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7-0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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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땅에 태어나 1만 명은 전도하고…”
        김갈렙 목사(UBF 세계선교부)     UBF전임간사로 25년째 사역하고 있는 김갈렙 목사를 최근 인터뷰했다. ‘하버드대 공부벌레’를 보고 사람들을 변호하는 일이 인생에 보람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간 성균관대 법대는 청년들을 살리는 선교의 필드가 되었고 세계를 섬기는 일에 쓰임받고 싶다는 꿈은 세계선교를 돕는 사역자로 쓰임받게 하셨다고 한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UBF 소개 부탁드려요. “UBF(University Bible Fellowship)는 1961년 4.19 5.16으로 방황하는 대학생들에게 성경을 통해 인생관, 역사관, 세계관, 가치관 정립과 비전을 품게 하고 청년들이 삶의 방향을 잡도록 돕기 위해 국내에서 시작된 선교기관이다. 현재 국내 82개 지부, 해외 96개국 328개 지부의 캠퍼스에서 대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떻게 UBF에서 선교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 “고등학교 때 폐결핵을 앓고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살려주시면 하나님의 종으로 살겠다’는 서원기도를 했었다. 신학대를 갔어야 했지만 ‘세상적으로도 인정 받는 장로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성균관대 법대에 들어갔다. 신입생 합격자 발표 때 선배님들의 권유로 성경공부를 시작해서 4년 내내 법학보다 성경만 공부하게 되었다(웃음). 그 후 캠퍼스 선교를 하고, 전임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아 신학공부도 하고 간사이면서 목사가 되었다.” -어떻게 간사의 소명을 받고 이 길을 가게 되었나? “언제부턴가 국내사역을 하는 것이 소위 이삭처럼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와이의 운전사 선교사로 가도록 하셨다. 마치 ‘이삭을 바치라, 네가 하나님보다도 야망을 더 사랑하지 않는가’ 하는 도전 같았다. 하나님께 나의 꿈을, 이삭을 바치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썼는데,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아노라’ 하는 성령의 음성이 들렸고, 그 해 UBF 전임사역자로 부르셨다. 대학의 첫 출발부터 순수하게 나를 지켜주시고 서원기도를 지키게 해주시고 전임사역자로 부름 받아서 1996년부터 현재까지 25년째인데, 하나님이 그렇게 부르시려고 연단하고 이삭을 드리도록 꿈을 드리도록 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제가 소망하던 UBF 간사, 책임목자가 되어 선교사를 길러 파송하고 재교육하고 후원하는 UBF 세계선교부장이 되었다. 또한 성균관대 캠퍼스 사역을 하면서 대학생들과 직접 성경공부도 하고, 또 이들을 가르치는 목자들을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또 2010년부터는 북한 선교를 위해서 북한의 굶주린 동포를 생각하며 하루 한 끼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있다.” -사역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보람이 있다면? “어려움은 많았지만 믿음을 배우고 예수님을 배우는 삶이기에 어렵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물론 사역의 열매가 안 보일 때 어려운 건 사실이다. 작년에 혼자 성대 로스쿨에서 밤에 전도하는데 박대와 냉대를 받아서 의욕이 상실되고 슬픈 마음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한 형제가 전화가 와서 좋은 직장에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합격했다고 고맙다고 전화가 왔다. 대학생 시절 방황하며 현실의 삶을 잘 살지 못하던 형제였는데, 그가 기도와 신앙적으로 지도를 받고 생활이 좋아져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형제였다.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는데, 이렇게 내 인생을 통해서 방황하는 한 사람이 예수님과 복음을 알고 쓸모 있는 삶을 살게 된다면 내 인생과 사역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 어거스틴이 방황했지만 중세 천 년의 성경 선생이 된 것처럼, 그런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어릴 때 세계를 섬기는 삶을 살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그 바람들을 하나님께서 이뤄주셔서 30개국을 다니면서 강의도 하고 교제도 하고, 봉사도 하고, 콘퍼런스도 하면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을 하도록 인도하셨다. 청년들을 선교사로 잘 훈련해서 파나마, 사우디아라비아, 브루나이, 타지키스탄 등 12개 지역에서 해외개척을 하고 보냈다. 알래스카, 프랑스, 독일, 중동 어느 대륙을 가도 그들이 역에서 맞아주고 저 대신 가 있다고 생각하며 보람을 느낀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선교활동에는 어떤 변화들이 있나?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된지 약 두 달이기에 (변화를) 얘기할만한 시간은 아닌데, 매주 목요일에 하던 야간전도 등의 노방전도가 중지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접근하는 자체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크리스천으로서 사회적 지탄도 있기에 과도하게 전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닌 것 같아 전도 자체는 쉬고 있다. 그렇지만 온라인으로 학교에 와보지 못한 신입생들에게 대학 투어 영상물을 제작해서 학교소개 영상을 올리고, 온라인으로 초청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전임사역 25년을 하면서 지금의 상황이 큰 위기라고 생각하나? 지금 캠퍼스 선교 상황은 어떤가? “현재 코로나는 완화되고 있기에 이전의 활동에 근접하게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80년대는 민주화운동으로 캠퍼스에 코로나처럼 최루탄 가스 때문에 수업도 못 하고 사람도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임산부 자매들, 사모님들이 최루탄을 뚫고 가서 전도를 했고 많은 사람이 변화되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장애물이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좌절하지 않았고, 그 상황에 맞게 돌파구를 만들려 했고,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신천지와 개신교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코로나 전염병 이상의 장애물로 등장하게 되었고, 복음의 수용력이 떨어진 것이 코로나보다 더 위기라고 생각한다. 민주화 시위할 때는 어려워도 선교가 되고 새롭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 캠퍼스 사역 단체들이 위기 가운데 있다. 그래서 이전부터 생각한 건 개신교가 좀 더 질적인 면과 사회적 이미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엔 플랫폼이 중요하다. 환경적인 플랫폼, 인적인 플랫폼… 사람들에게 신뢰받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고, 한 번 오면 머물고 싶은, 꼭 와야 하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설교, 교회가 인터넷으로 경쟁하고 언제든지 자기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곳을 찾는 때인데,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 오면 정말 다시 와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신앙적 인성이나 서로 사랑하는 분위기, 정확하게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오게 해야 한다. 예수님이 전도한 빌립과 안드레도 있지만, 나다나엘은 빌립을 통해서 베드로는 안드레를 통해서 왔다. 이미 경험한 사람들을 통해서 온 것이다. 관계전도라고 하는데 플랫폼 선교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수님 자체가 움직이는 플랫폼이셨다. 무한경쟁 시대 모든 것이 공개되는 상황에서 이렇게 사람들이 거기에 오고 싶고 붙어서 같이 갈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선교나 교회가 어려워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 하나님께서 이 사역의 주체이시기 때문이다. 사도행전도 사도들이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워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성령께서 연약한 사도들을 사용하셔서 이루신 게 예루살렘 선교고, 또 흩으셔서 박해를 통해서 사마리아 선교를 이루시고 세계 선교를 이루셨다. 사도행전의 반전이 박해자였던 사울의 변화로 완전히 다른 양상이 펼쳐진 것처럼 우리 가운데도 이런 하나님의 반전이 있으리라 본다. 또한 하나님께서 통일문제와 함께 한국을 세계에 제사장 나라로 세우고자 하는 흐름이 있다. 한류나 BTS, 축구, 코로나방역 모범국가 등 북한과 통일만 되면 세계에서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수많은 크리스천과 종교인들이 기도해왔고 그런 흐름 속에 있다. 한국 기독교가 절대 수명을 다한 것이 아니라 연단이고, 가장 어려운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반드시 반전이 있고 제사장 나라로 쓰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 해법은 우리가 정확히 모른다. 부흥이 인위적으로 계획한다고 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뭘 계획하고 있는가 그런 것보다 우리나라에 두신 하나님의 주권이 있음을 믿고 낙심하지 않고 가면 캠퍼스선교나 통일 이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반전의 역사를 이루실 거라 믿는다.” -사람의 위기가 하나님께는 기회라는 말도 있는데, 이번 코로나 사태도 마찬가지일까? “교제와 대면의 일상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느끼고, 공동체를 사모하는 마음도 있고, 발전적인 면들도 많다. 개인적으로 이 기간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개발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골방의 시간이 늘어나게 했고, 교회중심, 일중심, 사람중심인 신앙에서 하나님께로 부르는 초청의 시간이 되었다. 또 기도의 은사와 하나님께 편지쓰기도 많이 하고, 성경공부를 비대면으로 하니 어떤 면에서 더 잘 준비해야 해서 말씀의 은사를 더 개발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신입생들 전도와 활동계획이 궁금하다. “올해는 입학식도 없었고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그전까지 열심히 전도하고 있었기에 이것은 전도보다는 기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기도하는 게 전도의 준비고,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고 성령을 움직이기 때문에 기도도 하나의 선교다. 전도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선교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기간 아까 이야기한 형제의 가정도 같이 성경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고, 해외에 있는 사람들을 누군가 데려오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에티오피아 내시를 보내셨고, 예수님도 제자들을 아버지께서 내게 보내신 사람들이라 하셨다. 바벨론 포로 귀환 때도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선교에 대해선 전도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사람을 보내시는 주권선교이다. 여러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내주시고자 하면 얼마든지 사람은 모일 수 있다고 믿는다. 선교사 자녀들이 한국에 좋은 대학으로 항상 오고 있는데, 그들을 신앙으로 교육 시키고 앞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키우는 일들을 하고자 한다. 제일 중요한 행사인 여름수양회를 가을수양회쯤으로 미루거나 하지 않으려 한다. 코로나가 걷히면 전도를 하고, 사실상 개학이 2학기이에 9월부터 실제 신입생을 만나는 거로 보고 있다. 여름방학은 기존의 리더들을 위한 힐링하고 교육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가을학기 준비 기간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N번방 사건도 있고 건전하지 못한 문화들이 청년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는데, 청년들에게 권할 수 있는 좋은 취미나 문화생활이 있다면? “요즘 스마트폰이나 영상 게임들이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절제가 필요한 것 같다. 저희는 청년들과 매일 잠언을 하루 한 장씩 읽고 채팅창에서 소감을 나눈다. 잠언이 31장까지 있는데 그렇게 12달 하면 잠언을 열두 번 읽게 된다. 잠언이 청년들에게 지혜를 주는데 그 지혜란 분별과 선택이다. 뭐가 더 나은 것인가, 젊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 시간 관리에 대해 가르쳐준다. 또 학생들과 서울의 고궁이나 남한산성 등 역사탐방도 하고, 건전하게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축구나 등산 같은 스포츠도 많이 했다. 책을 많이 읽고, 기독교 서점이나 대형서점에 가서 책 제목만 한 시간 동안 읽고 와도 분별력이 생기고 지혜가 생긴다. 또 기도와 전도를 취미로 삼는 것을 권한다.” -이 시대 크리스천 청년들이 꼭 도전해 봤으면 하는 것이 있나? “청년의 시기에 육체적인 한계에 도전해보라고 하고 싶다. 대한민국 3대 극한 체력 챌린지가 있는데 지리산 종주, 북한산 종주,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 이 세 가지를 하면서 육체적인 한계에 도전하는 인내심을 배울 수 있다. 두 번째 번지점프를 해보면 부활신앙을 배울 수 있다. 새벽기도 챌린지, 전도 챌린지 등 원 없이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미친 듯이… 이 땅에 태어나서 만 명은 전도하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새벽기도를 16년째 하고 있는데, 축구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축구를 열심히 하는데 ‘네가 지금 이럴 때냐? 무릎을 꿇고 내게 부르짖으라’는 말씀을 듣고 축구를 안 하게 되었다. 그 대신 두 다리로 전도를 취미 삼고 기도를 취미 삼게 되었다. 기도할 때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다. 불신자였던 우리 가족이 할아버지부터 예수님을 믿고 그렇게 기도하던 가족구원이 두 다리로 무릎 꿇고 기도하던 때부터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기도가 진짜 취미가 되고 전도가 취미가 되었다.” -새벽기도를 16년간 할 수 있었던 힘은? “왜 해야 하는가 하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저는 캠퍼스 사역이 너무나 어려웠고 의지했던 분들이 다 떠나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헤브론 산지의 거인과 싸웠던 갈렙처럼 오직 믿음 외에는 이것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믿음의 표식,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한다는 증거로 새벽기도를 드리고자 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따라 천 번의 새벽기도를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겠다고 했다. 이걸 통해 영적인 무능을 해결할 수 있다면 만 번의 새벽기도를 드리고 하나님께 가겠다고 했다. 하나님께 가는 그 날도 새벽기도는 하고 간다는 게 목표였다. 또 새벽기도의 원리는 백 번을 하면 천 번을 할 수 있고, 천 번을 하면 만 번을 할 수 있다는 거다. 백 번을 하면 자기 몸이 돼 버린다. 그리고 새벽기도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인커리지먼트가 작동이 돼야 한다. ‘새벽기도가 정말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시간이구나, 그러니까 내가 이 시간을 놓치면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야 소원이 생기고 선순환이 생긴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새벽기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새벽에 일어나서 큐티하고 기도하고 일과를 생각하고 리허설이 된 하루는 끌려가는 하루가 아니라 내가 하루를 주도하게 되어 있고, 기도로 확증된 가운데 하루를 살게 되면 주도적인 삶을 살게 된다.” -가정의 달을 맞아 UBF에서 가지고 있는 성서적인 결혼관에 대해 말해달라. “청년의 시기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가치관을 놓고 성경공부를 먼저 하도록 하고 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다. 조국도 하나다. 아내도 하나다. 하나님도 한 분을 섬겨야 하고 주님도 한 분이시고 사역도 가능하면 한 가지를 할 때 거기서 깊으면서 풍성함이 나온다. 사람도 아내를 내가 선택한 순간,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기관이고, 가정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 됨을 배우는 곳이다. 가정이라는 건 우리 인생에서 엄청난 메시지를 담고 있기에 가정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창세기에 ‘둘이 하나될지라’ 이 연합을 배우는 것에 가정의 의미가 있다. 