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19(일)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기고.연재

실시간 기고.연재 기사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한국교회의 비상(非常)시기입니다"
          지금은 정말 대한민국의 비상시기이고 한국교회의 비상시기입니다. 다른 때는 몰라도 성탄절 예배까지 포기한다는 것은 너무나 굴욕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지지난주부터 예배를 회복하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하였습니다. 중대본과 협의 할 때 우리 쪽에서 2.5단계에서도 공간의 10% 인원이라도 예배를 드리도록 조정 했어야 하는데 이것을 대비 못한 게 발등을 찍고 싶을 정도입니다.   사실은 모두들 2.5단계까지는 안 가리라고 생각 했거든요. 솔직히 우리 교회는 당분간 온라인예배를 드려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워낙 결속력이 강하고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 강해서 유튜브와 화상 줌으로 해도 엄청 많은 성도들이 참여합니다. 그러나 저는 예배 회복을 위한 시대적 소명감을 가지고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그러자 지난주 토요일 오전에는 방역단체에서 교계에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주려고 회의를 하려다가 갑자기 국내 확진자가 900명, 1000명으로 올라가 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일부 교회에서 무더기 확진자가 나와버린 것입니다. 그것도 다른 교단이 아니라 우리 교단 교회에서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회의가 취소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정말 맥이 풀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통보를 받은 금요일 저녁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철야기도를 인도한 후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요즘은 어느 말 많은 선교단체가 규칙을 어기고 숨어서 집회를 하다가 무더기 확진자를 내버렸지 않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오히려 확진자 수가 더 많이 올라가고 교회마저도 가세를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도 사람인지라 힘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놈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항상 탐욕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숙주 자체가 인간의 탐욕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교회도 육신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선교집회나 예배도 신앙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면 안되지요. 중세적 사고로 세를 과시하거나 인간의 교권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집회나 예배에서 대부분 집단 감염이 이루어졌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을 할 때, 제가 예배회복을 위하여 뛰고 노력하는 것도 저의 탐욕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누구와 경쟁할 일도 없고, 세 과시를 할 일도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 안에는 인간의 탐욕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주님과 공교회를 위한 거룩한 욕망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뛰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한교총 두 대표회장님과 함께, 때로는 교단 총회장님들과 함께 정부의 주요 지도자들을 만나서 반 사정을 하고 반 공갈을 하면서 설득하고 소통을 하였습니다. “성탄절 예배는 우리 기독교뿐만 아니라 천주교도 열망하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기독교 2000년의 역사, 한국교회 140여 년 동안 지켜온 기독교 최대의 성일입니다. 성탄절만큼은 제한적으로라도 예배를 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비상시기에 일을 하다보면 맥도 풀리고 지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정신없이 뛰어다녔습니다. 하루 종일 저와 함께 다니던 한 분이 저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소 목사님, 어떻게 하루하루를 이렇게 살아갑니까? 그 많은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해 내세요? 그러고도 건강이 버텨지나요.” 저는 이런 대답을 하였습니다. “비상(非常)시기 일수록 우리가 더 비상(飛上)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잘 버텨왔는데 왜 포기합니까, 비상시기일수록 우리가 더 비상하고 웅비해야죠. 저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절규하면서 우리의 신앙이 다시 비상하고 또 비상하면 하나님께서 코로나의 기승도 꺾어주시고 확산세를 막아주신다고 믿으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록다운된 한국교회를 다시 열어 주옵소서. 무너진 한국교회를 세워주시고 대한민국도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이런 비상 시기일수록 우리 모두 희망의 날개를 펴고 더 비상하고 웅비하겠습니다. 아무리 맥이 풀리고 지쳐도 다시 날갯짓을 하며 또 한 번 비상하게 하소서.”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12-21
  • 진돗개전도왕 - 박병선 장로
        ‘진돗개 전도왕’ 박병선 장로는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전도강사다.16대 대종갓집 대종손의 8남매 장남인 박 장로에게는 20년 동안 아내 정은숙 권사의 불퇴전의 기도와 성화가 있었다. 교회 한번만 가기로 하고 처음 나가는 날 순천순동교회 빈 자리를 보고 “하나님! 저 빈 자리를 제가 채우겠습니다” 하고 다음날부터 친구를 시작으로 해서 1년만에 750명을 전도하면서 한국교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순천시청에서 27년간 지방행정사무관 공직생활을 명예은퇴하고 순천순동교회 뿐 아니라 이웃 순천제일교회 등 5개의 타 교회에도 전도하여 자랑스런 전도왕 공로패와 지역복음화를 위해 힘쓴 결과 순천기독교총연합회에서 전도공로패를 2회 연속 수상했다.박 장로는 진돗개조련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고 ‘진돗개전도왕’을 저서를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박장로는 진돗개전도법 5계명을 개발하여 전도에 적용했다. 첫째, 전도 대상자를 정한 후에 기도하라. 둘째, 가까운 데서 먼 곳으로. 셋째, 한번 물면 놓지 마라. 넷째, 거절을 두려워 말라. 다섯째, 반드시 등록을 시켜라다.한국교회를 한 번 더 놀라게 한 것은 ‘바람바람 성령바람’이다. 2005년 11월 22일부터 순천본향교회(장경태 목사)를 시작으로 2020년 4월 서울 관악구 동북교회(이상구 목사)에서 844회 집회 기록을 세우고 있다.전도축제가 연이은 앙코르 집회로 이어지고 있다. 박 장로 강의 중 하이라이트는 전도작정을 하는 것이다. 바람바람 성령바람 전도축제는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인 셈이다. 박 장로는 교회 나온 첫날부터 전도하여 전국과 세계를 다니며 복음의 전도자로 주님께 쓰임받고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사태로 흩어진 성도와 불신자들을 시대에 맞게 지혜롭게 다시 전도해야 한다고 여긴다. 박 장로는 “한번 물면 놓지 마라” 는 끈질긴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6-10
  • 대중문화에 스며든 '무속신앙', 이대로 괜찮나
     ▲무속적 요소를 쓴 드라마 작품들. 사진은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 <도깨비>, <호텔 델루나> 스틸컷.     요즘 ‘환생 신드롬’ 등 무속사상이 사회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무속사상은 대중매체를 이용한 ‘상업주의’와 맞물려 소리 없이 우리네 삶에 스며들고 있다. 이 현실을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고스트 엄마 ‘모성애’로 공감 얻어 보통 귀신은 산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의 존재로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의 고스트 엄마 차유리(김태희)는 다르다.무섭기는커녕 시청자들을 빵 터트리게 만드는 천연덕스런 캐릭터면서 동시에 눈물을 쏟아내게 만드는 연민의 캐릭터다. 귀신이 되어 가족 주변을 맴도는 고스트 엄마의 절절한 모습에 연민이 안 생길 수 없다.‘하이바이 마마’는 불의의 사고로 가족의 곁을 떠나게 된 차유리가 사별의 아픔을 딛고 새 인생을 시작한 남편 조강화(이규형)와 딸 아이 앞에 다시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49일 ‘리얼 환생 스토리’를 그린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 ‘환생’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차용한다. 그럼에도 그것이 보여주려는 게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점에서 모든 것이 허용된다. 귀신과 환생 등 무속적인 소재를 끌고와 사실상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삶과 사람의 이야기’를 꺼내기 때문에 수용하는 데 거부감이 없다.아이 한 번 안아보지 못하고 죽은 고스트 엄마 차유리의 심정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고, 가족을 잃고 남겨진 이들의 상실과 아픔은 폭넓은 공감의 매개가 된다.산 자와 망자가 공존하는 비현실적 세계를 그려냄에도, 가족의 소중함과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가족드라마의 변주”라고 평가되는 이유다.무분별한 수용 경계 필요 이렇듯 전생·환생 등의 무속적 사상은 최근 긍정적 묘사와 친근한 접근으로 대중문화의 단골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이는 다시 말해 그만큼 무속 사상을 무분별하게 접하고 수용할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무속은 과거 근대화 시대에 미신으로 터부시됐다면, 근래 들어서는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귀신이나 좀비, 무속신앙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오히려 대중에게 각광받는 추세다.   드라마 ‘도깨비’, ‘호텔 델루나’ 등은 인간과 신적 존재의 사랑, 전생·환생의 이야기, 사연 있는 귀신들의 휴머니즘으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무속신앙과 불교의 세계관을 혼합해 사후세계를 흥미롭게 묘사한 영화 ‘신과 함께’는 국내 시리즈물 최초로 연속 천만 관객 돌파란 대기록을 세웠다.필름포럼 성현 대표는 “한국인 대다수의 심성에는 대중매체가 그리는 비현실적 세계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꽤 두텁게 형성돼 있는 상태”라며 “대중이 귀신이나 무속신앙 등을 소재로 한 콘텐츠를 일종의 문화로 받아들이며 거침없이 소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더 나아가 최근에는 무속신앙, 악귀, 저주의 살 등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오컬트(occult)’ 장르가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콘텐츠들은 장르 특성상 비현실적이거나, 영적 세계에 대한 자극적인 묘사가 두드러진다. 시청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전문가들은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가장 미신적인 것이 성행하고 있는 지금의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문화선교연구원 백광훈 원장은 “환생 등 무속적 콘텐츠가 활발히 소비되는 것은 영적 세계에 대한 대중의 궁금증이 높다는 방증”이라며 “현대인들의 영적 갈망을 대중문화가 채워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기독교가 사람들의 영적 갈망을 채워주지 못하면 사람들은 계속 대중문화로 눈이 쏠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그러면서 “한국교회가 대중의 영적인 필요를 포착해 채워주고 삶과 죽음, 그 이후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이어가면서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삶을 통해 보여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4-10
