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19(화)

통합검색

검색형태 :
기간 :
직접입력 :
~

교계뉴스 검색결과

  • 교회가 타락했다? 성령의 등불 꺼지지 않는다면 갱신 가능
      지난 2월 파주 순복음삼마교회에서 열린 ‘2019년도 2학기 모세오경 아동부 수료식 및 종강예배’에서 우수상을 받은 어린이들이 담당 교역자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교회다. 다윗은 교회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성막을 찾기 전에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겠고 잠도 자지 않겠노라”고 고백했다.(시 132:3~4)역사적으로 보면 교회가 성장할 때 나라가 부흥했고 교회가 건강할 때 나라가 군사적으로 튼튼했다. 하나님이 국가와 개인을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가 중요하다.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불러 사회법과 절기법, 실천사항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고 피로 약속을 체결했다. 이 땅에서 가장 완벽한 법의 골격이 세워진 셈이다. 하나님은 그 법을 실천할 수 있도록 성막을 주셨다. 출애굽기 25장부터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 성막에 대해 나온다.이 세상에는 법도 많고 권세자도 많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법은 하나님의 법에 근거해야 하며, 권세자도 하나님의 법에 따라야만 한다. 이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이다.“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세상에는 많은 기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 다스린다 해도 하나님이 없는 나라는 결국 독재가 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되고 만다. 그래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부터 핍박하고 교회를 없애려고 한다.그들은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진실에는 선동선전만 있을 뿐이다. 북한 주체사상에서 볼 수 있듯이 진실이나 진리는 원래 그들에게 없었다. 그 본체가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상을 믿고 따라갔던 백성들의 삶은 엉망이 되고 개인은 자유를 빼앗겨 버렸다.러시아 중국 북한에 진정한 인권이 있는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가. 자유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고 행복도 그들만의 특권이다. 모든 사람이 가졌던 자유나 행복을 그들을 위해 포기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주의요 공산주의다.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은 자기 이름을 내고자 바벨탑을 쌓는다. 욕망 때문에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자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지나친 권력이나 부귀영화에 대한 욕심을 버리며 살아간다. 그들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천국을 준비하며 살기 때문이다.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함께 행복하게 사는 법’을 추구하는데 이를 민주주의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교회가 타락할 수도 있고 부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는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자정능력이 있다. 성령님은 시대마다 교회를 갱신했고 이 땅에 필요한 새로운 교회를 탄생시켰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가 타락했다고 손가락질할지라도 이 땅에 교회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회가 이 땅에서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가 말세일 것이다.성경은 말세를 예언했다. 말세가 오면 교회가 핍박을 받아 등불이 꺼지게 될 것이며, 이때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자연재해에서 시작해 전쟁으로 발전되고 이로 인해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성령 충만한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해야 하고 등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땅에서 창조주를 쫓아낸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멸망할 것이다.하나님이 인간과 살기 위해 만든 최초의 성전은 에덴이었다. 그러나 사단의 거짓에 속아 선악과를 따먹고 사단의 종이 돼버린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났다. 그때부터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에덴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들판에서 돌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노아가 그랬고 아브라함과 야곱이 그랬다.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성막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이곳에서 인간과 만남이 이뤄졌기 때문이다.성막은 가나안에 가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성장했고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과 운명을 같이했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탈 때 이스라엘은 멸망했고 남은 백성들은 바벨론의 노예로 끌려가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끝이 났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종말은 언제 오는가. 이 땅에서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교회가 핍박을 받고 사라질 때라고 말한다. 그때가 되면 종들이 핍박이 두려워 세상과 타협하게 되는데 이를 ‘타락’이라고 한다. 이때 성령은 교회를 떠나고 교회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아있는 에베소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버가모교회 라오디게아교회같이 죽은 교회가 돼 있을 때라고 말한다.  이일성 목사             
