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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는 상아탑일 수 없다
    ▲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흔히들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국가 또는 나라란 국토와 인구와 주권을 가진 정치적 실체이다. 이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의 뜻인 사랑과 공의를 실현하는 국가, 즉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국가를 의미 한다. 현실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고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함을 보장하는 헌법을 운영하는 국가이다. 초대교회 신자들 못지않게 복음주의적 크리스천들인 퓨리턴들이 신대륙에 세운 USA야 말로 이 땅에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라고 아니할 수 없다. 자유대한민국은 일본제국주의가 미국에 항복함으로써 해방을 맞게 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의 영단에 의하여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에 도입함으로써 대한민국은 미국 다음가는 하나님의 나라로 독립하게 된 것이다. 지난 70여 년 동한 자유대한민국이 최빈국에서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기적인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탄핵 이후 탄생한 이 정권은 하나님의 나라인 자유대한민국을 허물고 마침내 대한민국을 국제적 고아로, 경제는 마비되고 국경선을 지키는 모든 장치들을 허물어진 상태에 빠뜨리고 만 것 같다. 십계명은 먼저 4번째 까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명령한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으로 자신들의 개인적 바램을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도 세워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처참 지경에 빠진 하나님의 나라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고 투쟁하는 교회와 목사들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 믿기만 하면 행위에 무관하게 천국에 간다고 달콤한 설교로 교인들의 숫자만 불려온 대형교회의 목사들이여 당신들은 하나님의 진짜 종인가? 요한복음은 3장 16절이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이여, 요한복음의 처음에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한 말씀은 모르는가 모르는 척 하는 건가? 너희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징표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과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당신들이 오직 믿음 구원론의 근거로 삼고 있는 로마서의 저자 사도 바울이 고전 9:27에서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서 내가 오히려 구원에서 탈락할까 보아 매일 같이 내 자신을 처 복종시킨다”는 고백과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나 없을 때에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성도들에 대한 권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님은 분명히 산상수훈 중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이리 저리 성경 구절들을 편파적으로 인용하여 믿기만 하면 행위가 없이도 천국에 간다고 확신을 가지라고 가르치는 삯꾼 목회자들이여 당신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붕괴직전에 놓인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당신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사탕발림 설교를 스스로 믿고 어떤 삶을 살아 왔는가 생각해 보라. 교회당 증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자기 교회가 마치 유일한 하나님 나라인양 교회성장을 위하여 성도들의 희생과 헌신을 독촉했지 하나님의 나라인 자유대한 민국을 위해 제대로 기도라도 한 적이 몇 번이나 되는가? 그리고 당신들의 달콤한 구원 설교 한번 믿기만 하면 행위에 무관하게 반드시 천국에 간다는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 성도들은 어떤 삶을 살아 왔는가? 대부분의 교인들이 믿음으로 구원은 얻은 것이니 이제 멋대로 육신을 쫓아 살아도 된다는 자세로 양심 있는 불신자 보다고 더 육신적 삶을 살아온 것 아닌가? 수많은 목회자들이 편파적으로 그릇된 구원론을 설교 합으로써 수많은 신자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실추시켜 온 죄악을 어찌할 것인가? 회개하라! 그리고 가던 길로부터 돌아서라. 자신의 부와 명예만을 쫓던 길로부터 돌아서 하나님의 나라인 자유대한민국을 촉박한 멸망에서부터 구하기 위하여 전 교인들을 이끌고 국민저항운동에 참여하라. 한국 교회의 장로들이여, 하나님께서 당신을 장로로 기름 부으신 목적이 무엇인가? 목사를 보필하고 감독하라는 영적 지도자의 사명을 주신 것 아닌가? 영적 지도커녕 목사 비위 맞추는데 애써온 장로들이여 당신의 죄악도 목회자들의 그것에 비하여 결코 작지 않음을 깨닫고 회개하고 자유대한민국을 위하여 국민저항 운동에 참여하라. 자유대한민국이 적화되면 제일 먼저 처벌받을 사람은 바로 당신들이 아닌가? 물이 뜨거워져 오는지도 모르고 꼼작하지 않고 물어 데어 죽어가는 개구리 신세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교회는 상아탑일 수가 없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명령하였지 교회 속에서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이 혼동과 절망 일보 직전의 하나님의 나라 자유대한민국을 위하여 당신이 해야 할인은 너무나 분명한 것 아닌가. 교회에서 나와 이 망해가는 자유대한민국을 위하여 국민저항 운동이라도 선도해야 할 것 아닌가. 세무당국이 세무조사를 나올 것이 두려워 하나님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투쟁하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의 당신의 그 믿음 없는 행위가 심판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어떤 심판을 받을 것인가를 자문해보기 바란다. ◆ 김병구 장로는 싱가폴 장로교단 장립 장로, 시카고 '약속의 교회' 은퇴장로로서 바른구원관선교회를 섬기며 기독교신문 '크리스천투데이'에서 칼럼니스트로도 기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원한 성공을 주는 온전한 복음>(한솜미디어 펴냄)이 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9-03
  • “감동적이라도, 같은 설교 한다면…”
    ▲김남준 목사.   김남준 목사(열린교회)가 지난 8월 26일 오전 국내 교계 언론들과의 기자간담회를 갖고 개혁주의에 대한 설명과 함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전편에 이은 김남준 목사와의 일문일답.   교회 내 세대 차이, 자연스러운 것   기성 세대, 현 문화 이해하려 해야 -갈수록 심각해지는 교회 내 세대간 차이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요. “사실 각 세대는 서로를 모르게 돼 있기 때문에, 그 간극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도 앞세대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듯, 우리 다음 세대도 우리를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세대 간의 격차를 강조하기보다, 세대 차이로 사고방식이 조금 다르더라도 주님을 깊이 만나고 한 말씀 안에 모든 세대가 함께 영향을 받으면 소통이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사회는 자신의 경험에 의해 변화를 두려워하는 앞선 세대와, 경험에 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세대가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재 기성 세대가 현 문화의 흐름에 너무 무지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공부하고 다음 세대를 이해하려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우리와의 대화를 별로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웃음). 우리도 어렸을 때 그러지 않았습니까. 노력은 하되, 사고방식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복음 안에서 통합을 이뤄가야 할 것입니다.” 다음 세대 위해 필요한 것1. 그들이 자라나는 건강한 ‘가정’2. 죄 깨닫고 예수 믿게 하는 ‘회심’3. 