  • ‘종말의 때’ 오직 하나님만 알아… 정확히 안다고 하는 사람은 짝퉁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바티칸 궁전 시스티나 성당에 1534년부터 7년 동안 그린 ‘최후의 심판’.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천년왕국과 마지막 때에 관한 놀라운 기록이 남아 있다. 1000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건 무의미하다.1000이란 숫자는 유대문화에서 축복의 완전성을 상징한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한없는 축복을 ‘천 배의 축복’(신 1:11)과 ‘천대의 은혜’(신 5:10)로 표현했다. 베드로는 주의 날을 준비하라 권하면서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했다. 성경의 1000년은 문자적 1000년이 아니다. 하나님 이외의 누구도 정확한 기간, 시점의 길이와 양을 알 수 없다.이런 배경 지식으로 사도 요한이 봤던 요한계시록 20장의 환상을 다시 보자.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옛 뱀이요 마귀이자 사탄인 용을 잡아 1000년 동안 결박해 무저갱에 던져 넣는다. 이는 1000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계 20:1~3)요한계시록 12장에 등장한 천사장 미가엘과의 영적 전쟁에 패해 하늘로부터 내쫓긴 옛 뱀이요 마귀, 사탄인 큰 용이 1000년 동안 무저갱에 던져진 것이다. 이 사건이 이미 예수의 초림 시 일어난 사건인지, 아니면 재림 시 일어날 사건인지 복음주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다양하다.개인적으로 이중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사탄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사역으로 주님 앞에 철저히 굴복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가운데 남아있다. 주님 재림 때 완전히 굴복할 것이다.결국 ‘이미’와 ‘아직’의 긴장 사이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가 선취됐지만, 아직 우리 역사 속에서 성취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는 이미 승리한 천상교회와 아직 전투 중인 지상교회 이야기가 함께 전개된다.천년왕국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사도 요한은 1000년 동안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한다고 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계 20:4)천년왕국도 이미와 아직의 긴장 관계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신실한 성도들은 이 땅에서부터 왕 노릇 하고 있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라.”(계 5:9~10)천년왕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천상과 지상교회에서 이미 시작됐다. 다만 우리 역사 속에서 아직 그 나라가 완성되지 않았다. 그 날과 그 시는 알 수 없으나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복음 전파를 위해 순교한 영혼과 짐승이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이 1000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한다는 것이다.천년왕국에 대해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등 다양한 신학적 주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와 아직의 긴장 관계, 천상교회와 지상교회의 관점에서 천년왕국을 해석할 경우 모든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교주 이만희는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이 재림 주인 자신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신천지 집단의 실상이다. 이들은 신천지가 세워진 1984년 3월 14일 천년왕국이 시작됐다고 본다. 신천지가 인정해야만 천년왕국에 들어갈 자격도 얻는다고 말한다. 허무맹랑하다.종말도 이미 실현된 종말과 아직 실현되지 않은 종말로 나눌 수 있다. 요한계시록의 종말은 악인에게는 재앙과 심판, 두려움의 사건이다. 반대로 신실한 지상교회 성도들에게는 새 창조의 역사로 구원과 회복, 기쁨과 환희를 상징하는 축복의 사건이다.우리는 매 순간 삶 속에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종말을 맞이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제 마지막 시간을 허락하실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 날이 온다는 점이다. 이를 신학적으로 개인적 종말이라 한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이 사실을 간과한다.개인의 차원을 넘어 역사 전체가 마지막 때를 맞이하는 역사적 종말도 있다. 역사적 종말의 때 역시 오직 하나님만 알 수 있다. 주님은 마태복음 24장 36절에서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했다. 그 날과 시를 정확히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짝퉁이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4-07
  • 선교사가 겪는 코로나19 위기
      ▲정용구 선교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에는 중국 내 확진자가 전 세계 뉴스로 보도되면서, 한인 선교사들의 경우 선교지에서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의 확진자가 급진적으로 증가하자, 선교지에서 한국에 대한 혐오도 늘었다. '코리아'와 '코로나'라는 비슷한 발음으로 놀림을 받았다는 지역도 있었다. 선교사들의 사역도 신천지처럼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주범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인들의 입국 금지를 하는 나라들이 늘어났다. 이때만 해도 많은 선교사는 한국에서 예배당 출입을 폐쇄하고, 예배를 중지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국의 상황을 걱정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확진자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 지역에서 한국보다 더 많은 확진자가 나오고, 중동과 미국에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확진자로 전 세계가 국경을 폐쇄하게 됐다. 또 항공 및 모든 출입국을 막는 조치를 강행하면서 선교사들은 몸으로 이 위기를 체감하게 됐다. 인도는 자국 내 거주 한국인의 모든 비자를 무효화했다.  그런 가운데 선교 현지에서 급속도로 확산되는 코로나19 확진자의 증가로 외국인들은 정해진 시간에 자국으로 철수하라는 행정 명령을 받기에 이르렀다. 결국 급박하게 나오려고 했으나 공항 폐쇄로 인해 구입한 항공권도 사용이 불가능해졌다. 수 없이 항공권 변경을 위한 연락을 해도 항공사나 여행사와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어려움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전에 구입했던 항공권의 환불은 나중에 처리하더라도, 곧바로 운항이 가능한 항공권을 구입하자니 가격이 너무 비싸다. 혹 구입을 하더라도 공항폐쇄나 이동 제한 명령에 발이 묶이면, 항공권으로 인한 손실이 불가피해져 항공권 구입을 고민하는 연락이 많았다.  방송 등 언론보도에 의하면 우리 정부에서 국적기나, 전세 항공기를 보내면 뭔가 지원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몇몇 선교지의 한인회나 대사관을 통해서 알아보니 이 경우도 자기 부담금이 원칙이며, 그 비용이 일반 항공요금보다 꽤 비싸다고 한다. 늘 저가 항공기를 이용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여러 번 경유하는 항공편을 애용하는 선교사들의 형편으로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특히 한국의 많은 후원교회가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대신 인터넷이나 가정예배를 드리다 보니, 헌금을 드리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선교사들에게 선교비 송금을 임시 중단한 교회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선교지에서 이동도 못 하고, 선교비 지원이 끊어진 상황에서 버텨야 하는  선교사들의 어려움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특히 한국의 분위기도 초기와 달리 해외에서 유입되는 확진자의 증가로 인해 귀국했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도 느껴진다고 한다. 특히 선교사들의 경우 스스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자가 격리를 하려고 해도 부족한 안식관 시설과, 일반 시민들의 생활 터전 중심에 자리 잡은 안식관에서는 외국에서 온 선교사를 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지금 코로나19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건물주는 임대료를 줄이고, 지방 자치단체는 자금 지원에 나서고 있다. 또 몇몇 대형교회들로부터 작은 교회의 임대료 지원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현실에서 선교 현지에서 몸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 선교사들을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도울지를 같이 고민하고, 이 위기를 같이 이겨 나갈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가장 절실하게 어려움을 겪는 안식관과, 선교사들의 항공권 비용을 위한 지혜와 동역의 손길이 선교사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에는 중국 내 확진자가 전 세계 뉴스로 보도되면서, 한인 선교사들의 경우 선교지에서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의 확진자가 급진적으로 증가하자, 선교지에서 한국에 대한 혐오도 늘었다. '코리아'와 '코로나'라는 비슷한 발음으로 놀림을 받았다는 지역도 있었다. 선교사들의 사역도 신천지처럼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주범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인들의 입국 금지를 하는 나라들이 늘어났다. 이때만 해도 많은 선교사는 한국에서 예배당 출입을 폐쇄하고, 예배를 중지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국의 상황을 걱정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확진자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 지역에서 한국보다 더 많은 확진자가 나오고, 중동과 미국에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확진자로 전 세계가 국경을 폐쇄하게 됐다. 또 항공 및 모든 출입국을 막는 조치를 강행하면서 선교사들은 몸으로 이 위기를 체감하게 됐다. 인도는 자국 내 거주 한국인의 모든 비자를 무효화했다.  그런 가운데 선교 현지에서 급속도로 확산되는 코로나19 확진자의 증가로 외국인들은 정해진 시간에 자국으로 철수하라는 행정 명령을 받기에 이르렀다. 결국 급박하게 나오려고 했으나 공항 폐쇄로 인해 구입한 항공권도 사용이 불가능해졌다. 수 없이 항공권 변경을 위한 연락을 해도 항공사나 여행사와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어려움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전에 구입했던 항공권의 환불은 나중에 처리하더라도, 곧바로 운항이 가능한 항공권을 구입하자니 가격이 너무 비싸다. 혹 구입을 하더라도 공항폐쇄나 이동 제한 명령에 발이 묶이면, 항공권으로 인한 손실이 불가피해져 항공권 구입을 고민하는 연락이 많았다.  방송 등 언론보도에 의하면 우리 정부에서 국적기나, 전세 항공기를 보내면 뭔가 지원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몇몇 선교지의 한인회나 대사관을 통해서 알아보니 이 경우도 자기 부담금이 원칙이며, 그 비용이 일반 항공요금보다 꽤 비싸다고 한다. 늘 저가 항공기를 이용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여러 번 경유하는 항공편을 애용하는 선교사들의 형편으로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특히 한국의 많은 후원교회가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대신 인터넷이나 가정예배를 드리다 보니, 헌금을 드리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선교사들에게 선교비 송금을 임시 중단한 교회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선교지에서 이동도 못 하고, 선교비 지원이 끊어진 상황에서 버텨야 하는  선교사들의 어려움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특히 한국의 분위기도 초기와 달리 해외에서 유입되는 확진자의 증가로 인해 귀국했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도 느껴진다고 한다. 특히 선교사들의 경우 스스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자가 격리를 하려고 해도 부족한 안식관 시설과, 일반 시민들의 생활 터전 중심에 자리 잡은 안식관에서는 외국에서 온 선교사를 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지금 코로나19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건물주는 임대료를 줄이고, 지방 자치단체는 자금 지원에 나서고 있다. 또 몇몇 대형교회들로부터 작은 교회의 임대료 지원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현실에서 선교 현지에서 몸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 선교사들을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도울지를 같이 고민하고, 이 위기를 같이 이겨 나갈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가장 절실하게 어려움을 겪는 안식관과, 선교사들의 항공권 비용을 위한 지혜와 동역의 손길이 선교사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한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4-07