    • 교계뉴스
    • 목회
    2020-04-10
  • “형식적인 성경공부는 바리새인만 만들어낸다”
    이일성 파주 순복음삼마교회 목사(오른쪽)가 지난달 30일 전남 목포 예닮교회에서 열린 모세오경 아카데미 목회자세미나에서 순복음삼마교회 성도들과 함께 훈련 시범을 보이고 있다.  어린양은 할례받은 사람들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먹을 때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법대로 먹어야 했다.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출 12:8)첫째, 양은 불에 구워서 먹으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말씀을 먹을 때 영적인 ‘불’인 성령을 받고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성령을 받음으로 그때부터 설교가 은혜가 되고 말씀이 생명이 되기 때문이다.둘째, 말씀을 먹을 때 주의할 것이 있다. 양을 먹을 때 날것이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는 것이다. 영적으로 볼 때 이 말씀은 설교할 때 문자적으로 혹은 율법적으로 말씀을 먹이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말씀을 부드럽게 하려고 세상 것을 섞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쉽고 재미있게 설교하면 교회가 부흥할 수도 있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 수도 있다. 그러나 말씀은 재미있거나 부드러운 게 아니다. 성경은 말씀을 먹을 때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으라고 하셨다.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을 때 그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건강에 좋은 음식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부드러운 고기를 좋아해 물에 삶은 고기를 먹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였다.설교는 오직 복음적이어야 한다. 이는 깨달음이 있는 설교를 말한다. 성경은 지식이 아니라 깨달아야 하는 책이다. 성도들은 말씀을 깨달을 때 비로소 변화되고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마 13:23)성경에 바리새인이 나온다. 바리새인은 성경을 가르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과 회당에서 성경을 가르쳤지만,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고 위선자들만 양산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목회를 하면서 내린 결론은 ‘형식적인 성경공부는 바리새인만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복음삼마교회는 모세오경 아카데미를 진행하면서 성경공부라는 말 대신 ‘훈련’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훈련은 반드시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영적 전쟁을 위한 것이다. 말씀은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 12:11)첫째, 우리는 왜 말씀을 먹는가. 말씀을 무기 삼아 세상과 싸워 세상을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게 하기 위함이다. 둘째, 그러면 어떻게 훈련시켜야 하는가. “허리에 띠를 띠고 싸우라”고 말씀한다. 진리의 띠는 예수 이름으로 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갖고 계시고 그 권세를 믿는 우리에게 위임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갖고 싸우면 충분히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마 28:18~20)셋째, 신을 신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은 복음이다. 우리는 전쟁하기 위해 찬송을 준비하고 전갈을 밟을 수 있는 복음을 준비해야 한다. 에베소서에서도 싸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평안을 주는 복음의 신을 신으라고 하셨다.많은 사람에게 설교하는 것도 중요하다. 많은 곳에 가서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가 반드시 할 일은 복음의 신발을 신는 것이다. 그래야 그곳에 생명이 싹트고 복음의 열매가 맺는다.(엡 6:15)넷째,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말씀한다. 지팡이는 목자가 양을 인도할 때 쓰는 도구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킬 때 사용했던 권능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래서 권능 혹은 아버지의 마음을 의미하는 지팡이를 들고 가야 한다.목회자는 세상 CEO가 아니다. 목회자는 언제나 마귀와 싸울 준비가 된 야전사령관과 같다. 사울 왕처럼 영적 전쟁 앞에서 무능력하게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인의 장막’을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면 충분하다.유월절 어린양을 먹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설주와 인방에 피가 있는 집에 들어가 양을 먹은 목적이 있었다. 바로 홍해수를 건너 가나안 땅에 가기 위해, 아말렉 그리고 아모리 족속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홍해수를 건너야 했고 홍해수를 건너가는 데는 반드시 증명서가 필요했다. 그것이 이마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한다.(출 13:9)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표가 예수다.(계 7:3, 14:1, 22:4)왜 증명서를 이마에 붙여야 할까. 이마 부근에는 전두엽이 있다. 전두엽에 표를 받으라고 한 이유는 전두엽이 기억력, 사고력, 기타 고등행동을 관장하고 다른 연합영역에서 들어오는 정보와 행동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두엽에 표를 받은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나 뜻하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이 오직 말씀중심, 예수중심인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처럼 성경은 출애굽기부터 성도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 자세히 말씀하고 있다.                            
