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19(수)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이창엽 선교사칼럼)교회의 문과 종
                                             교회의 문과 종  교회의 문은 성과 속의 구획이면서, 소통할 수 있는 성과 속의 ‘사이’이며, 문지방처럼 외부이자 동시에 내부이다. 현대교회의 문은 육중한 문이기보다는 본당 건물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주변에 위화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모으고 누구나 편히 들어와 영적 호기심으로 내부를 들여다보고 싶은 그런 문이어야 한다. 자신의 혼탁한 영혼을 정화하며 영적 욕망을 충족해 줄 것 같은 문이어야 한다. 이문을 나서면 세상을 섬기고 사랑해야 할 측은지심의 문이어야 한다.                                         고딕 성당의 종 vs 솟을대문의 종 서방교회는 정방형의 돔이 있는 비잔틴식 구조를 전례의 집전에 적절하도록 장방형 로마네스크와 고딕 형태 (뾰족탑)로 변경하여 발전시켜왔다. 서방교회의 출입문은 제대가 있는 동편을 마주하는 서쪽 벽면에 설치하였다. 고딕 성당이면 서쪽 벽면 중앙부위에 대형 장미창을 설치하고 그 주변을 이스라엘 왕들의 조각으로 장식하였다. 그리고 양쪽에는 탑을 세워 ‘하나는 마을의 종, 하나는 교회의 종’으로 사용하였다.   고딕 성당의 대표적인 형태인 루앙(노트르담) 대성당 (양쪽에 탑을 세워 마을의 종과 교회의 종을 설치하였다.)   강화도 대한 성공회 온수리 성당, 외삼문 현재도 마을의 종으로, 교회의 종으로 사용 하고 있고, 오늘도 파송의 종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지고 있다. (솟을대문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운데 지붕은 우진각으로 처리하여 조선시대 성곽의 망루 같은 분위기를 담고 있다. 실제로 솟을지붕 아래 종을 매달고 사방으로 벽을 터서 종소리가 퍼져나가게 꾸몄다.)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1-01-09
  • (이창엽 선교사칼럼)문화유산-종교건축물
                                                      문화유산-종교건축물 한 나라의 문화 척도는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전통을 간직한 고유의 건축물로 가름할 수 있으며 이는 건축기술로써 문화유산이고 자산이다. 현재까지 보존되고 전해오는 문화유산으로 건축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중 종교건축의 비중이 크다. 종교건축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동·서양 인류문화유산의 대표적인 산물로써 당대의 걸출한 건축가들과 장인들이 건축과 예술의 언어로 시대정신을 투영하였다. 하늘에서 본 노트르담 대성당 (바실리카 양식으로 3랑식 ‘nave, aisle, transept (십자형 평면의 양쪽 날개)' 구조이다. 최초의 바실리카 양식으로는 콘스탄틴 대제의 궁전이었던 라테란 대성전이며, 교회건축의 모델은 콘스탄틴 대제가 완공한 베드로 대성당이다.)                                  노트르담 대성당 vs 종묘 정전 종묘 정전은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모신 유교 사당이다.정면 19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일출목 이익공 집이다.  종묘 정전 (멀리서 촬영한 종묘 정전이다. 평지에서 봐도 웅장하고 거대하다. 감탄을 자아낼 정도이다. 이 정도의 건축기술은 약간의 변형만으로 바실리카 양식의 3랑식 구조의 교회건축을 할 수 있다. 전통 한옥건축을 지키면서 서양의 건축인 교회건축을 세울 수 있다.)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1-01-02
  • (이창엽 선교사칼럼)시구문(屍軀門)-구원의 문
                                                  시구문(屍軀門)-구원의 문  교회 첫 문이 시구문인 것은 교회의 여러 기능 중에서 죽은 자들이 하나님께로 다가가는 관문의 역할을 한다는 상징적 의미로서 구원의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첫 문은 교회의 여러 사명 중에 가장 처음의 사명이 죽은 자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서울 영락교회, 시구문                              교회의 첫 문인 시구문 vs 불교 가람의 첫 번째 문, 일주문 일반적인 가옥 형태는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데 비해,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있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일주문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으로,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다.   영주 부석사 일주문,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는 경계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12-2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한국교회의 비상(非常)시기입니다"