  • “두 줄뿐인 약력이지만 감사한 60년 인생”
      성공회대 중앙도서관 내 성공회역사자료관에서 17년간 이어온 자원봉사를 마친 송태원씨가 지난 1일 서울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앞에서 성공회와 함께한 60여년의 여정을 회고하고 있다.   “약력이라곤 ‘1960년 입사, 2003년 퇴사’ 두 줄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늘 감사하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교수도, 직원도, 학생도 아니지만 03학번과 함께 학교생활을 시작해 성공회대학교 중앙도서관 한 켠을 늘 지켰던 사람. 도서관 내 성공회역사자료관에서 자원봉사를 해 온 송태원(83)씨가 지난달을 끝으로 17년 동안 이어온 봉사자직을 내려놓았다. 1960년 성공회 출판부에 입사해 역사자료관 봉사까지 대한성공회의 역사와 함께한 그를 지난 1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앞 카페에서 만났다.명함을 건네자 돋보기안경을 꺼내 쓰면서 그는 “사무실에도 집에도 안경을 2~3개씩 놓는데 용도가 다 다르다”고 했다.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업무를 지속해 온 덕에 오전, 오후 시력이 다 다르다는 그는 “처음 직장에서 퇴임하고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몰랐는데 이젠 아침에 갈 곳이 없다는 게 조금은 실감이 난다”면서 “60년 가까이 성공회 덕분에 참 잘 지냈다”고 미소지었다.송씨는 2001년 개관해 자료가 일천하던 성공회역사자료관 초기에 자원봉사자로 2003년 합류했다. 성공회 출판부에서 40년 넘게 총무로 일하며 성공회신문 출간 및 각종 교회 서적 출판 업무를 도맡아 온 그는 인맥을 총동원해 자료를 채워 넣었다. 각 교회에 공문 대신 손 편지를 일일이 보내 주보, 서적 등 그간 훼손되고 버려지던 자료들을 ‘제발 모아서 보내주시라’ 읍소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자료가 있는 곳이면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누비기도 했다. 덕분에 현재 자료관은 고서적, 고문서, 박물, 사진 등 1만5000여건이 깔끔하게 분류된 내실 있는 데이터베이스로 성장했다.그는 “인복이 참 많다. 상근직원들이 자비로 문헌정보학 공부를 해가며 정리했고, 옆에서 도운 것뿐”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하지만 홀로 취재, 교정, 조판, 인쇄를 도맡아 만들던 성공회신문과 출판 업무 경력 덕에 자료관 일이 한층 수월했다는 말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송씨와 성공회의 인연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장로교 신자였던 그는 대학 졸업 후 모교 은사 소개로 당시 책임자였던 리처드 러트 신부와 만나 성공회 출판부 생활을 시작했다. 교리문답 해설서를 출간하며 교정을 본 덕에 2년 뒤인 1962년 세례를 받았고 평생 신앙과 생업을 함께해 왔다.봉사의 동력으로는 ‘감사하는 마음’을 첫 손에 꼽았다. 송씨는 “‘무엇을 해주십시오’ 하는 기도는 별로 좋은 기도가 아니라는 말이 항상 와 닿았다”며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도 중에 ‘감사합니다’뿐이라는 게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4-06
  • 예배 없는 목회 사역 이야기
      ▲조건회 목사 코로나19’ 목회자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예배·집회·심방이 중단된 지금, 목회자들로부터 현재 신앙생활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존 예배를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면서 예배를 사모하는 우리 성도님들을 위해 더욱 중보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교역자들과 매주 1권씩 ‘기도’에 관한 책을 읽는 시간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요즘에는 ‘지키는 기도’라는 책을 읽는데 참 좋더라고요.내 양 떼와도 같은 성도들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교회 내 구역장들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성도님들의 기도제목을 모았습니다. 이를 두고 날마다 교역자들과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수요오전예배에는 예배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시리즈 특강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주봉 목사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코로나 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외부사역도 많고, 늘 바빴습니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사역을 할 수 없게 되니 개인적으로 휴식도 얻으며, 하나님과 더욱 친밀히 교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교회에 매일 온라인 예배로 오전 10시에 기도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30분간 주제 설교 후, 11시부터 한 시간 동안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를 하죠. 300명 이상 매일 참석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님이 기도회 시간이 좋다고 피드백을 전하더라고요. 그래서 코로나19가 지나가더라도 오전, 저녁 기도회는 계속 진행할 예정입니다   ▲장헌일 목사   70세 이상 어르신들이 어떻게 이 시기를 잘 보내실 수 있을지 고민하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유튜브로 설교를 진행하더라도 이용방법을 몰라서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설교 후에 문자로 설교를 정리해서 보내드리고 전화 심방을 진행하고 있는데, “빨리 교회에 가고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노인 대학은 중단됐고, 매일 식사를 제공하던 쪽방촌 독거노인 사역은 요일을 지정해 일주일분 대체식사를 준비해드리고 거동이 어려운 분들은 직접 찾아가 전달하며 한 분씩 기도해드리고 있습니다. 작은 위로와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김동영 목사   이 시기를 통해 그동안의 사역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년 목회를 하는 목회자로서 청년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제법 익숙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역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부족했던 지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의 특성을 파악하며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한데 목회자로서 그런 노력들이 부족했던 게 보였습니다.코로나를 기점으로 한국교회 사역의 틀이 좀 바뀌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됩니다. 청년들과 소통하는 다양한 루트를 모색하고 있고, 대면하지 못하는 현 상황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청년들의 진중한 삶의 고백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를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많이 어렵네요.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4-03
  • “코로나19... 예배 방식의 장기적인 변화 대비해야”
      NAE 월터 김 대표. ©Robby Dob Productions, Inc.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교회가 장기적인 예배방식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주장은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간) 전미복음주의협회(NAE) 월터 김 대표가 주최한 '코로나19 교회 온라인 서밋'(COVID-19 Church Online Summit) 패널 토론에서 언급됐다고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가 보도했다. 다양한 교단의 임원들이 참석한 이 모임에서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총감독 더그 클레이(Doug Clay) 목사는 "최근 교단의 정신건강위원회가 코로나19 확산 기간 동안 목회자들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며 "현재 지도자들 사이에서 유포되고 있는 9가지 모범 사례 목록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목회자들은 또한 의사 결정과 지도력을 발휘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신뢰할만한 동료를 찾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뉴스 시청을 줄이거나 안정된 신체적, 정서적 리듬을 찾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보고 휴식을 취하고 현실적인 기대를 갖고, 개인적 예배를 드리고, 통제 할 수 있는 사항만 통제하고 통제할 수 없는 사항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조언했다. 창조적인 방법으로 희망을 찾으라고 덧붙였다.   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의 사무총장인 콜린 왓슨(Colin Watson) 목사는 "목회자들이 전염병에 대한 빠른 해결책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장기적인 상황에 익숙해져야 한다. 단지 몇 주 안에 고쳐질 단기적인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일부 관행과 리듬을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왓슨 목사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며 "우리는 사회적 친밀함을 원한다. 교회가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전화나 인터넷 사용 여부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도자들은 예배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수님을 만나고 따르도록 돕는 교회 운동인 '컨버지'(Converge)의 스콧 리드아웃(Scott Ridout) 대표는 "온라인 모임을 촉진하고 목회자들의 필요에 따라 가장 적합하게 구축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불확실한 시기에 사람들은 명확성과 민첩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또한 기도제목에 대해서도 공유했다. 왓슨 목사는 "지금 우리의 교회와 목회자, 사역자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많은 기도가 있었다. 이 시기에 분명하게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원한다"고 기도했다. 그러면서 "전염병을 치료해 달라고 기도해왔다. 이 기간 동안 교회가 연합되기를 기도하며 특히 이 시점에서 위대한 증인이 되기를 원한다"며 "공동체 전체를 위한 기도 뿐만 아니라 특히 지금 우리 민족을 위해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도록 기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드아웃 대표는 "우리의 포트폴리오의 가치는 떨어지지만 기도의 가치는 높아지고 있다"며 "우리가 의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며 시편 146편과 46편을 읽으며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사람들은 희망을 찾고 있다. 그들은 TV에서 절망을 얻지만 여전히 희망을 찾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그것을 찾을 것"이라며 "저의 기도제목은 깨어 있는 것이다. 이 기간이 기도의 '팬데믹'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이것(코로나19)을 그 분에게로 이끄는데 사용하시길 기도할 것"이라고 전했다고 CP는 보도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3-31
  • 코로나가 가져다준 선물
