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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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사렛 예수와 하나님에 대한 ‘압바’ 호칭
      김영한 박사 역사적 예수의 독특성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이 감히 부르지 못했던 하나님을 "압바"(Aββα,  abba, 아버지)라는 가장 친근한 호칭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아버지 호칭은 복음서에서는 150회 이상이나 기록되어 있다. 12세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 축제에 부모와 같이 와서 없어져 버렸는데 부모가 근심하여 찾다가 성전에 있는 그를 발견하였다. 어머니 마리아가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라고 질책한다. 이에 대하여 소년 예수는 독특한 문장으로 대답한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소년 예수의 하나님에 대한 "압바"(abba)라는 호칭은 독특하다. "내 아버지 집"이란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의 집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인 하나님의 전을 말한다.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른 것이다. 예수는 그의 복음 전파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하여 지칭할 때 어느 누구도 부를 수 없는 친근한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십자가 상에서 숨을 거두시면서 하신 예수의 마지막 말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이었다. 유대교 문헌에 정통한 독일의 신약학자 여호야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압바"(abba)라는 단어는 역사적 예수가 친히 쓴 아람어라고 밝히고 있다.   I. 구약에서의 하나님 아버지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 토기장이와 진흙, 주관자와 복종자의 관계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도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이 집단적인 내지 비유적인 의미에서 구약성경에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은 민족적인 처지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신명기에는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의 아버지로 묘사된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여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시편 저자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 68:5).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아버지에 비유하였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 103:13).  유대인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하여 호칭으로 부르기를 꺼려하였고, 다른 편으로는 아버지 호칭을 집단적인 의미 내지 비유로 사용해왔다. 이러한 유대교의 하나님 "아버지" 호칭에 대하여 나사렛 예수는 새로운 의미, 즉 신약적인 독특성을 부여하였다. 첫째,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족관계로 표시하였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다. 부자의 관계로서 하나님의 부성을 강조한 것은 바로 유대의 전통적 사상이 의미하는 바를 보다 분명히 설명해 준다. 예수의 아버지 호칭은 유대교가 의미하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부자(父子)관계로 끌어 올리는 혁명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아버지" 호칭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한다. 그것은 아들로서 아버지에 대한 인격적인 관계와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내포하고 있다. 이 호칭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더 이상 주인과 종 사이의 비인격적 관계가 아니라. 자녀에 대해 베푸는 아버지의 무한한 긍휼과 인자에 대한 신뢰가 담겨져 있다. 예수는 자기와 우리의 관계를 친구 관계로 격상시킨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5). 예수는 우리의 친구요, 우리는 예수의 친구로서 예수를 통하여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예수는 맏형이여 우리의 그의 형제로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된다.  II. 호칭 "압바"(Abba)의 함축성 나사렛 예수가 사용한 하나님에 대한 "압바"(아람어로는 abba, 아버지)라는 호칭은 유대교적인 하나님 상(像)의 틀을 깨뜨리고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격적인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예레미아스는 당대의 유대교 문헌을 연구한 후에 "유대교 기도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압바'라고 언급한 유비를 전혀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구약 전체는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성을 강조하고 야웨와의 친밀성을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한데 반해서 예수는 일상적으로 하나님을 아주 친근한 용어로 불렀다. "아버지" 호칭은 다음의 함축성을 지닌다. 1.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깊으신 관심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와 같이 보살피신다. 우리에게 의식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부모가 자녀들의 의식주를 돌보아 주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의 기본을 돌보아 주신다. 예수는 어떤 조건을 제시하며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하여 근본적인 신뢰를 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은 순수하고 소박한 믿음을 말한다. 예수는 마치 자녀에 대한 부모의 심정을 지니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르치시고 계신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예수는 하나님이 무섭고 벌을 주시는 재판관이 아니라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고 마련해주시는 부모보다 더 사랑과 자비로써 우리를 보살피시는 분이라고 가르치신다. 2. 자녀 하나 하나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하나 하나를 눈동자 같이 머리털까지 세고 계시는 세밀한 사랑이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마 10:30).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아흔 아홉 마리 양을 우리에 두고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심정과 같다고 예수는 설교하신다. 그 양을 찾으면 목자가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즐거워하며 집에 돌아와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눅 15:6)라고 말하듯이 하나님은 우리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신다. 누가는 예수의 말씀을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3. 하나님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계: 직접성과 단순성을 나타낸다. 신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이다. 단지 형식이나 의식(儀式)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아직도 종교적 차원이다. 