          지금은 정말 대한민국의 비상시기이고 한국교회의 비상시기입니다. 다른 때는 몰라도 성탄절 예배까지 포기한다는 것은 너무나 굴욕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지지난주부터 예배를 회복하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하였습니다. 중대본과 협의 할 때 우리 쪽에서 2.5단계에서도 공간의 10% 인원이라도 예배를 드리도록 조정 했어야 하는데 이것을 대비 못한 게 발등을 찍고 싶을 정도입니다.   사실은 모두들 2.5단계까지는 안 가리라고 생각 했거든요. 솔직히 우리 교회는 당분간 온라인예배를 드려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워낙 결속력이 강하고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 강해서 유튜브와 화상 줌으로 해도 엄청 많은 성도들이 참여합니다. 그러나 저는 예배 회복을 위한 시대적 소명감을 가지고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그러자 지난주 토요일 오전에는 방역단체에서 교계에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주려고 회의를 하려다가 갑자기 국내 확진자가 900명, 1000명으로 올라가 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일부 교회에서 무더기 확진자가 나와버린 것입니다. 그것도 다른 교단이 아니라 우리 교단 교회에서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회의가 취소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정말 맥이 풀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통보를 받은 금요일 저녁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철야기도를 인도한 후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요즘은 어느 말 많은 선교단체가 규칙을 어기고 숨어서 집회를 하다가 무더기 확진자를 내버렸지 않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오히려 확진자 수가 더 많이 올라가고 교회마저도 가세를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도 사람인지라 힘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놈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항상 탐욕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숙주 자체가 인간의 탐욕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교회도 육신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선교집회나 예배도 신앙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면 안되지요. 중세적 사고로 세를 과시하거나 인간의 교권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집회나 예배에서 대부분 집단 감염이 이루어졌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을 할 때, 제가 예배회복을 위하여 뛰고 노력하는 것도 저의 탐욕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누구와 경쟁할 일도 없고, 세 과시를 할 일도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 안에는 인간의 탐욕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주님과 공교회를 위한 거룩한 욕망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뛰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한교총 두 대표회장님과 함께, 때로는 교단 총회장님들과 함께 정부의 주요 지도자들을 만나서 반 사정을 하고 반 공갈을 하면서 설득하고 소통을 하였습니다. “성탄절 예배는 우리 기독교뿐만 아니라 천주교도 열망하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기독교 2000년의 역사, 한국교회 140여 년 동안 지켜온 기독교 최대의 성일입니다. 성탄절만큼은 제한적으로라도 예배를 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비상시기에 일을 하다보면 맥도 풀리고 지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정신없이 뛰어다녔습니다. 하루 종일 저와 함께 다니던 한 분이 저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소 목사님, 어떻게 하루하루를 이렇게 살아갑니까? 그 많은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해 내세요? 그러고도 건강이 버텨지나요.” 저는 이런 대답을 하였습니다. “비상(非常)시기 일수록 우리가 더 비상(飛上)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잘 버텨왔는데 왜 포기합니까, 비상시기일수록 우리가 더 비상하고 웅비해야죠. 저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절규하면서 우리의 신앙이 다시 비상하고 또 비상하면 하나님께서 코로나의 기승도 꺾어주시고 확산세를 막아주신다고 믿으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록다운된 한국교회를 다시 열어 주옵소서. 무너진 한국교회를 세워주시고 대한민국도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이런 비상 시기일수록 우리 모두 희망의 날개를 펴고 더 비상하고 웅비하겠습니다. 아무리 맥이 풀리고 지쳐도 다시 날갯짓을 하며 또 한 번 비상하게 하소서.”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20-12-21