이 연합 속에는 섬김, 희생 이런 것들이 들어 있다. 이런 결혼의 의미를 모른 채 결혼하면 어려움이 예고되어 있기에, 올바른 결혼관·인간관이 되어 있어야 하고 자녀를 키우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꼭 알아야 한다. 결혼이 아픔이 아니라 하나님이 감춰두신 행복의 비밀들을 깨닫는 그런 곳이 되어야 한다. 또 코로나가 주는 메시지의 첫 번째는 개인 신앙을 가지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가정을 사랑하라이다. 사실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다. 로마서 16장에 ‘로마에 있는 교회들에 문안하라’에서 교회는 가정교회들을 말한다. 가정이 회복되면 2세들도 올바른 신앙을 배우고,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신앙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저렇게 사랑해야 진짜 행복하겠구나’ 그러니까 가정을 통해서 2세도 교육이 된다. UBF에선 가정교회라는 말을 쓰는데, 가정이 교회처럼 선교도 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기에 중요하다. 결혼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결혼의 텍스트가 창세기 2장과 24장이다. 이삭이 아내 리브가를 맞을 때 걱정하는 이삭에게 하나님이 너보다 앞서 가실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삭을 주신 하나님이 이삭의 아내를 예비하는 것이 당연하고, 아담을 지으신 하나님이 아담의 아내도 만드신다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하나됨은 신앙이 같아야 하고 가능하면 사명이 같아야 하나되기 쉽다. 각자가 하나님을 절대로 사랑해야 상대방이 절대적 존재가 되는 것이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에 의존하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행복은 없어진다. 배우자에 대해 하나님이 내게 보내신 사람이라 생각하면 배우자가 하나님처럼 소중하게 느껴지고, 변함없이 사랑해야 행복이 만들어진다. 보통 결혼에 실패하는 것 중 하나가 서로가 서로에 대한 느낌을 많이 의존하는 까닭이다. 그럼 객관성이 떨어지고 서로 속이기도 한다. UBF는 멘토를 두어서 객관적인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가장 효과적이고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를 잘 검증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누구에게 있을까 기도하고 최종적으로 자기가 리브가처럼 결단하고 간다. -앞으로 UBF가 어떤 선교단체가 되길 바라나? “일대일 성경공부, 귀납법적 성경공부, 자비량 세계선교, 평신도 선교, 평신도들이 가정을 이룬 다음 사역하는 평신도사역, 제자훈련, 절대적 헌신 등 UBF에서 먼저 시작해서 다른 교회들에 좋은 영향을 준 것들이 많이 있다. 특히 성경공부에 대해선, 신천지가 허무맹랑하고 자의적인 성경해석을 많이 하고 있다. 성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보면 웃긴데, 모르는 사람은 성경적으로 보이게 한다. 성경적이라는 것을 아주 악용한 것인데, 성경을 말한다고 해서 성경적인 게 아니다. 우리가 종합적인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 성경전체의 흐름을 알고 문맥중심의 성경공부를 하면 다 분별이 되는데, 그런 것 없이 단어와 단어만 연결시키면 엉터리 결론들이 나온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 가운데 성경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캐치해야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본문을 다 공부한 다음에 ‘이걸 말하려고 했구나’ 하는 ‘귀납법적 성경공부’를 UBF에서 최초로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성경공부를 신천지가 아주 나쁘게 만들어 놓았는데, UBF는성경공부를 잘하는 모임이다. 우리가 가진 영적인 노하우가 한국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바라고, 또 한국교회에 배우고자 하는 것이 많기에 함께 배우는 겸손한 단체가 되길 바란다.” -간사나 선교회 활동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가장 가치 있는 일에 드리라고 조언하고 싶다. ‘청년이여 환상을 보라’ 앞으로 만 가지 길이 있고 사역도 다양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게 베스트다. 스펄전 목사님이 청소부에게 ‘당신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의 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다. 자부심을 갖고 일하라’고 했다. 수도원에 계셨던 로렌스 수사는 전쟁으로 다리 하나를 잃고 수도원에서 요리를 했었다. 그에겐 요리가 예배였고 부엌이 예배당이었다. 그의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예배자의 모습을 본다고 했다. 그 정도로 일의 종류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일을 하라고 하셨다는 부르심, 소명이 있으면 무슨 일을 하든 좋다. 무슨 직업이든, 평신도 사역이든 자비량 사역이든 전임사역도 좋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명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사람은 사명이다(A man is a mission)’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가를 찾아야 비로소 인생이고 사람이다. 뭘 하든지 그렇게 살아야 삶의 가치를 느낀다. 소명이 있으면 가난해도 괜찮다. 청년들에게 소명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또 청년이라면 마음을 넓혀서 민족과 세계를 볼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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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05-06
  • “피폐해진 일본 위해 기도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 소속 신복규(67) 선교사는 1988년부터 일본선교에 헌신하고 있다. 신 선교사는 27일 전화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추세에 있는 일본을 위해 한국교회가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신 선교사는 “일본 전체 코로나19 확진자가 1만3000명을 넘었는데 신규 확진자는 매일 300여명 선이며 도쿄에서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오고 있다”면서 “약국 식당 등은 밤 8시까지 영업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술집과 라이브하우스, 파칭코, 인터넷 카페, 백화점 등은 문을 닫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거리엔 사람들이 많이 없고 모든 방송이 코로나19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마스크는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약국은 판매를 시작한 지 10분 만에 동나고 편의점도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어 금세 매진된다”고 말했다.신 선교사는 “코로나19와 관련해 한국처럼 하면 의료시스템이 붕괴한다고 비판하다가 최근 일주일 사이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요즘은 한국처럼 대응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에선 이달 마지막 주부터 5월 초까지 ‘골든위크’라는 휴가 기간이 있는데, 여행 가지 말고 집 안에 머물 것을 국가적으로 신신당부하는 상황”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일본 기독교 단기대학, 동경기독교신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일본 도쿄에 동경성광교회를 개척했다. 신 선교사는 “일본 정부에서 지난 7일 비상긴급사태를 발령하고 다수 업종에 대한 영업 제한에 들어갔는데, 교회 등 종교시설은 종교의 자유가 있으므로 제재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했다.신 선교사는 “동경성광교회는 지난 12일 부활절 주일까지 2부 예배를 드렸으며, 지난주부터는 1부 예배만 모이고 있다.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는 모이지 않는다”며 “유튜브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많고 아예 예배를 안 드리는 곳도 있다”고 했다. 이어 “주변에 감염자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출입을 자제하며 조심하고 있다”면서 “예배 때 마스크를 착용한 채 띄엄띄엄 앉고 식사는 도시락을 준비했다가 예배 후 각자 손에 들려 집으로 보낸다”고 했다.그는 일본 성도와 교회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신 선교사는 “코로나19로 일본인들의 마음 상태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면서 “성도 중에서 사업하는 분들은 가게 문을 닫아야 하니 마음이 괴로운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이라 전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심방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일본교회에 마스크를 지원할 수 있다면 좋겠다”며 “성도들이 모이지 않다 보니 재정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도쿄 우에노 공원에서 홈리스 사역을 하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모여서 찬양하고 식사를 했지만 이달 초부터 도시락 배달로 전환했다. 최근엔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공원에서 도시락만 나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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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04-28
  • “교인들 누굴 탓하기 앞서 한 가지만 돌아보라, 예수 제자로 살고 있는지”
    박조준 목사가 지난 20일 경기도 성남 세계지도력개발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설립자 박조준(85) 목사가 “21대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라”면서 “압승한 여당은 무한책임이 주어진 만큼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하라”고 당부했다.박 목사는 지난 20일 경기도 성남 세계지도력개발원에서 인터뷰를 갖고 “자유보다 책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이 돼야 한다”면서 “기독교인들도 누굴 탓하기에 앞서 나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권했다.1973년 38세에 서울 영락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됐던 박 목사는 85년 성남에 갈보리교회를 창립해 대형교회로 성장시켰다. 2002년 은퇴한 후 후임 목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이듬해 미국으로 떠났다. 박 목사는 10년 뒤 영구 귀국해 후배 목회자 재교육에 매진하고 있다.-21대 총선 결과를 어떻게 봐야 하나.“여당이 압승했다. 한쪽으로 힘이 기울면서 다소 어려움도 예상된다. 기업이 국유화될 수 있다고 보는 이들까지 있다. 그만큼 불안하다는 뜻이다. 정치는 필요악이다. 잘하면 나라가 바로 설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국민이 고생길에 빠진다. 거대 여당은 책임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이제 남을 탓할 수 없다. 책임의 무거움을 느끼길 바란다. 여당이 정신 바짝 차리고 국가 운명을 책임 있게 이끌어야 한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논란인데.“여야 모두 코로나19로 긴급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필요한 일이지만, 과도하면 인기영합주의일 뿐이다.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를 보라.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세율이 상당히 높다. 많이 가져가고 많이 돌려주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절세와 탈세가 여전하다. 세금을 내지 않고 받기만 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라가 빚더미에 올라앉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경쟁으로 발전하고 강해지는 것이다. 나라에서 뭔가 줄 것이라는 기대가 상식이 되면 곤란하다. 발전에 제약을 받을 뿐이다.”-코로나19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보이지 않는 전염병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재앙이다. 변종까지 생긴다는데 백신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인은 이를 영적으로 해석하자. 믿는 사람들이 잘못한 게 없는지 돌아보자. 교회들은 바로 섰는지 살펴봐야 한다. 목사들은 목회자로 바로 살고 있는지 반성하고 회개하라. 신자들은 심령을 성숙시키는 계기로 삼아라.”  -2월 중순부터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걱정이다. 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는 공동체다. 모이지 못하면 탈이 난다. 학교도 온라인 개학을 했는데 어떤가 보라. 완벽하지 못하다. 하지 않을 수 없으니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탈이 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숯불을 봐라. 모아 두면 불길이 세다. 하지만 불덩어리 같은 벌건 숯덩어리도 따로 빼두면 잠시 후 식고 만다. 교회가 그렇다. 모이지 않으면 신앙도 식는다. 한번 식으면 다시 불붙이는 게 쉽지 않다. 교회 운영도 어려워진다.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고 느슨해져서도 안 된다. 무리하게 모이는 예배를 드리는 것도 곤란하다. 교회가 정신 차려야 한다. 나 때문이라는 자성이 퍼져야 한다. 갱신의 출발점이 지금이다. 구약의 욥을 봐라.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지만 결국 신앙으로 이겨냈다. 지금이 우리에게 그런 순간이다. 욥처럼 정금과 같이 거듭나는 시간으로 삼자.”  박 목사가 임우성 웨이크사이버신학원 이사장과 악수하는 모습.  -코로나19 이후 어떻게 변할까.“양보 정신이 확산돼야 한다. 양보를 바탕으로 이웃과 나눔도 하자. 가진 사람은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부족한 국민도 받으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정신이 뿌리내려야 성숙한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이 받는다면, 여유 있는 사람은 정말 어려운 이웃을 위해 다시 내놓자. 교회가 이 일의 중심에 서라.”-코로나19로 온라인 기반인 웨이크사이버신학원이 관심을 받고 있다.“그렇다. 모이지 않고 온라인으로 수업하는 사이버신학원이 코로나19 시대에는 안성맞춤이다. 나도 신학원의 명예총장이다. 가장 큰 장점은 교단에 속하지 않았다는 거다.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산하에 있는 사이버신학원은 직장에 다니거나 사업을 하는 평신도를 위해 만들었다. 전업 신학생이 될 수는 없지만, 신학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좋다. 일단 신학을 하고 나면 사역의 길이 열린다. 교수진도 훌륭하다. 각 교단의 저명한 교수진이 다수 포진해 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이유다. 사이버신학원 출신이 국제독립교회연합회에서 안수받을 길도 있다. 현직에 있으면서 공부하고 은퇴한 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교육과정이다.”-교회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길가에 버려진다. 쓸모없다. 이를 짓밟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맛을 잃은 소금이 문제다. 교회는 남 탓하지 말라. 자신을 돌아볼 때다. 맛 잃은 소금은 사회가 부패하는 걸 막을 수 없다. 자신도 썩는데 누굴 신경 쓰겠나. 총회장을 하겠다고 거액을 쓰는 문화부터 버려라. 영국교회가 타락할 때 요한 웨슬리가 나왔다. 폴 틸리히는 “개혁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연 지금 개혁교회는 쉬지 않고 개혁하는가. 자신을 돌아보라. 그런 정신으로 설립된 게 국제독립교회연합회이고 이를 기반으로 웨이크사이버신학원이 출발한 것이다. 직장 생활이나 사업하는 분 중 신학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는 곳이 사이버신학원이다. 문을 두드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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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04-27
  • 북한 결핵 환자들 돕고 있는 목사 이야기
