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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엽 선교사칼럼)1900년대 - 한·양 절충식 교회건축-Ⅱ

  • 이창엽선교사 기자
  • 입력 2021.10.2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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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안성 구포동성당 까지

                     1900년대 - 한·양 절충식 교회건축-Ⅱ 

서양식 벽돌 쌓기 구조에 한식 기와지붕을 올린 경우다. 초기 개신교는 중국 선교의 경험을 적용한 ‘건물은 토착적이어야 하고 지역 교회가 능히 꾸릴 수 있는 양식으로 지어야 한다.’라는 네비우스 선교방법을 채택하였다. 구조체계가 벽돌 쌓기 구조인 만큼 규모를 크고 높게 할 수 있었고, 지붕은 한식기와를 고수하였으나 처마 돌출이 짧고 처마 곡선이 중국 양식과 유사하였다. 유리를 끼운 양풍 창과 처마· 함석· 물받이· 홈통 등 서양 건축의 의장 요소들을 절충하였다.

 

 

350-1.평양장대현교회모형.jpg

평양 장대현 교회(1/4 크기로 복원됨)-(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 ㄱ자형 팔작지붕의 벽돌 조적조 건물로 남·여를 구별하여 배치하였다.

 

351.성공회 진천성당.JPG

충북진천 진천 성공회성당- 적벽돌

352.청주 수동교회.JPG

청주 수동성당- 벽돌 조적조 구조

353.서울 주교좌성당.JPG

서울 중구 주교좌성당, 벽돌 조적조 구조와 유리창을 설치한 모습

354.익산 나바위 성당.JPG

익산 나바위성당 측면- 조적조 구조와 콘크리트


356.안성 구포동 성당.JPG

안성 구포동 성당, 벽돌 조적조와 유리창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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