하나님은 자유스러운 마음,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배와 찬양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애원하는 심령에서 나오는 자녀의 소박한 기도를 들어 주신다. 예수는 말씀하신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하나님께 기도하고 요구하는 데는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직접성과 단순성이 요구된다. 마치 자식이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과 같다. 자식이 아버지 앞에서 주저한다면 그것은 참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신앙의 자연스러운 관계로 나타내고 계신다.     4. 자녀의 고통에 함께 하시는 분, 하나님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시고 참여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고통은 율법적인 인과응보로만 오는 것은 아니다. 고통이란 단순히 하나님의 징계로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당하는 고통에는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의미와 목적이 있다. 우리의 고통을 통하여 우리는 겸손해지고 우리의 인생은 더욱 깊어진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묻는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 9:2). 유대인들에 의하면 질병은 죄의 결과이다(요 5:14). 맹인의 경우는 그 부모의 죄의 결과로 보아야 했다. 예수는 대답하신다: "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맹인은 "실로암에 가서 씻어라"는 예수의 말씀에 따라 씻고 밝은 눈을 가지게 되었다(요 9:7). 맹인은 보게 됨을 통하여 그를 치유한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다. 이것은 맹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에게로 되돌아간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통하여 자녀인 우리를 연단시키시고 우리를 그 분의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드신다. 예수는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신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당하는 이 세상의 고통과 박해에는 하나님의 의미와 목적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이것을 선으로 바꾸시고 좋은 것으로 갚아주신다. 우리의 고통은 우리 자신의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통이다. 이 하나님의 고통은 예수의 십자가에서 가장 잘 드러나 있다. 5. 아버지로서 자녀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주신다. 하나님은 구약의 율법학자들이 생각했듯이 그의 자녀에게 단지 준엄한 재판관이나 율법 집행자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는 아버지이시다. 그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자녀에게 어느 계명을 지켰는지 보시기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를 가졌는지에 대해 우선적으로 보신다.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예수의 설교는 잃어버린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탕자의 비유)(눅 15장)에서 나타난다. 탕자는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눅 15:21)라고 아버지에게 참회의 고백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게의치 않고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온 사실 자체를 기뻐하신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눅 15:22-24). 아버지의 아들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품꾼의 하나로 받아들라고 돌아온 아들을 즐겨 맞이해주시고 잔치상을 베풀어주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다. 이 비유는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아낌없이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교훈해 주고 있다.     6.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한 형제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한 형제가 된다. 여기에는 백인, 황인, 흑인의 차이가 있을 수 없고,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의 차이가 있을 수 없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없으며, 지식인과 비지식인의 차이가 없으며, 권력자와 서민의 차이가 없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 아니고 인종이란 진화가 빚어낸 적자생존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형상에 따라서 지음을 받은 창조의 작품이다. 아버지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아바지 되심 앞에서 모든 인종 계층의 구별이 사라진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하나님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진화론적 인간관은 인간을 자연과정이나 만물과 다름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독교적 인간관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받았다고 보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은 동등하며 자연보다 존귀하다고 본다. 형제 자매가 아버지 앞에서 하나인 것처럼 모든 인류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하나의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계 21:26). III. 예수의 영 안에서 계시되는 하나님의 부성(父性)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부성)이란 나사렛 예수에 대한 믿음 안에서만 계시되고 그 안에서 호칭되어진다. 혈과 육이라는 자연적인 관계로는 정립되지 않는다. 요한은 다음같이 증언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가능하다.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오늘도 예수를 믿고 그의 자녀가 될 때 우리에게 아들의 영인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같이 증언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압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영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養子)가 되고 우리는 하나님을 "압바"(abba,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5-16). 오늘날에도 신자인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압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친히 "압바!"라고 불렀던 예수의 영이 우리 속에 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하나님을 "압바"라고 불렀던 역사적 예수의 실재에 대한 연속성을 체험하게 된다. (끝)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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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16
  • “신학자의 혀가 맵다고 뽑으려 하면 안돼”
