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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척교회 목회자들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11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가 8일 오전 7시부터 성락성결교회에서 개최됐다. 주제는 '한국교회 목회자 자존감 회복 방향'이다. 1부 기도회에는 김영한 박사(숭실대 명예교수)가 하박국 3:17-19절을 중심으로 설교를 전했다. 그는 “이번 104회 예장 통합 총회는 분위기 탓인지, 목사들 대부분이 명성교회 세습 중재안을 가결시켰다”고 밝히며, “그러나 통합 측 교회의 70%는 미 자립 교회”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목회자들의 눈을 어둡게 한 물신주의 때문”이라며 “오늘날 한국교회도 물신주의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하박국 선지자의 자존감은 청빈성에 있다”며 “하나님이 주신 목회적 달란트에만 충실할 때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목회자의 사명은 세속적 기준에 의해 평가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 크기, 교인 숫자, 월급에 의해 평가가 좌우된다고 목회자가 스스로 생각 한다”면, “이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는 일”이라고 밝혔다. 하여 그는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은 나의 즐거움, 구원, 자존감’이라 말한 것”처럼 “목회자는 세속적 평가에 의해 일희일비하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즉 그는 “하박국의 자존감의 근저는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라는 깊은 인격적 관계에 있다”고 재차 말했다. 다만 그는 “이런 세속적 평가에 자존감을 두는 목회자들의 경향성 때문에, 예장 통합이 (2014년에 제정한) 세습방지법을 깨고, 명성교회 타협안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은 수 천 명의 군사보다, 존 낙스 목사의 설교를 두려워했다”며 ‘예언자적 사명’의 무게감을 역설했다. 또 그는 “복음주의 교회는 천국 소망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대사회적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며, “한국 교회가 정의와 공평의 목소리를 외치는 게 자존감을 되찾는 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교회가 부와 권력에 취해있을 때,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여 그는 “진정한 개혁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성공지향, 권위주의적 리더십, 세속주의, 성장주의, 물질주의 등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한다”며 “이럴 때 목회자의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숭실대 명예교수 겸 샬롬나비 대표 김영한 박사 그리고 그는 “강단의 설교는 사회 지도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설교 이어야한다”며 “강단 메시지가 내세지향적인 복음주의를 필요로 하지만, 성경은 전체적인 복음을 말하고 곧 사회적 성결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성결이 없는 복음은 구원파, 신천지와 다를 바 없다”고 못 박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전히 웨슬리의 복음주의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두고 “개인부흥만이 아닌, 사회적 성경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여 그는 “여기서 목회자의 자존감이 나오는 것”이라며 ‘목회자의 자존감은 곧 성결에 있음’을 역설했다. 뒤이어 개척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첫 번째 주자로 이정기 목사(인천 예드림교회)가 발제했다. 그는 “올해 3월부터 인천 부평에서 첫 출발했고, 소속은 고신교단”이라고 첫 말을 뗐다. 이어 그는 “본 교회 부교역자에서 개척교회 목회를 말씀드린 후, 교인들에게 헌신을 부탁했지만 거절했다”면서 “왜냐면 큰 교회 시스템에서 오는 다양한 혜택 등을 놓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령 “관계, 헌신 등 적당한 거리감”이라고 그는 전했다. 아울러 그는 개척교회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먼저 그는 “개척교회는 섬길 사람이 부족하다”며 “3월 17일 개척 예정일자까지 무작정 기도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는 “그간 거절했던 성도들 중 6명이 개척교회에 합류한다고 말했다”며 “실수 없으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계심을 경험하고, 많은 숫자를 놓고 기도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전했다. 나아가 그는 “하나님께 열심 있는 성도를 달라고 기도했다”며 “그러나 어떤 선배 목사들은 ‘열심 있는 성도가 온다면 더 힘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적으니 예배 분위기는 좀 더 냉랭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은 15명이 예배에 참석 중인데, 5명의 예배 팀이 강단으로 나가면, 회중은 고작 10명 정도”라며 “예배 분위기를 끌어올리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때문에 그는 “전도 특공대를 꾸려 주말에 집중 전도에 나섰다”고 전했다. 또 그는 “겨울 기간을 통해 청년 중 교역자를 세우기 위한 성경 양육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이정기 목사(인천 예드림교회 담임)   더 큰 문제를 전했는데, “바로 재정”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감사함을 표하며 “부교역자로 섬기던 교회에서 1억 5천만 원을 지원했다”며 “2년 동안 한 달 월급 200만원, 1년 동안 100만원을 지원해주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인천 부평 지역은 그나마 월세가 싼데, 그래도 140만 원”이라며 “많은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재정문제가 어려운 것은 성도수가 적기 때문”이라며 “젊은 성도들은 헌신 개념도 희박하고, 헌금을 강요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하여 그는 “많은 재정지원을 놓고,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그럼에도 불구 그는 “나와 내 아내는 새벽마다 엎드려 간구 한다”며 “재정에 위축되지 않고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그는 “기독교 TV에 나오는 다른 목회자분들의 설교를 접하며, 은혜를 유지 한다”고 말하며, “수련회에도 참석하려 노력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1년에 2-3번 정도 원래 다녔던 교회 수련회에 참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옛날 선배 목사들께서 진흙 바닥에서 천막 교회를 개척하려던 몸부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후배목사들도 더욱 깨어 있는 것 맞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따뜻한 밥한 끼, 영적 지원을 아낌없이 후원 부탁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이윤호 목사(안양 한아름교회)가 발제했다. 그는 “본 교회 근처에서 실버 사역을 계속했다가, 연임이 어려워져 개척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본 교회 근처는 독거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개척 교회를 통해 실버(Silver) 목회를 이어가려고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사람을 행복하게란 목표로 목회를 시작했다”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역의 본질은 바로 영혼구원에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미소, 칭찬, 감사 등 7가지 요소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영성 운동도 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윤호 목사(안양 한아름교회 담임)   아울러 그는 개척교회의 어려움으로 “정체성”을 뽑았다. 그는 “한 해 문 닫는 교회가 3,000개”라며 “이는 목사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개척을 하면서 깨달은 부분은 바로 선택과 집중”이라며 “나는 실버 사역에 집중하기로 결단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목사로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은 바로 영혼구원”이라며 “다음세대 목회도 중요하지만, 실버목회도 못 지 않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유로 그는 “어르신들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기 때문”이라며 “이분들을 외면해선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그는 “개척부터 265주 동안 계속해서 실버 목회를 진행 하고 있다”며 “현재 100여명의 어르신들이 우리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럼에도 그는 “경제적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재 보증금 1,000만원, 월세 60만원 교회”라며 “4명의 자녀가 있고 매달 임대료 때문에, 다른 일도 했다”고 밝혔다. 가령 그는 “월요일 마다 시각장애인 예배를 위한 차량운행 일을 했다”며 “이걸로 십일조를 냈고, 노동의 뿌듯함도 느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실버 처치를 하면서 2015년부터 쌀 1kg씩을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말하며, “매년 정부의 쌀값 인상, 후원기관이 지원을 끊어 후원 사역이 어려워졌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개인 후원을 받으며 사역하고 있다”고 했다. 가령 그는 “현재 개인 후원자분들에게 일일이 카카오 톡을 통해, 아침 큐티(QT) 말씀과 함께 사역 보고를 전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후원을 요청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무엇보다 그는 “현재 교회에 일꾼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매주 금요일마다 실버처치를 하면서, 쌀 1kg을 어르신들에게 드리고 있다”며 “처음에는 20명씩 오시다가 입소문 나서 100여명으로 불어났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계단까지 서 계셔 기다리는 분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그가 하고 있는 실버 사역 중 하나는 “치매 예방 사역”이라고 했다. 그는 “실버 목회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치매 예방 사역”이라며 “이를 위해 운동, 찬양, 율동, 필사 활동을 어르신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 참석한 많은 목회자들 아울러 그는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급식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안양시 푸드 뱅크와 연결돼, 현재 안양시 여성지도자협회로부터 음식을 공급받아, 목요일마다 30명의 어르신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과거기도 중 콩나물에 대한 마음을 하나님이 주신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여 그는 “현재 콩나물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인 ‘높은뜻섬기는 교회’로부터 콩나물을 지원 받고 있다”며 “어르신들에게 콩나물을 드리며, 전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2018년부터 한 달에 두 번 1, 3주째 콩나물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그는 “치매 예방에 만두 빚기가 좋다고 들었다”며 “그래서 매월 1회 수요일마다 어르신들과 만두를 빚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20대인 4명의 자녀들이 도움을 주고 있지만, 여전히 일손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아내는 아이 4명 키우고, 지금까지 묵묵히 나를 돕고 있다”며 재정의 충당을 위해 화장품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개척교회는 힘들지만, 사역에 있어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 희망이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영혼구원 사역에 집중하다보니 불평과 원망은 자연스레 사라졌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나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다 보니, 자족을 누리게 됐다”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려 노력 한며, 어렵지만 소형교회 목회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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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체
    2019-11-11
  • "한국교회에 고하는 청년들의 외침"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다만 사랑할 뿐 이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습작 시인이었던 리자 하이제 부인과 서신을 주고 받으며, 엮은 책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온 한 대목이다. 고집불통으로 꽉 막힌 할머니와의 갈등에 리자 하이제 부인은 답답한 심경을 릴케에게 토로한다. 그러자 릴케는 하이제 부인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다만 사랑할 뿐 이죠”라고 다정하게 말해볼 것을.   발제자 중 한 명인 정은혜 청년이 그렇게 말하자(실제로 이를 인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릴케의 말이 곧바로 떠올랐다. 그리고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죽은 릴케의 삶이 생각났다. 젊은 세대와 어른들은 “서로의 가시를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가시를 끌어안고 사랑하라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9월 조찬기도회는 ’한국교회에 고하는 청년들의 외침‘이란 주제로 발표회를 준비했다. 20일 오전 7시 도곡동 소재 한우리교회에서 열렸다. 대구동신교회 청년부 담임 배준현 목사의 설교가 있은 후, 첫 번째로 20대 대표 이다현 자매(동덕여대 조교)가 발표했다. IVF 출신인 그는 “현재 한국교회는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다현(동덕여대 조교)   이어 그는 “한국교회는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 문제로 환원해, 망언하는 목사들도 여럿 있다”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공감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 단순히 ’믿음 없음‘과 말씀으로 악하다고 재단했다”고 비판하며, “한국교회는 지금 수면위로 떠오르는 노동, 여성, 청년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는 은혜와 평안만 가득했고, 사회적 어려움에는 무관심했다”면서 “교회는 이들을 바라봐야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무조건적 믿음과 감사만 강요 한다”면서 “그럴수록 청년들은 교회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다고 생각 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는 여성의 문제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출산, 가정, 남자보다 능력이 낮을 것, 남자들에게 당하는 성폭력은 외면하고 그저 남자들을 만족시켜 주는 존재’로 강요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 교회는 억눌려온 여성들의 문제에 깊이 공감하기”보다 “출산율 낮으니 애 낳으라는 사회적 요구만 반복 한다”고 재차 말했다. 뒤이어 그는 “여성의 입장에 서지 못한 목회자들의 메시지는 더욱 가혹하다”면서 “교회는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목회자의 성범죄 문제는 이런 인식으로 인해 표면화 된 결과”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 내 직분도 여성 차별적”이라며 “여성 목회자는 교단에서 소외되고 있고, 이는 여성의 인권 유린과 직결됐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교회는 이웃의 아픔에 공감해야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예수께서는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셨다”며 “예수께서 제자들의 칭송에만 만족한 채,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라고 반문했다. 또 그는 “우리끼리 성전 안에서 행복하면 다 일까”라며 “현재 한국 교회는 성장에만 매몰되고, 예언자적 메시지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교회 내에 약자들이 더욱 자리 잡아야한다”며 “복이 아닌 고통 받는 자들과 함께 우는 교회가 되기”를 촉구했다. 끝으로 그는 “청년부에서 나의 고통과 아픔을 끌어안으셨던 목사님의 헌신으로, 방황했던 나는 교회에 돌아왔다”고 고백하며, “한국 교회 목회자들도 말과 삶이 일치된 목회”를 부탁했다. 정은혜(하버드 케네디스쿨)   30대 대표로 정은혜 자매(하버드 케네디 스쿨 졸업)가 발제했다. 그는 “미국 하버드를 졸업하고, 남편을 만나 출산 후 한국에 돌아왔지만 취직이 안됐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사회는 여성인 나에게, ‘욕심 부리지 말고 남편과 자식 내조하며 살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다”고 술회했다. 그 때 그는 하나님께 묻고 따지고 싶은 감정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힘든 공부하고 훈련시키셨는데, 왜 나를 쓰지 않으세요”라고 말이다. 언제는 그의 아버지가 목회하고 있는 개척교회에 하나님께 따지러 갔다고 했다. 그는 “한 청년이 허름한 교회에서 공부하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면서 “교회 로비를 깔끔하게 바꾸고 싶어, 당회에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부터 그는 세대갈등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60대 어르신들은 ‘우리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왜 로비를 개선 하냐? 차라리 본당을 개선하라’고 했다”며 “40대 권사님들은 우선 주방부터 개선하자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그는 “그 말은 맞다”며 “각 세대들이 바라본 우선순위의 시각은 달랐고, 모든 우선순위는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달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 재학 중, 로널드 하이페츠 교수(Ronald Heifetz)의 ‘리더십 수업’을 인용해, 논지를 전개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위안부를 몸소 겪지 않았어도, 그들의 아픔에 절절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과거의 역사적 배경을 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60대 어른, 40대 여성들의 우선순위는 사회적·역사적 배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하이페츠 교수를 빌려 “우리는 각자마다의 무대에 서있다. 무대에 서 있으면 내 모습을 볼 수 없다. 내가 무대 밖에 나가서 자신을 바라보라"고 전하며 “그 말에 따라, 무대 밖에 나가 생각해보니 60대 어른, 40대 권사들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고 강조했다. 결국 그는 “마음에 깊이 공감해 60대, 40대 모두가 만족할 제안으로 로비를 리모델링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그는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즉 그는 “교회를 아름답게 짓는 게 목적이 아니”라며 “교회 개선 과정 중 한 분 한 분 성도들을 이해하고, 협력하고, 섬겼던 모습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신 최선의 리모델링(Remodeling)이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편 그는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에게 “요즘 애들은 너무 나약해. 너희들은 꿀꿀이죽 먹으며 배고픔 견뎌봤니? 독재 겪어봤어?”라는 말로 다그친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젊은 세대들과 기성세대들이 처한 시대적 배경은 다르다”라며 “젊은이들은 스마트 폰 세대인 만큼, 서로의 시대적 상황은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로의 시대적 배경에 처해보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지만, 다만 사랑할 뿐”이라고 역설했다. 하여 그는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때 세대 간 갈등은 줄어들고, 화합하며 같이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기성세대들에게 이런 말을 덧붙이며 발제를 마무리 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다만 사랑할 뿐이죠"   한반도평화연구원 이창현 사무국장 마지막으로 한반도평화연구원 이창현 사무국장의 발제가 이어졌다. 그는 “현재 한국 교회의 문제는 1990년대 한국 교회가 겪었던 문제의 연장선”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1990년대 선교, 컨퍼런스 등 많은 행사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돌파는 없었다”며 “현재도 새로운 주제는 끊임없이 떠오르지만, 체계는 90년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40대인 나는 1990년대 20대를 보냈고, 한국 교회의 성장 세례를 받았다”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기대했던 그 시절, 우리가 꿈꿨던 비전, 말씀이 현재 이뤄지고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단언하며 그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현재 교회는 시스템화 됐고, 건축·확장 일변도로 성장주의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고 비판하며, “그렇지만 성도 수는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세상은 회계 프로그램으로 정확하고 투명한 재정 보고를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교회는 현재도 금전 출납부를 쓰고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그는 “옛 세대들이 이렇게 하는 게 익숙하다는 말을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세대가 자식들에게 금전 출납부를 쓰라고 종용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따라서 그는 “40대들은 차라리 교회에 어떤 외침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로 그는 “외쳐봤자 교회 의사결정에 반영되지 않고, 윗세대들과의 협력도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또 그는 “지금의 기성세대는 민주화·산업화를 거쳤다”며 “그러나 87년 체제 이후, 다양한 사회적 의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음에도 교회는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가령 그는 “2002년도 주 5일제 논쟁에서, 교회는 단순히 주일성수 하나에만 프레임이 매몰됐다”고 전했다. 때문에 그는 “교회가 더 많은 사회적 의제에 대처하고, 그 외연을 확장할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 내 의사결정구조는 성장을 위한 구조로 특화됐다”며 “이 구조화 이후 후계 목회자의 선정 문제에 봉착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래로부터 위로 여러 의견을 수렴하기 어려운 구조로 고착화 됐다”고 분석했다. 하여 그는 “교회 내 여러 의사를 수용할 기구를 만들어야한다”며 “교회는 좀 더 유연해지고, 변화를 모색해야한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그는 “교회는 교회의 문제를 정면 돌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즉 그는 “목회자의 성범죄, 교회의 재정 문제 등을 사회 신문기사에서 종종 접한다”며 “그럼에도 교회는 이에 대해 침묵 한다”고 지적했다. 이유로 그는 “덕이 되지 못하고, 개 교회 문제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교회의 문제를 교회에서조차 얘기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디서 씨름해야 할까”라고 반문했다. 이를 위해 그는 “현재 교회의 의사결정구조를 좀 더 유연하게 했으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하여 그는 “교회는 본질로 돌아가야 하며, 앞선 문제들을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한국 교회는 진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 신촌성결교회 원로 이정익 목사     청년들의 외침을 듣고 일선 목회자들이 부연했다. 사회를 맡은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는 “청년과 기성세대 간 갈등이 심각하지만, 단순히 청년들의 문제를 ‘믿음 없음’으로 환원시킨 문제”라며 “3명의 발제에 90% 공감 한다”고 했다. 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는 “좋은 발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20대가 지적한 남성 위주의 교회 운영을 생각하며, 장로교는 여성 안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하여 그는 “깊은 도전을 받았다”며 “복음주의 교회는 그런 화합적인 교회 운영을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촌성결교회 원로 이정익 목사는 “맘껏 발언을 쏟아내도록 젊은이들에게 멍석을 깔아두었지만, 너무 분위기에 휩쓸려 누그러졌다”며 “젊은 정신으로 더욱 할 말을 밀어붙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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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회
    2019-09-23

선교뉴스 검색결과

  • 샬롬나비, 성탄절 맞아 "겸손과 소망과 정의를 실천해야"
            숭실대 명예교수 겸 샬롬나비 대표 김영한 박사   행동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모임인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이하 샬롬나비)이 2019년 성탄절을 맞이해 "우리가 겸손과 소망과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오블리스 노블리주, 사회통합, 소회계층과 북한주민사랑을 구현하자"고 당부했다. 샬롬나비는 성탄 메시지를 통해 "아기 예수가 영광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임한 것처럼 우리는 겸손을 실천해야 할 것"이라 말하고, "새해에는 불안보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 했다. 또 "공공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며 여야 정치인, 사회 지도자들, 한국교회 등에 당부의 말을 전했다. 다음은 성탄 메시지 전문이다. <샬롬나비, 2019년 성탄절 메시지> "예수님 탄생하신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가 겸손과 소망과 정의를 실천해야 하겠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블리스 노블리주, 사회통합, 소회계층과 북한주민사랑을 구현하자." 한국 사회는 세대의 갈등, 이념의 갈등 그리고 남녀 및 지역의 대립으로 인한 사회적 분열이 극에 달해 OECD 국가들 중에서 사회적 갈등지수가 2위로 높다는 평가도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열과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너무나도 많이 들어가고 있다. 그 비용에 대한 추산은 82조에서 246조까지 이르고 있다. 그와 함께 집단 이기주의로 인해 서로간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사회에서 무엇보다 양보와 통합을 이뤄나가야 한다. 아기 예수는 하늘의 무한한 영광을 버리고 로마제국의 군사적 지배와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이 높았던 유대 땅 베들레헴의 낮은 땅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자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찬송하였다. 이와 같은 주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서 몸소 높은 곳에서 낮아지는 겸손을 보여 주셨다. 이제 곧 성탄의 기쁨이 온 누리에 펼쳐질 것이다. 연말연시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샬롬나비는 한국 사회에 다음과 같이 통합을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1. 아기 예수가 영광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임한 것처럼 우리는 겸손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오늘날 양극화와 갈등으로 상처만 남아 있는 곳이다. 우리는 지나친 이기주의로 인해 배려와 겸손의 미덕을 상실하고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높은 자리에서 낮아짐을 통해 겸손과 돌봄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의 겸손과 돌봄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보다는 이기주의에 젖어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주님께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그 사랑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지금 ‘누가 네 이웃이냐?’라고 질문하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의 이웃이 되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예수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우리의 이웃은 바로 내 옆에서 도움이 필요하여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겸손과 사랑과 포용의 자세로 다가가서 그들과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2. 새해에는 불안보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희망이라는 단어를 상실한 채 살고 있다. 특히 20~30대의 젊은 세대에게서 희망이라는 단어는 사치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노력을 통해 꿈을 실현할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청년 10명 중 8명 이상이 한국사회를 ‘헬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기회가 되면 한국을 떠나 살고 싶다는 ‘탈조선’ 응답도 75.4%에 달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올 한 해를 반성하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청년층들이 희망을 가지고 용기를 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꿈을 꾸고 미래를 설계하여 세상을 당당히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 많은 젊은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당장 답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만큼 이 사회는 꿈을 이루기에 너무 힘든 곳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청년들이 꿈을 위해 도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3. 공공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늘 사적인 이익과 공적인 이익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진다. 소위 님비현상과 같은 사회적 논란들은 대다수 지역 이기주의에서 빚어진 것들이다. 이처럼 우리는 공적인 가치보다는 사적인 이익을 더욱 우선시 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사적인 이익을 보장하는 동시에 공적인 이익도 우선시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정의가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마이클 샌델(M.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국에서 100만권 이상이 팔릴 정도로 한국사회는 정의에 목말라하고 있다. 샌델은 그의 저서에서 공동체에서 추구되어야 할 것은 ‘정의’라고 말한다. 정의는 어떠한 기준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원칙이다.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추구해야할 정의는 어떠한 환경에서든 흔들림 없이 지켜져야 하는 핵심 가치이다. 이처럼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공정함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들은 공공의 가치를 인정하고, 모두가 정의로운 사회에서 자신의 꿈과 비전을 향해 달려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4. 오늘날 여야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당파적 이익 아닌 국가적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정치현실은 무한한 대립과 양육 강식의 살벌한 투쟁 속에서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위한 선한 투쟁이 아니라 공수처법과 연동형 선거법을 두고 국민은 염두에 없고 자기 당의 득표이익에만 머리를 굴리는 파당적 계산과 싸움에 실망하고 있다.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과 헌신의 태도와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정치는 전부 아니면 무라는 극단의 권력 투쟁 속에서 너무나 살벌한 현실이 전개되고 있어 나라의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여야 정치인들은 깊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과 정부 공직자들은 성탄에 낮아지시고 자기를 내어주신 예수의 희생 정신을 깊이 성찰하기 바란다. 자신을 희생하고 자기 당을 희생하고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살리는 진정한 지도자 정신이 이 성탄절에 우리 사회 여야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 각성되기를 바란다. 당파적 이익 아닌 국가적 정의와 대로(大路)를 추구하기 바란다. 5. 사회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여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가치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연말연시가 되면 광화문에는 사랑의 온도계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올 연말연시에는 사랑의 온도계가 얼마나 올라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그 온도계를 높이는 방법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을 비롯해서 많은 CEO들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 그들은 자신의 막대한 부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고 사회에 기부했다. 그들의 기부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은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의 기부로 교육과 의료 혜택을 수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얼마 전 한국에서도 영화배우 원로인 신영균씨도 500억원을 기부했다. 그는 "가져갈 건 성경책 하나"라는 말을 하고, 자신의 재산을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기부에 참여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면 이 사회는 더욱 희망으로 가득할 것이다. 6. 세대의 갈등, 이념의 갈등, 남녀와 지역 차별 등 다양한 분열을 극복하고 사회 통합을 이뤄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오늘날 심각한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세대의 갈등과 이념의 갈등을 넘어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다양한 차별받는 현실은 단지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양극화로 인한 빈부의 차이는 사회 전반의 안전망을 위협하고 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로 인한 고통과 갈등을 해결하고 세상의 평화를 전해주기 위해 탄생하셨다. 우리는 이런 평화가 도래하는 연말연시 성탄절에 다시금 소중한 통합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해야할 것이다. 예수는 왕으로 온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마굿간에서 태어났다. 사회적 약자들과 아픈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달래 주었고 치료해주었다. 우리는 예수의 삶의 방식처럼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다가가야 할 것이다. 그들의 아픈 상처를 싸매어 주고 치료해 주면서, 갈등의 여러 요소들을 대화로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7. 한국 교회는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가치는 공적인 정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예수는 몸소 낮은 자리에서 아픈 자에게 먼저 다가갔다. 아픈 사람이 예수에게 다가 올 때 제자들은 그를 물리쳤다. 하지만 예수는 제자들을 호통하고 아픈 사람이 자신에게 올 것을 허락했다. 한국 교회는 실의에 빠져 있는 사회적 약자들과 외국인 근로자들, 독거 어르신들 등 많은 이들에게 다가가 사랑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예수의 가장 큰 가르침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런 사명을 잘 감당할 때, 이 사회에서 온전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8. 한국교회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북한의 동포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며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 예수님이 이 땅에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를 자유롭게”(눅4:18) 하려고 오셨다. 이 땅에서 3대에 걸친 독재정권의 하에서 가장 무겁게 포로된 자들이 북한 주민이고, 말할 수 없는 인권 탄압 하에서 짓눌리고 있는 사람들이 북한 동포들이다. 우리들은 주님의 탄생을 맞이하면서 북한 땅에 죄로부터 자유와 독재정치로부터의 자유, 인권 탄압의 짓눌림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기도하며 통일을 위해 나아가야 하겠다. 남북분단은 인간 죄악의 가장 깊은 고통의 산물이고, 그 중에서 북한은 그 고통의 가장 깊은 수렁이다. 올 해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가 북한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며 사랑을 나누며 우리 동포임을 확인해야 하겠다. 2019년 12월 20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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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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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호익 교수 장신대에서 동성애 밀실 강연, 엄정히 조사해야"
      ▲허호익 교수(대전신대 대학원장·평통기연 운영위원)   샬롬나비(원장 김영한 박사)는 장신대에서 대전신학대학교 허호익 교수가 12일 소양관 609호에서 동성애를 옹호한 강연을 두고, 비판 논평을 냈다. 이들은 “예장 통합 103회는 동성애를 이단 신학으로 규정한 바 있다”며 “예장 통합에 소속된 목사인 허호익 교수는 버젓이 장신대에서 동성애 강연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들은 “강연은 총회의 결의를 전적으로 역행했다”고 비판하며, “학교의 대내외적인 비판을 분명하게 의식한 증거로, 참석자들에게 ‘강의를 어떻게 알고 왔느냐?’, ‘소속이 어디냐?’ 등의 질문을 위압적으로 캐물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소위 ‘밀실 강연’을 강행한 것”이라며 “심지어 재학생들도 학생증 검사를 통해서 강의실 출입이 가능했고, 이는 장신대 신대원 학우회의 결의에 따라 이뤄졌다”고 밝혔다. 하여 이들은 “동성애 지지 강연이 떳떳하다면 왜 이를 밀실에서 진행해야 하는가”라고 되물으며, “이는 동성애 밀실 강연을 허용한 장신대가 총회 결정을 위배했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이들은 “장신대는 총회규정을 어기는 신학자들과 학교 관계자, 학생들의 행위를 확실하게 조사해, 그에 합당한 문책을 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신학교를 동성애의 위기로부터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들은 허호익 교수를 빌려 “교회가 세계적 대세에 따라 동성애자를 더 이상 정죄하지 말고 성직자로 세워야 한다”고 전하며, “동성애는 죄라는 지적은 퀴어신학자들 처럼 동성애자 혐오 논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이들은 “동성애가 죄라는 것은 동성애자 혐오가 아닌, 저들을 사랑하는 심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역설했다.   게다가 이들은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 지적은 동성애자들의 성중독을 치유하고 인권 회복을 위한 기본 전제”라며 “환자가 질병을 인정하지 않으면 치료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교회는 동성애는 혐오하되 동성애자들은 사랑해야 한다”며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들을 환자로서 받아들이고, 인내를 가지고 관용하며 치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숭실대 명예교수 겸 샬롬나비 대표 김영한 박사   <장로회신학대에서 허호익 교수의 동성애 옹호 ‘밀실 강연’ 강행에 대한 논평> 총회가 이단으로 금지한 동성애 옹호 밀실 강연을 허용한 장신대 총장은 문책되어야 한다.예장통합총회는 규정에 따라 이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 문책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 지난 11월 12일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임성빈, 이하 장신대) 소양관 609호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ㆍ역사적 성찰”이라는 제목의 강연회가 열렸다. 강연자인 허호익 대전신학대학교(총장: 김영권, 이하 대전장신) 은퇴교수는 예장 통합 교단에 소속된 목사이자 교단 산하 신학교의 원로교수이다. 강연 장소인 장신대는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하는 예장 통합의 대표적인 신학교이자 한국교회의 최대 신학교육 기관이다. 그런데 예장 통합 총회는 제102회부터 제104회까지 3회 연이어 반(反)동성애를 강력히 결의했는데, 특히 103회 총회는 동성애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퀴어신학(queer theology)을 이단으로 규정한 바 있다. 총회의 결의문에 따르면,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동성애자와 동성애를 지지ㆍ옹호하는 자는 교회의 직원(항존직, 임시직, 유급 종사자) 및 신학대학 교직원이 될 수 없다.” 또한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의 학칙에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는 입학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결의하였다. 이에 샬롬나비는 허호익 교수 강연의 문제점과 함께 장신대의 책임에 대하여 논평하고, 예장 통합 총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건의하는 바이다. 1. 총회가 이단으로 결의한 동성애에 대하여 총회 직영 신학대학이 비밀 강연을 허용하는 것은 바른 길이 아니다. 이처럼 예장 통합 총회가 동성애 반대를 단호히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허호익 교수는 총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신학생들에게 반(反)성경적이고 비(非)윤리적인 동성애를 옹호하는 강연을 한 것이다. 마땅히 신학도들을 하나님의 진리로 가르치고 영적으로 바른 길을 선도해야 할 교수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명약관화하게 금하셨던 동성애를 세상 풍조에 휩쓸려 따라가는 죄(罪)가 아니라고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총회 결정에 반대할 수 있는 교수의 힉문과 양심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허 교수는 떳떳하게 공개강연을 하지 밀실강연을 하여 세상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가? 2. 총회의 결정을 위반하면서 비밀 강연을 한 허 교수는 자유방임적 이단 옹호로 이단 연구로 한국 교회에 기여한 자신의 공헌을 무너뜨렸다. 더욱이 이 강연은 총회의 결의를 전적으로 역행한다는 사실과 학교의 대내외적인 비판을 분명하게 의식한 가운데 학교를 방문한 외부 인사들(졸업생 포함)에게 “강의를 어떻게 알고 왔느냐?”, “소속이 어디냐?”는 등의 질문을 위압적으로 캐물으면서 이들을 철저히 배제한 비밀강연, 소위 ‘밀실 강연’을 강행하였다. 심지어 재학생들도 학생증 검사를 통해서야 강의실 출입이 가능했는데, 이 모든 일은 장신대 신대원 학우회의 결의에 따라 엄격한 통제 속에서 이루어졌다. 동성애 지지 강연이 떳떳하다면 이를 밀실에서 진행해야 하는가? 학문이란 개방성과 토론 가능성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3. 허 교수의 동성애 옹호 저서는 동성애 반대하는 한국교계에 큰 우환을 던져두었다. 사실 허 교수는 올해 5월 『동성애는 죄인가』라는 책을 출간하여 한국 신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킴으로써 오늘의 불미스러운 사태를 예고하였다. 허 교수는 한국 복음주의 신학계의 조직신학자로서 나름의 공헌을 해왔는데, 특히 그의 이단 연구가 한국교회에 기여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책 한 권으로 그의 신학자로서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한국 복음주의 신학계에도 큰 우환을 던져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심도 있는 독창적인 연구물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범람하는 자료와 기사들을 소개하는 정도의 편집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저자는 각 주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확고하게 피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연구와 기사들을 인용함으로써, 사람들의 비판을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는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인용하는 자료나 통계가 좌파 성향의 편향된 내용물 중심이어서 동성애로 인한 폐해를 희석시키거나 왜곡하는 부적절함을 보이기도 한다. 4. 허 교수의 동성애 옹호는 동성애자의 성직(聖職) 허용까지 선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허 교수의 치명적인 과오는 ‘신학적 다양성’이라는 명목으로 정통신학을 훼손한 일인데, 이것은 그의 신학적 정체성이 성경에 입각한 복음주의적 신학과 결을 달리하는 친(親)동성애적 성향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듯하다. 허 교수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동성애는 예외적으로 비(非)범죄화와 합법화가 이루어지고, 동성애자의 성직(聖職) 임용까지 허용되는 추세”라고 주장함으로써, “교회가 세계적 대세에 따라 동성애자를 더 이상 정죄하지 말고 성직자로 세워야 한다”는 언질을 주는 듯하다. 한 마디로 말해, 허 교수의 저서 『동성애는 죄인가』는 “세태가 변했으니 교회도 시류에 따라 변하고 세상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논조가 강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허 교수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책을 저술하고 이제는 비밀리에 학생들에게 동성애를 옹호하는 강연을 하면서 총회 결정을 명백하게 위반하였으니, 예장 통합 총회 앞에 자신의 소신을 공개해야 할 것이다. 5. 동성애 문제의 근원지는 장신대에 있다. 장신대 총장과 구성원은 이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 문제는 허 교수만의 개인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장신대가 문제의 근원지라고 말할 수 있다. 교단 총회의 결의에 이반(離反)하여 동성애 옹호 강연회를 개최한 장신대의 친동성애적 행보는 수년에 걸쳐 누적된 문제 사안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장신대 안에서 동성애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고, 장신대 측의 대응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음으로써 갈수록 상황이 위중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장신대는 오히려 동성애 옹호강연을 학생회가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을 허용하는 우를 범하였다. 그리고 비밀강연이 영원한 비밀로 감추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를 묻고 싶다. 장신대는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비밀강연을 진행한 모임에 문책해야 한다. 6. 장신대는 동성애 무지개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아직도 동성애에 대한 애매한 입장 취히고 있다. 장신대에서 일어난 친동성애적 사태는 대표적으로 2017년 5월 30일: 장신대 ‘신학춘추’(학교신문)의 동성애와 퀴어신학에 대한 옹호적 기사 게재, 2017년 9월: 예장 통합 총회 내 동성애자와 동성애 지지ㆍ옹호자 관련 조항 신설, 2017년 10월 12일 총학생회 주최로 친동성애 목회자 초청 강연 기획, 2017년 10월 25일: 장신대 내 동아리의 친동성애 강연 기획 시도, 2018년 5월 17일: 장신대 학부생 3명과 신대원생 5명이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기념하여 동성애를 상징하는 6색 무지개의 상의를 입고 채플에 참석한 후 일어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일련의 사태 등을 들 수 있다. 세상 법정이 장신대 측에 가한 부당한 개입과 친동성애적인 공권력을 등에 업고 신학교와 교단, 그리고 자신의 신앙 양심마저 우롱한 목회자 후보생들의 부적절한 처신, 이를 둘러싼 불미스러운 사태가 해결되지 않은 현실은 장신대 내에 여전히 동성애와 관련된 잠재적 문제들이 꽈리를 틀고 도사리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이런 문제 상황 속에서 금번 동성애 옹호자 허 교수의 밀실 강연 사태는 동성애와 퀴어 신학의 폐해로부터 한국 교회의 예비 성직자들을 보호해야 할 당위적 과제와 책임을 다시금 한국 교회에 엄중하게 부과한다. 예비 성직자들은 올바른 신학교육을 받아서 인류 문명사적 위기에 봉착한 이 시대를 하나님의 진리의 영으로 올바르게 선도할 수 있어야만 한다. 7. 예장 통합 교단은 교단의 규정을 어기고 동성애 옹호 비밀강연회 진행한 허 교수, 초청 모임 그리고 이를 허용한 장신대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 문책하여 재발을 막아야 한다. 동성애 밀실 강의를 허용한 장로회 신학대학은 총회의 결정에 역행하고 있다. 예장 통합 교단은 현재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하는 교단인 만큼 한국교회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막대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신대를 비롯한 예장 통합 총회 산하 신학교에서 배출되는 사역자들은 향후 한국교회에서 중차대한 역할을 감당할 사명자들이다. 사실상 동성애 합법화에 제동을 걸고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보루는 기독교 교회공동체인데, 그 보루의 중심에 바로 통합 교단의 장신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신대는 동성애와 퀴어신학의 폐해로부터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총회는 총회규정을 어기는 신학자들과 학교당국 그리고 학생들의 행위를 확실하게 조사하고 그에 합당한 문책을 해서 신학교를 동성애의 위기로부터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 8. 동성애 방지에 있어서 평신도를 보호해야할 신학자와 목회자는 그 책임을 다 해야한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진행되는 동성애 반대 움직임은 한국교회동성애대책협의회(위원장 소강석 목사)를 통하여 평신도와 목회자들이 서로 동역하면서 조직적으로 잘 전개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평신도들이 고난을 무릅쓰고 반동성애 사역을 이끌어가고 목회자들이 적극 후원하는 이 사역에 신학계에서는 방관하거나,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현실이다. 평신도와 목회자들은 신학자들이 교리를 굳건히 세워서 영적이고 사상적인 전쟁을 견인해 주길 기대하지만, 현재 한국 기독계를 움직이는 신학자들은 이 사역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9. 오늘날 신학대학조차 동성애 풍조에 대하여 반대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종합대학에 소속된 신학자들은 동성애 옹호세력에 점령당한 대학 총학생회의 눈치를 보면서 포퓰리즘에 영합하거나, 신성모독 수준으로 성경을 해석하면서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퀴어신학에 예언자적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교단 신학대학에 소속된 신학자들의 경우, 과거엔 일부 신학대학을 제외하고 비교적 보수적 입장을 견지해왔는데, 최근엔 거의 모든 신학대학이 신학적 입장에서 확연히 구별되지 않는 것이 대세인 듯하다. 그러므로 신학자들이 반동성애를 위한 견고한 신학적 기반을 제공하고 강인한 영성으로 영적 전쟁을 선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제 신학자들이 깨어나 영안(靈眼)이 열리고 영적ㆍ사상적 전쟁에 앞장서 나가서 인류 문명과 서구세계를 대신한 이 대리전에서 한국 교회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0. 한국교회는 깨어서 신학교와 신학생들을 동성애에 물드는 것에서 지켜내야 하겠다. 총회가 동성애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옹호하는 학생들의 입학을 불허한다고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를 지지하는 교수들이 생겨나고 학생들을 상대로 비밀강연을 하면서 학생들의 신앙을 혼미하게 반드는 위기의 상황을 한국교회는 맞이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굳건하게 서려면 신학교와 신학교수들이 반동성애의 입장을 견고하게 유지해야 하고, 성경에 입각하여 학생들에게 동성애가 죄라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 지적은 퀴어신학자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결코 동성애자 혐오 논리가 아니다. 동성애가 죄라는 것은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을 사랑하는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 지적은 동성애자들의 성중독을 치유하고 인권 회복을 위한 기본 전제이다. 환자가 질병을 인정하지 않으면 치료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동성애는 혐오하되 동성애자들은 사랑하여 혐오하지 않고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저들을 환자로서 받아들여 인내를 가지고 관용하며 치유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렇게 동성애자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내를 가지고 용기있게 대처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그러한 교육노선이 점점 무너져가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 신학교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확실하게 깨어 일어나서 신학교와 신학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하겠다. 한국교회가 이 때 깨어나지 않으면 신학교육 현장에서 동성애를 막기에는 너무 늦을 수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깨어 일어나 기도하면서 실질적인 행동을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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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7
  • "장신대 무지개 퍼포먼스 학생, 법 이전 신앙 양심 고백이 우선"
