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4-0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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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향한 그의 열정, 가슴 속에 영원히”
    故 손인식 목사   2017년 3.1절 통곡기도대회를 섬긴 목회자들과 당시 북한 인권 탄압을 증언한 탈북간증자들이 함께 했다.   故 손인식 목사와 북한 인권과 자유화를 위해 힘써 온 ‘그날까지 선교연합’(UTD-KCC) 공동대표 박희민 목사, 송정명 목사, 김인식 목사와 고인과 함께 통곡기도회를 개최하며 북한 복음화를 위해 기도운동을 일으켜온 기쁨우리교회 김경진 목사가 추모사를 전하며 북한 선교를 향한 고인의 뜻을 되새겼다. 나성영락교회 원로 박희민 목사는 “故 손 목사님은 누구보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잃어버린 영혼과 상처 받은 심령들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섬긴 헌신적인 종이었다”며 “비록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그가 보여준 인격과 믿음의 삶, 사랑의 실천과 복음 증거, 선교를 위한 열정은 우리의 가슴속에 가장 값진 유산으로 영원히 간직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미주 평안교회 원로 송정명 목사는 “故 손 목사님은 탈북자들의 형이요, 오빠요, 대부였다”며 “수많은 탈북자들의 상처 받은 마음을 싸매주고 치유했으며, 1세기의 위대한 전도자 바울 사도의 고백 같이 선한 싸움 잘 싸우셨고, 믿음을 지켜 달려갈 길을 잘 마셨다”고 회고했다. 웨스트힐장로교회 원로 김인식 목사는 “‘남북이 하나 되어 민족과 세계를 섬기는 가운데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꿈’은 故 손 목사님의 꿈이자 남아있는 우리들의 꿈”이라며 “손인식 목사님을 추모하며 그의 꿈을 가슴에 새기고 달려가자”고 촉구했다. 기쁜우리교회 김경진 목사는 “故 손 목사님은 호탕한 웃음과 인자한 눈길, 부드러운 음성과 유머 넘치는 말씀과 따뜻한 가슴으로 힘들고 지친 후배 목회자들이 기대고 싶은 큰 나무 같은 분이셨다”며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북한 동포들과 민족의 염원이며 한민족 자유 평화통일을 위해 에스라처럼, 느헤미야처럼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자신을 불태우셨다”고 회고했다. 이하는 추모사 전문. 지성과 영성, 덕을 겸비한 신실한 목회자였다   그날까지 선교연합 공동대표, 나성영락교회 원로 박희민 목사   우리가 사랑하며 존경하던 손인식목사께서 소천하므로 먼저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를 환송하는 사모님과 자녀들, 유가족들. 그리고 베델교회 성도들과 고인을 사랑하던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주님의 위로하심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지만 죽음 앞에서 드릴 위로의 말이 별로 없습니다, 주님의 참된 위로와 영생과 부활의 소망 가운데서 승리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삶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습니다. 삶과 죽은은 우리 인생을 떠받드는 두 개의 기둥과 같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비법하고 위대하게 살려면 죽음을 바로 이해하고 어느 정도 죽음을 뛰어남 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죽음마저 조소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죽음이 복된 죽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삶이 참되고 진실하며, 사랑이 충만하고 베풀고 나누며 섬기는 삶이 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잇대진 삶이 되어야 합니다. 손 목사님은 베델교회가 어려운 시기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미주 최대의 한인교회의 하나로 성장시켰습니다 은퇴 후에도 UTD/KCC를 통해 탈북자를 섬기며, 북한동포의 자유와 해방 및 복음화 그리고 통일을 위한 통곡기도회 사역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 달려왔습니다.   제가 지난 30년 이상 사귀고 이민교회와 UTD/KCC를 함께 섬기면서 발견한 것은 손 목사님은 지성과 영성과 덕성을 겸비한 신실한 목회자이며, 무엇보다도 말씀과 기도의 종이며, 주님을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며 잃어버린 영혼과 상처 받은 심령들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섬긴 헌신적인 종이 있습니다. 그는 훌륭한 믿음과 섬김의 종으로서의 리더십을 본보여 주셨습니다. 그를 통해 놀라운 역사와 사역을 이루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그가 보여준 인격, 믿음의 삶, 사랑의 실천 복음 증거와 선교를 위한 열정은 우리의 가슴속에 가장 값진 유산으로 간직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사모님과 자녀들과 유가족에게 주님의 위로하심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15년 북한 구원을 위한 미주 투어 기도회를 소개하는 김인식, 송정명, 박희민, 손인식 목사(왼쪽부터)   목사님께서는 탈북자들의 형이요, 오빠요, 대부셨습니다   목사님 할 일이 그렇게 많은데 어찌 그리 빨리 가셨습니까? 그래서 지난 3월 26일 제 꿈에 찾아오셔서 그동안 감사했다고 웃으시면 인사를 하신 것인가요. 차라리 '그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고 있습니다. 목사님과 동역을 해온 기간이 20여 년 간이 되네요 그동안 보아왔던 목사님은 남을 칭찬 해주고 세워주는 일이 몸에 배어 있는 신실함과 겸손함이 겸비된 하나님의 종이 었습니다. 일에 대한 열정과 비전과 추진력이 대단한 행동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셨습니다. 오늘의 베델 한인교회가 이민 한인교계에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의 눈물과 땀과 몸부림의 열매였다'는 사실은 수많은 동역자들이 수긍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고 찢기면서 짐승 같이 살아가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그 뜨거운 열정은 언제부터 가지셨습니까? 목사님은 탈북자들의 형이요, 오빠요, 대부였습니다. 수많은 탈북자들의 상처받은 마음들을 싸매주고 몸부림을 쳐왔기 때문에 지금 수많은 탈북자들이 목사님의 소식을 듣고 오열하고 있을 것입니다. 북한 동포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 통곡하며 기도 해왔던 일이 얼마나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미주 땅 구석구석을 누비고 한국땅 방방곡곡을 찾아다니고 멀리는 구라파까지 찾아가서 잠들어 있던 목회자들을 흔들어 깨우고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통곡 기도회를 이끌어 나가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 차례 동행했던 기억이 나기 때문에 가슴이 쏴 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LA 지역, 오렌지 카운티 지역, 얼바인지역, 워싱턴 DC ,한국의 여러 지역 멀리는 동독 땅 라이프치히 지방까지 같이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많은 통곡 기도회 가운데 독일 라이프 친히 에서 열렸던 그 기도회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12년도 1월 31일부터 4-5일간 계속된 기도회 같습니다 그 당시 구라파 지역에는 영하 16-17도를 오르내리는 한파가 계속되고 있어 400여 명이 넘는 동사자가 나왔다고 매스컴이 대서특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니콜라이 교회가 동서독 간의 통일을 이루어낸 기도의 요람이었던 것을 안 이후에 목사님이 먼저 답사를 하고 교섭을 해서 기도회를 열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사실을 뒤에 알았습니다 구라파 지역과 한국 그리고 미주 지역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들 50여 명과 베델 교회 교인들 20여 명이 함께 참석을 했습니다. 새벽 5시에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모인 새벽 기도회는 미끄러운 얼음판을 조심조심 걸어가서 모였습니다. 냉기가 감도는 본당에서 뜨겁게 기도 했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했던 것도 지금 기억됩니다. 아침 식사를 끝낸 일행들은 손에 손에 “Freedom for North Korea”라는 팻말을 들고 구호를 위치면서 시가행진도 했습니다. 라이프치히 에 있는 북한 대사관 앞에 가서도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도 했습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자는 말에 얼어붙어 있는 아스팔트 길에 응거 주춤 무릎을 꿇고 30여 분간 정치범 수용소를 철폐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잎술이 덜덜 떨리는데도 목사님은 성명서를 큰 소리로 다 읽어 내려갔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당시 독일 경찰들이 우리 시위대를 앞뒤에서 호위해 준 일입니다. 전 이런 현장을 오랫동안 기억해두고 싶어 제가 쓴 책에 기록을 해 두었습니다. 이런 귀한 일들을 남겨 두고 목사님이 먼저 가시면 누가 이런 일들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지난 10월 31일 목사님이 예기치 않는 사고를 당하신 후에 목사님이 계시던 병원을 몇 차례 찾아봤는데 그때마다 눈을 감고 계시고 대화가 되지 않아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2월 18일에 찾아뵈면서 목사님의 이름을 몇 차례 불렀더니 실낱같은 눈을 뜨시길래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랐습니다 얼른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지금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제 가슴에 오랫동안 남겨 두고 싶은 좋은 친구입니다 그래서 미주 복음 방송국에서 목사님이 진행하고 있던 칼럼 방송도 제가 대신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지금 까지 1세기의 위대한 전도자 바울 사도의 고백 같이 선한 싸움 잘 싸우셨습니다. 달려갈 길도 잘 달려가셨습니다. 믿음도 잘 지켰습니다. 이미 우리 주님이 일어나셔서 “손 목사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말씀하시면서 품에 안고 등을 두들겨주고 계실 것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면류관도 받으셨죠? 아쉬운 것이 있다면 목사님을 마지막 보내는 천국 환송 예배 사간에 수많은 동역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자리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통해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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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4-02
  • 질문 없는 교회
