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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쌓여도 지식은 쌓이지 않아

독서에서 오는 목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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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1.2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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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휘운 독서논술 교사

 

필자는 독서 교육을 10년 이상 해 왔다. 그동안 독서의 양도 늘었고 교육 경험도 쌓였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지식이 쌓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그럴까?' 하는 의심이 들었고, '왜 그렇지?', '어떻게 확신하지?' 하는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알겠다'는 생각보다는 '알고 싶다'는 갈망이, 그리고 '난 너무 모른다'는 탄식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책에서 기쁨을 얻지 못한 건 아니었다. 책 속엔 재미, 감동, 신선함, 충격 등 다양한 것들이 담겨 있었고, 새로운 책은 항상 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앎'이라는 측면에서는 언제나 의문과 아쉬움이 남았는데, 최고의 전문가들이 쓴 책을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사고(思考)가 하나님을 제외시켜 놓고 이루어진 사고였기 때문이다. '지식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제쳐놓고 쌓아올린 글 더미들은 확신이 아닌 의심을 낳기에 충분했다.

 

코넬리우스 반틸(Cornelius Van Til)은 '지식'이란 것이 하나님과 인간에게 어떻게 다른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사실(事實)들을 본 후에 또는 그러한 사실들이 그곳에 존재한 후 (아마도)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작동한 후에, 그러한 사실들에 대해 알거나 해석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우 사실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이 선행(先行)한다. 즉 하나님은 사실들이 있기 전에 사실들에 대해 아시거나 해석하신다. 사실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또는 그의 포괄적인 해석이 사실들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변증학' 中)

 

어떤 대상에 대한 진실을 인식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앎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진실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존재 이전에 그것을 확정적으로 해석하셨고, 해석 이후에 그것을 존재케 하셨다. 그러므로 앎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해석을 따라야만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적(對敵)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이들이 인간을, 우주를, 역사를 해석한다. 이미 확정된 의미는 무시하고, 자율적으로, 계시를 억누르며 생각을 풀어 나간다(롬 1:19-23). 기독교인이 그런 해설을 받아 읽고 있다니! 이런 무신론적 해석 꾸러미들을 머릿속에 담는 것이 지식을 쌓는 것이겠는가.

 

필자는 교사로서 학자들이 만든 재료들을 가지고 학생들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언제나 목마름을 느낀다. 하나님의 해석을 따라 세상 구석구석을 해석한 다양한 자료들을 구하고 싶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세속 학자들이 만든 자료들을(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주어지기는 하지만) 성경적 원리에 입각해 재해석하고자 나름대로 아등바등한다. 에타 린네만(Eta Linnemann)은 모든 전공과목을 하나님 말씀에 맞춘 대학 수준의 교육 기관이 절실하게 요청된다고 했는데 격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은 아주 많지만 그것은 학문의 세계에도 넘쳐난다.

최휘운 독서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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