    • 교계뉴스
    • 목회
    2020-02-07

학술.행사 검색결과

  • 교회가 타락했다? 성령의 등불 꺼지지 않는다면 갱신 가능
      지난 2월 파주 순복음삼마교회에서 열린 ‘2019년도 2학기 모세오경 아동부 수료식 및 종강예배’에서 우수상을 받은 어린이들이 담당 교역자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교회다. 다윗은 교회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성막을 찾기 전에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겠고 잠도 자지 않겠노라”고 고백했다.(시 132:3~4)역사적으로 보면 교회가 성장할 때 나라가 부흥했고 교회가 건강할 때 나라가 군사적으로 튼튼했다. 하나님이 국가와 개인을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가 중요하다.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불러 사회법과 절기법, 실천사항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고 피로 약속을 체결했다. 이 땅에서 가장 완벽한 법의 골격이 세워진 셈이다. 하나님은 그 법을 실천할 수 있도록 성막을 주셨다. 출애굽기 25장부터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 성막에 대해 나온다.이 세상에는 법도 많고 권세자도 많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법은 하나님의 법에 근거해야 하며, 권세자도 하나님의 법에 따라야만 한다. 이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이다.“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세상에는 많은 기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 다스린다 해도 하나님이 없는 나라는 결국 독재가 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되고 만다. 그래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부터 핍박하고 교회를 없애려고 한다.그들은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진실에는 선동선전만 있을 뿐이다. 북한 주체사상에서 볼 수 있듯이 진실이나 진리는 원래 그들에게 없었다. 그 본체가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상을 믿고 따라갔던 백성들의 삶은 엉망이 되고 개인은 자유를 빼앗겨 버렸다.러시아 중국 북한에 진정한 인권이 있는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가. 자유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고 행복도 그들만의 특권이다. 모든 사람이 가졌던 자유나 행복을 그들을 위해 포기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주의요 공산주의다.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은 자기 이름을 내고자 바벨탑을 쌓는다. 욕망 때문에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자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지나친 권력이나 부귀영화에 대한 욕심을 버리며 살아간다. 그들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천국을 준비하며 살기 때문이다.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함께 행복하게 사는 법’을 추구하는데 이를 민주주의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교회가 타락할 수도 있고 부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는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자정능력이 있다. 성령님은 시대마다 교회를 갱신했고 이 땅에 필요한 새로운 교회를 탄생시켰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가 타락했다고 손가락질할지라도 이 땅에 교회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회가 이 땅에서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가 말세일 것이다.성경은 말세를 예언했다. 말세가 오면 교회가 핍박을 받아 등불이 꺼지게 될 것이며, 이때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자연재해에서 시작해 전쟁으로 발전되고 이로 인해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성령 충만한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해야 하고 등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땅에서 창조주를 쫓아낸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멸망할 것이다.하나님이 인간과 살기 위해 만든 최초의 성전은 에덴이었다. 그러나 사단의 거짓에 속아 선악과를 따먹고 사단의 종이 돼버린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났다. 그때부터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에덴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들판에서 돌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노아가 그랬고 아브라함과 야곱이 그랬다.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성막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이곳에서 인간과 만남이 이뤄졌기 때문이다.성막은 가나안에 가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성장했고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과 운명을 같이했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탈 때 이스라엘은 멸망했고 남은 백성들은 바벨론의 노예로 끌려가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끝이 났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종말은 언제 오는가. 이 땅에서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교회가 핍박을 받고 사라질 때라고 말한다. 그때가 되면 종들이 핍박이 두려워 세상과 타협하게 되는데 이를 ‘타락’이라고 한다. 이때 성령은 교회를 떠나고 교회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아있는 에베소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버가모교회 라오디게아교회같이 죽은 교회가 돼 있을 때라고 말한다.  이일성 목사             