    치료를 마친 환자들을 축하하며 학 목걸이를 걸어주고 있는 백인기 목사 ©유진벨재단   유진벨재단이 북한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을 돕고 있는 백인기 목사와의 인터뷰를 24일 공개했다. 아래는 그 전문. Q1. 소개 부탁 드립니다. 제 이름은 백인기(IN KI BAEK)입니다. 저는 미국 버지니아주 버크(Burke, Va USA)에 살고 있고, 2018년을 끝으로 28년간 한인교회를 위한 목회 사역을 마쳤습니다. 최근 2019년부터는 유진벨재단 미국 동부지역 총괄이사로써 후원금 모금의 역할을 맡고 있다. Q2. 어떻게 유진벨재단 다제내성결핵 치료 프로그램 방북대표단으로 참석하게 되셨나요? 15년 전 버지니아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중 유진벨재단과 린튼 박사님을 알게 되어, 우리 교회에서는 현미경 지원과 환자치료를 후원하게 되었다. 매년 2월이면 린튼 박사님을 통해 우리 교회가 후원하는 환자들의 소식을 귀담아 듣게 되었고, 박사님의 권유로 2015년 가을에 첫 방북을 했다. 그리고 2019년 봄, 두 번째 방북을 통해 환자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Q3. 방북대표단에선 어떤 일을 맡고 계신가요? 첫 방북 때에는 환자들에게 객담통을 전달하고 채취하는 것을 지켜보고 그 객담통을 포장하는 일을 도왔으며, 환자들의 의료 기록을 복사하는 일을 했다. 두 번째 방북 때에는 각 치료센터에 있는 약국에서 약사들의 업무를 도왔다. 후원자들께서 보내주신 약을 환자들이 제시간에 잘 복용하는지, 특수 영양보충제가 잘 보급이 되고 있는지 등을 확인했다. Q4. 매 방북 때마다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인가요? 3주간의 방북 일정이 후반기에 들어가면서 체력적인 소모와 피로 누적, 개인적인 지병으로 인해 힘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함께한 방북대표단들의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한 마디가 큰 위로와 힘이 되어 마지막 일정까지 잘 마칠 수 있었다. Q5. 방북대표단으로 참여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먹기 힘든 약을 18개월 동안 잘 복용하고 완치되어 환하게 웃는 얼굴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환자들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현지 의료진들과 유진벨 방북대표단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완치 환자들을 보며 무척 뿌듯했고, 대표단으로 참여함에 보람을 느꼈다. Q6. 환자들을 볼 때 가장 안타까운 것이 무엇인가요? 제가 만난 환자들이 한결같이 약을 먹기가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많이 안타까웠다. 특히 폐결핵 환자로 호흡곤란이 찾아와 업혀오고, 업혀가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척 아팠다. Q7.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에게 격려의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환자들에 대한 유진벨재단 후원자분들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환자분들에게 결핵 약이 전달되고 있음을 전하고 싶다. 저는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목사로써 먼저 환자들이 속히 완쾌되기를 기도했고, 후원자들의 사랑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꾸준하고 성실한 심부름꾼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후원자들께서 보내주신 결핵 약과 함께 '희망'이라는 특약을 통해 건강도 회복되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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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04-27
  • 숨 막히는 북한, 그 인권의 현실을 뮤지컬로
      오디션 현장에서 만난 이형주 대표. ©이형주 대표 제공   신박한제작소(대표 이형주)가 북한 인권 상황과 남북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 ‘랜선’(온라인) 뮤지컬 <평양마켓>의 2차 오디션을 지난 18일 진행했다. 그날 오디션 현장에서 이형주 대표를 만나 인터뷰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자면 “안녕하세요. 문화로 복음을 전하는 콘텐츠 기업 ‘신박한제작소’ 대표 이형주입니다. 사실 저는 여러 가지 ‘얼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낮에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대리였다가, 퇴근에 후에는 ‘신박한제작소’ 대표가 되고, 주일에는 간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 가지 일만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주님께서 주신 한 가지 부르심을 위해 지금 하는 모든 일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문화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선 콘텐츠가 필요하고, 그것을 세상으로 가져가야 하며, 그러자면 교회에서 충분한 영적 공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직장(세상), 문화 콘텐츠(복음), 교회 섬김(영적공급) 이 세 가지 모두가 제게는 너무 소중한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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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2020-04-21
  • 100억 기부 '존쌤'…순종이 낳은 놀라운 기적
       ▲현승원 디쉐어 의장   2019년 10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한국형 기부자 맞춤 기금' 7호에 최연소 기부자가 탄생했다고 발표했다. 기부자의 뜻에 따라 기부금 사용처를 정하는 '한국형 기부자맞춤기금'은 최소 기부액이 10억 원이다. 이번 기부는 액수도 크지만, 그가 이제 갓 서른 중반이 된 젊은 기업가라는 점에서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주인공은 쓰리제이에듀·쓰리제이M·캐리홈 등 6개 교육브랜드를 보유한 디쉐어 현승원 의장(36)이었다.   '기부'...선교로 가기 위한 원스텝 현승원 의장은 지난 2월 월드비전의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 후원자 모임인 '밥피어스아너 클럽' 회원에 위촉됐다. 사랑의열매의 ‘한국형 기부자 맞춤 기금’에 가입한 지 4개월여 만이다.  현 의장은 현재 월드비전과 사랑의열매를 비롯해 기아대책의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필란트로피클럽' 등 7개의 NGO를 통해 기부와 후원을 하고 있다. 동시에 쓰리제이에듀 수강생 10명이 등록할 때마다 국내외 아동 1명을 돕는 '10명의 사랑 캠페인'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왔다.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만 최소 100억 원이 넘는다.  현 의장이 '기부천사'가 된 데는 부모 영향이 컸다. 아버지가 예수전도단의 직장인 DTS(예수제자훈련학교)를 받은 후부터 선교를 꿈꾸기 시작했다. 현 의장이 8살 무렵엔 선교사 20가정을 후원하게 됐다. 그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선교사 후원은 자연스레 기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기부천사'라고 하는데, 사실 기부는 저하고 먼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단지 선교사님을 후원해왔고, 기부도 선교로 가기 위한 하나의 스텝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비기독교인과의 접점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자 고민하던 차에, 의미 있게 기부하면 선교적 마인드도 공유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2019년 11월 컴패션과 함께한 태국 비전트립에서 기도하는 현승원 의장   無에서 有를...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현 의장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인이다. 스타 인강(인터넷강의) ‘존(John)쌤’으로 알려졌다. 그가 세운 디쉐어의 쓰리제이에듀는 ‘온·오프라인 블렌디드 시스템’을 처음 도입해 사교육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현 의장 강의를 비롯해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은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학생들의 진로를 위한 스페셜 콘텐츠 ‘드림 멘토스’로 공감을 끌어내기도 했다.  물론 현 의장도 쉽지는 않았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첫 실패는 수능 때다. 매일 교회에 살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고 자부했던 그였기에 배신감도 들었다.   "처음 하는 이야기인데, 역전하는 인생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때가 마침 재수할 때였는데 인강을 보다가 강사의 연봉 한마디에 자극을 받았어요. 이때부터 유명 온라인 교육기업 스타 강사가 되겠다는 꿈을 막연하게 갖게 됐어요."  현 의장은 대학 진학 후에도 매일같이 토익·토플을 비롯해 수능 인강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길은 열리지 않았다. 유명 교육기업은커녕 동네 학원 면접에서도 18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결국 미국 유학을 선택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유학자금이 예상보다 많이 들었던 것. 그때 떠오른 것이 온라인 과외였다. 2시간씩 두 번 해주던 기존 과외를 3시간은 영상을 주고 1시간은 오프라인으로 실력 점검 등 관리를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대신 과외비를 반으로 줄였다. '온·오프라인 블렌디드 학원', 쓰리제이에듀의 시작이다.   "동생을 관리자로 세우고 미국 갈 준비를 다 끝냈는데, 학생들이 엄청나게 밀려왔어요. 동생이 미국에 가지 말라고 설득했죠. 한국에서 이 사업을 성공시키는 게 미국에서 학위를 따는 것보다 빠를 거라고요."  결과는 대성공. 쓰리제이에듀는 첫 개강 후 3년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다. 현 의장이 서른 살이 되던 해다.   "10년 만에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안 된다는 것을요. 그럼에도 신앙과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모든 축이 맞을 때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죠."    ▲2019년 11월 기아대책과 함께 '드림빌더 프로젝트' 1호 캄보디아 학교 건립 기공식에 참석한 현승원 의장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돈·명예는 부산물…본질은 순종 현 의장은 쓰리제이에듀 첫 개강 8년 만인 지난해 자신이 보유한 지분 50%를 매각했다. 마침 기아대책과 '희망학교 100개 짓기'(Dream Builder Project) 협약식을 마친 뒤였다. 학교 하나를 설립하는 데 드는 비용만 5억 원, 목표대로 100개의 학교를 세울 수 있는 재정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주위 시선은 달랐다. 본질은 보지 않고 부산물인 돈에만 초점을 맞춘 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봤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록펠러와 같은 인물이 한국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현 의장은 지적했다.  그는 "부자의 삶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며 "부자 크리스천을 바라보는 시선도, 부자 크리스천으로 사는 지침도 없으니 올바른 부자가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게 다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통해 부자가 되길 바라는 한편, 재정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써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하고 순종하는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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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04-08

실시간 인터뷰 기사

  • “이 땅에 태어나 1만 명은 전도하고…”
        김갈렙 목사(UBF 세계선교부)     UBF전임간사로 25년째 사역하고 있는 김갈렙 목사를 최근 인터뷰했다. ‘하버드대 공부벌레’를 보고 사람들을 변호하는 일이 인생에 보람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간 성균관대 법대는 청년들을 살리는 선교의 필드가 되었고 세계를 섬기는 일에 쓰임받고 싶다는 꿈은 세계선교를 돕는 사역자로 쓰임받게 하셨다고 한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UBF 소개 부탁드려요. “UBF(University Bible Fellowship)는 1961년 4.19 5.16으로 방황하는 대학생들에게 성경을 통해 인생관, 역사관, 세계관, 가치관 정립과 비전을 품게 하고 청년들이 삶의 방향을 잡도록 돕기 위해 국내에서 시작된 선교기관이다. 현재 국내 82개 지부, 해외 96개국 328개 지부의 캠퍼스에서 대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떻게 UBF에서 선교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 “고등학교 때 폐결핵을 앓고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살려주시면 하나님의 종으로 살겠다’는 서원기도를 했었다. 신학대를 갔어야 했지만 ‘세상적으로도 인정 받는 장로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성균관대 법대에 들어갔다. 신입생 합격자 발표 때 선배님들의 권유로 성경공부를 시작해서 4년 내내 법학보다 성경만 공부하게 되었다(웃음). 그 후 캠퍼스 선교를 하고, 전임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아 신학공부도 하고 간사이면서 목사가 되었다.” -어떻게 간사의 소명을 받고 이 길을 가게 되었나? “언제부턴가 국내사역을 하는 것이 소위 이삭처럼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와이의 운전사 선교사로 가도록 하셨다. 마치 ‘이삭을 바치라, 네가 하나님보다도 야망을 더 사랑하지 않는가’ 하는 도전 같았다. 하나님께 나의 꿈을, 이삭을 바치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썼는데,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아노라’ 하는 성령의 음성이 들렸고, 그 해 UBF 전임사역자로 부르셨다. 대학의 첫 출발부터 순수하게 나를 지켜주시고 서원기도를 지키게 해주시고 전임사역자로 부름 받아서 1996년부터 현재까지 25년째인데, 하나님이 그렇게 부르시려고 연단하고 이삭을 드리도록 꿈을 드리도록 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제가 소망하던 UBF 간사, 책임목자가 되어 선교사를 길러 파송하고 재교육하고 후원하는 UBF 세계선교부장이 되었다. 또한 성균관대 캠퍼스 사역을 하면서 대학생들과 직접 성경공부도 하고, 또 이들을 가르치는 목자들을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또 2010년부터는 북한 선교를 위해서 북한의 굶주린 동포를 생각하며 하루 한 끼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있다.” -사역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보람이 있다면? “어려움은 많았지만 믿음을 배우고 예수님을 배우는 삶이기에 어렵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물론 사역의 열매가 안 보일 때 어려운 건 사실이다. 작년에 혼자 성대 로스쿨에서 밤에 전도하는데 박대와 냉대를 받아서 의욕이 상실되고 슬픈 마음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한 형제가 전화가 와서 좋은 직장에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합격했다고 고맙다고 전화가 왔다. 대학생 시절 방황하며 현실의 삶을 잘 살지 못하던 형제였는데, 그가 기도와 신앙적으로 지도를 받고 생활이 좋아져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형제였다.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는데, 이렇게 내 인생을 통해서 방황하는 한 사람이 예수님과 복음을 알고 쓸모 있는 삶을 살게 된다면 내 인생과 사역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 어거스틴이 방황했지만 중세 천 년의 성경 선생이 된 것처럼, 그런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어릴 때 세계를 섬기는 삶을 살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그 바람들을 하나님께서 이뤄주셔서 30개국을 다니면서 강의도 하고 교제도 하고, 봉사도 하고, 콘퍼런스도 하면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을 하도록 인도하셨다. 청년들을 선교사로 잘 훈련해서 파나마, 사우디아라비아, 브루나이, 타지키스탄 등 12개 지역에서 해외개척을 하고 보냈다. 알래스카, 프랑스, 독일, 중동 어느 대륙을 가도 그들이 역에서 맞아주고 저 대신 가 있다고 생각하며 보람을 느낀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선교활동에는 어떤 변화들이 있나?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된지 약 두 달이기에 (변화를) 얘기할만한 시간은 아닌데, 매주 목요일에 하던 야간전도 등의 노방전도가 중지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접근하는 자체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크리스천으로서 사회적 지탄도 있기에 과도하게 전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닌 것 같아 전도 자체는 쉬고 있다. 그렇지만 온라인으로 학교에 와보지 못한 신입생들에게 대학 투어 영상물을 제작해서 학교소개 영상을 올리고, 온라인으로 초청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전임사역 25년을 하면서 지금의 상황이 큰 위기라고 생각하나? 