  • (이창엽 선교사칼럼)계단의 형상화-골고다의 언덕, 순례자의 길
                                              계단의 형상화-골고다의 언덕, 순례자의 길 교회는 본당에 이르는 통로를 의도적으로 경사지게 설치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를 통해 오르는 분위기를 창출한다. 본당을 향한 경사로는 순례자의 길과도 같기에 의도적으로 통로를 불편하게 설치해야 할 신학적 이유가 있다.   서울 경동교회, 계단 길-경사진 통로로 골고다 언덕을 형상화  ('해골‘이란 뜻의 아라어 '굴굴타'의 헬라어 음역이다. 일명 '갈보리'라 한다.)                            골고다의 언덕 vs 사찰의 누하진입 vs 계단의 권위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을 것 같은 만세루는 누하진입을 통해서만 들어 갈 수 있도록 되어있다. 대웅전을 들어가는 입구는 저절로 몸을 움츠려지게끔 만들어 놓고 있다. 어둡고 나지막이 누 아래를 걸어가는 동안 이미 자신을 낮추고 마음을 정결하게 가다듬을 수 밖에 없다. 극적인 효과를 통해 신성한 곳을 더욱 신성하게 보이게끔 설계한 한국불교의 건축미이다.   안동 봉정사, 해탈문 진입하는 누하주 계단   계단은 힘이나 권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설치된다. 계단은 건축가들에게 권력을 보장하는 건축적인 요소인 동시에, 자신의 조형 솜씨를 발휘하고 사용자의 동선을 결정할 수 있는 매력적인 부재이다.   stairs building architecture rise kontor   TIP☞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마27:33) (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12-20
  • (이창엽 선교사칼럼)페디멘트(Pediment)의 최후의 심판
                             페디멘트(Pediment)의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은 세상의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 재림하여 세상의 시작부터의 전인류를 심판하여 그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실행한 자를 최종적으로 구원하고, 그를 믿지 않고 그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않은 자를 영원히 멸함을 의미한다. 파리 마들렌 성당 페디멘트의 최후의 심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왼쪽은 선택받은 자를 오른 쪽은 구원받지 못한자를 배치하였다.)                          서양의 페디멘트vs 전통건축의 합각벽 페디먼트(pediment)는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색이다, 일반적으로 조각을 하고 세 꼭지에는 장식 벽돌을 붙이는 것이 전형적이고, 박공은 건물의 입구 위쪽과 지붕 사이에 있는 삼각형의 마감 장식을 한 건물의 벽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건물과 같이 장식을 하거나 특수한 형태로 된 경우에 그것을 페디먼트(pediment)라고 부르며 대표적인 예는 파르테논 신전에서 살펴볼 수 있다. 페디먼트(pediment)는 그 후 고전 건축의 전형적인 모티브가 되었다. 고전 건축에서 박공벽은 경사가 완만하여 일반적으로 코니스를 두르며, 페디먼트(pediment)는 창 또는 출입구의 윗부분 장식으로써 건축물의 안팎에 사용하였다.(두피아,2020)   합각 벽(合閣 壁)은 지붕 위 양옆 박공으로 ‘ㅅ“자 모양을 이루고 있고, 박공 머리의 세모꼴로 된 벽으로 지붕 용마루 양 끝머리 아래에 있는 삿갓처럼 생긴 벽을 합각 벽(合閣 壁)이라 한다. 나무 널(풍판)이나 벽돌, 흙 따위로 막아 벽을 만든다. 합각지붕을 흔히 팔작지붕이라 한다. 경복궁, 합각벽에 새겨진 전각의 꽃   (TIP)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마25:33) (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12-13
  • (이창엽 선교사칼럼)에큐메니칼운동(Ecumenical movement)
                                                에큐메니칼운동(Ecumenical movement) 에큐메니즘(Ecumenism)은 개신교회의 일치에서 시작하여, 개신교와 정교회의 협력으로 시작된 기독교 교회 일치 운동이다. 기독교의 다양한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교회의 보편적 일치 결속을 도모하는 신학적 운동이다. 어원은 온 세계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인 오이쿠메네(oikoumene)로부터 유래하였다. 이 운동의 영향으로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 다원주의와 로마 카톨릭 교황을 중심으로 한 세게 교회 일치 전략을 우려하여 장로교 보수파인 예장합동과 장로교 온건파 예장통합으로 분열됐다.                                   