      송길원 목사(청란교회·하이패밀리 대표)   나는 배웠다. 모든 시간은 정지됐다. 일상이 사라졌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만나도 경계부터 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마주 앉아 팥빙수를 겁 없이 떠먹던 날이 그립다. 가슴을 끌어안고 우정을 나누던 날이 또다시 올 수 있을까. 비로소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한다. 속히 일상의 기적과 함께 기적의 주인공으로 사는 일상을 달라고.나는 배웠다. 마스크를 써 본 뒤에야 지난날 내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고 침묵을 배웠다. 너무나 쉽게 말했다. 너무 쉽게 비판하고 너무 쉽게 조언했다.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경박했다. 나는 배웠다. ‘살아있는 침묵’을 스스로 가지지 못한 사람은 몰락을 통해서만 ‘죽음으로 침묵’하게 된다는 사실을.나는 배웠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었다. 성직자도 아니었다. 소식을 듣자 대구로 달려간 신혼 1년 차 간호(천)사가 가슴을 울렸다. 잠들 곳이 없어 장례식장에서 잠든다는 겁 없는 간호(천)사들의 이야기에 한없이 부끄러웠다. 따뜻한 더치커피를 캔에 담아 전달하는 손길들을 보며 살맛 나는 세상을 느꼈다. 이마에 깊이 팬 고글 자국 위에 밴드를 붙이며 싱긋 웃는 웃음이 희망 백신이었다.나는 배웠다. 죽음이 영원히 3인칭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언젠가 내게도 닥칠 수 있는, 그래서 언제나 준비돼 있어야만 하는 것이 죽음인 것을 배웠다. 인간이 쌓은 1000만의 도성도 바벨탑이 무너지듯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미생물의 침투에 너무도 쉽게 쓰러질 수 있는 존재인 것을 배웠다. 그런데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악다구니를 퍼붓고 살았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를 배웠다.나는 배웠다. 인생의 허들경기에서 장애물은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라’고 있는 것임을.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재정의하고 살아남아 영웅이 될지,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될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닥친 불행과 시련을 운명이 아닌 삶의 한 조각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때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었다.나는 배웠다. 카뮈의 ‘페스트’에 등장하는 북아프리카의 항구 오랑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최대 피해 지역인 대구는 ‘공황도 폭동도 혐오도 없었다. 침착함과 고요함이 버티고 있었다.’(미국 ABC 방송 이언 기자) 일본 대지진 때 일어났던 사재기도 없었다. 오히려 ‘착한 건물주 운동’으로 서로를 감싸 안았다. 외출 자제로 인간 방파제가 돼 대한민국을 지켰다. ‘배려와 존중’으로 빛났다.나는 배웠다. 어떤 기생충보다 무섭고 무서운 기생충은 ‘대충’이라는 것을. 모든 것이 대충이었다. 손 씻기도 대충, 사회적 거리 유지도 대충, 생각도 대충…. 이제는 나 스스로 면역주치의가 돼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환경 문제나 생태계의 파괴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또다시 찾아올 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환경 지킴이가 돼야 한다. 나는 확실히 배웠다. 공생과 공존이 상생(相生)의 길이라는 것을.나는 배웠다. 가장 큰 바이러스는 사스도 코로나도 아닌 내 마음을 늙고 병들게 하는 절망의 바이러스라는 것을. 나는 배워야 한다. 아파도 웃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아니 그게 진정한 인간 승리임을. 나는 기도한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안코라 임파로.”(Ancora imparo)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이탈리어다. 세기의 천재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비롯해 수많은 명작을 남긴다. 많은 세월이 흐른다. 인생의 황혼 녘인 87세 때 자신의 스케치북 한쪽에 남긴 글이다. 내 나이 60을 넘겼다. 그래, 우리는 모두 살아야 한다. 잘 살기 위해 배워야 한다.“안코라 임파로!”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살아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3-31
  • 내 백성을 구별하리라
    ▲이정기 목사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될 때, 제일 먼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세기를 띄워 대피시킨 나라가 미국이다. 그리고 연이어 프랑스, 호주, 영국, 일본, 한국이 전세기를 띄워 대피시켰다. 자기 나라 백성이기에 보호한 것이다. 그리고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나라들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켰다. 북한, 대만, 베트남, 필리핀, 인도, 러시아, 몽골, 말레이시아, 싱가폴, 미국, 홍콩, 호주, 이스라엘, 뉴질랜드, 많은 나라들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켰다.일찍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킨 대만이나 러시아 베트남 같은 나라들은 확산이 더딘 반면에,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후베이성에 한해서 금지한 나라는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래서 이제는 세계 180개 국가가 한국발 여행객의 입국을 금지시키는 상황이 되다. 그래서 인천 공항이 텅텅 비어있다. 박항서 감독으로 인해서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베트남 마저도 한국사람들을 피하고 있다. 호텔에서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방을 주지 않고 있다. 유럽도 안일하게 대처하더니 지금은 중국보다 확진자가 더 많아졌다. 이제는 유럽에 있는 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애써야 할 상황이다. 끝까지 힘써야 한다. 대한민국 백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라들도 자기 백성들을 구별한다.  하나님도 자기 백성을 구별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실 때 애굽의 바로왕이 순순히 보내주지 않자 애굽에 재앙을 내리신다. 모세가 지팡이로 하수를 치니 피로변한다. 지팡이를 잡은 손을 운하와 못위에 펴니 개구리들이 올라와 애굽땅을 덮는다. 그런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재앙인 피와 개구리 재앙은 애굽의 술객들도 따라한다. 그러나 세 번째 재앙은 사전 경고도 없었고, 애굽의 술객들도 따라하지 못한다. 지팡이로 땅의 티끌을 치니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생축에게 오른다. 그때서야 애굽의 술객들이 바로에게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출8:19> 고 고한다.  그런데 네 번째 재앙부터는 양상이 달라진다. 애굽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하셔서 애굽 땅에만 재앙을 내리신다. 출 8:20-23절을 보면 '내 백성'이라는 표현이 4번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다. '내 백성을 보내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애굽땅에 파리떼가 가득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땅은 구별하여 파리가 없게 할 것이다.' 내 백성을 특별하게 구별하겠다고 말씀하신다.구별하신 이유는 단순하다. '내 백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다. 사 4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너는 내것이라고 소유 삼아주셨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물가운데 지날때에 물이 침몰치 못하도록, 불가운데 지날때에 불이 사르지 못하도록 지켜주시고,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신다고 말씀하셨다. 다섯 번째 재앙인 가축들이 전염병으로 죽는 재앙에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다.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않았다.<출9:6절>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이 애굽의 모든 사람과 짐승과 밭에 있는 모든 채소 그리고 모든 나무를 꺾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다.<출9:25-26절> 아홉 번째 흑암 재앙이 애굽 온 땅을 덮어 사람들이 3일동안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다.<출10:22-23절> 마지막 열 번째 재앙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었다. 처음 난 짐승들까지 다 죽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개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출11:5-7절> 하나님께서 애굽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를 구별하셨다. 그래서 애굽땅에 재앙이 있을때 고센땅에는 없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구별해주시는 것이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구별해주시는 것이 축복이다.  구별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출애굽기 20장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율법을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상 사람과 구별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먹을 것과 먹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 주셨다. 취할것과 취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주셨다.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주셨다. 날도 구별시켜주셨다. 사람도 구별시켜주셨다. 장소도 구별시켜주셨다. 언어도 구별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것도 구별시켜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십일조이다. 아무리 바빠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주일성수와 기도생활이다. 아무리 힘든 문제가 있어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찬송과 감사이다. 이것이 구별된 삶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다.  성경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씀이 많이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진실하신 하나님 등 많이 있는데 가장 많이 쓰여지는 말씀은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성도'는 '거룩한 무리, 거룩한 백성'이란 뜻이다. 이 "거룩"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코데쉬", 헬라어로 "하기오쉬네"라고 하는데 "구별되다"란 뜻이 있다. 그러므로 구별되게 사는 것이 거룩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구별하신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별하신다. 예배드리는 자와 예배 드리지 않는 자, 순종하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 기도하는 자와 기도하지 않는자, 충성하는 자와 게으른 자, 양과 염소를 구별하신다.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신다. 천국에 갈 자와 지옥에 갈 자를 구별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은 특별히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건져주시고, 응답하시고, 축복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구별되게 살자. 그래서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많이 받으며 살자.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3-30
  • 하나님이 설계하신 교회 모습은 ‘공동체’