    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샬롬나비는 장신대 동성애 무지개 사태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다. 이들은 “서울 동부지법은 장신대가 경건을 모토로 목회자를 양성하는 특수기관”이라며 “절차상의 이유로 장신대의 징계를 무효화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들은 “서울 동부지법 판결은 신학대의 특수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동성애 옹호를 금지하는 통합교단의 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징계 무효 소송을 낸 학생들을 향해 “법의 판단 이전 신앙 양심의 고백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사도 바울은 ‘세상 법정을 향해 고소하지 말라’고 했다”며 “이 말씀을 무시하고 학생들은 신앙적 양심을 버리고, 대규모 변호인단에 도움을 요청해 소송을 벌렸다”고 밝혔다. 이에 이들은 “장차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마저 외면한 파렴치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들은 “지난 9월 총회고시위원회는 목회자의 마음으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4시간 심층 면접을 통해 기회를 줬다”고 전했다. 즉 이들은 “동성애 인권 옹호 사상을 버린다면, 구제하겠다는 고시위원회위원장의 간곡한 지도와 충언이 있었다”며 “그러나 학생들은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하여 이들은 “학생들은 회개하고 돌이켜 자신들의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라”고 외쳤다. 나아가 이들은 “총회와 학교규칙을 어긴 것에 대해 처벌을 받겠다고 선언할 것”도 촉구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동성애 무지개 사태 처리 과정에 대한 논평서> 동성애 시위 학생들의 징계무효를 결정한 동부지법은 신학대의 특수성에 간섭하지 말라 통합교단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장신대의 동성애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하여 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 경건과 학문을 모토로 목회자 양성기관인 장로회신학대학교(장신대)는 총회 직영 신학교로 국내외에 3만여 동문을 배출하여 지난 12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는 영적인 지도자를 양성한 곳으로 일반 대학과는 엄연히 다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수 상황에서 장신대는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죄악으로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시기에 철저하게 그 위험성을 강조해야 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2016년과 2018년 5월 17일의 성소수자 기념일을 맞아 한경직 기념예배당에서 동성애를 지지하는 학생들이 무지개 옷을 입고 무지개 깃발을 날리며 심지어는 예배 위원도 아닌데 강대상 위에 올라가서 십자가 아래서 기념촬영을 하여 자신들의 페이스 북에 보란 듯이 동성애 지지 홍보를 하였다. 이 사건은 한국교계와 사회에서 큰 물의를 야기하였고, 교단 내에서는 학교당국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였다.이런 학칙에 어긋하는 시위 행동에 대해서 장신대는 학칙에 의거하여 학부생을 제외하고 목사후보생인 신대원생에 대해서 징계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해당 학생들은 무효 소송을 냈고, 2019년에 동부지법은 이 학생들의 소송을 받아들이고 나서 ‘절차상의 하자’를 문제 삼아 징계 무효판결을 내렸다. 이런 일은 장신대뿐만 아니라, 직영 신학교를 관리 감독하는 통합교단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이들 학생 2명은 군목후보생으로 2019년 5월 목사고시에 응했으나 총회고시위원회는 심층면담을 통해서 이들이 동성애 인권신학을 버리지 않음을 확인하고 불합격시켰다. 총회 고시위원회는 정당한 판결을 하였다. 샬롬나비는 동성애 무지개 사태에 대하여 다음 문제를 제기하며 장신대와 통합교단의 결단을 촉구한다. 1. 동생애 인권 주장하는 학생들은 신앙 양심에 따라 스스로 처벌을 받겠다고 나서야 한다.법의 판단 이전에 양심의 고백이 우선이다. 고소하지 말라고 가르친 사도바울의 말씀이 무색할 정도로, 징계를 받은 학생들은 목회자 후보생과 신학생의 본질과 신앙적 양심을 저버리고 대규모 변호인단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장신대를 상대로 징계무효 소송을 벌렸다. 이는 장차 교회에서 영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마저 외면한 파렴치한 행동이다. 누가 이런 사람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인정하고 영혼의 파수꾼으로 세우겠는가? 법에 호소하여 자신들의 징계를 푼 학생들은 신학생의 자격뿐만 아니라 목회자 후보생의 자격이 없으며, 더 나아가서 교회에서 일할 기본적인 소양마저 저버린 자들이다. 성경은 양심을 속이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경솔하게 대하는 이들은 스스로 버림받은 자들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지난 2019년 9월 총회고시위원회에서 목회자의 심정으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4시간 동안이나 심층면접을 하여 동성애 인권사상을 버리겠다고 서약하면 구제하겠다는 고시위원장의 간곡한 지도와 충언을 이들 학생들은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들 학생들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켜 자신들의 잘못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총회 규칙과 학교 규칙을 어긴 것에 대하여 스스로 처벌을 받겠다고 양심선언을 하라. 2. 장신대는 법원 무효결정에 대해 항소하고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해당자들을 다시 징계하라.장신대가 징계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항소하지 않는다면, 이는 직무유기이다.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리고도 학칙대로 징계를 한 학생들에 대해 법원이 절차상의 하자를 근거로 징계무효 판결을 내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장신대의 안이한 대응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법원이 징계무효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학생사랑이라는 미명으로 내심으로 환영하고 있는 일부 교수들의 보이지 않는 태도는 지극히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학생들이 징계에 불복하고 세상 법정에 장신대를 고소하였으니, 당연히 장신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학생징계가 정당함을 항소를 통하여 끝까지 보여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신대는 잠잠하다. 그러므로 장신대는 세상 법정에 항소하여 신학교가 학칙에 따라 동성애 지지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정당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동시에 절차상의 문제로 징계무효 처분이 내려졌으므로, 학교 당국은 지적된 절차상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다시 징계를 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장신대의 학칙이 정당하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분명하게 각인을 시키고 한국교회 전체를 동성애로부터 지켜 나가야 한다. 3. 국가기관(법원과 국가인권위)은 신학교의 특수성과 목회자 양성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간섭하지 말라.신학교는 일반대학과 다르다. 일반대학은 세상일에 필요한 지도자를 세우는 곳이지만, 장신대는 하나님의 일꾼을 키우는 하나님의 학교이다. 정교분리와 제정분리의 원칙이 국가가 교회를 간섭하지 말라는 의미이건만, 동부지법은 막강한 국가 권력을 통하여 종교 교육기관의 내부 일에 간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분명히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동이다. 아직도 대법원에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사상누각처럼 초법적인 자세로 장신대 내부의 자율적 교육방침에 간섭하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 이사장과 총장은 1년 5개월 지난 데도 미해결인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장신대는 이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늘날 장신대 동성애 사태는 온건한 보수신학의 입장을 지닌 대다수의 훌륭한 교수들보다는 표면적으로는 동성애 반대를 표명하나 동성애 인권신학을 학교 행정적으로 시행해온 학교 총장의 친동성애 행보와 이를 묵인해온 이사장의 학교 행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신대 당국인 총장과 이사장은 동성애 무지개 사태에 대하여 학생을 바르게 지도하기 위하여 교회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학생징계를 절차상 이의없이 했어야 했다. 그런데 학생 징계를 하지 않고 미루고 있다가 총회와 노회 및 교계의 압력에 밀려 졸속으로 하여 절차상 하자로 무효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장과 총장은 단 한마디 사과나 책임을 지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이것은 신학대의 행정과 운영 책임자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학생지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법원에서 징계무효 소송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상하게 관여한 이사장과 총장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당장 책임지고 사퇴하는 것이 장신대에서 학생지도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일꾼을 세울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구태의연하게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5. 통합교단 6개 노회 대책위원회가 장신대 남문에서 장신대치동성애 규탄 성명 발표했다. 지난 2019년 2월과 3월에는 통합교단 6개 노회 대책위원회는 장신대 남문에서 장신대가 총회가 동성애 이단 결정에 대한 이행을 재대로 하지 않고 있음에 대한 규탄 집회가 있었다. 2019년 2월 7일 오후 장로회신학대학교 남문 앞에서 총회장 예장 통합총회 내 6개 노회 동성애(함해, 강동, 충청)·이단사이비(포항, 포항남)·이슬람(대전서) 대책위원회는 제 103회 총회 결정에 반하는 장신대 측의 친동성애 행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6개 노회 대책위원회는 특히 아직도 장신대가 동성애 운동가 초청, 동성애 인권 강좌 개최 등 친동성애 행보를 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장신대와 장신대 교수들이 동성애를 죄라고 하면서 동성애 인권화를 묵인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친동성애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103회 총회가 끝난 직후에 교수가 채플 시간에 동성애를 옹호하는 설교를 하는가 하면, 신학춘추가 반동성애 운동가 25인을 가짜 뉴스로 매도하고, 동성애 운동가를 데려다가 동성애인권 강좌를 열며,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교육지침 간담회'를 빙자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동성애 인권화 논리를 펴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6개 노회 대책 위원회는 103회 예장 총회 이후에도 총회결정을 이행하지 않고 장신대 당국이 동성애 인권 강사를 초빙하는 등 친동성애 행보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규탄한 것이다. 6. 통합교단은 교단의 중심 교육기관인 장신대의 동성애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이라.예장 통합의 대표적인 장로회신학대학이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처럼 동성애 수용대학이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이에 대하여는 총회교육부와 동성애대책위원회가 1년 반 전에 동성애 지지사태가 일어났으나 아직도 해결하지 않고 작년 103회 총회의 동성애 이단 결정 이후에도 여전히 친동성애 행보를 그치지 않는 장신대에 대하여 특별한 진상 조사하는 것이 요청된다. 2016년부터 2019년에 이르기까지 장신대 안에서는 크고 작은 동성애 문제가 끊이지를 않았다. 이런 와중에도 ‘젠더와 사회’라는 과목이 개설되어 있으며, 각종 세미나와 특강에서 친동성애 강사들이 초청되어 강연을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개인적인 비리라고 징계가 내려지기 전에 외부에 피의자 사실 공표에 해당하는 언사가 총장에 의해 여러 차례 반복되는 와중에 S교수를 세 차례나 징계를 한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또한, 신학교에 대한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통합교단은 지난 4년 동안 장신대에 있었던 일들과 특히 현재 이사장과 총장의 재임 시절에 있었던 동성애 문제에 관해 철저한 조사를 하여 장신대의 영적인 지도력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 예장 통합 산하 노회는 신학생의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라.예장 통합교단은 작년 103회 총회에서 동성애 퀴어신학을 이단사상으로 결정하고 이러한 사상을 옹호가는 신학생들이나 동조하는 지원자들을 총회 산하 목회자로 세우기를 금지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는 교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교딘의 올바른 결정이라고 평가된다. 이 결정이 제대로 효력을 가지려면 실제로 총회 산하 노회들이 신학생 감독을 보다 철저히 해야만 한다. 이번 동성애 인권을 주장하는 학생 두 명이 목사고시에 응했으나 고시위원회의 4시간 동안 심층면접에 있어서 동성애 인권신학을 버리지 않곘다고 주장함으로써 불합격 처리되었다. 이런 사태가 생기지 않으려면 각 노회가 목사고시생들의 품행과 신학사상을 철저히 정검하여 이런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신학생이 소속된 교회는 개개인과의 안면과 친밀한 관계로 아무리 문제를 일으켜도 쉬쉬하면서 덮어가려고만 하기에, 목회후보생에 대해 매학기 신학계속추천서를 써주는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노회는 신학생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형식적으로 불러서 도서비만 주지 말아야 한다. 식사대접을 하는 격려의 차원도 필요하지만, 동성애 지지에 관한 지수를 확인할 수 있는 면담 질문을 활용하여 신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 자료를 통해서 개개인에 대한 지도를 강화해야 한다. 이런 심층 면접은 신학생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제대로 된 영적인 지도자를 키우는 해당 노회에 대한 소속감과 자긍심을 갖게 하는데 귀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8. 지교회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신학생들이 교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라.신학생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자기들이 사역하고자 하는 교회의 장로이다. 이 점에서 장로들은 철저하게 보수적이며 예장 통합교단의 전통을 지키려는 분들이므로, 인사문제를 목회자에게만 일임하지 말고, 인선 위원회에 들어가서 새롭게 지원한 신학후보생들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지교회마다 전통이 있는데 평생 동안 한 교회에서만 섬긴 장로들의 영적 지도력은 현대 목회에서 평신도 사역이라는 측면에서도 아주 필요한 부분이다. 과거 장신대에 수도 없는 데모가 있을 때마다 장로들이 ‘저런 문제아를 교회에서 청빙하면 안 된다’라는 목소리를 높일 때, 신학생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중하던 일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므로 지교회의 목회자는 장로와의 두터운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교육전도사를 청빙하는 단계에서부터 평신도의 인사 참여를 보장해 줌으로써, 목사후보생이 지교회의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는 풍토를 처음부터 존중하게 해야 한다.                                 2019년 10월 7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 신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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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07

선한교회 검색결과

  • "개척교회 목회자들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11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가 8일 오전 7시부터 성락성결교회에서 개최됐다. 주제는 '한국교회 목회자 자존감 회복 방향'이다. 1부 기도회에는 김영한 박사(숭실대 명예교수)가 하박국 3:17-19절을 중심으로 설교를 전했다. 그는 “이번 104회 예장 통합 총회는 분위기 탓인지, 목사들 대부분이 명성교회 세습 중재안을 가결시켰다”고 밝히며, “그러나 통합 측 교회의 70%는 미 자립 교회”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목회자들의 눈을 어둡게 한 물신주의 때문”이라며 “오늘날 한국교회도 물신주의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하박국 선지자의 자존감은 청빈성에 있다”며 “하나님이 주신 목회적 달란트에만 충실할 때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목회자의 사명은 세속적 기준에 의해 평가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 크기, 교인 숫자, 월급에 의해 평가가 좌우된다고 목회자가 스스로 생각 한다”면, “이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는 일”이라고 밝혔다. 하여 그는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은 나의 즐거움, 구원, 자존감’이라 말한 것”처럼 “목회자는 세속적 평가에 의해 일희일비하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즉 그는 “하박국의 자존감의 근저는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라는 깊은 인격적 관계에 있다”고 재차 말했다. 다만 그는 “이런 세속적 평가에 자존감을 두는 목회자들의 경향성 때문에, 예장 통합이 (2014년에 제정한) 세습방지법을 깨고, 명성교회 타협안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은 수 천 명의 군사보다, 존 낙스 목사의 설교를 두려워했다”며 ‘예언자적 사명’의 무게감을 역설했다. 또 그는 “복음주의 교회는 천국 소망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대사회적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며, “한국 교회가 정의와 공평의 목소리를 외치는 게 자존감을 되찾는 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교회가 부와 권력에 취해있을 때,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여 그는 “진정한 개혁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성공지향, 권위주의적 리더십, 세속주의, 성장주의, 물질주의 등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한다”며 “이럴 때 목회자의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숭실대 명예교수 겸 샬롬나비 대표 김영한 박사 그리고 그는 “강단의 설교는 사회 지도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설교 이어야한다”며 “강단 메시지가 내세지향적인 복음주의를 필요로 하지만, 성경은 전체적인 복음을 말하고 곧 사회적 성결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성결이 없는 복음은 구원파, 신천지와 다를 바 없다”고 못 박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전히 웨슬리의 복음주의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두고 “개인부흥만이 아닌, 사회적 성경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여 그는 “여기서 목회자의 자존감이 나오는 것”이라며 ‘목회자의 자존감은 곧 성결에 있음’을 역설했다. 뒤이어 개척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첫 번째 주자로 이정기 목사(인천 예드림교회)가 발제했다. 그는 “올해 3월부터 인천 부평에서 첫 출발했고, 소속은 고신교단”이라고 첫 말을 뗐다. 이어 그는 “본 교회 부교역자에서 개척교회 목회를 말씀드린 후, 교인들에게 헌신을 부탁했지만 거절했다”면서 “왜냐면 큰 교회 시스템에서 오는 다양한 혜택 등을 놓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령 “관계, 헌신 등 적당한 거리감”이라고 그는 전했다. 아울러 그는 개척교회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먼저 그는 “개척교회는 섬길 사람이 부족하다”며 “3월 17일 개척 예정일자까지 무작정 기도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는 “그간 거절했던 성도들 중 6명이 개척교회에 합류한다고 말했다”며 “실수 없으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계심을 경험하고, 많은 숫자를 놓고 기도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전했다. 나아가 그는 “하나님께 열심 있는 성도를 달라고 기도했다”며 “그러나 어떤 선배 목사들은 ‘열심 있는 성도가 온다면 더 힘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적으니 예배 분위기는 좀 더 냉랭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은 15명이 예배에 참석 중인데, 5명의 예배 팀이 강단으로 나가면, 회중은 고작 10명 정도”라며 “예배 분위기를 끌어올리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때문에 그는 “전도 특공대를 꾸려 주말에 집중 전도에 나섰다”고 전했다. 또 그는 “겨울 기간을 통해 청년 중 교역자를 세우기 위한 성경 양육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이정기 목사(인천 예드림교회 담임)   더 큰 문제를 전했는데, “바로 재정”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감사함을 표하며 “부교역자로 섬기던 교회에서 1억 5천만 원을 지원했다”며 “2년 동안 한 달 월급 200만원, 1년 동안 100만원을 지원해주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인천 부평 지역은 그나마 월세가 싼데, 그래도 140만 원”이라며 “많은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재정문제가 어려운 것은 성도수가 적기 때문”이라며 “젊은 성도들은 헌신 개념도 희박하고, 헌금을 강요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하여 그는 “많은 재정지원을 놓고,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그럼에도 불구 그는 “나와 내 아내는 새벽마다 엎드려 간구 한다”며 “재정에 위축되지 않고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그는 “기독교 TV에 나오는 다른 목회자분들의 설교를 접하며, 은혜를 유지 한다”고 말하며, “수련회에도 참석하려 노력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1년에 2-3번 정도 원래 다녔던 교회 수련회에 참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옛날 선배 목사들께서 진흙 바닥에서 천막 교회를 개척하려던 몸부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후배목사들도 더욱 깨어 있는 것 맞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따뜻한 밥한 끼, 영적 지원을 아낌없이 후원 부탁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이윤호 목사(안양 한아름교회)가 발제했다. 그는 “본 교회 근처에서 실버 사역을 계속했다가, 연임이 어려워져 개척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본 교회 근처는 독거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개척 교회를 통해 실버(Silver) 목회를 이어가려고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사람을 행복하게란 목표로 목회를 시작했다”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역의 본질은 바로 영혼구원에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미소, 칭찬, 감사 등 7가지 요소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영성 운동도 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윤호 목사(안양 한아름교회 담임)   아울러 그는 개척교회의 어려움으로 “정체성”을 뽑았다. 그는 “한 해 문 닫는 교회가 3,000개”라며 “이는 목사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개척을 하면서 깨달은 부분은 바로 선택과 집중”이라며 “나는 실버 사역에 집중하기로 결단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목사로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은 바로 영혼구원”이라며 “다음세대 목회도 중요하지만, 실버목회도 못 지 않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유로 그는 “어르신들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기 때문”이라며 “이분들을 외면해선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그는 “개척부터 265주 동안 계속해서 실버 목회를 진행 하고 있다”며 “현재 100여명의 어르신들이 우리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럼에도 그는 “경제적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재 보증금 1,000만원, 월세 60만원 교회”라며 “4명의 자녀가 있고 매달 임대료 때문에, 다른 일도 했다”고 밝혔다. 가령 그는 “월요일 마다 시각장애인 예배를 위한 차량운행 일을 했다”며 “이걸로 십일조를 냈고, 노동의 뿌듯함도 느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실버 처치를 하면서 2015년부터 쌀 1kg씩을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말하며, “매년 정부의 쌀값 인상, 후원기관이 지원을 끊어 후원 사역이 어려워졌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개인 후원을 받으며 사역하고 있다”고 했다. 가령 그는 “현재 개인 후원자분들에게 일일이 카카오 톡을 통해, 아침 큐티(QT) 말씀과 함께 사역 보고를 전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후원을 요청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무엇보다 그는 “현재 교회에 일꾼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매주 금요일마다 실버처치를 하면서, 쌀 1kg을 어르신들에게 드리고 있다”며 “처음에는 20명씩 오시다가 입소문 나서 100여명으로 불어났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계단까지 서 계셔 기다리는 분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그가 하고 있는 실버 사역 중 하나는 “치매 예방 사역”이라고 했다. 그는 “실버 목회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치매 예방 사역”이라며 “이를 위해 운동, 찬양, 율동, 필사 활동을 어르신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 참석한 많은 목회자들 아울러 그는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급식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안양시 푸드 뱅크와 연결돼, 현재 안양시 여성지도자협회로부터 음식을 공급받아, 목요일마다 30명의 어르신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과거기도 중 콩나물에 대한 마음을 하나님이 주신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여 그는 “현재 콩나물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인 ‘높은뜻섬기는 교회’로부터 콩나물을 지원 받고 있다”며 “어르신들에게 콩나물을 드리며, 전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2018년부터 한 달에 두 번 1, 3주째 콩나물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그는 “치매 예방에 만두 빚기가 좋다고 들었다”며 “그래서 매월 1회 수요일마다 어르신들과 만두를 빚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20대인 4명의 자녀들이 도움을 주고 있지만, 여전히 일손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아내는 아이 4명 키우고, 지금까지 묵묵히 나를 돕고 있다”며 재정의 충당을 위해 화장품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개척교회는 힘들지만, 사역에 있어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 희망이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영혼구원 사역에 집중하다보니 불평과 원망은 자연스레 사라졌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나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다 보니, 자족을 누리게 됐다”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려 노력 한며, 어렵지만 소형교회 목회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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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1
  • "한국교회에 고하는 청년들의 외침"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다만 사랑할 뿐 이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습작 시인이었던 리자 하이제 부인과 서신을 주고 받으며, 엮은 책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온 한 대목이다. 고집불통으로 꽉 막힌 할머니와의 갈등에 리자 하이제 부인은 답답한 심경을 릴케에게 토로한다. 그러자 릴케는 하이제 부인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다만 사랑할 뿐 이죠”라고 다정하게 말해볼 것을.   발제자 중 한 명인 정은혜 청년이 그렇게 말하자(실제로 이를 인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릴케의 말이 곧바로 떠올랐다. 그리고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죽은 릴케의 삶이 생각났다. 젊은 세대와 어른들은 “서로의 가시를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가시를 끌어안고 사랑하라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9월 조찬기도회는 ’한국교회에 고하는 청년들의 외침‘이란 주제로 발표회를 준비했다. 20일 오전 7시 도곡동 소재 한우리교회에서 열렸다. 대구동신교회 청년부 담임 배준현 목사의 설교가 있은 후, 첫 번째로 20대 대표 이다현 자매(동덕여대 조교)가 발표했다. IVF 출신인 그는 “현재 한국교회는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다현(동덕여대 조교)   이어 그는 “한국교회는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 문제로 환원해, 망언하는 목사들도 여럿 있다”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공감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 단순히 ’믿음 없음‘과 말씀으로 악하다고 재단했다”고 비판하며, “한국교회는 지금 수면위로 떠오르는 노동, 여성, 청년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는 은혜와 평안만 가득했고, 사회적 어려움에는 무관심했다”면서 “교회는 이들을 바라봐야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무조건적 믿음과 감사만 강요 한다”면서 “그럴수록 청년들은 교회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다고 생각 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는 여성의 문제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출산, 가정, 남자보다 능력이 낮을 것, 남자들에게 당하는 성폭력은 외면하고 그저 남자들을 만족시켜 주는 존재’로 강요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 교회는 억눌려온 여성들의 문제에 깊이 공감하기”보다 “출산율 낮으니 애 낳으라는 사회적 요구만 반복 한다”고 재차 말했다. 뒤이어 그는 “여성의 입장에 서지 못한 목회자들의 메시지는 더욱 가혹하다”면서 “교회는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목회자의 성범죄 문제는 이런 인식으로 인해 표면화 된 결과”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 내 직분도 여성 차별적”이라며 “여성 목회자는 교단에서 소외되고 있고, 이는 여성의 인권 유린과 직결됐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교회는 이웃의 아픔에 공감해야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예수께서는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셨다”며 “예수께서 제자들의 칭송에만 만족한 채,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라고 반문했다. 또 그는 “우리끼리 성전 안에서 행복하면 다 일까”라며 “현재 한국 교회는 성장에만 매몰되고, 예언자적 메시지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교회 내에 약자들이 더욱 자리 잡아야한다”며 “복이 아닌 고통 받는 자들과 함께 우는 교회가 되기”를 촉구했다. 끝으로 그는 “청년부에서 나의 고통과 아픔을 끌어안으셨던 목사님의 헌신으로, 방황했던 나는 교회에 돌아왔다”고 고백하며, “한국 교회 목회자들도 말과 삶이 일치된 목회”를 부탁했다. 정은혜(하버드 케네디스쿨)   30대 대표로 정은혜 자매(하버드 케네디 스쿨 졸업)가 발제했다. 그는 “미국 하버드를 졸업하고, 남편을 만나 출산 후 한국에 돌아왔지만 취직이 안됐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사회는 여성인 나에게, ‘욕심 부리지 말고 남편과 자식 내조하며 살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다”고 술회했다. 그 때 그는 하나님께 묻고 따지고 싶은 감정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힘든 공부하고 훈련시키셨는데, 왜 나를 쓰지 않으세요”라고 말이다. 언제는 그의 아버지가 목회하고 있는 개척교회에 하나님께 따지러 갔다고 했다. 그는 “한 청년이 허름한 교회에서 공부하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면서 “교회 로비를 깔끔하게 바꾸고 싶어, 당회에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부터 그는 세대갈등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60대 어르신들은 ‘우리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왜 로비를 개선 하냐? 차라리 본당을 개선하라’고 했다”며 “40대 권사님들은 우선 주방부터 개선하자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그는 “그 말은 맞다”며 “각 세대들이 바라본 우선순위의 시각은 달랐고, 모든 우선순위는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달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 재학 중, 로널드 하이페츠 교수(Ronald Heifetz)의 ‘리더십 수업’을 인용해, 논지를 전개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위안부를 몸소 겪지 않았어도, 그들의 아픔에 절절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과거의 역사적 배경을 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60대 어른, 40대 여성들의 우선순위는 사회적·역사적 배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하이페츠 교수를 빌려 “우리는 각자마다의 무대에 서있다. 무대에 서 있으면 내 모습을 볼 수 없다. 내가 무대 밖에 나가서 자신을 바라보라"고 전하며 “그 말에 따라, 무대 밖에 나가 생각해보니 60대 어른, 40대 권사들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고 강조했다. 결국 그는 “마음에 깊이 공감해 60대, 40대 모두가 만족할 제안으로 로비를 리모델링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그는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즉 그는 “교회를 아름답게 짓는 게 목적이 아니”라며 “교회 개선 과정 중 한 분 한 분 성도들을 이해하고, 협력하고, 섬겼던 모습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신 최선의 리모델링(Remodeling)이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편 그는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에게 “요즘 애들은 너무 나약해. 너희들은 꿀꿀이죽 먹으며 배고픔 견뎌봤니? 독재 겪어봤어?”라는 말로 다그친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젊은 세대들과 기성세대들이 처한 시대적 배경은 다르다”라며 “젊은이들은 스마트 폰 세대인 만큼, 서로의 시대적 상황은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로의 시대적 배경에 처해보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지만, 다만 사랑할 뿐”이라고 역설했다. 하여 그는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때 세대 간 갈등은 줄어들고, 화합하며 같이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기성세대들에게 이런 말을 덧붙이며 발제를 마무리 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다만 사랑할 뿐이죠"   한반도평화연구원 이창현 사무국장 마지막으로 한반도평화연구원 이창현 사무국장의 발제가 이어졌다. 그는 “현재 한국 교회의 문제는 1990년대 한국 교회가 겪었던 문제의 연장선”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1990년대 선교, 컨퍼런스 등 많은 행사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돌파는 없었다”며 “현재도 새로운 주제는 끊임없이 떠오르지만, 체계는 90년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40대인 나는 1990년대 20대를 보냈고, 한국 교회의 성장 세례를 받았다”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기대했던 그 시절, 우리가 꿈꿨던 비전, 말씀이 현재 이뤄지고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단언하며 그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현재 교회는 시스템화 됐고, 건축·확장 일변도로 성장주의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고 비판하며, “그렇지만 성도 수는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세상은 회계 프로그램으로 정확하고 투명한 재정 보고를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교회는 현재도 금전 출납부를 쓰고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그는 “옛 세대들이 이렇게 하는 게 익숙하다는 말을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세대가 자식들에게 금전 출납부를 쓰라고 종용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따라서 그는 “40대들은 차라리 교회에 어떤 외침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로 그는 “외쳐봤자 교회 의사결정에 반영되지 않고, 윗세대들과의 협력도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또 그는 “지금의 기성세대는 민주화·산업화를 거쳤다”며 “그러나 87년 체제 이후, 다양한 사회적 의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음에도 교회는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가령 그는 “2002년도 주 5일제 논쟁에서, 교회는 단순히 주일성수 하나에만 프레임이 매몰됐다”고 전했다. 때문에 그는 “교회가 더 많은 사회적 의제에 대처하고, 그 외연을 확장할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 내 의사결정구조는 성장을 위한 구조로 특화됐다”며 “이 구조화 이후 후계 목회자의 선정 문제에 봉착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래로부터 위로 여러 의견을 수렴하기 어려운 구조로 고착화 됐다”고 분석했다. 하여 그는 “교회 내 여러 의사를 수용할 기구를 만들어야한다”며 “교회는 좀 더 유연해지고, 변화를 모색해야한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그는 “교회는 교회의 문제를 정면 돌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즉 그는 “목회자의 성범죄, 교회의 재정 문제 등을 사회 신문기사에서 종종 접한다”며 “그럼에도 교회는 이에 대해 침묵 한다”고 지적했다. 이유로 그는 “덕이 되지 못하고, 개 교회 문제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교회의 문제를 교회에서조차 얘기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디서 씨름해야 할까”라고 반문했다. 이를 위해 그는 “현재 교회의 의사결정구조를 좀 더 유연하게 했으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하여 그는 “교회는 본질로 돌아가야 하며, 앞선 문제들을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한국 교회는 진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 신촌성결교회 원로 이정익 목사     청년들의 외침을 듣고 일선 목회자들이 부연했다. 사회를 맡은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는 “청년과 기성세대 간 갈등이 심각하지만, 단순히 청년들의 문제를 ‘믿음 없음’으로 환원시킨 문제”라며 “3명의 발제에 90% 공감 한다”고 했다. 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는 “좋은 발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20대가 지적한 남성 위주의 교회 운영을 생각하며, 장로교는 여성 안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하여 그는 “깊은 도전을 받았다”며 “복음주의 교회는 그런 화합적인 교회 운영을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촌성결교회 원로 이정익 목사는 “맘껏 발언을 쏟아내도록 젊은이들에게 멍석을 깔아두었지만, 너무 분위기에 휩쓸려 누그러졌다”며 “젊은 정신으로 더욱 할 말을 밀어붙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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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회
    2019-09-23

학술.행사 검색결과

  • 샬롬나비, 성탄절 맞아 "겸손과 소망과 정의를 실천해야"
            숭실대 명예교수 겸 샬롬나비 대표 김영한 박사   행동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모임인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이하 샬롬나비)이 2019년 성탄절을 맞이해 "우리가 겸손과 소망과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오블리스 노블리주, 사회통합, 소회계층과 북한주민사랑을 구현하자"고 당부했다. 샬롬나비는 성탄 메시지를 통해 "아기 예수가 영광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임한 것처럼 우리는 겸손을 실천해야 할 것"이라 말하고, "새해에는 불안보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 했다. 또 "공공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며 여야 정치인, 사회 지도자들, 한국교회 등에 당부의 말을 전했다. 다음은 성탄 메시지 전문이다. <샬롬나비, 2019년 성탄절 메시지> "예수님 탄생하신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가 겸손과 소망과 정의를 실천해야 하겠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블리스 노블리주, 사회통합, 소회계층과 북한주민사랑을 구현하자." 한국 사회는 세대의 갈등, 이념의 갈등 그리고 남녀 및 지역의 대립으로 인한 사회적 분열이 극에 달해 OECD 국가들 중에서 사회적 갈등지수가 2위로 높다는 평가도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열과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너무나도 많이 들어가고 있다. 그 비용에 대한 추산은 82조에서 246조까지 이르고 있다. 그와 함께 집단 이기주의로 인해 서로간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사회에서 무엇보다 양보와 통합을 이뤄나가야 한다. 아기 예수는 하늘의 무한한 영광을 버리고 로마제국의 군사적 지배와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이 높았던 유대 땅 베들레헴의 낮은 땅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자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찬송하였다. 이와 같은 주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서 몸소 높은 곳에서 낮아지는 겸손을 보여 주셨다. 이제 곧 성탄의 기쁨이 온 누리에 펼쳐질 것이다. 연말연시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샬롬나비는 한국 사회에 다음과 같이 통합을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1. 아기 예수가 영광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임한 것처럼 우리는 겸손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오늘날 양극화와 갈등으로 상처만 남아 있는 곳이다. 우리는 지나친 이기주의로 인해 배려와 겸손의 미덕을 상실하고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높은 자리에서 낮아짐을 통해 겸손과 돌봄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의 겸손과 돌봄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보다는 이기주의에 젖어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주님께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그 사랑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지금 ‘누가 네 이웃이냐?’라고 질문하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의 이웃이 되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예수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우리의 이웃은 바로 내 옆에서 도움이 필요하여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겸손과 사랑과 포용의 자세로 다가가서 그들과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2. 새해에는 불안보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희망이라는 단어를 상실한 채 살고 있다. 특히 20~30대의 젊은 세대에게서 희망이라는 단어는 사치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노력을 통해 꿈을 실현할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청년 10명 중 8명 이상이 한국사회를 ‘헬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기회가 되면 한국을 떠나 살고 싶다는 ‘탈조선’ 응답도 75.4%에 달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올 한 해를 반성하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청년층들이 희망을 가지고 용기를 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꿈을 꾸고 미래를 설계하여 세상을 당당히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 많은 젊은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당장 답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만큼 이 사회는 꿈을 이루기에 너무 힘든 곳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청년들이 꿈을 위해 도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3. 공공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늘 사적인 이익과 공적인 이익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진다. 소위 님비현상과 같은 사회적 논란들은 대다수 지역 이기주의에서 빚어진 것들이다. 이처럼 우리는 공적인 가치보다는 사적인 이익을 더욱 우선시 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사적인 이익을 보장하는 동시에 공적인 이익도 우선시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정의가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마이클 샌델(M.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국에서 100만권 이상이 팔릴 정도로 한국사회는 정의에 목말라하고 있다. 샌델은 그의 저서에서 공동체에서 추구되어야 할 것은 ‘정의’라고 말한다. 정의는 어떠한 기준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원칙이다.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추구해야할 정의는 어떠한 환경에서든 흔들림 없이 지켜져야 하는 핵심 가치이다. 이처럼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공정함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들은 공공의 가치를 인정하고, 모두가 정의로운 사회에서 자신의 꿈과 비전을 향해 달려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4. 오늘날 여야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당파적 이익 아닌 국가적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정치현실은 무한한 대립과 양육 강식의 살벌한 투쟁 속에서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위한 선한 투쟁이 아니라 공수처법과 연동형 선거법을 두고 국민은 염두에 없고 자기 당의 득표이익에만 머리를 굴리는 파당적 계산과 싸움에 실망하고 있다.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과 헌신의 태도와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정치는 전부 아니면 무라는 극단의 권력 투쟁 속에서 너무나 살벌한 현실이 전개되고 있어 나라의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여야 정치인들은 깊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과 정부 공직자들은 성탄에 낮아지시고 자기를 내어주신 예수의 희생 정신을 깊이 성찰하기 바란다. 자신을 희생하고 자기 당을 희생하고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살리는 진정한 지도자 정신이 이 성탄절에 우리 사회 여야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 각성되기를 바란다. 당파적 이익 아닌 국가적 정의와 대로(大路)를 추구하기 바란다. 5. 사회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여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가치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연말연시가 되면 광화문에는 사랑의 온도계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올 연말연시에는 사랑의 온도계가 얼마나 올라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그 온도계를 높이는 방법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을 비롯해서 많은 CEO들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 그들은 자신의 막대한 부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고 사회에 기부했다. 그들의 기부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은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의 기부로 교육과 의료 혜택을 수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얼마 전 한국에서도 영화배우 원로인 신영균씨도 500억원을 기부했다. 그는 "가져갈 건 성경책 하나"라는 말을 하고, 자신의 재산을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기부에 참여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면 이 사회는 더욱 희망으로 가득할 것이다. 6. 세대의 갈등, 이념의 갈등, 남녀와 지역 차별 등 다양한 분열을 극복하고 사회 통합을 이뤄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오늘날 심각한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세대의 갈등과 이념의 갈등을 넘어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다양한 차별받는 현실은 단지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양극화로 인한 빈부의 차이는 사회 전반의 안전망을 위협하고 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로 인한 고통과 갈등을 해결하고 세상의 평화를 전해주기 위해 탄생하셨다. 우리는 이런 평화가 도래하는 연말연시 성탄절에 다시금 소중한 통합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해야할 것이다. 예수는 왕으로 온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마굿간에서 태어났다. 사회적 약자들과 아픈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달래 주었고 치료해주었다. 우리는 예수의 삶의 방식처럼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다가가야 할 것이다. 그들의 아픈 상처를 싸매어 주고 치료해 주면서, 갈등의 여러 요소들을 대화로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7. 한국 교회는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가치는 공적인 정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예수는 몸소 낮은 자리에서 아픈 자에게 먼저 다가갔다. 아픈 사람이 예수에게 다가 올 때 제자들은 그를 물리쳤다. 하지만 예수는 제자들을 호통하고 아픈 사람이 자신에게 올 것을 허락했다. 한국 교회는 실의에 빠져 있는 사회적 약자들과 외국인 근로자들, 독거 어르신들 등 많은 이들에게 다가가 사랑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예수의 가장 큰 가르침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런 사명을 잘 감당할 때, 이 사회에서 온전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8. 한국교회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북한의 동포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며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 예수님이 이 땅에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를 자유롭게”(눅4:18) 하려고 오셨다. 이 땅에서 3대에 걸친 독재정권의 하에서 가장 무겁게 포로된 자들이 북한 주민이고, 말할 수 없는 인권 탄압 하에서 짓눌리고 있는 사람들이 북한 동포들이다. 우리들은 주님의 탄생을 맞이하면서 북한 땅에 죄로부터 자유와 독재정치로부터의 자유, 인권 탄압의 짓눌림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기도하며 통일을 위해 나아가야 하겠다. 남북분단은 인간 죄악의 가장 깊은 고통의 산물이고, 그 중에서 북한은 그 고통의 가장 깊은 수렁이다. 올 해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가 북한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며 사랑을 나누며 우리 동포임을 확인해야 하겠다. 2019년 12월 20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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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4
  • "허호익 교수 장신대에서 동성애 밀실 강연, 엄정히 조사해야"
      ▲허호익 교수(대전신대 대학원장·평통기연 운영위원)   샬롬나비(원장 김영한 박사)는 장신대에서 대전신학대학교 허호익 교수가 12일 소양관 609호에서 동성애를 옹호한 강연을 두고, 비판 논평을 냈다. 이들은 “예장 통합 103회는 동성애를 이단 신학으로 규정한 바 있다”며 “예장 통합에 소속된 목사인 허호익 교수는 버젓이 장신대에서 동성애 강연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들은 “강연은 총회의 결의를 전적으로 역행했다”고 비판하며, “학교의 대내외적인 비판을 분명하게 의식한 증거로, 참석자들에게 ‘강의를 어떻게 알고 왔느냐?’, ‘소속이 어디냐?’ 등의 질문을 위압적으로 캐물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소위 ‘밀실 강연’을 강행한 것”이라며 “심지어 재학생들도 학생증 검사를 통해서 강의실 출입이 가능했고, 이는 장신대 신대원 학우회의 결의에 따라 이뤄졌다”고 밝혔다. 하여 이들은 “동성애 지지 강연이 떳떳하다면 왜 이를 밀실에서 진행해야 하는가”라고 되물으며, “이는 동성애 밀실 강연을 허용한 장신대가 총회 결정을 위배했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이들은 “장신대는 총회규정을 어기는 신학자들과 학교 관계자, 학생들의 행위를 확실하게 조사해, 그에 합당한 문책을 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신학교를 동성애의 위기로부터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들은 허호익 교수를 빌려 “교회가 세계적 대세에 따라 동성애자를 더 이상 정죄하지 말고 성직자로 세워야 한다”고 전하며, “동성애는 죄라는 지적은 퀴어신학자들 처럼 동성애자 혐오 논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이들은 “동성애가 죄라는 것은 동성애자 혐오가 아닌, 저들을 사랑하는 심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역설했다.   게다가 이들은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 지적은 동성애자들의 성중독을 치유하고 인권 회복을 위한 기본 전제”라며 “환자가 질병을 인정하지 않으면 치료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교회는 동성애는 혐오하되 동성애자들은 사랑해야 한다”며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들을 환자로서 받아들이고, 인내를 가지고 관용하며 치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숭실대 명예교수 겸 샬롬나비 대표 김영한 박사   <장로회신학대에서 허호익 교수의 동성애 옹호 ‘밀실 강연’ 강행에 대한 논평> 총회가 이단으로 금지한 동성애 옹호 밀실 강연을 허용한 장신대 총장은 문책되어야 한다.예장통합총회는 규정에 따라 이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 문책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 지난 11월 12일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임성빈, 이하 장신대) 소양관 609호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ㆍ역사적 성찰”이라는 제목의 강연회가 열렸다. 강연자인 허호익 대전신학대학교(총장: 김영권, 이하 대전장신) 은퇴교수는 예장 통합 교단에 소속된 목사이자 교단 산하 신학교의 원로교수이다. 강연 장소인 장신대는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하는 예장 통합의 대표적인 신학교이자 한국교회의 최대 신학교육 기관이다. 그런데 예장 통합 총회는 제102회부터 제104회까지 3회 연이어 반(反)동성애를 강력히 결의했는데, 특히 103회 총회는 동성애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퀴어신학(queer theology)을 이단으로 규정한 바 있다. 총회의 결의문에 따르면,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동성애자와 동성애를 지지ㆍ옹호하는 자는 교회의 직원(항존직, 임시직, 유급 종사자) 및 신학대학 교직원이 될 수 없다.” 또한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의 학칙에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는 입학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결의하였다. 이에 샬롬나비는 허호익 교수 강연의 문제점과 함께 장신대의 책임에 대하여 논평하고, 예장 통합 총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건의하는 바이다. 1. 총회가 이단으로 결의한 동성애에 대하여 총회 직영 신학대학이 비밀 강연을 허용하는 것은 바른 길이 아니다. 이처럼 예장 통합 총회가 동성애 반대를 단호히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허호익 교수는 총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신학생들에게 반(反)성경적이고 비(非)윤리적인 동성애를 옹호하는 강연을 한 것이다. 마땅히 신학도들을 하나님의 진리로 가르치고 영적으로 바른 길을 선도해야 할 교수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명약관화하게 금하셨던 동성애를 세상 풍조에 휩쓸려 따라가는 죄(罪)가 아니라고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총회 결정에 반대할 수 있는 교수의 힉문과 양심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허 교수는 떳떳하게 공개강연을 하지 밀실강연을 하여 세상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가? 2. 총회의 결정을 위반하면서 비밀 강연을 한 허 교수는 자유방임적 이단 옹호로 이단 연구로 한국 교회에 기여한 자신의 공헌을 무너뜨렸다. 더욱이 이 강연은 총회의 결의를 전적으로 역행한다는 사실과 학교의 대내외적인 비판을 분명하게 의식한 가운데 학교를 방문한 외부 인사들(졸업생 포함)에게 “강의를 어떻게 알고 왔느냐?”, “소속이 어디냐?”는 등의 질문을 위압적으로 캐물으면서 이들을 철저히 배제한 비밀강연, 소위 ‘밀실 강연’을 강행하였다. 심지어 재학생들도 학생증 검사를 통해서야 강의실 출입이 가능했는데, 이 모든 일은 장신대 신대원 학우회의 결의에 따라 엄격한 통제 속에서 이루어졌다. 동성애 지지 강연이 떳떳하다면 이를 밀실에서 진행해야 하는가? 학문이란 개방성과 토론 가능성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3. 허 교수의 동성애 옹호 저서는 동성애 반대하는 한국교계에 큰 우환을 던져두었다. 사실 허 교수는 올해 5월 『동성애는 죄인가』라는 책을 출간하여 한국 신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킴으로써 오늘의 불미스러운 사태를 예고하였다. 허 교수는 한국 복음주의 신학계의 조직신학자로서 나름의 공헌을 해왔는데, 특히 그의 이단 연구가 한국교회에 기여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책 한 권으로 그의 신학자로서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한국 복음주의 신학계에도 큰 우환을 던져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심도 있는 독창적인 연구물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범람하는 자료와 기사들을 소개하는 정도의 편집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저자는 각 주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확고하게 피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연구와 기사들을 인용함으로써, 사람들의 비판을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는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인용하는 자료나 통계가 좌파 성향의 편향된 내용물 중심이어서 동성애로 인한 폐해를 희석시키거나 왜곡하는 부적절함을 보이기도 한다. 4. 허 교수의 동성애 옹호는 동성애자의 성직(聖職) 허용까지 선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허 교수의 치명적인 과오는 ‘신학적 다양성’이라는 명목으로 정통신학을 훼손한 일인데, 이것은 그의 신학적 정체성이 성경에 입각한 복음주의적 신학과 결을 달리하는 친(親)동성애적 성향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듯하다. 허 교수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동성애는 예외적으로 비(非)범죄화와 합법화가 이루어지고, 동성애자의 성직(聖職) 임용까지 허용되는 추세”라고 주장함으로써, “교회가 세계적 대세에 따라 동성애자를 더 이상 정죄하지 말고 성직자로 세워야 한다”는 언질을 주는 듯하다. 한 마디로 말해, 허 교수의 저서 『동성애는 죄인가』는 “세태가 변했으니 교회도 시류에 따라 변하고 세상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논조가 강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허 교수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책을 저술하고 이제는 비밀리에 학생들에게 동성애를 옹호하는 강연을 하면서 총회 결정을 명백하게 위반하였으니, 예장 통합 총회 앞에 자신의 소신을 공개해야 할 것이다. 5. 동성애 문제의 근원지는 장신대에 있다. 장신대 총장과 구성원은 이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 문제는 허 교수만의 개인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장신대가 문제의 근원지라고 말할 수 있다. 교단 총회의 결의에 이반(離反)하여 동성애 옹호 강연회를 개최한 장신대의 친동성애적 행보는 수년에 걸쳐 누적된 문제 사안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장신대 안에서 동성애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고, 장신대 측의 대응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음으로써 갈수록 상황이 위중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장신대는 오히려 동성애 옹호강연을 학생회가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을 허용하는 우를 범하였다. 그리고 비밀강연이 영원한 비밀로 감추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를 묻고 싶다. 장신대는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비밀강연을 진행한 모임에 문책해야 한다. 6. 장신대는 동성애 무지개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아직도 동성애에 대한 애매한 입장 취히고 있다. 장신대에서 일어난 친동성애적 사태는 대표적으로 2017년 5월 30일: 장신대 ‘신학춘추’(학교신문)의 동성애와 퀴어신학에 대한 옹호적 기사 게재, 2017년 9월: 예장 통합 총회 내 동성애자와 동성애 지지ㆍ옹호자 관련 조항 신설, 2017년 10월 12일 총학생회 주최로 친동성애 목회자 초청 강연 기획, 2017년 10월 25일: 장신대 내 동아리의 친동성애 강연 기획 시도, 2018년 5월 17일: 장신대 학부생 3명과 신대원생 5명이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기념하여 동성애를 상징하는 6색 무지개의 상의를 입고 채플에 참석한 후 일어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일련의 사태 등을 들 수 있다. 세상 법정이 장신대 측에 가한 부당한 개입과 친동성애적인 공권력을 등에 업고 신학교와 교단, 그리고 자신의 신앙 양심마저 우롱한 목회자 후보생들의 부적절한 처신, 이를 둘러싼 불미스러운 사태가 해결되지 않은 현실은 장신대 내에 여전히 동성애와 관련된 잠재적 문제들이 꽈리를 틀고 도사리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이런 문제 상황 속에서 금번 동성애 옹호자 허 교수의 밀실 강연 사태는 동성애와 퀴어 신학의 폐해로부터 한국 교회의 예비 성직자들을 보호해야 할 당위적 과제와 책임을 다시금 한국 교회에 엄중하게 부과한다. 예비 성직자들은 올바른 신학교육을 받아서 인류 문명사적 위기에 봉착한 이 시대를 하나님의 진리의 영으로 올바르게 선도할 수 있어야만 한다. 7. 예장 통합 교단은 교단의 규정을 어기고 동성애 옹호 비밀강연회 진행한 허 교수, 초청 모임 그리고 이를 허용한 장신대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 문책하여 재발을 막아야 한다. 동성애 밀실 강의를 허용한 장로회 신학대학은 총회의 결정에 역행하고 있다. 예장 통합 교단은 현재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하는 교단인 만큼 한국교회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막대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신대를 비롯한 예장 통합 총회 산하 신학교에서 배출되는 사역자들은 향후 한국교회에서 중차대한 역할을 감당할 사명자들이다. 사실상 동성애 합법화에 제동을 걸고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보루는 기독교 교회공동체인데, 그 보루의 중심에 바로 통합 교단의 장신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신대는 동성애와 퀴어신학의 폐해로부터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총회는 총회규정을 어기는 신학자들과 학교당국 그리고 학생들의 행위를 확실하게 조사하고 그에 합당한 문책을 해서 신학교를 동성애의 위기로부터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 8. 동성애 방지에 있어서 평신도를 보호해야할 신학자와 목회자는 그 책임을 다 해야한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진행되는 동성애 반대 움직임은 한국교회동성애대책협의회(위원장 소강석 목사)를 통하여 평신도와 목회자들이 서로 동역하면서 조직적으로 잘 전개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평신도들이 고난을 무릅쓰고 반동성애 사역을 이끌어가고 목회자들이 적극 후원하는 이 사역에 신학계에서는 방관하거나,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현실이다. 평신도와 목회자들은 신학자들이 교리를 굳건히 세워서 영적이고 사상적인 전쟁을 견인해 주길 기대하지만, 현재 한국 기독계를 움직이는 신학자들은 이 사역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9. 오늘날 신학대학조차 동성애 풍조에 대하여 반대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종합대학에 소속된 신학자들은 동성애 옹호세력에 점령당한 대학 총학생회의 눈치를 보면서 포퓰리즘에 영합하거나, 신성모독 수준으로 성경을 해석하면서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퀴어신학에 예언자적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교단 신학대학에 소속된 신학자들의 경우, 과거엔 일부 신학대학을 제외하고 비교적 보수적 입장을 견지해왔는데, 최근엔 거의 모든 신학대학이 신학적 입장에서 확연히 구별되지 않는 것이 대세인 듯하다. 그러므로 신학자들이 반동성애를 위한 견고한 신학적 기반을 제공하고 강인한 영성으로 영적 전쟁을 선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제 신학자들이 깨어나 영안(靈眼)이 열리고 영적ㆍ사상적 전쟁에 앞장서 나가서 인류 문명과 서구세계를 대신한 이 대리전에서 한국 교회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0. 한국교회는 깨어서 신학교와 신학생들을 동성애에 물드는 것에서 지켜내야 하겠다. 총회가 동성애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옹호하는 학생들의 입학을 불허한다고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를 지지하는 교수들이 생겨나고 학생들을 상대로 비밀강연을 하면서 학생들의 신앙을 혼미하게 반드는 위기의 상황을 한국교회는 맞이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굳건하게 서려면 신학교와 신학교수들이 반동성애의 입장을 견고하게 유지해야 하고, 성경에 입각하여 학생들에게 동성애가 죄라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 지적은 퀴어신학자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결코 동성애자 혐오 논리가 아니다. 동성애가 죄라는 것은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을 사랑하는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 지적은 동성애자들의 성중독을 치유하고 인권 회복을 위한 기본 전제이다. 환자가 질병을 인정하지 않으면 치료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동성애는 혐오하되 동성애자들은 사랑하여 혐오하지 않고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저들을 환자로서 받아들여 인내를 가지고 관용하며 치유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렇게 동성애자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내를 가지고 용기있게 대처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그러한 교육노선이 점점 무너져가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 신학교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확실하게 깨어 일어나서 신학교와 신학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하겠다. 한국교회가 이 때 깨어나지 않으면 신학교육 현장에서 동성애를 막기에는 너무 늦을 수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깨어 일어나 기도하면서 실질적인 행동을 해야 하겠다.      