에큐메니컬 운동 vs 건축물에서 에큐메니컬 정신  오이쿠메네는 본래 희랍어 ‘집’의 뜻인 오이코스(oikos)는 성도로 구성된 거룩한 공동체를 뜻한다. ‘집’이라는 뜻의 일반명사를 성도가 삶과 인격을 나누는 공동체를 가리키는 데 차용하였다.   에큐메니컬 정신을 바탕으로 파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외벽이다. 이것은 다양한 개체가 모여 하나가 됨을 나타낸다. 불광동 성당, 파벽돌   집은 예수를 상징하는 주춧돌과 집을 짓는 데 중요한 재목인 서까래, 도리, 보 기둥을 통틀어 일컫는 서돌이 하나가 되어 형성하고 있다. 전주 한벽문화관 신축 공사 현장   (TIP)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17:21) (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12-06
  • (이창엽 선교사칼럼)하나님이 예비하신 처소에 이르는 길목-요단강
                                             하나님이 예비하신 처소에 이르는 길목-요단강 요단강은 약속의 땅 가나안의 동편 경계를 이루는 요단강은 죄를 씻는 것이요(야1:4~5), 죄악 세상에서 천국으로 건너가는 곳이며(왕하2:8,11), 복된 처소로 들어가는 통과문이고(신3:25), 하나님이 예비하신 처소에 이르는 길목이자(신11:31), 옛 자아가 죽고 거듭나는 곳(요3:22~23)이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복된 처소로 들어가는 통과문-요단강 vs 장생과 풍요를 상징하는 월궁으로 들어가는 통과문-월문 월문(月門)에서 달은 장생과 풍요를 의미하고, 달에는 항아라는 선녀가 사는 월궁이 있다고 한다. 창덕궁 낙선재에서 장락문을 통과하기전 월교를 지나가고, 안채에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와 계수나무, 토끼로 월궁을 만들었다.   창경궁 낙선재 장락문 (TIP) ☞ 구하오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소서 하되. (신3:25) (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11-28
  • (이창엽 선교사칼럼)(ICON)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영생의 진리-놋뱀
                                  (ICON)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영생의 진리-놋뱀 놋뱀은 구리로 만든 뱀의 형상을 가리킨다. 출애굽직후 음식문제로 광야생활의 고충을 호소하며 불만을 토로하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모세가 만들어 장대에 매단 것인데 이것을 보는 자는 보두 나음을 얻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당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가 얻을 영생의 진리를 가르치면서 이 사건을 비유적을 말씀하셨다.   천호성지, 부활 성당(정면) * 십자가 밑에 승천을 의미하는 형상이 모세의 놋뱀처럼 무척이나 이채롭다.                                        (ICON)놋뱀vs 용머리 이미지는 상당한 힘이 있다. 이미지를 축출하는 데 앞장서 왔던 현대의 개신교회들조차 교회 안에 신성 모독을 피해 갈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이미지들로 치장하고 설교에서까지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찰에서 법당 전면 바깥쪽에 용머리를, 법당 건물의 뒤쪽 추녀 밑에 용꼬리를 장식하여 법당자체가 피안의 세계로 향하는 배, 즉 반야용선(般若龍船)임을 상징한다.   순천 송광사의 용머리 ICON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4~15)(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11-22
  • (이창엽 선교사칼럼)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예수
                                        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예수 예수는 죽음을 겪지 않는 천사보다 월등한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우리 죄를 사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성취하시려고 낮아지셔서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낮은 굴뚝 vs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 굴뚝 연기는 따뜻한 방과 따뜻한 밥의 상징이다. 전돌이나 기와를 켜켜히 쌓은 굴뚝이 처마위 까지 솟아 이를 통해 담장 밖에서도 위세를 알 수 있어 권위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소박하고 겸손한 낮은 굴뚝은 낮게 깔린 연기로 해충을 없애는 기능도 있지만, 그보다는 밥 짓는 연기가 안 보이게 하는 가난한 이웃을 배려한 주인의 겸손함이다. 정읍 김동수 가옥 굴뚝 (TIP) 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예수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11-15
  • (이창엽 선교사칼럼)서양의 성당과 한옥성당