지금 캠퍼스 선교 상황은 어떤가? “현재 코로나는 완화되고 있기에 이전의 활동에 근접하게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80년대는 민주화운동으로 캠퍼스에 코로나처럼 최루탄 가스 때문에 수업도 못 하고 사람도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임산부 자매들, 사모님들이 최루탄을 뚫고 가서 전도를 했고 많은 사람이 변화되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장애물이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좌절하지 않았고, 그 상황에 맞게 돌파구를 만들려 했고,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신천지와 개신교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코로나 전염병 이상의 장애물로 등장하게 되었고, 복음의 수용력이 떨어진 것이 코로나보다 더 위기라고 생각한다. 민주화 시위할 때는 어려워도 선교가 되고 새롭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 캠퍼스 사역 단체들이 위기 가운데 있다. 그래서 이전부터 생각한 건 개신교가 좀 더 질적인 면과 사회적 이미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엔 플랫폼이 중요하다. 환경적인 플랫폼, 인적인 플랫폼… 사람들에게 신뢰받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고, 한 번 오면 머물고 싶은, 꼭 와야 하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설교, 교회가 인터넷으로 경쟁하고 언제든지 자기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곳을 찾는 때인데,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 오면 정말 다시 와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신앙적 인성이나 서로 사랑하는 분위기, 정확하게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오게 해야 한다. 예수님이 전도한 빌립과 안드레도 있지만, 나다나엘은 빌립을 통해서 베드로는 안드레를 통해서 왔다. 이미 경험한 사람들을 통해서 온 것이다. 관계전도라고 하는데 플랫폼 선교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수님 자체가 움직이는 플랫폼이셨다. 무한경쟁 시대 모든 것이 공개되는 상황에서 이렇게 사람들이 거기에 오고 싶고 붙어서 같이 갈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선교나 교회가 어려워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 하나님께서 이 사역의 주체이시기 때문이다. 사도행전도 사도들이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워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성령께서 연약한 사도들을 사용하셔서 이루신 게 예루살렘 선교고, 또 흩으셔서 박해를 통해서 사마리아 선교를 이루시고 세계 선교를 이루셨다. 사도행전의 반전이 박해자였던 사울의 변화로 완전히 다른 양상이 펼쳐진 것처럼 우리 가운데도 이런 하나님의 반전이 있으리라 본다. 또한 하나님께서 통일문제와 함께 한국을 세계에 제사장 나라로 세우고자 하는 흐름이 있다. 한류나 BTS, 축구, 코로나방역 모범국가 등 북한과 통일만 되면 세계에서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수많은 크리스천과 종교인들이 기도해왔고 그런 흐름 속에 있다. 한국 기독교가 절대 수명을 다한 것이 아니라 연단이고, 가장 어려운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반드시 반전이 있고 제사장 나라로 쓰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 해법은 우리가 정확히 모른다. 부흥이 인위적으로 계획한다고 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뭘 계획하고 있는가 그런 것보다 우리나라에 두신 하나님의 주권이 있음을 믿고 낙심하지 않고 가면 캠퍼스선교나 통일 이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반전의 역사를 이루실 거라 믿는다.” -사람의 위기가 하나님께는 기회라는 말도 있는데, 이번 코로나 사태도 마찬가지일까? “교제와 대면의 일상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느끼고, 공동체를 사모하는 마음도 있고, 발전적인 면들도 많다. 개인적으로 이 기간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개발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골방의 시간이 늘어나게 했고, 교회중심, 일중심, 사람중심인 신앙에서 하나님께로 부르는 초청의 시간이 되었다. 또 기도의 은사와 하나님께 편지쓰기도 많이 하고, 성경공부를 비대면으로 하니 어떤 면에서 더 잘 준비해야 해서 말씀의 은사를 더 개발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신입생들 전도와 활동계획이 궁금하다. “올해는 입학식도 없었고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그전까지 열심히 전도하고 있었기에 이것은 전도보다는 기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기도하는 게 전도의 준비고,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고 성령을 움직이기 때문에 기도도 하나의 선교다. 전도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선교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기간 아까 이야기한 형제의 가정도 같이 성경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고, 해외에 있는 사람들을 누군가 데려오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에티오피아 내시를 보내셨고, 예수님도 제자들을 아버지께서 내게 보내신 사람들이라 하셨다. 바벨론 포로 귀환 때도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선교에 대해선 전도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사람을 보내시는 주권선교이다. 여러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내주시고자 하면 얼마든지 사람은 모일 수 있다고 믿는다. 선교사 자녀들이 한국에 좋은 대학으로 항상 오고 있는데, 그들을 신앙으로 교육 시키고 앞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키우는 일들을 하고자 한다. 제일 중요한 행사인 여름수양회를 가을수양회쯤으로 미루거나 하지 않으려 한다. 코로나가 걷히면 전도를 하고, 사실상 개학이 2학기이에 9월부터 실제 신입생을 만나는 거로 보고 있다. 여름방학은 기존의 리더들을 위한 힐링하고 교육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가을학기 준비 기간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N번방 사건도 있고 건전하지 못한 문화들이 청년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는데, 청년들에게 권할 수 있는 좋은 취미나 문화생활이 있다면? “요즘 스마트폰이나 영상 게임들이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절제가 필요한 것 같다. 저희는 청년들과 매일 잠언을 하루 한 장씩 읽고 채팅창에서 소감을 나눈다. 잠언이 31장까지 있는데 그렇게 12달 하면 잠언을 열두 번 읽게 된다. 잠언이 청년들에게 지혜를 주는데 그 지혜란 분별과 선택이다. 뭐가 더 나은 것인가, 젊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 시간 관리에 대해 가르쳐준다. 또 학생들과 서울의 고궁이나 남한산성 등 역사탐방도 하고, 건전하게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축구나 등산 같은 스포츠도 많이 했다. 책을 많이 읽고, 기독교 서점이나 대형서점에 가서 책 제목만 한 시간 동안 읽고 와도 분별력이 생기고 지혜가 생긴다. 또 기도와 전도를 취미로 삼는 것을 권한다.” -이 시대 크리스천 청년들이 꼭 도전해 봤으면 하는 것이 있나? “청년의 시기에 육체적인 한계에 도전해보라고 하고 싶다. 대한민국 3대 극한 체력 챌린지가 있는데 지리산 종주, 북한산 종주,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 이 세 가지를 하면서 육체적인 한계에 도전하는 인내심을 배울 수 있다. 두 번째 번지점프를 해보면 부활신앙을 배울 수 있다. 새벽기도 챌린지, 전도 챌린지 등 원 없이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미친 듯이… 이 땅에 태어나서 만 명은 전도하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새벽기도를 16년째 하고 있는데, 축구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축구를 열심히 하는데 ‘네가 지금 이럴 때냐? 무릎을 꿇고 내게 부르짖으라’는 말씀을 듣고 축구를 안 하게 되었다. 그 대신 두 다리로 전도를 취미 삼고 기도를 취미 삼게 되었다. 기도할 때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다. 불신자였던 우리 가족이 할아버지부터 예수님을 믿고 그렇게 기도하던 가족구원이 두 다리로 무릎 꿇고 기도하던 때부터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기도가 진짜 취미가 되고 전도가 취미가 되었다.” -새벽기도를 16년간 할 수 있었던 힘은? “왜 해야 하는가 하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저는 캠퍼스 사역이 너무나 어려웠고 의지했던 분들이 다 떠나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헤브론 산지의 거인과 싸웠던 갈렙처럼 오직 믿음 외에는 이것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믿음의 표식,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한다는 증거로 새벽기도를 드리고자 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따라 천 번의 새벽기도를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겠다고 했다. 이걸 통해 영적인 무능을 해결할 수 있다면 만 번의 새벽기도를 드리고 하나님께 가겠다고 했다. 하나님께 가는 그 날도 새벽기도는 하고 간다는 게 목표였다. 또 새벽기도의 원리는 백 번을 하면 천 번을 할 수 있고, 천 번을 하면 만 번을 할 수 있다는 거다. 백 번을 하면 자기 몸이 돼 버린다. 그리고 새벽기도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인커리지먼트가 작동이 돼야 한다. ‘새벽기도가 정말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시간이구나, 그러니까 내가 이 시간을 놓치면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야 소원이 생기고 선순환이 생긴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새벽기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새벽에 일어나서 큐티하고 기도하고 일과를 생각하고 리허설이 된 하루는 끌려가는 하루가 아니라 내가 하루를 주도하게 되어 있고, 기도로 확증된 가운데 하루를 살게 되면 주도적인 삶을 살게 된다.” -가정의 달을 맞아 UBF에서 가지고 있는 성서적인 결혼관에 대해 말해달라. “청년의 시기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가치관을 놓고 성경공부를 먼저 하도록 하고 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다. 조국도 하나다. 아내도 하나다. 하나님도 한 분을 섬겨야 하고 주님도 한 분이시고 사역도 가능하면 한 가지를 할 때 거기서 깊으면서 풍성함이 나온다. 사람도 아내를 내가 선택한 순간,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기관이고, 가정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 됨을 배우는 곳이다. 가정이라는 건 우리 인생에서 엄청난 메시지를 담고 있기에 가정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창세기에 ‘둘이 하나될지라’ 이 연합을 배우는 것에 가정의 의미가 있다. 이 연합 속에는 섬김, 희생 이런 것들이 들어 있다. 이런 결혼의 의미를 모른 채 결혼하면 어려움이 예고되어 있기에, 올바른 결혼관·인간관이 되어 있어야 하고 자녀를 키우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꼭 알아야 한다. 결혼이 아픔이 아니라 하나님이 감춰두신 행복의 비밀들을 깨닫는 그런 곳이 되어야 한다. 또 코로나가 주는 메시지의 첫 번째는 개인 신앙을 가지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가정을 사랑하라이다. 사실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다. 로마서 16장에 ‘로마에 있는 교회들에 문안하라’에서 교회는 가정교회들을 말한다. 가정이 회복되면 2세들도 올바른 신앙을 배우고,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신앙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저렇게 사랑해야 진짜 행복하겠구나’ 그러니까 가정을 통해서 2세도 교육이 된다. UBF에선 가정교회라는 말을 쓰는데, 가정이 교회처럼 선교도 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기에 중요하다. 결혼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결혼의 텍스트가 창세기 2장과 24장이다. 이삭이 아내 리브가를 맞을 때 걱정하는 이삭에게 하나님이 너보다 앞서 가실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삭을 주신 하나님이 이삭의 아내를 예비하는 것이 당연하고, 아담을 지으신 하나님이 아담의 아내도 만드신다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하나됨은 신앙이 같아야 하고 가능하면 사명이 같아야 하나되기 쉽다. 각자가 하나님을 절대로 사랑해야 상대방이 절대적 존재가 되는 것이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에 의존하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행복은 없어진다. 배우자에 대해 하나님이 내게 보내신 사람이라 생각하면 배우자가 하나님처럼 소중하게 느껴지고, 변함없이 사랑해야 행복이 만들어진다. 보통 결혼에 실패하는 것 중 하나가 서로가 서로에 대한 느낌을 많이 의존하는 까닭이다. 그럼 객관성이 떨어지고 서로 속이기도 한다. UBF는 멘토를 두어서 객관적인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가장 효과적이고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를 잘 검증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누구에게 있을까 기도하고 최종적으로 자기가 리브가처럼 결단하고 간다. -앞으로 UBF가 어떤 선교단체가 되길 바라나? “일대일 성경공부, 귀납법적 성경공부, 자비량 세계선교, 평신도 선교, 평신도들이 가정을 이룬 다음 사역하는 평신도사역, 제자훈련, 절대적 헌신 등 UBF에서 먼저 시작해서 다른 교회들에 좋은 영향을 준 것들이 많이 있다. 특히 성경공부에 대해선, 신천지가 허무맹랑하고 자의적인 성경해석을 많이 하고 있다. 성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보면 웃긴데, 모르는 사람은 성경적으로 보이게 한다. 성경적이라는 것을 아주 악용한 것인데, 성경을 말한다고 해서 성경적인 게 아니다. 우리가 종합적인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 성경전체의 흐름을 알고 문맥중심의 성경공부를 하면 다 분별이 되는데, 그런 것 없이 단어와 단어만 연결시키면 엉터리 결론들이 나온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 가운데 성경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캐치해야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본문을 다 공부한 다음에 ‘이걸 말하려고 했구나’ 하는 ‘귀납법적 성경공부’를 UBF에서 최초로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성경공부를 신천지가 아주 나쁘게 만들어 놓았는데, UBF는성경공부를 잘하는 모임이다. 우리가 가진 영적인 노하우가 한국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바라고, 또 한국교회에 배우고자 하는 것이 많기에 함께 배우는 겸손한 단체가 되길 바란다.” -간사나 선교회 활동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가장 가치 있는 일에 드리라고 조언하고 싶다. ‘청년이여 환상을 보라’ 앞으로 만 가지 길이 있고 사역도 다양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게 베스트다. 스펄전 목사님이 청소부에게 ‘당신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의 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다. 자부심을 갖고 일하라’고 했다. 수도원에 계셨던 로렌스 수사는 전쟁으로 다리 하나를 잃고 수도원에서 요리를 했었다. 그에겐 요리가 예배였고 부엌이 예배당이었다. 그의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예배자의 모습을 본다고 했다. 그 정도로 일의 종류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일을 하라고 하셨다는 부르심, 소명이 있으면 무슨 일을 하든 좋다. 무슨 직업이든, 평신도 사역이든 자비량 사역이든 전임사역도 좋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명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사람은 사명이다(A man is a mission)’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가를 찾아야 비로소 인생이고 사람이다. 뭘 하든지 그렇게 살아야 삶의 가치를 느낀다. 소명이 있으면 가난해도 괜찮다. 청년들에게 소명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또 청년이라면 마음을 넓혀서 민족과 세계를 볼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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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05-06