그들이 배워야 할 ‘성경과 학문’     -다음 세대 위기에 대한 말들이 많은데, 열린교회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30년 프로젝트나 거대한 기금을 모아 학교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는 법이지요. 다음 세대 문제에는 다음 3가지가 매우 중요하고 강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실제로 열린교회에서 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첫째, 가정의 역할입니다. 다음 세대를 콩나물에 비유한다면 가정은 콩나물 시루와 같습니다. 그 안에서 자라나게 되지요. 어떤 가정에서 어떤 영향을 받으며 자라느냐가, 건강한 다음 세대를 만들 수 있느냐의 가장 큰 관건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지만, 그 모든 혁명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바람직하다면, 모든 기술과 변화를 사용해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모든 것들이 주어지더라도 좋은 사회를 만들기 힘들 것이고요. 결국 가정을 통해 좋은 사람들이 자라나야 합니다. 부모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을 잘 믿으면서, 인생을 슬기롭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가정이라는 전체 맥락에서 다음 세대를 교육해야 하기에 가정 사역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둘째, 회심입니다. 오늘날 이 단어가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로 믿는 것, 거기에 헌신하는 것이 회심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사상과 콘텐츠로 교육을 시키더라도, 영혼이 변화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다음 세대가 어떤 식으로 바뀌든 확실한 보증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음 세대의 회심에 깊은 관심을 갖고, 매년 그들을 위한 회심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성경과 학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주 친숙하게 배우고, 그 배운 지식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학문 영역, 즉 역사나 문학, 사회, 그리고 자연과학 등에 대해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세계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통치되고 다스려지고 있음을 끊임없는 지식의 습득을 통해 확신하게 만들어야, 다음 세대의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도 믿음으로 자라나는 세대로 그들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 교회에는 도서관이 3곳 있습니다. 평신도들을 위한 도서관, 저를 위한 도서관,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입니다. 책과 친숙하게 지내면서 모든 지식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들이 교회가 다음 세대를 위해 힘쓰고 있는 일들입니다.” 20세기 이후 목회자 교육 쉬워져 신학 교육 종사자들 하나님 사랑 모든 위선과 거짓 지름길은 ‘무지’ -목회자와 신학생들의 ‘공부’는 어떠해야 하나요. “쉽게 길러낸 목회자는 항상 교회에 부담을 줍니다. 18세기까지를 기준으로, 목사가 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가능했습니다. 우선 인문학 교육을 받고, 철학을 이해해야 했으며, 그 이해한 철학을 신학으로 비판하면서 진리를 세워야 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깊은 교육 없이도 목회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이후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얼마 전에 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가 감동적이긴 하지만 TV <아침마당>에서 나오는 이야기 같다면 어떠러까요? 설교는 감동만으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는 감동적인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한 편의 설교를 들었을 때 기독교가 가진 고유한 사상에 대해 들을 수 있어야지, 흔히 말하는 일반적 상식 선에서 인생에 대한 생각 같은 것이 전달돼선 안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려면 철저하게 신학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높은 수준의 신학 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신학 교육을 받고 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은혜를 받은, 대학 학문 과정에서 잘 준비된 사람들이 신학교에 들어와 철저한 훈련을 받으면서 신학 공부에 헌신해야 합니다. 결국 모든 위선과 거짓에 이르는 지름길은 ‘무지’입니다. 목회자는 잘 모르더라도 아는 척할 수밖에 없고, 자기가 아는 조그만 것을 과장해서 크게 말하다 보니 ‘위선’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부터 역사, 과학, 사회, 문화, 법률, 예술 등에 대해 철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 토대 위에 인간으로서 고민하는 내용들을 어떻게 복음으로 해결할 것인지 깊은 성찰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우선 신학교육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목회자가 되기 전, 충분한 훈련 과정이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목숨 걸고 목회를 배운 사람들과, 그냥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교회를 섬기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회는 현저하게 다릅니다. 그런 점에서 신학생들이 훨씬 높은 수준의 강도 높은 신학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실존, 진리, 은혜, 타인, 영광, 행복 -목사님의 삶에 있어 5가지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그 때마다 생각과 관심이 달라지지만, 요즘 같으면 먼저 ‘실존’입니다. 인간으로서 살 힘이 있든지 없든지, 그것과 상관없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명제입니다. 그렇게 내가 진짜로 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진리’입니다. 그렇게 살아있다는 것을 어디서도 해명받을 수 없지만, 진리를 통해서만 내가 누구인지를 해명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명이 된다 해도, 살 수 없는 것은 살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내 안에 ‘은혜’가 없이는 내 안의 진리에 부합한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삶을 살아낸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우리는 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래서 ‘타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모두 살아가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 더 든다면, 그 영광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키워드입니다.” 요즘 설교, 교단 구분 힘들 정도 설교에서 신학이 서서히 사라져 보수-진보 한쪽으로 치우친 신학,미미한 영향 그치거나 섞여 사라져 -‘통합적 신학’에 대한 말씀에 공감합니다. 요즘 교단들의 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예장 합동 총회는 <기독교 강요>에 나오는 칼빈의 5대 교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실제 현장에 가 보면 그 5대 교리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있음을 입증하려면 5대 교리의 요점들이 설교 속에 강하게 묻어나서, 언제나 그것이 핵심이 돼야 할 것입니다. 비평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에는 설교만 놓고 보면 합동인지 순복음인지 감리교인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탈신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에서 신학이 서서히 배제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신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 감동을 주고 들으면 살 힘이 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쪽으로 설교자들의 관심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 각 교단의 독특한 신학들이 설교에서 표명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지도자들이 모여 ‘우리는 이런 교리를 지지한다’고 이야기해도, 평신도들에게는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웃음). 