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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엽 선교사칼럼)죽은 자의 공간
                                         죽은 자의 공간 개신교에서는 성인숭배와 연옥 신앙에 대한 신학적 차이로 인해 죽은 자들에 대한 중보기도를 하지 않고, 특히 ‘몸의 부활’이라는 신앙으로 인해 시신 화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 봉안당과 수목장을 설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나 성공회는 일정한 여건이 갖춰지면 교회 건물의 한 부분에 봉안당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장애가 없다. 초대교회부터 교회의 기능은 말씀을 선포하고 예배만 드리기 위한 처소가 아니라 지역사회를 포함해 세상을 섬기는 기능도 함께 하는 것이다. 교회 시설물의 사회적 공공성을 고려할 때 교회가 지역주민을 위한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면 이것은 장기적으로 지역의 가족 단위 선교의 가장 튼튼한 초석이 될 수 있다,   서울 주교좌성당  -유일하게 사대문에 봉안당있는 교회이다.                                봉안당 vs 한옥의 사당  유교문화권 나라에서는 죽은 조상의 위령에 제사를 올린다. 한국의 양반층 고택을 살펴보면 집 경내에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두고 있다. 현재에 초우와 재우는 하지 않아도 삼우제는 기독교인들도 지키고 있는 것은 유교 장례절차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가 토착화된 것이라고 알 수 있다. 기독교는 기독교를 제외한 여타종교들과 그 의례를 배척했지만, 유교와 무속신앙 풍습의 일정 부분은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오랜 기간 집 경내에 조상의 영혼을 위해 사당을 두고 그곳에 위패를 모시고 죽은 조상의 영혼들과 집 안에서 함께 생활해 온 정서가 있다.   안동 학봉종택 종갓집, 한옥의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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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엽선교사
    2021-04-30
  • (이창엽 선교사칼럼)스토리텔링 교회건축
                                 스토리텔링 교회건축  다양한 개신교 종파 탄생을 가능케 한 종교개혁과 다양한 지역의 문화. 사회적 특성을 인정하는 제2차 바티칸 공회의 영향으로 이전의 교조화된 표현방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신 또는 신성을 표현하는 경향이 가능해졌다. 현대에도 이전처럼 빛을 활용해서 신 또는 신성을 표현하는 경향도 지속하고 있으나, 신의 초월성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던 시기와는 다르게 성경에 등장하는 기독교의 역사적 사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거나 기독교 종교의식 자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전자의 경우가 노아의 방주, 오병이어의 기적이고 후자의 경우는 순례자의 길, 기도하는 손, 믿음의 방패가 대표적인 사례다.   경동교회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손) 메인 타워를 첨탑 십자가가 아닌, 세상의 구원을 기도하는 손으로 형상화했다.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하였다.        스토리텔링 교회건축(디아스포라,방주교회) vs 경복궁 근정전    (디아스포라) ‘하나님과 인간이 만난 바로 그 자리에서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는 건축가의 말처럼 정면 중앙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십자가가 하나 있고, 뒷문 출입구 스테인드글라스에 여러 개의 십자가가 있다. 예배 후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세상 밖으로 향하는 문 (디아스포라)   (방주교회)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해서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한 건축물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방주교회는 물, 빛, 미려한 나무로 이루어진 성전건축물이다. 한국건축가협회로부터 대상을 받은 건축물이다. 제주, 방주교회   (경복궁 근정전) 오행설에 근거하여 보통 삼원색의 바탕 위에 흑과 백을 더한 오방색을 사용하는데 전해 내려온 규칙과 방법에 따라 문양을 그려 넣는다. 일반 여염집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고, 왕이 거처하는 궁궐이나 부처님을 모신 사찰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된 강렬한 의장 요소이다. 건물 뒤에서 앞을 바라볼 때 동쪽은 좌청룡이라 청색이고, 서쪽은 우백호라 백색이다. 남쪽에는 붉은 태양의 힘을 등에 업은 주작이 하늘을 훨훨 날아 적색으로 칠하고, 북쪽은 춥고 어두운 방위라 믿어 현무라 흑색으로 자리 잡고, 중앙은 모든 생명의 근원인 흙의 색깔 황색을 배치한다. 그 결과 가장 중심에 앉아있는 왕을 황제(皇帝, 黃帝)라 하고, 동서남북 사방에 흩어져 있는 제후국의 왕은 각각 그가 위치하는 방위에 따라 청제, 백제, 적제, 흑제라고 불렀다.  경복궁 근정전은 경복궁의 중심전각이다. 근정전 보개천장의 황룡은 오행 사상에 따른 동서남북 문에 각각 그려진 사신도와 월대에 새겨진 동서남북 방향의 남주작, 북현무의 자오선과 동청룡, 서백호의 위선이 직교하는 위치에 자리한다. 이는 동서남북 각 방위가 황룡을 중심으로 설정된 오방의 방위 개념에 속한다.     경복궁 근정전의 오행과 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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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엽선교사
    2021-04-23
  • (이창엽 선교사칼럼)지붕