  • “피폐해진 일본 위해 기도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 소속 신복규(67) 선교사는 1988년부터 일본선교에 헌신하고 있다. 신 선교사는 27일 전화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추세에 있는 일본을 위해 한국교회가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신 선교사는 “일본 전체 코로나19 확진자가 1만3000명을 넘었는데 신규 확진자는 매일 300여명 선이며 도쿄에서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오고 있다”면서 “약국 식당 등은 밤 8시까지 영업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술집과 라이브하우스, 파칭코, 인터넷 카페, 백화점 등은 문을 닫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거리엔 사람들이 많이 없고 모든 방송이 코로나19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마스크는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약국은 판매를 시작한 지 10분 만에 동나고 편의점도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어 금세 매진된다”고 말했다.신 선교사는 “코로나19와 관련해 한국처럼 하면 의료시스템이 붕괴한다고 비판하다가 최근 일주일 사이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요즘은 한국처럼 대응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에선 이달 마지막 주부터 5월 초까지 ‘골든위크’라는 휴가 기간이 있는데, 여행 가지 말고 집 안에 머물 것을 국가적으로 신신당부하는 상황”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일본 기독교 단기대학, 동경기독교신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일본 도쿄에 동경성광교회를 개척했다. 신 선교사는 “일본 정부에서 지난 7일 비상긴급사태를 발령하고 다수 업종에 대한 영업 제한에 들어갔는데, 교회 등 종교시설은 종교의 자유가 있으므로 제재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했다.신 선교사는 “동경성광교회는 지난 12일 부활절 주일까지 2부 예배를 드렸으며, 지난주부터는 1부 예배만 모이고 있다.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는 모이지 않는다”며 “유튜브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많고 아예 예배를 안 드리는 곳도 있다”고 했다. 이어 “주변에 감염자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출입을 자제하며 조심하고 있다”면서 “예배 때 마스크를 착용한 채 띄엄띄엄 앉고 식사는 도시락을 준비했다가 예배 후 각자 손에 들려 집으로 보낸다”고 했다.그는 일본 성도와 교회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신 선교사는 “코로나19로 일본인들의 마음 상태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면서 “성도 중에서 사업하는 분들은 가게 문을 닫아야 하니 마음이 괴로운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이라 전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심방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일본교회에 마스크를 지원할 수 있다면 좋겠다”며 “성도들이 모이지 않다 보니 재정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도쿄 우에노 공원에서 홈리스 사역을 하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모여서 찬양하고 식사를 했지만 이달 초부터 도시락 배달로 전환했다. 최근엔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공원에서 도시락만 나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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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8
  • “교인들 누굴 탓하기 앞서 한 가지만 돌아보라, 예수 제자로 살고 있는지”
    박조준 목사가 지난 20일 경기도 성남 세계지도력개발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설립자 박조준(85) 목사가 “21대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라”면서 “압승한 여당은 무한책임이 주어진 만큼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하라”고 당부했다.박 목사는 지난 20일 경기도 성남 세계지도력개발원에서 인터뷰를 갖고 “자유보다 책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이 돼야 한다”면서 “기독교인들도 누굴 탓하기에 앞서 나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권했다.1973년 38세에 서울 영락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됐던 박 목사는 85년 성남에 갈보리교회를 창립해 대형교회로 성장시켰다. 2002년 은퇴한 후 후임 목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이듬해 미국으로 떠났다. 박 목사는 10년 뒤 영구 귀국해 후배 목회자 재교육에 매진하고 있다.-21대 총선 결과를 어떻게 봐야 하나.“여당이 압승했다. 한쪽으로 힘이 기울면서 다소 어려움도 예상된다. 기업이 국유화될 수 있다고 보는 이들까지 있다. 그만큼 불안하다는 뜻이다. 정치는 필요악이다. 잘하면 나라가 바로 설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국민이 고생길에 빠진다. 거대 여당은 책임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이제 남을 탓할 수 없다. 책임의 무거움을 느끼길 바란다. 여당이 정신 바짝 차리고 국가 운명을 책임 있게 이끌어야 한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논란인데.“여야 모두 코로나19로 긴급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필요한 일이지만, 과도하면 인기영합주의일 뿐이다.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를 보라.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세율이 상당히 높다. 많이 가져가고 많이 돌려주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절세와 탈세가 여전하다. 세금을 내지 않고 받기만 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라가 빚더미에 올라앉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경쟁으로 발전하고 강해지는 것이다. 나라에서 뭔가 줄 것이라는 기대가 상식이 되면 곤란하다. 발전에 제약을 받을 뿐이다.”-코로나19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보이지 않는 전염병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재앙이다. 변종까지 생긴다는데 백신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인은 이를 영적으로 해석하자. 믿는 사람들이 잘못한 게 없는지 돌아보자. 교회들은 바로 섰는지 살펴봐야 한다. 목사들은 목회자로 바로 살고 있는지 반성하고 회개하라. 신자들은 심령을 성숙시키는 계기로 삼아라.”  -2월 중순부터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걱정이다. 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는 공동체다. 모이지 못하면 탈이 난다. 학교도 온라인 개학을 했는데 어떤가 보라. 완벽하지 못하다. 하지 않을 수 없으니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탈이 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숯불을 봐라. 모아 두면 불길이 세다. 하지만 불덩어리 같은 벌건 숯덩어리도 따로 빼두면 잠시 후 식고 만다. 교회가 그렇다. 모이지 않으면 신앙도 식는다. 한번 식으면 다시 불붙이는 게 쉽지 않다. 교회 운영도 어려워진다.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고 느슨해져서도 안 된다. 무리하게 모이는 예배를 드리는 것도 곤란하다. 교회가 정신 차려야 한다. 나 때문이라는 자성이 퍼져야 한다. 갱신의 출발점이 지금이다. 구약의 욥을 봐라.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지만 결국 신앙으로 이겨냈다. 지금이 우리에게 그런 순간이다. 욥처럼 정금과 같이 거듭나는 시간으로 삼자.”  박 목사가 임우성 웨이크사이버신학원 이사장과 악수하는 모습.  -코로나19 이후 어떻게 변할까.“양보 정신이 확산돼야 한다. 양보를 바탕으로 이웃과 나눔도 하자. 가진 사람은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부족한 국민도 받으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정신이 뿌리내려야 성숙한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이 받는다면, 여유 있는 사람은 정말 어려운 이웃을 위해 다시 내놓자. 교회가 이 일의 중심에 서라.”-코로나19로 온라인 기반인 웨이크사이버신학원이 관심을 받고 있다.“그렇다. 모이지 않고 온라인으로 수업하는 사이버신학원이 코로나19 시대에는 안성맞춤이다. 나도 신학원의 명예총장이다. 가장 큰 장점은 교단에 속하지 않았다는 거다.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산하에 있는 사이버신학원은 직장에 다니거나 사업을 하는 평신도를 위해 만들었다. 전업 신학생이 될 수는 없지만, 신학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좋다. 일단 신학을 하고 나면 사역의 길이 열린다. 교수진도 훌륭하다. 각 교단의 저명한 교수진이 다수 포진해 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이유다. 사이버신학원 출신이 국제독립교회연합회에서 안수받을 길도 있다. 현직에 있으면서 공부하고 은퇴한 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교육과정이다.”-교회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길가에 버려진다. 쓸모없다. 이를 짓밟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맛을 잃은 소금이 문제다. 교회는 남 탓하지 말라. 자신을 돌아볼 때다. 맛 잃은 소금은 사회가 부패하는 걸 막을 수 없다. 자신도 썩는데 누굴 신경 쓰겠나. 총회장을 하겠다고 거액을 쓰는 문화부터 버려라. 영국교회가 타락할 때 요한 웨슬리가 나왔다. 폴 틸리히는 “개혁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연 지금 개혁교회는 쉬지 않고 개혁하는가. 자신을 돌아보라. 그런 정신으로 설립된 게 국제독립교회연합회이고 이를 기반으로 웨이크사이버신학원이 출발한 것이다. 직장 생활이나 사업하는 분 중 신학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는 곳이 사이버신학원이다. 문을 두드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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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04-27
  • 북한 결핵 환자들 돕고 있는 목사 이야기
    치료를 마친 환자들을 축하하며 학 목걸이를 걸어주고 있는 백인기 목사 ©유진벨재단   유진벨재단이 북한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을 돕고 있는 백인기 목사와의 인터뷰를 24일 공개했다. 아래는 그 전문. Q1. 소개 부탁 드립니다. 제 이름은 백인기(IN KI BAEK)입니다. 저는 미국 버지니아주 버크(Burke, Va USA)에 살고 있고, 2018년을 끝으로 28년간 한인교회를 위한 목회 사역을 마쳤습니다. 최근 2019년부터는 유진벨재단 미국 동부지역 총괄이사로써 후원금 모금의 역할을 맡고 있다. Q2. 어떻게 유진벨재단 다제내성결핵 치료 프로그램 방북대표단으로 참석하게 되셨나요? 15년 전 버지니아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중 유진벨재단과 린튼 박사님을 알게 되어, 우리 교회에서는 현미경 지원과 환자치료를 후원하게 되었다. 매년 2월이면 린튼 박사님을 통해 우리 교회가 후원하는 환자들의 소식을 귀담아 듣게 되었고, 박사님의 권유로 2015년 가을에 첫 방북을 했다. 그리고 2019년 봄, 두 번째 방북을 통해 환자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Q3. 방북대표단에선 어떤 일을 맡고 계신가요? 첫 방북 때에는 환자들에게 객담통을 전달하고 채취하는 것을 지켜보고 그 객담통을 포장하는 일을 도왔으며, 환자들의 의료 기록을 복사하는 일을 했다. 두 번째 방북 때에는 각 치료센터에 있는 약국에서 약사들의 업무를 도왔다. 후원자들께서 보내주신 약을 환자들이 제시간에 잘 복용하는지, 특수 영양보충제가 잘 보급이 되고 있는지 등을 확인했다. Q4. 매 방북 때마다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인가요? 3주간의 방북 일정이 후반기에 들어가면서 체력적인 소모와 피로 누적, 개인적인 지병으로 인해 힘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함께한 방북대표단들의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한 마디가 큰 위로와 힘이 되어 마지막 일정까지 잘 마칠 수 있었다. Q5. 방북대표단으로 참여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먹기 힘든 약을 18개월 동안 잘 복용하고 완치되어 환하게 웃는 얼굴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환자들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현지 의료진들과 유진벨 방북대표단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완치 환자들을 보며 무척 뿌듯했고, 대표단으로 참여함에 보람을 느꼈다. Q6. 환자들을 볼 때 가장 안타까운 것이 무엇인가요? 제가 만난 환자들이 한결같이 약을 먹기가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많이 안타까웠다. 특히 폐결핵 환자로 호흡곤란이 찾아와 업혀오고, 업혀가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척 아팠다. Q7.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에게 격려의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환자들에 대한 유진벨재단 후원자분들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환자분들에게 결핵 약이 전달되고 있음을 전하고 싶다. 저는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목사로써 먼저 환자들이 속히 완쾌되기를 기도했고, 후원자들의 사랑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꾸준하고 성실한 심부름꾼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후원자들께서 보내주신 결핵 약과 함께 '희망'이라는 특약을 통해 건강도 회복되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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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04-27
  • 숨 막히는 북한, 그 인권의 현실을 뮤지컬로
      오디션 현장에서 만난 이형주 대표. ©이형주 대표 제공   신박한제작소(대표 이형주)가 북한 인권 상황과 남북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 ‘랜선’(온라인) 뮤지컬 <평양마켓>의 2차 오디션을 지난 18일 진행했다. 그날 오디션 현장에서 이형주 대표를 만나 인터뷰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자면 “안녕하세요. 문화로 복음을 전하는 콘텐츠 기업 ‘신박한제작소’ 대표 이형주입니다. 사실 저는 여러 가지 ‘얼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낮에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대리였다가, 퇴근에 후에는 ‘신박한제작소’ 대표가 되고, 주일에는 간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 가지 일만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주님께서 주신 한 가지 부르심을 위해 지금 하는 모든 일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문화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선 콘텐츠가 필요하고, 그것을 세상으로 가져가야 하며, 그러자면 교회에서 충분한 영적 공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직장(세상), 문화 콘텐츠(복음), 교회 섬김(영적공급) 이 세 가지 모두가 제게는 너무 소중한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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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1
  • 100억 기부 '존쌤'…순종이 낳은 놀라운 기적