저는 칼빈을 만나고 깊이 심취하면서 칼빈주의를 배우고, 그 후에는 존 오웬이라는 아주 탁월한 신학자를 만나서 많이 배웠으며, 어거스틴이나 조나단 에드워즈나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을 만나면서 사상의 터전들을 닦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죽은 후에 칼빈주의자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공식 석상에서 고백했습니다. 존 오웬을 좋아했지만, 오웬주의자로 보여지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을 그렇게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어거스틴 추종자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신학자들을 제게 주신 것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게 하시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 온 학자 분들과 이야기하면서, ‘무슨 무슨 주의자로 불리고 싶지 않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불리고 싶은 것은 김남준으로 태어나 하나님 앞에 김남준 앞에서 살다 죽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나를 그렇게 살게 한 훌륭한 하나님의 도구들이었습니다.”   ▲김남준 목사   -개혁주의 신학이 ‘통전성’을 강조하는 예장 통합의 신학에도 접목될 수 있을까요.   “예장 합동과 통합의 신학에 대해 짧은 시간에 말씀드리기 쉽지 않지만, 신학이 통전적이어야 함은 너무 분명합니다. 보수 신학이 컨텍스트를 무시하고 텍스트에 집착한다면, 자유주의 신학은 텍스트를 경시하고 컨텍스트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학의 역사를 보면, 그런 식으로 어느 한쪽으로 갔던 신학은 깊은 영향을 남기지 못하고 미미한 영향에 그치거나 섞여서 동화되고 사라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확고한 신앙을 바탕으로 성경과 계시와 사상에 깊은 뿌리를 두고도, 자기 시대를 두고 충분히 고민하는 신학을 하는 일입니다. 이미 다 죽은 옛 신학자들을 공격하면서 핏대를 올리기보다, 현재 우리 시대에 범람하는 이교적·이단적 사상과 세속주의 등에 대해 반기를 들고 비판할 수 있는 신학이 돼야 합니다. 신학이 통전적이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동의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수 신학은 오히려 오늘날 전체적인 신학을 공부하고, 그 신학적 깨달음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곳으로 영향을 미치는 방식들을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예장 합동과 통합은 몇 가지 신학적 쟁점에 대해 여러 이견을 갖고 있지만, 아직도 충분히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그래도 가장 가까운 복음주의의 두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리 어렵다? 배우면 신앙 쉽게 와 닿아 초신자들, 교리 가르치면 굉장히 좋아해 교리 지식 쌓다 보면 기독교 재미있어져 -열린교회의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신다면. “교리는 어렵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하지만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교리를 이해하면, 신앙에 대한 모든 가르침들이 아주 쉽게 와 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관점으로, 교리를 가르치면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힘들어할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비근한 예로 기독교 역사상 아주 오래 전부터, 신자가 되는 신앙고백을 할 때는 교리를 배웠습니다. 칼빈 시대만 해도 주기도문 1년, 십계명 1년, 사도신경 1년씩 배울 정도로 깊이 있는 교육을 시켰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으려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믿는 것의 전체가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이 있고, 의외로 그것을 가르쳐 주면 굉장히 좋아합니다. 운전을 배울 때도 자동차가 무엇이고 운전이 무엇인지 전체를 가르친 다음, 도로교통법을 배우고 자동차의 구조를 배우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을 때 기독교가 무엇인가에 대해 전체적으로 알고 싶은데, 그것을 가장 최소한으로 응축해 놓은 것이 사도신경이고 최대한 확대시킨 것이 세례 받을 때 가르치는 교리문답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어린 나이 때부터 교리교육을 시킵니다. 주일학교는 물론이고, 유치원 아이들부터 가르칩니다. 주일학교와 중고등부에 교리반이 있고, 청장년들에게는 제가 직접 교리반을 가르칩니다. 매년 가르치다 요즘엔 2년에 한 번씩 가르치는데, 12주 과정에 중간·기말고사까지 85점 이상 나와야 합니다. 교리반을 수료하지 않으면 구역장과 교사를 할 수 없고, 임직자 투표에도 나올 수 없습니다. 지난 학기에 320여명 들어와 하루 1시간 40분씩 루이스 벌코프의 <조직신학> 한 권을 끝냅니다. 가르쳐 주면, 오히려 교인들이 굉장히 좋아합니다. 320여명 중 50명 정도는 다시 들으려는 분들이고, 나머지 280여명 중 50여명이 탈락하고 230여명이 수료합니다. 저희 교회는 여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구역 성경공부도 교리 공부의 연장입니다. 최근 나온 저서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도 그 결과물이고, 1년에 4-5권을 공부한지 25년 정도 됐습니다. 저희 교회를 10년 정도 다니면, 신학책 30여권을 통독하게 됩니다. 교리적 지식을 쌓다 보면, 기독교가 재미있어집니다. 그리고 책을 훨씬 쉽게 읽게 되고, 어떤 책이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 분별할 수 있는 여유도 생깁니다. 그리고 설교도 교리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80여권 썼지만, 요즘 책 너무 안 읽어 믿음의 규칙과 삶의 교훈에 대해 쓴다 객관적 계시와, 찾아가는 인간의 마음 -많은 책을 쓰셨는데, 궁극적으로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몇 권 썼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80여권 정도 아닐까 합니다. 하나님의 소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든 온 힘을 다해 책을 써 왔는데, 요즘은 좀 실망스럽습니다. 책을 잘 안 읽어요(웃음). 책 시장이 인기를 누리던 1990년대 중반에 비하면.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거의 안 읽습니다. 심각합니다. 시각 자료나 동영상 등이 굉장히 유행하면서, 사람들이 긴 호흡을 가지고 생각하면서 읽고 사색하는 일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새 작가로써 힘이 좀 빠졌습니다. 예전에는 책만 쓰면 사람들이 몇만 권씩 샀는데, 요즘에는 제 책뿐 아니라 모든 책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출판사들도 굉장히 힘들어하고, 기독교뿐 아니라 일반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을 때까지 작가, 기독교 저술가로서 살아갈텐데, 수십 권의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결국 주변 무언가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자신이 누구인지도 결정됩니다. 문제는 ‘나’라는 존재가 인식하든 못하든, 바깥에는 도(道)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도는 바깥으로 수많은 계명들을 전달합니다. 이 계명은 결국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렇게 믿으라, 다른 하나는 이렇게 살아라입니다. 믿음의 규칙과 삶의 교훈이지요. 내가 인식하든 못하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겨선 안 되고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등 계명이 주어집니다. 이 계명을 따라 살면 행복하고, 살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런 계명과 도가 있는데, 이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객관적인 것이지요. 두 번째는 어떻게 내가 이 객관적 진리를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살아갈 것인가 하는 일입니다.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진리가 무엇인지 인식해야 하고, 인식해도 만약 그대로 믿고 살려는 의지가 없다면 ‘진리 따로 나 따로’ 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의지를 가지려면 당연히 마음에 감정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나 자신은 순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의 빛도 있지만, 한편으로 죄악과 어두움이 남아있는 복잡한 존재입니다. 