                                               지  붕 신상들을 모셔놓은 그리스 신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종교건축물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으로 비, 바람을 막아 줄 벽체와 지붕을 구축한다.                                 서양식 지붕 vs 동양식 지붕 빛이 풍부한 지중해 연안에는 둥근 지붕(dome) 형태의 아치형 천장인 펜던티브에 둘러가며 지은 창들을 내어 그곳으로 빛을 수용하는 비잔틴 양식과 햇빛이 적은 유럽 대륙 지역에는 빛을 더 많이 수용하기 위해 고안한 로마네스크의 광탑과 고딕 양식의 긴 첨두형 색유리창이 있다. 동방교회에서 교회는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했다. 돔에 그리스도 이미지를 모자이크했던 것은 몸이 천상의 위계를 반영하는 우주였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와 성인들이 함께 거하는 천상의 궁륭이었기 때문이다. 서구의 비잔틴 양식은 도상학적으로 비잔틴 양식의 정방형 바닥은 땅을 의미하고 둥근 돔은 하늘을 상징한다.   아야 소피아 사원, 빛이 풍부한 지역에서 건축되는 비잔틴양식   한국의 지붕은 은근하면서도 다양하게 변화한다. 이것은 하늘과 땅을 별개가 아닌 상호보완의 개념으로 보는 철학사상이 반영된 결과이다. 태극기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하늘과 땅의 기운이 상호작용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팔괘의 상태로 존재한다. 하늘을 우러르는 동시에 땅을 굽어보는 두 가지 모습을 함께 나타낸다. 용마루 선을 따라 수평선을 형성하는 동시에 처마 끝이 올라가면서 하늘을 향해 개천의 의지를 함께 표현한다. 두 가지 기운 혹은 음과 양의 조화가 어우러지면서 천의 얼굴로 다양하게 변신한다.   완주 송광사, 종루(꿈들 대는 용이 제 품을 힘차게 펼쳐 비상하고 있다.)    우리 건축물의 궁륭식 건축물로는 원구단(환구단)이라는 건축물이 있다. 환구단은 천자가 하늘에 제를 드리는 둥근 단으로 된 제천 단으로, 예로부터 천원지방이라 하여 하늘에 제를 지내는 단은 둥글게, 땅에 제사 지내는 단은 모나게 쌓았다.   천원지방의 사상을 구현한 원구단, 옛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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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엽선교사
    2021-04-16
  • (이창엽 선교사칼럼)공간의 토착화-성화상 논쟁
                               공간의 토착화-성화상 논쟁  개신교회가 교리적이고 정서적인 거부감 때문에 예배 공간 안에 설치하는 성 화상을 수용할 수 없다면 색을 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추상적인 표현의 작품 정도는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서양의 전통적이고 도상학적인 색의 의미에 갇혀 제한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한국의 전통적인 오방색에 신학적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여 교회력, 혹은 일상 절기에 맞추어 이것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토착화 작업이 필요하다. 개신교회인 서울 초동교회, 남용우 화백 작품 스태인드글라스             스테인드글라스 빛과색 vs 전통문화 오방색 vs 녹색 단청   서울 영락교회 선교관, 빛과 색을 활용한 스테인드글라스 서울 서문교회, 빛과 색을 활용한 스테인드글라스 * 낮을 상징하는 구름과 밤을 상징하는 불길의 인도를 받는다는 시편의 말씀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직선과 곡선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으며 개신교회의 요구에 맞게 구체적인 이미지를 최대한 생략하고 선의 흐름과 색조의 변화를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대구 계산동성당, 우리 고유의 전통문양색인 오방색계열을 활용한 스테인드글라스    사찰과 궁궐 그리고 일부 민가의 문이나 서까래 등에 많이 쓰이는 녹색 단청은 이슬람사원의 신성성을 표시하는 코발트블루의 강렬함과는 달리 부드럽고 온화하다. 특히 외국인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색으로 이 녹색을 꼽는다.   창덕궁 녹색 단청 가칠과 이슬람사원의 코발트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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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엽선교사
    2021-04-09
  • (이창엽 선교사칼럼)구원의 여정-통로
                                        구원의 여정-통로  교회 내부 입구 중앙에서 회중석 가운데를 가로질러 제단까지 이르는 중앙통로는 초대교회 때부터 ‘구원의 통로’를 상징해 왔다. 이것은 제단이 있는 지성소를 천국으로 상징했기 때문이다. 내부통로는 평화의 길이며 영성의 길이며 감사의 길이며, 또한 예배 후에는 세상을 향한 결단의 길이라는 다중의 의미가 있다. 교회건축의 설계는 일반건축과는 다르게 통로를 먼저 구축한 다음에 공간을 나누는 방법을 취하거나. 적어도 통로에 관한 그 상징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공간을 구축해야 한다.                                      통로-구원vs참여vs해탈   로마 가톨릭 성당, 구원의 좁은 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구원의 문, 영생의 문, 생명의 문’. 중세 비잔틴 교회 시기부터 ‘교회 현관에서 내부 제대에 이르는 길’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거쳐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의 일생’을 상징해 왔다.   인천 강화성당, 참여의 문     본당 문은 ‘구원과 환영과 파송’이라는 성서의 기본적 개념에, 문을 통한 다양한 사람들의 개별적인 ‘들어옴’이라는 ‘참여’를 통해 이들이 하나 되는 의미를 더하고 있다.   안동 봉정사, 해탈문 진입하는 누하주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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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엽선교사
    2021-04-02
  • (이창엽 선교사칼럼)생태신학 건축