    • 신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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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7
  • "개척교회 목회자들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11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가 8일 오전 7시부터 성락성결교회에서 개최됐다. 주제는 '한국교회 목회자 자존감 회복 방향'이다. 1부 기도회에는 김영한 박사(숭실대 명예교수)가 하박국 3:17-19절을 중심으로 설교를 전했다. 그는 “이번 104회 예장 통합 총회는 분위기 탓인지, 목사들 대부분이 명성교회 세습 중재안을 가결시켰다”고 밝히며, “그러나 통합 측 교회의 70%는 미 자립 교회”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목회자들의 눈을 어둡게 한 물신주의 때문”이라며 “오늘날 한국교회도 물신주의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하박국 선지자의 자존감은 청빈성에 있다”며 “하나님이 주신 목회적 달란트에만 충실할 때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목회자의 사명은 세속적 기준에 의해 평가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 크기, 교인 숫자, 월급에 의해 평가가 좌우된다고 목회자가 스스로 생각 한다”면, “이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는 일”이라고 밝혔다. 하여 그는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은 나의 즐거움, 구원, 자존감’이라 말한 것”처럼 “목회자는 세속적 평가에 의해 일희일비하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즉 그는 “하박국의 자존감의 근저는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라는 깊은 인격적 관계에 있다”고 재차 말했다. 다만 그는 “이런 세속적 평가에 자존감을 두는 목회자들의 경향성 때문에, 예장 통합이 (2014년에 제정한) 세습방지법을 깨고, 명성교회 타협안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은 수 천 명의 군사보다, 존 낙스 목사의 설교를 두려워했다”며 ‘예언자적 사명’의 무게감을 역설했다. 또 그는 “복음주의 교회는 천국 소망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대사회적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며, “한국 교회가 정의와 공평의 목소리를 외치는 게 자존감을 되찾는 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교회가 부와 권력에 취해있을 때,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여 그는 “진정한 개혁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성공지향, 권위주의적 리더십, 세속주의, 성장주의, 물질주의 등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한다”며 “이럴 때 목회자의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숭실대 명예교수 겸 샬롬나비 대표 김영한 박사 그리고 그는 “강단의 설교는 사회 지도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설교 이어야한다”며 “강단 메시지가 내세지향적인 복음주의를 필요로 하지만, 성경은 전체적인 복음을 말하고 곧 사회적 성결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성결이 없는 복음은 구원파, 신천지와 다를 바 없다”고 못 박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전히 웨슬리의 복음주의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두고 “개인부흥만이 아닌, 사회적 성경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여 그는 “여기서 목회자의 자존감이 나오는 것”이라며 ‘목회자의 자존감은 곧 성결에 있음’을 역설했다. 뒤이어 개척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첫 번째 주자로 이정기 목사(인천 예드림교회)가 발제했다. 그는 “올해 3월부터 인천 부평에서 첫 출발했고, 소속은 고신교단”이라고 첫 말을 뗐다. 이어 그는 “본 교회 부교역자에서 개척교회 목회를 말씀드린 후, 교인들에게 헌신을 부탁했지만 거절했다”면서 “왜냐면 큰 교회 시스템에서 오는 다양한 혜택 등을 놓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령 “관계, 헌신 등 적당한 거리감”이라고 그는 전했다. 아울러 그는 개척교회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먼저 그는 “개척교회는 섬길 사람이 부족하다”며 “3월 17일 개척 예정일자까지 무작정 기도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는 “그간 거절했던 성도들 중 6명이 개척교회에 합류한다고 말했다”며 “실수 없으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계심을 경험하고, 많은 숫자를 놓고 기도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전했다. 나아가 그는 “하나님께 열심 있는 성도를 달라고 기도했다”며 “그러나 어떤 선배 목사들은 ‘열심 있는 성도가 온다면 더 힘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적으니 예배 분위기는 좀 더 냉랭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은 15명이 예배에 참석 중인데, 5명의 예배 팀이 강단으로 나가면, 회중은 고작 10명 정도”라며 “예배 분위기를 끌어올리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때문에 그는 “전도 특공대를 꾸려 주말에 집중 전도에 나섰다”고 전했다. 또 그는 “겨울 기간을 통해 청년 중 교역자를 세우기 위한 성경 양육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이정기 목사(인천 예드림교회 담임)   더 큰 문제를 전했는데, “바로 재정”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감사함을 표하며 “부교역자로 섬기던 교회에서 1억 5천만 원을 지원했다”며 “2년 동안 한 달 월급 200만원, 1년 동안 100만원을 지원해주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인천 부평 지역은 그나마 월세가 싼데, 그래도 140만 원”이라며 “많은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재정문제가 어려운 것은 성도수가 적기 때문”이라며 “젊은 성도들은 헌신 개념도 희박하고, 헌금을 강요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하여 그는 “많은 재정지원을 놓고,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그럼에도 불구 그는 “나와 내 아내는 새벽마다 엎드려 간구 한다”며 “재정에 위축되지 않고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그는 “기독교 TV에 나오는 다른 목회자분들의 설교를 접하며, 은혜를 유지 한다”고 말하며, “수련회에도 참석하려 노력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1년에 2-3번 정도 원래 다녔던 교회 수련회에 참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옛날 선배 목사들께서 진흙 바닥에서 천막 교회를 개척하려던 몸부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후배목사들도 더욱 깨어 있는 것 맞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따뜻한 밥한 끼, 영적 지원을 아낌없이 후원 부탁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이윤호 목사(안양 한아름교회)가 발제했다. 그는 “본 교회 근처에서 실버 사역을 계속했다가, 연임이 어려워져 개척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본 교회 근처는 독거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개척 교회를 통해 실버(Silver) 목회를 이어가려고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사람을 행복하게란 목표로 목회를 시작했다”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역의 본질은 바로 영혼구원에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미소, 칭찬, 감사 등 7가지 요소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영성 운동도 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윤호 목사(안양 한아름교회 담임)   아울러 그는 개척교회의 어려움으로 “정체성”을 뽑았다. 그는 “한 해 문 닫는 교회가 3,000개”라며 “이는 목사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개척을 하면서 깨달은 부분은 바로 선택과 집중”이라며 “나는 실버 사역에 집중하기로 결단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목사로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은 바로 영혼구원”이라며 “다음세대 목회도 중요하지만, 실버목회도 못 지 않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유로 그는 “어르신들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기 때문”이라며 “이분들을 외면해선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그는 “개척부터 265주 동안 계속해서 실버 목회를 진행 하고 있다”며 “현재 100여명의 어르신들이 우리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럼에도 그는 “경제적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재 보증금 1,000만원, 월세 60만원 교회”라며 “4명의 자녀가 있고 매달 임대료 때문에, 다른 일도 했다”고 밝혔다. 가령 그는 “월요일 마다 시각장애인 예배를 위한 차량운행 일을 했다”며 “이걸로 십일조를 냈고, 노동의 뿌듯함도 느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실버 처치를 하면서 2015년부터 쌀 1kg씩을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말하며, “매년 정부의 쌀값 인상, 후원기관이 지원을 끊어 후원 사역이 어려워졌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개인 후원을 받으며 사역하고 있다”고 했다. 가령 그는 “현재 개인 후원자분들에게 일일이 카카오 톡을 통해, 아침 큐티(QT) 말씀과 함께 사역 보고를 전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후원을 요청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무엇보다 그는 “현재 교회에 일꾼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매주 금요일마다 실버처치를 하면서, 쌀 1kg을 어르신들에게 드리고 있다”며 “처음에는 20명씩 오시다가 입소문 나서 100여명으로 불어났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계단까지 서 계셔 기다리는 분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그가 하고 있는 실버 사역 중 하나는 “치매 예방 사역”이라고 했다. 그는 “실버 목회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치매 예방 사역”이라며 “이를 위해 운동, 찬양, 율동, 필사 활동을 어르신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 참석한 많은 목회자들 아울러 그는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급식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안양시 푸드 뱅크와 연결돼, 현재 안양시 여성지도자협회로부터 음식을 공급받아, 목요일마다 30명의 어르신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과거기도 중 콩나물에 대한 마음을 하나님이 주신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여 그는 “현재 콩나물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인 ‘높은뜻섬기는 교회’로부터 콩나물을 지원 받고 있다”며 “어르신들에게 콩나물을 드리며, 전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2018년부터 한 달에 두 번 1, 3주째 콩나물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그는 “치매 예방에 만두 빚기가 좋다고 들었다”며 “그래서 매월 1회 수요일마다 어르신들과 만두를 빚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20대인 4명의 자녀들이 도움을 주고 있지만, 여전히 일손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아내는 아이 4명 키우고, 지금까지 묵묵히 나를 돕고 있다”며 재정의 충당을 위해 화장품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개척교회는 힘들지만, 사역에 있어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 희망이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영혼구원 사역에 집중하다보니 불평과 원망은 자연스레 사라졌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나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다 보니, 자족을 누리게 됐다”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려 노력 한며, 어렵지만 소형교회 목회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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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체
    2019-11-11
  • "한국교회에 고하는 청년들의 외침"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다만 사랑할 뿐 이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습작 시인이었던 리자 하이제 부인과 서신을 주고 받으며, 엮은 책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온 한 대목이다. 고집불통으로 꽉 막힌 할머니와의 갈등에 리자 하이제 부인은 답답한 심경을 릴케에게 토로한다. 그러자 릴케는 하이제 부인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다만 사랑할 뿐 이죠”라고 다정하게 말해볼 것을.   발제자 중 한 명인 정은혜 청년이 그렇게 말하자(실제로 이를 인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릴케의 말이 곧바로 떠올랐다. 그리고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죽은 릴케의 삶이 생각났다. 젊은 세대와 어른들은 “서로의 가시를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가시를 끌어안고 사랑하라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9월 조찬기도회는 ’한국교회에 고하는 청년들의 외침‘이란 주제로 발표회를 준비했다. 20일 오전 7시 도곡동 소재 한우리교회에서 열렸다. 대구동신교회 청년부 담임 배준현 목사의 설교가 있은 후, 첫 번째로 20대 대표 이다현 자매(동덕여대 조교)가 발표했다. IVF 출신인 그는 “현재 한국교회는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다현(동덕여대 조교)   이어 그는 “한국교회는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 문제로 환원해, 망언하는 목사들도 여럿 있다”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공감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 단순히 ’믿음 없음‘과 말씀으로 악하다고 재단했다”고 비판하며, “한국교회는 지금 수면위로 떠오르는 노동, 여성, 청년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는 은혜와 평안만 가득했고, 사회적 어려움에는 무관심했다”면서 “교회는 이들을 바라봐야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무조건적 믿음과 감사만 강요 한다”면서 “그럴수록 청년들은 교회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다고 생각 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는 여성의 문제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출산, 가정, 남자보다 능력이 낮을 것, 남자들에게 당하는 성폭력은 외면하고 그저 남자들을 만족시켜 주는 존재’로 강요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 교회는 억눌려온 여성들의 문제에 깊이 공감하기”보다 “출산율 낮으니 애 낳으라는 사회적 요구만 반복 한다”고 재차 말했다. 뒤이어 그는 “여성의 입장에 서지 못한 목회자들의 메시지는 더욱 가혹하다”면서 “교회는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목회자의 성범죄 문제는 이런 인식으로 인해 표면화 된 결과”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 내 직분도 여성 차별적”이라며 “여성 목회자는 교단에서 소외되고 있고, 이는 여성의 인권 유린과 직결됐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교회는 이웃의 아픔에 공감해야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예수께서는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셨다”며 “예수께서 제자들의 칭송에만 만족한 채,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라고 반문했다. 또 그는 “우리끼리 성전 안에서 행복하면 다 일까”라며 “현재 한국 교회는 성장에만 매몰되고, 예언자적 메시지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교회 내에 약자들이 더욱 자리 잡아야한다”며 “복이 아닌 고통 받는 자들과 함께 우는 교회가 되기”를 촉구했다. 끝으로 그는 “청년부에서 나의 고통과 아픔을 끌어안으셨던 목사님의 헌신으로, 방황했던 나는 교회에 돌아왔다”고 고백하며, “한국 교회 목회자들도 말과 삶이 일치된 목회”를 부탁했다. 정은혜(하버드 케네디스쿨)   30대 대표로 정은혜 자매(하버드 케네디 스쿨 졸업)가 발제했다. 그는 “미국 하버드를 졸업하고, 남편을 만나 출산 후 한국에 돌아왔지만 취직이 안됐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사회는 여성인 나에게, ‘욕심 부리지 말고 남편과 자식 내조하며 살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다”고 술회했다. 그 때 그는 하나님께 묻고 따지고 싶은 감정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힘든 공부하고 훈련시키셨는데, 왜 나를 쓰지 않으세요”라고 말이다. 언제는 그의 아버지가 목회하고 있는 개척교회에 하나님께 따지러 갔다고 했다. 그는 “한 청년이 허름한 교회에서 공부하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면서 “교회 로비를 깔끔하게 바꾸고 싶어, 당회에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부터 그는 세대갈등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60대 어르신들은 ‘우리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왜 로비를 개선 하냐? 차라리 본당을 개선하라’고 했다”며 “40대 권사님들은 우선 주방부터 개선하자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그는 “그 말은 맞다”며 “각 세대들이 바라본 우선순위의 시각은 달랐고, 모든 우선순위는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달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 재학 중, 로널드 하이페츠 교수(Ronald Heifetz)의 ‘리더십 수업’을 인용해, 논지를 전개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위안부를 몸소 겪지 않았어도, 그들의 아픔에 절절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과거의 역사적 배경을 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60대 어른, 40대 여성들의 우선순위는 사회적·역사적 배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하이페츠 교수를 빌려 “우리는 각자마다의 무대에 서있다. 무대에 서 있으면 내 모습을 볼 수 없다. 내가 무대 밖에 나가서 자신을 바라보라"고 전하며 “그 말에 따라, 무대 밖에 나가 생각해보니 60대 어른, 40대 권사들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고 강조했다. 결국 그는 “마음에 깊이 공감해 60대, 40대 모두가 만족할 제안으로 로비를 리모델링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그는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즉 그는 “교회를 아름답게 짓는 게 목적이 아니”라며 “교회 개선 과정 중 한 분 한 분 성도들을 이해하고, 협력하고, 섬겼던 모습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신 최선의 리모델링(Remodeling)이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편 그는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에게 “요즘 애들은 너무 나약해. 너희들은 꿀꿀이죽 먹으며 배고픔 견뎌봤니? 독재 겪어봤어?”라는 말로 다그친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젊은 세대들과 기성세대들이 처한 시대적 배경은 다르다”라며 “젊은이들은 스마트 폰 세대인 만큼, 서로의 시대적 상황은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로의 시대적 배경에 처해보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지만, 다만 사랑할 뿐”이라고 역설했다. 하여 그는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때 세대 간 갈등은 줄어들고, 화합하며 같이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기성세대들에게 이런 말을 덧붙이며 발제를 마무리 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다만 사랑할 뿐이죠"   한반도평화연구원 이창현 사무국장 마지막으로 한반도평화연구원 이창현 사무국장의 발제가 이어졌다. 그는 “현재 한국 교회의 문제는 1990년대 한국 교회가 겪었던 문제의 연장선”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1990년대 선교, 컨퍼런스 등 많은 행사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돌파는 없었다”며 “현재도 새로운 주제는 끊임없이 떠오르지만, 체계는 90년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40대인 나는 1990년대 20대를 보냈고, 한국 교회의 성장 세례를 받았다”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기대했던 그 시절, 우리가 꿈꿨던 비전, 말씀이 현재 이뤄지고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단언하며 그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현재 교회는 시스템화 됐고, 건축·확장 일변도로 성장주의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고 비판하며, “그렇지만 성도 수는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세상은 회계 프로그램으로 정확하고 투명한 재정 보고를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교회는 현재도 금전 출납부를 쓰고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그는 “옛 세대들이 이렇게 하는 게 익숙하다는 말을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세대가 자식들에게 금전 출납부를 쓰라고 종용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따라서 그는 “40대들은 차라리 교회에 어떤 외침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로 그는 “외쳐봤자 교회 의사결정에 반영되지 않고, 윗세대들과의 협력도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또 그는 “지금의 기성세대는 민주화·산업화를 거쳤다”며 “그러나 87년 체제 이후, 다양한 사회적 의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음에도 교회는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가령 그는 “2002년도 주 5일제 논쟁에서, 교회는 단순히 주일성수 하나에만 프레임이 매몰됐다”고 전했다. 때문에 그는 “교회가 더 많은 사회적 의제에 대처하고, 그 외연을 확장할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 내 의사결정구조는 성장을 위한 구조로 특화됐다”며 “이 구조화 이후 후계 목회자의 선정 문제에 봉착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래로부터 위로 여러 의견을 수렴하기 어려운 구조로 고착화 됐다”고 분석했다. 하여 그는 “교회 내 여러 의사를 수용할 기구를 만들어야한다”며 “교회는 좀 더 유연해지고, 변화를 모색해야한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그는 “교회는 교회의 문제를 정면 돌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즉 그는 “목회자의 성범죄, 교회의 재정 문제 등을 사회 신문기사에서 종종 접한다”며 “그럼에도 교회는 이에 대해 침묵 한다”고 지적했다. 이유로 그는 “덕이 되지 못하고, 개 교회 문제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교회의 문제를 교회에서조차 얘기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디서 씨름해야 할까”라고 반문했다. 이를 위해 그는 “현재 교회의 의사결정구조를 좀 더 유연하게 했으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하여 그는 “교회는 본질로 돌아가야 하며, 앞선 문제들을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한국 교회는 진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 신촌성결교회 원로 이정익 목사     청년들의 외침을 듣고 일선 목회자들이 부연했다. 사회를 맡은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는 “청년과 기성세대 간 갈등이 심각하지만, 단순히 청년들의 문제를 ‘믿음 없음’으로 환원시킨 문제”라며 “3명의 발제에 90% 공감 한다”고 했다. 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는 “좋은 발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20대가 지적한 남성 위주의 교회 운영을 생각하며, 장로교는 여성 안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하여 그는 “깊은 도전을 받았다”며 “복음주의 교회는 그런 화합적인 교회 운영을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촌성결교회 원로 이정익 목사는 “맘껏 발언을 쏟아내도록 젊은이들에게 멍석을 깔아두었지만, 너무 분위기에 휩쓸려 누그러졌다”며 “젊은 정신으로 더욱 할 말을 밀어붙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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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23

오피니언 검색결과

  • 나사렛 예수와 하나님에 대한 ‘압바’ 호칭
      김영한 박사 역사적 예수의 독특성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이 감히 부르지 못했던 하나님을 "압바"(Aββα,  abba, 아버지)라는 가장 친근한 호칭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아버지 호칭은 복음서에서는 150회 이상이나 기록되어 있다. 12세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 축제에 부모와 같이 와서 없어져 버렸는데 부모가 근심하여 찾다가 성전에 있는 그를 발견하였다. 어머니 마리아가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라고 질책한다. 이에 대하여 소년 예수는 독특한 문장으로 대답한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소년 예수의 하나님에 대한 "압바"(abba)라는 호칭은 독특하다. "내 아버지 집"이란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의 집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인 하나님의 전을 말한다.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른 것이다. 예수는 그의 복음 전파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하여 지칭할 때 어느 누구도 부를 수 없는 친근한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십자가 상에서 숨을 거두시면서 하신 예수의 마지막 말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이었다. 유대교 문헌에 정통한 독일의 신약학자 여호야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압바"(abba)라는 단어는 역사적 예수가 친히 쓴 아람어라고 밝히고 있다.   I. 구약에서의 하나님 아버지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 토기장이와 진흙, 주관자와 복종자의 관계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도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이 집단적인 내지 비유적인 의미에서 구약성경에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은 민족적인 처지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신명기에는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의 아버지로 묘사된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여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시편 저자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 68:5).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아버지에 비유하였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 103:13).  유대인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하여 호칭으로 부르기를 꺼려하였고, 다른 편으로는 아버지 호칭을 집단적인 의미 내지 비유로 사용해왔다. 이러한 유대교의 하나님 "아버지" 호칭에 대하여 나사렛 예수는 새로운 의미, 즉 신약적인 독특성을 부여하였다. 첫째,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족관계로 표시하였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다. 부자의 관계로서 하나님의 부성을 강조한 것은 바로 유대의 전통적 사상이 의미하는 바를 보다 분명히 설명해 준다. 예수의 아버지 호칭은 유대교가 의미하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부자(父子)관계로 끌어 올리는 혁명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아버지" 호칭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한다. 그것은 아들로서 아버지에 대한 인격적인 관계와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내포하고 있다. 이 호칭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더 이상 주인과 종 사이의 비인격적 관계가 아니라. 자녀에 대해 베푸는 아버지의 무한한 긍휼과 인자에 대한 신뢰가 담겨져 있다. 예수는 자기와 우리의 관계를 친구 관계로 격상시킨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5). 예수는 우리의 친구요, 우리는 예수의 친구로서 예수를 통하여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예수는 맏형이여 우리의 그의 형제로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된다.  II. 호칭 "압바"(Abba)의 함축성 나사렛 예수가 사용한 하나님에 대한 "압바"(아람어로는 abba, 아버지)라는 호칭은 유대교적인 하나님 상(像)의 틀을 깨뜨리고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격적인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예레미아스는 당대의 유대교 문헌을 연구한 후에 "유대교 기도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압바'라고 언급한 유비를 전혀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구약 전체는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성을 강조하고 야웨와의 친밀성을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한데 반해서 예수는 일상적으로 하나님을 아주 친근한 용어로 불렀다. "아버지" 호칭은 다음의 함축성을 지닌다. 1.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깊으신 관심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와 같이 보살피신다. 우리에게 의식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부모가 자녀들의 의식주를 돌보아 주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의 기본을 돌보아 주신다. 예수는 어떤 조건을 제시하며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하여 근본적인 신뢰를 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은 순수하고 소박한 믿음을 말한다. 예수는 마치 자녀에 대한 부모의 심정을 지니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르치시고 계신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예수는 하나님이 무섭고 벌을 주시는 재판관이 아니라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고 마련해주시는 부모보다 더 사랑과 자비로써 우리를 보살피시는 분이라고 가르치신다. 2. 자녀 하나 하나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하나 하나를 눈동자 같이 머리털까지 세고 계시는 세밀한 사랑이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마 10:30).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아흔 아홉 마리 양을 우리에 두고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심정과 같다고 예수는 설교하신다. 그 양을 찾으면 목자가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즐거워하며 집에 돌아와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눅 15:6)라고 말하듯이 하나님은 우리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신다. 누가는 예수의 말씀을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3. 하나님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계: 직접성과 단순성을 나타낸다. 신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이다. 단지 형식이나 의식(儀式)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아직도 종교적 차원이다. 하나님은 자유스러운 마음,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배와 찬양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애원하는 심령에서 나오는 자녀의 소박한 기도를 들어 주신다. 예수는 말씀하신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하나님께 기도하고 요구하는 데는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직접성과 단순성이 요구된다. 마치 자식이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과 같다. 자식이 아버지 앞에서 주저한다면 그것은 참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신앙의 자연스러운 관계로 나타내고 계신다.     4. 자녀의 고통에 함께 하시는 분, 하나님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시고 참여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고통은 율법적인 인과응보로만 오는 것은 아니다. 고통이란 단순히 하나님의 징계로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당하는 고통에는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의미와 목적이 있다. 우리의 고통을 통하여 우리는 겸손해지고 우리의 인생은 더욱 깊어진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묻는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 9:2). 유대인들에 의하면 질병은 죄의 결과이다(요 5:14). 맹인의 경우는 그 부모의 죄의 결과로 보아야 했다. 예수는 대답하신다: "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맹인은 "실로암에 가서 씻어라"는 예수의 말씀에 따라 씻고 밝은 눈을 가지게 되었다(요 9:7). 맹인은 보게 됨을 통하여 그를 치유한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다. 이것은 맹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에게로 되돌아간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통하여 자녀인 우리를 연단시키시고 우리를 그 분의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드신다. 예수는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신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당하는 이 세상의 고통과 박해에는 하나님의 의미와 목적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이것을 선으로 바꾸시고 좋은 것으로 갚아주신다. 우리의 고통은 우리 자신의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통이다. 이 하나님의 고통은 예수의 십자가에서 가장 잘 드러나 있다. 5. 아버지로서 자녀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주신다. 하나님은 구약의 율법학자들이 생각했듯이 그의 자녀에게 단지 준엄한 재판관이나 율법 집행자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는 아버지이시다. 그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자녀에게 어느 계명을 지켰는지 보시기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를 가졌는지에 대해 우선적으로 보신다.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예수의 설교는 잃어버린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탕자의 비유)(눅 15장)에서 나타난다. 탕자는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눅 15:21)라고 아버지에게 참회의 고백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게의치 않고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온 사실 자체를 기뻐하신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눅 15:22-24). 아버지의 아들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품꾼의 하나로 받아들라고 돌아온 아들을 즐겨 맞이해주시고 잔치상을 베풀어주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다. 이 비유는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아낌없이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교훈해 주고 있다.     6.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한 형제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한 형제가 된다. 여기에는 백인, 황인, 흑인의 차이가 있을 수 없고,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의 차이가 있을 수 없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없으며, 지식인과 비지식인의 차이가 없으며, 권력자와 서민의 차이가 없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 아니고 인종이란 진화가 빚어낸 적자생존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형상에 따라서 지음을 받은 창조의 작품이다. 아버지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아바지 되심 앞에서 모든 인종 계층의 구별이 사라진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하나님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진화론적 인간관은 인간을 자연과정이나 만물과 다름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독교적 인간관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받았다고 보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은 동등하며 자연보다 존귀하다고 본다. 형제 자매가 아버지 앞에서 하나인 것처럼 모든 인류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하나의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계 21:26). III. 예수의 영 안에서 계시되는 하나님의 부성(父性)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부성)이란 나사렛 예수에 대한 믿음 안에서만 계시되고 그 안에서 호칭되어진다. 혈과 육이라는 자연적인 관계로는 정립되지 않는다. 요한은 다음같이 증언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가능하다.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오늘도 예수를 믿고 그의 자녀가 될 때 우리에게 아들의 영인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같이 증언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압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영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養子)가 되고 우리는 하나님을 "압바"(abba,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5-16). 오늘날에도 신자인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압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친히 "압바!"라고 불렀던 예수의 영이 우리 속에 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하나님을 "압바"라고 불렀던 역사적 예수의 실재에 대한 연속성을 체험하게 된다. (끝)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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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16
  • 샬롬나비 "이웃 상실한 개인주의 한국 사회를 향하여"
      김영한 박사© 샬롬나비(원장 : 김영한 박사)는 대림절 메시지 첫 번째로 ‘이웃 상실한 개인주의 한국 사회를 향하여’를 전했다. 이들은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서 상호 연결된 이웃”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극단적 여야 대립 등 총체적 소통 부족 속에서 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한국사회는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전통을 지니고 있었지만, 현재는 개인주의가 강한 사회로 달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강림하셔서, 재난 속 우리의 고통에 참여하시고 공감하신 하나님”이라며 “대림절은 우리 모든 죄 짐, 상처, 어려움을 아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절기”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이들은 “대림절에 하늘에 고고히 홀로 계셨던 하나님이 아니”라며 “우리 고통과 절망 속에 함께 공감하시는 하나님 은총”처럼 “우리도 이웃들에게 인도주의적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돼야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대림절 메시지1 <이웃 상실한 개인주의 한국 사회를 향하여> 우리는 하나의 고립된 개인이 아닌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서 상호 연결된 이웃이다. 자연과 사회, 이웃나라도 각자 도생 아니라 서로 배려, 함께 살아가야할 우리의 동반자이다. 2019년 대림절 첫 주일은 12월 1일 주일부터 성탄 전 4주간동안 대림절 주간으로 예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력 절기이다.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오늘날 원자화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대림절의 빛 속에서 성찰하기에 이른다. 대림절은 하나님과 소통이 끊어진 인류와 소통하고 구속하기 위하여 이 세상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대망하는 절기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소통의 부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극단한 여야 대립, 정치적 소통의 부재를 넘어 지역과 계층 그리고 세대를 초월해서 총체적인 소통의 부재가 팽배해졌다. 우리는 지금 개인주의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고, 소통의 단절이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사회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개인적인 가치관이 강하고 소통이 결여된 사회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과거 한국 사회는 공동체 의식이 매우 강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 돕는 문화를 아름다웠다고 간주하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면서 위로했던 시기가 추억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과거 공동체에서 추구하는 미덕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구현하기란 힘든 것인가? , ‘누가 네 이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개인의 가치관을 가장 중시(重視)여기는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공동체 의식의 회복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샬롬나비는 대림절을 맞이하여 개인주의 사회에서 다시금 공동체의 미덕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1. 우리는 공동체와 동떨어져 살 수 없는 연고적 존재자들이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연고적(緣故的) 존재들이다. 누구의 아들과 딸이며 학교와 직장 등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우리는 최소한 어느 집단에 연고된 존재들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이상 우리는 단독자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의 안에 거하시면서 함께 교제하시므로, 고독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와 함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교제하며 살아가라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창조행위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들을 개인이 아니라 작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단위로 설계하셨다. 남녀가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짝을 허락하셨다.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첫 단추이다. 가정을 통해 사회가 형성된다. 사회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살아가는 유적 존재자들이다. 동양에서도 크게 하나 된다는 대동사상으로 함께 어울러져 사는 사회를 이상사회로 꿈꾸며 살아 왔다. 인간은 오직 이성의 힘으로만 단독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타자와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우리는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반드시 타자와 함께 삶을 공유하는 존재이다. 연고적 존재로서 우리는 서로가 배려하고 살아야 하며, 개인의 삶에 공동체를 배제시킬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사람을 넘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단지 인간과의 관계만을 설정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인간과 모든 동식물의 관계성을 포함한다. 성경에서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남녀가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루는 사회 구성원을 넘어 그 가정은 자연 속에 또 다른 구성원임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가 사회를 넘어 자연과 함께하면서 공동체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말하고, 인간 사회에서 자연까지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창조 과정을 통해 인간이 자연(모든 생명체)을 다스리게 하셨다. 여기서 자연을 다스리는 행위는 단순한 지배나 통치의 의미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잘 어울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자연과의 동반자적 사명을 말한다. 인간은 우리들 사회 공동체를 넘어 자연과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타자는 인간을 넘어 자연과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까지 연장된다. 이에 우리는 사회 구성원뿐만 아니라 자연까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외연의 확장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사회 구성원과 자연의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나와 함께 한 동반자로서 서로 간에 배려하는 공생(共生)의 가치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야할 삶의 터전이요 우리의 삶의 따뜻한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3.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공동체의 보살핌과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가치관이 절실히 요청되어야 한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에게 와서 물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는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했다. 이어 청년이 “이 모든 것을 내가 지켰는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이에 예수는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 후 부자 청년은 예수의 말을 듣고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면서 지나갔다. 예수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황금률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예수는 지극이 이타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자신의 재산을 남과 같이 공유하는 삶을 제시한 것이다. 실제로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선패망 후 이회영과 이시영 같은 분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을 하였고, 경주 최부자댁은 흉년이 들었을 때는 이웃의 땅을 사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이웃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어 300년간 가문의 재산을 보존하였다. 최근에 독실한 기독교인이요 전설의 배우 신영균씨도 500억을 기부하였다. 기부의 황제라고 불리는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그리고 페이스북를 만든 주커 버커와 같은 CEO들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들은 지금도 가난한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들은 배고픈 아이들에게 빵을 주고 있다. 연기자인 주윤발 탑 스타도 기부황제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돈은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잠시 맡아 보관할 뿐이다. 내가 죽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주윤발은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면서 사회의 약자를 위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마찬가지로 그의 아내도 전 재산 기부에 찬성하면서 아름다운 선행의 가정을 몸소 실천했다. 4. 우리는 타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말고 그에 대한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 포스트모던 사회는 타자와 함께하는 공간이 점점 줄어가고 있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개인주의가 발전하면서 타자에 대한 배려의 폭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이다. 유대계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의 윤리를 제시하였다. 그는 타자의 얼굴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특히 헐벗은 얼굴을 보고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요청한다.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마주함 또는 만남은 하나의 단순한 행위를 넘어 윤리적 요청이라고 보고, 타자의 얼굴을 통해 윤리적 명령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가난하고 아픈 이들의 얼굴을 외면하고 있다. 예수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요청되는 계명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웃사촌’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지금 누가 네 이웃인지 물어보아야 한다. 지금도 우리의 이웃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타자의 얼굴이 우리와 마주칠 때, 그들의 얼굴에서 나오는 도움의 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곧 연말연시가 다가오고 있다.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들이 생각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올 해 우리가 이웃의 따듯한 온정을 베풀지 못했던 시간들을 회고하면서 올 겨울에는 마음으로 주위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5. 우리는 난민(難民)에 대해 국제적으로도 연대의식을 가지고 하나 된 지구촌을 이루어가야 한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점점 더 자신의 국가 이익만을 추구하는 고립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국제간의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종교간의 갈등과 인종간의 갈등이 많아지면서 많은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다. 쿠르트족 난민, 이슬람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다. 난민들에 대한 구호와 인도주의적 도움이 절실하다. 종파와 인종의 차원을 넘어서 인도주의적 배려와 피난처 제공이 절실하다. 지금 홍콩에서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의 눈치를 보기 때문인지 국제사회에서 홍콩의 민주화에 대한 지원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우리는 ‘세계는 하나’라는 의식 속에서 다른 나라들의 어려움도 돌아보고 힘든 우리의 이웃나라들을 보듬으며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구촌을 일구어 가야 하겠다. 6. 자유민주화를 갈망하는 홍콩주민들은 우리의 이웃이다. 홍콩 자유민주화를 지지한다. 우리 한국인과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이웃인 홍콩 시민들과 홍콩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이들이 추구하는 자유민주화를 지원해야 한다. 홍콩 그리스도인들은 홍콩의 자유민주화를 위하여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다. 이는 신자들이 공동체를 위하여 해야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중국 중앙정부 독재자 시진핑은 장기 집권을 위하여 중국의 가정 교회를 핍박하고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공신당은 중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홍콩 반환시에 체결한 일국 양제에 대한 국제적 약속을 무시하고 홍콩 시민들의 자유민주화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인권 정부라고 자처하는 한국정부는 인권 탄압하는 중국 정부에 항의하고 홍콩 시민들의 자유민주화를 지지하고 한국교회는 홍콩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지지를 발표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7. 그리스도는 이 대림절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친구, 위로자, 구속자가 되신다. 오늘날 서로가 서로에게 소외된 현대 4차산업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지위를 버리시고 이 재난과 갈등과 증오와 고통의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친구가 되신다. 대림절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에 강림하셔서 이 세상의 모든 전쟁, 재난, 난민들의 어려움, 환경 재난 가운데 우리의 고통에 참여하시는 공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대림절은 이 세상이 이기주의적으로 파편화되는 것을 도외시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 짐, 상처와 어려움을 함께 지시고 우리와 공감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하는 절기다. 대림절에 들어서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저멀리 하늘에 고고히 홀로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과 절망의 현장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공감의 하나님의 은총을 전달하고 서로 간에 배려하고 가까운 이웃과 먼 이웃에게 인도주의적 사랑을 실천하는 배려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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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02
  • "명성교회 세습 타협안,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에 맞춘 독단적 판결"