      포항중앙침례교회 성도들이 지난 1월 15일 경주 켄싱턴리조트에서 개최된 전교인 수련회에서 함께했다.  교회는 1년에 두 차례 전교인 수련회를 진행한다. 포항중앙침례교회 제공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너무나 필요한 곳이고 동시에 중요한 곳이다. 안타깝게도 갈수록 교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교회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다 보니 교회를 쉽게 생각하고 이 교회 저 교회를 옮기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설교를 잘하거나, 특별한 무엇을 가진 교회가 생기면 많은 사람이 그런 교회로 수평 이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수평 이동이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그런데 이제 수평 이동 정도는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이유는 아예 교회를 안 나가는 교인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가나안(안 나가)’ 교인들이 많은데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자를 망하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이미 우리 시대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불필요한 곳으로 생각하고 있고 심지어는 교회를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까지 있다. 과연 교회가 필요 없거나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그런 곳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 1:22) 에베소서 1장 20~2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후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으며 또 교회가 그분의 몸이 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구원 역사를 완성하신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는 말은 구원과 교회가 별개가 아니라 구원과 교회는 연결되는 것이며 한 덩어리라는 말이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교회의 일원이 돼야 한다. 이것이 정상이다. 이처럼 구원받은 사람에게 교회가 필요 없을 수 없기에 구원받은 후 교회가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주셨다. 신자에게는 교회가 있다. 교회는 영적인 가정과 같다. 갓 태어난 영적인 유아도 영적인 부모의 양육과 형님 오빠의 도움을 받아 건강하게 자라며 동시에 내면의 상처도 치유 받고 모난 인격도 다듬어간다. 교회는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배려와 축복이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교회가 이런 곳이기에 교회에 속해 지체로 살아가는 사람과 교회 없이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만약 교회가 없다면 이 악한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그런데 교회에 속한다는 말의 의미는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구원을 받은 모든 신자는 몸 안에서 서로 연결돼야 한다. 몇 사람이 모이든 교회는 서로 연결이 되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태생적으로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공동체성을 추구하는 교회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는 당연히 한 몸, 즉 공동체여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설계하신 교회의 모습이다.“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교회는 마디를 통해 모든 사람이 연결되고 결합돼야 한다. 그래서 하나가 되고 진정한 의미에서 한 몸이 되어야 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나와 한 몸을 이루는 지체이기에 나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이다. 그가 존재해야 내가 존재할 수 있고 그가 건강해야 나도 건강할 수 있다. 그래서 신자는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책임감을 가지며 또 연결돼야 한다.그런데 연결이 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인격적으로 ‘공사 중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사 중인 사람과 지내는 것은 불편하고 힘이 든다. 그러나 불편해도 견뎌야 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 되어 사는 법을 익혀가는 곳이 교회다. 교회 안에서는 용납 용서 오래참음 겸손 온유라는 단어가 늘 현실적인 단어가 된다.이 과정을 견디면서 연결해야 한다. 이렇게 연결이 되면 각 지체가 분량대로 역사하여 몸이 자라게 되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두 번째 기초가 된다.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는 옆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만 직통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교회가 조금만 어려워져도 떠날 생각부터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이 많으면 교회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한국교회는 교회의 본질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빨리 가려 하지 말고 모든 신자에게 교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닫게 해야 한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면 잃어버린 교회의 건강성을 되찾게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3-27
  •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시각각 어려움이 더해지고 있다. 확진자와 사망자의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행정명령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거리는 날로 황량해지고 자영업자들은 계속 문을 닫고 있다.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한지는 꽤 여러 날이 됐다. 500명 이상 모일 수 없다고 한 지 며칠이 안 돼 50명 이상 모일 수 없다고 했다. 필자가 사는 미국 뉴욕의 상황이다. 뉴욕에 이웃한 뉴저지는 현재 야간 통행금지 중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니, 하나님만 아신다.필자가 섬기는 퀸즈장로교회는 50명으로 숫자를 제한해 사순절 새벽예배를 계속 드리고 있다. 매일 예배를 드리며 미국 대통령과 정부, 한국 대통령과 정부, 각 나라의 의료진과 환자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이럴 때 교회가 사회적 거리 두기에 앞장서며 집에 머무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왜 안 듣겠는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책임과 사회의 안전을 아우르는 의견임에 동의한다. 이런 위기의 때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 있고, 의료진의 생명을 건 역할도 있다. 그리고 교회의 역할도 분명하다.하늘의 문을 두드리며 자복하고 긍휼을 구하는 기도는 교회의 독특한 역할이다.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겠지만, 정부의 방침을 준수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지키심을 구하며 모여서 기도하는 길을 간다.아무튼, 숫자 제한 때문에 예배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다. 성도들은 너무나 예배를 그리워하고 있다. 눈에는 주렁주렁 눈물로, 목에는 타는 목마름으로 예배를 갈망한다. 그렇다. 예배는 갈망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예배를 별 갈망 없이 드린 적이 많았는데, 갈망이 없는 자는 예배자로 적합지 않음을 이번 기회에 온몸으로 깨닫게 됐다.예배자라면 하나님이 초청하시는 영광스러운 예배에 갈망으로 응답하며 나가야 한다. 영혼의 갈망은 물론 육체의 앙모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1~2)예배는 갈망이다. 특별히 무엇을 갈망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임재(presence)를 갈망해야 한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편재(遍在)하신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임재하시지 않으신다. 예배드리면서 나를 갈망할 수 있다. 내가 만족할 예배, 내 필요를 충족하게 해줄 예배, 나를 위로할 예배를 갈망한다. 일견 그럴듯하지만, 예배의 갈망은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임재하신다. 하나님의 임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간이 “쉭쉭” 소리를 내거나 눈물을 쥐어짜면서 조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만들려고 조작하는 것과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전심으로 갈망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임재는 땅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말씀 가운데, 찬양 가운데, 기도 가운데, 성례 가운데, 그리고 모든 예배 순서 가운데 하나님은 다양하게, 강력하게, 따듯하게 임재하신다. 그 임재는 나를 압도해 반드시 나의 생각을 충만케 하고 나의 감정을 뜨겁게 하며 나의 의지를 새롭게 한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나의 전(全) 존재가 ‘업그레이드’ 되므로 명백히 알 수 있다.복음이 확실하게 이해되고 말씀에 찔림이 크고 회개가 쏟아지고 감사가 넘치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삶이 전개된다. 하나님의 임재는 특정 교회와 어떤 시대의 큰 부흥을 통해서도 확실히 알 수 있고 볼 수 있다. 예배는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갈망하는 것이다. <미국 퀸즈장로교회>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3-24
  • 신앙·신학·성령 3가지 맞아떨어질 때 선교 역사 일어나
    서삼정 목사와 윤옥자 사모가 지난달 4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터커 아틀란타 제일장로교회 앞에서 44년 이민목회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아틀란타 제일장로교회’(서삼정 목사)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터커에 있다. 부지만 8만9030㎡(2만6930평)인데 정문에서 1㎞의 숲길을 더 들어가야 2000석 규모의 예배당이 나온다.서삼정 목사는 1976년 애틀랜타에 한인이 이민을 시작할 때 이곳에 왔다. 서 목사는 “8가구와 함께 교회를 개척했는데, 이민자나 유학생이 왔을 때 공항 픽업부터 임시 거주지 마련, 운전면허 취득, 구직, 병원, 교통사고 처리 등 미국 생활 전반을 도왔다”고 회고했다.이어 “최근 들어 한인 이민자가 줄고 있는데, 한국에서 삶의 질이 높아지고 미국 이민정책이 까다로워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이민교회도 이민자의 유입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한국인을 포함해 예수를 믿지 않는 다수의 이민자에게 복음을 전해야 희망이 있다”고 설명했다.서 목사는 총신대가 캠퍼스를 서울 동작구 사당로로 옮기기 전인 남산 시절 신학을 공부했다. 1964년 서울 배재고 운동장에서 복음화대회가 열렸는데, 서울 충현교회에서 열린 마지막 날 집회 때 선교 서원을 했다.그는 “마지막 날 집회 강사가 자신의 교회가 선교사 300명 파송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간증했다”면서 “그때 ‘하나님, 저는 선교사 350명을 파송하겠습니다. 세계 복음화를 이루실 때 저를 좀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고 회고했다.해군 군목으로 제대한 서 목사가 약사였던 아내 윤옥자 사모와 이민을 결심한 것은 선교 때문이었다. 서 목사는 “70년대 초반 한국은 경제력이 낮아 외국에 선교사를 파송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면서 “전략적으로 한국의 인적 자원과 미국의 경제력으로 선교사를 파송해야겠다는 생각에 미국행을 결심했다”고 했다.서 목사는 개척 초기부터 이스라엘 선교사를 후원했다. 1982년 인도네시아에 단독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250여명의 선교사를 돕고 있다. 중국 인도 볼리비아 등 31개 선교지에 교회를 개척했다.그는 88년부터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C, Korean World Mission Council for Christ)를 통해 미주 한인교회의 세계선교 운동을 이끄는 목회자 중 하나다. KWMC 대표의장을 4차례 역임했으며, 3000~5000명이 모이는 한인세계선교대회를 아주사퍼시픽대와 휘튼대 등에서 개최했다. 선교운동가로 미주 한인교회에 선교의 불을 붙이는 중추적 역할을 한 것이다.서 목사는 “지금까지 40개국에서 50회 이상 선교사 영성 수련회를 인도했는데, 사역에 지친 선교사를 말씀으로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서 “수백만 달러가 투입된 KWMC 대회를 미주 한인교회와 함께 개최했는데, 가장 큰 보람은 4000명이 넘는 한인 2세가 선교사로 지원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신앙, 신학, 성령의 역사라는 3가지 요소가 맞아떨어질 때 선교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한국과 미주지역 한인교회가 선교운동보단 자체 프로그램에 치중하면서 선교의 열정이 식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서 목사는 “선교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한국에서 이제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움직이고 있다”면서 “교회가 영적으로 약해질 때 선교 흐름이 더욱 빠르게 다른 지역으로 움직인다”고 말했다.