                                   생태신학 건축  생태신학은 최근에 지구온난화와 환경파괴에 대한 인식과 함께 대두되고 있다. 건축문제에서 소위 환경친화적이란 있을 수 없다.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생태학적인 건축방법을 마련하여야 한다.   물과 교회 (생태신학 건축-자연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명상이 되고 기도가 되는 생태신학 건축이다.)                                  생태신학과 교회건축 생태 신학과 교회 건축과의 관계설정은 시급하다. 다른 건축과 달리 교회건축은 외형적 양식보다 용도에 따라 양식이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서는 노아 방주의 축조 과정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 반면, 그 양식에 관해서 기록하지 않는 것은 흥미롭다. 최근 한국의 대형 교회들이 그 지역사회를 섬기고자 하는 선교 기능적인 면보다는 지나치게 외형적 이미지에 차별성을 두고 경쟁적으로 터를 확보하고 축조하는 것에 대한 생태학적· 문화적 폭력에 주의해야 한다.     헬싱키 나린카 광장, 캄피 교회(Kampin kappeli)침묵의 교회 * 캄피 교회는 본래의 이름 대신 '침묵의 교회'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점은 겉으로 보기에 나무판을 매끈하게 이어붙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얇은 층들이 높낮이 차를 만들어가며 쌓아 올려진 형태다. 재료는 가문비나무이다. 밖에서 보기에 크고 높지만, 바닥 면은 넓지 않기에 들어가면 의외로 내부는 생각보다 작다. 오리나무를 켜서 붙인 내부 벽면은 바깥과 달리 매끈하게 이어져 있다. 안에 놓인 가구와 출입문 등은 물푸레나무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세 종류의 나무가 사용되었으며, 방음에도 많은 신경을 써서 번화가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외부 소음이 거의 유입되지 않는 고요한 기도 환경으로 '침묵의 교회(Chapel of Silence)'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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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엽선교사
    2021-03-26
  • (이창엽 선교사칼럼)성서의 문-베델
                                       성서의 문-베델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여기가 바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 문이로구나” 하면서 야곱은 베고 자던 돌을 세워 석상으로 삼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베델’이라고 이름을 짓는다. 여기에는 장소와 공간을 구분하는 물리적인 문과 벽은 없지만, 이 석상은 야곱이 꿈을 꾸었던 성스러운 장소와 외부의 세속적인 장소를 구획한다. 석상은 하나님이 계시하셨던 곳이며, 외부와 내부를 물리적으로 나누는 집이면서 동시에 외부와 내부가 소통하는 문이기도 하다.                             소쇄원 오곡문과 창덕궁 불로문   담양 소쇄원, 오곡문 - 물리적인 문이 없다. (오곡문은 담밑의 계곡물 바로 양쪽에 있었던 협문으로 내원과 외원을 이어주는 곳이다.)   창덕궁, 불로문(무병장수 문) -물리적인 문이 없다.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진 문으로 창덕궁 연경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진 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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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엽선교사
    2021-03-06
  • (이창엽 선교사칼럼)성서의 문-베델
                                       성서의 문-베델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여기가 바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 문이로구나” 하면서 야곱은 베고 자던 돌을 세워 석상으로 삼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베델’이라고 이름을 짓는다. 여기에는 장소와 공간을 구분하는 물리적인 문과 벽은 없지만, 이 석상은 야곱이 꿈을 꾸었던 성스러운 장소와 외부의 세속적인 장소를 구획한다. 석상은 하나님이 계시하셨던 곳이며, 외부와 내부를 물리적으로 나누는 집이면서 동시에 외부와 내부가 소통하는 문이기도 하다.                                 소쇄원 오곡문과 창덕궁 불로문 담양 소쇄원, 오곡문 -물리적인 문이 없다. (오곡문은 담밑의 계곡물 바로 양쪽에 있었던 협문으로 내원과 외원을 이어주는 곳이다.) 창덕궁, 불로문(무병장수 문) - 물리적인 문이 없다.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진 문으로 창덕궁 연경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진 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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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6
  • (이창엽 선교사칼럼)성서의 문-베델
                                       성서의 문-베델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여기가 바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 문이로구나” 하면서 야곱은 베고 자던 돌을 세워 석상으로 삼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베델’이라고 이름을 짓는다. 여기에는 장소와 공간을 구분하는 물리적인 문과 벽은 없지만, 이 석상은 야곱이 꿈을 꾸었던 성스러운 장소와 외부의 세속적인 장소를 구획한다. 석상은 하나님이 계시하셨던 곳이며, 외부와 내부를 물리적으로 나누는 집이면서 동시에 외부와 내부가 소통하는 문이기도 하다.                                 소쇄원 오곡문과 창덕궁 불로문 담양 소쇄원, 오곡문 -물리적인 문이 없다. (오곡문은 담밑의 계곡물 바로 양쪽에 있었던 협문으로 내원과 외원을 이어주는 곳이다.) 창덕궁, 불로문(무병장수 문) - 물리적인 문이 없다.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진 문으로 창덕궁 연경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진 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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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6
  • (이창엽 선교사칼럼)목조건축의 다층화(현대한옥 교회의 다층화)