      안지영 목사   내가 고등학교 시절 처음 교회에 출석하면서부터 끊임없이 밀려오는 것은 성경에 관한 의문이었다. 처음 교회에 출석하면서 성경을 읽게 되었는데, 어찌 성경 내용이 다 이해가 될 것인가? 성경의 어느 부분을 읽어도 모든 게 당연한 것이었고,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질문 대상이었다. 그래서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성경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하거나 가르치고 나면, 설교나 강의에서 생긴 의문점을 가지고 그분들을 찾아가곤 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태도를 처음에는 어느 정도 받아주는 듯했으나, 점점 귀찮아하고, 나중에는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만 했다.   성경의 내용에 의문이 생긴 것을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무조건 믿는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만약에 그 궁금증이나 의문을 가슴에 묻어둔다면, 그 믿음이 과연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믿음이 될 것인가? 나는 그 시절에 교회에서 듣는 내용에 대해 생기는 질문을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에게 얘기했다가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하자, 교회의 장로님이나 집사님들, 그리고 대학생 형님 누님들께 물었지만, 그분들도 아무도 답을 해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분들도 내가 가졌던 의문점을 궁금해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예 '궁금증 모드'를 가질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이라 추측해 본다. 교회에서는 의문점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좋은 믿음'이라고 가르치며 암시한다. 현재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새가족반에서 그동안 익숙하게 알고 있던 성경 본문을 다룬다. 그런데 이 본문을 다루면서 제일 먼저 그분들이 맞닥뜨리는 것이 바로 ‘질문하기’이다. 그동안 당연시 여겼던 내용인데, 그 익숙한 내용에서 질문을 찾으라고 하니 적이 당황하는 모습이 태반이다. 그러면, 내가 그 본문에 해당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어떤 이들은 이 내용에서 저런 질문이 나오는 것에 신기해하고, 어떤 이들은, 사실 자기도 그런 의문을 품은 적이 있는데, 분위기가 그런 질문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질문하면, 자기가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을까 봐 적잖이 망설이다 포기하였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목회자가 설교 시간이나 성경 공부 시간에 가르치는 것을 무조건 ‘아멘’하고 받아야 하는 분위기가, 그 설교나 성경 공부 중에 생긴 의문점을 해결하려는 교인들의 시도를 막아버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게 습관이 되면, 더 이상 질문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린다. 목회자가 무엇을 얘기해도 무조건 ‘아멘’이다. 설교 시간에 “십일조를 안내면 암에 걸린다”고 해도 무조건 ‘아멘’이다. 그렇게 큰 교회에 적어도 지성인들이 어느 정도 있을 텐데, 이런 설교에 대하여 ‘왜 그렇지?’라고 의문점을 가진 지성인들은 없는가 보다. 만약에 그 설교 내용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면, 머리로 판단하는 인본주의적인 자로 매도될까 봐 두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태도를 가진 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이렇게 질문 없는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나중에 자식이 생기면, 어릴 때부터 성경에 대해 던지는 아이들의 질문에 곤혹스러워한다. 그리고는 그런 질문은 아빠 엄마도 잘 모르니, 교회 목회자들에게 물어보라고 넘긴다. 그런데 목회자에게 넘겨진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겪었던 경험을 그대로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어린 나이 때부터 ‘의심하지 말고 믿는 것이 참 신앙’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고 만다. 그래서 교회에서 정해놓은 틀 안에서 아이들이 자라면, 신앙 있는 청년이 되는 줄로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더 넓은 세상에 놓이게 되고 날카로운 도전을 받을 때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위축되고 마는 경우를 너무나 흔하게 목격한다. 이런 자녀들을 보고 부모들은 당혹해한다. 왜 이렇게 되는 걸까? 아이들은 의문을 가지면 안 된다고 배웠고, 그 틀 안에서 순응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신앙을 유지하게 된 자들은 다시 부모가 되었을 때, 당연히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부담스럽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는 신앙교육을 교회에 전적으로 떠맡긴다. 그것은, 자신들의 경험에 의하면, 성경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무척 많은데, 그 의문점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조건 믿으라고 하니, 믿는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그러니 어찌 아이들의 질문에 당혹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아이들에게도 그냥 “그냥 믿어. 의심하면 안 돼. 믿음 떨어져. 구원 떨어져!”라고 할 것인가? 반면에, 자신이 그 의문점들을 고민한 적이 있고, 그것을 풀어보았던 경험을 가진 부모는 아이의 질문에 곤혹스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질문을 흥미롭게 여기고, 자신이 나름대로 발견한 것들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대물림의 한 부분이다. 혹시, 그 질문이 다 풀리지는 않았을지라도, 자신이 탐구했던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는 있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 아이들은 부모를 이어 그 질문을 위한 탐구를 이어갈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나누는 과정을 통해 성경을 좀 더 친숙하게 느낄 것이기에 나름의 탐구가 가능해질 것이다. 다음은, 스탠포드대학교의 교육대학원에서 최고기술책임자와 부학장으로 있는 폴 킴의 대담 일부를 녹취한 내용이다. “질문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가 무서운 사회예요. 쉬운 걸 찾는다. 편한 것만 찾는다. 생각하기 싫다. 어떤 사회적인 현상이 일어났을 때, 뭘 그걸 질문을 해? 그냥 그런가보다 그러면 되지. 질문하지 않는 사회에는 변화가 없고, 배움도 없고, 혁명도 없어요. 우리나라 최근에 큰 질문을 했잖아요. (촛불집회에서) ‘이게 나라냐?’ 이런 질문을 했기 때문에 변화가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게 나라가 원래 그런 거 아니야? 원래 그랬으니까 그렇지.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합니다.) 부모가 그렇게 얘기하면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사회가 될수록 배움이 없고, 변화도 없고 혁신도 없는 거예요. 그런 것이 없을 때 위험한 사회가 된다.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요.” 폴 킴의 말을 근거로 현재 교회 현장을 진단해 보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들썩거리고 있다. 공포감이 밀려오자 인간의 숨어있던 속성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 교회는 이 바이러스의 강한 전염성 때문에 공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 그러자 이에 대한 반응이 다양하게 튀어나온다. 예배당에서 예배 의식을 거행하지 않으면 마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으로 여겨서, 죽으면 죽겠다는 식으로 예배당으로 모이는 교회가 있다. 예배를 자제해 달라는 정부의 권고를 두고 교회를 핍박한다는 식으로 저항한다. 그런데 그런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오게 되어, 그들이 교회당 밖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옮기게 되는 형국이 벌어진다. 자신은 순교자가 되겠는 지는 모르지만, 자기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고려하지 않는가 보다. 이렇게 ‘묻지 마 신앙’에 전도된 자들의 행태를 보면 신천지 집단과 무엇이 다른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목회자의 말에 거역하면 하나님의 저주가 내릴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거역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들의 가르침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해 본 적이 없기에, 그 지시를 거부하는 것 또한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질문을 용납하지 않는 교회가 있다면, 바로 그 교회는 위험한 교회가 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그 교회의 구성원들이 무너져 내릴 것이고, 그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가 타격을 입을 것이니 말이다.   이번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를 계기로 지금까지 행하여 왔던 ‘예배’에 대한 질문이 수없이 터져 나오게 될 것이다. 더불어 그동안 수면 밑으로 눌러 두었던 신앙에 대한 여러 질문이 수면 위로 마구 떠 오를 것이다. 어쩌면 목회자는 성도들이 경험하고 있는 이러한 예상치 못한 상황을 통해 생겨난 질문에 대해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지 고민을 해야 할 때다. 만약에 이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믿는 것이 바른 신앙인의 태도라는 식으로 암암리에 누른다면, 그 공동체의 체질은 허약해질 것이다.   질문을 가지고 오는 교인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 질문이 참 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이라면, 솔직하게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함께 그 질문을 풀어갈 길을 연구하기를 제안한다고 해서 교인들이 목회자의 권위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태도를 보고 목회자를 더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 던져지는 피할 수 없는 도전이 되고 있다.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껍질이 아니라 그 속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을 위해, 교회는 질문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어떤 질문이라도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서, 그리고 진리를 찾아가기 위해서 던지는 질문이라면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무시할 질문은 없다.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한 질문이지 하나님을 거부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기 위하여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는가? 어떠한 질문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진지한 질문, 솔직한 질문을 왜 하나님이 싫어하시겠는가? 궁금증을 가지고 나오는 우리를 왜 귀찮아하시겠는가? 기탄없이 질문하시라. 진지하게 탐구하시라. 아는 것만큼 우리는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안지영 목사(달라스 나눔교회, 미드웨스턴 실천신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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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04-02
  • 코로나 확진 후 퇴원 목회자 “예수는 나의 치료자”
    마크 매클러그 목사. ©트위터 캡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했다 치료를 받고 퇴원한 목회자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유했다고 지난 30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크리스천투데이가 보도했다. 북아일랜드 지역의 다운 카운티에 거주하는 마크 맥클러그 목사는 일주일간 집중 치료를 받고 난 후 퇴원하면서 의료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맥클러그 목사는 자신의 SNS에 병원을 떠나면서 "기도해주신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생명을 구해주신 의료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했다. 예수님의 나의 치료자이시다"라고 글을 올렸다. 그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기도 요청을 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라"고 호소했다. 그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 이웃에게 전화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현명하고 친절하라. NHS를 보호하자"고 글을 올렸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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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4-01
  • “코로나19... 예배 방식의 장기적인 변화 대비해야”