    • 교계뉴스
    • 목회
    2020-04-10
  • “형식적인 성경공부는 바리새인만 만들어낸다”
    이일성 파주 순복음삼마교회 목사(오른쪽)가 지난달 30일 전남 목포 예닮교회에서 열린 모세오경 아카데미 목회자세미나에서 순복음삼마교회 성도들과 함께 훈련 시범을 보이고 있다.  어린양은 할례받은 사람들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먹을 때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법대로 먹어야 했다.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출 12:8)첫째, 양은 불에 구워서 먹으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말씀을 먹을 때 영적인 ‘불’인 성령을 받고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성령을 받음으로 그때부터 설교가 은혜가 되고 말씀이 생명이 되기 때문이다.둘째, 말씀을 먹을 때 주의할 것이 있다. 양을 먹을 때 날것이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는 것이다. 영적으로 볼 때 이 말씀은 설교할 때 문자적으로 혹은 율법적으로 말씀을 먹이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말씀을 부드럽게 하려고 세상 것을 섞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쉽고 재미있게 설교하면 교회가 부흥할 수도 있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 수도 있다. 그러나 말씀은 재미있거나 부드러운 게 아니다. 성경은 말씀을 먹을 때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으라고 하셨다.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을 때 그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건강에 좋은 음식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부드러운 고기를 좋아해 물에 삶은 고기를 먹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였다.설교는 오직 복음적이어야 한다. 이는 깨달음이 있는 설교를 말한다. 성경은 지식이 아니라 깨달아야 하는 책이다. 성도들은 말씀을 깨달을 때 비로소 변화되고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마 13:23)성경에 바리새인이 나온다. 바리새인은 성경을 가르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과 회당에서 성경을 가르쳤지만,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고 위선자들만 양산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목회를 하면서 내린 결론은 ‘형식적인 성경공부는 바리새인만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복음삼마교회는 모세오경 아카데미를 진행하면서 성경공부라는 말 대신 ‘훈련’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훈련은 반드시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영적 전쟁을 위한 것이다. 말씀은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 12:11)첫째, 우리는 왜 말씀을 먹는가. 말씀을 무기 삼아 세상과 싸워 세상을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게 하기 위함이다. 둘째, 그러면 어떻게 훈련시켜야 하는가. “허리에 띠를 띠고 싸우라”고 말씀한다. 진리의 띠는 예수 이름으로 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갖고 계시고 그 권세를 믿는 우리에게 위임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갖고 싸우면 충분히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마 28:18~20)셋째, 신을 신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은 복음이다. 우리는 전쟁하기 위해 찬송을 준비하고 전갈을 밟을 수 있는 복음을 준비해야 한다. 에베소서에서도 싸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평안을 주는 복음의 신을 신으라고 하셨다.많은 사람에게 설교하는 것도 중요하다. 많은 곳에 가서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가 반드시 할 일은 복음의 신발을 신는 것이다. 그래야 그곳에 생명이 싹트고 복음의 열매가 맺는다.(엡 6:15)넷째,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말씀한다. 지팡이는 목자가 양을 인도할 때 쓰는 도구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킬 때 사용했던 권능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래서 권능 혹은 아버지의 마음을 의미하는 지팡이를 들고 가야 한다.목회자는 세상 CEO가 아니다. 목회자는 언제나 마귀와 싸울 준비가 된 야전사령관과 같다. 사울 왕처럼 영적 전쟁 앞에서 무능력하게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인의 장막’을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면 충분하다.유월절 어린양을 먹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설주와 인방에 피가 있는 집에 들어가 양을 먹은 목적이 있었다. 바로 홍해수를 건너 가나안 땅에 가기 위해, 아말렉 그리고 아모리 족속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홍해수를 건너야 했고 홍해수를 건너가는 데는 반드시 증명서가 필요했다. 그것이 이마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한다.(출 13:9)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표가 예수다.(계 7:3, 14:1, 22:4)왜 증명서를 이마에 붙여야 할까. 이마 부근에는 전두엽이 있다. 전두엽에 표를 받으라고 한 이유는 전두엽이 기억력, 사고력, 기타 고등행동을 관장하고 다른 연합영역에서 들어오는 정보와 행동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두엽에 표를 받은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나 뜻하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이 오직 말씀중심, 예수중심인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처럼 성경은 출애굽기부터 성도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 자세히 말씀하고 있다.                            