이런 존재가 나이고, 이러한 내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나라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영역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결국 관심사는 한쪽에 객관적인 진리인 신학과 지식, 세계, 그리고 다른 한쪽에 신앙과 은혜, 인간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풀어서, 나라는 인간이 이웃과 사랑의 관계를 갖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이 도와 계명들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할까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욕해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말씀에 따라 살게 하시는 이유는, 그렇게 살아야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 5:1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인류를 당신 안에서 행복하게 하기 위해,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라고 하시고, 죄 가운데 빠지는 사람들을 변화시키셔서 하나님 은혜 안에 살도록 하십니다. 제 책은 이 두 가지, 객관적 계시의 진리와 그것을 찾아가는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원리들을 성경심리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 외의 독서 굉장히 바람직하나 말씀으로 비평하면서 읽으면 좋아 비기독교인들 생각 이해하는 통로 -일각에서는 성경 외의 서적을 읽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독서와 자세에 대해 조언해 주신다면. “성경 외의 책을 읽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하지만, 본인이 충분한 말씀의 지식으로 그런 책들을 비평하면서 읽을 수 있을 때, 아주 굉장한 마음의 양식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목사가 되고 나니 소설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읽고 싶어도 양심에 찔려서 읽지 못했습니다(웃음). 지난 2월 작심하고 하루키 소설들을 독파했습니다. 한 번에 연달아 8-9권 읽었습니다. 그 중에서 <노르웨이의 숲>과 <1Q84>가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릿했습니다. 하나님을 몰라 괴로워하고 고뇌하는 장면들을 그림처럼 그려냈습니다. 외로움과 자기 삶의 근거 없음에 대한 무서움, 그 출구로서의 사랑 등입니다. 하루키가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저는 그의 책들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됐습니다. 신학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할 수 있다면 무엇을 읽어도 소화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안 되어 있을 때 그런 소설에 빠져들면, 신앙에 어려운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이문열 작가 소설 읽으면서 많은 청년들이 기독교 신앙에 회의를 느꼈듯, 하루키도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지도할 수 있는 신학적 역량이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읽는다면 굉장히 좋을 것입니다. 그런 책들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생각은 방향이 매우 다른데, 우리에게 비기독교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통찰들을 제공합니다. 한창 심취해서 하루키에 대해 강의하고 싶은 마음이 열렬했는데, 기회가 없었습니다(웃음). 음악이나 미술이나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읽으면 하나님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그런 독서지도사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전쯤 체계적으로 양육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하지 못했습니다. ‘어린이 독서지도사’들처럼 청장년들도 독서지도사들이 있어, 성경에 비춰 해석해 주면 굉장히 좋아하고 복음에 대해 마음을 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알게 하신 진리와 말씀 가르쳐 신앙 갖게 하고 더 견고해지게 해서 하나님 사랑하고 교회답게 세우는 일 -마지막으로, 비전이 무엇인지요. 그리고 저술중인 책이 있다면. “제 비전은 하나님이 제게 알게 하신 진리, 그리고 나를 깨우친 하나님 말씀, 지금도 깨우쳐 주시는 말씀들을 계속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돌아오게 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견고해져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는 것입니다. 운동가는 아니지만, 그런 일들을 위해 목회자와 저술가로서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자 합니다. 지금 4-5권을 동시에 쓰고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에 완성하고 싶은 것이 2권 있습니다.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했다> 2권입니다. 초고는 다 썼고, 교정과 함께 각종 자료를 찾는 지루한 작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대한 책을 쓰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가을 학기에는 기도에 대해, 봄에는 마음에 대해 강의합니다. 현대가 될수록 자기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일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책들이 일반 시장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 이론들 가운데 우리가 받아들일 것들도, 버려야 할 것도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읽으면 ‘아, 내 마음이 이랬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하는 책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원고도 어느 정도 되어 있습니다.” 국내 대표적인 개혁주의 목회자이자 신학자로 불리는 안양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는 <가족>, <게으름>, <돌이킴>, <서른통>, <개념없음>, <목자와 양>, <존 오웬의 신학>, <부교역자 리바이벌>,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했다> 등 신학서적과 신앙서적을 막론하고 여러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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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02
  • 서울시교육청 한일간 갈등을 토론수업을 해결하라
      서울시 교육청 한•일간 갈등을 토론수업으로 해결하라.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무슨 토론이 되나? 최근 한/일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관계가 고조되고 있다. 지난 8월 2일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우방국가간에 수출 때 허가를 면제해 주는 관행)에서 제외하였다. 그 역사적 배경이 있다. 과거 일본은 한국을 침략하여 36년간 지배하였다. 해방 후에도 20년간은 국교가 정상화되지 못하다가, 1965년 국교를 정상화하고 당시 3억 달러를 일본이 한국에 배상한다.(금액의 많고 적고를 떠나서, 보편적으로는 여기에 여러 가지 배상이 포함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또 수억 달러의 차관(借款)도 제공한다.   그리고 2015년 위안부 문제를 불가역적으로 종결하였고, 위안부 문제 치유를 위해서 양국 간에 ‘화해치유재단’을 2016년에 만들었다. 그래서 양국 간에는 과거의 문제가 아닌, 미래지향적인 우호적 관계로 나가는 듯하였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이후, 우리나라 대법원에서는 2018년 10월 30일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이때부터 한/일간에는 갈등이 심화되고, 그해 11월 21일에는 화해치유재단이 해체된다. 그리고 2019년부터 양국 간에 갈등이 더욱 증폭되다가, 일본 정부가 한국을 8월 초에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시키고, 우리 정부는 8월 23일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를 연장하지 않기로 한다. 