    숭실대 명예교수 김영한 박사     샬롬나비(원장:김영한 박사)는 104회 예장 통합 총회의 명성교회 세습 허용 결정에 대한 논평을 냈다. 이들은 “104회 예장 통합 총회의 이번 결정은 리더십의 합치, 차선책, 절충과 타협이라는 평가가 나왔다”며 “그러나 이번 판결은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화합에 맞춘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들은 “세습 타협안 통과이후, 더 이상의 이의제기는 없다고 못 박았다”면서 “이는 더 좋은 안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한 독단적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들은 “절충과 타협이란 정의와 진리의 원칙을 살리는 경우에만 진정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정의와 진리 없는 절충과 수습이란 총회를 세상의 소금과 빛을 포기하는 불명예에 빠뜨리는 행태”라며 “종교개혁의 정신에서 탄생한 개신교(protestantism)의 최고의 규범은 성경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아가 이들은 “예장 통합 104회 총회는 이미 2014년도에 제정된 세습 방지법을 어기면서, 명성교회의 세습을 어느 정도 허용한 타협안을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때문에 이들은 “대형교회인 명성교회를 수렁에서 구제하려다 사회적 신뢰성과 준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게 됐다”면서 “재물과 욕망이 총대들의 눈을 멀게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이들은 “무분별한 온정주의와 값싼 용서주의가 총회기간동안 잠시 총대들의 눈과 판단을 흐리게 했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기독법률가회(CLF)의 “교단의 최고의 법인 헌법에 위반한 초헌법적 결정은 무효”라는 입장문을 빌려 “명성교회 세습 타협안은 상위법인 교단 헌법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즉 이들은 “헌법 시행규칙을 통해 세습 타협안에 은퇴 5년 후 세습을 가능케 한다고 명시해도, 상위법인 교단 헌법에 이미 ‘세습방지법’이 제정됐기에 무효”라고 역설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 104회 예장 통합 총회의 명성교회 세습 허용 결정 논평서>104회 통합총회 결정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의 뜻에 맞추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성경적 수습(收拾)이란 정의없는 온정주의가 아닌 정의로운 사랑이어야 한다. 제104회 예장 통합총회는 2021년부터 명성교회의 부자(父子) 세습을 사실상 허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명성교회 수습전권위원회 위원장 채영남 목사는 명성교회 세습건에 관하여 7인 수습위원회 수습안을 발표했다: “명성교회와 서울동남노회는 총회재판국의 재심판결을 수용하고, 재재심(2019년 9월 20일 접수)을 취하 한다”며 “명성교회 위임목사 청빙은 2021년 1월 1일 이후에 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대해 투표에 들어가 총대 1204명 중 920명이 수습안에 찬성해 그대로 통과됐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그동안 수년 동안 끌어온 명성교회 사태가 더 이상 지속될 경우 교단 분열이나 대립으로 인한 교회의 소모전과 피로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총회지도부와 총대들의 의지가 여기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리더십의 합치,” “차선책 선택,” “절충과 타협”이라는 평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돈과 욕망이 지배한 결정”으로 사실상 '세습 허용'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통합교단의 세습허용은 교회 내부 화합에 치중하다 사회적 위상과 도덕성에 상처를 입게 되었다. 이에 샬롬나비는 통합총회의 결정은 법과 원칙이라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의 화합에 맞춘 결정으로 보고 다음같이 표명한다. 1. 5년 후 세습 허용은 세습 금지 총회 헌법에 위배되는 모순된 결정이다.올해 104회 예장통합 총회는 명성교회의 담임목사 부자 세습을 합법화해 추인하는 결의를 하였다. 올해 11월부터 2020년 말까지는 임시 당회장을 파송하는 형식을 취했다. 총회 참석자 1204명 중 920명(76.4%)이, 이 같은 내용의 '수습안'에 찬성했다. '수습안' 마지막 조항은 “이 수습안은 법을 잠재하고 결정한 것이므로 누구든지 총회헌법 등 교회법과 국가법에 의거하여 고소, 고발, 소(訴) 제기, 기소 제기 등 일절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다”고 못 박기까지 했다. 수습안에 대한 이의제기 불가는 이번 104회 총회를 통해 교단 내에서는 명성교회 건을 종결하겠다는 총회장과 총대들의 강력한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이 문제로 사회적 논란이 계속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도부들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다시 논란이 야기됨으로써 교단의 힘이 소모되는 것을 막고 혼란 야기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긴 하다. 하지만 이 결정은 다시 번복될 수 없는 절대적인 안으로 못 박음으로 더 좋은 안이 나오는 것을 막는 독단적 수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습안 결정에 대한 이의 제기를 불가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비난을 봉쇄하고 더 좋은 차선책의 제시를 미리 막아버리는 것으로 교회 결정의 개방성을 차단시키는 것이다. 이번 총회 결정은 교회가 진리를 향한 순종과 특권 내려놓음의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사회적 양심의 소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절충과 타협이란 정의와 진리의 원칙을 살리는 경우에만 그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정의와 진리 없는 절충과 수습이란 총회를 외눈박이의 편향성과 세상의 소금과 빛을 포기하는 불명예에 빠뜨리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정신에서 탄생한 개신교(protestantism)의 원리란 총회의 결정이라 하더라도 최고의 규범인 성경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총회의 이번 결정은 자기가 정한 법을 스스로 위반하는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다.진리는 총대들의 투표라는 다수의 힘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 진리는 사람들과 종교회의 결정에 있지 않고 성경과 하나님의 뜻 합치(合致)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와 예장 통합 총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수많은 성도들은 이러한 총회의 결정을 듣고 신앙 양심(良心)에 있어서 깊은 실망의 충격을 받았다. 총회는 다시 번복할 수 없는 수습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총회의 헌법(예장통합 헌법 제28조 제6항, 세습금지법, 2013년 제정)에 어긋나고, 교인들의 양심에 상처를 주고, 세상의 양식(良識)에 조차 어긋난다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간주될 수 없다. 총회 수습위원회의 수습안은 목회자 세습을 금지한 본 교단 헌법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총대들의 결정은 교회 안 성도들과 교회 밖 시민들[과 잠재적 성도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일 뿐 아니라, 교회가 정한 헌법에 이익을 추구하는 자신의 뜻(지교회의 사사로운 형편과 고집)을 굴복시키라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다. 예장 통합 104회 총회는 대형교회인 명성교회를 세습 불법이란 수렁에서 구제하려다 사회적인 신뢰성과 준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 재물과 욕망이 총대들을 눈 멀게 했다. 무분별한 온정주의와 값싼 용서주의가 총회기간동안 잠시 총대들의 눈과 판단을 흐리게 했다. 3. 총회가 대형교회가 총회 헌법을 지키지 않음을 용납한 사례(事例)가 되었다.원칙 면에서 보면 이번 세습허용 결정은 교단 총회가 자신이 만든 헌법의 규칙(세습금지법)을 한 대형교회의 탈퇴 방지를 위하여 지키지 아니한 사례가 되었다. 총회는 시행 세칙이라는 수습안을 만들어 헌법에 위배되는 결정을 하였다. 그래서 이 결정을 지켜보는 세상으로 하여금 교회의 준법성과 신뢰성에 금이 가도록 만들었다. 총회가 자기가 만든 법을 특정인과 특정교회를 위하여 포기함으로써 다른 사람과 교회들도 이를 지키지 않을 수 있는 사례를 만든 것이다. 예장 통합 104회 총회는 대형교회인 명성교회를 세습 불법이란 수렁에서 구제하려다 사회적인 신뢰성과 준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 재물과 욕망이 총대들을 눈 멀게 했다. 무분별한 온정주의와 값싼 용서주의가 총회기간동안 잠시 총대들의 눈과 판단을 흐리게 했다. 4. 대형교회가 총회의 결정을 지배하는 선례(先例)가 되어 버렸다.이번 결정으로 개신교 대표 장자(長子)인 예장 통합 교단이 등록 교인 10만 명에 이르는 대형교회에 굴복했다는 사회적 비난이 쏟아진다. 장자 교단인 통합이 일개 대형교회 세습에 면죄부를 발행하며 손을 들어줌으로써 기독교가 대형교회의 종교적 권력에 굴복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대형교회 이탈을 막기 위해 총회가 수습안을 만들어 세습금지라는 헌법을 스스로 위반하는 사태를 초래하였다. 기독법률가회(CLF)는 “교단의 최고의 법인 헌법에 위반한 초헌법적 결정은 무효”라고 입장문을 발표하였다. 법률가에 의하면 “헌법의 하위 규범인 헌법 시행규칙에 사임 또는 은퇴 5년 후 세습을 가능하게 하는 조항을 신설한다고 하더라도 그 조항은 교단 헌법에 위반되기 때문에 무효”라는 것이다. 5. 명성교회 사태는 타협보다는 하나님의 공의를 지킴으로 수습되어야 한다.이번 총회의 수습안은 불법을 합법화 시킨 불명예로운 수습안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명성교회 세습 문제는 타협이나 수습의 대상이 아니다. 이 문제는 교회 총회가 합의로 결정한 세습금지법이라는 헌법을 위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법을 위반하는 자를 교회의 거룩성과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방향으로 치리하는 길 밖에 없다. 그래야만 총회의 헌법이 지켜지기 때문이다. 세습 찬성 세력과 반대 세력을 화해시키고 중재하는 방식으로 접근한 수습안은 대형교회라는 교회권력에 아부하고 영합함으로써 헌법을 무시하고 윤리성까지도 도외시한 초헌법적 오류를 범한 것이 되었다. 자신들의 편의대로 시행규칙을 만들어 총회의 헌법까지도 효력정지 시키는 결과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교단 총회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하기에 이르렀다. 교회의 권위는 교세나 재정규모나 사역자의 크기가 아니라 청빈성, 거룩성, 약함, 도덕적 수월성에 달려 있다는 성경적 진리를 거부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6. 통합총회 결정은 앞으로 한국교회에 만연한 세습 관행에 면죄부를 주게 될 것이다.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2017년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기준으로 세습된 전국 교회는 143곳에 이른다. 직계 세습이 98곳으로 가장 많다. 기독교 언론에서는 2019년 7월 말 기준, 세습교회가 총 285곳이라고 보도했다. 2000년대까지는 서울 충현교회, 광림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금란교회, 왕성교회, 강남제일교회 등에서 세습이 공공연히 이뤄졌다. 2012년 충현교회의 김창인 목사가 한국복음주의 협의회 모임에서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것을 후회한다”고 공개 발언을 하면서 사회적 파장이 컸다. 2013년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 교단 내에 세습금지법을 만듦으로써 그동안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아온 한국교회가 처음으로 사회 여론에 부응했다. 일반 세상 언론과 사회는 교계의 세습금지라는 자정(自淨) 결정을 환영하였다. 이번 통합 총회의 결정은 한국교회 감리회에서부터 시작한 자정 노력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7. 교회의 사유화(私有化)로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크게 손상했다.담임목사 세습은 결국 교회 사유화라는 교계와 사회의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기독교 시민단체는 교회가 공익적인 종교기관이 아닌 특정 가족만을 위한 사익 단체로 전락할 위험성을 경고한다. 개신교 법조인 약 500명으로 구성된 기독법률가회(CLF)는 지난 8월 26일 입장문을 통해 “한국교회가 교회 세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주어졌으나 예장통합 총회는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며 “이번 결정을 보면서 우리는 한국교회가 짠맛을 잃어서 쓸 데 없어진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을 썩게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고 밝혔다. 8. 총회법을 지킬 수 없는 것에 대해 총대 및 우리 모두가 회개해야 하겠다.이렇게 된 데는 아무도 희생하지 않고 무분별한 양보, 타협, 값싼 용서에 호소함으로써 교단 분열이나 교단 탈퇴라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하는 차선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총회가 가장 약자(미자립교회나 개척교회 등)를 위하여 법을 어겼다면 거기에는 긍휼과 사랑의 정신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명성교회는 10만 신자들이 모이는 대형교회로서 신종 종교권력으로 간주되고 있다. 당사자가 투표 직전에 총회에 나와서 강대상에서 사과하면서 “갈 데 없다 품어 달라”고 말한 것은 총대의 연민에 호소하고자 하는 약자의 시늉을 낸 감상적 발언으로 들린다. 10만 교인 교회당을 세습하는 김삼환 목사는 약자(弱子)가 아니라 총대들이 그의 힘을 무서워하여 총회법을 무력화시키는 타협을 해야 할 정도의 절대 강자이다. 교회의 머슴에서 시작하여 대형교회 목사, 총회장, 증경총회장을 거쳐 어느새 황제(皇帝)가 되어 말로만 약자의 시늉을 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지도자는 세속적 교회당, 교인, 시설, 물질, 권력의 크기에 의하여 평가되지 않고, 자기 비움, 내려놓음, 섬김과 겸손이라는 영적 덕성에 의하여 내면적 존경과 공감을 일으키는 자다.2019년 11월 11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11-14
  • "동성애 반대는 하루살이 걸러내기 아닌, 교회의 본질 지키는 일" (II)
    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김영한 박사   세계적 동성애 허용 대세에 교회는 굴복하거나 영적 투쟁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3. 한국교회는 동성애 반대(하루살이 걸러냄)에 그치지 않고 우상숭배 타파(낙타 지킴)해야 한다. 1) 동성애는 적대시 하면서 각종 우상숭배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한국교회 풍토 손 교수는 “성경은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그보다 더 정죄하는 것은 거짓말과 우상숭배”라면서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번연히 드러나는 거짓과 탐심(우상숭배, 골3:5)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미온적”이라고 지적한다. “교회 돈을 횡령해서 유죄판결을 받는 목사가 설교를 계속해도, 대형교회의 목회세습이 일어나는데도, 논문과 설교의 표절이 발각되었는데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동성애는 마치 기독교의 사활이 거기에 걸린 것처럼 맹렬하게 비판하고 나선다.”며 “한 때 술, 담배를 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처럼 지금은 동성애를 찬동하면 기독교의 적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손 교수는 동성애 비판하는 지도자들이 목회 세습하고 교권욕에 불타고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 한국교회가 책임을 묻지 않는 도덕적 불감증에 대해 윤리적 각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러한 예리한 지적에 대하여 필자를 비롯하여 한국교회 일부 대형교회와 목회 지도자들은 깊이 자성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2) 동성애 반대만이 아니라 교회 내 비리 및 우상숭배 척결 함께 해야 하지만 성경을 인용해서 ‘동성애 관련 차별금지법의 입법 등에 반대하는 것’은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일처럼 아주 사소한 일’이고, 오히려 ‘교회가 긍휼과 정의를 상실하고 부패하는 것은 낙타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손 교수 주장에 대하여 필자는 그의 취지에 찬성하면서도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가르침에 따라서 다음같이 보완하고자 한다. 한국교회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입법 반대에만 그치지 말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공공선인 정의와 윤리실천과 선행을 하는 데 더욱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동성애 반대 투쟁과 교회의 윤리 및 사회정의 운동은 양자 택일 사항이 아니라 둘 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전자에 힘을 쏟아 부어, 후자를 지나쳐서는 안될 일이다. 만일 그럴 때, 동성애 반대도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율법을 성취하는 길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기독교가 동성애 관련 차별금지법 입법 등에 반대하고 저지하는 것은 성다수자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양심과 사회적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반대운동과 더불어 교회 내부의 각종 목회세습 배격, 각종 형사 처벌 받은 목회자들의 자숙과 설교금지, 각종 권력 다툼이나 각종 금권 선거 연루자 배척 등 교회 정화 운동에 전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일까지 동성애 투쟁하는 자들에게 하라는 것은 역할분담론에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교회 내부 비리 척결 문제는 교회 원로들과 중진들이 해야 하고 동성애 반대 투쟁은 젊은 세대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보완적인 보다 적극적인 윤리적 선행운동으로 신자와 교회는 사회적 소외자들, 이주민들, 탈북민들 돌봄 등 사회적 정의 실천 등 선행 아젠다를 실천하여 사회적으로 그리스도인들 내면에서 사회를 향하여 우러나오는 이웃사랑인 긍휼과 정의를 적극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4. 동성애 이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동성애 이슈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해당한다 손 교수는 “기독교가 그런 사소한 것에 목 멜 이유는 없다. 동성애 반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라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중시했던 십일조를 하루살이에, 그들이 무시했던 정의와 긍휼은 낙타에 비유했다.(마23:23-24). 둘 다 지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낙타를 택해야 한다. 적어도 하루살이 지키느라 낙타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고 밝힌다. 특히 “한국교회가 초기처럼 예수님이 낙타에 비유했던 ‘정의와 긍휼’에 힘을 기울였다면 그 때 누렸던 도덕적 권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하루살이 같은 동성애와의 싸움에도 쉽게 이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힌다. 손 교수는 “지금이라도 낙타와 하루살이를 구분하고 낙타에 집중해야 하루살이도 구할 수 있다. 정직하고 공정해서 정의를 실천하며 하나님과 믿음을 돈, 명예, 권력 같은 하급가치를 얻는 수단으로 착각하는 우상숭배를 중단하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약한 자에 대한 긍휼에 사용하면 영적 전투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필자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손 교수는 이 대목에서 하루살이(동성애 반대)도 한국교회가 해야할 사회적 과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초기처럼 독립운동이나 신분 차별 타파운동이나 남녀 동권운동에 앞장선 것은 낙타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정직하고 공정해서 정의를 실천하며 하나님과 믿음을 돈, 명예, 권력 같은 하급가치를 얻는 수단으로 착각하는 우상숭배를 중단하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사회적 소외자들과 약한 자들에 대한 긍휼 베풂에 사용하면 동성애 전투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교회 세습, 일부 목회자의 독선적 교회 경영 및 세상법과 제도를 무시하는 탈법적 행태를 시정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그의 견해에 찬성한다. 그러나 오늘날 ‘동성애 이슈는 낙타가 아닌 하루살이 제거’라고 비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5. 기독교의 상실한 위상에 대해서는 한국교회가 깊이 다시 자성해야 한다 손 교수는 오늘날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위상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건국 후 상당기간 개신교만 군목을 보냈는데도 다른 종교나 사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기독교가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도덕적 권위를 상실해서 기독교가 아무리 옳은 주장을 해도 ‘너나 잘 하세요’ 야유만 받게 됐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명성교회의 세습으로 인한 교단의 정관 유린과 교인들 앞에서 세습 안하겠다는 세 번 약속 파기, 서울장로교회 등에서 진행 중인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간의 싸움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사회적 위상을 크게 추락시키고 있다. 한기총(한국기독교 총연맹)도 초기에는 좋은 역할을 하였다가 2011년 이래 기독교의 사회적 위상을 크게 추락시켰다. 한기총은 1989년 12월 28일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당시 36개 교단 6개 단체의 대표 121명이 서울 강남침례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출발하여 보수적인 연합기관으로 발전하여 지난 22년동안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2011년 이래 한기총 지도자들이 불미스러운 권력 다툼, 금권 선거 파동과 파행적 운영을 하자 이에 분개한 교단들이 나가서 2012년 한교연, 한교총 등이 생겨나게 되면서 한기총은 대표적 지위를 상실하였다. 한기총, 한교연, 한교총 등 보수교단 연합기관들은 교권 쟁탈에 몰두하다 대의를 상실하여 사회적 신뢰를 상실한 데 대해 통렬한 자기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낙타와 같은 큰 문제들이 한국교회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래서 반동성애 운동에 열성을 지닌 지도자들은 반드시 동성애 이슈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한국교회가 가진 사회를 향한 정의와 긍휼의 실천, 목회세습의 폐단 그리고 교권 투쟁 등 우상숭배와 탐심에 대하여 크나큰 비판의식을 가지고 이를 근절하고자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한국교회 보수진영 지도자들은 손 교수의 자기들을 향한 충언을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동성애 반대에 그렇게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자들이 사회적 정의를 세우기보다는 교권투쟁이나 명예욕의 우상에 갇혀있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자기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6.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구별해야 한다, 1) 동성애 선천적 경향 인정?손 교수는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해서 동성애자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기와 사기꾼을 구별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사기꾼은 자기가 결정해서 거짓을 저지르지만 동성애자가 모두 스스로 동성애를 택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다. 손 교수는 “보수교단의 목사의 대학생 아이들이 자신이 느끼는 동성애적 경향 때문에 심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며 동성애 성향자와 동성애 행위자를 구분해야 한다“고 밝힌다. 이에 대해 필자는 생각을 달리한다. 손 교수는 “동성애자 모두 스스로 동성애를 택한 것은 아니다.“ ”보수교단 목사의 대학생 아들이 스스로 느끼는 동성애적 성향”을 예를 들면서 “동성애 행위자와 동성애 성향자를 구분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는 동성애의 선천성, 즉 유전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나 생각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동성애 성향을 선천적 기질적으로 부여하시고, 이를 가증하다고 금기하시는 자기모순적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도 동성애 유전설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아래 7항 참조) 2) 동성애 성중독과 동성애자 인격의 분리: 동성애 행위는 죄, 동성애자는 치유받아야 할 인격 그러면서도 동성애 행위는 죄라고 지적할 수는 있으나 동성애 행위자 인격을 향하여 이성애자들이 혐오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금기해야한다고 말할 수 있고 구분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나 죄인은 사랑하시고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은 동성애 성중독에 빠져서 본인도 여기서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일반 사기꾼도 다를 수 있다. 그렇게 심리상담적으로 측면에서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동성애 반대자들이 자기는 동성애 중독에 빠지지 않았으니 스스로 의롭고 동성애자들은 죄인이라고 스스로 의로운 의식을 혹시나 가진다면 이는 교만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동성애 반대자들도 항상 자신을 돌보고 동료들을 돌보고 동성애 성중독에 빠진 자들에 대하여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들이 이러한 중독에 빠지게 된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이들이 이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마음을 갖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혹시나 스스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면서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동성애 행위”도 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매주 주정 헌금과 십일조 드린다고 감사한다면 우리는 신바리새인과 율법주의자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토색, 불의, 간음, 동성애”를 하지 않았다는 외형적인 율법 규례 이행을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우리 속에 끊임없은 죄의 욕망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겸허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면서 자기 죄 욕망 죽이기와 예수와 새로운 영적 연합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7. 동성애는 선천적이라는 유전설은 의학적 근거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손 교수는 “아직도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에 대해서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스스로 택해서 잘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보다 동성애자들을 더 심각하게 반성경적이라고 보는 것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1993년에 미국 동성애 의사인 해머(D. H. Hamer)가 동성애가 유전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그는 염색체 Xq28이 남성 동성애와 관련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1999년 미국 의학자 라이스(G. Rice)는 염색체 Xq28이 남성 동성애와 관련없다고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하였다. 2005년 해머를 포함한 연구팀이 다시 Xq28이 동성애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B. S. Mustanski a. et., "A Genomewide Scan of Male Sexual Orientation." Human Genetics 116, 2005, 272.) 동성애는 유전적인 요인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과를 획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동성애 찬성론자들이 동성애는 유전적이며 선천적이고 주장하나 이에 대하여 정통 신학자들은 동성애 선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동성애 유전자를 주입하신 하나님이 동성애는 “가증한 일”이라고 금지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자기 당착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동성애 선천성) 하시고 “아니오”(동성애 금지)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필자도 성경이 동성애를 명료히 금기하고 있는 것에 따라서 동성애는 동성애 선천성 견해는 성경적 신학적 원리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성애는 선천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이든 비자의적이든 후천적 환경에 의한 동성애 성중독에 빠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의학자들의 정설이다. 8. 양성평등의 헌법을 유지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에 앞선 글에서 손 교수는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변경하려는 헌법 개정에 대한 반대는 당연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손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에도 성소수자들에 대해서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비판과 항거가 거세게 일고 있다.”며 “특히 사회 일각에서 헌법 제36조 1항. ‘혼인괴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에서 ‘양성의 평등’을 ‘성 평등’으로 고치자는 움직임이 있어 위기감이 더욱 커졌다. 성경이 동성 성관계를 분명하게 정죄하므로 한국 기독교인들이 세계 최초의 그런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필자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양성 평등(sex equality)을 천명하는 것으로 이를 세계풍조에 맞춘다고 성평등(gender equality)으로 개정해서는 않된다. 인류문화는 변하나 인간성(성적구조와 생리)는 변하지 않는다. 성평등이란 남성과 여성이라는 창조주가 주신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생물학적 성(biological sex)을 부인하고 인간 스스로 선택하는 사회적 성(gender, social sex)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신학적으로는 인간을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젠더 이데올로기로 재구성하고자하는 “제2의 반역”(the second revolt)이라고 일컬어진다. 이를 제2반역이라고 이름 부치는 이유는 선악과 먹지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반역이 “첫 반역”(the first revolt)에 대하여 이제는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성(biological sex) 를 인위적으로 거부하고 사회적 성(gender, social sex)을 만드려고 하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11-06
  • "장신대 무지개 퍼포먼스 학생, 법 이전 신앙 양심 고백이 우선"
    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샬롬나비는 장신대 동성애 무지개 사태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다. 이들은 “서울 동부지법은 장신대가 경건을 모토로 목회자를 양성하는 특수기관”이라며 “절차상의 이유로 장신대의 징계를 무효화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들은 “서울 동부지법 판결은 신학대의 특수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동성애 옹호를 금지하는 통합교단의 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징계 무효 소송을 낸 학생들을 향해 “법의 판단 이전 신앙 양심의 고백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사도 바울은 ‘세상 법정을 향해 고소하지 말라’고 했다”며 “이 말씀을 무시하고 학생들은 신앙적 양심을 버리고, 대규모 변호인단에 도움을 요청해 소송을 벌렸다”고 밝혔다. 이에 이들은 “장차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마저 외면한 파렴치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들은 “지난 9월 총회고시위원회는 목회자의 마음으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4시간 심층 면접을 통해 기회를 줬다”고 전했다. 즉 이들은 “동성애 인권 옹호 사상을 버린다면, 구제하겠다는 고시위원회위원장의 간곡한 지도와 충언이 있었다”며 “그러나 학생들은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하여 이들은 “학생들은 회개하고 돌이켜 자신들의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라”고 외쳤다. 나아가 이들은 “총회와 학교규칙을 어긴 것에 대해 처벌을 받겠다고 선언할 것”도 촉구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동성애 무지개 사태 처리 과정에 대한 논평서> 동성애 시위 학생들의 징계무효를 결정한 동부지법은 신학대의 특수성에 간섭하지 말라 통합교단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장신대의 동성애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하여 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 경건과 학문을 모토로 목회자 양성기관인 장로회신학대학교(장신대)는 총회 직영 신학교로 국내외에 3만여 동문을 배출하여 지난 12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는 영적인 지도자를 양성한 곳으로 일반 대학과는 엄연히 다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수 상황에서 장신대는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죄악으로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시기에 철저하게 그 위험성을 강조해야 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2016년과 2018년 5월 17일의 성소수자 기념일을 맞아 한경직 기념예배당에서 동성애를 지지하는 학생들이 무지개 옷을 입고 무지개 깃발을 날리며 심지어는 예배 위원도 아닌데 강대상 위에 올라가서 십자가 아래서 기념촬영을 하여 자신들의 페이스 북에 보란 듯이 동성애 지지 홍보를 하였다. 이 사건은 한국교계와 사회에서 큰 물의를 야기하였고, 교단 내에서는 학교당국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였다.이런 학칙에 어긋하는 시위 행동에 대해서 장신대는 학칙에 의거하여 학부생을 제외하고 목사후보생인 신대원생에 대해서 징계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해당 학생들은 무효 소송을 냈고, 2019년에 동부지법은 이 학생들의 소송을 받아들이고 나서 ‘절차상의 하자’를 문제 삼아 징계 무효판결을 내렸다. 이런 일은 장신대뿐만 아니라, 직영 신학교를 관리 감독하는 통합교단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이들 학생 2명은 군목후보생으로 2019년 5월 목사고시에 응했으나 총회고시위원회는 심층면담을 통해서 이들이 동성애 인권신학을 버리지 않음을 확인하고 불합격시켰다. 총회 고시위원회는 정당한 판결을 하였다. 샬롬나비는 동성애 무지개 사태에 대하여 다음 문제를 제기하며 장신대와 통합교단의 결단을 촉구한다. 1. 동생애 인권 주장하는 학생들은 신앙 양심에 따라 스스로 처벌을 받겠다고 나서야 한다.법의 판단 이전에 양심의 고백이 우선이다. 고소하지 말라고 가르친 사도바울의 말씀이 무색할 정도로, 징계를 받은 학생들은 목회자 후보생과 신학생의 본질과 신앙적 양심을 저버리고 대규모 변호인단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장신대를 상대로 징계무효 소송을 벌렸다. 이는 장차 교회에서 영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마저 외면한 파렴치한 행동이다. 누가 이런 사람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인정하고 영혼의 파수꾼으로 세우겠는가? 법에 호소하여 자신들의 징계를 푼 학생들은 신학생의 자격뿐만 아니라 목회자 후보생의 자격이 없으며, 더 나아가서 교회에서 일할 기본적인 소양마저 저버린 자들이다. 성경은 양심을 속이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경솔하게 대하는 이들은 스스로 버림받은 자들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지난 2019년 9월 총회고시위원회에서 목회자의 심정으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4시간 동안이나 심층면접을 하여 동성애 인권사상을 버리겠다고 서약하면 구제하겠다는 고시위원장의 간곡한 지도와 충언을 이들 학생들은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들 학생들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켜 자신들의 잘못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총회 규칙과 학교 규칙을 어긴 것에 대하여 스스로 처벌을 받겠다고 양심선언을 하라. 2. 장신대는 법원 무효결정에 대해 항소하고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해당자들을 다시 징계하라.장신대가 징계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항소하지 않는다면, 이는 직무유기이다.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리고도 학칙대로 징계를 한 학생들에 대해 법원이 절차상의 하자를 근거로 징계무효 판결을 내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장신대의 안이한 대응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법원이 징계무효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학생사랑이라는 미명으로 내심으로 환영하고 있는 일부 교수들의 보이지 않는 태도는 지극히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학생들이 징계에 불복하고 세상 법정에 장신대를 고소하였으니, 당연히 장신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학생징계가 정당함을 항소를 통하여 끝까지 보여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신대는 잠잠하다. 그러므로 장신대는 세상 법정에 항소하여 신학교가 학칙에 따라 동성애 지지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정당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동시에 절차상의 문제로 징계무효 처분이 내려졌으므로, 학교 당국은 지적된 절차상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다시 징계를 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장신대의 학칙이 정당하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분명하게 각인을 시키고 한국교회 전체를 동성애로부터 지켜 나가야 한다. 3. 국가기관(법원과 국가인권위)은 신학교의 특수성과 목회자 양성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간섭하지 말라.신학교는 일반대학과 다르다. 일반대학은 세상일에 필요한 지도자를 세우는 곳이지만, 장신대는 하나님의 일꾼을 키우는 하나님의 학교이다. 정교분리와 제정분리의 원칙이 국가가 교회를 간섭하지 말라는 의미이건만, 동부지법은 막강한 국가 권력을 통하여 종교 교육기관의 내부 일에 간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분명히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동이다. 아직도 대법원에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사상누각처럼 초법적인 자세로 장신대 내부의 자율적 교육방침에 간섭하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 이사장과 총장은 1년 5개월 지난 데도 미해결인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장신대는 이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늘날 장신대 동성애 사태는 온건한 보수신학의 입장을 지닌 대다수의 훌륭한 교수들보다는 표면적으로는 동성애 반대를 표명하나 동성애 인권신학을 학교 행정적으로 시행해온 학교 총장의 친동성애 행보와 이를 묵인해온 이사장의 학교 행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신대 당국인 총장과 이사장은 동성애 무지개 사태에 대하여 학생을 바르게 지도하기 위하여 교회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학생징계를 절차상 이의없이 했어야 했다. 그런데 학생 징계를 하지 않고 미루고 있다가 총회와 노회 및 교계의 압력에 밀려 졸속으로 하여 절차상 하자로 무효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장과 총장은 단 한마디 사과나 책임을 지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이것은 신학대의 행정과 운영 책임자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학생지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법원에서 징계무효 소송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상하게 관여한 이사장과 총장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당장 책임지고 사퇴하는 것이 장신대에서 학생지도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일꾼을 세울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구태의연하게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5. 통합교단 6개 노회 대책위원회가 장신대 남문에서 장신대치동성애 규탄 성명 발표했다. 지난 2019년 2월과 3월에는 통합교단 6개 노회 대책위원회는 장신대 남문에서 장신대가 총회가 동성애 이단 결정에 대한 이행을 재대로 하지 않고 있음에 대한 규탄 집회가 있었다. 2019년 2월 7일 오후 장로회신학대학교 남문 앞에서 총회장 예장 통합총회 내 6개 노회 동성애(함해, 강동, 충청)·이단사이비(포항, 포항남)·이슬람(대전서) 대책위원회는 제 103회 총회 결정에 반하는 장신대 측의 친동성애 행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6개 노회 대책위원회는 특히 아직도 장신대가 동성애 운동가 초청, 동성애 인권 강좌 개최 등 친동성애 행보를 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장신대와 장신대 교수들이 동성애를 죄라고 하면서 동성애 인권화를 묵인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친동성애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103회 총회가 끝난 직후에 교수가 채플 시간에 동성애를 옹호하는 설교를 하는가 하면, 신학춘추가 반동성애 운동가 25인을 가짜 뉴스로 매도하고, 동성애 운동가를 데려다가 동성애인권 강좌를 열며,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교육지침 간담회'를 빙자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동성애 인권화 논리를 펴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6개 노회 대책 위원회는 103회 예장 총회 이후에도 총회결정을 이행하지 않고 장신대 당국이 동성애 인권 강사를 초빙하는 등 친동성애 행보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규탄한 것이다. 6. 통합교단은 교단의 중심 교육기관인 장신대의 동성애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이라.예장 통합의 대표적인 장로회신학대학이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처럼 동성애 수용대학이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이에 대하여는 총회교육부와 동성애대책위원회가 1년 반 전에 동성애 지지사태가 일어났으나 아직도 해결하지 않고 작년 103회 총회의 동성애 이단 결정 이후에도 여전히 친동성애 행보를 그치지 않는 장신대에 대하여 특별한 진상 조사하는 것이 요청된다. 2016년부터 2019년에 이르기까지 장신대 안에서는 크고 작은 동성애 문제가 끊이지를 않았다. 이런 와중에도 ‘젠더와 사회’라는 과목이 개설되어 있으며, 각종 세미나와 특강에서 친동성애 강사들이 초청되어 강연을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개인적인 비리라고 징계가 내려지기 전에 외부에 피의자 사실 공표에 해당하는 언사가 총장에 의해 여러 차례 반복되는 와중에 S교수를 세 차례나 징계를 한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또한, 신학교에 대한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통합교단은 지난 4년 동안 장신대에 있었던 일들과 특히 현재 이사장과 총장의 재임 시절에 있었던 동성애 문제에 관해 철저한 조사를 하여 장신대의 영적인 지도력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 예장 통합 산하 노회는 신학생의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라.예장 통합교단은 작년 103회 총회에서 동성애 퀴어신학을 이단사상으로 결정하고 이러한 사상을 옹호가는 신학생들이나 동조하는 지원자들을 총회 산하 목회자로 세우기를 금지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는 교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교딘의 올바른 결정이라고 평가된다. 이 결정이 제대로 효력을 가지려면 실제로 총회 산하 노회들이 신학생 감독을 보다 철저히 해야만 한다. 이번 동성애 인권을 주장하는 학생 두 명이 목사고시에 응했으나 고시위원회의 4시간 동안 심층면접에 있어서 동성애 인권신학을 버리지 않곘다고 주장함으로써 불합격 처리되었다. 이런 사태가 생기지 않으려면 각 노회가 목사고시생들의 품행과 신학사상을 철저히 정검하여 이런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신학생이 소속된 교회는 개개인과의 안면과 친밀한 관계로 아무리 문제를 일으켜도 쉬쉬하면서 덮어가려고만 하기에, 목회후보생에 대해 매학기 신학계속추천서를 써주는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노회는 신학생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형식적으로 불러서 도서비만 주지 말아야 한다. 식사대접을 하는 격려의 차원도 필요하지만, 동성애 지지에 관한 지수를 확인할 수 있는 면담 질문을 활용하여 신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 자료를 통해서 개개인에 대한 지도를 강화해야 한다. 이런 심층 면접은 신학생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제대로 된 영적인 지도자를 키우는 해당 노회에 대한 소속감과 자긍심을 갖게 하는데 귀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8. 지교회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신학생들이 교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라.신학생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자기들이 사역하고자 하는 교회의 장로이다. 이 점에서 장로들은 철저하게 보수적이며 예장 통합교단의 전통을 지키려는 분들이므로, 인사문제를 목회자에게만 일임하지 말고, 인선 위원회에 들어가서 새롭게 지원한 신학후보생들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지교회마다 전통이 있는데 평생 동안 한 교회에서만 섬긴 장로들의 영적 지도력은 현대 목회에서 평신도 사역이라는 측면에서도 아주 필요한 부분이다. 과거 장신대에 수도 없는 데모가 있을 때마다 장로들이 ‘저런 문제아를 교회에서 청빙하면 안 된다’라는 목소리를 높일 때, 신학생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중하던 일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므로 지교회의 목회자는 장로와의 두터운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교육전도사를 청빙하는 단계에서부터 평신도의 인사 참여를 보장해 줌으로써, 목사후보생이 지교회의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는 풍토를 처음부터 존중하게 해야 한다.                                 2019년 10월 7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 신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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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07
  • "동성애 수용 교회는 거룩성을 표지로 하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김영한 전 숭실대 기독대학원장   김영한 박사(전 숭실대 기독대학원장)는 손봉호 교수의 ‘동성애 반대 투쟁 과유불급’론에 대한 비판 논평을 발표했다. 그는 “손봉호 교수는 동성애 반대는 하루살이와 같고, 세습 등 각종 비리 투쟁에 보다 더 집중해야 함을 말했다”고 전했다. 물론 그는 “손 교수가 제안한 한국교회 윤리 문제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동성애 반대, 목회자의 윤리성, 정의와 긍휼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닌 모두 다 지켜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영한 박사는 "동성애 반대는 하루살이 같은 사소한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신구약 전체에서 동성애는 교회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가증한 죄로 보았다”며 “교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동성애 반대를 외쳐야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독일 신학자 판넨부르크는 동성애 수용 교회는 사도성, 거룩성을 표지로 하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말했다”고 인용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대한민국이 차별금지법 등 동성애 반대를 차단하는 법제화를 추진하려한다”며 “이는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로서, 한국 교회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효과적으로 맞서 싸워야한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동성애, 전세는 기울었다”는 손봉호 교수의 ‘동성애 반대 투쟁 과유불급’론에 대한 논평>동성애 반대는 하루살이 걸러내기 아닌, 교회의 본질 지키는 일.(III) -세계적 동성애 허용 대세에 교회는 굴복하거나 영적 투쟁을 멈추어서는 안된다-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9. 한국교회는 동성애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싸우지 말고 전략적으로 싸워야 한다. 1) 손 교수의 반동성애 전략: 동성애 투쟁보다는 교회의 각종 비리와 우상숭배 투쟁이 효과적. 손 교수는 반동성애 전략을 강조한다: 그 전략이란 현상황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정확한 전략이며, 교회가 동성애에 전력을 소진하여 교회의 세습, 각종 비리와 부패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전략을 다음같이 피력한다: “반대에도 올바른 평가와 정확한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낙타는 통과시키고 하루살이는 걸러내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그보다 더 정죄하는 것은 거짓말과 우상숭배다....교회 돈을 횡령해서 유죄판결을 받은 목사가 설교를 계속해도, 대형교회의 목회세습이 일어나는데도, 논문과 설교의 표절이 발각되었는데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동성애는 마치 기독교의 사활이 거기에 걸린 것처럼 맹렬하게 비판하고 나선다.” 손 교수에 의하면 “기독교는 동성애 반대라는 사소한 일에 목 멜 이유가 없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중시했던 십일조를 하루살이에 그들이 무시했던 정의와 긍휼은 낙타에 비유했다(마 23:23-34).” 그는 말한다: “둘 다 지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낙타를 택해야 한다. 적어도 하루살이를 지키느라 낙타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에 동감하면서 동성애와 교회의 윤리적 책임을 양자 택일로 보지 않고 한국교회가 둘 다 지키도록 했으면 제안하고 싶다. 한국의 일부 보수주의자들이 성수주일, 새벽 기도, 십일조, 십계명, 반동성애 등은 금과옥조처럼 여기면서, 목회자로서 교인들에게 행한 공적 약속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거짓말 안하기, 각종 교회권력 탐욕 투쟁과 제거, 율법의 정신인 사회 정의와 주변의 소외자들에 대한 긍휼 실천 등은 등한시하거나 지나치는 것에 대한 손 교수의 지적은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한국 복음주의자들은 그냥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략으로 싸워야 한다. 그래야 이길 수 있다. 2) 동성애 반대는 사소한 일 아닌 교회의 본질 지키는 일 필자의 좁은 생각으로는 동성애 반대는 기독교의 본질을 지키는 문제로 생각된다. 성경이 구약과 신약 전체에서 동성애를 “가증한 일”(죄)로 보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는 하루살이 걸러내는 사소한 일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스와 헬레니즘 문화는 동성애를 수용했으나 히브리 유대교 문화는 동성애를 금기했다. 그 중요한 이유란 전자는 인본주의 문화인데 반하여, 후자는 신본주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는 계몽주의를 통하여 현대의 해체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해체주의 문화에 합리성과 윤리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유대 기독교 문화 전통이다. 신마르크스주의의 본산지 프랑크푸르트학파 출신인 비판사회학자 하버마스는 가치와 윤리의 합리성과 보편성을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면서 정의, 사랑, 평등의 보편주의의 가치성을 인정하고 문화적으로 키워온 모더니즘을 옹호하였다. 그리고 모더니즘이 가져다 준 자유와 연대적 공존, 자율적 삶의 영위와 해방, 개인적 양심도덕,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평등한 보편주의는 바로 유대교의 정의 윤리와 기독교의 사랑 윤리의 직접적인 유산이라고 천명하였다. 하버마스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고 모더니즘이 가져온 정의, 사랑, 평등의 보편주의의 가치성을 인정하고 그것이 유래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을 인정한 것은 주목할만하다. 기독교 문화는 모더니즘이 가지고 있는 비판적 합리성과 전통의 아름다운 유산을 수용하고 있다. 창세기 19장은 동성애 폭력으로 인한 소돔 고모라의 유황불 심판, 사사기 19장은 동성애 폭력으로 인한 베냐민 지파에 대한 심판, 로마서에 바울이 로마서 1:24-27에서 로마 헬라니즘 시대 만연한 동성애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고린도전서 6:9-10에서 동성애자들이 하나님 나라 들어감 배제 언급 등이 명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의 보편사 이성신학자 판넨베르그는 동성애 수용 교회는 보편성, 사도성, 거룩성을 표지로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고 했다. 10. 동성애 투쟁은 하루살이 걸러내기가 아니라 낙타(차별금지법 등 법제화 방지)를 잡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하루살이는 열심히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 자들’이라는 비판하는 것은 동성애 투쟁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동성애 투쟁은 다음 다섯 가지 중요한 목적을 갖는다. 1) 동성애 제도화 방지 첫째, 동성애 퀴어 축제나 풍조가 한국사회에 제도적으로 발붙이지 못하도록 한다.오늘날 영국이나 미국사회에서 동성애 비판적 설교를 하거나, 동성애자들의 요구에 거절하게 되면 법적으로 혐오 내지 차별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실증법 위반일 경우 벌금이 부과되거나 감옥에 가게된다. 그리고 많은 복음주의 목회자들과 성도들도 이러한 동성애 제도화에 의한 영적 황폐함에 영향을 받는다. 이들은 동성애를 비판하면 경찰서에 불러가서 조사를 받고 조사관이 조서(調書)를 쓰게 되고, 다시 법원에 불러가서 재판을 받이야 하는 등 당사자들은 많은 신경이 쓰이고 다른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들을 구상할 시간과 에너지를 뻬앗기게 된다. 동성애 허용 그리고 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영국이나 미국, 캐나다 등 유럽과 북미 사회에서 교회는 영적의 피폐함으로 교인수가 격감하고 영적인 황폐함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2010년대 들어와 동성애 퀴어축제가 서울광장에서 대규모적으로 개최되었는데 만일 한국교회가 영국이나 미국교회처럼 이를 조용히 보기만하고 침묵했더라면 이들 동성애 퀴어축제 세력은 벌써 한국사회를 점령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동성애대책협의회를 구성하여 이에 대응하여 맞불 축제를 평화로운 문화마당으로 개최하여, 동성애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성윤리를 해방하고, 보건학적으로는 에이즈 유발의 중요요인이 되며 각종 질병을 야기시키는 부작용을 폭로함으로써 교회와 사회의 각성을 일으켜서 이만큼 그 창궐을 막아 온 것이다. 2) 정부의 성평등 정책 반대 둘째, 동성애 허용하는 정부의 성평등 정책을 반대하는 것이다.정부가 2018년 8월 대통령령으로 행하고 있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으로 실시하는 성평등정책을 집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대통령령으로 하고 있는 NAP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양성평등정책에 위배되고 있다. 국가의 NAP성평등정책은 각 공공기관 뿐 아니라 심지어는 교회에까지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심각한 정교분리 원칙의 위반이다. 경기도 의회의 개정된 조례에 따르면 ‘사용자’에 해당하는 기업과 종교단체에도 성평등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데, 이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채용하라고 강요하는 차별금지법과 같은 효과를 내는 조례의 형태로, 그것도 위법적인 독소조항까지 마음대로 포함시키고 있다. 영국도 2006년부터 평등법을 통해, 성적 지향·젠더를 넣었다. 이처럼 서구교회는 정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것을 방관하였고 오늘날 교회와 선량한 시민들이 폐해를 입고 있다. 2019년 7월 29일 경기도 성평등 개정 조례안 제정 반대대회에서 전윤성 변호사는 최근 폭발적으로 성 평등 조례 발의가 생긴 이유를 전했다. 그는 “정부는 성 평등 지수에 따라 지자체에 예산 분담을 달리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라며 “지자체들이 예산을 더 얻기 위해, 성 평등 조례를 서둘러 발의·통과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2016년 경기 성 평등 백서에는 ‘양성평등 기본법에서 동성애 차별을 다룰 수 없기에, 동성애를 포함한 성 평등 조례를 추진하라’고 나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는 “경기도는 성급히 성 평등 조례 개정안을 추진하려 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NAP 성평등정책은 우리 사회는 초기 단계니까 그 피해의 시례를 감지하기가 쉽지 않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성평등정책의 구체적인 실례는 남성이 여성의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으며 심지어는 남성이 여성 샤위실이나 목욕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황당한 일이다. 유치원에는 엄마 아빠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양친1 양친2 등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스코틀랜드 국가 보건소는 엄마 아빠 용어는 유치원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용어가 동성 부모를 차별하기 때문으로 본다. 스위스 연방총리원은 엄마, 아빠 용어를 “부모”(Parent) 같은 젠더 중립적 용어(gender-neutral language)로 대치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엄마 아빠라고 불러질 때 젠더주의자 부모들은 강한 차별을 느끼기 때문에 행정 관리들이 언어를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에서는 엄마, 아빠 대신에 “부모1,” “부모2”로 부르고 있다. 3) 차별금지법 제정 사전 봉쇄 셋째, 동성애 반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사전에 봉쇄하는 것이다.동성애 반대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동성애 성행위를 죄라고 지적하고, 당사자가 이런 성중독에서 벗어나도록 사랑과 인내로 권면하고 기도하며 상담하며 도와주며, 사회적 차원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우리 사회와 교회에 제도적 역차별로 주어지는 정상적인 성다수자의 비판을 자갈 물리는 인권 침해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 비판 등 양심, 표현, 출판, 비판이라는 민주시민의 기본권이 제약 당하게 된다. 성소수자의 편의를 위하여 성다수자의 비판, 심리치료사들의 전환치료 자유, 목회자들의 회심 전도 자유가 침해당하며, 각종 사회시설이 성소수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고쳐짐으로써 사회적 제도와 시설이 바뀐다. 제3의 성, 중성 화장실 등이 그 예다. 따라서 동성애 투쟁의 문제는 단지 교회 내의 부정부패와 탐욕의 제거에 그치지 않고 성다수자와 불의를 고발하는 복음 전파자에게 족쇄를 채우는 민주시민의 양심, 표현, 비판, 출판의 기본 자유권을 제도적으로 지키는 것이다. 시민들이 동성애가 죄라고 비판할 수 있는 시민적 양심, 표현과 출판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동성애자들 가운데 전환치료를 원하는 자들에게 상담치료 상담심리학자들의 접근을 자유스럽게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법적으로 동성혼을 인정함으로써 친족상속법을 포함한 민사법 전반을 개정해야 하는 혁명이 일어난다. 성전환 수술 받은 남자가 여성의 전용공간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가능한가? 서구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젠더는 자기마음으로 생각하는 성”이며, 수십 가지의 성을 인정하는데, 여기에는 뉴트로이드(Neutrois),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 바이 젠더(Bigender) 등이 있다고 한다. 젠더 플루이드는 성이 유동적이어서, 아침에는 남자였다가 밤에는 여자가 되는 것이다. 또 바이 젠더는 남자인 동시에 여자이다. 이러한 성평등이 제도화되는 것을 막는 것을 하루살이 제거라고 말할 수 없다. 영국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교회가 동성애 허용 결과에 대한 정보 부족과 소극 대응으로 국가가 동성애 소수자들을 인권차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동성애 차별 금지법 제정을 막지 못했다. 캐나다는 2005년 “인권법”, 프랑스는 2008년 “차별 금지법”, 영국은 2010년 “평등법”, 미국은 2016년 9월 현재 32개주에서 “증오 법죄법”의 이름으로 법제화되어 있다. 이러한 차별금지법의 법제화는 실제적으로 미국에서는 성다수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며 평범한 일상적인 생업에 다음같이 거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역차별의 구체적인 예로 2017년 미네소타주 웨딩포토 사진사 앤젤과 칼 라슨(Angel &Carl Larsen)부부의 경우다. 결혼 15년 차인 이들 부부는 Telescope Media Group이란 회사를 미네소타주 세인트 클라우드시에 설립하여 웨딩 사진영역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면서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옹호 조장하는 웨딩사진은 찍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차별금지법 위반이 되었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원치 않는 동성결혼 사진을 억지로 찍어야 하고 이를 거부하는 경우, 매 번 상당한 금액의 벌금을 내거나 90일씩 감옥에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다른 역차별 경우는 스코틀랜드 학교에서 양성만 있다고 주장한 학생의 퇴학 처분이다.한 스코틀랜드 학교의 경우 ‘남자·여자 외에 다른 성은 없다’고 말한 학생을 퇴학시켰다고 한다. 그 학생은 ‘표현의 자유로서 말했다’고 항변했지만, 교사는 ‘학교 규칙에 어긋 난다’고 입 막았다”고 했다.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이렇게 동성애·젠더를 반대하는 표현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다. 이것들은 이미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외국의 경우인데 한국사회에서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실시될 경우 여러 가지 역차별이 일어나게 되는데 한국교회가 이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며, 이는 지혜로운 일이다 4) 교회는 동성애 도피처, 안식처, 치료처 상(像) 정립 넷째, 한국교회 동성애 반대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긍휼과 사랑과 관용 처방과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지나치게 반대 투쟁에 애쓰다가 보면 동성애 성중독에 빠져 고통하며 신음하는 자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과 긍휼을 놓칠 수 있다. 이는 혹시 한국교회 동성애 투쟁이 놓칠 수 있는 다른 측면일 수 있다. 한국교회 동성애 반대가 ‘정직하고 공정한 정의 실천, 하나님과 믿음을 돈, 명예, 권력 같은 하급가치를 얻는 수단으로 착각하는 우상숭배 배척, 복음을 약한 자에 대한 긍휼로 사용함’을 놓칠 수 있다. 손 교수는 원로로서 젊은 세대들이 놓치기 쉬운 이 면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중요한 측면이며 지혜로운 권면이다. 동성애 반대와 투쟁에만 열정을 다한 나머지 기독교인의 진리에 대한 헌신이 사회적으로는 “율법주의자”의 행동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 투쟁에 임하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저들과 다른 나는 의인이 아니라 나도 저들의 처지에 빠질 수 있는 죄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겸허하고 겸손하게 “성령이시여, 저들의 눈을 여셔서 진리를 알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이 운동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외면적으로 동성애가 죄(성중독)이라고 말하나, 내면적으로는 동성애자들 인격에 대한 연민과 긍휼과 사랑의 처방을 가지고 이 사역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야말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박해자가 아니라 도피처와 안식처와 치료처라는 상(像)을 우리 사회 가운데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사회의 동성애 허용 역사를 보면 1969년 스톤웰 항쟁(Stonewall riots)에서 보듯이 당시 동성애자들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고 사회적으로 심한 소외자로 취급받아 경찰들의 습격을 받아 강제로 해산당하는 가운데서 동성애자들의 폭동이 일어났고 이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회적 연민과 동정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 예수께서 세리와 창녀들의 친구와 상담자가 된 것처럼 한국교회는 오늘날 동성애 성중독에 의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저들을 이해해주고 상담해주며 성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해주고 도와주고 인도해주는 상담소, 도피처, 안식처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종로3가에서 동성애자 카페를 운영하면서 탈동성애 운동을 이끌고 있는 이요나 목사, 박진권 선교사가 이 일을 선도해주고 있다. 모든 각 지역교회 목회자들, 의사들, 상담가들, 심리치료가들이 이 일에 함께 협력해야 할 것이다. 5) 교회의 영적 정체성 보존을 위하여 동성애 반대는 필요하다.다섯째, 동성애 반대는 교회의 영적 정체성 보존을 위하여 필요하다.동성애를 허용하는 교회나 목회자나 신자들의 경우 영적 공허감이나 허탈감에 지배되게 된다, 이런 상황에 대하여 아모스는 말세에 온 지구촌에 미칠 영적 기근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11절)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12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암 8:11-13). 아모스는 이 구절에서 이스라엘의 배교적 신앙 시대를 향한 영적 상황을 예언하고 있다.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영적 갈함으로 쓰러지는 이유에 관하여 14절(“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들은 사마리아(Samaria)의 죄된 우상인 단(Dan)의 신들이나 브엘세바(Beersheba)의 신들을 섬기는 자들이다. 단(Dan)에는 예루살렘에 이어 둘째 왕립 성소가 있었는데 여기에 금송아지 우상이 있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이러한 우상들을 섬겼다. 그래서 이들은 영적 공허나 굶주림에 빠진 것이다. 신약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야곱의 우물 마주보고 있는 그리심 산(Mt. Gerizim)에서 우상을 섬겼다. 역사적 예수는 삶에 지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예배, 성령과 진정의 예배 드릴 것을 말씀하셨다(요 4: 21-24). 오늘날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교회들은 종교다원주의에 노출되어 참된 성경적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벗어난 혼합 종교의 예배를 드린 데서 영적 황폐함과 진정한 내면의 위로와 평안이 없는 영적 공허함에 빠져 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17