          성산생명윤리연구소가 총신대 이상원 교수(조직신학)에 대한 이 학교 법인이사회의 바른 판단을 촉구하는 입장문을 16일 발표했다. 이날 이사회도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연구소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 성정치 이론에 매몰된 그룹의 주장만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것 같아 개탄을 금치 못한다"며 "신학교가 바로 서야 바른 목사가 나오고, 바른 목사가 바른 설교로 바른 신앙인을 세운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총신대 당국자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오늘 열리는 이사회는 바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로 핀단 할 수밖에 없다"면서 "차별금지법이 아직 제정만 안 되어있지 실제적으로는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학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 하고 있는 현상"이라고 했다. 또 "신학자의 혀가 맵다고 혀를 뽑으려 하면 안 된다. 진정한 신앙인은 비록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 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서 "이 교수와 같이 제2, 제3의 이상원 교수가 되어 총신대를 무너뜨리려는 세력과 맞설 것이다. 우리는 진리를 지키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다. 아래는 입장 전문.   지난해 12월 5일 총신대 정문 앞에서 열렸던 총신대 이상원 교수 관련 기자회견 모습   총신대학교는 선지동산의 정체성을 회복하라.   대학 지도자의 영적 분별력이 떨어질 때 사탄은 여지없이 침투해 들어온다. 바른 교리를 추구해야 할 신학교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과 타협하기 시작할 때, 작은 누룩에 점령당해 버린다. 바른 교리와 윤리기준을 가르치는 교수를 징계하려고 달려드는 지금의 행태는 신학대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신실한 장로교인들의 눈물과 신앙으로 세워진 총신대학교가 다시 깨어나야 나야한다. 영적 장님이 되어 말씀으로 바로 서지 못하고 혼합된 신학과 세상시조에 밀려 맥없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라.  사람의 눈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총신이 되기 바란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성정치 이론에 매몰된 그룹의 주장만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것 같아 개탄을 금치 못한다. 세상은 성(性)을 무기로 성도와 가정과 국가를 무너뜨리려고 다가온다. 제일 먼저 공격하는 대상은 목사와 신학교다. 신학교가 바로 서야 바른 목사가 나오고, 바른 목사가 바른 설교로 바른 신앙인을 세운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총신대 당국자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신학과 신앙을 지키지 못하는 총장은 한국교회와 총신의 미래를 위해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오늘 열리는 이사회는 바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로 핀단 할수 밖에 없다. 차별금지법이 아직 제정만 안 되어있지 실제적으로는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학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 하고 있는 현상이다. 신앙의 자유와 예배를 자유롭게 드릴 수 있는 자유는 신앙의 선배들이 피 흘리기까지 싸운 결과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신학자의 혀가 맵다고 혀를 뽑으려 하면 안 된다. 진정한 신앙인은 비록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 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특별히 이상원 교수의 경우를 볼 때 다른 영역에서 이런 방법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상대를 잘못 집었음을 분명히 경고하고 밝혀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상원 교수는 비록 향후 어떤 결론이 날지 모르지만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과 불명예를 감수하며 주님과 함께 치욕의 영문 밖으로 나갈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교수와 같이 제2, 제3의 이상원 교수가 되어 총신대를 무너뜨리려는 세력과 맞설 것이다. 우리는 진리를 지키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각오가 되어 있다. 진리를 지키고 학교를 지키려는 이상원 교수의 명예회복과 총신대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뜻을 같이하는 모든 단체들은 이상원 교수 징계철회를 주장하는 56개 합동측 노회장들과 함께 거룩한 분노에 참여할 교수, 학생, 졸업생 등 모든 분들과 연대하여, 법적대응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다해 맞서갈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진리를 지키는 자리라면 어떤 희생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이사회와 총신대  당국에 엄중히 경고한다. "존 낙스의 기도는 100만 명의 군대보다 더 두렵다."고 고백한 영국 메리 여왕의 고백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도 이교수를 위해, 진리를 지키고 총신대를 지키기 위해 세상에 무릎 꿇지 않은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가 끊임없이 주님의 보좌로 올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이제 깨어있는 총신대 교수들와 학생들에게 다시금 신앙의 양심과 학자의 양심에 호소합니다. 신앙의 양심에 따라 두려워하지 말고 같은 목소리를 내어 주십시오. 개혁주의 신학의 선지동산의 상징인 이상원교수님을 지켜 주십시오  총신대를 지켜 주십시오.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합시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소장 이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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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16
  • 한목협 등, 사무실 입주 및 동역 감사예배 드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합목협), 한국기독교언론포럼, 한국IFCJ가정의힘 사무실 입주 및 동역 감사예배가 성락성결교회(담임 지형은 목사)에서 15일 오전 열렸다. 최영우 한국 IFCJ 이사가 대표기도를, 한목협 서기 이정수 목사가 성경을 봉독했다. 성락성결교회 쁄라중창단이 찬양을 한 뒤 손달익 목사(서문교회 원로)가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사도행전 13:1~3)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그는 “안디옥교회는 초대교회의 복음 전도 사역에 있어 전환점”이라며 “이들이 신경 쓴 건 연합과 일치”라고 했다. 이어 “안디옥 교회를 섬겼던 바나바는 예루살렘 사도들이 인정해 준 지도자”라며 “사도들이 부여한 바나바의 권위는 엄청났다”고 했다. 손 목사는 “(그럼에도) 바나바는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고 동역자들과 연합해 사역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바나바의 동역자로 흑인이었던 니게르가 있었다”며 “이는 굉장히 파격적인 선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인종 간 장벽을 초대교회가 극복한 것”이라며 “구레네 사람 루기오도 아프리카 사람이지만 로마 이름을 지녔다”고 했다. 그는 “당시 루기오는 흔한 노예의 이름”이라며 “그렇다면 안디옥교회는 노예를 지도자로 선출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안디옥교회는 인종·계층을 뛰어넘어 일치를 꿈꿨다고 볼 수 있다”고 역설했다.   서문교회 원로 손달익 목사 또한 그는 “헤롯가문은 사도들을 죽인 초대교회의 원수”라며 “이런 원수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기적”이라면서 “초대교회는 이런 원수를 사역자로 초빙한 기적을 일으켰다”고 했다. 손 교수는 “안디옥교회의 핵심 멤버인 스데반 집사가 순교했고, 이들의 가정은 풍비박산 났을 것”이라며 “이 박해의 중심에는 사울이 있다”고 했다. 그는 “그렇지만 안디옥교회는 자신들을 박해했던 원수를 용서하고 받아들여 함께 동역했다”고 밝혔다. 