이에 대한 국제적 시각은 한국이 더 많은 손해를 볼 것이란 전망이 있다.   한/일 양국은 미국을 매개로 하여,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북한의 핵 위협 등에 일본과 군사협력을 할 필요가 있고, 반도체, 정유, 철강, 화학, 기계 등 1,100개 이상의 품목에서 일본과 교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서울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은 지난 8월 18일 각급학교에 한/일 갈등 문제를 토론 수업으로 해결하는 것을 모색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서울시교육청 홈 페이지를 보면, ‘한일 갈등문제를 사회 현안 논쟁/토론 수업으로 해결 모색 추진하라’는 것인데, 이는 학교민주시민교육 진흥 조례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에 보면, ‘우리 사회에서 논쟁적인 것은 학교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사적인 이해관계나 특정한 정치적 의견을 주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학생들이 한/일간 갈등의 문제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토론을 통하여, 그 진실성을 어떻게 학습하게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참고 자료로는 △남산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용산 강제 노동피해자 노동자상 등 체험학습 장소. △한일청구권협정과 일제 강제노동피해자의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의 대법원 판결문. △일제 강제노동 피해자 수업 사례. △여성가족부가 제작한 위안부 피해자 교수 학습자료 등을 예시하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런 토론 수업을 권고하는 지는 알 수 없으나, 학생들의 토론 수업에 앞서, 먼저 점검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는 정확한 토론을 위한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나 이를 바르게 가르칠 교사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 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들은 편향적인 것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둘째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한/일간 갈등의 문제는 우리나라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보는데, 이를 정확히 가르쳐줄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셋째는 서울시 교육청이 예시한 쟁점이나 토론 자료는 대부분 반일적인 요소가 강한 것들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역사 이해에 대한 깊이가 부족한 학생들이 객관적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겠는가? 넷째는 일선 학교에서 토론식 수업이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일간 첨예한 갈등 쟁점을 부각시키므로, 자칫하면 반일 역사 교육이 이뤄지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결국 서울시교육청의 한/일간 갈등에 대한 토론식 수업 권고는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만약에 한/일 간에 갈등과 또 이것을 풀어서 양국이 미래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학생들 간의 토론으로는 부족하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 서 있는 전문가에 의한, 바른 역사 교육을 통해서만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으며, 지금의 갈등 국면을 학생들에게 전가시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자칫하면, 과거에 대한 부정적 역사를 부각시켜, 오히려 다음 세대를 대표할 학생들에게, 과거에 발목을 잡히는 역기능적인 교육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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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02
  • 최광 선교사의 탈북자 선교,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세종대 트루스포럼 황선우 대표.   북한의 통치 이념인 주체사상은, 소련의 스탈린 공산주의에 조선의 유교 주자학이 더해져 만들어졌다. 주자학이란 '국가는 부모'라는 개념을 이론화한 것인데, 이 때문에 북한은 김일성을 '어버이 수령'이라 부른다. 단순한 통치 철학을 넘어 교주, 교인, 교리를 갖춘 세계 10대 종교가 되었다. 성경 인물들은 거듭나면서 이름이 바뀐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사울은 바울로, …. 한반도의 유교 국가, 조선은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대한민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한반도의 북쪽을 점거하고 있는 북한은, 여전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조선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북한을 대한민국으로, 조선을 대한민국으로 개화시켜야 한다. 조선에 기독교가 들어와  대한민국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최광 선교사의 탈북자 선교 3년 1998년 8월, 최광 선교사는 중국에서 탈북자 선교를 시작했다. 굶는 게 싫어 탈북했지만 여전히 굶고 있고, 북송될 위기에 처해 있어 숨어다니는 이들을 위한 사역이었다. 이들은 주체사상 세뇌로 인해 인격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고, 그 세뇌에서도 완벽히는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다.최광 선교사는 탈북자들을 북한 선교사로 기르고자 했다. 그래서 탈북자들을 집에서 먹이고 재우며, 선교사로의 양육을 했다. 그 시작은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북한에서의 악한 것들을 털어버리고 새로이 거듭나자는 의미였다. 상수는 무디로, 상국은 선주로, …. 둘째는, 북한에서의 험한 말투를 고치는 것이었다. 반드시 존댓말을 쓰고, 서로 '형제', '자매'라 부르도록 규칙을 세웠다. 셋째로는, 술과 담배를 끊는 것이었다. 둘째와 셋째 지시사항을 지키려면 그동안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야했기에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광 선교사는 첫째로서 이들의 이름을 바꿀 때부터 그 기반은 기도와 말씀이었다. 그래서 이들도 기도와 말씀을 기반으로 생활하도록 가르쳤고, 결국 이들은 지시사항을 지킨 후 거듭나 1기 선교사가 되었다. 2001년 6월 11일, 최광 선교사를 포함한 76명이 중국 공안과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면서 탈북자 사역은 끝났다. 최광 선교사는 한국으로 추방되었다. 이로써 최광 선교사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3년 동안 총 350여 명의 탈북자들을 먹이고 재웠다. 그리고 3기까지, 연변과 중국 중동부, 중서부로 파송된 80여 명의 선교사를 길렀다. ◈통일한국,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조선이 망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되기까지 일제시대라는 36년의 고난과 미군정이라는 3년의 혼란기가 있었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껏 71년간, 일제시대보다 더 길고 추악한 상황에 놓여왔다. 그래서 북한이 해방되고 완성된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미군정 3년보다 더 긴, 더 혼란스러운 시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최광 선교사는 2000년, 북한 선교사 3기생으로 130여 명의 학생들이 모집되는 것을 보고 5000명의 북한 선교사를 양육하겠다는 비전을 가졌다. 이후 추방되면서 비전을 잠시 내려놨지만, 2006년에 책 『내래, 죽어도 좋습네다』를 쓰며 다시 비전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의 황금종교회(열방빛선교회)에서 탈북자 선교를 계속해서 하고 있다. 우리는 최광 선교사에게서 배운다. 최광 선교사가 중국에서 3년 동안 탈북자들에게 보여줬던 그 모습을 한국 교회가 갖춰야 하지 않을까? 그 모습이 북한이 해방되는 시기에, 엄청 혼란스러울 수 있는 그 때에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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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27
  • "청년 크리스천들 61.3% 혼전 순결 지킬 필요없다"