      NAE 월터 김 대표. ©Robby Dob Productions, Inc.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교회가 장기적인 예배방식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주장은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간) 전미복음주의협회(NAE) 월터 김 대표가 주최한 '코로나19 교회 온라인 서밋'(COVID-19 Church Online Summit) 패널 토론에서 언급됐다고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가 보도했다. 다양한 교단의 임원들이 참석한 이 모임에서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총감독 더그 클레이(Doug Clay) 목사는 "최근 교단의 정신건강위원회가 코로나19 확산 기간 동안 목회자들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며 "현재 지도자들 사이에서 유포되고 있는 9가지 모범 사례 목록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목회자들은 또한 의사 결정과 지도력을 발휘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신뢰할만한 동료를 찾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뉴스 시청을 줄이거나 안정된 신체적, 정서적 리듬을 찾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보고 휴식을 취하고 현실적인 기대를 갖고, 개인적 예배를 드리고, 통제 할 수 있는 사항만 통제하고 통제할 수 없는 사항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조언했다. 창조적인 방법으로 희망을 찾으라고 덧붙였다.   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의 사무총장인 콜린 왓슨(Colin Watson) 목사는 "목회자들이 전염병에 대한 빠른 해결책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장기적인 상황에 익숙해져야 한다. 단지 몇 주 안에 고쳐질 단기적인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일부 관행과 리듬을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왓슨 목사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며 "우리는 사회적 친밀함을 원한다. 교회가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전화나 인터넷 사용 여부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도자들은 예배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수님을 만나고 따르도록 돕는 교회 운동인 '컨버지'(Converge)의 스콧 리드아웃(Scott Ridout) 대표는 "온라인 모임을 촉진하고 목회자들의 필요에 따라 가장 적합하게 구축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불확실한 시기에 사람들은 명확성과 민첩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또한 기도제목에 대해서도 공유했다. 왓슨 목사는 "지금 우리의 교회와 목회자, 사역자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많은 기도가 있었다. 이 시기에 분명하게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원한다"고 기도했다. 그러면서 "전염병을 치료해 달라고 기도해왔다. 이 기간 동안 교회가 연합되기를 기도하며 특히 이 시점에서 위대한 증인이 되기를 원한다"며 "공동체 전체를 위한 기도 뿐만 아니라 특히 지금 우리 민족을 위해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도록 기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드아웃 대표는 "우리의 포트폴리오의 가치는 떨어지지만 기도의 가치는 높아지고 있다"며 "우리가 의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며 시편 146편과 46편을 읽으며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사람들은 희망을 찾고 있다. 그들은 TV에서 절망을 얻지만 여전히 희망을 찾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그것을 찾을 것"이라며 "저의 기도제목은 깨어 있는 것이다. 이 기간이 기도의 '팬데믹'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이것(코로나19)을 그 분에게로 이끄는데 사용하시길 기도할 것"이라고 전했다고 CP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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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31
  • 코로나가 가져다준 선물
      송길원 목사(청란교회·하이패밀리 대표)   나는 배웠다. 모든 시간은 정지됐다. 일상이 사라졌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만나도 경계부터 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마주 앉아 팥빙수를 겁 없이 떠먹던 날이 그립다. 가슴을 끌어안고 우정을 나누던 날이 또다시 올 수 있을까. 비로소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한다. 속히 일상의 기적과 함께 기적의 주인공으로 사는 일상을 달라고.나는 배웠다. 마스크를 써 본 뒤에야 지난날 내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고 침묵을 배웠다. 너무나 쉽게 말했다. 너무 쉽게 비판하고 너무 쉽게 조언했다.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경박했다. 나는 배웠다. ‘살아있는 침묵’을 스스로 가지지 못한 사람은 몰락을 통해서만 ‘죽음으로 침묵’하게 된다는 사실을.나는 배웠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었다. 성직자도 아니었다. 소식을 듣자 대구로 달려간 신혼 1년 차 간호(천)사가 가슴을 울렸다. 잠들 곳이 없어 장례식장에서 잠든다는 겁 없는 간호(천)사들의 이야기에 한없이 부끄러웠다. 따뜻한 더치커피를 캔에 담아 전달하는 손길들을 보며 살맛 나는 세상을 느꼈다. 이마에 깊이 팬 고글 자국 위에 밴드를 붙이며 싱긋 웃는 웃음이 희망 백신이었다.나는 배웠다. 죽음이 영원히 3인칭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언젠가 내게도 닥칠 수 있는, 그래서 언제나 준비돼 있어야만 하는 것이 죽음인 것을 배웠다. 인간이 쌓은 1000만의 도성도 바벨탑이 무너지듯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미생물의 침투에 너무도 쉽게 쓰러질 수 있는 존재인 것을 배웠다. 그런데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악다구니를 퍼붓고 살았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를 배웠다.나는 배웠다. 인생의 허들경기에서 장애물은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라’고 있는 것임을.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재정의하고 살아남아 영웅이 될지,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될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닥친 불행과 시련을 운명이 아닌 삶의 한 조각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때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었다.나는 배웠다. 카뮈의 ‘페스트’에 등장하는 북아프리카의 항구 오랑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최대 피해 지역인 대구는 ‘공황도 폭동도 혐오도 없었다. 침착함과 고요함이 버티고 있었다.’(미국 ABC 방송 이언 기자) 일본 대지진 때 일어났던 사재기도 없었다. 오히려 ‘착한 건물주 운동’으로 서로를 감싸 안았다. 외출 자제로 인간 방파제가 돼 대한민국을 지켰다. ‘배려와 존중’으로 빛났다.나는 배웠다. 어떤 기생충보다 무섭고 무서운 기생충은 ‘대충’이라는 것을. 모든 것이 대충이었다. 손 씻기도 대충, 사회적 거리 유지도 대충, 생각도 대충…. 이제는 나 스스로 면역주치의가 돼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환경 문제나 생태계의 파괴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또다시 찾아올 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환경 지킴이가 돼야 한다. 나는 확실히 배웠다. 공생과 공존이 상생(相生)의 길이라는 것을.나는 배웠다. 가장 큰 바이러스는 사스도 코로나도 아닌 내 마음을 늙고 병들게 하는 절망의 바이러스라는 것을. 나는 배워야 한다. 아파도 웃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아니 그게 진정한 인간 승리임을. 나는 기도한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안코라 임파로.”(Ancora imparo)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이탈리어다. 세기의 천재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비롯해 수많은 명작을 남긴다. 많은 세월이 흐른다. 인생의 황혼 녘인 87세 때 자신의 스케치북 한쪽에 남긴 글이다. 내 나이 60을 넘겼다. 그래, 우리는 모두 살아야 한다. 잘 살기 위해 배워야 한다.“안코라 임파로!”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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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31
  • 4월 총선, 유권자가 세상 바꿀 수 있나
    이효상 원장   어느 시인이 말했듯 4월은 잔인한 달인가. 우한코로나 사태로 국가적 재난 가운데 빠져 있다. 국가적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경제는 기력을 잃고 바닥을 친지 오래고 맨 땅에 헤딩하고 있으며, 안보는 불안, 외교는 왕따이다. 거기에 초기 방역실패와 이어진 마스크 대란을 보면 고민된다. 국민 대다수가 마스크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해 ‘약국순례'를 하며 거리를 헤매고 있다. 대구의 눈물과 부부가 코로나에 걸려 남편이 사망했지만 장례를 치르지 못한 아내의 참담함, 마스크 하나도 제대로 살 수 없는 나라, 이런 정치리더십으로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 국민들은 일상이 뒤틀리고 경제적 피해가 불어나는 고통의 터널에 갇혔다.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도 큰 고통이다. 집권당의 장기집권을 위한 투쟁의 3류 정치, ‘정의’니 ‘공정’이니 ‘자유’니 하는 말은 이미 오래전 언어의 유희가 되었다. 21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고민이 많다. 배신과 협잡의 정치판을 보며 꼭 찍어야 하는 정당도, 꼭 찍고 싶은 후보자도 찾기가 쉽지 않아서이다. 4월 총선은 21대 입법부를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바꾸는 중요한 선거다. 한 표로 4년 뒤 국가의 미래가 새롭게 바뀔 수도 있고 반대로 뒤쳐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번 총선의 선택기준은 분명 ‘코로나리더십’으로, 재난에 어떻게 대처 했는가 하는 것과 반드시 물갈이나 불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이 무서운 줄 모르는 정치에 찌든 직업적 정치인들을 가능하다면 퇴출시켜야 한다. 코메디같은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 선거 때면 나타나 명함 돌리는 선거꾼이나 말 잘하는 아나운서, 목소리 큰 사람 뽑는 선거가 아니다. 총선은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시민의 대변자를 뽑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정치꾼’이 아닌 주민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으로 바꿔야 한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온 몸을 던지며 대구로 달려가 의료봉사를 한 어느 정치인을 보며 감동한 바 있다. 그와 같이 생명을 살리려 한 몸을 던져 헌신한 의료진의 봉사와 보건당국의 역할을 기억한다. 그들은 국민의 영웅이었다. 그들의 헌신으로 겨우 버티는 국가가 되었다. 이와 반대로 기득권을 누리며 권력의 맛에 찌든 정치인들의 탁상공론도 지켜보았다. 구태 정치인들의 직권남용, 국가 재난앞에서 편가르기 패싸움정치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어떤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지 일깨워 주었다.   ‘코로나민심’앞에서 정당의 정책도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투표 전 후보자의 인물, 공약, 삶의 과정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한 표를 행사 할 작정이지만 가상현실 같은 상황이다. 매번 선거에서 공약이나 정책을 보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것 같고 지역이 천지가 개벽할 것 같아서 귀가 번쩍이고 마음이 설레이지만 선거가 끝나면 금새 아무 일 없었듯이 빈 공(空)약이 될 것이다. 각 정당의 공천은 그들만의 리그인가. 공천관리위원회가 후보자를 최소한 걸러냈다고 하지만, 지역유권자와의 소통이나 공감없는 공천이다. 여론조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최종선택은 시민들의 몫이다. 전과 병역, 사생활, 막말 등도 검증하고 선택해야겠지만 코로나사태에서 보여준 리더십과 경제위극 극복 대안제시 능력을 더 높이 주목하고 싶다. 후보자들이 마스크 사기 위하여 줄서 본적이 있는가.   한국교회나 ‘한국기독교유권자연합’이 공명선거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지도하는 제 기능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특정 정당 지지는 곤란하다. 