그는 “연합과 일치는 바나바와 같이 자기를 내려놓고, 인종·계층을 뛰어넘어, 가해자·피해자 관계를 극복한 신앙”이라며 “이는 초월적 신앙에 근거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 교수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한국기독교언론포럼, 한국IFCJ가정의힘 등 3개 사무실이 함께 일할 때 ‘소통과 연대 그리고 일치’는 핵심”이라고 했다.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한목협 대표회장)는 환영사에서 “기독교 복음의 정체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그러나 복음이 지닌 또 다른 측면은 사회적 연관성”이라고 했다. 이는 “내부적으로 응집하는 정체성과 온 세상을 품는 사회적 정체성”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목협은 목회자들의 일치와 갱신을 꿈꾸며, 세상 사람들에게 목회자다움을 보여주길 바라는 단체”라며 “한국기독교언론협회는 사회적 연관성, 한국 IFCJ가정의힘은 신앙의 세대 전수에 목숨을 건 프로젝트”라고 했다. 특히 그는 “한국교회의 신앙 계승은 10% 미만”이라며 “신앙의 내적 응집력과 외적 확장력을 모두 아우르는 프로젝트에 있어 앞서 세 단체의 동역은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역설했다.   영등포교회 천용욱 사제   성공회의 영등포교회 천용욱 사제(한목협 공동회장)는 “공유·공감·공진, 이 세 가지는 기독교의 핵심 가치”라며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나 혼자만이 아닌 함께 더불어 살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공생의 길은 결국 복음이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이라고 했다. 그는 “앞서 세 단체가 연합해 공유, 공감, 공진의 삶을 추구하겠다는 시도”라며 “성공회 서울 교구에 속한 모든 교회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예수님 말씀을 한 해 동안 마음에 새기며 살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세 단체가 앞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주기”를 당부했다. 끝으로 “성공회에서도 조그마한 빛이 비춰지는 한해가 되길 세 단체의 연합에 응원하고 도움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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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16
  • 갈등을 치유하는 교회가 되려면
      갈등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   ▲정재영 교수 작년 한 해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갈등 속에서 보내왔다.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촉발된 정치 갈등이 온 나라를 뒤덮었고, 이는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아 온 진영 논리와 이념 갈등이 있고, 이러한 입장 차이에 따라 서로의 주장에 대해서 근거 없는 비난을 일삼기도 했다.이에 따라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은 과거보다 갈등이 심해졌다고 느낀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 조사에서는 빈자와 부자, 진보와 보수, 노동자와 사용자, 청년과 중장년층 사이의 대립이 한층 깊어졌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특히 조국 전 법무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혼란으로 사회 갈등이 더 커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70%에 육박했다. 2016년 국정농단 때는 촛불 집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탄핵을 외쳤는데, 지금은 탄핵으로 집권한 정부에 대한 성토가 한창이다.이 조사에서는 여러 사회 갈등 중에서 빈부 갈등이 심각하다고 본 의견이 77.3%로 가장 컸다.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 최저임금 인상, 세금 문제 등이 이슈가 되면서 이해관계가 엇갈렸다. 이에 따라 빈부 갈등이 더 심화됐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젊은 층에서는 성별 갈등에 대해 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 20대에서는 74.9%가 성별 갈등을 사회 주요 문제로 꼽았다. 20대는 성 차별에 대해서 더 예민하게 느끼고 있고 여성에 대한 차별을 줄이려는 노력에 대해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는다고 느끼면서 오히려 남성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세대 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고령 사회가 되면서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데 그동안 뒷방 노인네 취급당하며 소외감을 느꼈던 노인들이 힘을 모아 당당히 의사 표현을 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세력을 이뤄 사회단체를 결성하기도 한다.이들은 단순히 정보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 디지털의 힘을 빌려 유튜브 방송을 하면서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기도 할 정도로 매우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넘쳐나는 정보들 중에는 근거 없는 가짜 뉴스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이러한 노인 세대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와의 사이에 갈등은 더 심화되고 있다.특히 일부에서는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종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여서 매도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서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단순히 북한을 도운 경험이 있다든지 북한에 다녀 온 경험만으로도 ‘종북’이라고 매도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일부 교계 인사들도 이러한 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동안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갈등 문제로 여겨졌던 지역 갈등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이러한 이념 갈등이 더 부각되고 있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갈등에 빠진 한국 교회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한국 교회는 정교분리를 주장해 왔고,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여겨왔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정권에 대해서조차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생각으로 집권 세력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 왔을 정도이다.그런데 오랫동안 집권했던 보수 정당이 힘을 잃고 진보 성향의 정당이 들어서면서 교회의 입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당을 만들기도 하고 시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어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에는 진보 성향의 목회자들이 민주화와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정치 활동을 벌였는데 최근에는 보수 성향의 목회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 양상이다.이러한 모습은 개교회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예배 후에 교회당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정치 발언을 하는 성도들이 적지 않다. 