                                                   서양성당 예배당과 한옥성당 예배당 바실리카(Basilica)는 교회 건축양식 중의 하나이다. 로마 시대 때 시장이나 재판이 열리던 공공실내 건물이었다. 금지된 종교가 하루아침에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을 때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예배의식에 최적화된 건축양식을 찾던중에선택한 것이 바실리카다.                                     바실리카식 성당 예배당 vs 전통한옥 성당의 삼랑식 예배당   바실리카(삼랑식)형식이란 ‘nave, aisle, transept (십자형 평면의 양쪽 날개)'로 구성되는 삼랑식 건물로써 로마의 바실리카를 모델로 하였다. 최초의 바실리카 양식으로는 콘스탄틴 대제의 궁전이었던 라테란 대성전이며, 교회건축의 모델은 콘스탄틴 대제가 완공한 베드로 대성당이다.     전주 전동성당 내부, 바실리카 양식   박해시대에 성당은 장방형 평면에 단층 팔작 기와지붕의 순수한 한옥구조로 재래 한옥과 달리 정면을 장방형의 짧은 쪽에, 즉 재래건물의 측면에 두었다. 이는 서양 교회건축의 기본인 바실리카(삼랑식)형식의 평면구성을 위해서 불가피한 조치였을 것이다   청주 수동성당, 내부는 서양 교회건축의 기본인 삼랑식(바실리카 양식) 구조로 되어 있다.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11-08
  • (이창엽 선교사칼럼)구원의 방주-방주형 배치
                                             구원의 방주 방주란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대홍수를 피하기 위해 제작한 직육면체로 된 일종의 무동력선을 말한다. 구속사적인 맥락에서 방주는 범죄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집요하고 철저한 멸망이 아니라 그들을 조에서 구원하여 거룩하게 보존하려 하셨음을 보여주는 구원의 영원한 표상이다.                                    방주형 배치 vs 풍수지리상의 행주형국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한국 최초의 한옥성당으로 존 코르페 주교(한국명: 고요한)가 건립한 것이다. 방주형의 배치를 위하여 언덕을 절개하여 방주 형태를 만들었다. 행주형국(行舟形局)은 풍수지리설상 지형이 배가 가는 모습으로, 우리나라의 홍수설화에 의하면 청주는 예로부터 별명이 주성(舟城)으로 분지형 고을인데, 이 고을 사람은 홍수가 나면 배가 있어야 산다는 생존의식을 지니고 삶의 배(救命船)에 살고 있다.    인천강화성당 방주형 배치 (TIP)노아의 방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창6:18)) (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10-31
  • (이창엽 선교사칼럼)유일하시고 영원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유일하시고 영원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자기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만큼 값어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두려움과 수치감으로 인하여 절망에 빠져 있는 우리를 단번에 자유케 하시려고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대언자요, 유일한 중보자로 주셨다. 그리스도의 이름 이외의 다름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거짓으로 만드는 것이요, 그들의 기도에 대해서는 응답의 약속이 전혀 없는 것이다.                                  유일하신 중보자 그리스도 vs 전통건축에서 오리의 종교적 상징 오늘날 장대 위의 세우는 솟대의 새는 대부분 오리다. 오리는 하늘을 나는 것은 물론, 물 위에 떠 있고 때로는 잠수를 하기도 한다. 하늘과 땅, 물을 모두 아우르는 셈이다. 오리는 신의 뜻을 수행하고 전하는 사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래된 민속신앙이다.   청계서원 용마루의 오리 (TIP)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 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 2:5)(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10-24
  • (이창엽 선교사칼럼)샤론에 핀꽃 예수
                                                           샤론에 핀꽃 예수  성경에서 예수를 샤론의 꽃으로 비유한 곳은 없다. 찬송가 89장에 ‘샤론의 꽃 예수’ 때문에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샤론과 같은 척박하고 그늘진 땅에 오신 예수를 작사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가서 2장 1절의‘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하는 구절에서 가져온 것으로 신학적으로 예수를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부처를 상징하는 꽃을 진흙땅에 뿌리를 내린 연꽃으로 비유한다.                                     샤론에 핀꽃 예수 vs 기둥에 핀 연꽃, 다포 포(包)는 처마를 장식적으로 길게 내밀기 위하여 처마 도리 밑에 처마를 받게 한 짧은 부재로 주심포집은 고려 시대에 존재하던 양식으로 기둥에만 공포가 있다. 