훌륭한 인물이 선출되길 바라는 기도, 기독교적 세계관과 관점으로 정치보기,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 설교, 또 하나님보다 정치인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마음 지키기, 가짜뉴스 생산하거나 유포하는 행위 자제, 선거결과에 대한 승복과 후보자나 당선인의 공약 실천 유무 파악하기 등은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비례후보자들도 주목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언론이나 신앙의 자유까지 제한되는 상황에서, ‘예배중단’이나 ‘교회폐쇄’를 주장하는 사회주의자 같은 오만한 후보나 정치권에 줄서기 보다는 해당 후보의 정책과 가치관을 검증하고 선택하도록 지역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이 쏟아내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 찬성, 반대하는 발언이 선거에선 경계의 대상이다. "우파 지도자가 당선돼야"라고 설교한 목사 12명이 고발당한 바 있다.   매주 칼럼애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메일이나 SNS 문자로, 온 오프라인 신문 지면에서 칼럼을 읽는 이가 많을 땐 25만명을 넘어서다보니 반응이 즉각적이다. 더 신중해지고 어느 교수처럼 ‘민주당 빼고’식의 정치적 칼럼을 쓰지는 못한다. 사실 4월 투표도 잔인하다. 전염병의 한복판에서 치러진다. 전혀 소통없는 선거, 후보가 누구인지, 투표소를 가야할지 줄서기도 부담스럽고 투표소 안에 들어가기도 꺼림직 하다. 투표율이 폭락할 가능성이 높다. 투표율이 낮으면 표의 왜곡현상이 생긴다.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대면접촉이 없는 선거를 치루니 선거가 사이버 게임같이 가상현실이 된다. 오랜 정치생활을 하였거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으면 당연히 당선된다고 착각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투표독려로 투표율을 높여야겠지만, 코로나 위험으로부터 유권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투표소의 방역이나 소독과 더불어 현장 투표자 전원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거나, 투표소를 최대한 늘려 분산시키는 방법도 고려돼야 한다. 가능하다면 교회가 주민들의 투표소로 제공되었으면 한다. 코로나로 느끼는 지금의 참담한 현실과 공포를 잊지 말자.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된 교회, 교회가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면 유권자로서 바꿔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혁명’이 아니라 ‘투표’로 바꾸는 시스템이다. 한 표가 얼마나 엄중한지, 그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투표’뿐이다. 사실 단 한 표 차이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뀐 사례는 많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결정짓는 것은 ‘투표참여’가 답이다. 지금 이대론 더 이상 안 된다. (사회구조적 모순 앞에) 침묵하지 말고 외쳐라. 분노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참여하라. 그 어느 때 보다 한 표가 절실하고 중요하다. 표류하는 자유대한민국의 미래를 구할 것인가. 코로나 위기 가운데서도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임해야 하는 이유다. 한 표가 미래를 결정짓고 세상을 바꾼다. 이효상 목사(칼럼니스트, 한국교회건강연구원 원장, 한국기독교유권자연합 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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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31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북한 향한 그의 열정, 가슴 속에 영원히”
    故 손인식 목사   2017년 3.1절 통곡기도대회를 섬긴 목회자들과 당시 북한 인권 탄압을 증언한 탈북간증자들이 함께 했다.   故 손인식 목사와 북한 인권과 자유화를 위해 힘써 온 ‘그날까지 선교연합’(UTD-KCC) 공동대표 박희민 목사, 송정명 목사, 김인식 목사와 고인과 함께 통곡기도회를 개최하며 북한 복음화를 위해 기도운동을 일으켜온 기쁨우리교회 김경진 목사가 추모사를 전하며 북한 선교를 향한 고인의 뜻을 되새겼다. 나성영락교회 원로 박희민 목사는 “故 손 목사님은 누구보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잃어버린 영혼과 상처 받은 심령들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섬긴 헌신적인 종이었다”며 “비록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그가 보여준 인격과 믿음의 삶, 사랑의 실천과 복음 증거, 선교를 위한 열정은 우리의 가슴속에 가장 값진 유산으로 영원히 간직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미주 평안교회 원로 송정명 목사는 “故 손 목사님은 탈북자들의 형이요, 오빠요, 대부였다”며 “수많은 탈북자들의 상처 받은 마음을 싸매주고 치유했으며, 1세기의 위대한 전도자 바울 사도의 고백 같이 선한 싸움 잘 싸우셨고, 믿음을 지켜 달려갈 길을 잘 마셨다”고 회고했다. 웨스트힐장로교회 원로 김인식 목사는 “‘남북이 하나 되어 민족과 세계를 섬기는 가운데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꿈’은 故 손 목사님의 꿈이자 남아있는 우리들의 꿈”이라며 “손인식 목사님을 추모하며 그의 꿈을 가슴에 새기고 달려가자”고 촉구했다. 기쁜우리교회 김경진 목사는 “故 손 목사님은 호탕한 웃음과 인자한 눈길, 부드러운 음성과 유머 넘치는 말씀과 따뜻한 가슴으로 힘들고 지친 후배 목회자들이 기대고 싶은 큰 나무 같은 분이셨다”며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북한 동포들과 민족의 염원이며 한민족 자유 평화통일을 위해 에스라처럼, 느헤미야처럼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자신을 불태우셨다”고 회고했다. 이하는 추모사 전문. 지성과 영성, 덕을 겸비한 신실한 목회자였다   그날까지 선교연합 공동대표, 나성영락교회 원로 박희민 목사   우리가 사랑하며 존경하던 손인식목사께서 소천하므로 먼저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를 환송하는 사모님과 자녀들, 유가족들. 그리고 베델교회 성도들과 고인을 사랑하던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주님의 위로하심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지만 죽음 앞에서 드릴 위로의 말이 별로 없습니다, 주님의 참된 위로와 영생과 부활의 소망 가운데서 승리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삶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습니다. 삶과 죽은은 우리 인생을 떠받드는 두 개의 기둥과 같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비법하고 위대하게 살려면 죽음을 바로 이해하고 어느 정도 죽음을 뛰어남 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죽음마저 조소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죽음이 복된 죽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삶이 참되고 진실하며, 사랑이 충만하고 베풀고 나누며 섬기는 삶이 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잇대진 삶이 되어야 합니다. 손 목사님은 베델교회가 어려운 시기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미주 최대의 한인교회의 하나로 성장시켰습니다 은퇴 후에도 UTD/KCC를 통해 탈북자를 섬기며, 북한동포의 자유와 해방 및 복음화 그리고 통일을 위한 통곡기도회 사역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 달려왔습니다.   제가 지난 30년 이상 사귀고 이민교회와 UTD/KCC를 함께 섬기면서 발견한 것은 손 목사님은 지성과 영성과 덕성을 겸비한 신실한 목회자이며, 무엇보다도 말씀과 기도의 종이며, 주님을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며 잃어버린 영혼과 상처 받은 심령들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섬긴 헌신적인 종이 있습니다. 그는 훌륭한 믿음과 섬김의 종으로서의 리더십을 본보여 주셨습니다. 그를 통해 놀라운 역사와 사역을 이루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그가 보여준 인격, 믿음의 삶, 사랑의 실천 복음 증거와 선교를 위한 열정은 우리의 가슴속에 가장 값진 유산으로 간직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사모님과 자녀들과 유가족에게 주님의 위로하심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15년 북한 구원을 위한 미주 투어 기도회를 소개하는 김인식, 송정명, 박희민, 손인식 목사(왼쪽부터)   목사님께서는 탈북자들의 형이요, 오빠요, 대부셨습니다   목사님 할 일이 그렇게 많은데 어찌 그리 빨리 가셨습니까? 그래서 지난 3월 26일 제 꿈에 찾아오셔서 그동안 감사했다고 웃으시면 인사를 하신 것인가요. 차라리 '그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고 있습니다. 목사님과 동역을 해온 기간이 20여 년 간이 되네요 그동안 보아왔던 목사님은 남을 칭찬 해주고 세워주는 일이 몸에 배어 있는 신실함과 겸손함이 겸비된 하나님의 종이 었습니다. 일에 대한 열정과 비전과 추진력이 대단한 행동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셨습니다. 오늘의 베델 한인교회가 이민 한인교계에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의 눈물과 땀과 몸부림의 열매였다'는 사실은 수많은 동역자들이 수긍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고 찢기면서 짐승 같이 살아가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그 뜨거운 열정은 언제부터 가지셨습니까? 목사님은 탈북자들의 형이요, 오빠요, 대부였습니다. 수많은 탈북자들의 상처받은 마음들을 싸매주고 몸부림을 쳐왔기 때문에 지금 수많은 탈북자들이 목사님의 소식을 듣고 오열하고 있을 것입니다. 북한 동포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 통곡하며 기도 해왔던 일이 얼마나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미주 땅 구석구석을 누비고 한국땅 방방곡곡을 찾아다니고 멀리는 구라파까지 찾아가서 잠들어 있던 목회자들을 흔들어 깨우고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통곡 기도회를 이끌어 나가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 차례 동행했던 기억이 나기 때문에 가슴이 쏴 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LA 지역, 오렌지 카운티 지역, 얼바인지역, 워싱턴 DC ,한국의 여러 지역 멀리는 동독 땅 라이프치히 지방까지 같이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많은 통곡 기도회 가운데 독일 라이프 친히 에서 열렸던 그 기도회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12년도 1월 31일부터 4-5일간 계속된 기도회 같습니다 그 당시 구라파 지역에는 영하 16-17도를 오르내리는 한파가 계속되고 있어 400여 명이 넘는 동사자가 나왔다고 매스컴이 대서특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니콜라이 교회가 동서독 간의 통일을 이루어낸 기도의 요람이었던 것을 안 이후에 목사님이 먼저 답사를 하고 교섭을 해서 기도회를 열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사실을 뒤에 알았습니다 구라파 지역과 한국 그리고 미주 지역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들 50여 명과 베델 교회 교인들 20여 명이 함께 참석을 했습니다. 새벽 5시에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모인 새벽 기도회는 미끄러운 얼음판을 조심조심 걸어가서 모였습니다. 냉기가 감도는 본당에서 뜨겁게 기도 했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했던 것도 지금 기억됩니다. 아침 식사를 끝낸 일행들은 손에 손에 “Freedom for North Korea”라는 팻말을 들고 구호를 위치면서 시가행진도 했습니다. 라이프치히 에 있는 북한 대사관 앞에 가서도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도 했습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자는 말에 얼어붙어 있는 아스팔트 길에 응거 주춤 무릎을 꿇고 30여 분간 정치범 수용소를 철폐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잎술이 덜덜 떨리는데도 목사님은 성명서를 큰 소리로 다 읽어 내려갔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당시 독일 경찰들이 우리 시위대를 앞뒤에서 호위해 준 일입니다. 전 이런 현장을 오랫동안 기억해두고 싶어 제가 쓴 책에 기록을 해 두었습니다. 이런 귀한 일들을 남겨 두고 목사님이 먼저 가시면 누가 이런 일들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지난 10월 31일 목사님이 예기치 않는 사고를 당하신 후에 목사님이 계시던 병원을 몇 차례 찾아봤는데 그때마다 눈을 감고 계시고 대화가 되지 않아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2월 18일에 찾아뵈면서 목사님의 이름을 몇 차례 불렀더니 실낱같은 눈을 뜨시길래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랐습니다 얼른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지금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제 가슴에 오랫동안 남겨 두고 싶은 좋은 친구입니다 그래서 미주 복음 방송국에서 목사님이 진행하고 있던 칼럼 방송도 제가 대신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지금 까지 1세기의 위대한 전도자 바울 사도의 고백 같이 선한 싸움 잘 싸우셨습니다. 달려갈 길도 잘 달려가셨습니다. 믿음도 잘 지켰습니다. 이미 우리 주님이 일어나셔서 “손 목사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말씀하시면서 품에 안고 등을 두들겨주고 계실 것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면류관도 받으셨죠? 아쉬운 것이 있다면 목사님을 마지막 보내는 천국 환송 예배 사간에 수많은 동역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자리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통해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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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2