시국과 관련해서 광화문 집회에 나갔다 온 사람들과 서초동에 나갔다 온 사람들이 제각기 집회 현장의 모습을 전달하며 자신의 입장에 동조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일부 교회에서는 대표 기도를 하는 중에 현 정부를 비판하는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젊은이들이 크게 반발하기도 하고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그런 기도 내용이 교회의 공식 입장인지 묻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빈부 갈등과 세대 갈등, 그리고 성별 갈등 등의 사회 갈등도 교회 안에서 그대로 재연되며 성도들끼리 부딪히고 있다.교회에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을 매우 금기시해왔던 기존의 풍토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물론 교회에서 정치 토론 자체를 금할 필요는 없다. 기독교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사회 모습을 변혁시키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의 노력은 자연히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다.그러나 지금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건전한 대화와 토론이 아니라 상대방을 굴복시켜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갈등을 치유하는 교회가 되려면 교회는 갈등의 치유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자신을 희생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함으로써 죄악 많은 세상을 바꿔나가야 한다.예수님은 메시아로 오셨지만 세상의 왕으로 군림하지 않으셨고 정치적인 선동가가 되지 않으셨다. 세속의 가치를 뛰어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보여주셨고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소망을 안겨 주셨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빠져서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오히려 성경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기 바쁜 모습이다.기독교인이라면 자신의 이념을 넘어 신앙을 바라보아야 하고 신념을 주장하기 전에 성경의 가르침을 되새겨봐야 한다. 토론을 할 때에는 자기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도 경청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억눌림을 토로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보다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이웃들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어야 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기보다 땅에 떨어지는 밀알이 되어야 한다. 세상을 구원하셨지만 자기 몸을 제물로 내어주셔서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신 방법으로 화평케 하신 예수님의 본을 따라야 한다. 새해에는 한국 교회가 우리 사회를 화평케 하는 도구가 되기를 소망한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01-16
  • 신천지 상대 청춘반환소송 원고 일부 승소
      이단 신천지를 상대로 탈퇴자들이 제기했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신천지 측이 피해자 일부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란 최종판결이 나왔습니다. 법원은 신천지교회의 책임을 인정하며, 위장포교 방식에도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향후 종교사기 피해자들이 법적인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판례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자세한 소식 김민주 기자가 보도합니다.소위 '이단사이비 단체의 위장 포교가 위법하다'는 판결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이단 신천지의 종교사기로 청춘을 빼앗긴 피해자들이 제기한 '청춘반환소송'에서 입니다.대전지법 서산지원 1심 재판부는 14일, 신천지가 피해자 일부에게 손해배상금 500만원을 지급하란 판결을 내렸습니다.이와 함께 법원은 신천지 서산교회의 책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신천지의 위장포교가 위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전도대상자가 교리에 순화될 때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위장 전도방법'은 종교의 자유를 넘어 헌법질서에 어긋난다고 본겁니다.다만, 재판부는 피고인 가운데 신천지 서산교회의 책임은 인정했지만, 나머지 신천지 관계자5명에 대해선 가담행위나 특정 사실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며 기각했습니다.이번 소송의 결과는 신천지의 대표적인 포교방법인 위장 모략전도가 위법행위로 인정됐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또 향후 종교사기 피해자들이 법적인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판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홍연호 대표 /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앞으로 이러한 피해사례와 판례들이 모여 명확한 위법행위로 사법처리까지 된다면 종교실명제의 입법 등 실시 요구와도 같은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예상됩니다.”지난 2018년 12월 신천지피해자단체와 함께 국내에서 처음으로 청춘반환소송을 제기한 H씨는 승소할 날을 꿈꾸며 힘든 시간을 견뎌왔다고 고백했습니다. (H씨 / 신천지 탈퇴자)“(신천지는) 위법적인 행태를 항상 많이 행하기 때문에 그것이 염려가 됐었는데. 그래도 확실한 증거자료들이 많이 제출이 되어서 법원에서도 사실에 입각해서 정당한 판결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쁩니다.”H씨는 "청춘반환소송은 신천지 안에서도 알려지기를 꺼려하는 민감한 사안"이라며 "용기내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탈퇴자·피해자들이 힘을 낼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는 "아직도 전국에 신천지 피해자들이 많다"며,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청춘반환소송이 이어져서 이단 사이비의 위법성이 밝혀지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교계뉴스
    • 이단
    2020-01-16
  • 전광훈 목사, 한기총 회장 연임 노리나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연임을 위해 차기 한기총 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한기총 선거관리위원회는 전 목사의 후보 자격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전 목사는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 제26대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 후보 등록에 단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기총 정관에 따르면 대표회장은 1회 연임할 수 있다.한기총은 정관에서 대표회장 후보의 자격을 '성직자로서의 영성과 도덕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된 자'로 규정하고 있다. 전 목사는 19대 대통령 선거 때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의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낸 혐의로 지난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확정 받은 바 있다.또 최근에는 불법 집회 주도, 후원금 횡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어 후보 자격에 대해 선관위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이목이 집중됐었다.선관위는 다음주 중에 후보자의 적격성 여부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지만, 단체 내부에선 전 목사가 대표회장 후보에 적합하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전 목사가 자격심사를 통과할 경우, 오는 30일 열리는 한기총 총회에서 당락을 결정짓는다. 총회에서 있을 회장 선거에는 한기총에 속한 각 교단 대표인 총대(總代)들이 투표권을 행사한다.          