  • "중국은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기치권 보장하라"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민주화를 외치고 있는 홍콩 시위대의 모습     강경진압으로 말미암아 홍콩 민주화 시위가 점점 격화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회 행동하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모임인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이하 샬롬나비)이 논평을 통해 "중국은 홍콩에 대한 ‘1국가 2체제’ 약속 준수와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기치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더불어 "한국교회는 홍콩의 자유를 수호하고자 나선 홍콩 기독교인들을 지지하고 기도하자"고 했다. 구체적으로 샬롬나비는 "홍콩 행정당국이 긴급법 발동 검토 아닌 송환법 폐기에 대한 실체적인 조처를 취하라"고 촉구하고, "중국은 자치령인 홍콩 시민의 기본권과 자치권을 보장하라"며 "우리는 홍콩 시민의 인권과 자치권 보장을 위한 기독교인들의 정치적 참여를 지지한다"고 했다. 이어 "중국 정부의 인터넷 통제는 국제사회 비난을 비겨날 수 없다. 홍콩 시민의 인권과 자치권 보존 요구를 군대로 무력진압 하지 말라"면서 "홍콩시위대에 대한 백석테러는 인류의 양심으로 규탄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샬롬나비는 "중국이 홍콩 반환 시에 영국과 맺은 일국양제 협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홍콩 행정수반 선출은 민주적 절차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홍콩은 '자치시'로 자유세계에 대한 문으로서 남는 것이 중국에 이득이 된다"고 밝히고, "한국 정부는 홍콩의 촛불 시위에 중립적인 태도 아닌 지지를 보내어야 한다"면서 "한국교회는 홍콩시민들이 자유와 자치권의 보호 속에서 살기를 지지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홍콩 시민의 송환법 반대 시위에 대한 논평서] "중국은 홍콩에 대한 ‘1국가 2체제’ 약속 준수와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기치권을 보장하라." "한국교회는 홍콩의 자유를 수호하고자 나선 홍콩 기독교인들을 지지하고 기도하자." 2019년 6월 9일 홍콩에서 행정당국이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여 벌인 대규모 시위가 지금까지 3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주최측 추산에 따르면 지난 6월에는 103만명의 홍콩시민이 참가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2017년 기준 홍콩의 인구는 739만명으로 홍콩 인구 7분의 1이 참가한 셈이다. 또한 시드니, 타이페이, 런던, 뉴욕, 시카고, 도쿄 등 세계 20여개 도시에서도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이러한 규모는 홍콩이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역대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수천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며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심상치 않은 시위 확산에 홍콩 국제공항은 폐쇄되고 항공편이 무더기로 취소되면서 전 세계인들의 발목을 잡았다. 2019년 8월 18일 빅토리아공원 일대서 송환법 반대 ‘비폭력 평화시위’ 시위가 또다시 있었다. 최대 170만 명(주최 측 추산)의 홍콩 시민들이 폭우를 뚫고 다시 "자유"를 외치며 비폭력 평화시위에 나섰다. 지난 6월 4일(100만 명)과 15일(200만 명)에 이어 2달여 만에 다시 대규모 집회에 나선 것이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8월 25일 시위에는 총 발사와 물대표가 등장했다고 한다. 홍콩 야권 단체 연합 민간인권전선이 8월 31일로 예정됐던 집회를 취소했다. 홍콩 정부가 시위를 불허했고 시위핵심 조슈아 웡(黃之鋒·22세)을 체포했다가 풀어주었다. 하지만, 8월 31일과 9월 1일 거리로 나와 자발적으로 거리를 메운 시위대는 '자유를 위해 싸우자', '홍콩 힘내라'의 구호를 외치며 송환법 완전 철폐와 행정장관 퇴진 등을 요구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의 기폭제가 된 송환법('범죄인 인도 법안')이란 홍콩 정부가 중국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홍콩은 1997년 일국양제의 기치 아래 자치권을 획득한 이래 중국 정부가 부당한 정치적 탄압 목적으로 홍콩의 반중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다는 걸 계산하고 범죄인 송환 국가를 철저하게 제한해 왔다. 시민들은 이 법안이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보내는 데 악용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즉 홍콩 내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하거나 중국 공산당의 정치인이나 시진핑을 비판하면 범죄인이 되어 중국으로 송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8월 18일 오후(현지시간) 홍콩 빅토리아공원 일대에서 "송환법 철회"(Withdraw the bill), "홍콩의 자유"(Free Hong Kong)라는 구호를 부르짖었고, 일부 시민들은 홍콩 경찰의 과잉진압을 규탄하는 그림의 피켓을 들기도 했다. 홍콩 시민들은 크게 다섯 가지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송환법 철폐 △시위대 '폭도' 명령 철회 △시위 체포자 석방 △독립 조사기구 설립 △보통선거 실시다. 이러한 홍콩 시위를 보면서 샬롬나비는 홍콩 시위대의 자유와 자치권 보장 주장을 지지하면서 다음같이 우리의 견해를 천명한다. 1. 홍콩 행정당국은 긴급법 발동 검토 아닌 송환법 폐기에 대한 실체적인 조처를 취하라. 홍콩행정 당국은 인권 침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을 철회하는 실제적인 조처를 취하기 바란다. 홍콩 당국의 송환법('범죄인 인도 법안')제정이 시위를 초래한 것이다.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시민들은 이 법안이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보내는 데 악용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결국 시민들은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치로 6월 이래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홍콩 당국은 시위가 그치도록 송환법 폐기에 실제적인 조처를 취하기 바란다. 홍콩 행정장관은 중국 건국 70 주년인 10월 1일 이전에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긴급법이라는 초강수를 검토한다는 현지 언론의 소식이 들린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홍콩대 사이먼 영 교수의 지적처럼 "긴급법은 사실상 계엄령 상태였던 1922년 제정된 법"이며 "(시행된다면) 법치의 근간을 흔들 것"이다. 강제진압은 홍콩의 자유경제와 번영을 후퇴시키는 재앙이 될 것이다. 홍콩 당국은 홍콩의 미래를 생각하기 바란다. 2. 중국은 자치령인 홍콩 시민의 기본권과 자치권을 보장하라. 2019년 6월 첫 시위에 참여한 인원은 주최측 추산으로 103만 명에 달했으며, 이는 홍콩이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후 발생한 최대 규모였다. 2003년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던 ‘우산혁명’ 당시는 각각 최대 50만 명 정도였다. 홍콩 시민들은 이 송환법안이 홍콩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제한시킬 수 있다고 반발하며 거리로 나선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홍콩은 권리와 자유의 도시인데 (중국으로부터) 이같은 정체성이 끊임없이 위협을 받게 되자 시위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정부가 시위대의 저항에 6월 12일 예정됐던 법안 심사를 연기하고, 캐리 람 행정장관이 7월 9일 마침내 범죄인 인도법를 폐기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시위대는 이제 캐리 람 행정장관의 퇴진까지 요구하고 있다. AP통신은 “홍콩의 청년들은 시진핑 주석이 홍콩을 베이징 같은 도시처럼 만들려는 시도를 포기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자유도시인 홍콩을 더 이상 억압하지 말고 본래의 자유로운 도시로 그대로 두기 바란다. 3. 우리는 홍콩 시민의 인권과 자치권 보장을 위한 기독교인들의 정치적 참여를 지지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주도하는 등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6월 미국 뉴욕타임즈(NYT)는 "홍콩 시위대들이 복음성가인 '싱 할렐루야 투 더 로드'(Sing Hallelujah to the Lord)를 합창할 정도로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홍콩 기독교인들은 시위대에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고,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는 경찰을 비난하고 있다. 시위에 참석한 홍콩인들이 종교의 유무를 떠나 송환법을 비판하는 교회와 신자들의 메시지와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NYT는 “이들은 모일 때마다 복음성가 ‘싱 할렐루야 투 더 로드’를 불렀고, 이 노래가 시위대에 영향을 주면서 공식 ‘합창곡’이 되었다. 이번 시위에 청년들의 참가도 두드려졌는데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정치의 회복과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기독교협의회 회장 등 21개 종단 지도자들은 시위 현장 인근에서 미사와 밤샘기도 등으로 지난달 송환법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NYT는 “750만 홍콩 인구 중 개신교인과 가톨릭 신자는 전체 9분의 1에 해당되지만, 비폭력 시위를 주도하며 시위대에 위로와 격려, 영감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는 이들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4. 중국 정부의 인터넷 통제는 국제사회 비난을 비겨날 수 없다. 홍콩 시민의 인권과 자치권 보존 요구를 군대로 무력진압 하지 말라. 중국 정부는 중국 국민이 해외 미디어에 직접 접속하지 못하게 방화벽을 세웠다. 중국 국민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접할 때도 중국에서 접속할 수 있게 허용한 '중국 버전'만 접하게 된다. 이 점을 이용해 중국 공산당은 인터넷에 뜨는 정보와 여론의 흐름을 통제하고, 중국 국민의 반응을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정부의 폐쇄성이 국제사회에 드러내고 있다. 홍콩과 인접하여 10분 거리인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서는 지난 8월 10일 물대포 등을 장착한 중국 무장경찰의 장갑차량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모습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됐다. 중국군 개입이 우려되던 상황에서 "홍콩 시민들이 평화시위를 통해 자유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중국에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들은 시위의 정당성을 알리는 홍보 활동을 하며 평화적으로 시위를 마쳤으나 11일 밤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한 여성이 경찰이 쏜 주머니탄에 오른쪽 눈이 맞아 실명 위기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흥분한 시위대가 정오부터 공항으로 몰려들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중국 지도부가 홍콩 사태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우리는 중국이 무력진압으로 나서 중국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제2의 천안문 사태를 유발하게 될가 우려한다. 중국 군대가 진압봉과 총으로 홍콩 시위대를 무너뜨리면 중국 정부는 이중의 타격을 입게 된다. 우선 중국 정부는 '인권 탄압'의 오명을 뒤집어쓸 거예요. 또 중국이 홍콩 시위를 무력 진압하고 홍콩을 직접 통치하겠다고 나서면, 홍콩 시장경제는 재앙에 가까운 타격을 입게 되고 자본이 외부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는 중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5. 홍콩시위대에 대한 백석테러는 인류의 양심으로 규탄되어야 한다. 지난 7월 21일 밤 위엔룽 전철역에서 흰옷 상의를 맞춰입은 100여 명이 몽둥이를 들고 역사(驛舍) 안으로 난입했다. 이들은 전철에서 내리는 시위대와 시민들에게 쇠막대기와 각목을 휘둘렀으며, 정차한 전철의 객차로 피신한 시민들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했다. 이로 인해 임산부, 취재 기자 등 45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현지 언론들은 이 사건을 송환법 반대 시위에 불만을 품은 친중파의 소행으로 보았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들이 폭력조직 삼합회 조직원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의 ‘반중국’분위기가 더욱 격해지면서 침묵하던 친중국 진영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7월 20일에는 송환법 반대 시위에 맞서 공권력을 지지하고 질서의 회복을 촉구하는 대규모 친중파 집회가 홍콩 도시에서 열리기도 했다. SCMP는 “송환법 반대 시위의 정국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이 같은 대립과 갈등이 홍콩의 새로운 일상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홍콩 시위대는 지난 주(7월 29일 기준) 위엔룽 전철역에서 발생했던 백색 테러에 항의하기 위해 위엔룽 전철역 주변에서 홍콩 시민 11만 여명이 29일 새벽까지 시위를 벌였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이날 보도했다. 우리는 백석테러를 규탄하며 이는 문명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천명한다. 6. 중국은 홍콩 반환 시에 영국과 맺은 일국양제 협정을 지키라. 한때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지난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독립적인 통화, 법, 경찰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중국은 50년간 본토의 체제와 분리해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보장하는 ‘1국가 2체제’를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1백만여 명의 시민들이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에 반대해 시위에 나서면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영국의 제레미 헌트 외무장관은 1일 “여전히 1국가 2체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콩의 교인들은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중국이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인정해야 한다. 협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중국인들에게 지워진 의무”라고 말했다. 홍콩의 교인들은 시위 현장 인근에서 미사와 밤샘기도로 송환법안의 조속한 철회와 정부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국은 홍콩반환 시 영국과 맺은 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기 바란다. 7. 홍콩 행정수반 선출은 민주적 절차로 이루어져야 한다. 홍콩 행정수반 선출과 의회구성을 위해 보통선거를 도입하는 등 진정한 민주주의 정착만이 최근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중국은 홍콩의 자치령에 간섭하지 말고 일국 양제의 협정에 따라 홍콩의 자치령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5년 전 우산운동 때 시진핑은 주석이었지만 지금은 황제가 된 후 많은 활동가가 투옥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입법회 의원들이 자격을 박탈당했다. 홍콩은 '양제(two-system)'가 아니라, '1과 2분의 1'제도가 되었다. 이는 약속 위반이다. 홍콩 행정수반은 홍콩주민들의 자유로운 민주적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어야 한다. 중국도 경제에 걸맞게 정치를 민주화해야 하고 특히 중국내의 종교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시진핑 집권 후기에 들어와 중국 안의 가정교회가 공안당국에 의하여 해체되는 것은 종교 자유에 대한 박해로서 이를 세계인들이 우려한다는 사실을 시진핑은 알아야 한다. 8. 홍콩은 “자치시”로 자유세계에 대한 문으로서 남는 것이 중국에 이득이 된다. 2014년 홍콩 행정수반의 자유 입후보와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운동(Umbrel la Movement)에서 학생 시위를 79일간 이끌어 당시 국제사회의 아이콘이 되었고, 이번 13주간의 데모시스토(Demosistō)를 이끄는 사무총장 조슈아 웡은 8월 27일 "홍콩인들도 스스로의 주인이 되고 싶다"며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의 공개 지지를 호소했다: "우리는 독립이 아니라, 진정한 자치(自治)를 원한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 꿈을 이루려고 싸운다." 홍콩은 여태까지 중국 안의 시장 경제가 고도로 발달한 도시국가로서 중국의 경제 발전에도 역동성을 부여하였다. 홍콩은 오랫동안 아시아의 국제도시로 번영해왔다. 홍콩은 국제적인 금융 허브이자 기업의 중심지, 관광지로 통하고 있다. 홍콩은 한국인들에게도 중국에 진출하는 자유세계의 교두보로서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홍콩이 중국 공산당의 폐쇄적 권위 안에 들어가게 될 때 중국의 민주화와 세계 개방성은 더 늦추어지게 되고 중국은 많은 부정적인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홍콩을 여태까지 그대로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남도록 하는 것이 중국의 민주화와 세계 개방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9. 한국 정부는 홍콩의 촛불 시위에 중립적인 태도 아닌 지지를 보내어야 한다. 홍콩시위 지도자 윙은 "타이완은 물론 일본의 아베 총리까지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데 한국은 수동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수십 년 전 민주화를 위해 일하지 않았느냐"며 "중국과의 어떠한 상업적 이익도 기본적 인권을 앞설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 대통령은 선군정치에 매몰되어 핵과 대량살상무기(미사일) 개발에 븍한 군사독재 김정은의 선심을 사려고 하기보다는 우리 이웃인 홍콩의 민주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외교적 지원을 보내어야 한다. 그리고 홍콩 주민을 억압하고 개인숭배로 나아가면서 중국내 기독교를 박해하는 시진핑과는 멀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사대주의로 나아가 대중 미사일 방어장치인 사드 반입의 대가로 시진핑에게 3불 약속을 했고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홍콩 시위대를 방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홍콩 민주화에 지지 보낼 때 대한민국은 동북아 평화나라 위상을 갖을 수 있다. 10. 한국교회는 홍콩시민들이 자유와 자치권의 보호 속에서 살기를 지지하고 기도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번 시위에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하여 봉사로 나선 홍콩 기독교인들을 지지하며 저들이 홍콩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으며, 평화롭게 마무리되고 홍콩 안에 자유와 자치권이 보호받는 민주적 질서와 법질서가 집행되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2019년 9월 2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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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연재
    2019-09-03
  • "교회는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고, 한국인의 반일감정에서 미래적 화해를 독려해야 한다"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창립원장)   샬롬 나비는 광복 74주년 논평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아베 정권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백히 인정하라”며 “독일 메르켈 정부의 태도를 배워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리고 이들은 “메르켈 정부는 과거 나치 행태로 주변 피해 국가에 대해 무한 사과의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은 “아베의 태도는 과거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이 없는, 도리어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면서 “동북아 리더 국가로서, 주변 국가에 대한 반성의 태도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는 한·중·일이 협력해야한다”면서 “편협한 국가주의 헤게모니를 버려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문재인 정부는 민생과 경제 파탄이 예상되는 한일 갈등을 자초하는 일을 버려야한다”면서 “이전 정권들의 패착을 돌아보고, 즉각 대화와 외교로서 풀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들은 “한일 갈등을 이용해서 장기정권을 획책하는 방편으로 삼는다면, 이 또한 국민과 역사의 엄중한 심판은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 경계했다. 끝으로 이들은 “한국교회는 일본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사과를 독려하는 것”과 더불어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차분하게 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 따라 미래 지향적 화해의 태도를 지향하도록 유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샬롬나비, 2019년 광복 74주년 논평서> 일본 포용 정책으로 일본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위에 선진화된 대한민국 건설하자.일본은 경제력에 걸맞게 과거사에 참회하는 정신 가져야 동북아의 지도국 위상 가질 수 있다.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하는 즈음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한 국내 정치의 파국은 이제는 남북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를 둘러싼 당사국 간의 국제적 갈등과 대립의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무도하게 이 땅을 유린한 일제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자유와 해방의 빛을 되찾은 광복절을 기뻐하며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온 마음으로 되새기는 동시에 다시는 종의 굴레에 매이지 않도록 독립과 건국의 정신으로 재무장하고 민족적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가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일본 아베 정권의 식민지 통치의 불법성을 부인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비판해야 하겠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과거에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과 사죄한 고노담화와 1995년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과 사죄와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자신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불법지배를 사죄하였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2013년 4월 23일에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하면서도 그 담화에 들어있는 반성의 내용들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결과적으로 일본은 아베 정부가 들어선 후 자신들의 과거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과거의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그러한 과거 청산 위에 발전적인 미래 관계 구축을 하도록 나가야 하겠다.이러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가 요청되는 시기에 특히 백 년 전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서 자유대한의 터전을 구축한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 내부의 개혁과 남북과 열강들의 대립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십자가의 사명과 시대적 책임을 끝까지 완수하여 선열들과 순교자의 피와 땀이 서린 광복의 기쁨을 삼천리 방방곡곡 자손만대에 전하여야 한다. 우리는 광복 74주년을 맞이하여 광복의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여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하겠다. 뜻깊은 광복절을 맞이하여 샬롬나비는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다음과 같은 논평문을 발표한다. 1. 일본은 한일합병과 침략전쟁의 불법성과 참혹한 결과를 진실되게 반성하라.일본은 일제강점기 군국주의를 앞세워 대동아공영이라는 거짓말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파괴하고 자행한 한일합병과 중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미국에 대한 침략전쟁의 불법성과 참혹한 결과를 통절히 반성하고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강점과 무단통치에 의해 희생된 꽃다운 청춘들의 희생과 죽음을 상기하지 못하고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망각하여 또다시 이전 역사의 전철을 되풀이 한다면 지구상에서 따돌림과 심판을 자초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책임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 특히 무엇보다 아베 내각이 한일합병과 침략전쟁으로 희생되고 유린된 인권은 결코 물질만으로 보상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2. 일본은 독일을 유럽의 지도국가로 서게한 독일 지도자의 무한한 사죄 태도를 배워야 한다.분단 독일이 통일 되도록 한 것은 브란트 독일 수상이 1970년 폴란트 방문시 1943년 1944년 두 차례 나치에 저항한 게토 지역 유대인들 봉기에서 학살당한 희생자 묘역에서 무릎을 끓고 사죄를 구한 태도에서 비롯되었고, 통일 독일이 유럽연합의 지도국 위상에 선 것은 마르켈 총리가 말하는 무한한 사죄의 태도이다. 이에 반해 오늘날 아베의 오만한 태도는 과거의 군국주의 태도에서 반성이 없고 오히려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 일본이 동북아 국가 사이에서 경제동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8월 6일 매슈 굿맨 선임 부회장이 펴낸 한·일 갈등 관련 보고서에서 "일본은 이웃 나라에 대한 공격으로 '경제적 리더' 이미지를 더럽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일은 중국의 역내 강압 및 국제적 규범 침해 행위에 맞서 협력하는 데 있어 공동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며 한·일 갈등이 안보 협력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일본 정부 지도자들은 이러한 지적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3. 정부는 일본을 자극하는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기업이 대응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과거사 문제로 일본의 경제 보복이 오는 것에 대하여 한국 기업은 경제의 실력으로 대응하고 정치인들은 외교력으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기업인들을 불러내어 “임진왜란 때 일본이 탐낸 것도 우리 陶工의 기술력”이라고 정부와 기업이 공동대응을 모색하는 것은 자료를 구입, 생산하고 상품을 파는 기업에 실제로 이로운 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일본은 어디까지나 자유우방으로 그동안 70여 년 간 한국경제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이웃나라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일본의 수출 금지 제품을 국산화할 수 있도록 기업 52시간 근로 시간 규제 등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부품을 일본에 의존했던 산업생태계를 바꿀 기회라고 하지만 말고 우리 중소기업이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글로벌 분업구조에서 비교우위의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2020 도쿄 올림픽 보이콧, 일본 여행 금지 등 민간 교류를 정치외교문제로 금지해선 안 된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 제품불매운동이나 일본 여행 보이콧은 마이너스 될지언정 플러스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미국 싱크 탱크는 8월 6일 보고서는 한국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돈키호테식(quixotic)으로 일본과 경쟁하기 위해 남북 간 평화경제를 주장한 것은 일본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4. 오늘날 편협한 국가주의가 팽배되는 때 동북아 국가들은 헤게모니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오늘날 세계 지도자들은 독일 총리 메르켈이 지난해 11월 11일 파리에서 열린 1차세계대전 종전 1백주년 기념식에서 독일의 과거사를 반성하면서 언급한 인류의 평화와 화합 의미를 새겨야한다. 메르켈은 파리 평화포럼에서 “편협한 국가주의자들의 관점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우려가 있다”면서 “1차세계대전은 고립주의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면서 사죄의 마음을 표현했다. 오늘날 이러한 편협한 국가주의는 일본의 우경화와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력으로 과거사 회피, 중국의 일대일로의 중화 제국주의적 팽창,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러시아의 군사우월주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 한반도는 북한의 핵개발과 선군주의, 한국의 북한 달래기 좌파 포퓰리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일본에 대한 반일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시대에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와 더불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소통과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5. 우리는 대한독립의 정신을 고취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시대적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우리는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 급급하여 사분오열되고 급기야 망국의 길로 내달았던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고 대한독립의 정신으로 단합하여 자유통일의 시대적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 자립자강(自立自彊)이 없이는 가정도 기업도 사회도 바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회 각계각층 모두가 마땅히 안보와 경제와 민생의 거국적 대의를 위해 신명을 다하여 본분과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간도와 하와이와 각지에서 기꺼이 생명과 청춘과 재산을 오로지 독립을 위해 던졌던 우국지사들의 독립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국난극복의 관건일 것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북간도에서 밝은 세상을 꿈꾸며 항산항심(恒産恒心)을 소리 높여 외쳤던 선열들의 기개를 일으켜야 한다. 외국에서의 무장독립투쟁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과 동시에 국내에서 일제의 핍박을 견뎌내며 학교를 세워서 인재를 양성하고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문화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의 소중함도 기억해야 하겠다. 국내에서의 이러한 실력양성운동이 있었기에 해방 후의 국가건설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해외의 무장독립정신과 함께 국내의 실력양성의 애국운동을 함께 기억하고 계승해야 하겠다. 6. 우리는 자유와 민주의 기치를 들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새로운 자유대한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우리는 역사의 소용돌이와 도전 앞에서 응전하면서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 왔다. 이제는 부정과 부패, 음란과 우상을 단절하고 분열과 분단을 종식하여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입증하는 “새 대한민국”(New Korea)의 비전을 실현해야 한다.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파괴하고 정의의 이름으로 정의를 파괴하는 동성애 퀴어 운동의 무책임한 거짓 인권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윤리적이고 무법한 헌정 유린을 척결하고, 독립열사들이 마지막까지 생명을 던져서 일깨운 것처럼 무법한 침탈로부터 자력자강(自力自强)을 실현하는 자유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자유를 위한 책임과 역량, 민주를 위한 정직과 윤리를 전수하여 자유대한을 계승할 믿음과 의의 세대를 세워야 한다.우리는 이제 해방 이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대한민국의 저력을 바탕으로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이룩하고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달성에 기여하는 선진국의 대열로 도약해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 체계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면서 "케이 팝"(K-Pop)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문화적인 창조능력을 신장시켜 세계인의 삶을 풍요롭게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다. 7. 우리는 정의와 공법을 세우고 대동단결하여 경제 번영과 문화 융성을 이루어야 한다.우리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서 나라 사랑의 애국 정신으로 대동단결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올바른 윤리도덕을 바탕으로 번영과 융성의 전기로 삼았다. 그러나 최근 반신적이고 비윤리적 동성애 인권화가 혐오와 차별이라는 거짓 인권논리로 둔갑하여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성윤리도덕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문재인 행정부는 시민들과 한국교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여가부, 법무부 국가인권기본계획(NAP) 등으로 동성애 젠더정책에 국민의 혈세를 퍼붓고 있다. 천부적 인권을 천명한 독립정신(獨立精神)을 다시 일으켜서 극단적 이기주의에 편승하는 무법하고 무책임한 동성애 거짓인권의 법과 조례를 개폐하고 윤리입법을 구축하여 사회를 통합하고 국력을 결집하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우리는 광복절을 맞이하여 국가를 올바르게 발전시킬 수 있는 국민의 건전한 윤리덕목을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사회의 지나친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하여 서로를 배려하고 상생하는 정치 문화를 형성해야 하겠다. 한국사회의 불신으로 인한 사회적인 폐단을 극복하기 위하여 신뢰사회를 구현해 나가야 하겠다. 이를 위해 부정부패를 극복하고 정의와 공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고 상호협력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 더 나아가 문재인 행정부는 민생과 경제 파탄이 예상되는 한일갈등을 자초하지 말고 이전 정권들의 패착을 겸허하게 돌아보고 즉각 대화와 외교로서 풀어야 한다. 한일갈등을 이용해서 이를 장기정권을 획책하는 방편으로 삼는다면 국민과 역사의 엄중한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8. 한국교회는 광복절을 맞이하여 한일 간의 진정한 화해를 바탕으로 평화적인 미래관계 형성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식민지배의 압제자였던 일본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이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들은 일본과의 발전적인 국제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세 가지 소재의 수출금지 조치 및 수출우대국 지위 폐기 조치가 내려지면서 온 국민들의 반일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위중한 시기를 맞이하여 일본이 진정한 반성을 하고, 한국 국민들도 일본과의 진정한 화해를 추구하면서 양국이 불행한 과거를 올바르게 청산하고 발전적인 미래관계 수립을 위해 기도하고 실천적으로 노력해야 하겠다. 한국사회에서 지금 민족주의는 자칫하면 감정적 배타주의를 흘러갈 위험을 안고 있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일본의 참다운 반성 위에서 양국의 평화적인 국제관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하겠다. 9. 한국교회는 북한인권의 조속한 개선과 자유와 복음의 통일을 위해서 합심해서 기도해야 한다.한국교회는 선진들의 기도와 선열들의 희생을 통해서 쟁취한 자유와 해방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기쁨과 감사를 널리 전파하고 전승해야 한다. 우리는 북핵과 공산주의 독재로 폐쇄된 북한 동포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자유통일의 전기(轉機)를 확보하도록 민족적인 결의를 모아야 한다. 특히 현대판 아우슈비츠인 북한의 대규모 정치범 강제수용소들에 갇혀 신음하고 절규하는 북한 주민과 북한교회 성도들의 조속한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합심하여 기도하고 이를 위해 거국적으로 국제적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매년 유엔은 북한인권의 개선을 위해서 결의하고 있는 마당에 당리당략에 급급하여 침묵하고 있다면 한국정부와 한국교회는 역사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광복절을 맞아 삼천리 방방곡곡에 무궁화가 피어나듯이 자유 평화 통일의 감격이 한반도 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그날을 고대하며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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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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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사렛 예수와 하나님에 대한 ‘압바’ 호칭
      김영한 박사 역사적 예수의 독특성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이 감히 부르지 못했던 하나님을 "압바"(Aββα,  abba, 아버지)라는 가장 친근한 호칭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아버지 호칭은 복음서에서는 150회 이상이나 기록되어 있다. 12세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 축제에 부모와 같이 와서 없어져 버렸는데 부모가 근심하여 찾다가 성전에 있는 그를 발견하였다. 어머니 마리아가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라고 질책한다. 이에 대하여 소년 예수는 독특한 문장으로 대답한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소년 예수의 하나님에 대한 "압바"(abba)라는 호칭은 독특하다. "내 아버지 집"이란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의 집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인 하나님의 전을 말한다.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른 것이다. 예수는 그의 복음 전파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하여 지칭할 때 어느 누구도 부를 수 없는 친근한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십자가 상에서 숨을 거두시면서 하신 예수의 마지막 말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이었다. 유대교 문헌에 정통한 독일의 신약학자 여호야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압바"(abba)라는 단어는 역사적 예수가 친히 쓴 아람어라고 밝히고 있다.   I. 구약에서의 하나님 아버지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 토기장이와 진흙, 주관자와 복종자의 관계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도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이 집단적인 내지 비유적인 의미에서 구약성경에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은 민족적인 처지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신명기에는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의 아버지로 묘사된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여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시편 저자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 68:5).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아버지에 비유하였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 103:13).  유대인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하여 호칭으로 부르기를 꺼려하였고, 다른 편으로는 아버지 호칭을 집단적인 의미 내지 비유로 사용해왔다. 이러한 유대교의 하나님 "아버지" 호칭에 대하여 나사렛 예수는 새로운 의미, 즉 신약적인 독특성을 부여하였다. 첫째,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족관계로 표시하였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다. 부자의 관계로서 하나님의 부성을 강조한 것은 바로 유대의 전통적 사상이 의미하는 바를 보다 분명히 설명해 준다. 예수의 아버지 호칭은 유대교가 의미하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부자(父子)관계로 끌어 올리는 혁명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아버지" 호칭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한다. 그것은 아들로서 아버지에 대한 인격적인 관계와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내포하고 있다. 이 호칭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더 이상 주인과 종 사이의 비인격적 관계가 아니라. 자녀에 대해 베푸는 아버지의 무한한 긍휼과 인자에 대한 신뢰가 담겨져 있다. 예수는 자기와 우리의 관계를 친구 관계로 격상시킨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5). 예수는 우리의 친구요, 우리는 예수의 친구로서 예수를 통하여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예수는 맏형이여 우리의 그의 형제로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된다.  II. 호칭 "압바"(Abba)의 함축성 나사렛 예수가 사용한 하나님에 대한 "압바"(아람어로는 abba, 아버지)라는 호칭은 유대교적인 하나님 상(像)의 틀을 깨뜨리고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격적인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예레미아스는 당대의 유대교 문헌을 연구한 후에 "유대교 기도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압바'라고 언급한 유비를 전혀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구약 전체는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성을 강조하고 야웨와의 친밀성을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한데 반해서 예수는 일상적으로 하나님을 아주 친근한 용어로 불렀다. "아버지" 호칭은 다음의 함축성을 지닌다. 1.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깊으신 관심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와 같이 보살피신다. 우리에게 의식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부모가 자녀들의 의식주를 돌보아 주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의 기본을 돌보아 주신다. 예수는 어떤 조건을 제시하며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하여 근본적인 신뢰를 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은 순수하고 소박한 믿음을 말한다. 예수는 마치 자녀에 대한 부모의 심정을 지니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르치시고 계신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예수는 하나님이 무섭고 벌을 주시는 재판관이 아니라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고 마련해주시는 부모보다 더 사랑과 자비로써 우리를 보살피시는 분이라고 가르치신다. 2. 자녀 하나 하나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하나 하나를 눈동자 같이 머리털까지 세고 계시는 세밀한 사랑이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마 10:30).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아흔 아홉 마리 양을 우리에 두고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심정과 같다고 예수는 설교하신다. 그 양을 찾으면 목자가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즐거워하며 집에 돌아와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눅 15:6)라고 말하듯이 하나님은 우리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신다. 누가는 예수의 말씀을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3. 하나님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계: 직접성과 단순성을 나타낸다. 신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이다. 단지 형식이나 의식(儀式)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아직도 종교적 차원이다. 하나님은 자유스러운 마음,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배와 찬양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애원하는 심령에서 나오는 자녀의 소박한 기도를 들어 주신다. 예수는 말씀하신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하나님께 기도하고 요구하는 데는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직접성과 단순성이 요구된다. 마치 자식이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과 같다. 자식이 아버지 앞에서 주저한다면 그것은 참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신앙의 자연스러운 관계로 나타내고 계신다.     4. 자녀의 고통에 함께 하시는 분, 하나님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시고 참여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고통은 율법적인 인과응보로만 오는 것은 아니다. 고통이란 단순히 하나님의 징계로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당하는 고통에는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의미와 목적이 있다. 우리의 고통을 통하여 우리는 겸손해지고 우리의 인생은 더욱 깊어진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묻는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 9:2). 유대인들에 의하면 질병은 죄의 결과이다(요 5:14). 맹인의 경우는 그 부모의 죄의 결과로 보아야 했다. 예수는 대답하신다: "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맹인은 "실로암에 가서 씻어라"는 예수의 말씀에 따라 씻고 밝은 눈을 가지게 되었다(요 9:7). 맹인은 보게 됨을 통하여 그를 치유한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다. 이것은 맹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에게로 되돌아간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통하여 자녀인 우리를 연단시키시고 우리를 그 분의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드신다. 예수는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신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당하는 이 세상의 고통과 박해에는 하나님의 의미와 목적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이것을 선으로 바꾸시고 좋은 것으로 갚아주신다. 우리의 고통은 우리 자신의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통이다. 이 하나님의 고통은 예수의 십자가에서 가장 잘 드러나 있다. 5. 아버지로서 자녀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주신다. 하나님은 구약의 율법학자들이 생각했듯이 그의 자녀에게 단지 준엄한 재판관이나 율법 집행자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는 아버지이시다. 그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자녀에게 어느 계명을 지켰는지 보시기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를 가졌는지에 대해 우선적으로 보신다.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예수의 설교는 잃어버린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탕자의 비유)(눅 15장)에서 나타난다. 탕자는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눅 15:21)라고 아버지에게 참회의 고백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게의치 않고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온 사실 자체를 기뻐하신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눅 15:22-24). 아버지의 아들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품꾼의 하나로 받아들라고 돌아온 아들을 즐겨 맞이해주시고 잔치상을 베풀어주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다. 이 비유는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아낌없이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교훈해 주고 있다.     6.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한 형제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한 형제가 된다. 여기에는 백인, 황인, 흑인의 차이가 있을 수 없고,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의 차이가 있을 수 없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없으며, 지식인과 비지식인의 차이가 없으며, 권력자와 서민의 차이가 없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 아니고 인종이란 진화가 빚어낸 적자생존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형상에 따라서 지음을 받은 창조의 작품이다. 아버지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아바지 되심 앞에서 모든 인종 계층의 구별이 사라진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하나님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진화론적 인간관은 인간을 자연과정이나 만물과 다름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독교적 인간관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받았다고 보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은 동등하며 자연보다 존귀하다고 본다. 형제 자매가 아버지 앞에서 하나인 것처럼 모든 인류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하나의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계 21:26). III. 예수의 영 안에서 계시되는 하나님의 부성(父性)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부성)이란 나사렛 예수에 대한 믿음 안에서만 계시되고 그 안에서 호칭되어진다. 혈과 육이라는 자연적인 관계로는 정립되지 않는다. 요한은 다음같이 증언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가능하다.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오늘도 예수를 믿고 그의 자녀가 될 때 우리에게 아들의 영인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같이 증언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압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영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養子)가 되고 우리는 하나님을 "압바"(abba,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5-16). 오늘날에도 신자인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압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친히 "압바!"라고 불렀던 예수의 영이 우리 속에 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하나님을 "압바"라고 불렀던 역사적 예수의 실재에 대한 연속성을 체험하게 된다. (끝)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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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16