  • 질문 없는 교회
      안지영 목사   내가 고등학교 시절 처음 교회에 출석하면서부터 끊임없이 밀려오는 것은 성경에 관한 의문이었다. 처음 교회에 출석하면서 성경을 읽게 되었는데, 어찌 성경 내용이 다 이해가 될 것인가? 성경의 어느 부분을 읽어도 모든 게 당연한 것이었고,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질문 대상이었다. 그래서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성경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하거나 가르치고 나면, 설교나 강의에서 생긴 의문점을 가지고 그분들을 찾아가곤 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태도를 처음에는 어느 정도 받아주는 듯했으나, 점점 귀찮아하고, 나중에는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만 했다.   성경의 내용에 의문이 생긴 것을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무조건 믿는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만약에 그 궁금증이나 의문을 가슴에 묻어둔다면, 그 믿음이 과연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믿음이 될 것인가? 나는 그 시절에 교회에서 듣는 내용에 대해 생기는 질문을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에게 얘기했다가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하자, 교회의 장로님이나 집사님들, 그리고 대학생 형님 누님들께 물었지만, 그분들도 아무도 답을 해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분들도 내가 가졌던 의문점을 궁금해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예 '궁금증 모드'를 가질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이라 추측해 본다. 교회에서는 의문점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좋은 믿음'이라고 가르치며 암시한다. 현재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새가족반에서 그동안 익숙하게 알고 있던 성경 본문을 다룬다. 그런데 이 본문을 다루면서 제일 먼저 그분들이 맞닥뜨리는 것이 바로 ‘질문하기’이다. 그동안 당연시 여겼던 내용인데, 그 익숙한 내용에서 질문을 찾으라고 하니 적이 당황하는 모습이 태반이다. 그러면, 내가 그 본문에 해당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어떤 이들은 이 내용에서 저런 질문이 나오는 것에 신기해하고, 어떤 이들은, 사실 자기도 그런 의문을 품은 적이 있는데, 분위기가 그런 질문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질문하면, 자기가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을까 봐 적잖이 망설이다 포기하였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목회자가 설교 시간이나 성경 공부 시간에 가르치는 것을 무조건 ‘아멘’하고 받아야 하는 분위기가, 그 설교나 성경 공부 중에 생긴 의문점을 해결하려는 교인들의 시도를 막아버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게 습관이 되면, 더 이상 질문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린다. 목회자가 무엇을 얘기해도 무조건 ‘아멘’이다. 설교 시간에 “십일조를 안내면 암에 걸린다”고 해도 무조건 ‘아멘’이다. 그렇게 큰 교회에 적어도 지성인들이 어느 정도 있을 텐데, 이런 설교에 대하여 ‘왜 그렇지?’라고 의문점을 가진 지성인들은 없는가 보다. 만약에 그 설교 내용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면, 머리로 판단하는 인본주의적인 자로 매도될까 봐 두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태도를 가진 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이렇게 질문 없는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나중에 자식이 생기면, 어릴 때부터 성경에 대해 던지는 아이들의 질문에 곤혹스러워한다. 그리고는 그런 질문은 아빠 엄마도 잘 모르니, 교회 목회자들에게 물어보라고 넘긴다. 그런데 목회자에게 넘겨진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겪었던 경험을 그대로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어린 나이 때부터 ‘의심하지 말고 믿는 것이 참 신앙’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고 만다. 그래서 교회에서 정해놓은 틀 안에서 아이들이 자라면, 신앙 있는 청년이 되는 줄로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더 넓은 세상에 놓이게 되고 날카로운 도전을 받을 때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위축되고 마는 경우를 너무나 흔하게 목격한다. 이런 자녀들을 보고 부모들은 당혹해한다. 왜 이렇게 되는 걸까? 아이들은 의문을 가지면 안 된다고 배웠고, 그 틀 안에서 순응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신앙을 유지하게 된 자들은 다시 부모가 되었을 때, 당연히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부담스럽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는 신앙교육을 교회에 전적으로 떠맡긴다. 그것은, 자신들의 경험에 의하면, 성경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무척 많은데, 그 의문점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조건 믿으라고 하니, 믿는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그러니 어찌 아이들의 질문에 당혹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아이들에게도 그냥 “그냥 믿어. 의심하면 안 돼. 믿음 떨어져. 구원 떨어져!”라고 할 것인가? 반면에, 자신이 그 의문점들을 고민한 적이 있고, 그것을 풀어보았던 경험을 가진 부모는 아이의 질문에 곤혹스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질문을 흥미롭게 여기고, 자신이 나름대로 발견한 것들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대물림의 한 부분이다. 혹시, 그 질문이 다 풀리지는 않았을지라도, 자신이 탐구했던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는 있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 아이들은 부모를 이어 그 질문을 위한 탐구를 이어갈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나누는 과정을 통해 성경을 좀 더 친숙하게 느낄 것이기에 나름의 탐구가 가능해질 것이다. 다음은, 스탠포드대학교의 교육대학원에서 최고기술책임자와 부학장으로 있는 폴 킴의 대담 일부를 녹취한 내용이다. “질문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가 무서운 사회예요. 쉬운 걸 찾는다. 편한 것만 찾는다. 생각하기 싫다. 어떤 사회적인 현상이 일어났을 때, 뭘 그걸 질문을 해? 그냥 그런가보다 그러면 되지. 질문하지 않는 사회에는 변화가 없고, 배움도 없고, 혁명도 없어요. 우리나라 최근에 큰 질문을 했잖아요. (촛불집회에서) ‘이게 나라냐?’ 이런 질문을 했기 때문에 변화가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게 나라가 원래 그런 거 아니야? 원래 그랬으니까 그렇지.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합니다.) 부모가 그렇게 얘기하면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사회가 될수록 배움이 없고, 변화도 없고 혁신도 없는 거예요. 그런 것이 없을 때 위험한 사회가 된다.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요.” 폴 킴의 말을 근거로 현재 교회 현장을 진단해 보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들썩거리고 있다. 공포감이 밀려오자 인간의 숨어있던 속성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 교회는 이 바이러스의 강한 전염성 때문에 공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 그러자 이에 대한 반응이 다양하게 튀어나온다. 예배당에서 예배 의식을 거행하지 않으면 마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으로 여겨서, 죽으면 죽겠다는 식으로 예배당으로 모이는 교회가 있다. 예배를 자제해 달라는 정부의 권고를 두고 교회를 핍박한다는 식으로 저항한다. 그런데 그런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오게 되어, 그들이 교회당 밖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옮기게 되는 형국이 벌어진다. 자신은 순교자가 되겠는 지는 모르지만, 자기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고려하지 않는가 보다. 이렇게 ‘묻지 마 신앙’에 전도된 자들의 행태를 보면 신천지 집단과 무엇이 다른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목회자의 말에 거역하면 하나님의 저주가 내릴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거역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들의 가르침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해 본 적이 없기에, 그 지시를 거부하는 것 또한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질문을 용납하지 않는 교회가 있다면, 바로 그 교회는 위험한 교회가 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그 교회의 구성원들이 무너져 내릴 것이고, 그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가 타격을 입을 것이니 말이다.   이번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를 계기로 지금까지 행하여 왔던 ‘예배’에 대한 질문이 수없이 터져 나오게 될 것이다. 더불어 그동안 수면 밑으로 눌러 두었던 신앙에 대한 여러 질문이 수면 위로 마구 떠 오를 것이다. 어쩌면 목회자는 성도들이 경험하고 있는 이러한 예상치 못한 상황을 통해 생겨난 질문에 대해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지 고민을 해야 할 때다. 만약에 이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믿는 것이 바른 신앙인의 태도라는 식으로 암암리에 누른다면, 그 공동체의 체질은 허약해질 것이다.   질문을 가지고 오는 교인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 질문이 참 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이라면, 솔직하게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함께 그 질문을 풀어갈 길을 연구하기를 제안한다고 해서 교인들이 목회자의 권위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태도를 보고 목회자를 더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 던져지는 피할 수 없는 도전이 되고 있다.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껍질이 아니라 그 속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을 위해, 교회는 질문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어떤 질문이라도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서, 그리고 진리를 찾아가기 위해서 던지는 질문이라면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무시할 질문은 없다.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한 질문이지 하나님을 거부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기 위하여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는가? 어떠한 질문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진지한 질문, 솔직한 질문을 왜 하나님이 싫어하시겠는가? 궁금증을 가지고 나오는 우리를 왜 귀찮아하시겠는가? 기탄없이 질문하시라. 진지하게 탐구하시라. 아는 것만큼 우리는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안지영 목사(달라스 나눔교회, 미드웨스턴 실천신학 객원교수)                