                                      목조건축의 다층화                                                  (현대한옥교회의 다층화) 미래 콘크리트인 CLT는 대기로 방출되는 온실가스 이산화탄소를 상쇄시키는 친환경 소재로써 내진성· 내화성· 단열성뿐만 아니라 공사 기간까지 단축한다. 특히 철근 콘크리트와 같은 구조 강도를 제공하는 CLT는 유연성이 높은 소재로 현재 캐나다에서 최대 30층, 핀란드에서 최대 40층의 건물을 건축하였다. 호주 멜버른 FORTE 10층 목조건물은 공사 기간이 불과 38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호주 멜버른 FORTE 10층,국립산림과학원 보도자료)                             전통종교 건축 vs 세계 목조교회 건축 대들보는 평기둥과 평기둥, 또는 평기둥과 높은 기둥을 잇는 큰 보를 말한다. ‘대보· 대량’ 이라 한다. 마룻보는 ‘종보’라 한다. 대들보 등허리 위에 있는 동자기둥에 걸치는 보를 말한다. 중보는 칠량집이나 보다 큰 집에 쓴다. 대보 위, 마룻보 아래인 중간 지점에서 맨 아래 중도리를 받는다.   양산 통도사, 보   러시아 동방 정교회 마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러시아 목조건축의 꽃이다. 그리스도 변용 교회는 여름교회로써 37m의 높이와 223개의 양파 모양 지붕으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러시아 키지, 포고스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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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엽선교사
    2021-03-01
  • (이창엽 선교사칼럼)구원의 좁은 문
                                    구원의 좁은 문  구원의 좁은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구원의 문, 영생의 문, 생명의 문’이다. 중세 비잔틴 교회 시기부터 ‘교회 현관에서 내부 제대에 이르는 길’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거쳐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의 일생’을 상징해 왔다.   로카 가톨릭 성당, 구원의 좁은 문                       본당의 문(구원, 환영, 파송) vs 한옥교회의 문 본당 문은 ‘구원과 환영과 파송’이라는 성서의 기본적 개념에, 문을 통한 다양한 사람들의 개별적인 ‘들어옴’이라는 ‘참여’를 통해 이들이 하나 되는 의미를 더하고 있다   파송의 문-서울 경동교회 출입문 (디아스포라: ‘하나님과 인간이 만난 바로 그 자리에서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는 건축가의 말처럼 정면 중앙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십자가가 하나 있고, 뒷문 출입구 스테인드글라스에 여러 개의 십자가가 있다.)   인천 강화성당, 참여의 문     파송의 문(강화도 대한 성공회 온수리 성당, 외삼문)  오늘도 파송의 종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지고 있다. * 솟을대문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운데 지붕은 우진각으로 처리하여 조선시대 성곽의 망루 같은 분위기를 담고 있다. 실제로 솟을지붕 아래 종을 매달고 사방으로 벽을 터서 종소리가 퍼져나가게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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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엽선교사
    2021-02-14
  • (이창엽 선교사칼럼)한옥교회 공간의 토착화
                                한옥교회 공간의 토착화 불교사찰 건축의 내부 공간은 같은 장방형의 평면일지라도 북향 배례를 하며 세로(보 칸)보다 가로(도리 칸, 정면)면의 공간길이가 길다. 이와 다르게 서방교회의 예배공간은 전통적으로 동향 배례를 하며 세로 길이가 긴 공간형태를 취한다. 사찰은 풍수설을 입각하여 택지를 선정하고 있으나 기독교는 풍수설을 미신으로 간주하고 있다. 서양의 예배형태를 이식한 한국의 개신교회는 택지를 선정할 때 지형적인 이유로 인하여 지성소를 도상학적 전통에 따라 동쪽에 두지 못해도 풍수설에 따라 위치를 선정하지는 않는다.   고양 행주성당 내부(세로의 길이가 긴 공간형태 )                 한옥교회 공간 vs 서양교회 바실리카양식 vs 동양의 일원론  교회 예배를 집행하기에는 협소할 뿐만 아니라 내부 공간의 요구 기능에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교회의 기능적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구조와 외관은 전통 목조건축 양식인 과도기적 교회건축이 추구되었다. 장방형 평면에 단층 팔작 기와지붕의 순수한 한옥구조로 재래 한옥과 달리 정면을 장방형의 짧은 쪽에, 즉 재래건물의 측면에 두었다. 이는 서양 교회건축의 기본인 바실리카(삼랑식)형식의 평면구성을 위해서 불가피한 조치였을 것이다. 정면 중앙에 종루와 십자가를 첨가하였을 뿐 양 측면의 툇마루도 재래 한옥 그대로였다.   완주 되재성당, 전통한옥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바실리카(삼랑식)형식  ‘nave, aisle, transept (십자형 평면의 양쪽 날개)'로 구성되는 삼랑식 건물로써 로마의 바실리카를 모델로 하였다. 최초의 바실리카 양식으로는 콘스탄틴 대제의 궁전이었던 라테란 대성전이며, 교회건축의 모델은 콘스탄틴 대제가 완공한 베드로 대성당이다.   전주 전동성당 내부, 바실리카 양식   한국의 사상토대는 이원론보다는 융합하는 일원론에 가깝다. 그 대표적인 예가 태극이다. 전통 목구조 한옥의 공간은 대청마루와 외부마당이 구분되지만 열린 공간으로서 외부와 내부가 하나가 되는 이치이다. 또 시간에 따라 공간에 유입되는 빛의 변화를 통해 한국의 전통적인 유불선이 복합적인 심층 정서를 끌어내어 인간과 하나님 그리고 자연과 상호의 관계성을 기독교적 영성으로 새롭게 고양할 수 있는 예배 공간의 구축이 필요하다.   일원론에 가까운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해풍부원군 재실의 대청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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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엽선교사
    2021-02-06
  • (이창엽 선교사칼럼)한옥교회 건축의 토착화