       ▲현승원 디쉐어 의장   2019년 10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한국형 기부자 맞춤 기금' 7호에 최연소 기부자가 탄생했다고 발표했다. 기부자의 뜻에 따라 기부금 사용처를 정하는 '한국형 기부자맞춤기금'은 최소 기부액이 10억 원이다. 이번 기부는 액수도 크지만, 그가 이제 갓 서른 중반이 된 젊은 기업가라는 점에서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주인공은 쓰리제이에듀·쓰리제이M·캐리홈 등 6개 교육브랜드를 보유한 디쉐어 현승원 의장(36)이었다.   '기부'...선교로 가기 위한 원스텝 현승원 의장은 지난 2월 월드비전의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 후원자 모임인 '밥피어스아너 클럽' 회원에 위촉됐다. 사랑의열매의 ‘한국형 기부자 맞춤 기금’에 가입한 지 4개월여 만이다.  현 의장은 현재 월드비전과 사랑의열매를 비롯해 기아대책의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필란트로피클럽' 등 7개의 NGO를 통해 기부와 후원을 하고 있다. 동시에 쓰리제이에듀 수강생 10명이 등록할 때마다 국내외 아동 1명을 돕는 '10명의 사랑 캠페인'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왔다.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만 최소 100억 원이 넘는다.  현 의장이 '기부천사'가 된 데는 부모 영향이 컸다. 아버지가 예수전도단의 직장인 DTS(예수제자훈련학교)를 받은 후부터 선교를 꿈꾸기 시작했다. 현 의장이 8살 무렵엔 선교사 20가정을 후원하게 됐다. 그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선교사 후원은 자연스레 기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기부천사'라고 하는데, 사실 기부는 저하고 먼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단지 선교사님을 후원해왔고, 기부도 선교로 가기 위한 하나의 스텝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비기독교인과의 접점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자 고민하던 차에, 의미 있게 기부하면 선교적 마인드도 공유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2019년 11월 컴패션과 함께한 태국 비전트립에서 기도하는 현승원 의장   無에서 有를...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현 의장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인이다. 스타 인강(인터넷강의) ‘존(John)쌤’으로 알려졌다. 그가 세운 디쉐어의 쓰리제이에듀는 ‘온·오프라인 블렌디드 시스템’을 처음 도입해 사교육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현 의장 강의를 비롯해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은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학생들의 진로를 위한 스페셜 콘텐츠 ‘드림 멘토스’로 공감을 끌어내기도 했다.  물론 현 의장도 쉽지는 않았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첫 실패는 수능 때다. 매일 교회에 살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고 자부했던 그였기에 배신감도 들었다.   "처음 하는 이야기인데, 역전하는 인생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때가 마침 재수할 때였는데 인강을 보다가 강사의 연봉 한마디에 자극을 받았어요. 이때부터 유명 온라인 교육기업 스타 강사가 되겠다는 꿈을 막연하게 갖게 됐어요."  현 의장은 대학 진학 후에도 매일같이 토익·토플을 비롯해 수능 인강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길은 열리지 않았다. 유명 교육기업은커녕 동네 학원 면접에서도 18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결국 미국 유학을 선택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유학자금이 예상보다 많이 들었던 것. 그때 떠오른 것이 온라인 과외였다. 2시간씩 두 번 해주던 기존 과외를 3시간은 영상을 주고 1시간은 오프라인으로 실력 점검 등 관리를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대신 과외비를 반으로 줄였다. '온·오프라인 블렌디드 학원', 쓰리제이에듀의 시작이다.   "동생을 관리자로 세우고 미국 갈 준비를 다 끝냈는데, 학생들이 엄청나게 밀려왔어요. 동생이 미국에 가지 말라고 설득했죠. 한국에서 이 사업을 성공시키는 게 미국에서 학위를 따는 것보다 빠를 거라고요."  결과는 대성공. 쓰리제이에듀는 첫 개강 후 3년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다. 현 의장이 서른 살이 되던 해다.   "10년 만에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안 된다는 것을요. 그럼에도 신앙과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모든 축이 맞을 때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죠."    ▲2019년 11월 기아대책과 함께 '드림빌더 프로젝트' 1호 캄보디아 학교 건립 기공식에 참석한 현승원 의장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돈·명예는 부산물…본질은 순종 현 의장은 쓰리제이에듀 첫 개강 8년 만인 지난해 자신이 보유한 지분 50%를 매각했다. 마침 기아대책과 '희망학교 100개 짓기'(Dream Builder Project) 협약식을 마친 뒤였다. 학교 하나를 설립하는 데 드는 비용만 5억 원, 목표대로 100개의 학교를 세울 수 있는 재정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주위 시선은 달랐다. 본질은 보지 않고 부산물인 돈에만 초점을 맞춘 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봤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록펠러와 같은 인물이 한국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현 의장은 지적했다.  그는 "부자의 삶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며 "부자 크리스천을 바라보는 시선도, 부자 크리스천으로 사는 지침도 없으니 올바른 부자가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게 다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통해 부자가 되길 바라는 한편, 재정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써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하고 순종하는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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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8
  • 오수영 서호관 이사장 “취업난 겪는 학생 안타깝다”
      “호텔관광업계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현장에서 필요한 실무수행능력과 배양을 위한 학습기회를 제공하겠습니다. 인생 선배로서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서울호텔관광직업전문학교(서호관) 오수영(사진) 이사장은 26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이 학교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오 이사장은 “취업난을 겪는 학생들이 안타깝다”며 “그들의 꿈을 응원해 주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모두투어와 함께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호텔외식 관광사업의 글로벌 인재 양성이 목표”라고 말했다.        서호관은 국내 대표 호텔 관광계열 취업교육 전문학교다. 이 학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014년부터 3년 연속 호텔서비스 인력양성 우수교육기관으로 선정했다. 또한 고용노동부로부터 일반고 특성화 직업능력개발 훈련기관으로 위촉됐다.      특급 호텔 출신의 교수진이 4개 분야 7개 과정을 운영한다. 현재 약 20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취업률은 매년 90%를 웃돈다. 전공은 2년제 전문학사학위 호텔조리과정, 호텔제과제빵과정, 관광식음료과정, 관광경영과정이다. 대상자는 고등학교 졸업생 및 검정고시 합격생이다. 군 전역자와 대학 중퇴 및 휴학생, 대학 졸업생은 편입학이 가능하다.이 과정은 전문대와 동등한 학력을 인정한다. 80% 이상의 실습률을 보유하고 있어 현장 실무 위주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해외 취업 및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이를 위해 외국어 교육, 해외 연수, 취업 알선 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졸업생은 모두투어 그룹을 지원할 경우 100% 서류전형 합격의 혜택이 주어진다. 2020년도 입학 원서지원은 학교 홈페이지(shvc.sc.kr) 및 방문 접수, 전화 접수로 가능하다.  그는 현재 디자이너, 아나운서, 교수 등 다양한 직종에 몸담으며 학교 이사장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하며 사내 방송 아나운서 업무를 맡고 이를 계기로 케이블 방송 아나운서와 미술관 및 행사 진행 업무, 아트디렉터와 화가 등로서 활동한다. 이밖에 대학에서 비주얼커뮤니케이션 디자인 강의를 하며 학생들의 취업, 삶의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명문대 졸업생마저도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매년 취업율은 감소하고 실업율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장점을 살려 새로운 업종을 창조해 나아가는 사람들은 성공할 수 있다고 감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크리스천인 오 이사장은 올해 서호관의 재도약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취업율 95% 달성이 목표다. 그는 “교회 다니는 신실한 크리스천으로서 책임의식을 갖고 이사장의 임무를 다할 것”이라고 했다. 또 “기업 연계 주문식 실습교육과 창업 프로젝트 교육 등 학생의 취·창업 역량을 최대한 키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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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28
  • 부흥사 단체 모여 성령·말씀운동으로 세계선교 나선다
      한영훈 피종진 오범열 목사(왼쪽부터)가 지난 10일 서울한영대 총장실에서 한부총의 향후 활동 계획을 밝히고 있다.  -참석자-·피종진 원로목사(남서울중앙교회)·한영훈 총장(서울한영대) ·오범열 목사(안양 성산교회)국내외 모든 부흥사 및 부흥운동 단체를 아우르는 ‘한국기독교부흥사단체총연합(한부총)’이 창립됐다. 한부총은 지난 6일 서울 구로구 서울한영대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피종진 남서울중앙교회 원로목사가 대표총재를, 서울한영대 총장 한영훈 목사가 중앙회장, 오범열 안양 성산교회 목사가 중앙본부장을 맡았다. 지난 10일 서울한영대 총장실에서 이들을 만나 한부총의 창립 취지와 활동계획 등을 들어봤다.   -한부총은 구체적으로 어떤 단체인가.   △한영훈 목사=부흥사단체, 부흥운동단체의 총 연합체다. 하지만 부흥 관련 단체만 국한하지 않고 국내외 모든 교단과 단체를 포괄한다. 부흥 운동과 선교 사역에 헌신하고자 하는 단체는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   △오범열 목사=특별히 세계 선교를 지향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 미국 조지아주 법인사무국에 등록, 재미 재단법인으로 만들었다. 국내의 모든 교단과 단체를 하나로 묶고 해외 750만 한인 디아스포라의 지역교회 및 선교단체와 연결, 세계 선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거대한 한인 선교네트워크다. 한인 디아스포라와 연결하기 위해 이미 180개국 598개 한인 단체 리스트를 확보했다.  -한부총을 만든 이유와 과정은.  △피종진 목사=한국교회가 큰 기대를 하고 새천년을 맞았지만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교회는 성장을 멈췄고 목회자들은 탈진상태다. 또 이단과 사이비, 동성애, 마약, 자살 등 이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이를 회복하려면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령 운동과 말씀 운동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곧 부흥운동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상 명령인 선교에 매진해야 한다. 이를 모든 기독교인, 교회, 단체에 알리고 부흥의 불을 붙여야 한다. 그래서 한부총을 만들었다. 6개월 정도 치밀하게 준비했다. 총회에 앞서 지난달 30일 제1회 정책위원회를 열고 예산을 확정했다. -한부총과 세 분의 인연은.△오 목사=모두 부흥사로 헌신해왔다. 피 목사는 한국교회 부흥과 성장의 견인차였던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 16대 대표회장으로 평생 부흥운동, 성령운동을 했다. 한 목사도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 대표회장(24대)을 역임했고 특히 각 연합 단체의 주요 보직을 맡으면서 행정을 배웠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3대)을 지냈고 한국기독교영풍회, 세계복음화협의회, 한국복음단체총연합를 창립했다. △피 목사=오 목사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스타 부흥사로 소개할 수 있다.-향후 활동 계획은.△오 목사=가장 먼저 연합과 일치를 위해 기도회를 연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기도회인데 다윗이 침상을 적신 것처럼 히스기야왕이 벽을 향해 울부짖은 것처럼 눈물로 회개하자는 것이다. 3월 12~14일 3일간 매일 저녁 7시30분 서울한영대 대강당에서 집회를 한다. △피 목사= 국가 또는 교계 이슈에 성명을 통해 우리의 소리를 전하겠다. 진보, 보수도 아닌 복음적인 입장이다. 국가 차원에서는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다.-창립 첫해인 만큼 참여가 중요하다.△한 목사=올해는 한부총을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창립 취지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 첫 사업으로 한부총을 소개하는 화보를 발행하겠다. 올해 한국어판을 만들고 내년쯤 영어판도 낼 것이다. SNS도 적극 활용하겠다. 현재 확보한 한인 단체를 SNS로 연결,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 또 인터넷 TV도 개설한다. 시험 방송을 마쳤다.△오 목사=서울한영대 대학본부 306호 ‘피종진 목사 기념홀’을 사무실로 사용한다. 재정이 확보되면 직원도 채용할 것이다. 올해는 행정적으로 문서적으로 향후 활동을 준비하는 해다.△피 목사=부흥사를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겠다. 우리가 늘 설교만 하지 듣는 시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발전의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자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천천히 교파를 초월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면 모두 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6만 교회와 15만 목회자들의 기도와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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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01-17
  • "하나님이 주신 사명 때문에 일생 옥수수 육종에 전념할 수 있었다"
      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 겸 한동대 석좌교수 김순권 박사   옥수수 육종으로 '아프리카와 북한의 기아 문제 해결'에 기여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북한과 아프리카의 척박한 환경에도 잘 자라는 옥수수 품종 개발로, 옥수수 증산에 크게 기여한 김순권 박사. 이런 업적으로 그는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고, 농업계의 노벨상인 국제농업연구대상(벨기에 국왕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상보다 타인을 위해 사는 삶이 훨씬 가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에서 약 500만 명의 기아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부한다. 현재 북한과 아프리카에서 재배되는 옥수수 품종의 50% 이상은 김순권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박사는 ‘옥수수 하나로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 하겠다’는 옥수수 외길 인생에 대해, “하나님이 내게 사명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현재 한동대 석좌교수로서 왕성한 옥수수 육종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김순권 박사. 개화동 국제옥수수재단 사무실에서 7일 그와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Q : 김순권 박사님께서 진로를 농대 농학과로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어떤 신앙 배경이 김 박사님을 옥수수 외길 인생으로 인도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A : 부산상고 입시에 떨어져 1년 동안 울산 앞바다에 벼 농사지었습니다. 그 때 벼 도열병이 와서 100% 죽었지요. 굉장히 독한 농약을 쳐서 농약에 중독됐습니다. 거의 죽을 뻔 했지요. 그래서 농사를 안 지어도 되는 상고나 농협 협동조합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마저도 실패했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울산 농고 들어갔습니다. 당시 울산 농고는 60%가 농장 실습이었죠. 농사에 잔뼈가 굵은 나에겐 물 만난 고기였습니다. 그러다 고 2때 한 여학생을 짝사랑 했습니다. 그 여학생이 교회를 다녀서 신앙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다 보니 진지하게 물음이 들더군요.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내가 사는 목적은 무엇인가’ 등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무얼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정말 고민했지요. 결국 울산 농고에서 농업도 적성에 맞았고, 신앙 배경 때문에 “세상에서 태어난 이상 내가 농업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자”는 결심으로 경북대 농학과에 진학했습니다. Q : 옥수수 하나로 인류 기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진데 큰 영향을 줬던 성경 말씀이나 신앙 선배들이 계셨던가요? A : 경북대 1학년 때 대구제일교회에 다녔습니다. 당시 이상건 목사님의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됐다”는 설교 들었어요. 나처럼 IQ도 가정배경도 안 좋았던 내가 하나님께 붙들리면, ‘하나님의 심부름을 할 수 있지 않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긍정적 마인드도 생겼고요. 