    • 오피니언
    • 칼럼
    2020-04-02
  • 코로나 확진 후 퇴원 목회자 “예수는 나의 치료자”
    마크 매클러그 목사. ©트위터 캡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했다 치료를 받고 퇴원한 목회자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유했다고 지난 30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크리스천투데이가 보도했다. 북아일랜드 지역의 다운 카운티에 거주하는 마크 맥클러그 목사는 일주일간 집중 치료를 받고 난 후 퇴원하면서 의료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맥클러그 목사는 자신의 SNS에 병원을 떠나면서 "기도해주신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생명을 구해주신 의료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했다. 예수님의 나의 치료자이시다"라고 글을 올렸다. 그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기도 요청을 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라"고 호소했다. 그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 이웃에게 전화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현명하고 친절하라. NHS를 보호하자"고 글을 올렸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 오피니언
    • 사설
    2020-04-01
  • “코로나19... 예배 방식의 장기적인 변화 대비해야”
      NAE 월터 김 대표. ©Robby Dob Productions, Inc.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교회가 장기적인 예배방식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주장은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간) 전미복음주의협회(NAE) 월터 김 대표가 주최한 '코로나19 교회 온라인 서밋'(COVID-19 Church Online Summit) 패널 토론에서 언급됐다고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가 보도했다. 다양한 교단의 임원들이 참석한 이 모임에서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총감독 더그 클레이(Doug Clay) 목사는 "최근 교단의 정신건강위원회가 코로나19 확산 기간 동안 목회자들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며 "현재 지도자들 사이에서 유포되고 있는 9가지 모범 사례 목록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목회자들은 또한 의사 결정과 지도력을 발휘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신뢰할만한 동료를 찾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뉴스 시청을 줄이거나 안정된 신체적, 정서적 리듬을 찾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보고 휴식을 취하고 현실적인 기대를 갖고, 개인적 예배를 드리고, 통제 할 수 있는 사항만 통제하고 통제할 수 없는 사항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조언했다. 창조적인 방법으로 희망을 찾으라고 덧붙였다.   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의 사무총장인 콜린 왓슨(Colin Watson) 목사는 "목회자들이 전염병에 대한 빠른 해결책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장기적인 상황에 익숙해져야 한다. 단지 몇 주 안에 고쳐질 단기적인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일부 관행과 리듬을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왓슨 목사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며 "우리는 사회적 친밀함을 원한다. 교회가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전화나 인터넷 사용 여부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도자들은 예배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수님을 만나고 따르도록 돕는 교회 운동인 '컨버지'(Converge)의 스콧 리드아웃(Scott Ridout) 대표는 "온라인 모임을 촉진하고 목회자들의 필요에 따라 가장 적합하게 구축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불확실한 시기에 사람들은 명확성과 민첩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또한 기도제목에 대해서도 공유했다. 왓슨 목사는 "지금 우리의 교회와 목회자, 사역자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많은 기도가 있었다. 이 시기에 분명하게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원한다"고 기도했다. 그러면서 "전염병을 치료해 달라고 기도해왔다. 이 기간 동안 교회가 연합되기를 기도하며 특히 이 시점에서 위대한 증인이 되기를 원한다"며 "공동체 전체를 위한 기도 뿐만 아니라 특히 지금 우리 민족을 위해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도록 기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드아웃 대표는 "우리의 포트폴리오의 가치는 떨어지지만 기도의 가치는 높아지고 있다"며 "우리가 의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며 시편 146편과 46편을 읽으며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사람들은 희망을 찾고 있다. 그들은 TV에서 절망을 얻지만 여전히 희망을 찾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그것을 찾을 것"이라며 "저의 기도제목은 깨어 있는 것이다. 이 기간이 기도의 '팬데믹'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이것(코로나19)을 그 분에게로 이끄는데 사용하시길 기도할 것"이라고 전했다고 CP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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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3-31
  • 코로나가 가져다준 선물
      송길원 목사(청란교회·하이패밀리 대표)   나는 배웠다. 모든 시간은 정지됐다. 일상이 사라졌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만나도 경계부터 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마주 앉아 팥빙수를 겁 없이 떠먹던 날이 그립다. 가슴을 끌어안고 우정을 나누던 날이 또다시 올 수 있을까. 비로소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한다. 속히 일상의 기적과 함께 기적의 주인공으로 사는 일상을 달라고.나는 배웠다. 마스크를 써 본 뒤에야 지난날 내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고 침묵을 배웠다. 너무나 쉽게 말했다. 너무 쉽게 비판하고 너무 쉽게 조언했다.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경박했다. 나는 배웠다. ‘살아있는 침묵’을 스스로 가지지 못한 사람은 몰락을 통해서만 ‘죽음으로 침묵’하게 된다는 사실을.나는 배웠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었다. 성직자도 아니었다. 소식을 듣자 대구로 달려간 신혼 1년 차 간호(천)사가 가슴을 울렸다. 잠들 곳이 없어 장례식장에서 잠든다는 겁 없는 간호(천)사들의 이야기에 한없이 부끄러웠다. 따뜻한 더치커피를 캔에 담아 전달하는 손길들을 보며 살맛 나는 세상을 느꼈다. 이마에 깊이 팬 고글 자국 위에 밴드를 붙이며 싱긋 웃는 웃음이 희망 백신이었다.나는 배웠다. 죽음이 영원히 3인칭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언젠가 내게도 닥칠 수 있는, 그래서 언제나 준비돼 있어야만 하는 것이 죽음인 것을 배웠다. 인간이 쌓은 1000만의 도성도 바벨탑이 무너지듯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미생물의 침투에 너무도 쉽게 쓰러질 수 있는 존재인 것을 배웠다. 그런데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악다구니를 퍼붓고 살았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를 배웠다.나는 배웠다. 인생의 허들경기에서 장애물은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라’고 있는 것임을.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재정의하고 살아남아 영웅이 될지,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될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닥친 불행과 시련을 운명이 아닌 삶의 한 조각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때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었다.나는 배웠다. 카뮈의 ‘페스트’에 등장하는 북아프리카의 항구 오랑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최대 피해 지역인 대구는 ‘공황도 폭동도 혐오도 없었다. 침착함과 고요함이 버티고 있었다.’(미국 ABC 방송 이언 기자) 일본 대지진 때 일어났던 사재기도 없었다. 오히려 ‘착한 건물주 운동’으로 서로를 감싸 안았다. 외출 자제로 인간 방파제가 돼 대한민국을 지켰다. ‘배려와 존중’으로 빛났다.나는 배웠다. 어떤 기생충보다 무섭고 무서운 기생충은 ‘대충’이라는 것을. 모든 것이 대충이었다. 손 씻기도 대충, 사회적 거리 유지도 대충, 생각도 대충…. 이제는 나 스스로 면역주치의가 돼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환경 문제나 생태계의 파괴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또다시 찾아올 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환경 지킴이가 돼야 한다. 나는 확실히 배웠다. 공생과 공존이 상생(相生)의 길이라는 것을.나는 배웠다. 가장 큰 바이러스는 사스도 코로나도 아닌 내 마음을 늙고 병들게 하는 절망의 바이러스라는 것을. 나는 배워야 한다. 아파도 웃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아니 그게 진정한 인간 승리임을. 나는 기도한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안코라 임파로.”(Ancora imparo)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이탈리어다. 세기의 천재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비롯해 수많은 명작을 남긴다. 많은 세월이 흐른다. 인생의 황혼 녘인 87세 때 자신의 스케치북 한쪽에 남긴 글이다. 내 나이 60을 넘겼다. 그래, 우리는 모두 살아야 한다. 잘 살기 위해 배워야 한다.“안코라 임파로!”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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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03-31
  • 4월 총선, 유권자가 세상 바꿀 수 있나