                                       한옥교회 건축의 토착화 개신교회가 교리적이고 정서적인 거부감 때문에 예배 공간 안에 설치하는 성 화상을 수용할 수 없다면 색을 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추상적인 표현의 작품 정도는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 서문교회, 빛과 색을 활용한 스테인드글라스 * 낮을 상징하는 구름과 밤을 상징하는 불길의 인도를 받는다는 시편의 말씀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직선과 곡선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으며 개신교회의 요구에 맞게 구체적인 이미지를 최대한 생략하고 선의 흐름과 색조의 변화를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전통한옥의 토착화 vs 혼합주의 서양의 전통적이고 도상학적인 색의 의미에 갇혀 제한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한국의 전통적인 오방색에 신학적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여 교회력, 혹은 일상 절기에 맞추어 이것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토착화 작업이 필요하다   대구 계산동성당, 우리 고유의 전통문양색인 오방색계열을 활용한 스테인드글라스   현실적으로 교회건축의 토착화 시도는 건물 지붕 위에 갓을 씌워놓은 형상을 취하거나 시멘트 건물의 기둥 선을 배흘림으로 세우고, 시멘트 건물에 단청을 입히거나 창틀만 한옥식으로 설치하는 초보적인 토착화 단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한양교회 종탑 ( 일부만 한옥식으로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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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엽선교사
    2021-01-31
  • (이창엽 선교사칼럼)교회 건축물의 대안-순결주의
                                       교회 건축물의 대안-순결주의 교회 역시 종교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인위적 장식물로 둔탁하게 포장되었다. 전통적으로 서양교회 건축에서 신의 존재란 실내에 가득 차고 넘치는 밝은 빛으로 상징되었음을 생각해볼 때, 과도한 장식물 때문에 교회는 일종의 비만증에 걸려 밝은 빛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며 그 결과 교회 실내는 어두침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로지에는 불필요한 장식물을 가득 달고 비만증에 걸려 있는 교회건축물의 대안으로 신의 존재를 실내에 넘치게 할 수 있는 원시 오두막을 제시하였다.      순결주의 운동의 원시원두막(미첼 자이)출처 위키백과                          로지애의 원시 원두막 vs 병산서원의 만대루 구조 미학이란 건축물의 구조원리를 보여주는 구조의 뼈대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한국 전통건축의 구조 미학은 건물의 뼈대를 가리지 않고 드러내는 누각에서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다. 한옥에서는 주로 대청마루 위에 구조 미학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노출 뼈대가 드러난다. 한국 전통건축의 구조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은 단연 병산서원의 만대루이다. 만대루는 구조 미학이 성립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일차적으로는 건물을 구성하는 뼈대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경우를 지칭한다. 또한, 군더더기 없는 최소성과 구조적 효율성을 갖춰야 한다. 사람 몸에 비유하자면 살을 다 떼어내고 뼈대만 남은 상황에 해당한다. 더군다나 만대루의 구조 미학은 나무 재료의 비가공성에 의해 배가 된다. 기둥과 보는 휜 나무를 그대로 썼으며 부재들의 표면 역시 원래의 나뭇결이 드러나도록 비가공 처리되었다. 만대루는 하나의 건물에 요구되는 구조적 안정성· 경제성· 심미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 사이의 최적치에 대한 모범 답안이다.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간결하고 솔직해서 순결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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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엽선교사
    2021-01-24
  • "주님과 함께" 스물세 번째 날 (20210123)
    "주님과 함께" 스물세 번째 날 -   샬롬! 여러분을 사랑하고 주님의 평강의 은혜가운데 문안합니다. "주님과 함께"는 제게 큰 축복이자 훈련장이며 동시에 제 통제권을 주님께 드리는 증명서입니다.  때로는 저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성경안에서나 지금의 삶속에서 약속하신 모든 일들에 대해 인내하지 못해 회의를 갖고 스스로 무너지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감히 견줄 수는 없어도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말씀을 읽다가 성경 한 귀절이 튀어올라 제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베드로후서 1:10-11)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에서 멀어지고 낙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때로는 우리가 기대했던 시간들)이 지연되어 실망했을 때입니다. 하지만 한번 돌아보십시오. 그 실망안에는 얼마나 나의 생각들과 나의 욕망으로 가득차 있었던지...   혹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고 계신가에 대한 영적 헤아림은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두 번이나 완곡하게 믿지 않고 거절했던 것이 그것이며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릴까요?"라고 여쭤본  것이 바로 영적 조급증에 의한 헤아림의 부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적 헤아림의 부족이나 조급증을 어떻게 해결할까요? 바로 오늘 말씀이 그것입니다. 첫째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신 그 이유에 걸맞게 행해야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행함의 원칙이 기준이 내 욕망이나 내 육신의 바람이어서는 안 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목적지가 이땅이 아니며 우리는 이 땅의 시민권자가 아닌 하늘의 시민권자임을 분명히 영혼에 새겨서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함께 갑시다. 내 아버지 집!"* 오늘의 묵상할 말씀; 창세기 24장, 마태복음 23장, 느헤미야 13장, 사도행전 23장* 오늘의 중심말씀 : 벧후 1:10-11 * 오늘의 찬송 :359장(통 4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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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우형목사
    2021-01-23
  • "주님과 함께" 스물두 번째 날 (20210122)