이것이 옥수수 육종 개발을 계속할 수 있던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리고 고려대 대학원 3학기를 마치고 인턴으로 농업 진흥청에 들어갔어요. 당시 미국에서 유학 제안도 왔던 상황이었습니다. 도미 직전 한경직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영락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에스겔 33:7절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 할지어다”를 가지고 설교하셨는데, 이스라엘 민족을 한국 민족으로 바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사명감이 더 세워졌지요. 한국 민족을 살리는 파수꾼으로 살자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이는 ‘옥수수로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줬으면 하는 사명감’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사명을 주셨죠. 옥수수를 통해서 한국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자는 소명 말입니다. 앞서 들은 두 가지 설교 말씀을 품고 미국에서 옥수수 붙들고 끈질기게 공부했습니다. 이런 원동력은 결국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시 일리노이 대학교 연구과정을 거치고 하와이 대학교에 들어가 석·박사를 3년 만에 땄습니다. 그 학교 역사상 최단기로 박사를 땄다고 하더군요. 일리노이 대학에 있었을 때 연구원들은 내게 “김순권은 옥수수를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평가했어요. 한 마디로 옥수수에 미친 사람이었죠. 미국에서 치질 수술의 부작용으로 졸도해 죽음 직전까지 갔고, 교통사고도 당해 죽을 뻔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말라리아에 걸려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런 나를 수없이도 살려주셨죠. 하나님께서 죽기 전 반드시 나를 지켜주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또 버텼어요. 그런 어려움이 왔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했던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건 신앙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Q : 결국 옥수수 육종으로 기아 문제 해결하고 싶다는 하나님의 사명이 김 박사님의 진로 선택에 핵심이었네요? A : 네 그렇습니다. 74년에 박사를 따고 미국 농업 회사인 파이디아가 월 3000불로 저를 스카우트하려고 했어요. 당시 농업 진흥청 월급은 고작 47불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농업 진흥청 입사했습니다. 돈 보다는 사명을 위해서. 가난한 대한민국이 굶주림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해 농진청에 입사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공무원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종이 돼야한다는 마인드여야 해요. 저는 매일 새벽기도 드리고 저녁 11시 반에 퇴근했어요. 당시에는 일반 공무원들처럼 철밥통으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47불 월급으로 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 죽어도 좋다고 당시에 생각했어요. 요새 젊은 사람들 너무 돈만 밝히는 것도 안 돼요.   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 겸 한동대 석좌교수 김순권 박사   Q : 하와이 대학교에서 농학 박사를 받으신 후, 74년부터 농진청에서 병충해에 강한 옥수수 육종 개발에 집중하셨습니다. 국내 옥수수 증산에도 크게 기여하셨는데요. 70년대 대한민국은 당시 보릿고개 등 우리나라가 식량 부족을 겪고 있었을 때인데, 하필 쌀이 아닌 옥수수 품종 개량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 실은 당시 농업 진흥청에 쌀 연구 TO가 없어 옥수수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점차 옥수수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76년도에 수원 19호라는 옥수수 품종을 개발했습니다. 당시 강원도 전체 농가 소득이 연 400억이 늘어났어요. “내 1분은 10만원이다. 농민들 전체 수익 400억이 곧 나의 월급”이라는 생각으로, 시간 절약하면서 연구하고 공부했습니다. Q : 79년에 국제열대농업연구소 초청으로 17년 동안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병충해에 강한 옥수수 종자 개발에 일조하셨습니다. ‘악마의 풀’로 풀리는 스트라이가 바이러스에 강한 옥수수 종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이할 점은 스트라이가 바이러스를 죽이는 옥수수 종자 아닌 ‘공생’하는 종자입니다. 왜 하필 공생인가요? A : 53년 육종 유전을 해보니까. 자연의 진화라는 건 반드시 공생을 해야 합니다. 진화는 공생을 하는 방향으로 되어 갑니다. 육종 공부를 해보면서 압니다. 유전 인자 두 개가 있어요. 하나는 100% 강한 스트롱(Strong) 유전자. 다른 하나는 95% 정도 강한 위크(Weak) 유전자입니다. 100% 강한 건 반드시 돌연변이를 일으킵니다. 자연의 원리는 병해충들도 살아남아야 해요. 이들을 없애려 할수록 더욱더 돌연변이가 발생합니다. 농약을 쳐서 마구 병해충들을 컨트롤 하면 할수록 농약에 대한 내성이 마구 뻗칩니다. 53년 동안 옥수수와 병해충 간 공생을 연구해왔습니다. 병해충을 없애는 것이 아닌 병해충과 공생하면서 사는 옥수수 종자 개발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이 불 때 벼가 뻣뻣하면 부러지기 마련입니다. 반드시 같이 살아가야 해요. 인생 살아가면서 자기 혼자 너무 잘났다고 살지 말고, 손해 볼 때도 있어야 해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하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죠. 자기가 끌려 다닐 때도 있어야 하고요. 이런 연습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Q : 아프리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옥수수 종자 개발을 하면서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농학자들, 국제 농업 자본들의 견제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반대가 있었다면 그러한 상황과 이를 어떤 마음으로 극복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A : 79년도 나이지리아에서 육종 개발을 성공한 후, 연 옥수수 100만 톤 증산에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되고 나서 유엔(UN) 및 국제 농업 자본들이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농업 자본들이 유엔에게 심지어 “나를 파면시키라”고 압박을 가했습니다. 나는 유엔에게 “가난한 사람들 도우라고 나를 스카우트 했는데, 이제 와서 나를 파면하라니 무슨 소리냐”고 반발했습니다. 아프리카는 유럽 등의 식민지 생활을 100년이나 겪었습니다. 아프리카가 발전하면 할수록 유럽이 곤란할 수 있어요. 심지어 유럽 농학자들은 “아프리카가 잘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적당히 돕자는 식이었어요. 나는 일본의 식민지배 당한 대한민국 출신으로 식민지 아프리카의 아픔에 깊이 공감했죠. 이런 공감대가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는 원동력이었던 같습니다. 당시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들에게도 안타까웠던 점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 현황은 잘 분석해요. 우리나라가 자원도 없지만 세계 GDP 10위권에 오른 경제 성장 말입니다.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은 우리나라보다 자원도 풍부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개발도상국입니다. 이유는 무얼까요? 그 나라에 애국자들이 없어요. 극히 일부만 잘 살겠다는 마인드가 문제에요. 당시 아프리카 국민들이 전반적으로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Q : 아프리카에서 자체적으로 옥수수 수확량이 늘면서 아프리카 사람들의 굶주림에 크게 일조하셨습니다. 1998년부터 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에 취임해 북한 농업 과학원과 옥수수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진행하셨습니다. 구체적인 성과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A : 79년도부터 나이지리아에서 옥수수 육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연간 100만 톤의 옥수수를 생산 하는데도, 식량이 부족해 100만 톤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개발한 옥수수 품종으로 지금은 연간 생산량 1000만 톤까지 늘어났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재배되는 옥수수의 50% 이상은 우리 연구팀이 개발한 것입니다. 북한도 50% 이상이 수원 19호+이외 12종입니다. 옥수수 재단의 연구개발 때문에 북한에선 연간 100만 톤이 증산됐지요. 옥수수 재단이 없었다면 아마 북한에선 500만 명이 이상이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Q : 북한의 옥수수 증산에 크게 기여하셨는데, 보수 기독교 일각에선 북한에게 식량 원조를 반대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A : 나는 북한 정권을 도우 자는 게 아닙니다. 죽어가는 동포를 돕고 싶어요. 옥수수도 로켓 같이 생겼잖아요? 옥수수 쏘아 올리라고 북한 과학 연구원이 제게 연구를 요청 했을 때 승인해준 겁니다. 국제 옥수수재단에 단 1만 원 후원으로 종자와 비료 값만 대주면, 북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남한 정부는 단호하게 북한 정권에게 돈 같은 것을 지원해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북한 주민들에게 옥수수 종자를 줘서 스스로 땀을 흘려 농사를 짓도록 도와야 합니다. 내가 하는 건 북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옥수수 품종 개발입니다. 우리나라는 북한이든 어디든 ‘퍼주기식’ 지원이 아니라, 종자를 개발해서 그 나라 국민들이 종자를 심어 땀을 흘려 재배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고요.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스스로 농사를 지어서 일어 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순권 박사가 당시 98년도 북한에 비료 지원 했을 때 십자가가 새겨진 포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아래는 지원에 동참했던 교회 이름이 적혀 있다   Q : 북한 옥수수 개발 지원 사업을 하시면서 총 57번의 방북을 하셨는데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신지요? A : 아내가 98년도에 나와 같이 방북하면서, 1살 때 헤어진 오빠를 만났습니다. 집사람이 북한에서 태어나 전쟁 중 국제시장 배를 타고 남한으로 왔거든요. 47년 만입니다. 그런데 제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왜 내 아내만 만나게 해주냐”고 따졌습니다, 남한에서 죽기 직전의 할아버지·할머니들도 이산가족 만나게 해줘야 한다고 따져 물었더니, 김 위원장이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더군요. 그래서 성사된 것입니다. 나는 언제 김 위원장에게 “기독교 신앙 없이는 북한 과학원과 옥수수 종자 개발 할 수 없다”고 우겼어요. 그러더니 98년 1월에 김정일 위원장은 내게만 종교의 자유를 허락해 줬지요. 김정일 위원장은 나를 남조선 깡패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 당시 남한 교회가 지원해준 비료포대에 십자가 마크가 있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십자가를 빼라고 지시했거든요. 그런데 나는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빼면 비료 안 주겠다고 김 위원장에게 끝까지 우겼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마크가 새겨진 평화의 옥수수가 됐지요. 그 아래는 지원해준 남한 교회 이름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십자가를 끝까지 고수했던 건 옥수수 지원 사업이 잘 안될 경우 우리가 십자가 지겠다고 하는 결기였지요. 결국십자가 마크가 찍힌 160만 비료 포대가 북한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됐습니다. Q : 현재도 왕성한 연구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진행하시는 연구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A : 세계 기후 변화를 생각하는 옥수수 육종 개발을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옥수수 알맹이를 가지고 바이오 에탄올을 생산했는데, 사람이 먹는 식량으로 만들다보니 전 세계적으로 식량 파동이 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옥수수 잎을 이용해 바이오 에탄올을 생산하자는 것입니다. 생물자원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는 친환경 연료입니다. 2011년부터 포스코(POSCO)의 연구 지원으로 시작했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옥수수 잎을 수입해서, 바이오 에탄올 뽑는 연구를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갑자기 친환경 사업을 막아 좌초됐죠. 현재는 정부 연구비 없이, 모금만으로 국제 옥수수재단이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약 70-80%는 기독교인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런 건 정부에서 연구비 지원을 해야 합니다. 이건 국민 모금으로 할 일이 아니죠. 그리고 검정 약 옥수수 육종도 개발 중입니다. 원래 조류 독감 치료약을 발명하려고 이 품종을 연구했는데, 이것이 당뇨에도 좋다는 결과가 있어서 이를 초점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Q : 선생님께서 그 간 옥수수 종자 개발로 노벨 평화상 5번, 농업분야의 노벨상은 국제농업연구대상(벨기에 국왕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요새 초·중·고등학생 진로 1위가 공무원이라고 합니다. 과학자는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밀려있고요. 꿈을 잃어버리고 사명을 잃어버린 시대, 한동대 학생들에게 그리고 초·중·고 학생들에게 진로 선택에 있어 해주실 말씀은? A : ‘내가 이 땅에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사명이 있어야 해요. 욕심을 부리지 말고 내가 바보라도 누구라도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있거든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기 일이 매우 중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평가 절하하면 안 돼요. 긍정적인 마인드가 매우 중요해요.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좀 천천히 되도 아무 문제없어요. 나는 53년 동안 옥수수 한 분야를 파면서, 삶에 기복이 있어도 다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주어진 시간을 남을 위해서 무얼 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옥수수 연구에 전념했습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에요. 남을 위해서 남기는 인생.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이 재밌어져요.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누는 그런 인생이 매우 중요합니다. 받아먹기보다 남한테 주는 연습을 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인생에서 좋은 일도 많이 생기고 꿈도 크게 될 것입니다. 자기만의 성공이면 인생에서 남는 게 없어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꿈을 크게 가져 전 세계 60억 인구를 위해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해요. 무엇을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이를 생각하면 젊은이들은 계속 스마트폰 가지고 시간 낭비할 수 없어요.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랑할 때 위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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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01-08
  • ”멜론 차트 100위권에 진입할 CCM을 만들고 싶다"