대웅전이나 궁궐의 정전은 건물이 높기에 그에 걸맞은 처마 깊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깊은 처마는 지붕 무게 때문에 밑으로 처지게 된다. 이러한 처짐을 방지하기 위한 구조 부재가 공포이다. 그 외에도 지붕의 육중한 무게를 기둥에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순천 송광사, 다포집  다포집은 조선 시대에 유행하던 양식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포가 많이 있는 것을 말한다.     (TIP) ☞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아가서 2:1) (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10-17
  • (이창엽 선교사칼럼)구유에 오신 예수
                                                                구유에 오신 예수 귀하고 높으신 분이 이 세상에 오실 때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마구간 구유에 오셨다는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초라하고 비참해 보인다. 예수께서 구유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시고, 모든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또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기 위함이었다.                                               베들레햄 구유 vs 동양 마구간 구유 구유는 마소나 돼지에게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을 의미한다. 여러 의미가 있으나 성경에서는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라고 하였다(이사야 1:13).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탄생을 통해 영적으로 우리의 양식이 됨을 성경적으로 보여주셨다. 한국신화에 의하면 강원도 정선군 일대에서는 구유의 머리 부분에 ‘구능 장군’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어린아이가 병에 걸렸을 때 이곳에 물을 떠놓고 빌면 아픈 것이 낫는다 한다. 또한, 소가 더위를 먹었을 때 구유에 진흙을 바르고 진흙 물을 강제로 입에 들이 붓으면 된다고 믿는다.     안동 서애 류성룡 생가 마구간, 구유   (TIP) 예수 탄생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눅2:12) (대한성서공회, 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10-10
  • (이창엽 선교사칼럼)마가의 다락방 오순절 성령
                                                         마가의 다락방 ,오순절 성령 오순절 계통의 신학에서는 성령세례의 증거로 방언을 강조한다. 지나치게 강조하면 여러 가지 문제를 가져온다. 사도 바울이 권면한 다음의 말씀을 주의 깊게 생각 할 필요가 있다. '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가리가 되고’ (고전13:1~3)가                                      서양의 다락방(Upper room)과 동양의 다락방Attic (Upper room) 지붕 위 옥상에 짓기도 하고 건물 2층에 베란다처럼 만들어서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도록 한 공간이다. 마가의 다락방처럼 수십 명 이상이 모일 수 있을 정도로 큰 다락방도 있다. 개신교의 장로회 교단인 예장 개혁의 별칭이다. 한기총 소속으로 이단해제가 되었다. 마가의 다락방 오순절 성령 Attic 주로 부엌 위에 2층처럼 만들어서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나 다락처럼 높은 곳에 만들어 꾸민 방(국립국어원,2020) 구례 운조루, 다락방   (TIP) 마가의 다락방 오순절 성령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2:2)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10-03
  • (이창엽 선교사칼럼)그리스도의 윤리관의 근본원리-황금률(Golden rule)
                                       그리스도의 윤리관의 근본원리-황금률(Golden rule) 3세기의 로마 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에 있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문장을 금으로 써서 거실벽에 붙인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금률 vs 건축에서 황금비와 우리나라 전통건축에서 금강비 황금비: 인간이 인식하기에 가장 균형적이고 이상적으로 보는 비율로 1:1618을 황금비로 활용한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이집트 피라미드와 현대에서는 신용카드, 와이드 모니터등에서 활용하고 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황금비 한옥의 평면· 입면 비례는 3:4:5의 비율로 구고현법이라고 해서 오래전부터 집의 직각을 잡는 방법(청명을 본다고 함)으로 쓰여 왔다. 3:4 혹은 3:5의 비율을 정면 중앙의 중심선을 기준으로 정사각형의 균등배치와 기둥을 기준으로 내림마루와 용마루의 정사각의 균등 분배로 입면 사이의 가로, 세로 비율이나 창문의 가로, 세로 비율에 많이 사용하였다.   지리산 퇴수정의 황금비의 조망 금강비: 금강석을 비유하기도 하고, 금강산을 비유하기도 한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황금비보다 금강비를 적용하였다고 봐야 한다. 정면에서 바라보고 높이를 1로 놓았을 때 양쪽 처마까지 포함한 폭은 1:1.618이나 바닥면을 기준으로 할 때 가로와 세로의 비는 금강비의 비율인 약 1:1.414가 된다.   영주 부석사의 금강비 (TIP) 황금률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09-27
