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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1.2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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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들이 주를 앙망.jpg

고웅영 제주새예루살렘교회 목사(두 번째 줄 왼쪽 첫 번째)가 2016년 4월 제주 한경면 차귀도 포구에서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인생이든 목회든 어느 시점에서 보면 많은 조각 모음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무의미한 파편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시간과 일상의 연속 선상에서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다. 많은 성도는 특별한 사건만 하나님의 역사와 개입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삶의 연속성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에 따른 결과로 삶과 목회가 이뤄진다.

2005년 맨손으로 시작한 제주 목회에서 하신 하나님의 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렇다고 주목할 만한 사역의 열매나 업적을 이룬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는 성도들과 사역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은혜의 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전통적인 장로교회에서 자라났다. 서울 신림동 미개발 지역에 있던 성림교회는 놀이터였고 모임 장소였다. 주변에 산이 있고 개울이 있고 과수원이 있고 밭이 그득했다. 교회는 미끄럼틀이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자연스럽게 보수적인 신앙을 형성하게 됐는데, 서울 미림중학교 3학년 때 했던 성령체험은 내 인생길을 바꿔놓았다. 공부를 그리 잘하지 못한 내게 고입 연합고사는 넘어야 할 산이었다. ‘주님, 제발 고입 시험을 잘 치게 해주세요.’ 마음의 불안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동기가 됐다.

매일 교회 종탑 아래 창고로 쓰던 방이나 계단에 앉아 기도했다. 수줍어서 넓은 기도실에서 기도할 용기는 없었다. 시계추처럼 집으로 가기 전 나만의 기도 처소를 들러야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봄이었던 것 같다. 종탑 아랫방이 잠겨 있었다. 계단 끝자락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다. “울랄라라 알랄라랄.” 기도하는데 갑자기 내 의지와 다르게 혀가 꼬이며 방언이 터져나왔다.

‘아, 이렇게 크게 기도하다가는 계단을 타고 소리가 퍼져서 누군가 올라오지 않을까.’ 걱정이 스쳤지만 혀와 입술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었다. 기도하는 동안 마음의 기쁨과 평안이 임하는 것을 느꼈다.

10분쯤 지났을까 했는데 기도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1시간이 훌쩍 넘었다. 그날 이후 종탑 아래 계단기도실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됐다. 주님의 은혜로 200점 만점의 연합고사에서 180점을 맞았다. 성남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나님은 나를 긍휼히 여기셨다. 작은 믿음으로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사랑을 맛보게 해 주셨다.

고등부 시절 또 한 번의 은혜를 경험했다. 중증 축농증으로 고생하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교회 다음으로 많이 간 곳이 이비인후과 병원이었다. 심하면 이틀에 한 번 막힌 코를 뚫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코에 가득 찬 고름을 뽑아내려고 젓가락 길이의 기구를 코 안쪽까지 집어넣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절은 거의 입으로 숨을 쉬었다. 병원에선 코 안쪽 뼈가 휘어서 수술해야 좋아질 수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교회 학생회장을 맡았다. 3일 동안 금식하며 수련회를 인도했다. 수련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에 이런 감동이 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치료해 주셨다. 이제 축농증은 끝이다.’ 훗날 어머니는 내가 수련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하나님이 제 코를 치료해 주셨어요.”

나는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축농증으로 이비인후과를 간 적이 없다. 축농증의 치유를 위해 금식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한 금식에 선하신 하나님은 치유로 보상하셨다. 하나님은 이기적인 목적이 아닌 금식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배웠다.

청년 시절 하나님은 나를 두 번 살려주셨다. 1990년 주일 청년부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였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인도의 가장자리를 걷고 있었다. “끼이익.” “쿵!” 갑자기 자동차의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 오른편에 승용차가 서 있었다. 운전자가 놀란 눈으로 뛰쳐 나왔다. “학생, 괜찮아?”

나중에 알고 보니 차도와 인도 사이를 걷던 나를 승용차가 쳤다. 이후 자동차의 보닛 위로 굴렀고 운전자의 옆에 떨어진 것이었다. 나는 생명이 위험에 처한 줄도 모르게 천사의 보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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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들이 주를 앙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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