 저는 십일조 바치기를 주저하거나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오른쪽 주머니에는 십일조, 왼쪽 주머니에는 이익금을 담는다"는 말은 콜게이트 사를 상징하는 표어가 되었다. 콜게이트 사에는 한때 십일조를 관리하는 직원만 30명이나 되었다고 전해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서 3장 10절) ◈콜게이트의 브랜드 가치 놀랍게도 오늘날 콜게이트 사는 치약과 세제류를 생산하는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되어 있다. 처음 유리병에 담아 판매(1873) 되던 치약을 튜브에 담아 뉴욕에서 시판(1896)한 것도 콜게이트였다. 이 제품은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고 콜게이트를 최고의 치약 회사로 만들었다.1990년대 중반 영국에서 세계 최고 기업들에 대한 인기를 조사한 적이 있다. 바로 회사 이름의 브랜드 가치(brand value) 조사였다. "콜게이트" 사의 세계적 브랜드 가치는 얼마나 되었을까? 향수 제조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프랑스의 샤넬이 52위, 세계적 스포츠용품사로 유명한 독일의 아디다스가 53위였다. 햄버거로 유명한 버거킹은 61위, 이탈리아의 유명한 의류회사 베네통의 이름의 가치는 75위였다. 그럼 콜게이트의 브랜드 가치는 얼마였을까? 놀라지 말라! 이들 세계적 유명 상표들보다도 더 위인 50위였다. 그리고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최고 재벌 그룹인 삼성의 브랜드 가치가 바로 뒤인 51위였다. 물론 21세기 들어 이들 브랜드 가치 순위는 일부 바뀌었다. 삼성은 더욱 뛰어난 브랜드 가치를 가진 세계적 회사가 되었다. 하지만 콜게이트 사의 명성 또한 자신들이 제조하는 치약 등의 방면에서 그 명성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1806년 회사가 설립된 이래 200여 년이 흐른 콜게이트 치약은 석박사급 연구원만 수천 명에 달하고, 연간 매출액이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그룹으로 우뚝 서 있다. 매일 전 세계 6억 이상의 인구가 이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으며 시장 조사 회사 칸타르 월드패널(Kantar Worldpanel)의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콜게이트는 전 가구 중 절반 이상이 구매 한 세계 유일의 브랜드였다. 전 세계 시장 동업종 점유율은 거의 50%로 점유율 2위 브랜드인 코카콜라의 점유율보다도 높았다. 콜게이트 브랜드의 저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콜게이트는 오늘날 콜게이트-팜올리브(Colgate-Palmolive)라는 이름의 미국 다국적 기업으로 가정, 의료, 개인위생 용품의 생산 및 배급 분야 글로벌 최고 기업의 명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 회사를 일궈낸 콜게이트의 경영철학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대로 행하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첫 번째 실천이 바로 "철저한 십일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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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1
  • "이슬람 선교...샘 솔로몬(Sam Solomon) & 닐로(Niilo Narhi) 초청, 지도자 포럼 및 집회"
    유럽의 무슬림 난민으로 인한 테러와 각종 범죄행위로 유럽국가들이 전례 없는 국가적 혼돈사항을 맞이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무슬림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러한 때에 한국 교회를 깨우고, 무슬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도할 전략 수립을 위해 샘 솔로몬 박사와 닐로 대표를 모시고 한국교회 주요 이슬람 대책 전문가들과 함께 포럼과 집회를 가졌다.   샘 솔로몬(Sam Solomon)은 무슬림으로 태어나고 성장하여 이슬람 교리와 법에 정통한 샤리아법학자였으나 신약성경을 읽고 회심한 후 투옥되어 사형당할 뻔했으며 이후 위험을 무릅쓰고 이슬람 교리와 샤리아법의 실체를 알리고 있다. 이 분야 세계최고 전문가 중 하나이며 이슬람 문제 관련 영국의회 컨설턴트이다. 저서로는 ''모스크 바로알기'', ''이슬람은 왜 이주하는가'', ''공통의 말씀'', ''알 야후드(Al-Yahud)'' 등이 있다.   닐로 네르히(Niilo Närhi)는 1955년 Keymedia로 시작하여 25개 언어 180여개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핀란드 방송 사역 단체의 대표이며 목사이자 선교사로 매년 4,000개 이상의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제공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 특히 전세계 무슬림들이 구원받고 양육하고 있다. 포럼과 집회를 통하여 참석자들은 한국교회를 깨우고 무슬림에게 효과적으로 전도할 수 있는 방송과 미디어사역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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