  • 샬롬나비, 성탄절 맞아 "겸손과 소망과 정의를 실천해야"
            숭실대 명예교수 겸 샬롬나비 대표 김영한 박사   행동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모임인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이하 샬롬나비)이 2019년 성탄절을 맞이해 "우리가 겸손과 소망과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오블리스 노블리주, 사회통합, 소회계층과 북한주민사랑을 구현하자"고 당부했다. 샬롬나비는 성탄 메시지를 통해 "아기 예수가 영광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임한 것처럼 우리는 겸손을 실천해야 할 것"이라 말하고, "새해에는 불안보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 했다. 또 "공공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며 여야 정치인, 사회 지도자들, 한국교회 등에 당부의 말을 전했다. 다음은 성탄 메시지 전문이다. <샬롬나비, 2019년 성탄절 메시지> "예수님 탄생하신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가 겸손과 소망과 정의를 실천해야 하겠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블리스 노블리주, 사회통합, 소회계층과 북한주민사랑을 구현하자." 한국 사회는 세대의 갈등, 이념의 갈등 그리고 남녀 및 지역의 대립으로 인한 사회적 분열이 극에 달해 OECD 국가들 중에서 사회적 갈등지수가 2위로 높다는 평가도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열과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너무나도 많이 들어가고 있다. 그 비용에 대한 추산은 82조에서 246조까지 이르고 있다. 그와 함께 집단 이기주의로 인해 서로간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사회에서 무엇보다 양보와 통합을 이뤄나가야 한다. 아기 예수는 하늘의 무한한 영광을 버리고 로마제국의 군사적 지배와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이 높았던 유대 땅 베들레헴의 낮은 땅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자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찬송하였다. 이와 같은 주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서 몸소 높은 곳에서 낮아지는 겸손을 보여 주셨다. 이제 곧 성탄의 기쁨이 온 누리에 펼쳐질 것이다. 연말연시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샬롬나비는 한국 사회에 다음과 같이 통합을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1. 아기 예수가 영광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임한 것처럼 우리는 겸손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오늘날 양극화와 갈등으로 상처만 남아 있는 곳이다. 우리는 지나친 이기주의로 인해 배려와 겸손의 미덕을 상실하고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높은 자리에서 낮아짐을 통해 겸손과 돌봄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의 겸손과 돌봄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보다는 이기주의에 젖어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주님께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그 사랑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지금 ‘누가 네 이웃이냐?’라고 질문하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의 이웃이 되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예수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우리의 이웃은 바로 내 옆에서 도움이 필요하여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겸손과 사랑과 포용의 자세로 다가가서 그들과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2. 새해에는 불안보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희망이라는 단어를 상실한 채 살고 있다. 특히 20~30대의 젊은 세대에게서 희망이라는 단어는 사치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노력을 통해 꿈을 실현할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청년 10명 중 8명 이상이 한국사회를 ‘헬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기회가 되면 한국을 떠나 살고 싶다는 ‘탈조선’ 응답도 75.4%에 달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올 한 해를 반성하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청년층들이 희망을 가지고 용기를 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꿈을 꾸고 미래를 설계하여 세상을 당당히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 많은 젊은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당장 답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만큼 이 사회는 꿈을 이루기에 너무 힘든 곳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청년들이 꿈을 위해 도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3. 공공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늘 사적인 이익과 공적인 이익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진다. 소위 님비현상과 같은 사회적 논란들은 대다수 지역 이기주의에서 빚어진 것들이다. 이처럼 우리는 공적인 가치보다는 사적인 이익을 더욱 우선시 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사적인 이익을 보장하는 동시에 공적인 이익도 우선시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정의가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마이클 샌델(M.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국에서 100만권 이상이 팔릴 정도로 한국사회는 정의에 목말라하고 있다. 샌델은 그의 저서에서 공동체에서 추구되어야 할 것은 ‘정의’라고 말한다. 정의는 어떠한 기준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원칙이다.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추구해야할 정의는 어떠한 환경에서든 흔들림 없이 지켜져야 하는 핵심 가치이다. 이처럼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공정함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들은 공공의 가치를 인정하고, 모두가 정의로운 사회에서 자신의 꿈과 비전을 향해 달려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4. 오늘날 여야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당파적 이익 아닌 국가적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정치현실은 무한한 대립과 양육 강식의 살벌한 투쟁 속에서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위한 선한 투쟁이 아니라 공수처법과 연동형 선거법을 두고 국민은 염두에 없고 자기 당의 득표이익에만 머리를 굴리는 파당적 계산과 싸움에 실망하고 있다.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과 헌신의 태도와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정치는 전부 아니면 무라는 극단의 권력 투쟁 속에서 너무나 살벌한 현실이 전개되고 있어 나라의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여야 정치인들은 깊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과 정부 공직자들은 성탄에 낮아지시고 자기를 내어주신 예수의 희생 정신을 깊이 성찰하기 바란다. 자신을 희생하고 자기 당을 희생하고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살리는 진정한 지도자 정신이 이 성탄절에 우리 사회 여야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 각성되기를 바란다. 당파적 이익 아닌 국가적 정의와 대로(大路)를 추구하기 바란다. 5. 사회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여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가치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연말연시가 되면 광화문에는 사랑의 온도계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올 연말연시에는 사랑의 온도계가 얼마나 올라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그 온도계를 높이는 방법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을 비롯해서 많은 CEO들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 그들은 자신의 막대한 부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고 사회에 기부했다. 그들의 기부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은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의 기부로 교육과 의료 혜택을 수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얼마 전 한국에서도 영화배우 원로인 신영균씨도 500억원을 기부했다. 그는 "가져갈 건 성경책 하나"라는 말을 하고, 자신의 재산을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기부에 참여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면 이 사회는 더욱 희망으로 가득할 것이다. 6. 세대의 갈등, 이념의 갈등, 남녀와 지역 차별 등 다양한 분열을 극복하고 사회 통합을 이뤄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오늘날 심각한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세대의 갈등과 이념의 갈등을 넘어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다양한 차별받는 현실은 단지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양극화로 인한 빈부의 차이는 사회 전반의 안전망을 위협하고 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로 인한 고통과 갈등을 해결하고 세상의 평화를 전해주기 위해 탄생하셨다. 우리는 이런 평화가 도래하는 연말연시 성탄절에 다시금 소중한 통합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해야할 것이다. 예수는 왕으로 온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마굿간에서 태어났다. 사회적 약자들과 아픈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달래 주었고 치료해주었다. 우리는 예수의 삶의 방식처럼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다가가야 할 것이다. 그들의 아픈 상처를 싸매어 주고 치료해 주면서, 갈등의 여러 요소들을 대화로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7. 한국 교회는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가치는 공적인 정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예수는 몸소 낮은 자리에서 아픈 자에게 먼저 다가갔다. 아픈 사람이 예수에게 다가 올 때 제자들은 그를 물리쳤다. 하지만 예수는 제자들을 호통하고 아픈 사람이 자신에게 올 것을 허락했다. 한국 교회는 실의에 빠져 있는 사회적 약자들과 외국인 근로자들, 독거 어르신들 등 많은 이들에게 다가가 사랑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예수의 가장 큰 가르침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런 사명을 잘 감당할 때, 이 사회에서 온전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8. 한국교회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북한의 동포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며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 예수님이 이 땅에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를 자유롭게”(눅4:18) 하려고 오셨다. 이 땅에서 3대에 걸친 독재정권의 하에서 가장 무겁게 포로된 자들이 북한 주민이고, 말할 수 없는 인권 탄압 하에서 짓눌리고 있는 사람들이 북한 동포들이다. 우리들은 주님의 탄생을 맞이하면서 북한 땅에 죄로부터 자유와 독재정치로부터의 자유, 인권 탄압의 짓눌림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기도하며 통일을 위해 나아가야 하겠다. 남북분단은 인간 죄악의 가장 깊은 고통의 산물이고, 그 중에서 북한은 그 고통의 가장 깊은 수렁이다. 올 해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가 북한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며 사랑을 나누며 우리 동포임을 확인해야 하겠다. 2019년 12월 20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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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4
  • 샬롬나비 "이웃 상실한 개인주의 한국 사회를 향하여"
      김영한 박사© 샬롬나비(원장 : 김영한 박사)는 대림절 메시지 첫 번째로 ‘이웃 상실한 개인주의 한국 사회를 향하여’를 전했다. 이들은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서 상호 연결된 이웃”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극단적 여야 대립 등 총체적 소통 부족 속에서 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한국사회는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전통을 지니고 있었지만, 현재는 개인주의가 강한 사회로 달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강림하셔서, 재난 속 우리의 고통에 참여하시고 공감하신 하나님”이라며 “대림절은 우리 모든 죄 짐, 상처, 어려움을 아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절기”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이들은 “대림절에 하늘에 고고히 홀로 계셨던 하나님이 아니”라며 “우리 고통과 절망 속에 함께 공감하시는 하나님 은총”처럼 “우리도 이웃들에게 인도주의적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돼야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대림절 메시지1 <이웃 상실한 개인주의 한국 사회를 향하여> 우리는 하나의 고립된 개인이 아닌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서 상호 연결된 이웃이다. 자연과 사회, 이웃나라도 각자 도생 아니라 서로 배려, 함께 살아가야할 우리의 동반자이다. 2019년 대림절 첫 주일은 12월 1일 주일부터 성탄 전 4주간동안 대림절 주간으로 예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력 절기이다.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오늘날 원자화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대림절의 빛 속에서 성찰하기에 이른다. 대림절은 하나님과 소통이 끊어진 인류와 소통하고 구속하기 위하여 이 세상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대망하는 절기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소통의 부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극단한 여야 대립, 정치적 소통의 부재를 넘어 지역과 계층 그리고 세대를 초월해서 총체적인 소통의 부재가 팽배해졌다. 우리는 지금 개인주의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고, 소통의 단절이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사회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개인적인 가치관이 강하고 소통이 결여된 사회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과거 한국 사회는 공동체 의식이 매우 강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 돕는 문화를 아름다웠다고 간주하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면서 위로했던 시기가 추억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과거 공동체에서 추구하는 미덕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구현하기란 힘든 것인가? , ‘누가 네 이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개인의 가치관을 가장 중시(重視)여기는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공동체 의식의 회복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샬롬나비는 대림절을 맞이하여 개인주의 사회에서 다시금 공동체의 미덕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1. 우리는 공동체와 동떨어져 살 수 없는 연고적 존재자들이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연고적(緣故的) 존재들이다. 누구의 아들과 딸이며 학교와 직장 등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우리는 최소한 어느 집단에 연고된 존재들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이상 우리는 단독자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의 안에 거하시면서 함께 교제하시므로, 고독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와 함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교제하며 살아가라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창조행위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들을 개인이 아니라 작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단위로 설계하셨다. 남녀가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짝을 허락하셨다.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첫 단추이다. 가정을 통해 사회가 형성된다. 사회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살아가는 유적 존재자들이다. 동양에서도 크게 하나 된다는 대동사상으로 함께 어울러져 사는 사회를 이상사회로 꿈꾸며 살아 왔다. 인간은 오직 이성의 힘으로만 단독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타자와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우리는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반드시 타자와 함께 삶을 공유하는 존재이다. 연고적 존재로서 우리는 서로가 배려하고 살아야 하며, 개인의 삶에 공동체를 배제시킬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사람을 넘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단지 인간과의 관계만을 설정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인간과 모든 동식물의 관계성을 포함한다. 성경에서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남녀가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루는 사회 구성원을 넘어 그 가정은 자연 속에 또 다른 구성원임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가 사회를 넘어 자연과 함께하면서 공동체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말하고, 인간 사회에서 자연까지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창조 과정을 통해 인간이 자연(모든 생명체)을 다스리게 하셨다. 여기서 자연을 다스리는 행위는 단순한 지배나 통치의 의미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잘 어울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자연과의 동반자적 사명을 말한다. 인간은 우리들 사회 공동체를 넘어 자연과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타자는 인간을 넘어 자연과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까지 연장된다. 이에 우리는 사회 구성원뿐만 아니라 자연까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외연의 확장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사회 구성원과 자연의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나와 함께 한 동반자로서 서로 간에 배려하는 공생(共生)의 가치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야할 삶의 터전이요 우리의 삶의 따뜻한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3.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공동체의 보살핌과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가치관이 절실히 요청되어야 한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에게 와서 물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는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했다. 이어 청년이 “이 모든 것을 내가 지켰는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이에 예수는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 후 부자 청년은 예수의 말을 듣고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면서 지나갔다. 예수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황금률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예수는 지극이 이타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자신의 재산을 남과 같이 공유하는 삶을 제시한 것이다. 실제로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선패망 후 이회영과 이시영 같은 분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을 하였고, 경주 최부자댁은 흉년이 들었을 때는 이웃의 땅을 사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이웃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어 300년간 가문의 재산을 보존하였다. 최근에 독실한 기독교인이요 전설의 배우 신영균씨도 500억을 기부하였다. 기부의 황제라고 불리는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그리고 페이스북를 만든 주커 버커와 같은 CEO들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들은 지금도 가난한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들은 배고픈 아이들에게 빵을 주고 있다. 연기자인 주윤발 탑 스타도 기부황제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돈은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잠시 맡아 보관할 뿐이다. 내가 죽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주윤발은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면서 사회의 약자를 위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마찬가지로 그의 아내도 전 재산 기부에 찬성하면서 아름다운 선행의 가정을 몸소 실천했다. 4. 우리는 타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말고 그에 대한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 포스트모던 사회는 타자와 함께하는 공간이 점점 줄어가고 있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개인주의가 발전하면서 타자에 대한 배려의 폭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이다. 유대계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의 윤리를 제시하였다. 그는 타자의 얼굴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특히 헐벗은 얼굴을 보고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요청한다.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마주함 또는 만남은 하나의 단순한 행위를 넘어 윤리적 요청이라고 보고, 타자의 얼굴을 통해 윤리적 명령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가난하고 아픈 이들의 얼굴을 외면하고 있다. 예수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요청되는 계명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웃사촌’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지금 누가 네 이웃인지 물어보아야 한다. 지금도 우리의 이웃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타자의 얼굴이 우리와 마주칠 때, 그들의 얼굴에서 나오는 도움의 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곧 연말연시가 다가오고 있다.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들이 생각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올 해 우리가 이웃의 따듯한 온정을 베풀지 못했던 시간들을 회고하면서 올 겨울에는 마음으로 주위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5. 우리는 난민(難民)에 대해 국제적으로도 연대의식을 가지고 하나 된 지구촌을 이루어가야 한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점점 더 자신의 국가 이익만을 추구하는 고립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국제간의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종교간의 갈등과 인종간의 갈등이 많아지면서 많은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다. 쿠르트족 난민, 이슬람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다. 난민들에 대한 구호와 인도주의적 도움이 절실하다. 종파와 인종의 차원을 넘어서 인도주의적 배려와 피난처 제공이 절실하다. 지금 홍콩에서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의 눈치를 보기 때문인지 국제사회에서 홍콩의 민주화에 대한 지원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우리는 ‘세계는 하나’라는 의식 속에서 다른 나라들의 어려움도 돌아보고 힘든 우리의 이웃나라들을 보듬으며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구촌을 일구어 가야 하겠다. 6. 자유민주화를 갈망하는 홍콩주민들은 우리의 이웃이다. 홍콩 자유민주화를 지지한다. 우리 한국인과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이웃인 홍콩 시민들과 홍콩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이들이 추구하는 자유민주화를 지원해야 한다. 홍콩 그리스도인들은 홍콩의 자유민주화를 위하여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다. 이는 신자들이 공동체를 위하여 해야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중국 중앙정부 독재자 시진핑은 장기 집권을 위하여 중국의 가정 교회를 핍박하고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공신당은 중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홍콩 반환시에 체결한 일국 양제에 대한 국제적 약속을 무시하고 홍콩 시민들의 자유민주화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인권 정부라고 자처하는 한국정부는 인권 탄압하는 중국 정부에 항의하고 홍콩 시민들의 자유민주화를 지지하고 한국교회는 홍콩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지지를 발표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7. 그리스도는 이 대림절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친구, 위로자, 구속자가 되신다. 오늘날 서로가 서로에게 소외된 현대 4차산업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지위를 버리시고 이 재난과 갈등과 증오와 고통의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친구가 되신다. 대림절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에 강림하셔서 이 세상의 모든 전쟁, 재난, 난민들의 어려움, 환경 재난 가운데 우리의 고통에 참여하시는 공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대림절은 이 세상이 이기주의적으로 파편화되는 것을 도외시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 짐, 상처와 어려움을 함께 지시고 우리와 공감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하는 절기다. 대림절에 들어서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저멀리 하늘에 고고히 홀로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과 절망의 현장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공감의 하나님의 은총을 전달하고 서로 간에 배려하고 가까운 이웃과 먼 이웃에게 인도주의적 사랑을 실천하는 배려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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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02
  • "허호익 교수 장신대에서 동성애 밀실 강연, 엄정히 조사해야"
      ▲허호익 교수(대전신대 대학원장·평통기연 운영위원)   샬롬나비(원장 김영한 박사)는 장신대에서 대전신학대학교 허호익 교수가 12일 소양관 609호에서 동성애를 옹호한 강연을 두고, 비판 논평을 냈다. 이들은 “예장 통합 103회는 동성애를 이단 신학으로 규정한 바 있다”며 “예장 통합에 소속된 목사인 허호익 교수는 버젓이 장신대에서 동성애 강연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들은 “강연은 총회의 결의를 전적으로 역행했다”고 비판하며, “학교의 대내외적인 비판을 분명하게 의식한 증거로, 참석자들에게 ‘강의를 어떻게 알고 왔느냐?’, ‘소속이 어디냐?’ 등의 질문을 위압적으로 캐물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소위 ‘밀실 강연’을 강행한 것”이라며 “심지어 재학생들도 학생증 검사를 통해서 강의실 출입이 가능했고, 이는 장신대 신대원 학우회의 결의에 따라 이뤄졌다”고 밝혔다. 하여 이들은 “동성애 지지 강연이 떳떳하다면 왜 이를 밀실에서 진행해야 하는가”라고 되물으며, “이는 동성애 밀실 강연을 허용한 장신대가 총회 결정을 위배했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이들은 “장신대는 총회규정을 어기는 신학자들과 학교 관계자, 학생들의 행위를 확실하게 조사해, 그에 합당한 문책을 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신학교를 동성애의 위기로부터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들은 허호익 교수를 빌려 “교회가 세계적 대세에 따라 동성애자를 더 이상 정죄하지 말고 성직자로 세워야 한다”고 전하며, “동성애는 죄라는 지적은 퀴어신학자들 처럼 동성애자 혐오 논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이들은 “동성애가 죄라는 것은 동성애자 혐오가 아닌, 저들을 사랑하는 심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역설했다.   게다가 이들은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 지적은 동성애자들의 성중독을 치유하고 인권 회복을 위한 기본 전제”라며 “환자가 질병을 인정하지 않으면 치료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교회는 동성애는 혐오하되 동성애자들은 사랑해야 한다”며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들을 환자로서 받아들이고, 인내를 가지고 관용하며 치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숭실대 명예교수 겸 샬롬나비 대표 김영한 박사   <장로회신학대에서 허호익 교수의 동성애 옹호 ‘밀실 강연’ 강행에 대한 논평> 총회가 이단으로 금지한 동성애 옹호 밀실 강연을 허용한 장신대 총장은 문책되어야 한다.예장통합총회는 규정에 따라 이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 문책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 지난 11월 12일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임성빈, 이하 장신대) 소양관 609호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ㆍ역사적 성찰”이라는 제목의 강연회가 열렸다. 강연자인 허호익 대전신학대학교(총장: 김영권, 이하 대전장신) 은퇴교수는 예장 통합 교단에 소속된 목사이자 교단 산하 신학교의 원로교수이다. 강연 장소인 장신대는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하는 예장 통합의 대표적인 신학교이자 한국교회의 최대 신학교육 기관이다. 그런데 예장 통합 총회는 제102회부터 제104회까지 3회 연이어 반(反)동성애를 강력히 결의했는데, 특히 103회 총회는 동성애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퀴어신학(queer theology)을 이단으로 규정한 바 있다. 총회의 결의문에 따르면,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동성애자와 동성애를 지지ㆍ옹호하는 자는 교회의 직원(항존직, 임시직, 유급 종사자) 및 신학대학 교직원이 될 수 없다.” 또한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의 학칙에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는 입학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결의하였다. 이에 샬롬나비는 허호익 교수 강연의 문제점과 함께 장신대의 책임에 대하여 논평하고, 예장 통합 총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건의하는 바이다. 1. 총회가 이단으로 결의한 동성애에 대하여 총회 직영 신학대학이 비밀 강연을 허용하는 것은 바른 길이 아니다. 이처럼 예장 통합 총회가 동성애 반대를 단호히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허호익 교수는 총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신학생들에게 반(反)성경적이고 비(非)윤리적인 동성애를 옹호하는 강연을 한 것이다. 마땅히 신학도들을 하나님의 진리로 가르치고 영적으로 바른 길을 선도해야 할 교수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명약관화하게 금하셨던 동성애를 세상 풍조에 휩쓸려 따라가는 죄(罪)가 아니라고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총회 결정에 반대할 수 있는 교수의 힉문과 양심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허 교수는 떳떳하게 공개강연을 하지 밀실강연을 하여 세상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가? 2. 총회의 결정을 위반하면서 비밀 강연을 한 허 교수는 자유방임적 이단 옹호로 이단 연구로 한국 교회에 기여한 자신의 공헌을 무너뜨렸다. 더욱이 이 강연은 총회의 결의를 전적으로 역행한다는 사실과 학교의 대내외적인 비판을 분명하게 의식한 가운데 학교를 방문한 외부 인사들(졸업생 포함)에게 “강의를 어떻게 알고 왔느냐?”, “소속이 어디냐?”는 등의 질문을 위압적으로 캐물으면서 이들을 철저히 배제한 비밀강연, 소위 ‘밀실 강연’을 강행하였다. 심지어 재학생들도 학생증 검사를 통해서야 강의실 출입이 가능했는데, 이 모든 일은 장신대 신대원 학우회의 결의에 따라 엄격한 통제 속에서 이루어졌다. 동성애 지지 강연이 떳떳하다면 이를 밀실에서 진행해야 하는가? 학문이란 개방성과 토론 가능성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3. 허 교수의 동성애 옹호 저서는 동성애 반대하는 한국교계에 큰 우환을 던져두었다. 사실 허 교수는 올해 5월 『동성애는 죄인가』라는 책을 출간하여 한국 신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킴으로써 오늘의 불미스러운 사태를 예고하였다. 허 교수는 한국 복음주의 신학계의 조직신학자로서 나름의 공헌을 해왔는데, 특히 그의 이단 연구가 한국교회에 기여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책 한 권으로 그의 신학자로서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한국 복음주의 신학계에도 큰 우환을 던져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심도 있는 독창적인 연구물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범람하는 자료와 기사들을 소개하는 정도의 편집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저자는 각 주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확고하게 피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연구와 기사들을 인용함으로써, 사람들의 비판을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는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인용하는 자료나 통계가 좌파 성향의 편향된 내용물 중심이어서 동성애로 인한 폐해를 희석시키거나 왜곡하는 부적절함을 보이기도 한다. 4. 허 교수의 동성애 옹호는 동성애자의 성직(聖職) 허용까지 선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허 교수의 치명적인 과오는 ‘신학적 다양성’이라는 명목으로 정통신학을 훼손한 일인데, 이것은 그의 신학적 정체성이 성경에 입각한 복음주의적 신학과 결을 달리하는 친(親)동성애적 성향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듯하다. 허 교수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동성애는 예외적으로 비(非)범죄화와 합법화가 이루어지고, 동성애자의 성직(聖職) 임용까지 허용되는 추세”라고 주장함으로써, “교회가 세계적 대세에 따라 동성애자를 더 이상 정죄하지 말고 성직자로 세워야 한다”는 언질을 주는 듯하다. 한 마디로 말해, 허 교수의 저서 『동성애는 죄인가』는 “세태가 변했으니 교회도 시류에 따라 변하고 세상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논조가 강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허 교수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책을 저술하고 이제는 비밀리에 학생들에게 동성애를 옹호하는 강연을 하면서 총회 결정을 명백하게 위반하였으니, 예장 통합 총회 앞에 자신의 소신을 공개해야 할 것이다. 5. 동성애 문제의 근원지는 장신대에 있다. 장신대 총장과 구성원은 이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 문제는 허 교수만의 개인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장신대가 문제의 근원지라고 말할 수 있다. 교단 총회의 결의에 이반(離反)하여 동성애 옹호 강연회를 개최한 장신대의 친동성애적 행보는 수년에 걸쳐 누적된 문제 사안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장신대 안에서 동성애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고, 장신대 측의 대응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음으로써 갈수록 상황이 위중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장신대는 오히려 동성애 옹호강연을 학생회가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을 허용하는 우를 범하였다. 그리고 비밀강연이 영원한 비밀로 감추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를 묻고 싶다. 장신대는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비밀강연을 진행한 모임에 문책해야 한다. 6. 장신대는 동성애 무지개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아직도 동성애에 대한 애매한 입장 취히고 있다. 장신대에서 일어난 친동성애적 사태는 대표적으로 2017년 5월 30일: 장신대 ‘신학춘추’(학교신문)의 동성애와 퀴어신학에 대한 옹호적 기사 게재, 2017년 9월: 예장 통합 총회 내 동성애자와 동성애 지지ㆍ옹호자 관련 조항 신설, 2017년 10월 12일 총학생회 주최로 친동성애 목회자 초청 강연 기획, 2017년 10월 25일: 장신대 내 동아리의 친동성애 강연 기획 시도, 2018년 5월 17일: 장신대 학부생 3명과 신대원생 5명이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기념하여 동성애를 상징하는 6색 무지개의 상의를 입고 채플에 참석한 후 일어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일련의 사태 등을 들 수 있다. 세상 법정이 장신대 측에 가한 부당한 개입과 친동성애적인 공권력을 등에 업고 신학교와 교단, 그리고 자신의 신앙 양심마저 우롱한 목회자 후보생들의 부적절한 처신, 이를 둘러싼 불미스러운 사태가 해결되지 않은 현실은 장신대 내에 여전히 동성애와 관련된 잠재적 문제들이 꽈리를 틀고 도사리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이런 문제 상황 속에서 금번 동성애 옹호자 허 교수의 밀실 강연 사태는 동성애와 퀴어 신학의 폐해로부터 한국 교회의 예비 성직자들을 보호해야 할 당위적 과제와 책임을 다시금 한국 교회에 엄중하게 부과한다. 예비 성직자들은 올바른 신학교육을 받아서 인류 문명사적 위기에 봉착한 이 시대를 하나님의 진리의 영으로 올바르게 선도할 수 있어야만 한다. 7. 예장 통합 교단은 교단의 규정을 어기고 동성애 옹호 비밀강연회 진행한 허 교수, 초청 모임 그리고 이를 허용한 장신대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 문책하여 재발을 막아야 한다. 동성애 밀실 강의를 허용한 장로회 신학대학은 총회의 결정에 역행하고 있다. 예장 통합 교단은 현재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하는 교단인 만큼 한국교회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막대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신대를 비롯한 예장 통합 총회 산하 신학교에서 배출되는 사역자들은 향후 한국교회에서 중차대한 역할을 감당할 사명자들이다. 사실상 동성애 합법화에 제동을 걸고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보루는 기독교 교회공동체인데, 그 보루의 중심에 바로 통합 교단의 장신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신대는 동성애와 퀴어신학의 폐해로부터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총회는 총회규정을 어기는 신학자들과 학교당국 그리고 학생들의 행위를 확실하게 조사하고 그에 합당한 문책을 해서 신학교를 동성애의 위기로부터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 8. 동성애 방지에 있어서 평신도를 보호해야할 신학자와 목회자는 그 책임을 다 해야한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진행되는 동성애 반대 움직임은 한국교회동성애대책협의회(위원장 소강석 목사)를 통하여 평신도와 목회자들이 서로 동역하면서 조직적으로 잘 전개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평신도들이 고난을 무릅쓰고 반동성애 사역을 이끌어가고 목회자들이 적극 후원하는 이 사역에 신학계에서는 방관하거나,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현실이다. 평신도와 목회자들은 신학자들이 교리를 굳건히 세워서 영적이고 사상적인 전쟁을 견인해 주길 기대하지만, 현재 한국 기독계를 움직이는 신학자들은 이 사역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9. 오늘날 신학대학조차 동성애 풍조에 대하여 반대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종합대학에 소속된 신학자들은 동성애 옹호세력에 점령당한 대학 총학생회의 눈치를 보면서 포퓰리즘에 영합하거나, 신성모독 수준으로 성경을 해석하면서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퀴어신학에 예언자적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교단 신학대학에 소속된 신학자들의 경우, 과거엔 일부 신학대학을 제외하고 비교적 보수적 입장을 견지해왔는데, 최근엔 거의 모든 신학대학이 신학적 입장에서 확연히 구별되지 않는 것이 대세인 듯하다. 그러므로 신학자들이 반동성애를 위한 견고한 신학적 기반을 제공하고 강인한 영성으로 영적 전쟁을 선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제 신학자들이 깨어나 영안(靈眼)이 열리고 영적ㆍ사상적 전쟁에 앞장서 나가서 인류 문명과 서구세계를 대신한 이 대리전에서 한국 교회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0. 한국교회는 깨어서 신학교와 신학생들을 동성애에 물드는 것에서 지켜내야 하겠다. 총회가 동성애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옹호하는 학생들의 입학을 불허한다고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를 지지하는 교수들이 생겨나고 학생들을 상대로 비밀강연을 하면서 학생들의 신앙을 혼미하게 반드는 위기의 상황을 한국교회는 맞이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굳건하게 서려면 신학교와 신학교수들이 반동성애의 입장을 견고하게 유지해야 하고, 성경에 입각하여 학생들에게 동성애가 죄라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 지적은 퀴어신학자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결코 동성애자 혐오 논리가 아니다. 동성애가 죄라는 것은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을 사랑하는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 지적은 동성애자들의 성중독을 치유하고 인권 회복을 위한 기본 전제이다. 환자가 질병을 인정하지 않으면 치료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동성애는 혐오하되 동성애자들은 사랑하여 혐오하지 않고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저들을 환자로서 받아들여 인내를 가지고 관용하며 치유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렇게 동성애자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내를 가지고 용기있게 대처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그러한 교육노선이 점점 무너져가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 신학교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확실하게 깨어 일어나서 신학교와 신학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하겠다. 한국교회가 이 때 깨어나지 않으면 신학교육 현장에서 동성애를 막기에는 너무 늦을 수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깨어 일어나 기도하면서 실질적인 행동을 해야 하겠다.      
    • 신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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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7
  • "명성교회 세습 타협안,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에 맞춘 독단적 판결"
    숭실대 명예교수 김영한 박사     샬롬나비(원장:김영한 박사)는 104회 예장 통합 총회의 명성교회 세습 허용 결정에 대한 논평을 냈다. 이들은 “104회 예장 통합 총회의 이번 결정은 리더십의 합치, 차선책, 절충과 타협이라는 평가가 나왔다”며 “그러나 이번 판결은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화합에 맞춘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들은 “세습 타협안 통과이후, 더 이상의 이의제기는 없다고 못 박았다”면서 “이는 더 좋은 안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한 독단적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들은 “절충과 타협이란 정의와 진리의 원칙을 살리는 경우에만 진정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정의와 진리 없는 절충과 수습이란 총회를 세상의 소금과 빛을 포기하는 불명예에 빠뜨리는 행태”라며 “종교개혁의 정신에서 탄생한 개신교(protestantism)의 최고의 규범은 성경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아가 이들은 “예장 통합 104회 총회는 이미 2014년도에 제정된 세습 방지법을 어기면서, 명성교회의 세습을 어느 정도 허용한 타협안을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때문에 이들은 “대형교회인 명성교회를 수렁에서 구제하려다 사회적 신뢰성과 준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게 됐다”면서 “재물과 욕망이 총대들의 눈을 멀게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이들은 “무분별한 온정주의와 값싼 용서주의가 총회기간동안 잠시 총대들의 눈과 판단을 흐리게 했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기독법률가회(CLF)의 “교단의 최고의 법인 헌법에 위반한 초헌법적 결정은 무효”라는 입장문을 빌려 “명성교회 세습 타협안은 상위법인 교단 헌법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즉 이들은 “헌법 시행규칙을 통해 세습 타협안에 은퇴 5년 후 세습을 가능케 한다고 명시해도, 상위법인 교단 헌법에 이미 ‘세습방지법’이 제정됐기에 무효”라고 역설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 104회 예장 통합 총회의 명성교회 세습 허용 결정 논평서>104회 통합총회 결정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의 뜻에 맞추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성경적 수습(收拾)이란 정의없는 온정주의가 아닌 정의로운 사랑이어야 한다. 제104회 예장 통합총회는 2021년부터 명성교회의 부자(父子) 세습을 사실상 허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명성교회 수습전권위원회 위원장 채영남 목사는 명성교회 세습건에 관하여 7인 수습위원회 수습안을 발표했다: “명성교회와 서울동남노회는 총회재판국의 재심판결을 수용하고, 재재심(2019년 9월 20일 접수)을 취하 한다”며 “명성교회 위임목사 청빙은 2021년 1월 1일 이후에 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대해 투표에 들어가 총대 1204명 중 920명이 수습안에 찬성해 그대로 통과됐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그동안 수년 동안 끌어온 명성교회 사태가 더 이상 지속될 경우 교단 분열이나 대립으로 인한 교회의 소모전과 피로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총회지도부와 총대들의 의지가 여기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리더십의 합치,” “차선책 선택,” “절충과 타협”이라는 평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돈과 욕망이 지배한 결정”으로 사실상 '세습 허용'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통합교단의 세습허용은 교회 내부 화합에 치중하다 사회적 위상과 도덕성에 상처를 입게 되었다. 이에 샬롬나비는 통합총회의 결정은 법과 원칙이라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의 화합에 맞춘 결정으로 보고 다음같이 표명한다. 1. 5년 후 세습 허용은 세습 금지 총회 헌법에 위배되는 모순된 결정이다.올해 104회 예장통합 총회는 명성교회의 담임목사 부자 세습을 합법화해 추인하는 결의를 하였다. 올해 11월부터 2020년 말까지는 임시 당회장을 파송하는 형식을 취했다. 총회 참석자 1204명 중 920명(76.4%)이, 이 같은 내용의 '수습안'에 찬성했다. '수습안' 마지막 조항은 “이 수습안은 법을 잠재하고 결정한 것이므로 누구든지 총회헌법 등 교회법과 국가법에 의거하여 고소, 고발, 소(訴) 제기, 기소 제기 등 일절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다”고 못 박기까지 했다. 수습안에 대한 이의제기 불가는 이번 104회 총회를 통해 교단 내에서는 명성교회 건을 종결하겠다는 총회장과 총대들의 강력한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이 문제로 사회적 논란이 계속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도부들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다시 논란이 야기됨으로써 교단의 힘이 소모되는 것을 막고 혼란 야기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긴 하다. 하지만 이 결정은 다시 번복될 수 없는 절대적인 안으로 못 박음으로 더 좋은 안이 나오는 것을 막는 독단적 수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습안 결정에 대한 이의 제기를 불가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비난을 봉쇄하고 더 좋은 차선책의 제시를 미리 막아버리는 것으로 교회 결정의 개방성을 차단시키는 것이다. 이번 총회 결정은 교회가 진리를 향한 순종과 특권 내려놓음의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사회적 양심의 소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절충과 타협이란 정의와 진리의 원칙을 살리는 경우에만 그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정의와 진리 없는 절충과 수습이란 총회를 외눈박이의 편향성과 세상의 소금과 빛을 포기하는 불명예에 빠뜨리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정신에서 탄생한 개신교(protestantism)의 원리란 총회의 결정이라 하더라도 최고의 규범인 성경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총회의 이번 결정은 자기가 정한 법을 스스로 위반하는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다.진리는 총대들의 투표라는 다수의 힘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 진리는 사람들과 종교회의 결정에 있지 않고 성경과 하나님의 뜻 합치(合致)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와 예장 통합 총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수많은 성도들은 이러한 총회의 결정을 듣고 신앙 양심(良心)에 있어서 깊은 실망의 충격을 받았다. 총회는 다시 번복할 수 없는 수습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총회의 헌법(예장통합 헌법 제28조 제6항, 세습금지법, 2013년 제정)에 어긋나고, 교인들의 양심에 상처를 주고, 세상의 양식(良識)에 조차 어긋난다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간주될 수 없다. 총회 수습위원회의 수습안은 목회자 세습을 금지한 본 교단 헌법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총대들의 결정은 교회 안 성도들과 교회 밖 시민들[과 잠재적 성도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일 뿐 아니라, 교회가 정한 헌법에 이익을 추구하는 자신의 뜻(지교회의 사사로운 형편과 고집)을 굴복시키라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이다. 예장 통합 104회 총회는 대형교회인 명성교회를 세습 불법이란 수렁에서 구제하려다 사회적인 신뢰성과 준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 재물과 욕망이 총대들을 눈 멀게 했다. 무분별한 온정주의와 값싼 용서주의가 총회기간동안 잠시 총대들의 눈과 판단을 흐리게 했다. 3. 총회가 대형교회가 총회 헌법을 지키지 않음을 용납한 사례(事例)가 되었다.원칙 면에서 보면 이번 세습허용 결정은 교단 총회가 자신이 만든 헌법의 규칙(세습금지법)을 한 대형교회의 탈퇴 방지를 위하여 지키지 아니한 사례가 되었다. 총회는 시행 세칙이라는 수습안을 만들어 헌법에 위배되는 결정을 하였다. 그래서 이 결정을 지켜보는 세상으로 하여금 교회의 준법성과 신뢰성에 금이 가도록 만들었다. 총회가 자기가 만든 법을 특정인과 특정교회를 위하여 포기함으로써 다른 사람과 교회들도 이를 지키지 않을 수 있는 사례를 만든 것이다. 예장 통합 104회 총회는 대형교회인 명성교회를 세습 불법이란 수렁에서 구제하려다 사회적인 신뢰성과 준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 재물과 욕망이 총대들을 눈 멀게 했다. 무분별한 온정주의와 값싼 용서주의가 총회기간동안 잠시 총대들의 눈과 판단을 흐리게 했다. 4. 대형교회가 총회의 결정을 지배하는 선례(先例)가 되어 버렸다.이번 결정으로 개신교 대표 장자(長子)인 예장 통합 교단이 등록 교인 10만 명에 이르는 대형교회에 굴복했다는 사회적 비난이 쏟아진다. 장자 교단인 통합이 일개 대형교회 세습에 면죄부를 발행하며 손을 들어줌으로써 기독교가 대형교회의 종교적 권력에 굴복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대형교회 이탈을 막기 위해 총회가 수습안을 만들어 세습금지라는 헌법을 스스로 위반하는 사태를 초래하였다. 기독법률가회(CLF)는 “교단의 최고의 법인 헌법에 위반한 초헌법적 결정은 무효”라고 입장문을 발표하였다. 법률가에 의하면 “헌법의 하위 규범인 헌법 시행규칙에 사임 또는 은퇴 5년 후 세습을 가능하게 하는 조항을 신설한다고 하더라도 그 조항은 교단 헌법에 위반되기 때문에 무효”라는 것이다. 5. 명성교회 사태는 타협보다는 하나님의 공의를 지킴으로 수습되어야 한다.이번 총회의 수습안은 불법을 합법화 시킨 불명예로운 수습안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명성교회 세습 문제는 타협이나 수습의 대상이 아니다. 이 문제는 교회 총회가 합의로 결정한 세습금지법이라는 헌법을 위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법을 위반하는 자를 교회의 거룩성과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방향으로 치리하는 길 밖에 없다. 그래야만 총회의 헌법이 지켜지기 때문이다. 세습 찬성 세력과 반대 세력을 화해시키고 중재하는 방식으로 접근한 수습안은 대형교회라는 교회권력에 아부하고 영합함으로써 헌법을 무시하고 윤리성까지도 도외시한 초헌법적 오류를 범한 것이 되었다. 자신들의 편의대로 시행규칙을 만들어 총회의 헌법까지도 효력정지 시키는 결과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교단 총회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하기에 이르렀다. 교회의 권위는 교세나 재정규모나 사역자의 크기가 아니라 청빈성, 거룩성, 약함, 도덕적 수월성에 달려 있다는 성경적 진리를 거부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6. 통합총회 결정은 앞으로 한국교회에 만연한 세습 관행에 면죄부를 주게 될 것이다.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2017년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기준으로 세습된 전국 교회는 143곳에 이른다. 직계 세습이 98곳으로 가장 많다. 기독교 언론에서는 2019년 7월 말 기준, 세습교회가 총 285곳이라고 보도했다. 2000년대까지는 서울 충현교회, 광림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금란교회, 왕성교회, 강남제일교회 등에서 세습이 공공연히 이뤄졌다. 2012년 충현교회의 김창인 목사가 한국복음주의 협의회 모임에서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것을 후회한다”고 공개 발언을 하면서 사회적 파장이 컸다. 2013년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 교단 내에 세습금지법을 만듦으로써 그동안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아온 한국교회가 처음으로 사회 여론에 부응했다. 일반 세상 언론과 사회는 교계의 세습금지라는 자정(自淨) 결정을 환영하였다. 이번 통합 총회의 결정은 한국교회 감리회에서부터 시작한 자정 노력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7. 교회의 사유화(私有化)로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크게 손상했다.담임목사 세습은 결국 교회 사유화라는 교계와 사회의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기독교 시민단체는 교회가 공익적인 종교기관이 아닌 특정 가족만을 위한 사익 단체로 전락할 위험성을 경고한다. 개신교 법조인 약 500명으로 구성된 기독법률가회(CLF)는 지난 8월 26일 입장문을 통해 “한국교회가 교회 세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주어졌으나 예장통합 총회는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며 “이번 결정을 보면서 우리는 한국교회가 짠맛을 잃어서 쓸 데 없어진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을 썩게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고 밝혔다. 8. 총회법을 지킬 수 없는 것에 대해 총대 및 우리 모두가 회개해야 하겠다.이렇게 된 데는 아무도 희생하지 않고 무분별한 양보, 타협, 값싼 용서에 호소함으로써 교단 분열이나 교단 탈퇴라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하는 차선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총회가 가장 약자(미자립교회나 개척교회 등)를 위하여 법을 어겼다면 거기에는 긍휼과 사랑의 정신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명성교회는 10만 신자들이 모이는 대형교회로서 신종 종교권력으로 간주되고 있다. 당사자가 투표 직전에 총회에 나와서 강대상에서 사과하면서 “갈 데 없다 품어 달라”고 말한 것은 총대의 연민에 호소하고자 하는 약자의 시늉을 낸 감상적 발언으로 들린다. 10만 교인 교회당을 세습하는 김삼환 목사는 약자(弱子)가 아니라 총대들이 그의 힘을 무서워하여 총회법을 무력화시키는 타협을 해야 할 정도의 절대 강자이다. 교회의 머슴에서 시작하여 대형교회 목사, 총회장, 증경총회장을 거쳐 어느새 황제(皇帝)가 되어 말로만 약자의 시늉을 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지도자는 세속적 교회당, 교인, 시설, 물질, 권력의 크기에 의하여 평가되지 않고, 자기 비움, 내려놓음, 섬김과 겸손이라는 영적 덕성에 의하여 내면적 존경과 공감을 일으키는 자다.2019년 11월 11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11-14