    "주님과 함께" 스물두 번째 날 - 샬롬! 주님의 평강을 빌며 문안합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말씀을 보고 기도한 후 뉴스를 일별해보니 오늘 코로나 확진자수가  300명 초중반이 된다고 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싱크대 안에 구입한지 한 삼십년도 더 된 부부 커피잔이 있었습니다. 씻다가 보니 그중 하나가 굽이 깨진 것을 다시 붙인 흔적이 있습니다. 순간 아내의 삶이 생각났습니다. 그 커피잔을 우리는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사용했는지 모릅니다. 비록 깨졌어도... 살 당시에 우리는 상당한 금액을 지불했습니다. 금액보다는 우리  부부에게는 세월의 더께에 더 마음이 가기 때문입니다. 내 아내의 마음은 얼마나 많이 갈라져서 봉합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새롭고 현란한 빛을 뽑내야만 아름다울까요? 먼저는 거기에 있기에 아름답습니다. 있기에 아름다운 겁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이 아름다워서만 보기에 좋다고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존재할 이유와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조금 못나고 금이 가고 깨져서 다시 붙였어도 존재만으로도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존재하게 하셨기에..., 오늘 우리 주변을 한 번 돌아보십시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이웃에게 눈을 돌려보세요. 우리나라가 3050클럽에 가입한지 사년차입니다. 삼만 달러의 소득에 오천만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를 국제기구에서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우리는 평균 한 집당 4인 가구로 따졌을 때 월 천만원의 수입이 있어야 평균입니다. 그런데 아마도 이 나라 국민 중 70%는 해당이 안 될 겁니다. 해서 박탈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끔은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 민족입니다. 그 공동체 의식이 코로나를 잘 이겨나가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없을 때도 배가 고플 때도 남을 생각해서 한 숟가락을 덜 먹고 그것을 나눈 민족입니다.   이제 더욱 영의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도 배고픔에 잠 못 이루는 내 아이들, 그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내 아이들입니다. 왜냐구요?   하루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나와 옥합을 깨뜨리고 삼백 데나리온(지금의 약 삼천만원 상당, 이 여인이 일년은 먹지도 못 하고 쓰지도 않아야 모을 수 있는 돈)의 향유를 쏟아 예수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어 드릴 때 옆에 있는 제자들이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을 말리시며 "가난한 자는 너희와 항상 있을 것이나 이 여인은 네 장례를 예비하는 것이니 그대로 두라."(요한 12:7-8)고 하셨습니다. 굽이 깨진 것도 다시 보면 아니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아름답습니다. 이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도. 그분의 축복도 나를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께서 만드신, 지금도 힘들어 하고 고통스러워할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알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빛의 사명(마태 5:14)을 우리는 다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빛깔이 없고 굽이 좀 깨졌어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에 그 사람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오늘의 묵상할 말씀; 창세기 23장, 마태복음 23장, 느헤미야 12장, 사도행전 22장* 오늘의 중심말씀 : 마태 5:14-16* 오늘의 찬송 : 436장(통 49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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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우형목사
    2021-01-23
  • "주님과 함께" 스물한 번째 날 (20210121)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 아침에 영혼의 기지개를 켜고 주님께서 가리키시는 곳을 바라봅니다.샬롬!  평강의 주님안에서 여러분들에게 아침인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제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메세지를 보내도 되는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는 과연 이 메세지를 보낼 자격이 있는가?'하는 것보다 '내가 보내는 이 메세지가 얕은 지식을 콘텐츠(내용물)를 저렴한 포장을 해서 전자택배로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스스로의 괴롭힘입니다.   물론 이런 괴로움이 자기 성찰이 되고 그로인해 저도 더욱 명적으로 깊어지고 제가 보내 드리는 이 메세지도 더 성숙하고 풍성한 영적 영영분을 담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지난 삼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또 나는 과연 주님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며 자신을 채찍질 해봅니다. 해서 간절히 기도부탁드립니다.   어쩌면 제가 보내드리는 이 메세지가 여러분들의 영적 유익이 아니라 저의 이 간절한 영적 몸부림을 여러분들에게 보이며 저를 위한 기도를 바라는 강한 메서지일 수 도 있습니다. 정말 부탁드립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요.  