    • 교계뉴스
    • 총회
    2020-01-16
  • 한국성경신학회 제45차 정기논문 발표회 개최한다
      ©한국성경신학회   한국성경신학회(회장 현창학 박사)가 제45차 정기논문 발표회를 ‘고린도후서 주해와 설교’라는 주제로 오는 2월 17일 오후 2시 신반포중앙교회에서 개최한다.   이날 발표회에선 ‘새언약과 사역자의 본분, 영광, 고난(1~4장)’이라는 주제로 최승락 박사(고려신학대학원 신약신학)가, ‘새로운 피조물의 의미(5장)’라는 주제로 이승구 박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가, ‘바울 연보사역의 신학적 의미와 적용(8~9장)’이라는 주제로 허주 박사가, 마지막으로 ‘바울의 자기변호(10~11장)’라는 주제로 김현광 박사(한국성서대학교 신약신학)가 발표한다.   한편, 회비는 1만원이며, 성경을 사랑하고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행사 후에 신반포중앙교회에서 마련한 저녁식사를 나누면서, 우리들이 목회가 과연 개혁파적인 목회였는지를 반성하며, 교제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 선교뉴스
    • 선교단체
    2020-01-16
  • 악의 영들이 다음세대를 실족케 하는 도구 ‘성혁명’
      김지연 대표(한국가족보건협회,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 특임교수)     인류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건전한 성가치관은 주류로 인식돼왔다. 성 문제에서 선악을 구별하는 기준에 있어 성경이 다림줄 역할을 해 준 것이다. 예를 들어 창세기 말씀대로 성별은 남자와 여자 두 가지며, 마태복음 말씀대로 결혼은 1남과 1녀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 십계명에 따라 간음은 죄라는 인식 등이다. 성매매하는 것은 죄다, 성관계는 부부끼리만 하는 것이다, 동성애는 죄다, 근친상간해서는 안 된다 등의 인식도 성경적 성가치관의 한 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성별은 남녀 두 개만 있는 게 아니라 여자, 남자, 트랜스젠더, 중성, 양성동체 등 수십 가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 동성애 옹호론자, 인권활동가,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동성결혼을 통과시킨 나라가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30개에 육박하고 있다. 간통죄 처벌법을 폐지하고 간통을 성적 결정권으로 인정하는 나라도 증가하고 있다. 돈으로 얼마든지 성을 사고팔아도 된다며 성매매를 합법화한 나라도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 동성애를 비판하는 행위가 오히려 죄라는 법을 만들어 버린 나라가 50개가 넘는다. 심지어 소아성애도 성적지향으로 인정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인권단체가 북미에 등장했다. 기존에 성적인 타락이나 죄악으로 여겨지던 것이 이제는 죄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권리'이자 '선택권'이라며 법을 통해 강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타락한 성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흐름이 거세다. 성윤리와 성도덕을 파괴하는 법을 반대하는 선량한 시민을 오히려 소송하고 매장하는 성읍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고도로 성애화(sexualization)된 사람들이 그 성읍들을 채우고 있다.   대책 없는 관용주의(tolerance policy)와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은 진리에 따라 올바름을 외치는 이들의 호소를 낡은 가치를 붙든 꽉 막힌 보수주의자인 것처럼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 다음세대에게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테니 네가 원하는 모든 방식의 성적 만족을 취하라'며 독약을 주고 있다. 마치 이런 흐름에 편승하는 게 아주 훌륭한 처세술처럼 보인다.   거룩이란 무엇인가. 찬양을 들으며 눈물 흘리면서 감정의 요동을 느끼는 과정만으로 거룩이 입증된다면 얼마나 간편하고 좋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현상만으로는 우리의 거룩이나 성화가 입증되진 못한다. 그 눈물이 정말 거룩해지는 과정에서 나온 눈물인지 아니면 그저 단순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로 나온 눈물이었는지 당장 그 현장에서는 바로 알기가 어렵다. 오히려 그 찬양의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간 나, 즉 삶의 현장으로 돌아간 내가 나의 이웃, 가족, 원수를 대하는 태도, 내가 어둠속에서 즐기는 스마트폰 노트북 컴퓨터 앞에서 우리는 그 눈물이 어떤 눈물이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어두운 방, 아무도 없을 때 스마트폰, 노트북 앞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즐기는 자인가가 낮의 찬양 예배 시간에 흘린 눈물의 실체를 말해준다.   정치적 올바름주의(pc)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성경적 성가치관을 엎어버리고 구조와 질서, 윤리를 무너뜨리며 신권을 짓밟는 허황된 인권 만능주의 세상을 향해 맹렬히 돌격하고 있다. 