  • "개척교회 목회자들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11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가 8일 오전 7시부터 성락성결교회에서 개최됐다. 주제는 '한국교회 목회자 자존감 회복 방향'이다. 1부 기도회에는 김영한 박사(숭실대 명예교수)가 하박국 3:17-19절을 중심으로 설교를 전했다. 그는 “이번 104회 예장 통합 총회는 분위기 탓인지, 목사들 대부분이 명성교회 세습 중재안을 가결시켰다”고 밝히며, “그러나 통합 측 교회의 70%는 미 자립 교회”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목회자들의 눈을 어둡게 한 물신주의 때문”이라며 “오늘날 한국교회도 물신주의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하박국 선지자의 자존감은 청빈성에 있다”며 “하나님이 주신 목회적 달란트에만 충실할 때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목회자의 사명은 세속적 기준에 의해 평가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 크기, 교인 숫자, 월급에 의해 평가가 좌우된다고 목회자가 스스로 생각 한다”면, “이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는 일”이라고 밝혔다. 하여 그는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은 나의 즐거움, 구원, 자존감’이라 말한 것”처럼 “목회자는 세속적 평가에 의해 일희일비하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즉 그는 “하박국의 자존감의 근저는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라는 깊은 인격적 관계에 있다”고 재차 말했다. 다만 그는 “이런 세속적 평가에 자존감을 두는 목회자들의 경향성 때문에, 예장 통합이 (2014년에 제정한) 세습방지법을 깨고, 명성교회 타협안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은 수 천 명의 군사보다, 존 낙스 목사의 설교를 두려워했다”며 ‘예언자적 사명’의 무게감을 역설했다. 또 그는 “복음주의 교회는 천국 소망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대사회적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며, “한국 교회가 정의와 공평의 목소리를 외치는 게 자존감을 되찾는 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교회가 부와 권력에 취해있을 때,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여 그는 “진정한 개혁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성공지향, 권위주의적 리더십, 세속주의, 성장주의, 물질주의 등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한다”며 “이럴 때 목회자의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숭실대 명예교수 겸 샬롬나비 대표 김영한 박사 그리고 그는 “강단의 설교는 사회 지도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설교 이어야한다”며 “강단 메시지가 내세지향적인 복음주의를 필요로 하지만, 성경은 전체적인 복음을 말하고 곧 사회적 성결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성결이 없는 복음은 구원파, 신천지와 다를 바 없다”고 못 박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전히 웨슬리의 복음주의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두고 “개인부흥만이 아닌, 사회적 성경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여 그는 “여기서 목회자의 자존감이 나오는 것”이라며 ‘목회자의 자존감은 곧 성결에 있음’을 역설했다. 뒤이어 개척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첫 번째 주자로 이정기 목사(인천 예드림교회)가 발제했다. 그는 “올해 3월부터 인천 부평에서 첫 출발했고, 소속은 고신교단”이라고 첫 말을 뗐다. 이어 그는 “본 교회 부교역자에서 개척교회 목회를 말씀드린 후, 교인들에게 헌신을 부탁했지만 거절했다”면서 “왜냐면 큰 교회 시스템에서 오는 다양한 혜택 등을 놓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령 “관계, 헌신 등 적당한 거리감”이라고 그는 전했다. 아울러 그는 개척교회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먼저 그는 “개척교회는 섬길 사람이 부족하다”며 “3월 17일 개척 예정일자까지 무작정 기도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는 “그간 거절했던 성도들 중 6명이 개척교회에 합류한다고 말했다”며 “실수 없으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계심을 경험하고, 많은 숫자를 놓고 기도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전했다. 나아가 그는 “하나님께 열심 있는 성도를 달라고 기도했다”며 “그러나 어떤 선배 목사들은 ‘열심 있는 성도가 온다면 더 힘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적으니 예배 분위기는 좀 더 냉랭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은 15명이 예배에 참석 중인데, 5명의 예배 팀이 강단으로 나가면, 회중은 고작 10명 정도”라며 “예배 분위기를 끌어올리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때문에 그는 “전도 특공대를 꾸려 주말에 집중 전도에 나섰다”고 전했다. 또 그는 “겨울 기간을 통해 청년 중 교역자를 세우기 위한 성경 양육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이정기 목사(인천 예드림교회 담임)   더 큰 문제를 전했는데, “바로 재정”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감사함을 표하며 “부교역자로 섬기던 교회에서 1억 5천만 원을 지원했다”며 “2년 동안 한 달 월급 200만원, 1년 동안 100만원을 지원해주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인천 부평 지역은 그나마 월세가 싼데, 그래도 140만 원”이라며 “많은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재정문제가 어려운 것은 성도수가 적기 때문”이라며 “젊은 성도들은 헌신 개념도 희박하고, 헌금을 강요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하여 그는 “많은 재정지원을 놓고,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그럼에도 불구 그는 “나와 내 아내는 새벽마다 엎드려 간구 한다”며 “재정에 위축되지 않고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그는 “기독교 TV에 나오는 다른 목회자분들의 설교를 접하며, 은혜를 유지 한다”고 말하며, “수련회에도 참석하려 노력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1년에 2-3번 정도 원래 다녔던 교회 수련회에 참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옛날 선배 목사들께서 진흙 바닥에서 천막 교회를 개척하려던 몸부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후배목사들도 더욱 깨어 있는 것 맞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따뜻한 밥한 끼, 영적 지원을 아낌없이 후원 부탁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이윤호 목사(안양 한아름교회)가 발제했다. 그는 “본 교회 근처에서 실버 사역을 계속했다가, 연임이 어려워져 개척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본 교회 근처는 독거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개척 교회를 통해 실버(Silver) 목회를 이어가려고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사람을 행복하게란 목표로 목회를 시작했다”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역의 본질은 바로 영혼구원에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미소, 칭찬, 감사 등 7가지 요소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영성 운동도 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윤호 목사(안양 한아름교회 담임)   아울러 그는 개척교회의 어려움으로 “정체성”을 뽑았다. 그는 “한 해 문 닫는 교회가 3,000개”라며 “이는 목사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개척을 하면서 깨달은 부분은 바로 선택과 집중”이라며 “나는 실버 사역에 집중하기로 결단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목사로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은 바로 영혼구원”이라며 “다음세대 목회도 중요하지만, 실버목회도 못 지 않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유로 그는 “어르신들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기 때문”이라며 “이분들을 외면해선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그는 “개척부터 265주 동안 계속해서 실버 목회를 진행 하고 있다”며 “현재 100여명의 어르신들이 우리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럼에도 그는 “경제적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재 보증금 1,000만원, 월세 60만원 교회”라며 “4명의 자녀가 있고 매달 임대료 때문에, 다른 일도 했다”고 밝혔다. 가령 그는 “월요일 마다 시각장애인 예배를 위한 차량운행 일을 했다”며 “이걸로 십일조를 냈고, 노동의 뿌듯함도 느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실버 처치를 하면서 2015년부터 쌀 1kg씩을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말하며, “매년 정부의 쌀값 인상, 후원기관이 지원을 끊어 후원 사역이 어려워졌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개인 후원을 받으며 사역하고 있다”고 했다. 가령 그는 “현재 개인 후원자분들에게 일일이 카카오 톡을 통해, 아침 큐티(QT) 말씀과 함께 사역 보고를 전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후원을 요청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무엇보다 그는 “현재 교회에 일꾼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매주 금요일마다 실버처치를 하면서, 쌀 1kg을 어르신들에게 드리고 있다”며 “처음에는 20명씩 오시다가 입소문 나서 100여명으로 불어났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계단까지 서 계셔 기다리는 분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그가 하고 있는 실버 사역 중 하나는 “치매 예방 사역”이라고 했다. 그는 “실버 목회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치매 예방 사역”이라며 “이를 위해 운동, 찬양, 율동, 필사 활동을 어르신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 참석한 많은 목회자들 아울러 그는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급식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안양시 푸드 뱅크와 연결돼, 현재 안양시 여성지도자협회로부터 음식을 공급받아, 목요일마다 30명의 어르신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과거기도 중 콩나물에 대한 마음을 하나님이 주신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여 그는 “현재 콩나물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인 ‘높은뜻섬기는 교회’로부터 콩나물을 지원 받고 있다”며 “어르신들에게 콩나물을 드리며, 전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2018년부터 한 달에 두 번 1, 3주째 콩나물 사역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그는 “치매 예방에 만두 빚기가 좋다고 들었다”며 “그래서 매월 1회 수요일마다 어르신들과 만두를 빚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20대인 4명의 자녀들이 도움을 주고 있지만, 여전히 일손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아내는 아이 4명 키우고, 지금까지 묵묵히 나를 돕고 있다”며 재정의 충당을 위해 화장품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개척교회는 힘들지만, 사역에 있어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 희망이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영혼구원 사역에 집중하다보니 불평과 원망은 자연스레 사라졌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나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다 보니, 자족을 누리게 됐다”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려 노력 한며, 어렵지만 소형교회 목회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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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1
  • "동성애 반대는 하루살이 걸러내기 아닌, 교회의 본질 지키는 일" (II)
    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김영한 박사   세계적 동성애 허용 대세에 교회는 굴복하거나 영적 투쟁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3. 한국교회는 동성애 반대(하루살이 걸러냄)에 그치지 않고 우상숭배 타파(낙타 지킴)해야 한다. 1) 동성애는 적대시 하면서 각종 우상숭배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한국교회 풍토 손 교수는 “성경은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그보다 더 정죄하는 것은 거짓말과 우상숭배”라면서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번연히 드러나는 거짓과 탐심(우상숭배, 골3:5)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미온적”이라고 지적한다. “교회 돈을 횡령해서 유죄판결을 받는 목사가 설교를 계속해도, 대형교회의 목회세습이 일어나는데도, 논문과 설교의 표절이 발각되었는데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동성애는 마치 기독교의 사활이 거기에 걸린 것처럼 맹렬하게 비판하고 나선다.”며 “한 때 술, 담배를 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처럼 지금은 동성애를 찬동하면 기독교의 적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손 교수는 동성애 비판하는 지도자들이 목회 세습하고 교권욕에 불타고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 한국교회가 책임을 묻지 않는 도덕적 불감증에 대해 윤리적 각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러한 예리한 지적에 대하여 필자를 비롯하여 한국교회 일부 대형교회와 목회 지도자들은 깊이 자성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2) 동성애 반대만이 아니라 교회 내 비리 및 우상숭배 척결 함께 해야 하지만 성경을 인용해서 ‘동성애 관련 차별금지법의 입법 등에 반대하는 것’은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일처럼 아주 사소한 일’이고, 오히려 ‘교회가 긍휼과 정의를 상실하고 부패하는 것은 낙타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손 교수 주장에 대하여 필자는 그의 취지에 찬성하면서도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가르침에 따라서 다음같이 보완하고자 한다. 한국교회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입법 반대에만 그치지 말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공공선인 정의와 윤리실천과 선행을 하는 데 더욱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동성애 반대 투쟁과 교회의 윤리 및 사회정의 운동은 양자 택일 사항이 아니라 둘 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전자에 힘을 쏟아 부어, 후자를 지나쳐서는 안될 일이다. 만일 그럴 때, 동성애 반대도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율법을 성취하는 길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기독교가 동성애 관련 차별금지법 입법 등에 반대하고 저지하는 것은 성다수자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양심과 사회적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반대운동과 더불어 교회 내부의 각종 목회세습 배격, 각종 형사 처벌 받은 목회자들의 자숙과 설교금지, 각종 권력 다툼이나 각종 금권 선거 연루자 배척 등 교회 정화 운동에 전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일까지 동성애 투쟁하는 자들에게 하라는 것은 역할분담론에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교회 내부 비리 척결 문제는 교회 원로들과 중진들이 해야 하고 동성애 반대 투쟁은 젊은 세대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보완적인 보다 적극적인 윤리적 선행운동으로 신자와 교회는 사회적 소외자들, 이주민들, 탈북민들 돌봄 등 사회적 정의 실천 등 선행 아젠다를 실천하여 사회적으로 그리스도인들 내면에서 사회를 향하여 우러나오는 이웃사랑인 긍휼과 정의를 적극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4. 동성애 이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동성애 이슈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해당한다 손 교수는 “기독교가 그런 사소한 것에 목 멜 이유는 없다. 동성애 반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라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중시했던 십일조를 하루살이에, 그들이 무시했던 정의와 긍휼은 낙타에 비유했다.(마23:23-24). 둘 다 지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낙타를 택해야 한다. 적어도 하루살이 지키느라 낙타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고 밝힌다. 특히 “한국교회가 초기처럼 예수님이 낙타에 비유했던 ‘정의와 긍휼’에 힘을 기울였다면 그 때 누렸던 도덕적 권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하루살이 같은 동성애와의 싸움에도 쉽게 이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힌다. 손 교수는 “지금이라도 낙타와 하루살이를 구분하고 낙타에 집중해야 하루살이도 구할 수 있다. 정직하고 공정해서 정의를 실천하며 하나님과 믿음을 돈, 명예, 권력 같은 하급가치를 얻는 수단으로 착각하는 우상숭배를 중단하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약한 자에 대한 긍휼에 사용하면 영적 전투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필자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손 교수는 이 대목에서 하루살이(동성애 반대)도 한국교회가 해야할 사회적 과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초기처럼 독립운동이나 신분 차별 타파운동이나 남녀 동권운동에 앞장선 것은 낙타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정직하고 공정해서 정의를 실천하며 하나님과 믿음을 돈, 명예, 권력 같은 하급가치를 얻는 수단으로 착각하는 우상숭배를 중단하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사회적 소외자들과 약한 자들에 대한 긍휼 베풂에 사용하면 동성애 전투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교회 세습, 일부 목회자의 독선적 교회 경영 및 세상법과 제도를 무시하는 탈법적 행태를 시정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그의 견해에 찬성한다. 그러나 오늘날 ‘동성애 이슈는 낙타가 아닌 하루살이 제거’라고 비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5. 기독교의 상실한 위상에 대해서는 한국교회가 깊이 다시 자성해야 한다 손 교수는 오늘날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위상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건국 후 상당기간 개신교만 군목을 보냈는데도 다른 종교나 사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기독교가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도덕적 권위를 상실해서 기독교가 아무리 옳은 주장을 해도 ‘너나 잘 하세요’ 야유만 받게 됐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명성교회의 세습으로 인한 교단의 정관 유린과 교인들 앞에서 세습 안하겠다는 세 번 약속 파기, 서울장로교회 등에서 진행 중인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간의 싸움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사회적 위상을 크게 추락시키고 있다. 한기총(한국기독교 총연맹)도 초기에는 좋은 역할을 하였다가 2011년 이래 기독교의 사회적 위상을 크게 추락시켰다. 한기총은 1989년 12월 28일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당시 36개 교단 6개 단체의 대표 121명이 서울 강남침례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출발하여 보수적인 연합기관으로 발전하여 지난 22년동안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2011년 이래 한기총 지도자들이 불미스러운 권력 다툼, 금권 선거 파동과 파행적 운영을 하자 이에 분개한 교단들이 나가서 2012년 한교연, 한교총 등이 생겨나게 되면서 한기총은 대표적 지위를 상실하였다. 한기총, 한교연, 한교총 등 보수교단 연합기관들은 교권 쟁탈에 몰두하다 대의를 상실하여 사회적 신뢰를 상실한 데 대해 통렬한 자기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낙타와 같은 큰 문제들이 한국교회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래서 반동성애 운동에 열성을 지닌 지도자들은 반드시 동성애 이슈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한국교회가 가진 사회를 향한 정의와 긍휼의 실천, 목회세습의 폐단 그리고 교권 투쟁 등 우상숭배와 탐심에 대하여 크나큰 비판의식을 가지고 이를 근절하고자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한국교회 보수진영 지도자들은 손 교수의 자기들을 향한 충언을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동성애 반대에 그렇게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자들이 사회적 정의를 세우기보다는 교권투쟁이나 명예욕의 우상에 갇혀있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자기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6.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구별해야 한다, 1) 동성애 선천적 경향 인정?손 교수는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해서 동성애자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기와 사기꾼을 구별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사기꾼은 자기가 결정해서 거짓을 저지르지만 동성애자가 모두 스스로 동성애를 택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다. 손 교수는 “보수교단의 목사의 대학생 아이들이 자신이 느끼는 동성애적 경향 때문에 심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며 동성애 성향자와 동성애 행위자를 구분해야 한다“고 밝힌다. 이에 대해 필자는 생각을 달리한다. 손 교수는 “동성애자 모두 스스로 동성애를 택한 것은 아니다.“ ”보수교단 목사의 대학생 아들이 스스로 느끼는 동성애적 성향”을 예를 들면서 “동성애 행위자와 동성애 성향자를 구분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는 동성애의 선천성, 즉 유전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나 생각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동성애 성향을 선천적 기질적으로 부여하시고, 이를 가증하다고 금기하시는 자기모순적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도 동성애 유전설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아래 7항 참조) 2) 동성애 성중독과 동성애자 인격의 분리: 동성애 행위는 죄, 동성애자는 치유받아야 할 인격 그러면서도 동성애 행위는 죄라고 지적할 수는 있으나 동성애 행위자 인격을 향하여 이성애자들이 혐오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금기해야한다고 말할 수 있고 구분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나 죄인은 사랑하시고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은 동성애 성중독에 빠져서 본인도 여기서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일반 사기꾼도 다를 수 있다. 그렇게 심리상담적으로 측면에서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동성애 반대자들이 자기는 동성애 중독에 빠지지 않았으니 스스로 의롭고 동성애자들은 죄인이라고 스스로 의로운 의식을 혹시나 가진다면 이는 교만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동성애 반대자들도 항상 자신을 돌보고 동료들을 돌보고 동성애 성중독에 빠진 자들에 대하여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들이 이러한 중독에 빠지게 된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이들이 이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마음을 갖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혹시나 스스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면서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동성애 행위”도 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매주 주정 헌금과 십일조 드린다고 감사한다면 우리는 신바리새인과 율법주의자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토색, 불의, 간음, 동성애”를 하지 않았다는 외형적인 율법 규례 이행을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우리 속에 끊임없은 죄의 욕망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겸허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면서 자기 죄 욕망 죽이기와 예수와 새로운 영적 연합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7. 동성애는 선천적이라는 유전설은 의학적 근거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손 교수는 “아직도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에 대해서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스스로 택해서 잘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보다 동성애자들을 더 심각하게 반성경적이라고 보는 것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1993년에 미국 동성애 의사인 해머(D. H. Hamer)가 동성애가 유전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그는 염색체 Xq28이 남성 동성애와 관련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1999년 미국 의학자 라이스(G. Rice)는 염색체 Xq28이 남성 동성애와 관련없다고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하였다. 2005년 해머를 포함한 연구팀이 다시 Xq28이 동성애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B. S. Mustanski a. et., "A Genomewide Scan of Male Sexual Orientation." Human Genetics 116, 2005, 272.) 동성애는 유전적인 요인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과를 획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동성애 찬성론자들이 동성애는 유전적이며 선천적이고 주장하나 이에 대하여 정통 신학자들은 동성애 선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동성애 유전자를 주입하신 하나님이 동성애는 “가증한 일”이라고 금지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자기 당착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동성애 선천성) 하시고 “아니오”(동성애 금지)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필자도 성경이 동성애를 명료히 금기하고 있는 것에 따라서 동성애는 동성애 선천성 견해는 성경적 신학적 원리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성애는 선천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이든 비자의적이든 후천적 환경에 의한 동성애 성중독에 빠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의학자들의 정설이다. 8. 양성평등의 헌법을 유지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에 앞선 글에서 손 교수는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변경하려는 헌법 개정에 대한 반대는 당연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손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에도 성소수자들에 대해서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비판과 항거가 거세게 일고 있다.”며 “특히 사회 일각에서 헌법 제36조 1항. ‘혼인괴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에서 ‘양성의 평등’을 ‘성 평등’으로 고치자는 움직임이 있어 위기감이 더욱 커졌다. 성경이 동성 성관계를 분명하게 정죄하므로 한국 기독교인들이 세계 최초의 그런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필자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양성 평등(sex equality)을 천명하는 것으로 이를 세계풍조에 맞춘다고 성평등(gender equality)으로 개정해서는 않된다. 인류문화는 변하나 인간성(성적구조와 생리)는 변하지 않는다. 성평등이란 남성과 여성이라는 창조주가 주신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생물학적 성(biological sex)을 부인하고 인간 스스로 선택하는 사회적 성(gender, social sex)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신학적으로는 인간을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젠더 이데올로기로 재구성하고자하는 “제2의 반역”(the second revolt)이라고 일컬어진다. 이를 제2반역이라고 이름 부치는 이유는 선악과 먹지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반역이 “첫 반역”(the first revolt)에 대하여 이제는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성(biological sex) 를 인위적으로 거부하고 사회적 성(gender, social sex)을 만드려고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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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연재
    2019-11-06
  • "장신대 무지개 퍼포먼스 학생, 법 이전 신앙 양심 고백이 우선"
    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샬롬나비는 장신대 동성애 무지개 사태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다. 이들은 “서울 동부지법은 장신대가 경건을 모토로 목회자를 양성하는 특수기관”이라며 “절차상의 이유로 장신대의 징계를 무효화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들은 “서울 동부지법 판결은 신학대의 특수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동성애 옹호를 금지하는 통합교단의 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징계 무효 소송을 낸 학생들을 향해 “법의 판단 이전 신앙 양심의 고백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사도 바울은 ‘세상 법정을 향해 고소하지 말라’고 했다”며 “이 말씀을 무시하고 학생들은 신앙적 양심을 버리고, 대규모 변호인단에 도움을 요청해 소송을 벌렸다”고 밝혔다. 이에 이들은 “장차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마저 외면한 파렴치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들은 “지난 9월 총회고시위원회는 목회자의 마음으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4시간 심층 면접을 통해 기회를 줬다”고 전했다. 즉 이들은 “동성애 인권 옹호 사상을 버린다면, 구제하겠다는 고시위원회위원장의 간곡한 지도와 충언이 있었다”며 “그러나 학생들은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하여 이들은 “학생들은 회개하고 돌이켜 자신들의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라”고 외쳤다. 나아가 이들은 “총회와 학교규칙을 어긴 것에 대해 처벌을 받겠다고 선언할 것”도 촉구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동성애 무지개 사태 처리 과정에 대한 논평서> 동성애 시위 학생들의 징계무효를 결정한 동부지법은 신학대의 특수성에 간섭하지 말라 통합교단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장신대의 동성애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하여 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 경건과 학문을 모토로 목회자 양성기관인 장로회신학대학교(장신대)는 총회 직영 신학교로 국내외에 3만여 동문을 배출하여 지난 12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는 영적인 지도자를 양성한 곳으로 일반 대학과는 엄연히 다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수 상황에서 장신대는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죄악으로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시기에 철저하게 그 위험성을 강조해야 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2016년과 2018년 5월 17일의 성소수자 기념일을 맞아 한경직 기념예배당에서 동성애를 지지하는 학생들이 무지개 옷을 입고 무지개 깃발을 날리며 심지어는 예배 위원도 아닌데 강대상 위에 올라가서 십자가 아래서 기념촬영을 하여 자신들의 페이스 북에 보란 듯이 동성애 지지 홍보를 하였다. 이 사건은 한국교계와 사회에서 큰 물의를 야기하였고, 교단 내에서는 학교당국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였다.이런 학칙에 어긋하는 시위 행동에 대해서 장신대는 학칙에 의거하여 학부생을 제외하고 목사후보생인 신대원생에 대해서 징계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해당 학생들은 무효 소송을 냈고, 2019년에 동부지법은 이 학생들의 소송을 받아들이고 나서 ‘절차상의 하자’를 문제 삼아 징계 무효판결을 내렸다. 이런 일은 장신대뿐만 아니라, 직영 신학교를 관리 감독하는 통합교단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이들 학생 2명은 군목후보생으로 2019년 5월 목사고시에 응했으나 총회고시위원회는 심층면담을 통해서 이들이 동성애 인권신학을 버리지 않음을 확인하고 불합격시켰다. 총회 고시위원회는 정당한 판결을 하였다. 샬롬나비는 동성애 무지개 사태에 대하여 다음 문제를 제기하며 장신대와 통합교단의 결단을 촉구한다. 1. 동생애 인권 주장하는 학생들은 신앙 양심에 따라 스스로 처벌을 받겠다고 나서야 한다.법의 판단 이전에 양심의 고백이 우선이다. 고소하지 말라고 가르친 사도바울의 말씀이 무색할 정도로, 징계를 받은 학생들은 목회자 후보생과 신학생의 본질과 신앙적 양심을 저버리고 대규모 변호인단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장신대를 상대로 징계무효 소송을 벌렸다. 이는 장차 교회에서 영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마저 외면한 파렴치한 행동이다. 누가 이런 사람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인정하고 영혼의 파수꾼으로 세우겠는가? 법에 호소하여 자신들의 징계를 푼 학생들은 신학생의 자격뿐만 아니라 목회자 후보생의 자격이 없으며, 더 나아가서 교회에서 일할 기본적인 소양마저 저버린 자들이다. 성경은 양심을 속이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경솔하게 대하는 이들은 스스로 버림받은 자들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지난 2019년 9월 총회고시위원회에서 목회자의 심정으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4시간 동안이나 심층면접을 하여 동성애 인권사상을 버리겠다고 서약하면 구제하겠다는 고시위원장의 간곡한 지도와 충언을 이들 학생들은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들 학생들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켜 자신들의 잘못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총회 규칙과 학교 규칙을 어긴 것에 대하여 스스로 처벌을 받겠다고 양심선언을 하라. 2. 장신대는 법원 무효결정에 대해 항소하고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해당자들을 다시 징계하라.장신대가 징계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항소하지 않는다면, 이는 직무유기이다.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리고도 학칙대로 징계를 한 학생들에 대해 법원이 절차상의 하자를 근거로 징계무효 판결을 내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장신대의 안이한 대응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법원이 징계무효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학생사랑이라는 미명으로 내심으로 환영하고 있는 일부 교수들의 보이지 않는 태도는 지극히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학생들이 징계에 불복하고 세상 법정에 장신대를 고소하였으니, 당연히 장신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학생징계가 정당함을 항소를 통하여 끝까지 보여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신대는 잠잠하다. 그러므로 장신대는 세상 법정에 항소하여 신학교가 학칙에 따라 동성애 지지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정당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동시에 절차상의 문제로 징계무효 처분이 내려졌으므로, 학교 당국은 지적된 절차상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다시 징계를 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장신대의 학칙이 정당하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분명하게 각인을 시키고 한국교회 전체를 동성애로부터 지켜 나가야 한다. 3. 국가기관(법원과 국가인권위)은 신학교의 특수성과 목회자 양성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간섭하지 말라.신학교는 일반대학과 다르다. 일반대학은 세상일에 필요한 지도자를 세우는 곳이지만, 장신대는 하나님의 일꾼을 키우는 하나님의 학교이다. 정교분리와 제정분리의 원칙이 국가가 교회를 간섭하지 말라는 의미이건만, 동부지법은 막강한 국가 권력을 통하여 종교 교육기관의 내부 일에 간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분명히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동이다. 아직도 대법원에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사상누각처럼 초법적인 자세로 장신대 내부의 자율적 교육방침에 간섭하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 이사장과 총장은 1년 5개월 지난 데도 미해결인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장신대는 이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늘날 장신대 동성애 사태는 온건한 보수신학의 입장을 지닌 대다수의 훌륭한 교수들보다는 표면적으로는 동성애 반대를 표명하나 동성애 인권신학을 학교 행정적으로 시행해온 학교 총장의 친동성애 행보와 이를 묵인해온 이사장의 학교 행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신대 당국인 총장과 이사장은 동성애 무지개 사태에 대하여 학생을 바르게 지도하기 위하여 교회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학생징계를 절차상 이의없이 했어야 했다. 그런데 학생 징계를 하지 않고 미루고 있다가 총회와 노회 및 교계의 압력에 밀려 졸속으로 하여 절차상 하자로 무효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장과 총장은 단 한마디 사과나 책임을 지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이것은 신학대의 행정과 운영 책임자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학생지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법원에서 징계무효 소송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상하게 관여한 이사장과 총장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당장 책임지고 사퇴하는 것이 장신대에서 학생지도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일꾼을 세울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구태의연하게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5. 통합교단 6개 노회 대책위원회가 장신대 남문에서 장신대치동성애 규탄 성명 발표했다. 지난 2019년 2월과 3월에는 통합교단 6개 노회 대책위원회는 장신대 남문에서 장신대가 총회가 동성애 이단 결정에 대한 이행을 재대로 하지 않고 있음에 대한 규탄 집회가 있었다. 2019년 2월 7일 오후 장로회신학대학교 남문 앞에서 총회장 예장 통합총회 내 6개 노회 동성애(함해, 강동, 충청)·이단사이비(포항, 포항남)·이슬람(대전서) 대책위원회는 제 103회 총회 결정에 반하는 장신대 측의 친동성애 행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6개 노회 대책위원회는 특히 아직도 장신대가 동성애 운동가 초청, 동성애 인권 강좌 개최 등 친동성애 행보를 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장신대와 장신대 교수들이 동성애를 죄라고 하면서 동성애 인권화를 묵인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친동성애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103회 총회가 끝난 직후에 교수가 채플 시간에 동성애를 옹호하는 설교를 하는가 하면, 신학춘추가 반동성애 운동가 25인을 가짜 뉴스로 매도하고, 동성애 운동가를 데려다가 동성애인권 강좌를 열며,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교육지침 간담회'를 빙자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동성애 인권화 논리를 펴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6개 노회 대책 위원회는 103회 예장 총회 이후에도 총회결정을 이행하지 않고 장신대 당국이 동성애 인권 강사를 초빙하는 등 친동성애 행보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규탄한 것이다. 6. 통합교단은 교단의 중심 교육기관인 장신대의 동성애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이라.예장 통합의 대표적인 장로회신학대학이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처럼 동성애 수용대학이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이에 대하여는 총회교육부와 동성애대책위원회가 1년 반 전에 동성애 지지사태가 일어났으나 아직도 해결하지 않고 작년 103회 총회의 동성애 이단 결정 이후에도 여전히 친동성애 행보를 그치지 않는 장신대에 대하여 특별한 진상 조사하는 것이 요청된다. 2016년부터 2019년에 이르기까지 장신대 안에서는 크고 작은 동성애 문제가 끊이지를 않았다. 이런 와중에도 ‘젠더와 사회’라는 과목이 개설되어 있으며, 각종 세미나와 특강에서 친동성애 강사들이 초청되어 강연을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개인적인 비리라고 징계가 내려지기 전에 외부에 피의자 사실 공표에 해당하는 언사가 총장에 의해 여러 차례 반복되는 와중에 S교수를 세 차례나 징계를 한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또한, 신학교에 대한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통합교단은 지난 4년 동안 장신대에 있었던 일들과 특히 현재 이사장과 총장의 재임 시절에 있었던 동성애 문제에 관해 철저한 조사를 하여 장신대의 영적인 지도력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 예장 통합 산하 노회는 신학생의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라.예장 통합교단은 작년 103회 총회에서 동성애 퀴어신학을 이단사상으로 결정하고 이러한 사상을 옹호가는 신학생들이나 동조하는 지원자들을 총회 산하 목회자로 세우기를 금지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는 교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교딘의 올바른 결정이라고 평가된다. 이 결정이 제대로 효력을 가지려면 실제로 총회 산하 노회들이 신학생 감독을 보다 철저히 해야만 한다. 이번 동성애 인권을 주장하는 학생 두 명이 목사고시에 응했으나 고시위원회의 4시간 동안 심층면접에 있어서 동성애 인권신학을 버리지 않곘다고 주장함으로써 불합격 처리되었다. 이런 사태가 생기지 않으려면 각 노회가 목사고시생들의 품행과 신학사상을 철저히 정검하여 이런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신학생이 소속된 교회는 개개인과의 안면과 친밀한 관계로 아무리 문제를 일으켜도 쉬쉬하면서 덮어가려고만 하기에, 목회후보생에 대해 매학기 신학계속추천서를 써주는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노회는 신학생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형식적으로 불러서 도서비만 주지 말아야 한다. 식사대접을 하는 격려의 차원도 필요하지만, 동성애 지지에 관한 지수를 확인할 수 있는 면담 질문을 활용하여 신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 자료를 통해서 개개인에 대한 지도를 강화해야 한다. 이런 심층 면접은 신학생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제대로 된 영적인 지도자를 키우는 해당 노회에 대한 소속감과 자긍심을 갖게 하는데 귀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8. 지교회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신학생들이 교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라.신학생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자기들이 사역하고자 하는 교회의 장로이다. 이 점에서 장로들은 철저하게 보수적이며 예장 통합교단의 전통을 지키려는 분들이므로, 인사문제를 목회자에게만 일임하지 말고, 인선 위원회에 들어가서 새롭게 지원한 신학후보생들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지교회마다 전통이 있는데 평생 동안 한 교회에서만 섬긴 장로들의 영적 지도력은 현대 목회에서 평신도 사역이라는 측면에서도 아주 필요한 부분이다. 과거 장신대에 수도 없는 데모가 있을 때마다 장로들이 ‘저런 문제아를 교회에서 청빙하면 안 된다’라는 목소리를 높일 때, 신학생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중하던 일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므로 지교회의 목회자는 장로와의 두터운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교육전도사를 청빙하는 단계에서부터 평신도의 인사 참여를 보장해 줌으로써, 목사후보생이 지교회의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는 풍토를 처음부터 존중하게 해야 한다.                                 2019년 10월 7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 신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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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07
  • "한국교회에 고하는 청년들의 외침"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다만 사랑할 뿐 이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습작 시인이었던 리자 하이제 부인과 서신을 주고 받으며, 엮은 책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온 한 대목이다. 고집불통으로 꽉 막힌 할머니와의 갈등에 리자 하이제 부인은 답답한 심경을 릴케에게 토로한다. 그러자 릴케는 하이제 부인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다만 사랑할 뿐 이죠”라고 다정하게 말해볼 것을.   발제자 중 한 명인 정은혜 청년이 그렇게 말하자(실제로 이를 인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릴케의 말이 곧바로 떠올랐다. 그리고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죽은 릴케의 삶이 생각났다. 젊은 세대와 어른들은 “서로의 가시를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가시를 끌어안고 사랑하라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9월 조찬기도회는 ’한국교회에 고하는 청년들의 외침‘이란 주제로 발표회를 준비했다. 20일 오전 7시 도곡동 소재 한우리교회에서 열렸다. 대구동신교회 청년부 담임 배준현 목사의 설교가 있은 후, 첫 번째로 20대 대표 이다현 자매(동덕여대 조교)가 발표했다. IVF 출신인 그는 “현재 한국교회는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다현(동덕여대 조교)   이어 그는 “한국교회는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 문제로 환원해, 망언하는 목사들도 여럿 있다”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공감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 단순히 ’믿음 없음‘과 말씀으로 악하다고 재단했다”고 비판하며, “한국교회는 지금 수면위로 떠오르는 노동, 여성, 청년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는 은혜와 평안만 가득했고, 사회적 어려움에는 무관심했다”면서 “교회는 이들을 바라봐야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무조건적 믿음과 감사만 강요 한다”면서 “그럴수록 청년들은 교회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다고 생각 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는 여성의 문제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출산, 가정, 남자보다 능력이 낮을 것, 남자들에게 당하는 성폭력은 외면하고 그저 남자들을 만족시켜 주는 존재’로 강요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 교회는 억눌려온 여성들의 문제에 깊이 공감하기”보다 “출산율 낮으니 애 낳으라는 사회적 요구만 반복 한다”고 재차 말했다. 뒤이어 그는 “여성의 입장에 서지 못한 목회자들의 메시지는 더욱 가혹하다”면서 “교회는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목회자의 성범죄 문제는 이런 인식으로 인해 표면화 된 결과”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 내 직분도 여성 차별적”이라며 “여성 목회자는 교단에서 소외되고 있고, 이는 여성의 인권 유린과 직결됐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교회는 이웃의 아픔에 공감해야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예수께서는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셨다”며 “예수께서 제자들의 칭송에만 만족한 채,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라고 반문했다. 또 그는 “우리끼리 성전 안에서 행복하면 다 일까”라며 “현재 한국 교회는 성장에만 매몰되고, 예언자적 메시지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교회 내에 약자들이 더욱 자리 잡아야한다”며 “복이 아닌 고통 받는 자들과 함께 우는 교회가 되기”를 촉구했다. 끝으로 그는 “청년부에서 나의 고통과 아픔을 끌어안으셨던 목사님의 헌신으로, 방황했던 나는 교회에 돌아왔다”고 고백하며, “한국 교회 목회자들도 말과 삶이 일치된 목회”를 부탁했다. 정은혜(하버드 케네디스쿨)   30대 대표로 정은혜 자매(하버드 케네디 스쿨 졸업)가 발제했다. 그는 “미국 하버드를 졸업하고, 남편을 만나 출산 후 한국에 돌아왔지만 취직이 안됐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사회는 여성인 나에게, ‘욕심 부리지 말고 남편과 자식 내조하며 살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다”고 술회했다. 그 때 그는 하나님께 묻고 따지고 싶은 감정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힘든 공부하고 훈련시키셨는데, 왜 나를 쓰지 않으세요”라고 말이다. 언제는 그의 아버지가 목회하고 있는 개척교회에 하나님께 따지러 갔다고 했다. 그는 “한 청년이 허름한 교회에서 공부하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면서 “교회 로비를 깔끔하게 바꾸고 싶어, 당회에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부터 그는 세대갈등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60대 어르신들은 ‘우리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왜 로비를 개선 하냐? 차라리 본당을 개선하라’고 했다”며 “40대 권사님들은 우선 주방부터 개선하자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그는 “그 말은 맞다”며 “각 세대들이 바라본 우선순위의 시각은 달랐고, 모든 우선순위는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달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 재학 중, 로널드 하이페츠 교수(Ronald Heifetz)의 ‘리더십 수업’을 인용해, 논지를 전개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위안부를 몸소 겪지 않았어도, 그들의 아픔에 절절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과거의 역사적 배경을 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60대 어른, 40대 여성들의 우선순위는 사회적·역사적 배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하이페츠 교수를 빌려 “우리는 각자마다의 무대에 서있다. 무대에 서 있으면 내 모습을 볼 수 없다. 내가 무대 밖에 나가서 자신을 바라보라"고 전하며 “그 말에 따라, 무대 밖에 나가 생각해보니 60대 어른, 40대 권사들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고 강조했다. 결국 그는 “마음에 깊이 공감해 60대, 40대 모두가 만족할 제안으로 로비를 리모델링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그는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즉 그는 “교회를 아름답게 짓는 게 목적이 아니”라며 “교회 개선 과정 중 한 분 한 분 성도들을 이해하고, 협력하고, 섬겼던 모습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신 최선의 리모델링(Remodeling)이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편 그는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에게 “요즘 애들은 너무 나약해. 너희들은 꿀꿀이죽 먹으며 배고픔 견뎌봤니? 독재 겪어봤어?”라는 말로 다그친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젊은 세대들과 기성세대들이 처한 시대적 배경은 다르다”라며 “젊은이들은 스마트 폰 세대인 만큼, 서로의 시대적 상황은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로의 시대적 배경에 처해보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지만, 다만 사랑할 뿐”이라고 역설했다. 하여 그는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때 세대 간 갈등은 줄어들고, 화합하며 같이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기성세대들에게 이런 말을 덧붙이며 발제를 마무리 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다만 사랑할 뿐이죠"   한반도평화연구원 이창현 사무국장 마지막으로 한반도평화연구원 이창현 사무국장의 발제가 이어졌다. 그는 “현재 한국 교회의 문제는 1990년대 한국 교회가 겪었던 문제의 연장선”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1990년대 선교, 컨퍼런스 등 많은 행사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돌파는 없었다”며 “현재도 새로운 주제는 끊임없이 떠오르지만, 체계는 90년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40대인 나는 1990년대 20대를 보냈고, 한국 교회의 성장 세례를 받았다”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기대했던 그 시절, 우리가 꿈꿨던 비전, 말씀이 현재 이뤄지고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단언하며 그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현재 교회는 시스템화 됐고, 건축·확장 일변도로 성장주의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고 비판하며, “그렇지만 성도 수는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세상은 회계 프로그램으로 정확하고 투명한 재정 보고를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교회는 현재도 금전 출납부를 쓰고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그는 “옛 세대들이 이렇게 하는 게 익숙하다는 말을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세대가 자식들에게 금전 출납부를 쓰라고 종용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따라서 그는 “40대들은 차라리 교회에 어떤 외침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로 그는 “외쳐봤자 교회 의사결정에 반영되지 않고, 윗세대들과의 협력도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또 그는 “지금의 기성세대는 민주화·산업화를 거쳤다”며 “그러나 87년 체제 이후, 다양한 사회적 의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음에도 교회는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가령 그는 “2002년도 주 5일제 논쟁에서, 교회는 단순히 주일성수 하나에만 프레임이 매몰됐다”고 전했다. 때문에 그는 “교회가 더 많은 사회적 의제에 대처하고, 그 외연을 확장할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 내 의사결정구조는 성장을 위한 구조로 특화됐다”며 “이 구조화 이후 후계 목회자의 선정 문제에 봉착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래로부터 위로 여러 의견을 수렴하기 어려운 구조로 고착화 됐다”고 분석했다. 하여 그는 “교회 내 여러 의사를 수용할 기구를 만들어야한다”며 “교회는 좀 더 유연해지고, 변화를 모색해야한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그는 “교회는 교회의 문제를 정면 돌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즉 그는 “목회자의 성범죄, 교회의 재정 문제 등을 사회 신문기사에서 종종 접한다”며 “그럼에도 교회는 이에 대해 침묵 한다”고 지적했다. 이유로 그는 “덕이 되지 못하고, 개 교회 문제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교회의 문제를 교회에서조차 얘기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디서 씨름해야 할까”라고 반문했다. 이를 위해 그는 “현재 교회의 의사결정구조를 좀 더 유연하게 했으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하여 그는 “교회는 본질로 돌아가야 하며, 앞선 문제들을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한국 교회는 진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 신촌성결교회 원로 이정익 목사     청년들의 외침을 듣고 일선 목회자들이 부연했다. 사회를 맡은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는 “청년과 기성세대 간 갈등이 심각하지만, 단순히 청년들의 문제를 ‘믿음 없음’으로 환원시킨 문제”라며 “3명의 발제에 90% 공감 한다”고 했다. 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는 “좋은 발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20대가 지적한 남성 위주의 교회 운영을 생각하며, 장로교는 여성 안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하여 그는 “깊은 도전을 받았다”며 “복음주의 교회는 그런 화합적인 교회 운영을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촌성결교회 원로 이정익 목사는 “맘껏 발언을 쏟아내도록 젊은이들에게 멍석을 깔아두었지만, 너무 분위기에 휩쓸려 누그러졌다”며 “젊은 정신으로 더욱 할 말을 밀어붙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교계뉴스