    • 교계뉴스
    • 목회
    2020-02-07

포토뉴스 검색결과

  • 교회가 타락했다? 성령의 등불 꺼지지 않는다면 갱신 가능
      지난 2월 파주 순복음삼마교회에서 열린 ‘2019년도 2학기 모세오경 아동부 수료식 및 종강예배’에서 우수상을 받은 어린이들이 담당 교역자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교회다. 다윗은 교회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성막을 찾기 전에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겠고 잠도 자지 않겠노라”고 고백했다.(시 132:3~4)역사적으로 보면 교회가 성장할 때 나라가 부흥했고 교회가 건강할 때 나라가 군사적으로 튼튼했다. 하나님이 국가와 개인을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가 중요하다.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불러 사회법과 절기법, 실천사항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고 피로 약속을 체결했다. 이 땅에서 가장 완벽한 법의 골격이 세워진 셈이다. 하나님은 그 법을 실천할 수 있도록 성막을 주셨다. 출애굽기 25장부터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 성막에 대해 나온다.이 세상에는 법도 많고 권세자도 많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법은 하나님의 법에 근거해야 하며, 권세자도 하나님의 법에 따라야만 한다. 이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이다.“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세상에는 많은 기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 다스린다 해도 하나님이 없는 나라는 결국 독재가 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되고 만다. 그래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부터 핍박하고 교회를 없애려고 한다.그들은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진실에는 선동선전만 있을 뿐이다. 북한 주체사상에서 볼 수 있듯이 진실이나 진리는 원래 그들에게 없었다. 그 본체가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상을 믿고 따라갔던 백성들의 삶은 엉망이 되고 개인은 자유를 빼앗겨 버렸다.러시아 중국 북한에 진정한 인권이 있는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가. 자유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고 행복도 그들만의 특권이다. 모든 사람이 가졌던 자유나 행복을 그들을 위해 포기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주의요 공산주의다.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은 자기 이름을 내고자 바벨탑을 쌓는다. 욕망 때문에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자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지나친 권력이나 부귀영화에 대한 욕심을 버리며 살아간다. 그들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천국을 준비하며 살기 때문이다.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함께 행복하게 사는 법’을 추구하는데 이를 민주주의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교회가 타락할 수도 있고 부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는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자정능력이 있다. 성령님은 시대마다 교회를 갱신했고 이 땅에 필요한 새로운 교회를 탄생시켰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가 타락했다고 손가락질할지라도 이 땅에 교회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회가 이 땅에서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가 말세일 것이다.성경은 말세를 예언했다. 말세가 오면 교회가 핍박을 받아 등불이 꺼지게 될 것이며, 이때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자연재해에서 시작해 전쟁으로 발전되고 이로 인해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성령 충만한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해야 하고 등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땅에서 창조주를 쫓아낸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멸망할 것이다.하나님이 인간과 살기 위해 만든 최초의 성전은 에덴이었다. 그러나 사단의 거짓에 속아 선악과를 따먹고 사단의 종이 돼버린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났다. 그때부터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에덴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들판에서 돌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노아가 그랬고 아브라함과 야곱이 그랬다.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성막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이곳에서 인간과 만남이 이뤄졌기 때문이다.성막은 가나안에 가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성장했고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과 운명을 같이했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탈 때 이스라엘은 멸망했고 남은 백성들은 바벨론의 노예로 끌려가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끝이 났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종말은 언제 오는가. 이 땅에서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교회가 핍박을 받고 사라질 때라고 말한다. 그때가 되면 종들이 핍박이 두려워 세상과 타협하게 되는데 이를 ‘타락’이라고 한다. 이때 성령은 교회를 떠나고 교회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아있는 에베소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버가모교회 라오디게아교회같이 죽은 교회가 돼 있을 때라고 말한다.  이일성 목사             
    • 교계뉴스
    • 목회