      ©위러브(WELOVE) 제공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주의 사랑을 외치게 해” 어느 날 예배 중, 이 가사에 얹힌 묵직한 건반 멜로디가 가슴에 꽂혔다. 음악 검색 어플을 돌려보니 ‘WELOVE-주의 나라’로 검색됐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생각할 거리를 줬던 노래의 주인공들을 만나고 싶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던 13일, 위 러브(WELOVE)의 박은총 대표(장신대 기독교음악학과 재학)를 만났다. 인터뷰는 장신대 근처에 위치한 WELOVE 카페에서 진행했다. 박 대표는 “우린 단순히 CCM 밴드가 아닌 Creative Team"이라며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방식으로 그리스도 아름다움을 일반 대중들에게도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현재 위 러브는 혼성 멤버 18명이 활동 하고 있다. 각기 베이스, 기타, 보컬을 맡으며 다채로운 화음을 발하고 있는 위러브(WELOVE). 그는 ”멜론 차트 100위권에 진입할 CCM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목표“라며, WELOVE의 '당찬 꿈’을 들어봤다. Q : 위 러브(WELOVE)의 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 우리는 워 십팀(Worship Team)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팀(Creative Team)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창작에 집중하고 싶다는 의미죠. 이 시대는 영상시대고 영상을 통해 소통하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곡을 쓰더라도 영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카페 운영, 더 나아가 예배 컨퍼런스 등 다양한 요소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독교에서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들을 뽑아내, 기독교 문화로 재가공함으로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내 친구들 넓게는 내 세대들을 보더라도 기독교 콘텐츠가 빈약했거든요. 나도 10년 전만 해도 외국의 워십 영상을 통해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현재 한국에는 젊은 세대에 눈높이를 맞춘 콘텐츠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위 러브는 이런 콘텐츠를 만들어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위러브(WELOVE) 팀 리더 박은총 대표   Q : 박은총 대표님과 나머지 팀원들의 살아왔던 인생 여정이 어떻게 지금의 위 러브의 음악을 만들어냈는지 궁금합니다. A : 강현이(WELOVE 워십 리더)랑 나랑 지금까지 위 러브의 곡을 써왔어요. 전까지는 곡을 써본 적이 없었어요. 그니까 위 러브를 시작하면서 곡을 쓰게 된 케이스죠. 위 러브는 무엇보다 멜로디보다 가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강현이랑 나랑 추구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서로 소통하면서 가사를 쓰고 있지요. 나 같은 경우 가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이 세대와 소통하면서 쓰고 싶어요. 즉 지금 세대와 소통할 수 있을지를 항상 질문 하면서 곡과 가사를 쓰고 있죠. 가령 ‘~하소서’란 표현 자체는 우리 곡에선 1번 밖에 없어요. 왜냐면 교회에서만 배워서 쓰는 소위 고어(古語)식 표현이라서 그렇죠. 예수님 믿지 않는 우리 세대가 보면 고어에요. 그래서 믿지 않는 10, 20대들이 평소에 쓰는 표현이 뭘까 고민하면서 가사를 써요. 강현이 같은 경우.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표현이 진짜 많이 나와요. 가사 중 ‘꿈 없는 우리에게’, ‘우리를 통해 이뤄지리’ 등 ‘우리’를 항상 강조하죠. 강현이와 나와 동감한 부분은 이 시대 교회가 공동체성을 많이 상실했다는 것이에요. 공동체성을 고백하고 싶고, 무엇보다 우리세대에 맞게 공동체를 고백하고 싶어요. 우리 곡 중 ‘사랑 중에 사랑’이 있어요. 이거 3일 밤을 새가면서 썼거든요. 청소년 집회를 위해서 준비했던 곡이에요. 청소년들이 위로를 넘어서 회복까지 갈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쓴 곡입니다. 진정성도 또한 위 러브(WELOVE)만의 포인트에요. 우리 팀은 예배에서 멘트든 기도든 예배인도든 말 자체에서 최대한 가면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우리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죠. 그러면서 청소년 아이들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Q : 카페 운영도 공동체성을 추구하고 싶은 것과 연관 있는 건가요? A : 네 그렇습니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 중 렉서스(Lexus)가 있어요. 여기 매장 같은 경우는 카페도 있고 식당도 있어요. 이런 철학을 공유해서 우리 공간에 오면 위 러브를 경험하게 하고 싶어요. 위 러브와 직접 소통도 하고요. 카페란 공간 자체가 그런 면에서 좋은 매개체죠. 온라인에서만 보았던 위 러브를 오프라인에서 직접 보고 허심탄회하고 자기 속 얘기 털어놓고 소통하는 공간. 이를 위해 장신대 근처에 카페를 열었습니다. Q : 아이들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용납과 연관 있는 건가요? A : 그렇습니다. 팀원들끼리도 서로 오픈하는 것에 있어, 서로 숨기지 않고 가식 떨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자유롭게 하자 이거죠. 교회 설교 시간에는 회중들은 보통 펜으로 기록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세대는 영상세대에요. 주로 핸드폰을 쓰고 있죠. 매체가 영상으로 바뀌었는데 이를 예배 요소로 적극 활용하자는 겁니다. 예로 우리 예배 컨퍼런스에 온 아이들(청중)에게 “핸드폰 적극 써도 돼.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찬양해”를 많이 강조하는 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로움을 추구해요. 타인의 시선 신경 쓰지 말고. 보통 예배는 강대상을 중심으로 청중과 목사 간에 일방적인 시선이잖아요? 그러나 우리 예배는 다 같이 어우러져 함께하는 분위기를 추구해요. 그래서 우리가 중앙에 서고 청중과 우리와 하나로 어우러지는 형태로 워십 공연을 드리죠.   ©위러브(WELOVE) 제공     Q : 다른 기독교 신문에서 위 러브(WELOVE)의 소개 글을 보니까, “우리는 단순히 CCM 밴드가 아닌, 기독교문화를 표방하는 예배 팀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씀하신 걸 보았습니다. 위 러브(WELOVE)가 추구하고 싶은 기독교 문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A : 주변에서 우리를 CCM 밴드로 보지만. 실은 영상이 메인이에요. 그 외에 옷도 제작 하고요. 보통 일반사람들은 CCM 장르를 많이 안 듣잖아요. 그러다 보니 세상과 소통하는 CCM 장르를 추구하고 싶어 진거죠. 세상에서 우리가 배울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나왔잖아요? 물론 세속적인 부분도 경계해야겠지만, 어쨌든 교회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우리 기독교 문화도 세상을 향해 아름다움을 충분히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를 적극 느끼도록 하고 싶어요. 특히 예수의 아름다움 말이에요. 이런 소통을 위해 세상의 매체를 적극 차용하고 싶은데, 이게 바로 영상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일반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교회 문이 높거든요. 우린 그 울타리를 허물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는 교회보다 체육관, 라이브 클럽을 빌려 공연해요. 이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우리 마음이죠. 교회란 공간이 세상에서 너무 안 좋게 비춰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왜 그럴까 고민해 봤는데. 교회는 교회만의 일방적 언어를 강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10대·20대 아이들에게 말이죠. 그래서 아이들이 있는 곳, 세상과 소통이 가능한 곳에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가서고 싶었어요. 옷도, 스티커 등도 만들고요. 그처럼 교회만의 언어에서 벗어나 세상과 어우러져 충분히 멋있고 아름답고, 감각적인 기독교의 진리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정말 아름다우신 분이잖아요? 그분으로 인해 우리가 탄생됐는데, 왜 우리 크리스천들은 더 아름답고 창조적이지 못할까란 고민이 있었어요. 그래서 세상적인 문화를 이용해 기독교만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그 안에 복음적 메시지를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거죠.   위러브(WELOVE)카페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일하는 팀 멤버들   Q : 위 러브의 ‘주의 나라’를 처음 들었는데, 멜로디라인이 감각적이면서 가사내용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느꼈습니다. 세상의 고된 벽 앞에서 힘들어하는 20대말·30대 초반의 크리스천 직장인들을 위로하는 느낌이랄까? ‘고된 하루를 보내고’, ‘공감 하시네’ 등도 그렇고요. 음악을 통해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해주는 게 목표인가요? A : 멜로디가 좋다고 하시니 감사하네요. 그러나 우린 가사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멜로디가 좋다는 얘기도 가사가 공감되기 때문에 반응이 좋다고 생각해요. 보통 찬양들을 들어보면 아쉬운 점이 있는데, 바로 윗세대의 고백을 그대로 계승한다는 점이에요. 그러다 보니 가사들이 우리 세대와 공감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위 러브(WELOVE)는 우리세대가 절실히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가사를 써요. 특히 지금 10대, 20대 아이들이 제일 필요로 하는 부분이 무얼까 생각하면서 가사를 쓰고 있죠. 특히 어른세대들이 가르쳤던 부분 중 ‘너희도 희생해라’는 것이 지금 세대에겐 별로 와 닿지 않다고 생각해요. 헌신은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강요해서 되는 건 아니거든요. 이런 강요하는 목회는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괴리감 속에서 지금 우리 세대가 느끼는 부분을 고스란히 담아내려 노력한 것 같아요. 교회 제도권 안에 있으면 어른들의 눈치 봐야 하잖아요. 언제는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에게 ‘주의 나라’ 가사를 보여드렸어요. 그런데 목사님은 가사 내용 중 ‘불합리한 현실’이 마음이 걸린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 세대는 현실이 충분히 불합리하다고 여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어른들과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Q : 현실 속 어떤 부분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시는지? A : 강현이(위러브 워십리더)가 파리바게트에서 알바를 많이 했어요. 세상 가운데 있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희생을 강요당하는 부분이 많았죠. 세상은 보이는데서 열심히 하고, 안 보이는데서 쉬엄쉬엄 하고 그러는데. 그리스도인은 매번 열심히 하고 이런 지침가운데서도 ‘주의 사랑을 깊이 받은 내가 먼저 섬겨 야겠다’는 그의 스토리가 있었어요. 이를 담은 게 바로 ‘주의 나라’였던 거죠. Q : ‘주 나와 함께 하시니’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기타 리프가 황홀한 느낌을 자아냈어요. 그러면서 그 위에 타고 올라 질주하는 청춘의 느낌이 들었거든요. 기존 CCM의 노선을 유지하면서, 이로부터 탈주해 대중음악의 어느 한 지점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고민이 묻어나온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 저희 꿈은 우리 워십 음악이 멜론 차트 100위권에 올라가는 것이에요. 기독교 음악이 줄 수 있는 힘이 충분히 있어요. 특히 예수님을 담아 전파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지금도 시도하고 있고, 앞으로도 시도 중입니다. 일반 가수들과 피처링도 준비 중이고요. 이를 통해 세상과 좀 더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 다른 기독교 매체 소개 글(크리스천 투데이 2019. 7. 3일자 기사)을 보니, 한국의 힐송(HillSong) 같은 CCM을 추구하고 싶다는 내용을 보았어요. 힐송의 어떤 부분에 영향을 받았는지? A : 저는 매년마다 힐송(HillSong) 컨퍼런스 가고 있어요. 보통 힐송을 생각하면 음악만 생각해요. 그러나 힐송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1% 밖에 안 돼요. 힐송은 하나의 교회에요. 그들은 소외되는 사람들을 섬기는 엄청난 교회죠. 문화적으로서 접근하는 것. 보통 사람들이 힐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있어요. 바로 힐송은 멜로디가 좋다는 것? 이들은 1년에 수천 개의 곡을 쏟아내는데 그 중 1-2개만 뽑아내서 팬들에게 소개하거든요. 엄청난 검증을 거치는 거죠. 그리고 음악을 선보였을 때 아이튠즈 차트 1위에 오르고 그래요. 힐송은 그런 점에서 세상에서도 나무랄 게 없는 요소를 갖추고 있죠. 이처럼 세상 문화와 소통 가능한 부분을 힐송에게서 배우고 싶어요. Q : 그런데 너무 멜로디에 치중하면, 가사를 통해 청중들에게 전달되는 복음의 메시지가 희석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얼마 전 힐송 멤버 중 마티 샘슨(Marty Sampson)이 신앙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고백을 한 적도 있었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 우선 위 러브(WELOVE)는 멜로디보다 가사를 중시합니다. 저희들이 쓴 가사 중 신학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이해한 부분은 적극 장신대 교수님들에게 물어봐요. 그리고 위 러브 멤버 중 다양한 신학교 출신들이 포진해 있어요. 가령 침신대, 합신대 학생들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마티 샘슨(Marty Sampson)을 꾀나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예배 컨퍼런스 공연 때, 그를 보면 항상 질문을 던지고 있었어요. 그 사람은 구도자의 모습을 많이 보여줬던 것 같아요. 막상 그 일(지난 8월, 마티 샘슨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자신의 신앙적 회의를 고백한)이 터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죠. 하지만 신앙의 여정 중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그를 위해, 그리고 신앙적 의심에 빠진 모든 이들을 위해 적극 기도하는 것뿐이죠. 혹시 주 품에(Still) 작곡한 힐송 멤버 르우벤 모건(Reuben Morgan) 아세요? 그는 형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교회를 떠났어요. 그러나 10년 만에 다시 교회로 돌아왔죠. 최근 힐송이 발매한 피플(People) 앨범 중 르우벤 모건이 작사한 노래가 있어요. 거기에는 ‘당신이 나를 찾으셨다’는 가사 내용이 나와요. 들으면 들을수록 슬프죠. 그러나 분명 르우벤 모건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 에요. 설사 그가 교회를 다시 떠나도 하나님은 그를 직접 찾아가실 것이란 믿음이 있어요.     위러브(WELOVE) 팀 리더 박은총 대표   Q : 유투브 영상 댓글 중 “위 러브(WELOVE) 찬양을 들으니깐 맨날 듣던 가요가 듣기 싫고 찬양만 듣고 싶어 졌어용”이라는 한 청소년의 댓글이 달린 걸 보았습니다. 실제로 유튜브 공연 영상 보니까 공연에 크리스천 청소년 특히 10대, 20대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위 러브만의 매력 포인트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A : 솔직함과 진정성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했겠죠. 그러나 바로 솔직함과 진정성이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소통하는 방식과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는데. 우리가 소통하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진정성인 것 같아요. 진솔함, 솔직함이죠. 유튜브가 인기를 얻은 요인도 바로 진짜 리얼리티를 보여주니까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그것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 청년들에게서 인기를 얻은 거죠. 우리도 찬양 인도 할 땐 정형화된 말 안 해요. 보통 찬양 집회가면 “다 같이 주께 기도하며 나아 갑시다” 이러잖아요? 근데 우리는 청중들에게 “애들아? 왔어? 준비됐어?”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해요. 또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에게서 자유함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도록 노력하죠. 틀리더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죠. 다른 CCM밴드들의 영상들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는 틀린 모습 그대로. 현장 사운드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해요. 이것이 위 러브(WeLove)의 진정성이고 매력 포인트라 생각해요. Q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은? A : 어른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다음세대는 죽지 않았다고 외치고 싶어요. 어른들의 옷을 다음세대에게 입히고 싶은데, 안 입혀지니까 죽었다고 말하지만 실은 아니거든요. 우리 아이들은 자기들의 방식대로 기독교 문화를 이어가고 소통하려고 해요. 그러니까 어른들도 예수님처럼 좀 더 넓은 마음과 아량으로 품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예수님의 용납과 포용. 너그러운 마음으로 위 러브(WELOVE) 그리고 다음세대 위해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위러브(WELOVE)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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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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