동성애는 죄가 아니며 인권과 다양성, 자기 성적 결정권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그리고 성별은 얼마든지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있으며, 간통도 성매매도 죄가 아니며 오로지 개인의 성적 결정권이라며 항변한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경적 악행을 얼마든지 할수있도록 보장받기 위해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는 위험한 행위를 서슴없이 하고 있다.   신앙적 양심을 마비시키는 법과 제도, 문화의 확산은 끔찍한 젠더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광명한 천사로 가장해 대중적 인기를 끌며 가짜 인권을 정상으로 정착시키고자 꿈꾸는 인권 감성팔이들이 득세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혼전 순결을 지지하면 율법주의자나 강박증 환자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성관계는 부부간에만 해야 한다"고 말하면 조선시대 꼰대 취급을 받는다. 동성 간 성행위를 반대했다간 사회적으로 생매장당할 것을 감수해야 할 정도다. 그렇다 보니 '호모파시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호모파시즘이란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가는 불이익, 왕따,소송 배척 등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 동성애 독재적 사회분위기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렇게 밑바닥 모르고 처절하게 성경적 성 가치관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교회는 아무런 악영향을 받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영적 부흥을 누릴 것이라는 건 착각이다.   우리는 다음세대에게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보여줘야 한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성경에 근거해서 가르쳐야 한다. 특히 성경적 성가치관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마지막 때 악의 영들이 다음세대를 실족하게 하려고 사용하는 도구가 성 혁명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며 연약하다. 고린도 전서 13장이 말하듯 우리는 아직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온전하신 주님의 지혜만을 의지해 가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더 이상 공중에 붕 떠 있지 말고 착지해야 한다. "은혜로운 청소년 캠프를 잘 마쳤습니다. 거기서 찬양을 드리며 눈물 콧물 다 쏟고 주를 위해 죽겠노라 맹세까지 했다"라는 캠프 후기를 쓴 청년들이 막상 "동성애는 죄이며 동성애 차별금지법 막자"라는 목사님들 설교에는 "왜 동성애가 죄냐, 설마 성경대로 동성애가 죄라고 그대로 믿느냐? 나는 인권 혐오적인 기독교인은 아니다."라며 승냥이로 변하는 청년들 태도에 충격을 받은 목사님의 제보를 받기도 한다. 다행히 그런 청년들도 동성애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 및 성경에 관련된 강의를 듣고 나면 태도는 바뀌고 회개한다.   우리는 더욱 성경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며 죄와 싸우며 진리 안에서 거하며 감사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또한 성경적 성교육강사라고 타이틀을 스스로 붙인 자들도 프리섹스를 인정하거나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외부성기위주의 외설적인 성교육을 일삼는 자들을 주의해야 한다. 세상은 '불륜, 동성애, 성매매, 수간 등이 불의한지 의로운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 구별하지 말자'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부도덕한 행위조차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퉁치고 원하는 대로 다 누리자고 한다. 하지만 세상의 불법 앞에서 성경은 단호하게 그와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고전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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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16
  • 국내이주민의 좋은 친구, 평택외항선교회 김윤규 선교사
         ▲서울역 기차 안에서 틈새로 미군전도 후 교제하는 모습   1974년, 故한경직 목사는 당시 국내 8개 국제무역항을 찾은 세계 각국 선원들이 술과 유흥만을 즐기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들을 섬기기 위해 같은 뜻을 나눈 한국의 기독교지도자들이 모여 초교파 선교단체인 (사)한국외항선교회(이광선 상임회장)를 발족했다.충북 충주시 소태면 복 여울에 위치한 소태그리스도의 교회는 전통적 산골마을로서 산골에 선교적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선교의 비전을 품었다. 1999년 4월 자비량으로 평택외항선교회를 개척해 지난 20년간 선교와 목회를 겸해 사역하고 있다. 평택항을 중심으로 타 종교권 선원과 국내 250만 이주민의 구원(구심선교)를 위해 사역을 시작했다. 바로 대표 김윤규 선교사의 이야기다.  평택항 인근에는 외국인이 많다. 가톨릭·힌두교·불교·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를 가진 외국 선원들, 평택에 주둔하는 미군 등 모두가 선교 대상이다. 