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4-08(목)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0.03.23 11:18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최더함박사.jpg

최더함 박사

 

산 넘어 산이다. 오래지 않아 진정될 것 같았던 코로나 사태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가장 무서운 속도로 증가 추세에 있어 전 지구촌을 공포 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미국 존스 홉킨스 의대가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3월 18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누적 환자 수가 19만 8천 18명이다. 이중 중국이 78,824명(사망자 수 2,788명)으로 가장 많고 뒤이어 이탈리아가 31,526명, 스페인이 11,826명, 독일 9,360명, 프랑스 7,695명, 미국 6,427명의 순이며 이중 총사망자 수는 약 8천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18일 현재 확진자 수는 8,413명에 사망자 수는 84명이다.

이러한 비상상황을 맞이한 세계는 나라마다 허겁지겁이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가장 잘 대처하고 있다고 평가를 받을 지경이다. 미국은 지난 17일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서 최초로 발생한 이후 지금 50개 주와 수도 워싱턴 D.C로 확대되었고 일부 주에서는 자택대피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84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뉴욕시도 곧 이 명령을 시행할 직전에 있다는 소식이다. 유럽연합(EU) 27개국 회원국들도 저마다 대비책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각국 정상들은 17일에 화상회의를 열어 앞으로 30일간 외국인의 EU 입국을 금지하자는 데에 동의했다. 프랑스는 전국민 이동금지명령을 내린다고 하고, 독일은 자동차공장을 비롯한 주요 공장가동을 일시적으로 운행중단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가장 상상하기 싫은 시나리오는 의료보건시스템이 붕괴되어 더 이상 환자들을 병원에 입원시킬 수 없게 되는 날이 닥치는 것이라고 예견한다. 현재의 증가추세에 의하면 늘어나는 환자 수에 비해 각국의 병상은 턱없이 부족하고 의료진도 곧 고갈될 처지라고 한다. 이것은 병원이 원래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는 정말 상상조차 힘들 지경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코로나 사태는 전무후무한 자연재해이자 재앙으로 보여진다. 자연과학을 발견하고 발전시켰다고 자랑하며 뽐내던 인류가 이러한 천재지변 앞에 얼마나 허망하고 무력한 존재인가를 여실히 실증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 사태를 직면한 교회의 입장이다. 특히 개교회 중심으로 형성된 개신교회들은 일정한 지휘체계 혹은 명령 체계가 수립되지 않아 위기 시에 천주교나 불교처럼 일사분란한 행동통일을 기하기 어렵다. 그저 각 총회의 권고와 개교회의 자발적인 대책 수립에 의존할 뿐이다. 이때 정부 당국에서는 개신교회의 주일예배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한 지자체장은 정부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엔 감염병 예방법 49조에 따라 3백만 원 벌금에 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지금 정부는 각 지자체 별로 교회의 현황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필자도 하루 전에 동사무소 여직원으로부터 교회의 이름과 담임목사의 이름과 현재 운영상황에 대한 실태조사목적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점심 때엔 몇몇 목사님들과 식사를 하면서 이런 시기에 교회가 어떻게 대응하고 입장을 정해야 하는지, 특히 주일예배를 위해 성도들을 회집해야 하는지 아니면 영상예배로 드려야 하는지 등에 대해 의견교환을 서로 했다. 이를 계기로 나름대로 교회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를 느껴 이 글을 통해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먼저, 모든 교회들은 지난 2월 27일에 발표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의 “국가적 비상상황과 공예배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성찰”이라는 글과 2월 28일자로 발표된 합신총회신학연구위원회의 “코로나 19사태로 인한 공예배의 신학적, 목회적 제안”의 글들을 참조하시길 제언한다.

그럼에도 여기에 한두 가지를 덧붙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선 공예배의 회집 여부에 대한 입장이다. 우리는 앞서 두 기관이 언급한 대로, 또 장로교의 지침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기타 신조 신앙고백서의 가르침을 따라 공예배를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제103문답은 “안식일 날인 주일에 교회에 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례에 참석하며 주님에게 공적으로 기도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하나님이 명령한다고 고백한다. 특히 개혁파 교회에게 있어서 주일성수는 목숨을 지키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므로 주일 예배를 강권에 의해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교회에 대한 억압이자 위헌적인 발상이다. 교회법은 정부가 교회의 예배를 중단시킬 권한이 없다고 못 박고 있다. 물론 성도들은 국가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그들의 합법적인 명령에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3장 4항). 그러나 반대로 국가 위정자들은 한편으로 교회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정교분리의 원리이다. 상호 협력과 견제, 그리고 상호교류가 그 목적이다.

 

단,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존재로서 세상의 치유자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누구보다 국가의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헌신 봉사해야 한다. 주일예배를 함께 모여 드리는 일만큼 국가적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는 일도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국가의 위기에 절대로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엔 3.1 만세운동을 비롯한 애국애족 독립운동을 주도했고, 6.25 전쟁 때엔 총을 들고 괴뢰군에 맞서 싸웠다. 서해안 기름 사태 때엔 전교회가 다투어 봉사함으로써 앞으로 30년간은 폐허의 땅이 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불과 3년 만에 기적 같은 해안회복을 이루어내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대재앙의 하나이다. 이런 때 교회는 누구보다 정부에 적극 협조하고 모범된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치유자로서 빛과 소금의 사명이다. 세상을 껴안지 못한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그래서 한 목사님이 영상 예배에 대한 입장을 물으셨다. 예수님은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장소가 아니라 “영과 진리”라고 말씀하셨다(요 4:23~24). 위그노들은 핍박을 받아 산속에서 혹은 동굴 안에서 예배를 드렸다. 여기에 가정이라고 예배의 장소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상황에 따라 판단할 것이다. 특히 상가 등 임대 교회들과 자가 건물을 가진 교회의 입장이 다르다. 필자의 교회는 상가에 임차해 있고 상가연합회에서 정중하게 잠시 주일 공예배를 중지해줄 것을 요청함에 따라 지난주부터 영상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되는대로 마스크를 구입하여 이웃 주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요소들도 발견된다. 초대교인들처럼 교회당에 모여 즐겁게 교제하는 행복을 잠시 밀친 아쉬움은 있지만 교회에서 적절히 성경 읽기와 학습을 독려하고 필요한 서적들을 안내하여 독서케 하고 일정한 시간에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를 가지게 하고 비록 통신을 통해서이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중보의 기도를 하면서 어쩌면 가장 좋은 신앙회복과 성숙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아멘.

최더함 박사(Th.D.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전체댓글 0

  • 63474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코로나와 예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