서 목사가 미국 목회 44년에서 강조한 것은 ‘성령과 말씀이 통치하는 교회’다. 서 목사는 “처음 이민 왔을 때 막노동 등 이민자들이 겪는 밑바닥 생활부터 똑같이 했다”면서 “그때 이민자의 애환을 피부로 체험하며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목회자 개인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에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이어 “목회자는 자식이 잘못돼도, 잘해도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으로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면서 “목회자는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께 순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미국장로교회(PCA) 소속인 교회의 비전은 ‘선교사 350명 파송, 2050 다음세대 세계주역’이다. 그는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성경 구절을 교실에 게시할 수 없게 되고 성경공부와 기도가 금지된 것은 1961년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때부터였다”면서 “이처럼 지도자 한 사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교회는 2050년까지 우리 자녀들 가운데 미국과 세계의 각계에서 탁월한 지도자가 나와 세계 복음화에 앞장서도록 밤새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비전 아래 차세대를 키우기 위해 세미나실 체육관 북카페 등을 갖춘 ‘2050 비전센터’를 2009년 세웠다.서 목사는 ‘영성이 살아야 예수 믿는 맛이 난다’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예수 믿는 맛이 난다’(두란노) 등 영성 관련 책을 다수 저술했다. 그는 “조만간 후임자에게 목회 리더십을 이양하는데, 제2의 사역으로 선교에 매진할 예정”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3-24
  • ‘미스터트롯’이 한국교회에 주는 도전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지구촌 모든 사람이 공포에 떨고 있다. 그런 공포는 우리나라에서 더 극대화되고 있다. 지금은 해외 어느 나라로도 피할 곳이 없다. 하물며 국내 어느 곳이라고 안전하겠는가. 사람도 믿을 수가 없다. 심지어는 자기 가족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은 교회도 믿을 수 없는 곳이 돼 버렸다.코로나 위기가 끝나면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공포는 철저히 자기중심의 사회를 이루게 할 것이다. 집단적인 공동체 문화는 철저하게 무너지고 개개인 중심, 현물 중심의 사회로 변하게 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교회는 영적인 회복을 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약해져 버렸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미스터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을 아는가. 미스터트롯은 방송 역사상 예능프로그램 중 최고의 시청률을 올린 새로운 포맷 방송이었다. 오죽하면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미스터트롯을 보는 재미로 세상을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겠는가.우리는 트로트에 아주 익숙하다. 아무리 유명한 트로트 가수가 노래를 불러도 “아, 저 가수, 저 노래” 하며 당연시했다. 그리고 은연 중 트로트는 올드 포맷이 됐고 전형적인 노래로 여겨졌다. 그러나 방송사는 전혀 다른 형태의 트로트, 즉 21세기형 새로운 트로트의 포맷을 구상했다.이 프로그램을 준비하는데 50여명의 인력이 투입됐다고 한다. 그 인력이 프로그램을 설계하는데 3개월, 참가자를 면접하는데 3개월이 걸렸다는 것이다. 모두 1만2000명이 지원해 그중 101명을 선발했다. 선발기준은 노래도 잘해야 하지만 눈물겨운 사연과 감동의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그리고 이 101명을 집단 합숙을 시키며 새로운 감성과 이야기를 입혀 노래를 부르도록 훈련을 시켰다. 더 중요한 것은 지상파방송이 간과했던 부분을 종편방송이 황홀한 감동과 전율의 프로그램으로 제작해낸 것이다.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으면 시청자를 3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게 할 정도로 사로잡았겠는가. 최종결선에서 700만명이 넘게 투표하다 서버가 다운돼 버릴 정도였다.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거다!” 하고 무릎을 쳤다. 어느 곳으로도 피할 수 없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갈수록 진짜 믿을 수 있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가 다시 그런 곳이 되게 할 수는 없을까. 일제강점기에 교회가 민족의 소망이었고 산업화와 근대화 시대에 교회가 사람들의 위로처, 피난처가 됐던 것처럼.문제는 교회의 예배와 메시지에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당연하게 예배를 드려왔다. 당연하게 드렸던 예배는 그 소중함과 가치를 잃어버리게 했고 강단의 메시지 역시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성경공부나 제자훈련도 어느새 매뉴얼화되고 프로그램화됐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코로나 위기에 이렇게 교회의 예배가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한국교회도 21세기형 새로운 포맷의 교회로 거듭나 보자. 지금껏 당연히 드려왔던 예배를 더 새롭고 전혀 다른 감동의 예배로 바꾸어 보자. 설교에도 다시 한번 생명의 동력을 불어넣어 보자.지금은 온라인예배의 찬반을 논하기보다 우리 자신이 어떻게 변화하느냐를 고심해야 한다. 같은 교회, 같은 예배, 같은 설교자, 같은 교인이라도 의례적인 매뉴얼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포맷,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마인드로 다시 태어나 보자. 그럴 때 한국교회는 개인중심, 현물중심을 넘어서는 새로운, 그리고 진정한 영적 공동체로 비상할 것이다.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예장합동 부총회장)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3-23
  • 팬데믹 위기와 기독교
      ▲김명전 대표이사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다. 감염된 국가가 120여개 국,감염자도 13만 명에 이른다. 코로나19 감염자가 가장 많은 국가는 현재 중국, 이탈리아, 이란 순이다. 21세기들어 5번의 대형 감염병이 발생했다.첫째는 2002년 중국 광동성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다. 두번째는 2009년 3월에 북미대륙에서 발생한 신종 인플루엔자(H1N1)로 214개국에서 최고 20만 3,000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어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메르스 코로나(MERS-CoV)와 2014년 서아프리카의 치사율 60% 에볼라(ebola)가 발생했다. 그리고 2019년 코로나19다. 바이러스 위기가 다시 왔다.코로나19의 특징은 빠른 전파속도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니얼 퍼거슨 교수는 이 현상을 ‘네트워 크 효과’로 설명했다. 세계가 하나의 글로벌 공동체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사회연결 망’이 감염병의 확산 범위를 빠르고 넓게 하는 것은 확실하다.퍼거슨 교수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감염병으로 인한 “네트워크 효과로 세계 제조업의 공급망(글로벌 가치사슬)이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방역을 위해 경제교역과 여행 등 국제 교류를 중지한 결과다. 코로나 19는 다가 올 바이러스 대재앙을 예고한다.바이러스는 경계가 없다. 국경도 면역망도 그 앞에서는 무력하다. 인간의 방역체계보다 빨리 진화한다. 이제 일상적으로 바이러스 감염 공포 속에 살아야 한다. 바이러스는 기후에 민감하다.지난 겨울은 역대 최고로 따뜻했다. 평균 기온이 3.1℃로 1973년 이래 가장 높았다.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러시아, 호주, 노르웨이, 브라질은 이상고온에 시달렸다. 이탈리아, 이집트, 파키스탄, 태국, 캐나다는 이상저온과 폭설에 갇혔다. 포루투갈, 스페인, 프랑스, 호주는 폭풍과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기후 현상이다. 그때마다 바이러스도 함께 왔다.기후변화가 악(바이러스)의 연결고리다. 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사점을 준다. 바이러스가 중국의 산업 거점도시를 공습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 제조업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올 겨울은 한반도에서 미세먼지 고통이 줄었다. 깨끗한 겨울 공기를 누렸다. 에너지와 청정공기연구센터(CREA)가 2020년 1월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이 25% 줄었다고 발표했다.코로나19로 많은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에너지 소비가 줄고 항공, 육상운송 등 물류가 대폭 감소한 결과로 분석했다. 바이러스가 공기오염을 줄인 역설이다.코로나19가 일으킨 팬데믹 사태는 인류 문명사의 획을 긋는 분기점이다. 전혀 다른 사회로의 진화를 예고한다. 그 분기점을 세울 단초는 인류 자신에서 찾아야 한다. 1998년 퓰리처상을 받은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총·균·쇠’에서 인류의 문명화가 가져온 질병, 각종 변종 바이러스의 대유행을 예견했다.인간과 동물의공통전염병(인수공통전염병)출현이다. 인간이 노동력과 식량 확보, 즐거움을 충족하기 위해 동물과의 동거를 시작하면서다.창조의 질서, 자연의 섭리는 인간에게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절제라는 예절을 요구한다. 특 히 종교적 차원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단 신천지를 공습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코로나19가 한국 기독교의 위기 상황을 들춰 내 보여주었다.신천지로 인해 건강한 기독교, 교회성도들이 감염되어 투병 중이다. 한국교회의 예배까지 중지시켰다.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일까? 이 신호를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금은 신천지와 같은 이단 바이러스가 오염시킨 복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다. 종교의 힘만이 인간의 탐욕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역설이다.코로나19는 종교를 넘어 인류 문명사를 새롭게 재단할 것 같다.인류의 문명화, 산업화는 창조의 질서인 자연 생태계를 교란시켰다. 수억 년의 세월이 농축된 화석연료를 캐내어 에너지로 쓰고 있다. 그 열이 지구를 따뜻하게 만들고 남·북극의 빙하를 녹였다. 지구 온난화다. 석유·석탄과 빙하 속에 잠들어 있던 바이러스를 깨웠다.돌연변이 바이러스들이 속출하고 있다. 기후변화다. 글로벌바이러스네트워크(GVN)는 “사람과 동물, 자연생태계를 하나로 연결하여 다층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지구 생태계는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어 있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이러스가 가리키는 곳을 봐야 답이 보인다. 기후위기다. 기후변화협약만으로는 부족하다. 바이러스·세균의 무기화도 금지하고 감시해야 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국제감염병협약’ 같은 강제력 있는 기구와 국제법이 필요하다.기후와 환경오염, 세균과 바이러스의 파괴력에 공감하고 방법을 찾자. 인류와 생명의 터전, 지구를 지킬 유일한 방법이다.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종교, 기독교의 소명 또한 거기에 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3-23
  • “십자가·부활의 역사 믿으십니까”… 교회는 거듭 확인해야