하나님께서는 꿈을 먼저 보여주시고 일을 하도록 재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요엘서 2장 28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이 요엘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왜 필요하고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하지에 대한 답이 명쾌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단순히 '장래 일, 꿈, 이상'이라는 단에 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창세기 28장 10절 이하에 기록된 '야곱이 벧엘에서 꾼 꿈"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야급이 어떤 상황, 어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꿈을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마음의 상태를 보십시다.  아마도 '절박감. 쫒기는 자의 조급증, 불안과 초조'등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안전이나 평화를 보증하시지 않고 먼 미래의 꿈을 보에주시고 계십니다. 쫓겨가는 그에게 땅에 대하여, 또장차 이룰 큰 민족에 대하여 약속하심은 웬 말입니까?   바로 여기에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져야할 자세에 대한 소중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오늘도 힘든 일이 많고, 또 힘들 일이 많으시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직적 해결책이나 이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할 어떤 신박한 보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 하나님께서 가리키시는 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장래 일이고, 꿈이고 이상인 것입니다. 믿음은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그 긴 호흡은 바로 주님의 길을 가는데, 그분이 가리키시는 곳으로 가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계획하신 일에 동참하는데 필수적 요소입니다. 서두르지마시고 한발짝, 한발짝 주님께서 가리키시는 곳으로 가십시오. 그렇게 가다보면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가리키신 장래 일을 보게 될 것이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꿈이 현실이 되어 나와 내 앞에 펼쳐질 것이며, 어느덧 우리는 이루어져 있는 비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할렐루야!* 오늘의 묵상할 말씀; 창세기 22장, 마태복음 21장, 느헤미야 11장, 사도행전 21장* 오늘의 중심말씀 : 창 28:10-27* 오늘의 찬송 : 390장(통 44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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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우형목사
    2021-01-21
  • "주님과 함께" 열아홉 번째 날 (20210119)
    "주님과 함께" 열아홉 번째 날 -   주님의 평강과 생명의 은혜가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위에 영원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볼 주제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통해서 본 삶과 기도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지금 읽고있는 성경말씀중에 느헤미야서가 있어서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느헤미야서 1장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들은 느헤미야가 슬퍼하며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는 예루살렘이 침략자인 신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무너지고 성전이 더럽혀진지 약 130년이 지났을 때의 기도입니다. 그런 기억조차도 희미해져갈 그런 때 느헤미야는 황폐져가는 예루살렘 성전의 소식을 들은 겁니다.   그는 당시의 최고 권력자인 아닥사스다왕의 술관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술관원은 대단한 지위요, 왕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절대로 오르지 못할 자리였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정확한 기술은 없지만 느헤미야는 당시 이집트를 점령하고 다스리는 일에 골머리를 앓았고 이에 페르시아와 이집트  사이에 있는 유대인들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느헤미야를 총독으로 보냈다는 해석이 가장 유력합니다. 아무튼 총독으로 가기전, 느헤미야는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었고 이 기도가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아닥사스다왕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그리고 에스라와 함께 성전 재건을 하게 됩니다, 물론 시작은 에스라가 먼저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를 보면 아주 중요한 특징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에 대한 그의 마음입니다. 유대가 멸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더럽혀진 지도 130년이상 지났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믿음의 열정과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은 조금도 퇴색되지 않아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아주 경건하고 자신과 자신의 민족의 죄악을 깊이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기도는 경건하고 늘 하나님과의 만남은 늘 정결한 상태여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정결은 과거의 죄와 잘못된 믿음과 삶의 방향에서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입니다.   느헤미야에게 주신 응답은 그후에 일어났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기도의 자세와 삶의 자세를 느헤미야로부터 배울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절망과 좌절과 과거의 아픔, 문제들로 인한 부정적 렌즈를 끼고 기도드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히려 느헤미야는 과거의 고통을 딛고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회복의 은총을 바라보는 희망의 렌즈를 끼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여러 지체들은 어떤 믿음의 자세로, 또 어떤 기도의 렌즈를 끼고 기도드리고 있습니까? 