김 선교사는 평택 뿐만아니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과 주변에 거주하는 이슬람 교도에게도 365일 틈새전도, 브리지 전도, 외침 전도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1980년 전문인 직장 선교사로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등 기업에 재직했다. 사우디아라비아(담만, 알코바) 지역에서 건축설계와 현장 목회사역을 겸하던 중 이슬람 종교의 과격성을 직접 목격했다.    ▲이태원 이슬람사원 전도   그는 “한국에 거주하는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한국도 테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국내 무슬림이 살고 있는 주택가는 그들의 사원(기도처)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무슬림을 무조건 경계의 대상으로 여겨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 걸음만 먼저 다가가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선교사의 경험상 무슬림에게는 친구로 다가가야 전도도 더 용이하다는 설명이다.서울기독대학교 외국인 유학생 제자들과 함께 이슬람 사원을 방문하는 김 선교사는 무슬림과 직접 접촉해 교제하고 있다. 먼저 이슬람에 대해 경청하고 우리의 성경 말씀을 전한다. 이태원과 명동, 전철역, 길거리에서도 전도와 스피치로 복음을 선포한다.  2011년, 김 선교사는 신부전증으로 인해 일주일에 3번은 병원을 찾아 4시간이 넘는 혈액투석을 해야만 했다. 몸이 점점 망가져가는 상황에서도 학업과 전도를 멈추지 않았다. 2017년 신장이식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그 다음해 박사학위를 취득해 외국인사역에 온전히 헌신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서울기독교대학교의 외국인 유학생(석·박사)을 대상으로 제자훈련을 시켜 본국에 재파송하는 역선교를 꿈꾸고 있다. 그는  “그들은 한국인 선교사보다 언어와 문화에 해박하기 때문에 선교화 목회 사역이 활발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필리핀(가톨릭) 선원 크리스마스 전도설교 후 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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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사
    2020-01-16
  • 세기총, 말레이시아서 지부장 임명식·워크숍 및 통일기도회 가져
      세기총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열린연합교회에서 지부장 임명식 및 워크숍을 진행했다, ©세기총   사단법인 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이하 세기총, 대표회장 최낙신 목사, 사무총장 신광수 목사)는 지난 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열린연합교회에서 세기총 지부장 임명식 및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행사에는 세기총 대표회장 최낙신 목사, 법인이사장 고시영 목사, 초대대표회장 박위근 목사, 증경대표회장 황의춘 목사, 사무총장 신광수 목사 등이 참석했다.   워크숍에서 세기총 대표회장 최낙신 목사는 지부 활성화 방안과 지부의 효율적 운영에 관해 강의했다. 증경대표회장 황의춘 목사는 선교사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 강의했다. 이어 각국의 지부장들이 지부의 현황과 선교지의 사역를 소개하고 함께 기도했다. 세기총은 또 제21차 통일기도회를 지난 1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열린연합교회에서 말레이시아 한인교회연합회 주요 임원들 및 주요선교사들과 세기총 임원들이 모인 가운데 개최했다.   세기총 사무총장 신광수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기도회는 기도회 준비위원장인 말레이시아 지부장 김기홍 목사가 환영사를 하고, 대표회장 최낙신 목사가 대회사를 했다. 대표기도에 유럽한인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 김호동 목사, 성경봉독(사무엘하 2:1∼4)을 열린연합교회 최세진 장로, 특별찬송에 열린연합교회성가, 세기총 법인이사장 고시영 목사가 "왕의 지혜"란 제목으로 설교하고,헌금기도에 열린엽합교회 이호형 장로가 했다.   제21차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기도회 기념촬영 모습 ©세기총   특별기도의 제목과 인도자는 다음과 같다. "한반도 자유평화통일을 위하여", 세기총 미얀마지부장 김균배목사, "말레이시아 복음화와 한인교회들을 위하여", 인도네시아 지부장 안태룡목사, "헐벗고 굶주리는 어려운 이웃들과 북한동포들을 위하여", 말레이시아한인교회연합회 회계 진성재목사, "3만 한인선교사와 750만 재외동포들을 위하여", 세계여성선교사회 회장 배점선 회장이 맡아 진행했다.   이어 격려사를 세기총 증경대표회장 황의춘 목사가, 축사를 말레이시아 한인교회연합회 회장 김성민 목사가, 감사장을 세기총 대표회장 최낙신 목사가 준비위원장 김기홍 목사에게 전달한 후, "통일의 노래'를 다함께 손을 잡고 불렀다. 이후, 세기총 초대대표회장 박위근 목사의 축도로 제21차 통일기도회 모든 순서를 마쳤다. 기도회 설교에서 법인이사장 고시영 목사는 "다윗왕의 지혜를 배워 한반도 자유 평화통일을 앞당기자"고 했다. 환영사에서 준비위원장 김기홍 목사는 “세기총 초대대표회장 박위근 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증경대표회장들과 각국의 지부장님들 그리고 사무총장님을 뜨겁게 환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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