    포항중앙침례교회 부설 방과후학교인 ‘솔로몬학습관’ 어린이들이 지난 1월 영어로 성경 구절을 암송하고 있다. 포항중앙침례교회 제공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한 사람의 구원에 대해 확인하는 일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구원에 대해 질문하는 곳이 없다. 따라서 영혼 구원을 목적으로 세워진 교회는 구원에 대해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이 일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회가 점점 구원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예수님 믿는 것을 대충 넘기고서는 교회가 건강해질 수 없다. 불신자는 신앙의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어금니를 깨물어도 불신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다.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요즘 신자들은 헌신하지 않는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말씀의 능력이 시대가 바뀌었다고 달라지는 걸까. 어느 시대를 살든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게 생명이요 능력인데….’ 헌신하지 않는 것은 헌신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믿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교회의 기초는 한 사람의 구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자신의 구원과 신앙을 어깨너머로 배우는 사람이 많다. 누군가로부터 직접 양육을 받아 구원과 신앙을 배워가야 하는데 그렇게 해 주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보니 구원과 신앙을 눈치로, 어깨너머로 배워서 자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실제로 구원의 복음을 개인적으로 전해 듣거나 설교 시간을 통해서 듣기보다는 일정 기간을 충실하게 출석해서 누군가가 침례(세례)를 받을 때가 됐다고 말해줌으로써 침례 문답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과해 침례를 받음으로써 구원을 확인하는 과정을 지나간다.특히 문답은 거의 요식 행위요 침례는 종교의식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그리고 진정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는지를 붙잡고 씨름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첫 출석에서 신자로 인정받는 과정이 의례적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 침례를 받으면 구원받은 것으로 인정해서 그다음부터는 아무도 구원에 관해서 묻지 않는다. 그 후 구원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 있어도 묻기가 민망해서 묻지 못한다. 구원의 복음이 잘 믿기지 않아도 솔직하게 말하기가 어렵다.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기초를 이루고 있는 교회는 기초가 부실하다. 이런 교회에는 복음에 헌신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드리는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기초가 개선되지 않으면 교회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한 사람을 예수 믿게 하는 일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나간 죄인이며 그래서 지금 자신이 구원이 필요한 상태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 서는 데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자신이 죽을 죄인임을 깨닫는 이 과정을 교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직면함이 없이 대충 넘어가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죄가 누군가가 죽어야만 해결이 되는 심각한 죄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는 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와 부활은 그럴듯한 교리가 되고 만다.우리가 죽을 죄인이 아니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다. 이렇게 허물과 죄로 인해 죽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유대 땅에 오셔서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과 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진실로 믿는 자리에 서야 한다. 이것을 진실로 믿지 않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이다.그런데 이 사실은 이성적으로는 믿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구원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하나님을 떠나 산 죄를 회개해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계획에 따라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주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임을 진실 되게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한다. 이것이 구원이다.이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반드시 삶에서 뚜렷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 사람들이 교회의 기초를 이룬다면 교회 기초는 튼튼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교회는 건강할 수밖에 없고 또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우리는 이런 교회를 만드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그러기 위해선 먼저 한 영혼의 구원과 성숙을 위해 붙들고 씨름하는 사람들을 길러야 한다. 한 사람을 붙들고 구원을 위해 씨름해서 그가 구원을 얻게 된다면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붙잡고 씨름하는 자리에 설 것이다. 이처럼 한 사람의 구원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첫 번째 기초가 된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3-18
  • 수천 번 망설이게 한 시청 앞 설교
    제주새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2014년 버스정류장에서 전도활동을 펼친 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개척을 하고 2년이 지난 2007년 5월이었다. 말씀을 읽는데 문득 ‘교회이름을 변경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당시 교회이름은 ‘제주교회’였다. 교단마다 제주교회가 하나씩은 있었는데, 심지어 이단도 제주교회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다.이사야서 60장을 묵상하는데 이 말씀이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를 향한 예언이라는 감동이 있었다. ‘이거다.’ 그래서 교회명을 ‘새예루살렘’으로 하고 교단본부에 명칭변경 신청을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의견이 의외였다. “너무 이단스럽지 않습니까.”다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그것은 나의 이름이다’라는 마음을 주셨다. ‘그러고 보니 이긴자 베뢰아 다락방 하나님의교회 등 성경의 좋은 이름을 이단이 가져다가 제 것처럼 사용한다. 그래서 오히려 교회가 꺼리는 것이 됐다. 하나님의 것을 교회가 되찾아야 하지 않겠나.’교회 명칭을 변경하고 장소도 옮겨야겠다는 마음을 주셨다. 성도들에게 2008년 4월 교회를 옮기겠다고 선포했다. 건물주에게도 통지했다. 그러나 계약 만료 1주일 전까지 임차할 장소는 구해지지 않았다.벽에 붙여 놓은 제주도 지도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며 기도했다. “주님 이 넓은 제주에 이 작은 교회 하나 갈 곳이 없습니다. 다들 교회를 꺼립니다.”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음성이 들렸다. 마치 누가 내 귀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깜짝 놀라 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아무도 없었다.그때 아내도 사택에서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어떤 페이지의 하단을 보라는 감동을 주셨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차를 타고 지역정보지를 들여다보며 전화를 하고 다녔다. 결국, 제주시청이 내려다보이는 건물을 임차했다. 계약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무심코 전화해서 계약한 장소가 아내가 기도 때 보았던 정보지 하단에 있었던 것이다.2008년 4월 교회를 이전했다. ‘주님,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신다고 깨닫게 됐다. 먼저는 이 땅을 위한 중보기도, 그리고 시청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것이었다.기도야 교회에서 하면 되지만, 제주시청 앞에서 전도가 아니라 설교하라는 것은 순종하기가 참 어려웠다. 주님은 이사야 62장 10절을 보여주시며 성문에서 이 땅의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올 길을 닦는 것을 말씀하셨다. 또 구약의 선지자와 신약의 예수님과 사도들이 야외에서 많은 설교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감리교를 시작한 존 웨슬리 목사님도 야외에서 설교하지 않았던가.먼저 매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제주와 국가, 열방을 위한 중보기도를 시작했다. 그 시간은 계속 깊어졌고, 하나님께서 중보기도자들을 보내주셔서 10명 이상이 전심으로 기도했다.문제는 시청 앞 설교였다. 두려웠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주신 마음에 순종은 해야 하겠기에 주일 성도들에게 “2009년 9월부터 매주 토요일 1시에 시청 만남의 광장에서 설교하며 전도하겠다”고 선포했다.9월 첫째 토요일이 됐다. 새벽부터 수천 번 망설이고 고민하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시청으로 향했다. 따라와 중보기도 하겠다는 아내도 마다했다. ‘거참,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야.’ 시외버스가 다니는 정거장 앞 벤치에서 30분을 망설이다가 신발을 벗고 올라섰다. 그다음부턴 기억이 나지 않는다. 30분 동안 목이 쉬도록 무엇인가 외쳤다. 사람들이 수군댔다. 여기저기 욕이 나왔다. 그래도 순종했다. 그날부터 꼬박 2년 동안 매주 토요일 그 벤치에 올랐다.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그날 이후 그렇게도 전도가 되지 않던 교회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순종할 때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그렇게 체험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3-18
  • 팬데믹보다 무서운 인포데믹…불안·혼란 야기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있다.     "치료가 돼도 폐 손상이 너무 심각", "금년 4월까지 ○○투어, △△투어를 제외한 나머지 여행사는 모두 부도. 정부에 인건비 50% 보조 요청."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기획재정부 주관 제약회사 사장들과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회의 요약 내용'이란 제목으로 퍼진 글의 일부다.불안감을 부추기는 허위 정보가 넘쳐나는 이른바 '인포데믹(infodemic·정보감염증)' 현상이 코로나19 대응을 한층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16일 여러 관계부처가 그간 발표한 내용을 종합하면, 허위 정보가 불필요한 혼란과 불안을 키우는 사례가 늘고 있다. "XX번 환자가 퇴원을 요구하며 간호사 등의 마스크를 벗기고 몸싸움을 시도했다", "신천지 신도들 다수가 병원으로 몰려와 업무 방해 중이다", "모 병원에 감염의심자가 있는데 병원에서 방치하고 있다" 등의 소문이 지난달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서 퍼졌으나 경찰이 확인한 결과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사례가 꽤 있다거나, 항생제를 미리 사둬야 한다는 출처 불명의 글이 '서울의대 졸업생의 의견'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에 유포되기도 했다.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사실과 다른 정보로 혼란을 주는 글이라며 삭제 및 접속차단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가짜뉴스가 '사람들의 불안에 기생하는 독버섯'이라고 지적한다.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마음의 여유가 충분히 있을 때는 정보의 신빙성을 따져볼 수 있지만 불안하면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고 말했다. 검증된 정보가 적다는 신종 감염병의 특성도 부정확한 정보 범람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처음 겪는 바이러스이다 보니 믿을 만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며 "정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럴듯한 소문을 들으면 계속 퍼 나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3-17
  • “3백만 원 벌금? 3천만 원 낼 정도로 예배 드리라”