    이효상 원장   어느 시인이 말했듯 4월은 잔인한 달인가. 우한코로나 사태로 국가적 재난 가운데 빠져 있다. 국가적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경제는 기력을 잃고 바닥을 친지 오래고 맨 땅에 헤딩하고 있으며, 안보는 불안, 외교는 왕따이다. 거기에 초기 방역실패와 이어진 마스크 대란을 보면 고민된다. 국민 대다수가 마스크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해 ‘약국순례'를 하며 거리를 헤매고 있다. 대구의 눈물과 부부가 코로나에 걸려 남편이 사망했지만 장례를 치르지 못한 아내의 참담함, 마스크 하나도 제대로 살 수 없는 나라, 이런 정치리더십으로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 국민들은 일상이 뒤틀리고 경제적 피해가 불어나는 고통의 터널에 갇혔다.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도 큰 고통이다. 집권당의 장기집권을 위한 투쟁의 3류 정치, ‘정의’니 ‘공정’이니 ‘자유’니 하는 말은 이미 오래전 언어의 유희가 되었다. 21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고민이 많다. 배신과 협잡의 정치판을 보며 꼭 찍어야 하는 정당도, 꼭 찍고 싶은 후보자도 찾기가 쉽지 않아서이다. 4월 총선은 21대 입법부를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바꾸는 중요한 선거다. 한 표로 4년 뒤 국가의 미래가 새롭게 바뀔 수도 있고 반대로 뒤쳐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번 총선의 선택기준은 분명 ‘코로나리더십’으로, 재난에 어떻게 대처 했는가 하는 것과 반드시 물갈이나 불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이 무서운 줄 모르는 정치에 찌든 직업적 정치인들을 가능하다면 퇴출시켜야 한다. 코메디같은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 선거 때면 나타나 명함 돌리는 선거꾼이나 말 잘하는 아나운서, 목소리 큰 사람 뽑는 선거가 아니다. 총선은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시민의 대변자를 뽑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정치꾼’이 아닌 주민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으로 바꿔야 한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온 몸을 던지며 대구로 달려가 의료봉사를 한 어느 정치인을 보며 감동한 바 있다. 그와 같이 생명을 살리려 한 몸을 던져 헌신한 의료진의 봉사와 보건당국의 역할을 기억한다. 그들은 국민의 영웅이었다. 그들의 헌신으로 겨우 버티는 국가가 되었다. 이와 반대로 기득권을 누리며 권력의 맛에 찌든 정치인들의 탁상공론도 지켜보았다. 구태 정치인들의 직권남용, 국가 재난앞에서 편가르기 패싸움정치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어떤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지 일깨워 주었다.   ‘코로나민심’앞에서 정당의 정책도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투표 전 후보자의 인물, 공약, 삶의 과정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한 표를 행사 할 작정이지만 가상현실 같은 상황이다. 매번 선거에서 공약이나 정책을 보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것 같고 지역이 천지가 개벽할 것 같아서 귀가 번쩍이고 마음이 설레이지만 선거가 끝나면 금새 아무 일 없었듯이 빈 공(空)약이 될 것이다. 각 정당의 공천은 그들만의 리그인가. 공천관리위원회가 후보자를 최소한 걸러냈다고 하지만, 지역유권자와의 소통이나 공감없는 공천이다. 여론조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최종선택은 시민들의 몫이다. 전과 병역, 사생활, 막말 등도 검증하고 선택해야겠지만 코로나사태에서 보여준 리더십과 경제위극 극복 대안제시 능력을 더 높이 주목하고 싶다. 후보자들이 마스크 사기 위하여 줄서 본적이 있는가.   한국교회나 ‘한국기독교유권자연합’이 공명선거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지도하는 제 기능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특정 정당 지지는 곤란하다. 훌륭한 인물이 선출되길 바라는 기도, 기독교적 세계관과 관점으로 정치보기,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 설교, 또 하나님보다 정치인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마음 지키기, 가짜뉴스 생산하거나 유포하는 행위 자제, 선거결과에 대한 승복과 후보자나 당선인의 공약 실천 유무 파악하기 등은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비례후보자들도 주목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언론이나 신앙의 자유까지 제한되는 상황에서, ‘예배중단’이나 ‘교회폐쇄’를 주장하는 사회주의자 같은 오만한 후보나 정치권에 줄서기 보다는 해당 후보의 정책과 가치관을 검증하고 선택하도록 지역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이 쏟아내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 찬성, 반대하는 발언이 선거에선 경계의 대상이다. "우파 지도자가 당선돼야"라고 설교한 목사 12명이 고발당한 바 있다.   매주 칼럼애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메일이나 SNS 문자로, 온 오프라인 신문 지면에서 칼럼을 읽는 이가 많을 땐 25만명을 넘어서다보니 반응이 즉각적이다. 더 신중해지고 어느 교수처럼 ‘민주당 빼고’식의 정치적 칼럼을 쓰지는 못한다. 사실 4월 투표도 잔인하다. 전염병의 한복판에서 치러진다. 전혀 소통없는 선거, 후보가 누구인지, 투표소를 가야할지 줄서기도 부담스럽고 투표소 안에 들어가기도 꺼림직 하다. 투표율이 폭락할 가능성이 높다. 투표율이 낮으면 표의 왜곡현상이 생긴다.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대면접촉이 없는 선거를 치루니 선거가 사이버 게임같이 가상현실이 된다. 오랜 정치생활을 하였거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으면 당연히 당선된다고 착각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투표독려로 투표율을 높여야겠지만, 코로나 위험으로부터 유권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투표소의 방역이나 소독과 더불어 현장 투표자 전원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거나, 투표소를 최대한 늘려 분산시키는 방법도 고려돼야 한다. 가능하다면 교회가 주민들의 투표소로 제공되었으면 한다. 코로나로 느끼는 지금의 참담한 현실과 공포를 잊지 말자.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된 교회, 교회가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면 유권자로서 바꿔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혁명’이 아니라 ‘투표’로 바꾸는 시스템이다. 한 표가 얼마나 엄중한지, 그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투표’뿐이다. 사실 단 한 표 차이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뀐 사례는 많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결정짓는 것은 ‘투표참여’가 답이다. 지금 이대론 더 이상 안 된다. (사회구조적 모순 앞에) 침묵하지 말고 외쳐라. 분노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참여하라. 그 어느 때 보다 한 표가 절실하고 중요하다. 표류하는 자유대한민국의 미래를 구할 것인가. 코로나 위기 가운데서도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임해야 하는 이유다. 한 표가 미래를 결정짓고 세상을 바꾼다. 이효상 목사(칼럼니스트, 한국교회건강연구원 원장, 한국기독교유권자연합 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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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31
  • 교회 관련 코로나19 집단 감염률 1.7%
      사랑의교회 예배당을 소독하던 모습 ⓒ사랑의교회   지금까지 교회와 관련된 코로나19 집단 감염자 수는 모두 168명으로, 30일 0시 기준 전체 확진자 9,661명 중 약 1.7%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확인된 교회 관련 집단 감염자 수는 △서울 동대문구 동안교회 및 PC방 20명 △부산 온천교회 32명 △경기도 성남 은혜의강교회 68명 △부천 생명수교회 48명이다.   최근 교회의 현장 예배 중단 압박에 기독교계가 저항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교회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 사례가 절대적으로 많지 않은 상황에서 유독 교회의 현장 예배만을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총회장 류정호 목사)는 최근 성명에서 “전국 2천 9백여 교회 가운데 확진자가 나온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나 언론은 코로나19 확산의 책임과 위험이 마치 한국교회가 주일에 예배를 드려 발생한 것처럼 호도하면서 예배를 범죄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29일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2주 동안에 환자 발생의 감염경로를 살펴보면 크게 첫 번째는 해외 유입이 30~40% 정도로 가장 많다”며 “해외유입자들에 대한 검역과 자가 격리를 철저히 관리하는 것으로 지역사회로 전파되는 것을 차단하는 게 가장 중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주로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한 요양병원·정신병원 등 집단시설 사례가 두 번째로 많다. 대구지역은 지역사회 감염이 상당 기간 진행됐기 때문에 이러한 집단시설에서의 발병사례가 계속 보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는 보고 있다”며 “전국적인 요양병원, 요양원에 대한 관리 강화를 통해서 최소화하는 노력이 같이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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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3-31
  • 내 백성을 구별하리라
    ▲이정기 목사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될 때, 제일 먼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세기를 띄워 대피시킨 나라가 미국이다. 그리고 연이어 프랑스, 호주, 영국, 일본, 한국이 전세기를 띄워 대피시켰다. 자기 나라 백성이기에 보호한 것이다. 그리고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나라들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켰다. 북한, 대만, 베트남, 필리핀, 인도, 러시아, 몽골, 말레이시아, 싱가폴, 미국, 홍콩, 호주, 이스라엘, 뉴질랜드, 많은 나라들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켰다.일찍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킨 대만이나 러시아 베트남 같은 나라들은 확산이 더딘 반면에,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후베이성에 한해서 금지한 나라는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래서 이제는 세계 180개 국가가 한국발 여행객의 입국을 금지시키는 상황이 되다. 그래서 인천 공항이 텅텅 비어있다. 박항서 감독으로 인해서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베트남 마저도 한국사람들을 피하고 있다. 호텔에서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방을 주지 않고 있다. 유럽도 안일하게 대처하더니 지금은 중국보다 확진자가 더 많아졌다. 이제는 유럽에 있는 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애써야 할 상황이다. 끝까지 힘써야 한다. 대한민국 백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라들도 자기 백성들을 구별한다.  하나님도 자기 백성을 구별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실 때 애굽의 바로왕이 순순히 보내주지 않자 애굽에 재앙을 내리신다. 모세가 지팡이로 하수를 치니 피로변한다. 지팡이를 잡은 손을 운하와 못위에 펴니 개구리들이 올라와 애굽땅을 덮는다. 그런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재앙인 피와 개구리 재앙은 애굽의 술객들도 따라한다. 그러나 세 번째 재앙은 사전 경고도 없었고, 애굽의 술객들도 따라하지 못한다. 지팡이로 땅의 티끌을 치니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생축에게 오른다. 그때서야 애굽의 술객들이 바로에게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출8:19> 고 고한다.  그런데 네 번째 재앙부터는 양상이 달라진다. 애굽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하셔서 애굽 땅에만 재앙을 내리신다. 출 8:20-23절을 보면 '내 백성'이라는 표현이 4번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다. '내 백성을 보내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애굽땅에 파리떼가 가득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땅은 구별하여 파리가 없게 할 것이다.' 내 백성을 특별하게 구별하겠다고 말씀하신다.구별하신 이유는 단순하다. '내 백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다. 사 4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너는 내것이라고 소유 삼아주셨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물가운데 지날때에 물이 침몰치 못하도록, 불가운데 지날때에 불이 사르지 못하도록 지켜주시고,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신다고 말씀하셨다. 다섯 번째 재앙인 가축들이 전염병으로 죽는 재앙에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다.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않았다.