    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 연합 대표 김지연 약사 ©CTS 유투브 캡쳐   20일자 CTS 방송에서 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연합 대표 김지연 약사 ‘혼전순결, 성은 부부간에만 공유하는 것입니다’라는 주제를 말했다. 그는 “요즘 연인 끼리 성관계를 당연시 한다”며 “남에게 피해주는 것도 아니고 문제될 것 없으니, 갈 때 까지 가자고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성경적으로 성관계는 부부간에만 허락 된다”며 “사귀고 있는 연인끼리의 성관계는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히브리서 13장 4절을 빌렸다.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이처럼 그는 “청년 크리스천들은 말씀을 기억하며, 혼전순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교회탐구센터 조사 결과를 빌려 “크리스천 청년 1000명 이상 중 61.3%는 지킬 필요 없다고 말했다”며 “큰 충격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육체적 성행위를 감정이 이끌리는 대상과 하는 것이 마치 성적 자기결정권인양 미화시키는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들은 살고 있다”고 했다. 때문에 그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경적 가치관을 지켜야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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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27
  • 사랑은 무엇일까?
      배경락 목사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을 살펴보니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전 아이들이 자랄 때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먼 훗날 아빠를 기억할 때,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는 것이 삶의 자양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광화문 교보에 가서 책을 구경하고 피맛골 먹자골목에서 삼치를 먹었습니다. 한달에 한 번은 여행을 떠나 추억을 쌓았습니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니까 여행 갔던 것보다 정기적으로 들리던 서점과 삼치를 더 기억하더군요. 저는 아이들을 위하여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낌없이 다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성경은 사랑을 정의할 때 제일 먼저 ‘오래 참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과 오래 참음이 연결되나요? 오래 참는다는 말은 상대방이 부족하고 불완전하고 연약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 모든 연약함을 품어 안는다는 뜻이지요. 솔직히 전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나는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하는데 상대방은 자꾸만 잘못을 저지릅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사랑을 퍼붓는데 상대방은 나를 공격합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푸는데 상대방은 나를 외면합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오래 참는데 상대방은 걸핏하면 화를 냅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은혜를 베푸는데 상대방은 너무나 냉정하게 계산적으로 대합니다. 이런 일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는 일입니다. 이럴 때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실 전 이런 사랑을 하는 데 별로 익숙하지 않습니다. 베풀면 받고 싶은 것이 솔직한 저의 심정입니다. 그래도 억지로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도 오래 참고 인내하는 모습은 정말 숭고한 사랑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아버지는 엄청난 부자인데 해외 유학간 자녀가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궁색하게 삽니다. 자녀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데 참는 부모는 정말 대단한 부모입니다. 쉽게 얻은 돈은 인생의 교훈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자녀가 큰 병으로 고통을 받는데, 부모가 그걸 보고만 있는 거에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병원에 데려갈 능력은 충분합니다. 당장이라도 고쳐줄 수 있는데 안 데려가는 거에요. 이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누구도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이런 상황에도 참는 것을 봅니다.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호소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꾹 참고 외면하셨습니다. 이게 사랑입니까? 저는 여기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오래 참음이 매우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감히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넓고 크고 높고 깊습니다. 하나님이 정의하시는 사랑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처럼 통증을 느끼는 감각기관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당하는 아픔과 고통과 설움과 눈물과 억울함을 느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인간들아 행복하여라”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로만 우리를 사랑한다 하지 않으시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사셨습니다. 수치, 모욕, 침묵, 외면, 버림받음, 약함 등 모든 안 좋은 것을 다 경험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디셨습니다. 예수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받는 모든 고통을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다 보고 계셨지만, 끝내 참으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 모든 참음은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낌없이 전부 다 주셨는데, 물과 피와 고통과 눈물을 다 쏟으셨는데 인간은 극악무도하여 주님께 정말 못할 짓을 했습니다. 죄의 권세 아래 있던 인간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짓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영이나 되는 천사를 불러 처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를 그냥 허용하셨습니다. 온 몸으로 인간이 던지는 모든 악함과 더러움과 치사함과 배신과 모욕과 험담과 욕설과 찌름과 상처와 고통을 온 몸으로 받으셨습니다.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최악을 최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저주를 은혜로 바꾸셨습니다. 사망을 생명으로 바꾸셨습니다. 못을 박고 창으로 찌르고 협박하고 공포를 조성해도 주님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저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 상의 주님 모습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부활 후에도 주님은 온몸의 상처난 흔적을 하나도 지우지 않으셨습니다. 허리에 창 자국, 손에 난 못 자국 그대로 가지고 부활하셨습니다. 마음만 먹으셨다면 완벽하고 깨끗하고 온전한 육체로 부활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부러 상처를 간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몸으로 승천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도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했던 고통을 기억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아픔, 우리의 설움을 기억하겠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좋을 때만 함께하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울 때 힘들 때 아플 때, 눈물 날 때 함께 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환란에 동참”하였다.(사63:9)   십자가의 사랑은 모든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도 오래 참음의 사랑입니다. 고통이 좋아서 참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제자들에게,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우리에게 각자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마시던 잔을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노라 고백하였습니다(골1:24). 초대교회의 가장 큰 힘은 타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끝까지 참고 그리스도께서 지셨던 십자가를 지며 생명까지 주면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렇게 오래 참음의 사랑을 보여주므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힘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초대교회가 가졌던 이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8-13