        예장 통합 총회장이면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공동대표회장인 김태영 목사(부산 백양로교회)가 15일 주일예배 설교를 통해 전염병 위기 상황이라 할지라도,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해 종교의 자유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니엘의 감사기도’(시편 100:1~5, 다니엘 6:10)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김 목사는 “우리나라 헌법 제20조를 보면 대한민국 국민은 그 기본권으로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했다”며 “그리고 제21조에는 국민에겐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있다고 되어 있다”고 했다. 이어 “반면 헌법 제37조를 보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며 “그러나 단서가 달려 있다.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헌법 제37조에 근거해 만들어진 법률이 바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다. 도지사나 지방의 시장과 군수들이 바로 이 법률의 제49조를 가지고 (예배를) 제한할 수 있다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교회에도 300만 원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해석”이라며 “그럴 경우에도 국민의 기본권인 종교의 자유는 침범할 수 없는 것이다. 협조는 구할 수 있지만 어떤 공권력도, 어떤 행정력도 기본권은 침해할 수 없다”고 했다.   김 목사는 특히 “우리 교단 안에서도 여러 목사님들이 지역에서 ‘예배 드리면 시장이나 군수로부터 300만 원 벌금 맞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며 ”‘300만 원 벌금 내라고 하면 3천만 원 벌금 낼 정도로 예배를 드리라’고 했다. 그럼 협조할 필요도 없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 왜 정부가 환경적 문제를 신앙적 문제로까지 연결해서 가만히 있는 교인들을 순교자적인 자세로 만들려고 하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아무리 힘을 갖고 공권력이 있어도 함부로 국민의 기본권인 예배의 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김 목사는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교회가 현장이 아닌 온라인 생중계 등의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 걸 이해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 교회 안에서도 ‘예배를 중단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 이런 논쟁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며 “그러나 이것은 에너지 낭비”라고 했다.   김 목사는 “물론 이후에 이것을 신학적으로 정리하겠지만, 대구·경북 지역에서 그 당시 확진자가 수천 명이 났다. 그런데 수백명 수천명이 모이는 교회가 그대로 예배를 드리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라며 “신학적 배경을 차치하고서라도 가족도 이웃도 지역 사회도 있다. 교회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데 막무가내로 예배를 드리면 이 사회에서 교회는 고립무원이 되고 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구·경북 지역 사람들은 지금 비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매일 텅빈 교회당, 쇠문으로 닫힌 예배당을 보면서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우리가 그들에게 ‘왜 예배 안 드리느냐’라고 하는 건 너무나 현장을 모르는 이야기”라고 했다.                
    • 교계뉴스
    • 목회
    2020-03-16
  • 코로나 19보다 더 해로운 불신
          불신을 파고드는 전염병 ▲정재영 교수 지금 우리 사회는 코로나 19의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불안과 염려에 휩싸여 있다. 작년 12월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뒤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이 호흡기 감염질환은 다소 진정기에 들어선 중국과 달리 한국을 비롯한 이탈리아와 전 세계로 확산되는 추세이다.초기에는 비교적 통제가 잘 되었고 확진자가 30명 이내로 유지되었으나 신천지 신자 중에 확진자가 나오면서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 외국 기관에서는 3월 20일에 가서야 바이러스 확산이 절정에 이르고 확진자가 1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지금 추세라면 이 예측이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사실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질병이다. 이미 사스와 신종플루, 그리고 메르스의 발병으로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홍역을 치렀고 인수공동 전염병의 위험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예고된 바이다. 이미 인류 역사 속에서도 다양한 전염병이 발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기도 하였다.문제는 이러한 전염병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우리 사회는 그 치부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를 정쟁화 하면서 서로를 비난하기 바쁘다. 최근에는 의학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연예인들까지 나서서 정부와 의료진을 비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물론 국민 누구나 자신의 의사 표명을 할 수 있고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대해서 감정 표현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뚜렷한 근거도 없이 비방을 일삼거나 지나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불안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최근에는 언론까지도 이러한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고 있는 양상이다. 사회 비판의 기능을 담당하는 언론에서 잘못된 행정에 대해서 문제를 지적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감시의 역할을 하는 것은 마땅한 역할이다.그러나 사실을 보도하고 개관적인 분석을 하기보다는 똑같은 문제를 반복적으로 주장할 뿐만 아니라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보도를 연일 다루는 것은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많은 의료진과 공무원들의 수고에도 물구하고 서로에 대한 불신만 더욱 커지고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쉽게 사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신뢰의 중요성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그의 저서 ?위험사회?에서 성찰과 반성이 없이 근대화를 이룬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커다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몰고 왔다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위험은 성공적인 근대가 초래한 딜레마이며,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요소도 증가하기 때문에, 후진국이 아니라 오히려 선진국에서 위험요소가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예외적 위험이 아니라 일상적 위험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때 크게 이슈가 되었고,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증대되어 이 이론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이러한 일상적 불안감은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근본 문제인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불안은 크게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 요소는 여전히 항존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현재 상태에 대해서도 인간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는 불안감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자연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이 가져오는 불확실성은 더 큰 공포로 다가오게 된다.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중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은 절대로 혼자가 아니며 협력과 연대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서 불안감을 해소하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문제 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 사회학자인 로버트 퍼트남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에 터한 사회자본은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보이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많은 것을 성취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그는 신뢰와 사회적 네트워크가 활성화 된 곳에서는 사람들을 다양한 파트너들과 연결시켜주고, 고급 정보들을 제공함으로써 경제적으로도 앞서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신뢰감은 사람들에게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며, 시민적 연대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정부에서 할 수 없는 사회 곳곳의 문제를 해결하고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그래서 사회 자본이 높은 지역에서는 공공장소도 더 깨끗하고 사람들도 더 친근하며 길거리는 더 안전하게 된다.  신뢰 회복을 위한 교회의 역할 이렇게 신뢰 회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이다. 교회는 스스로 공동체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빈번한 모임과 교제를 통해서 친숙성을 높임으로써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높일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 공동체의 일원인 기독교인들은 서로에 대해 깊은 신뢰를 할 수 있고, 공동체 활동은 이런 식으로 기독교인들이 시민으로서 연대하며 참여할 수 있도록 북돋을 수 있다. 특히 자기 희생의 규범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사회가 혼란하고 어려울수록 사회 곳곳에서 공적인 책임과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전염병의 확산 속에서 주일 예배를 지킬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에 대한 신학적 토론이 벌어지고 있지만, 주일 예배를 지키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신앙 고백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종교 의례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신앙고백이 우리 사회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안고 있고 실제적인 책임의식으로 표현되느냐 하는 것이다. 특정 신앙을 가지는 사람들끼리의 폐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의 본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신앙의 전통과 그 정수를 지키면서도 이 시대와 사회의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국 교회 안에 있는 신앙 공동체들은 깊이 고민해야 한다. 개교회주의는 단순히 각자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지시에 일방적으로 따르기보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일치된 견해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획일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사고하여 창조적인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염려에 낙심하고 있는 이 시기에 신뢰와 연대를 통해서 난국을 이겨낼 수 있도록 모든 신앙공동체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3-16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