<출9:6절>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이 애굽의 모든 사람과 짐승과 밭에 있는 모든 채소 그리고 모든 나무를 꺾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다.<출9:25-26절> 아홉 번째 흑암 재앙이 애굽 온 땅을 덮어 사람들이 3일동안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다.<출10:22-23절> 마지막 열 번째 재앙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었다. 처음 난 짐승들까지 다 죽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개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출11:5-7절> 하나님께서 애굽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를 구별하셨다. 그래서 애굽땅에 재앙이 있을때 고센땅에는 없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구별해주시는 것이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구별해주시는 것이 축복이다.  구별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출애굽기 20장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율법을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상 사람과 구별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먹을 것과 먹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 주셨다. 취할것과 취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주셨다.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주셨다. 날도 구별시켜주셨다. 사람도 구별시켜주셨다. 장소도 구별시켜주셨다. 언어도 구별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것도 구별시켜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십일조이다. 아무리 바빠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주일성수와 기도생활이다. 아무리 힘든 문제가 있어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찬송과 감사이다. 이것이 구별된 삶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다.  성경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씀이 많이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진실하신 하나님 등 많이 있는데 가장 많이 쓰여지는 말씀은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성도'는 '거룩한 무리, 거룩한 백성'이란 뜻이다. 이 "거룩"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코데쉬", 헬라어로 "하기오쉬네"라고 하는데 "구별되다"란 뜻이 있다. 그러므로 구별되게 사는 것이 거룩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구별하신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별하신다. 예배드리는 자와 예배 드리지 않는 자, 순종하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 기도하는 자와 기도하지 않는자, 충성하는 자와 게으른 자, 양과 염소를 구별하신다.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신다. 천국에 갈 자와 지옥에 갈 자를 구별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은 특별히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건져주시고, 응답하시고, 축복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구별되게 살자. 그래서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많이 받으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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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03-30
  • 새벽예배 나가는 믿음과 사랑을 간구하며
      참빛순복음교회 김영태 목사   새벽예배 드리러 갈 때마다, 대로 앞에 환하게 불을 켜놓은 다른 교회를 지나가는데 언제부터인가 새벽에 불이 꺼져있다. 하루 이틀이야 사정이 있어서 못 드렸을 수도 있지만, 한 달이 넘어가는 것을 보니 코로나19 때문인 것 같다. 큰 교회가 아니라서 새벽예배 인원이 많지 않을 텐데 왜 안 드릴까? 부끄럽게도 개척 후 25년 가까이 새벽예배를 드리지만, 열 손가락 넘는 인원이 참석할 때는 부활절과 특별기도회 때뿐이고, 보통은 다섯 손가락 정도의 인원만 참석한다. 새벽예배 설교를 준비하는데 사용하는 시간과 에너지, 또 이를 위해서 활동을 스스로 제약하는 수고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나의 부족함과 내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뜻 때문에 노력한 것과 결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지만, 죄악 된 인간적 불평이 내 마음 한 곳을 흔든다. 이참에 나도 핑계 삼아 쉴까? 쉬라는 유혹에 지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예배를 포기하는 핑곗거리가 될 것 같고, 또 주님만 바라보고 예배드리는 어떤 분들의 걸림돌이 될 것 같아 두렵다. 그래도 명색이 주의 종인데 새벽예배의 불을 꺼뜨리는 가라지는 되지 말아야지, 최소한 새벽예배의 디딤돌은 돼야지. 나를 다독이며 나간다. 무엇보다도 어떤 이유이든 간에 예배 인원이 적다고 예배 안 드리면, 결과적으로 그동안 내가 예배자가 아니라 예배받는 자였다는 증거가 되므로, 유혹받고 싶은 마음을 회개하며 오늘도 하나님 앞에 나간다. 다니엘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니 이보다 훨씬 고상했겠지! 함께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혼자서 기도했던 다니엘, 다니엘의 지조 높은 믿음을 설교하지만 그 발꿈치도 따라갈 수 없는, 한 없이 부족한 나는 한숨 쉬며 회개하러 나간다.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주의 종의 길에 들어섰건만, 매일 습관을 따라 혼자 기도하셨던 예수님을 본받기에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다니엘이라도 따라잡을 수 있다면… 주님! 오늘도 주님을 예배할 수 있는 일용할 믿음과 사랑을 주옵소서. 김영태 목사(참빛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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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03-30
  • 하나님이 설계하신 교회 모습은 ‘공동체’
      포항중앙침례교회 성도들이 지난 1월 15일 경주 켄싱턴리조트에서 개최된 전교인 수련회에서 함께했다.  교회는 1년에 두 차례 전교인 수련회를 진행한다. 포항중앙침례교회 제공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너무나 필요한 곳이고 동시에 중요한 곳이다. 안타깝게도 갈수록 교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교회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다 보니 교회를 쉽게 생각하고 이 교회 저 교회를 옮기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설교를 잘하거나, 특별한 무엇을 가진 교회가 생기면 많은 사람이 그런 교회로 수평 이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수평 이동이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그런데 이제 수평 이동 정도는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이유는 아예 교회를 안 나가는 교인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가나안(안 나가)’ 교인들이 많은데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자를 망하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이미 우리 시대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불필요한 곳으로 생각하고 있고 심지어는 교회를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까지 있다. 과연 교회가 필요 없거나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그런 곳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 1:22) 에베소서 1장 20~2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후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으며 또 교회가 그분의 몸이 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구원 역사를 완성하신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는 말은 구원과 교회가 별개가 아니라 구원과 교회는 연결되는 것이며 한 덩어리라는 말이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교회의 일원이 돼야 한다. 이것이 정상이다. 이처럼 구원받은 사람에게 교회가 필요 없을 수 없기에 구원받은 후 교회가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주셨다. 신자에게는 교회가 있다. 교회는 영적인 가정과 같다. 갓 태어난 영적인 유아도 영적인 부모의 양육과 형님 오빠의 도움을 받아 건강하게 자라며 동시에 내면의 상처도 치유 받고 모난 인격도 다듬어간다. 교회는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배려와 축복이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교회가 이런 곳이기에 교회에 속해 지체로 살아가는 사람과 교회 없이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만약 교회가 없다면 이 악한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그런데 교회에 속한다는 말의 의미는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구원을 받은 모든 신자는 몸 안에서 서로 연결돼야 한다. 몇 사람이 모이든 교회는 서로 연결이 되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태생적으로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공동체성을 추구하는 교회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는 당연히 한 몸, 즉 공동체여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설계하신 교회의 모습이다.“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교회는 마디를 통해 모든 사람이 연결되고 결합돼야 한다. 그래서 하나가 되고 진정한 의미에서 한 몸이 되어야 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나와 한 몸을 이루는 지체이기에 나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이다. 그가 존재해야 내가 존재할 수 있고 그가 건강해야 나도 건강할 수 있다. 그래서 신자는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책임감을 가지며 또 연결돼야 한다.그런데 연결이 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인격적으로 ‘공사 중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사 중인 사람과 지내는 것은 불편하고 힘이 든다. 그러나 불편해도 견뎌야 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 되어 사는 법을 익혀가는 곳이 교회다. 교회 안에서는 용납 용서 오래참음 겸손 온유라는 단어가 늘 현실적인 단어가 된다.이 과정을 견디면서 연결해야 한다. 이렇게 연결이 되면 각 지체가 분량대로 역사하여 몸이 자라게 되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두 번째 기초가 된다.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는 옆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만 직통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교회가 조금만 어려워져도 떠날 생각부터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이 많으면 교회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한국교회는 교회의 본질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빨리 가려 하지 말고 모든 신자에게 교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닫게 해야 한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면 잃어버린 교회의 건강성을 되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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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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