  • 종교는 목적인가, 수단인가?
      약화되는 한국인의 종교성  ▲정재영 교수 이번에 한국종합사회조사(KGSS, 2003-2018) 결과가 발표되었다. 한국종합사회조사는 미국의 시카고대학교 NORC(NORC at the University of Chicago)에서 1972년 최초로 창안되어 지난 45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미국의 종합사회조사(General Social Survey, GSS)의 한국판 조사이다. 이러한 한국종합사회조사는 한국의 대표적 사회과학 학술자료로,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1,031명에 대하여 대면면접 방식으로 수행되었다. 요즘에는 조사의 편의를 위해 패널들을 통한 조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조사는 미리 구성된 패널이 아니라 전국 단위의 새로운 표본을 추출하여 면접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국적인 여론이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조사이다.이 조사에서는 2003년 이후에 1,600개가 넘는 문항들을 통해 국민들의 의식과 생활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이 중에 종교에 대한 질문이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조사 결과를 통해 한국인의 종교성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올해 조사 내용은 주로 종교의 의미와 관련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종교 비율이 개신교가 19.7%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불교 18.9%, 천주교 12.2% 순이었다. 개신교 비율은 지난 2015년 인구센서스 결과와 같았고, 불교와 천주교는 인구센서스보다 약간 높게 나왔다. 인구센서스에서는 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개신교가 신자 수가 가장 많은 1위 종교로 나타났는데, 이번 조사에서도 개신교 신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종교 인구가 51.6%로 인구센서스보다 약간 높게 나왔지만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종교가 없다고 응답하였다. 전세계적으로 종교인구가 80%가 넘는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 종교 인구는 매우 적은 편이다.종교집회 참석 빈도는 “일주일에 여러 번 참석한다”는 응답이 6.9%로 2003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게 나왔고, “일주일에 한번”(14.2%)을 포함해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이 21.1%로 이 역시 조사 이래 가장 낮은 수치이다. 전체적으로 한국 종교인들의 집회 참석 빈도가 점점 줄고 있다는 조사 결과이다. 종교별로 통계가 나오지 않아서 그 차이를 알 수는 없지만,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2017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 신자들은 다른 종교에 비해 1주일간 종교 집회에 가장 많이(73.7%) 참석했으나 5년 전에 비해 참석률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다음으로 “종교가 있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가장 많은 36.7%가 “종교 가르침이나 교리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응답하여 “신이나 영혼, 귀신의 존재를 믿는 것”(15.0%), “종교에서 강조하는 교리나 가르침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13.4%), 그리고 “종교 행사에 참여하는 것”(10.9%)보다 종교적 실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한 지식이나 믿음 또는 종교 행사 참석보다도 믿는 바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그러나 자신의 신앙심에 대해서는 10.1%만 강하다고 응답하였고, 25.0%는 별로 강하지 않다고 응답하여 대체로 낮게 평가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종교의 가르침이 상충되는 일이 발생할 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르겠다”는 응답이 25.6%였고,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응답이 16.4%로 훨씬 적게 나왔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종교를 중요하게 고려하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8.1%와 “중요하다” 12.5%를 합하여 20.6%만 중요하다고 응답하였고, 중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54.2%로 과반을 차지했다. 이러한 결과로 볼 때 종교에 자신의 삶을 복속시키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중심에 놓고 필요에 따라 종교를 활용하고자 하는 의식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실용적인 종교성 이번 조사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평소에 얼마나 종교적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질문들을 추가하였는데, 먼저 “죽은 사람들의 영이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에 대해서는 15.3%만 그렇다고 응답하였고, 절반이 넘는 56.5%는 그렇지 않다고 응답하여 혼령의 영향에 대해서는 별로 믿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요가나 식이요법에 종교적인 요소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13.3%만이 그렇다고 응답하였고, 56.6%는 그렇지 않다고 응답하여 이러한 활동이 종교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덕을 쌓으면 자손들이 복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그렇다“ 19.2%를 합하여 절반이 넘는 52.2%가 그렇다고 답하였고, 위급하거나 중대한 상황에서 기도를 해본 경험에 대해서도 52.3%가 그렇다고 응답하였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적인 심성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고, 2016년 조사에서 유교를 믿는다는 응답이 49.6%로 거의 절반에 육박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유교식 신앙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할 정도이다. 그리고 이번 조사에서 장례예식은 유교방식이라는 응답이 21.7%로 불교 방식이라는 응답과 함께 가장 많이 나왔다. 