    • 총회
    2019-09-23
  • "동성애 수용 교회는 거룩성을 표지로 하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김영한 전 숭실대 기독대학원장   김영한 박사(전 숭실대 기독대학원장)는 손봉호 교수의 ‘동성애 반대 투쟁 과유불급’론에 대한 비판 논평을 발표했다. 그는 “손봉호 교수는 동성애 반대는 하루살이와 같고, 세습 등 각종 비리 투쟁에 보다 더 집중해야 함을 말했다”고 전했다. 물론 그는 “손 교수가 제안한 한국교회 윤리 문제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동성애 반대, 목회자의 윤리성, 정의와 긍휼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닌 모두 다 지켜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영한 박사는 "동성애 반대는 하루살이 같은 사소한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신구약 전체에서 동성애는 교회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가증한 죄로 보았다”며 “교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동성애 반대를 외쳐야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독일 신학자 판넨부르크는 동성애 수용 교회는 사도성, 거룩성을 표지로 하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말했다”고 인용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대한민국이 차별금지법 등 동성애 반대를 차단하는 법제화를 추진하려한다”며 “이는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로서, 한국 교회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효과적으로 맞서 싸워야한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동성애, 전세는 기울었다”는 손봉호 교수의 ‘동성애 반대 투쟁 과유불급’론에 대한 논평>동성애 반대는 하루살이 걸러내기 아닌, 교회의 본질 지키는 일.(III) -세계적 동성애 허용 대세에 교회는 굴복하거나 영적 투쟁을 멈추어서는 안된다-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9. 한국교회는 동성애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싸우지 말고 전략적으로 싸워야 한다. 1) 손 교수의 반동성애 전략: 동성애 투쟁보다는 교회의 각종 비리와 우상숭배 투쟁이 효과적. 손 교수는 반동성애 전략을 강조한다: 그 전략이란 현상황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정확한 전략이며, 교회가 동성애에 전력을 소진하여 교회의 세습, 각종 비리와 부패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전략을 다음같이 피력한다: “반대에도 올바른 평가와 정확한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낙타는 통과시키고 하루살이는 걸러내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그보다 더 정죄하는 것은 거짓말과 우상숭배다....교회 돈을 횡령해서 유죄판결을 받은 목사가 설교를 계속해도, 대형교회의 목회세습이 일어나는데도, 논문과 설교의 표절이 발각되었는데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동성애는 마치 기독교의 사활이 거기에 걸린 것처럼 맹렬하게 비판하고 나선다.” 손 교수에 의하면 “기독교는 동성애 반대라는 사소한 일에 목 멜 이유가 없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중시했던 십일조를 하루살이에 그들이 무시했던 정의와 긍휼은 낙타에 비유했다(마 23:23-34).” 그는 말한다: “둘 다 지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낙타를 택해야 한다. 적어도 하루살이를 지키느라 낙타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에 동감하면서 동성애와 교회의 윤리적 책임을 양자 택일로 보지 않고 한국교회가 둘 다 지키도록 했으면 제안하고 싶다. 한국의 일부 보수주의자들이 성수주일, 새벽 기도, 십일조, 십계명, 반동성애 등은 금과옥조처럼 여기면서, 목회자로서 교인들에게 행한 공적 약속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거짓말 안하기, 각종 교회권력 탐욕 투쟁과 제거, 율법의 정신인 사회 정의와 주변의 소외자들에 대한 긍휼 실천 등은 등한시하거나 지나치는 것에 대한 손 교수의 지적은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한국 복음주의자들은 그냥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략으로 싸워야 한다. 그래야 이길 수 있다. 2) 동성애 반대는 사소한 일 아닌 교회의 본질 지키는 일 필자의 좁은 생각으로는 동성애 반대는 기독교의 본질을 지키는 문제로 생각된다. 성경이 구약과 신약 전체에서 동성애를 “가증한 일”(죄)로 보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는 하루살이 걸러내는 사소한 일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스와 헬레니즘 문화는 동성애를 수용했으나 히브리 유대교 문화는 동성애를 금기했다. 그 중요한 이유란 전자는 인본주의 문화인데 반하여, 후자는 신본주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는 계몽주의를 통하여 현대의 해체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해체주의 문화에 합리성과 윤리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유대 기독교 문화 전통이다. 신마르크스주의의 본산지 프랑크푸르트학파 출신인 비판사회학자 하버마스는 가치와 윤리의 합리성과 보편성을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면서 정의, 사랑, 평등의 보편주의의 가치성을 인정하고 문화적으로 키워온 모더니즘을 옹호하였다. 그리고 모더니즘이 가져다 준 자유와 연대적 공존, 자율적 삶의 영위와 해방, 개인적 양심도덕,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평등한 보편주의는 바로 유대교의 정의 윤리와 기독교의 사랑 윤리의 직접적인 유산이라고 천명하였다. 하버마스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고 모더니즘이 가져온 정의, 사랑, 평등의 보편주의의 가치성을 인정하고 그것이 유래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을 인정한 것은 주목할만하다. 기독교 문화는 모더니즘이 가지고 있는 비판적 합리성과 전통의 아름다운 유산을 수용하고 있다. 창세기 19장은 동성애 폭력으로 인한 소돔 고모라의 유황불 심판, 사사기 19장은 동성애 폭력으로 인한 베냐민 지파에 대한 심판, 로마서에 바울이 로마서 1:24-27에서 로마 헬라니즘 시대 만연한 동성애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고린도전서 6:9-10에서 동성애자들이 하나님 나라 들어감 배제 언급 등이 명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의 보편사 이성신학자 판넨베르그는 동성애 수용 교회는 보편성, 사도성, 거룩성을 표지로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고 했다. 10. 동성애 투쟁은 하루살이 걸러내기가 아니라 낙타(차별금지법 등 법제화 방지)를 잡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하루살이는 열심히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 자들’이라는 비판하는 것은 동성애 투쟁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동성애 투쟁은 다음 다섯 가지 중요한 목적을 갖는다. 1) 동성애 제도화 방지 첫째, 동성애 퀴어 축제나 풍조가 한국사회에 제도적으로 발붙이지 못하도록 한다.오늘날 영국이나 미국사회에서 동성애 비판적 설교를 하거나, 동성애자들의 요구에 거절하게 되면 법적으로 혐오 내지 차별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실증법 위반일 경우 벌금이 부과되거나 감옥에 가게된다. 그리고 많은 복음주의 목회자들과 성도들도 이러한 동성애 제도화에 의한 영적 황폐함에 영향을 받는다. 이들은 동성애를 비판하면 경찰서에 불러가서 조사를 받고 조사관이 조서(調書)를 쓰게 되고, 다시 법원에 불러가서 재판을 받이야 하는 등 당사자들은 많은 신경이 쓰이고 다른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들을 구상할 시간과 에너지를 뻬앗기게 된다. 동성애 허용 그리고 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영국이나 미국, 캐나다 등 유럽과 북미 사회에서 교회는 영적의 피폐함으로 교인수가 격감하고 영적인 황폐함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2010년대 들어와 동성애 퀴어축제가 서울광장에서 대규모적으로 개최되었는데 만일 한국교회가 영국이나 미국교회처럼 이를 조용히 보기만하고 침묵했더라면 이들 동성애 퀴어축제 세력은 벌써 한국사회를 점령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동성애대책협의회를 구성하여 이에 대응하여 맞불 축제를 평화로운 문화마당으로 개최하여, 동성애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성윤리를 해방하고, 보건학적으로는 에이즈 유발의 중요요인이 되며 각종 질병을 야기시키는 부작용을 폭로함으로써 교회와 사회의 각성을 일으켜서 이만큼 그 창궐을 막아 온 것이다. 2) 정부의 성평등 정책 반대 둘째, 동성애 허용하는 정부의 성평등 정책을 반대하는 것이다.정부가 2018년 8월 대통령령으로 행하고 있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으로 실시하는 성평등정책을 집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대통령령으로 하고 있는 NAP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양성평등정책에 위배되고 있다. 국가의 NAP성평등정책은 각 공공기관 뿐 아니라 심지어는 교회에까지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심각한 정교분리 원칙의 위반이다. 경기도 의회의 개정된 조례에 따르면 ‘사용자’에 해당하는 기업과 종교단체에도 성평등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데, 이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채용하라고 강요하는 차별금지법과 같은 효과를 내는 조례의 형태로, 그것도 위법적인 독소조항까지 마음대로 포함시키고 있다. 영국도 2006년부터 평등법을 통해, 성적 지향·젠더를 넣었다. 이처럼 서구교회는 정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것을 방관하였고 오늘날 교회와 선량한 시민들이 폐해를 입고 있다. 2019년 7월 29일 경기도 성평등 개정 조례안 제정 반대대회에서 전윤성 변호사는 최근 폭발적으로 성 평등 조례 발의가 생긴 이유를 전했다. 그는 “정부는 성 평등 지수에 따라 지자체에 예산 분담을 달리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라며 “지자체들이 예산을 더 얻기 위해, 성 평등 조례를 서둘러 발의·통과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2016년 경기 성 평등 백서에는 ‘양성평등 기본법에서 동성애 차별을 다룰 수 없기에, 동성애를 포함한 성 평등 조례를 추진하라’고 나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는 “경기도는 성급히 성 평등 조례 개정안을 추진하려 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NAP 성평등정책은 우리 사회는 초기 단계니까 그 피해의 시례를 감지하기가 쉽지 않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성평등정책의 구체적인 실례는 남성이 여성의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으며 심지어는 남성이 여성 샤위실이나 목욕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황당한 일이다. 유치원에는 엄마 아빠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양친1 양친2 등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스코틀랜드 국가 보건소는 엄마 아빠 용어는 유치원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용어가 동성 부모를 차별하기 때문으로 본다. 스위스 연방총리원은 엄마, 아빠 용어를 “부모”(Parent) 같은 젠더 중립적 용어(gender-neutral language)로 대치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엄마 아빠라고 불러질 때 젠더주의자 부모들은 강한 차별을 느끼기 때문에 행정 관리들이 언어를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에서는 엄마, 아빠 대신에 “부모1,” “부모2”로 부르고 있다. 3) 차별금지법 제정 사전 봉쇄 셋째, 동성애 반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사전에 봉쇄하는 것이다.동성애 반대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동성애 성행위를 죄라고 지적하고, 당사자가 이런 성중독에서 벗어나도록 사랑과 인내로 권면하고 기도하며 상담하며 도와주며, 사회적 차원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우리 사회와 교회에 제도적 역차별로 주어지는 정상적인 성다수자의 비판을 자갈 물리는 인권 침해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 비판 등 양심, 표현, 출판, 비판이라는 민주시민의 기본권이 제약 당하게 된다. 성소수자의 편의를 위하여 성다수자의 비판, 심리치료사들의 전환치료 자유, 목회자들의 회심 전도 자유가 침해당하며, 각종 사회시설이 성소수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고쳐짐으로써 사회적 제도와 시설이 바뀐다. 제3의 성, 중성 화장실 등이 그 예다. 따라서 동성애 투쟁의 문제는 단지 교회 내의 부정부패와 탐욕의 제거에 그치지 않고 성다수자와 불의를 고발하는 복음 전파자에게 족쇄를 채우는 민주시민의 양심, 표현, 비판, 출판의 기본 자유권을 제도적으로 지키는 것이다. 시민들이 동성애가 죄라고 비판할 수 있는 시민적 양심, 표현과 출판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동성애자들 가운데 전환치료를 원하는 자들에게 상담치료 상담심리학자들의 접근을 자유스럽게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법적으로 동성혼을 인정함으로써 친족상속법을 포함한 민사법 전반을 개정해야 하는 혁명이 일어난다. 성전환 수술 받은 남자가 여성의 전용공간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가능한가? 서구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젠더는 자기마음으로 생각하는 성”이며, 수십 가지의 성을 인정하는데, 여기에는 뉴트로이드(Neutrois),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 바이 젠더(Bigender) 등이 있다고 한다. 젠더 플루이드는 성이 유동적이어서, 아침에는 남자였다가 밤에는 여자가 되는 것이다. 또 바이 젠더는 남자인 동시에 여자이다. 이러한 성평등이 제도화되는 것을 막는 것을 하루살이 제거라고 말할 수 없다. 영국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교회가 동성애 허용 결과에 대한 정보 부족과 소극 대응으로 국가가 동성애 소수자들을 인권차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동성애 차별 금지법 제정을 막지 못했다. 캐나다는 2005년 “인권법”, 프랑스는 2008년 “차별 금지법”, 영국은 2010년 “평등법”, 미국은 2016년 9월 현재 32개주에서 “증오 법죄법”의 이름으로 법제화되어 있다. 이러한 차별금지법의 법제화는 실제적으로 미국에서는 성다수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며 평범한 일상적인 생업에 다음같이 거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역차별의 구체적인 예로 2017년 미네소타주 웨딩포토 사진사 앤젤과 칼 라슨(Angel &Carl Larsen)부부의 경우다. 결혼 15년 차인 이들 부부는 Telescope Media Group이란 회사를 미네소타주 세인트 클라우드시에 설립하여 웨딩 사진영역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면서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옹호 조장하는 웨딩사진은 찍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차별금지법 위반이 되었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원치 않는 동성결혼 사진을 억지로 찍어야 하고 이를 거부하는 경우, 매 번 상당한 금액의 벌금을 내거나 90일씩 감옥에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다른 역차별 경우는 스코틀랜드 학교에서 양성만 있다고 주장한 학생의 퇴학 처분이다.한 스코틀랜드 학교의 경우 ‘남자·여자 외에 다른 성은 없다’고 말한 학생을 퇴학시켰다고 한다. 그 학생은 ‘표현의 자유로서 말했다’고 항변했지만, 교사는 ‘학교 규칙에 어긋 난다’고 입 막았다”고 했다.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이렇게 동성애·젠더를 반대하는 표현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다. 이것들은 이미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외국의 경우인데 한국사회에서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실시될 경우 여러 가지 역차별이 일어나게 되는데 한국교회가 이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며, 이는 지혜로운 일이다 4) 교회는 동성애 도피처, 안식처, 치료처 상(像) 정립 넷째, 한국교회 동성애 반대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긍휼과 사랑과 관용 처방과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지나치게 반대 투쟁에 애쓰다가 보면 동성애 성중독에 빠져 고통하며 신음하는 자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과 긍휼을 놓칠 수 있다. 이는 혹시 한국교회 동성애 투쟁이 놓칠 수 있는 다른 측면일 수 있다. 한국교회 동성애 반대가 ‘정직하고 공정한 정의 실천, 하나님과 믿음을 돈, 명예, 권력 같은 하급가치를 얻는 수단으로 착각하는 우상숭배 배척, 복음을 약한 자에 대한 긍휼로 사용함’을 놓칠 수 있다. 손 교수는 원로로서 젊은 세대들이 놓치기 쉬운 이 면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중요한 측면이며 지혜로운 권면이다. 동성애 반대와 투쟁에만 열정을 다한 나머지 기독교인의 진리에 대한 헌신이 사회적으로는 “율법주의자”의 행동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 투쟁에 임하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저들과 다른 나는 의인이 아니라 나도 저들의 처지에 빠질 수 있는 죄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겸허하고 겸손하게 “성령이시여, 저들의 눈을 여셔서 진리를 알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이 운동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외면적으로 동성애가 죄(성중독)이라고 말하나, 내면적으로는 동성애자들 인격에 대한 연민과 긍휼과 사랑의 처방을 가지고 이 사역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야말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박해자가 아니라 도피처와 안식처와 치료처라는 상(像)을 우리 사회 가운데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사회의 동성애 허용 역사를 보면 1969년 스톤웰 항쟁(Stonewall riots)에서 보듯이 당시 동성애자들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고 사회적으로 심한 소외자로 취급받아 경찰들의 습격을 받아 강제로 해산당하는 가운데서 동성애자들의 폭동이 일어났고 이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회적 연민과 동정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 예수께서 세리와 창녀들의 친구와 상담자가 된 것처럼 한국교회는 오늘날 동성애 성중독에 의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저들을 이해해주고 상담해주며 성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해주고 도와주고 인도해주는 상담소, 도피처, 안식처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종로3가에서 동성애자 카페를 운영하면서 탈동성애 운동을 이끌고 있는 이요나 목사, 박진권 선교사가 이 일을 선도해주고 있다. 모든 각 지역교회 목회자들, 의사들, 상담가들, 심리치료가들이 이 일에 함께 협력해야 할 것이다. 5) 교회의 영적 정체성 보존을 위하여 동성애 반대는 필요하다.다섯째, 동성애 반대는 교회의 영적 정체성 보존을 위하여 필요하다.동성애를 허용하는 교회나 목회자나 신자들의 경우 영적 공허감이나 허탈감에 지배되게 된다, 이런 상황에 대하여 아모스는 말세에 온 지구촌에 미칠 영적 기근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11절)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12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암 8:11-13). 아모스는 이 구절에서 이스라엘의 배교적 신앙 시대를 향한 영적 상황을 예언하고 있다.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영적 갈함으로 쓰러지는 이유에 관하여 14절(“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들은 사마리아(Samaria)의 죄된 우상인 단(Dan)의 신들이나 브엘세바(Beersheba)의 신들을 섬기는 자들이다. 단(Dan)에는 예루살렘에 이어 둘째 왕립 성소가 있었는데 여기에 금송아지 우상이 있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이러한 우상들을 섬겼다. 그래서 이들은 영적 공허나 굶주림에 빠진 것이다. 신약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야곱의 우물 마주보고 있는 그리심 산(Mt. Gerizim)에서 우상을 섬겼다. 역사적 예수는 삶에 지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예배, 성령과 진정의 예배 드릴 것을 말씀하셨다(요 4: 21-24). 오늘날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교회들은 종교다원주의에 노출되어 참된 성경적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벗어난 혼합 종교의 예배를 드린 데서 영적 황폐함과 진정한 내면의 위로와 평안이 없는 영적 공허함에 빠져 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17
  • "중국은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기치권 보장하라"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민주화를 외치고 있는 홍콩 시위대의 모습     강경진압으로 말미암아 홍콩 민주화 시위가 점점 격화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회 행동하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모임인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이하 샬롬나비)이 논평을 통해 "중국은 홍콩에 대한 ‘1국가 2체제’ 약속 준수와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기치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더불어 "한국교회는 홍콩의 자유를 수호하고자 나선 홍콩 기독교인들을 지지하고 기도하자"고 했다. 구체적으로 샬롬나비는 "홍콩 행정당국이 긴급법 발동 검토 아닌 송환법 폐기에 대한 실체적인 조처를 취하라"고 촉구하고, "중국은 자치령인 홍콩 시민의 기본권과 자치권을 보장하라"며 "우리는 홍콩 시민의 인권과 자치권 보장을 위한 기독교인들의 정치적 참여를 지지한다"고 했다. 이어 "중국 정부의 인터넷 통제는 국제사회 비난을 비겨날 수 없다. 홍콩 시민의 인권과 자치권 보존 요구를 군대로 무력진압 하지 말라"면서 "홍콩시위대에 대한 백석테러는 인류의 양심으로 규탄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샬롬나비는 "중국이 홍콩 반환 시에 영국과 맺은 일국양제 협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홍콩 행정수반 선출은 민주적 절차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홍콩은 '자치시'로 자유세계에 대한 문으로서 남는 것이 중국에 이득이 된다"고 밝히고, "한국 정부는 홍콩의 촛불 시위에 중립적인 태도 아닌 지지를 보내어야 한다"면서 "한국교회는 홍콩시민들이 자유와 자치권의 보호 속에서 살기를 지지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홍콩 시민의 송환법 반대 시위에 대한 논평서] "중국은 홍콩에 대한 ‘1국가 2체제’ 약속 준수와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기치권을 보장하라." "한국교회는 홍콩의 자유를 수호하고자 나선 홍콩 기독교인들을 지지하고 기도하자." 2019년 6월 9일 홍콩에서 행정당국이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여 벌인 대규모 시위가 지금까지 3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주최측 추산에 따르면 지난 6월에는 103만명의 홍콩시민이 참가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2017년 기준 홍콩의 인구는 739만명으로 홍콩 인구 7분의 1이 참가한 셈이다. 또한 시드니, 타이페이, 런던, 뉴욕, 시카고, 도쿄 등 세계 20여개 도시에서도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이러한 규모는 홍콩이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역대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수천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며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심상치 않은 시위 확산에 홍콩 국제공항은 폐쇄되고 항공편이 무더기로 취소되면서 전 세계인들의 발목을 잡았다. 2019년 8월 18일 빅토리아공원 일대서 송환법 반대 ‘비폭력 평화시위’ 시위가 또다시 있었다. 최대 170만 명(주최 측 추산)의 홍콩 시민들이 폭우를 뚫고 다시 "자유"를 외치며 비폭력 평화시위에 나섰다. 지난 6월 4일(100만 명)과 15일(200만 명)에 이어 2달여 만에 다시 대규모 집회에 나선 것이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8월 25일 시위에는 총 발사와 물대표가 등장했다고 한다. 홍콩 야권 단체 연합 민간인권전선이 8월 31일로 예정됐던 집회를 취소했다. 홍콩 정부가 시위를 불허했고 시위핵심 조슈아 웡(黃之鋒·22세)을 체포했다가 풀어주었다. 하지만, 8월 31일과 9월 1일 거리로 나와 자발적으로 거리를 메운 시위대는 '자유를 위해 싸우자', '홍콩 힘내라'의 구호를 외치며 송환법 완전 철폐와 행정장관 퇴진 등을 요구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의 기폭제가 된 송환법('범죄인 인도 법안')이란 홍콩 정부가 중국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홍콩은 1997년 일국양제의 기치 아래 자치권을 획득한 이래 중국 정부가 부당한 정치적 탄압 목적으로 홍콩의 반중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다는 걸 계산하고 범죄인 송환 국가를 철저하게 제한해 왔다. 시민들은 이 법안이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보내는 데 악용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즉 홍콩 내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하거나 중국 공산당의 정치인이나 시진핑을 비판하면 범죄인이 되어 중국으로 송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8월 18일 오후(현지시간) 홍콩 빅토리아공원 일대에서 "송환법 철회"(Withdraw the bill), "홍콩의 자유"(Free Hong Kong)라는 구호를 부르짖었고, 일부 시민들은 홍콩 경찰의 과잉진압을 규탄하는 그림의 피켓을 들기도 했다. 홍콩 시민들은 크게 다섯 가지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송환법 철폐 △시위대 '폭도' 명령 철회 △시위 체포자 석방 △독립 조사기구 설립 △보통선거 실시다. 이러한 홍콩 시위를 보면서 샬롬나비는 홍콩 시위대의 자유와 자치권 보장 주장을 지지하면서 다음같이 우리의 견해를 천명한다. 1. 홍콩 행정당국은 긴급법 발동 검토 아닌 송환법 폐기에 대한 실체적인 조처를 취하라. 홍콩행정 당국은 인권 침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을 철회하는 실제적인 조처를 취하기 바란다. 홍콩 당국의 송환법('범죄인 인도 법안')제정이 시위를 초래한 것이다.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시민들은 이 법안이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보내는 데 악용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결국 시민들은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치로 6월 이래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홍콩 당국은 시위가 그치도록 송환법 폐기에 실제적인 조처를 취하기 바란다. 홍콩 행정장관은 중국 건국 70 주년인 10월 1일 이전에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긴급법이라는 초강수를 검토한다는 현지 언론의 소식이 들린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홍콩대 사이먼 영 교수의 지적처럼 "긴급법은 사실상 계엄령 상태였던 1922년 제정된 법"이며 "(시행된다면) 법치의 근간을 흔들 것"이다. 강제진압은 홍콩의 자유경제와 번영을 후퇴시키는 재앙이 될 것이다. 홍콩 당국은 홍콩의 미래를 생각하기 바란다. 2. 중국은 자치령인 홍콩 시민의 기본권과 자치권을 보장하라. 2019년 6월 첫 시위에 참여한 인원은 주최측 추산으로 103만 명에 달했으며, 이는 홍콩이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후 발생한 최대 규모였다. 2003년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던 ‘우산혁명’ 당시는 각각 최대 50만 명 정도였다. 홍콩 시민들은 이 송환법안이 홍콩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제한시킬 수 있다고 반발하며 거리로 나선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홍콩은 권리와 자유의 도시인데 (중국으로부터) 이같은 정체성이 끊임없이 위협을 받게 되자 시위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정부가 시위대의 저항에 6월 12일 예정됐던 법안 심사를 연기하고, 캐리 람 행정장관이 7월 9일 마침내 범죄인 인도법를 폐기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시위대는 이제 캐리 람 행정장관의 퇴진까지 요구하고 있다. AP통신은 “홍콩의 청년들은 시진핑 주석이 홍콩을 베이징 같은 도시처럼 만들려는 시도를 포기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자유도시인 홍콩을 더 이상 억압하지 말고 본래의 자유로운 도시로 그대로 두기 바란다. 3. 우리는 홍콩 시민의 인권과 자치권 보장을 위한 기독교인들의 정치적 참여를 지지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주도하는 등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6월 미국 뉴욕타임즈(NYT)는 "홍콩 시위대들이 복음성가인 '싱 할렐루야 투 더 로드'(Sing Hallelujah to the Lord)를 합창할 정도로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홍콩 기독교인들은 시위대에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고,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는 경찰을 비난하고 있다. 시위에 참석한 홍콩인들이 종교의 유무를 떠나 송환법을 비판하는 교회와 신자들의 메시지와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NYT는 “이들은 모일 때마다 복음성가 ‘싱 할렐루야 투 더 로드’를 불렀고, 이 노래가 시위대에 영향을 주면서 공식 ‘합창곡’이 되었다. 이번 시위에 청년들의 참가도 두드려졌는데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정치의 회복과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기독교협의회 회장 등 21개 종단 지도자들은 시위 현장 인근에서 미사와 밤샘기도 등으로 지난달 송환법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NYT는 “750만 홍콩 인구 중 개신교인과 가톨릭 신자는 전체 9분의 1에 해당되지만, 비폭력 시위를 주도하며 시위대에 위로와 격려, 영감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는 이들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4. 중국 정부의 인터넷 통제는 국제사회 비난을 비겨날 수 없다. 홍콩 시민의 인권과 자치권 보존 요구를 군대로 무력진압 하지 말라. 중국 정부는 중국 국민이 해외 미디어에 직접 접속하지 못하게 방화벽을 세웠다. 중국 국민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접할 때도 중국에서 접속할 수 있게 허용한 '중국 버전'만 접하게 된다. 이 점을 이용해 중국 공산당은 인터넷에 뜨는 정보와 여론의 흐름을 통제하고, 중국 국민의 반응을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정부의 폐쇄성이 국제사회에 드러내고 있다. 홍콩과 인접하여 10분 거리인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서는 지난 8월 10일 물대포 등을 장착한 중국 무장경찰의 장갑차량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모습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됐다. 중국군 개입이 우려되던 상황에서 "홍콩 시민들이 평화시위를 통해 자유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중국에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들은 시위의 정당성을 알리는 홍보 활동을 하며 평화적으로 시위를 마쳤으나 11일 밤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한 여성이 경찰이 쏜 주머니탄에 오른쪽 눈이 맞아 실명 위기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흥분한 시위대가 정오부터 공항으로 몰려들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중국 지도부가 홍콩 사태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우리는 중국이 무력진압으로 나서 중국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제2의 천안문 사태를 유발하게 될가 우려한다. 중국 군대가 진압봉과 총으로 홍콩 시위대를 무너뜨리면 중국 정부는 이중의 타격을 입게 된다. 우선 중국 정부는 '인권 탄압'의 오명을 뒤집어쓸 거예요. 또 중국이 홍콩 시위를 무력 진압하고 홍콩을 직접 통치하겠다고 나서면, 홍콩 시장경제는 재앙에 가까운 타격을 입게 되고 자본이 외부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는 중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5. 홍콩시위대에 대한 백석테러는 인류의 양심으로 규탄되어야 한다. 지난 7월 21일 밤 위엔룽 전철역에서 흰옷 상의를 맞춰입은 100여 명이 몽둥이를 들고 역사(驛舍) 안으로 난입했다. 이들은 전철에서 내리는 시위대와 시민들에게 쇠막대기와 각목을 휘둘렀으며, 정차한 전철의 객차로 피신한 시민들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했다. 이로 인해 임산부, 취재 기자 등 45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현지 언론들은 이 사건을 송환법 반대 시위에 불만을 품은 친중파의 소행으로 보았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들이 폭력조직 삼합회 조직원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의 ‘반중국’분위기가 더욱 격해지면서 침묵하던 친중국 진영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7월 20일에는 송환법 반대 시위에 맞서 공권력을 지지하고 질서의 회복을 촉구하는 대규모 친중파 집회가 홍콩 도시에서 열리기도 했다. SCMP는 “송환법 반대 시위의 정국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이 같은 대립과 갈등이 홍콩의 새로운 일상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홍콩 시위대는 지난 주(7월 29일 기준) 위엔룽 전철역에서 발생했던 백색 테러에 항의하기 위해 위엔룽 전철역 주변에서 홍콩 시민 11만 여명이 29일 새벽까지 시위를 벌였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이날 보도했다. 우리는 백석테러를 규탄하며 이는 문명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천명한다. 6. 중국은 홍콩 반환 시에 영국과 맺은 일국양제 협정을 지키라. 한때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지난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독립적인 통화, 법, 경찰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중국은 50년간 본토의 체제와 분리해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보장하는 ‘1국가 2체제’를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1백만여 명의 시민들이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에 반대해 시위에 나서면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영국의 제레미 헌트 외무장관은 1일 “여전히 1국가 2체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콩의 교인들은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중국이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인정해야 한다. 협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중국인들에게 지워진 의무”라고 말했다. 홍콩의 교인들은 시위 현장 인근에서 미사와 밤샘기도로 송환법안의 조속한 철회와 정부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국은 홍콩반환 시 영국과 맺은 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기 바란다. 7. 홍콩 행정수반 선출은 민주적 절차로 이루어져야 한다. 홍콩 행정수반 선출과 의회구성을 위해 보통선거를 도입하는 등 진정한 민주주의 정착만이 최근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중국은 홍콩의 자치령에 간섭하지 말고 일국 양제의 협정에 따라 홍콩의 자치령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5년 전 우산운동 때 시진핑은 주석이었지만 지금은 황제가 된 후 많은 활동가가 투옥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입법회 의원들이 자격을 박탈당했다. 홍콩은 '양제(two-system)'가 아니라, '1과 2분의 1'제도가 되었다. 이는 약속 위반이다. 홍콩 행정수반은 홍콩주민들의 자유로운 민주적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어야 한다. 중국도 경제에 걸맞게 정치를 민주화해야 하고 특히 중국내의 종교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시진핑 집권 후기에 들어와 중국 안의 가정교회가 공안당국에 의하여 해체되는 것은 종교 자유에 대한 박해로서 이를 세계인들이 우려한다는 사실을 시진핑은 알아야 한다. 8. 홍콩은 “자치시”로 자유세계에 대한 문으로서 남는 것이 중국에 이득이 된다. 2014년 홍콩 행정수반의 자유 입후보와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운동(Umbrel la Movement)에서 학생 시위를 79일간 이끌어 당시 국제사회의 아이콘이 되었고, 이번 13주간의 데모시스토(Demosistō)를 이끄는 사무총장 조슈아 웡은 8월 27일 "홍콩인들도 스스로의 주인이 되고 싶다"며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의 공개 지지를 호소했다: "우리는 독립이 아니라, 진정한 자치(自治)를 원한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 꿈을 이루려고 싸운다." 홍콩은 여태까지 중국 안의 시장 경제가 고도로 발달한 도시국가로서 중국의 경제 발전에도 역동성을 부여하였다. 홍콩은 오랫동안 아시아의 국제도시로 번영해왔다. 홍콩은 국제적인 금융 허브이자 기업의 중심지, 관광지로 통하고 있다. 홍콩은 한국인들에게도 중국에 진출하는 자유세계의 교두보로서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홍콩이 중국 공산당의 폐쇄적 권위 안에 들어가게 될 때 중국의 민주화와 세계 개방성은 더 늦추어지게 되고 중국은 많은 부정적인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홍콩을 여태까지 그대로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남도록 하는 것이 중국의 민주화와 세계 개방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9. 한국 정부는 홍콩의 촛불 시위에 중립적인 태도 아닌 지지를 보내어야 한다. 홍콩시위 지도자 윙은 "타이완은 물론 일본의 아베 총리까지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데 한국은 수동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수십 년 전 민주화를 위해 일하지 않았느냐"며 "중국과의 어떠한 상업적 이익도 기본적 인권을 앞설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 대통령은 선군정치에 매몰되어 핵과 대량살상무기(미사일) 개발에 븍한 군사독재 김정은의 선심을 사려고 하기보다는 우리 이웃인 홍콩의 민주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외교적 지원을 보내어야 한다. 그리고 홍콩 주민을 억압하고 개인숭배로 나아가면서 중국내 기독교를 박해하는 시진핑과는 멀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사대주의로 나아가 대중 미사일 방어장치인 사드 반입의 대가로 시진핑에게 3불 약속을 했고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홍콩 시위대를 방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홍콩 민주화에 지지 보낼 때 대한민국은 동북아 평화나라 위상을 갖을 수 있다. 10. 한국교회는 홍콩시민들이 자유와 자치권의 보호 속에서 살기를 지지하고 기도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번 시위에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하여 봉사로 나선 홍콩 기독교인들을 지지하며 저들이 홍콩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으며, 평화롭게 마무리되고 홍콩 안에 자유와 자치권이 보호받는 민주적 질서와 법질서가 집행되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2019년 9월 2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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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연재
    2019-09-03
  • "교회는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고, 한국인의 반일감정에서 미래적 화해를 독려해야 한다"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창립원장)   샬롬 나비는 광복 74주년 논평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아베 정권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백히 인정하라”며 “독일 메르켈 정부의 태도를 배워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리고 이들은 “메르켈 정부는 과거 나치 행태로 주변 피해 국가에 대해 무한 사과의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은 “아베의 태도는 과거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이 없는, 도리어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면서 “동북아 리더 국가로서, 주변 국가에 대한 반성의 태도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는 한·중·일이 협력해야한다”면서 “편협한 국가주의 헤게모니를 버려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문재인 정부는 민생과 경제 파탄이 예상되는 한일 갈등을 자초하는 일을 버려야한다”면서 “이전 정권들의 패착을 돌아보고, 즉각 대화와 외교로서 풀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들은 “한일 갈등을 이용해서 장기정권을 획책하는 방편으로 삼는다면, 이 또한 국민과 역사의 엄중한 심판은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 경계했다. 끝으로 이들은 “한국교회는 일본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사과를 독려하는 것”과 더불어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차분하게 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 따라 미래 지향적 화해의 태도를 지향하도록 유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샬롬나비, 2019년 광복 74주년 논평서> 일본 포용 정책으로 일본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위에 선진화된 대한민국 건설하자.일본은 경제력에 걸맞게 과거사에 참회하는 정신 가져야 동북아의 지도국 위상 가질 수 있다.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하는 즈음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한 국내 정치의 파국은 이제는 남북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를 둘러싼 당사국 간의 국제적 갈등과 대립의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무도하게 이 땅을 유린한 일제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자유와 해방의 빛을 되찾은 광복절을 기뻐하며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온 마음으로 되새기는 동시에 다시는 종의 굴레에 매이지 않도록 독립과 건국의 정신으로 재무장하고 민족적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가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일본 아베 정권의 식민지 통치의 불법성을 부인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비판해야 하겠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과거에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과 사죄한 고노담화와 1995년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과 사죄와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자신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불법지배를 사죄하였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2013년 4월 23일에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하면서도 그 담화에 들어있는 반성의 내용들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결과적으로 일본은 아베 정부가 들어선 후 자신들의 과거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과거의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그러한 과거 청산 위에 발전적인 미래 관계 구축을 하도록 나가야 하겠다.이러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가 요청되는 시기에 특히 백 년 전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서 자유대한의 터전을 구축한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 내부의 개혁과 남북과 열강들의 대립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십자가의 사명과 시대적 책임을 끝까지 완수하여 선열들과 순교자의 피와 땀이 서린 광복의 기쁨을 삼천리 방방곡곡 자손만대에 전하여야 한다. 우리는 광복 74주년을 맞이하여 광복의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여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하겠다. 뜻깊은 광복절을 맞이하여 샬롬나비는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다음과 같은 논평문을 발표한다. 1. 일본은 한일합병과 침략전쟁의 불법성과 참혹한 결과를 진실되게 반성하라.일본은 일제강점기 군국주의를 앞세워 대동아공영이라는 거짓말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파괴하고 자행한 한일합병과 중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미국에 대한 침략전쟁의 불법성과 참혹한 결과를 통절히 반성하고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강점과 무단통치에 의해 희생된 꽃다운 청춘들의 희생과 죽음을 상기하지 못하고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망각하여 또다시 이전 역사의 전철을 되풀이 한다면 지구상에서 따돌림과 심판을 자초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책임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 특히 무엇보다 아베 내각이 한일합병과 침략전쟁으로 희생되고 유린된 인권은 결코 물질만으로 보상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2. 일본은 독일을 유럽의 지도국가로 서게한 독일 지도자의 무한한 사죄 태도를 배워야 한다.분단 독일이 통일 되도록 한 것은 브란트 독일 수상이 1970년 폴란트 방문시 1943년 1944년 두 차례 나치에 저항한 게토 지역 유대인들 봉기에서 학살당한 희생자 묘역에서 무릎을 끓고 사죄를 구한 태도에서 비롯되었고, 통일 독일이 유럽연합의 지도국 위상에 선 것은 마르켈 총리가 말하는 무한한 사죄의 태도이다. 이에 반해 오늘날 아베의 오만한 태도는 과거의 군국주의 태도에서 반성이 없고 오히려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 일본이 동북아 국가 사이에서 경제동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8월 6일 매슈 굿맨 선임 부회장이 펴낸 한·일 갈등 관련 보고서에서 "일본은 이웃 나라에 대한 공격으로 '경제적 리더' 이미지를 더럽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일은 중국의 역내 강압 및 국제적 규범 침해 행위에 맞서 협력하는 데 있어 공동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며 한·일 갈등이 안보 협력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일본 정부 지도자들은 이러한 지적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3. 정부는 일본을 자극하는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기업이 대응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과거사 문제로 일본의 경제 보복이 오는 것에 대하여 한국 기업은 경제의 실력으로 대응하고 정치인들은 외교력으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기업인들을 불러내어 “임진왜란 때 일본이 탐낸 것도 우리 陶工의 기술력”이라고 정부와 기업이 공동대응을 모색하는 것은 자료를 구입, 생산하고 상품을 파는 기업에 실제로 이로운 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일본은 어디까지나 자유우방으로 그동안 70여 년 간 한국경제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이웃나라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일본의 수출 금지 제품을 국산화할 수 있도록 기업 52시간 근로 시간 규제 등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부품을 일본에 의존했던 산업생태계를 바꿀 기회라고 하지만 말고 우리 중소기업이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글로벌 분업구조에서 비교우위의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2020 도쿄 올림픽 보이콧, 일본 여행 금지 등 민간 교류를 정치외교문제로 금지해선 안 된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 제품불매운동이나 일본 여행 보이콧은 마이너스 될지언정 플러스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미국 싱크 탱크는 8월 6일 보고서는 한국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돈키호테식(quixotic)으로 일본과 경쟁하기 위해 남북 간 평화경제를 주장한 것은 일본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4. 오늘날 편협한 국가주의가 팽배되는 때 동북아 국가들은 헤게모니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오늘날 세계 지도자들은 독일 총리 메르켈이 지난해 11월 11일 파리에서 열린 1차세계대전 종전 1백주년 기념식에서 독일의 과거사를 반성하면서 언급한 인류의 평화와 화합 의미를 새겨야한다. 메르켈은 파리 평화포럼에서 “편협한 국가주의자들의 관점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우려가 있다”면서 “1차세계대전은 고립주의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면서 사죄의 마음을 표현했다. 오늘날 이러한 편협한 국가주의는 일본의 우경화와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력으로 과거사 회피, 중국의 일대일로의 중화 제국주의적 팽창,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러시아의 군사우월주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 한반도는 북한의 핵개발과 선군주의, 한국의 북한 달래기 좌파 포퓰리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일본에 대한 반일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시대에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와 더불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소통과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5. 우리는 대한독립의 정신을 고취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시대적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우리는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 급급하여 사분오열되고 급기야 망국의 길로 내달았던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고 대한독립의 정신으로 단합하여 자유통일의 시대적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 자립자강(自立自彊)이 없이는 가정도 기업도 사회도 바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회 각계각층 모두가 마땅히 안보와 경제와 민생의 거국적 대의를 위해 신명을 다하여 본분과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간도와 하와이와 각지에서 기꺼이 생명과 청춘과 재산을 오로지 독립을 위해 던졌던 우국지사들의 독립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국난극복의 관건일 것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북간도에서 밝은 세상을 꿈꾸며 항산항심(恒産恒心)을 소리 높여 외쳤던 선열들의 기개를 일으켜야 한다. 외국에서의 무장독립투쟁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과 동시에 국내에서 일제의 핍박을 견뎌내며 학교를 세워서 인재를 양성하고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문화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의 소중함도 기억해야 하겠다. 국내에서의 이러한 실력양성운동이 있었기에 해방 후의 국가건설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해외의 무장독립정신과 함께 국내의 실력양성의 애국운동을 함께 기억하고 계승해야 하겠다. 6. 우리는 자유와 민주의 기치를 들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새로운 자유대한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우리는 역사의 소용돌이와 도전 앞에서 응전하면서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 왔다. 이제는 부정과 부패, 음란과 우상을 단절하고 분열과 분단을 종식하여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입증하는 “새 대한민국”(New Korea)의 비전을 실현해야 한다.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파괴하고 정의의 이름으로 정의를 파괴하는 동성애 퀴어 운동의 무책임한 거짓 인권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윤리적이고 무법한 헌정 유린을 척결하고, 독립열사들이 마지막까지 생명을 던져서 일깨운 것처럼 무법한 침탈로부터 자력자강(自力自强)을 실현하는 자유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자유를 위한 책임과 역량, 민주를 위한 정직과 윤리를 전수하여 자유대한을 계승할 믿음과 의의 세대를 세워야 한다.우리는 이제 해방 이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대한민국의 저력을 바탕으로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이룩하고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달성에 기여하는 선진국의 대열로 도약해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 체계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면서 "케이 팝"(K-Pop)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문화적인 창조능력을 신장시켜 세계인의 삶을 풍요롭게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다. 7. 우리는 정의와 공법을 세우고 대동단결하여 경제 번영과 문화 융성을 이루어야 한다.우리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서 나라 사랑의 애국 정신으로 대동단결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올바른 윤리도덕을 바탕으로 번영과 융성의 전기로 삼았다. 그러나 최근 반신적이고 비윤리적 동성애 인권화가 혐오와 차별이라는 거짓 인권논리로 둔갑하여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성윤리도덕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문재인 행정부는 시민들과 한국교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여가부, 법무부 국가인권기본계획(NAP) 등으로 동성애 젠더정책에 국민의 혈세를 퍼붓고 있다. 천부적 인권을 천명한 독립정신(獨立精神)을 다시 일으켜서 극단적 이기주의에 편승하는 무법하고 무책임한 동성애 거짓인권의 법과 조례를 개폐하고 윤리입법을 구축하여 사회를 통합하고 국력을 결집하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우리는 광복절을 맞이하여 국가를 올바르게 발전시킬 수 있는 국민의 건전한 윤리덕목을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사회의 지나친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하여 서로를 배려하고 상생하는 정치 문화를 형성해야 하겠다. 한국사회의 불신으로 인한 사회적인 폐단을 극복하기 위하여 신뢰사회를 구현해 나가야 하겠다. 이를 위해 부정부패를 극복하고 정의와 공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고 상호협력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 더 나아가 문재인 행정부는 민생과 경제 파탄이 예상되는 한일갈등을 자초하지 말고 이전 정권들의 패착을 겸허하게 돌아보고 즉각 대화와 외교로서 풀어야 한다. 한일갈등을 이용해서 이를 장기정권을 획책하는 방편으로 삼는다면 국민과 역사의 엄중한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8. 한국교회는 광복절을 맞이하여 한일 간의 진정한 화해를 바탕으로 평화적인 미래관계 형성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식민지배의 압제자였던 일본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이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들은 일본과의 발전적인 국제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세 가지 소재의 수출금지 조치 및 수출우대국 지위 폐기 조치가 내려지면서 온 국민들의 반일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위중한 시기를 맞이하여 일본이 진정한 반성을 하고, 한국 국민들도 일본과의 진정한 화해를 추구하면서 양국이 불행한 과거를 올바르게 청산하고 발전적인 미래관계 수립을 위해 기도하고 실천적으로 노력해야 하겠다. 한국사회에서 지금 민족주의는 자칫하면 감정적 배타주의를 흘러갈 위험을 안고 있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일본의 참다운 반성 위에서 양국의 평화적인 국제관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하겠다. 9. 한국교회는 북한인권의 조속한 개선과 자유와 복음의 통일을 위해서 합심해서 기도해야 한다.한국교회는 선진들의 기도와 선열들의 희생을 통해서 쟁취한 자유와 해방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기쁨과 감사를 널리 전파하고 전승해야 한다. 우리는 북핵과 공산주의 독재로 폐쇄된 북한 동포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자유통일의 전기(轉機)를 확보하도록 민족적인 결의를 모아야 한다. 특히 현대판 아우슈비츠인 북한의 대규모 정치범 강제수용소들에 갇혀 신음하고 절규하는 북한 주민과 북한교회 성도들의 조속한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합심하여 기도하고 이를 위해 거국적으로 국제적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매년 유엔은 북한인권의 개선을 위해서 결의하고 있는 마당에 당리당략에 급급하여 침묵하고 있다면 한국정부와 한국교회는 역사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광복절을 맞아 삼천리 방방곡곡에 무궁화가 피어나듯이 자유 평화 통일의 감격이 한반도 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그날을 고대하며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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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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