    2020-04-10
  • “형식적인 성경공부는 바리새인만 만들어낸다”
    이일성 파주 순복음삼마교회 목사(오른쪽)가 지난달 30일 전남 목포 예닮교회에서 열린 모세오경 아카데미 목회자세미나에서 순복음삼마교회 성도들과 함께 훈련 시범을 보이고 있다.  어린양은 할례받은 사람들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먹을 때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법대로 먹어야 했다.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출 12:8)첫째, 양은 불에 구워서 먹으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말씀을 먹을 때 영적인 ‘불’인 성령을 받고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성령을 받음으로 그때부터 설교가 은혜가 되고 말씀이 생명이 되기 때문이다.둘째, 말씀을 먹을 때 주의할 것이 있다. 양을 먹을 때 날것이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는 것이다. 영적으로 볼 때 이 말씀은 설교할 때 문자적으로 혹은 율법적으로 말씀을 먹이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말씀을 부드럽게 하려고 세상 것을 섞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쉽고 재미있게 설교하면 교회가 부흥할 수도 있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 수도 있다. 그러나 말씀은 재미있거나 부드러운 게 아니다. 성경은 말씀을 먹을 때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으라고 하셨다.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을 때 그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건강에 좋은 음식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부드러운 고기를 좋아해 물에 삶은 고기를 먹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였다.설교는 오직 복음적이어야 한다. 이는 깨달음이 있는 설교를 말한다. 성경은 지식이 아니라 깨달아야 하는 책이다. 성도들은 말씀을 깨달을 때 비로소 변화되고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마 13:23)성경에 바리새인이 나온다. 바리새인은 성경을 가르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과 회당에서 성경을 가르쳤지만,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고 위선자들만 양산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목회를 하면서 내린 결론은 ‘형식적인 성경공부는 바리새인만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복음삼마교회는 모세오경 아카데미를 진행하면서 성경공부라는 말 대신 ‘훈련’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훈련은 반드시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영적 전쟁을 위한 것이다. 말씀은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 12:11)첫째, 우리는 왜 말씀을 먹는가. 말씀을 무기 삼아 세상과 싸워 세상을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게 하기 위함이다. 둘째, 그러면 어떻게 훈련시켜야 하는가. “허리에 띠를 띠고 싸우라”고 말씀한다. 진리의 띠는 예수 이름으로 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갖고 계시고 그 권세를 믿는 우리에게 위임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갖고 싸우면 충분히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마 28:18~20)셋째, 신을 신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은 복음이다. 우리는 전쟁하기 위해 찬송을 준비하고 전갈을 밟을 수 있는 복음을 준비해야 한다. 에베소서에서도 싸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평안을 주는 복음의 신을 신으라고 하셨다.많은 사람에게 설교하는 것도 중요하다. 많은 곳에 가서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가 반드시 할 일은 복음의 신발을 신는 것이다. 그래야 그곳에 생명이 싹트고 복음의 열매가 맺는다.(엡 6:15)넷째,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말씀한다. 지팡이는 목자가 양을 인도할 때 쓰는 도구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킬 때 사용했던 권능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래서 권능 혹은 아버지의 마음을 의미하는 지팡이를 들고 가야 한다.목회자는 세상 CEO가 아니다. 목회자는 언제나 마귀와 싸울 준비가 된 야전사령관과 같다. 사울 왕처럼 영적 전쟁 앞에서 무능력하게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인의 장막’을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면 충분하다.유월절 어린양을 먹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설주와 인방에 피가 있는 집에 들어가 양을 먹은 목적이 있었다. 바로 홍해수를 건너 가나안 땅에 가기 위해, 아말렉 그리고 아모리 족속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홍해수를 건너야 했고 홍해수를 건너가는 데는 반드시 증명서가 필요했다. 그것이 이마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한다.(출 13:9)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표가 예수다.(계 7:3, 14:1, 22:4)왜 증명서를 이마에 붙여야 할까. 이마 부근에는 전두엽이 있다. 전두엽에 표를 받으라고 한 이유는 전두엽이 기억력, 사고력, 기타 고등행동을 관장하고 다른 연합영역에서 들어오는 정보와 행동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두엽에 표를 받은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나 뜻하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이 오직 말씀중심, 예수중심인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처럼 성경은 출애굽기부터 성도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 자세히 말씀하고 있다.                            
    • 교계뉴스
    • 목회
    2020-02-07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