한 번 스스로를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 오늘의 묵상할 말씀; 창세기 20장, 마태복음 19장, 느헤미야 9장, 사도행전 193장* 오늘의 중심말씀 : 역대하 7:11-18* 오늘의 찬송 : 286장(통 218장)* 공동기도제목 ;1. 주여! 주님의 교회와 백성들을 순결하고 거룩하게 하소서2. 주여, 이 나라가 하나님의 공의로 다스려지게 하사 정의롭고 공평하며 하나되게 하소서3. 우리 공동체를 주님의 권능으로 강하게 하셔서 생명이 넘치게 하시고 사명을 감당케 하소서4. 공동체 지체들이 주님의 백성들이 믿음위에 견고히 서게 하시고 꿈을 잃지 말게 하시며 올해 비전 실현의   첫해가 되게 하소서.5. 우리로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를 기도해주는 참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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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우형목사
    2021-01-19
  • "주님과 함께" 열여덟 번째 날 (20210118)
    우리 하늘의 아버지, 전능하신 여호와, 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놀라우신 지혜와 권능을 찬양합니다.샬롬! 주님의 평강의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오늘은 예수님의 세미한 감성과 살피심을 통해 우리의 무딘 감정과 타인을 항한 무관심, 그리고 일방적인 정죄의 오만함을 회개코자 합니다.어제 다 읽으셨는 줄 압니다. 마태복음 17장 24절에서 27절에 예수님께서 아마도 가버나움의 회당에 들어가신 것같습니다. 들어가실 때 성전세를 받는 자들이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내시지 않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은 성전세를 내실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날은 대통령도 시민이기에 세금낼 의무를 반드시 이행해야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왕은 세금을 받는 자입니다. 해서 그 자녀들도 세금에는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이심을 모르는 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속전으로 정하신(출애굽기 30:11-16) 성전세를 내지 않으신 예수님을 비난하는 것이 정황상 타당합니다. 예수님은 저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인데 너희들이 어찌 내게 성전세를 거두려하느냐"고 야단치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고 오히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고 우리 주님이 얼마나 섬세하신지, 얼마나 배려가 많으신지, 더 나아가 때를 잘 분별하시며 얼마나 인내가 많으신지 저는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 믿음 속에  이런 섬세함, 이런 배려, 이렇게 때를 헤아림, 그리고 인내가 있어야한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면 그 순종으로 내 삶에 들어온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모든 조급증과 나의 섣부른 판단과  나의 배려없는 무례함에서 나를 자유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그 앞에서 이 부족한 종은 얼마나 작은지...♡ 오늘 대설 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주님께서 동행하시고 평안케 하시는 은총으로 복된 날 보내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할렐루야!* 오늘의 묵상할 말씀;창세기 19장, 마태복음 18장, 느헤미야 8장, 사도행전 18장* 오늘의 중심말씀 : 마태복음 5:1-12- 낮아지고 공감하며 겸손하고 정결한 자를 기뻐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만나뵈러 가십시다.)* 오늘의 찬송 : 463장(통 518장)* 공동기도제목 ;1. 주여! 주님의 교회와 백성들을 순결하고 거룩하게 하소서2. 주여, 이 나라가 하나님의 공의로 다스려지게 하사 정의롭고 공평하며 하나되게 하소서3. 우리 공동체를 주님의 권능으로 강하게 하셔서 생명이 넘치게 하시고 사명을 감당케 하소서4. 공동체 지체들이 주님의 백성들이 믿음위에 견고히 서게 하시고 꿈을 잃지 말게 하시며 올해 비전 실현의 첫해가 되게 하소서.5. 우리로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를 기도해주는 참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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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우형목사
    2021-01-18
  • (이창엽 선교사칼럼)창(窓)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
                                                 창(窓)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 색은 빛의 파장으로 기독교에서는 빛과 색의 의미를 동일시한다. 중세 가톨릭 신학은 성체성사의 이론을 화체설로 규정지은 것에 대해 개혁교회들은 기념설이나 임재설을 믿는다. 성체성사의 화체설은 색 유리창과 연관되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자연광 vs 풍경이 머무는 창 화체설은 성찬식때 사제가 빵과 포도주에 축사하는 순간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으로 변한다는 교리로 자연광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면서 여러 가지 성스러운 그림으로 변화한다는 점에서 화체설을 상징하고 있다.   서울 불광동 성당, 광(光)창 (마치 색동 한복을 입고 있는 듯한 빛)   이미지는 상당한 힘이 있다. 이미지를 축출하는 데 앞장서 왔던 현대의 개신교회들조차 교회 안에 신성 모독을 피해 갈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이미지들로 치장하고 설교에서까지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 성공회 성당, 창호가 마치 우리 고유의 오방색과 유사하다.   풍경이 머물고, 자연이 스미는 한옥의 창   전통한옥의 창(자연채광의 아늑한 공간)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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