  • (이창엽 선교사칼럼)하나님의 인정과 보증의 표시-하나님의 도장(인印)
                                    하나님의 인정과 보증의 표시-하나님의 도장(인印)  인(印)은 성경문학적으로  ’하나님의 인정과 보증‘의 상징적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의 그 날까지 그리스도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인치시고 보증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도장과 불교 도장 해인(海印)   ‘해인’은 화엄종에서 강조한 불교 용어 중 하나로 세계의 모든 중생과 사물이 바다 가운데에 도장처럼 깊게 비추어진다는 뜻으로, 부처의 지혜로 우주의 모든 만물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위키피디어,2019)   합천 해인사    하나님의 도장,인(印)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印)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고후1:22)’(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09-19
  • (이창엽 선교사칼럼)유월절(pass over) 흠 없는 어린양의 피-예수
                                     유월절(pass over) 흠 없는 어린양의 피-예수  피는 생명의 근원이요, 본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을 흘리며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기 때문’이다.(히9:14,22)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 곧 유월절 어린양의 피‘이다. (계7:14)                                   유월절 어린양 피- 문설주 vs  벽사(辟邪)의 붉은색-홍살문  홍살문은 모두 주칠을 하는데 붉은색은 벽사의 의미가 있다. 왕릉의 홍살문은 왕릉 영역의 시작을 알린다. 두 개 단주 사이에 12간지 살대가 더해지며, 그 중앙에 태극문양(천지운행원리)을 설치한다. 살대의 인위적인 상징성은 법도의 곧고 바름과 왕의 위엄을 나타낸다. 아무리 지체 높은 사람도 홍살문 앞에서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한다. 홍살문부터는 청정하고 신령스러운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우리 풍속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 대문에 뿌리는 것은, 붉은색을 귀신이 꺼리는 색이라 하여 악귀를 물리치고 집안의 안녕과 무병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화성 융릉, 홍살문 ☞ 내가 피를 볼 때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12:13) (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09-12
  • (이창엽 선교사 칼럼) 십자가의 멍에
                                                   십자가의 멍에  우리는 종의 멍에를 지지말고, 십자의 멍에를 짊어져야 한다. 십자가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다. 마음이 쉼을 얻게 된다.                                   십자가의 멍에 vs 한옥의 집부사(執夫舍, 집우새)의 멍에 *집부사(執扶舍): 집을 돕기 위해 잡은 것이나 행위. 일명 ’멍에‘라고도 한다.   *집우새 (=집부사 執扶舍) : 박공, 까치박공의 윗머리 뒤에 덧내어 보강한 널로  박공 뒷면에 있는 서까래에 못을 박아 붙이는 것이다.(국립국어원,2020) 멍에=집우새=집부사 저자의 전통한옥 ㄷ자형 1/10 모형 * 저자가 제작한 전통한옥 모형에 집부사가 짊어진 멍에 부분과 저자가 제작한 예수 조각상의 십자가 형태가 한 공간에서 일치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놀라웠다. 집을 돕기위해 잡을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잡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전한다.   (TIP) 멍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명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9)(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0-09-05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