그러나 유교의 전통을 따르는 제사와 같은 조상 숭배 의식이 후손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소수인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때, 유교가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에서는 영향을 미치지만 조상신에 대한 믿음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요가를 인도 종교의 영향으로 본다든지 식이요법을 특정 종교의 가르침이나 종교적 수행으로 보는 시각도 별로 없어서 이것을 단순히 건강을 위한 행위나 노력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그러나 본인인 선행을 하고 덕을 쌓으면 자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증명될 수 있는 사실이 아님에도 이것을 믿는 사람들이 과반수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와 상관없이 덕을 쌓는 것은 좋은 일이고 이것이 후손들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하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위급하거나 중대한 상황에서 기도해본 경험이 과반수에 이른다는 것도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비종교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비율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29.3%인 것을 생각하면 한번이라도 기도를 한 사람은 70%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성찰이 필요한 종교인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통해서 볼 때, 현대 한국인들에게 종교적 심성이나 종교의 영향력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것은 사회가 발달하고 점차 다원화되면서 종교에 대한 관심이나 집중도가 감소하기 때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자손이 복을 받는 것에는 여전히 관심이 있고 위급하거나 중대한 일이 있을 때 기도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종교를 개입시킨다는 의미로 종교를 수단시하는 성향으로 이해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의 종교에 대해서 현세주의적 종교성이라든지 도구적 종교성이라는 표현이 있어왔는데 이것이 보다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종교적 요소나 종교의 가르침을 그 자체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곧 자기 자신을 절대화 하는 태도인데 그만큼 스스로 점검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상대화할 수 있어야 하고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불완전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겸손의 태도이다. 이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이다.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성공이나 목적 달성을 위해 기독교 신앙을 수단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신앙 태도를 점검하고 돌이켜볼 때이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8-12
  • "교회는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고, 한국인의 반일감정에서 미래적 화해를 독려해야 한다"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창립원장)   샬롬 나비는 광복 74주년 논평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아베 정권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백히 인정하라”며 “독일 메르켈 정부의 태도를 배워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리고 이들은 “메르켈 정부는 과거 나치 행태로 주변 피해 국가에 대해 무한 사과의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은 “아베의 태도는 과거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이 없는, 도리어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면서 “동북아 리더 국가로서, 주변 국가에 대한 반성의 태도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는 한·중·일이 협력해야한다”면서 “편협한 국가주의 헤게모니를 버려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문재인 정부는 민생과 경제 파탄이 예상되는 한일 갈등을 자초하는 일을 버려야한다”면서 “이전 정권들의 패착을 돌아보고, 즉각 대화와 외교로서 풀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들은 “한일 갈등을 이용해서 장기정권을 획책하는 방편으로 삼는다면, 이 또한 국민과 역사의 엄중한 심판은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 경계했다. 끝으로 이들은 “한국교회는 일본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사과를 독려하는 것”과 더불어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차분하게 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 따라 미래 지향적 화해의 태도를 지향하도록 유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샬롬나비, 2019년 광복 74주년 논평서> 일본 포용 정책으로 일본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위에 선진화된 대한민국 건설하자.일본은 경제력에 걸맞게 과거사에 참회하는 정신 가져야 동북아의 지도국 위상 가질 수 있다.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하는 즈음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한 국내 정치의 파국은 이제는 남북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를 둘러싼 당사국 간의 국제적 갈등과 대립의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무도하게 이 땅을 유린한 일제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자유와 해방의 빛을 되찾은 광복절을 기뻐하며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온 마음으로 되새기는 동시에 다시는 종의 굴레에 매이지 않도록 독립과 건국의 정신으로 재무장하고 민족적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가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일본 아베 정권의 식민지 통치의 불법성을 부인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비판해야 하겠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과거에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과 사죄한 고노담화와 1995년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과 사죄와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자신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불법지배를 사죄하였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2013년 4월 23일에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하면서도 그 담화에 들어있는 반성의 내용들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결과적으로 일본은 아베 정부가 들어선 후 자신들의 과거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과거의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그러한 과거 청산 위에 발전적인 미래 관계 구축을 하도록 나가야 하겠다.이러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가 요청되는 시기에 특히 백 년 전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서 자유대한의 터전을 구축한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 내부의 개혁과 남북과 열강들의 대립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십자가의 사명과 시대적 책임을 끝까지 완수하여 선열들과 순교자의 피와 땀이 서린 광복의 기쁨을 삼천리 방방곡곡 자손만대에 전하여야 한다. 우리는 광복 74주년을 맞이하여 광복의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여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하겠다. 뜻깊은 광복절을 맞이하여 샬롬나비는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다음과 같은 논평문을 발표한다. 1. 일본은 한일합병과 침략전쟁의 불법성과 참혹한 결과를 진실되게 반성하라.일본은 일제강점기 군국주의를 앞세워 대동아공영이라는 거짓말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파괴하고 자행한 한일합병과 중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미국에 대한 침략전쟁의 불법성과 참혹한 결과를 통절히 반성하고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강점과 무단통치에 의해 희생된 꽃다운 청춘들의 희생과 죽음을 상기하지 못하고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망각하여 또다시 이전 역사의 전철을 되풀이 한다면 지구상에서 따돌림과 심판을 자초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책임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 특히 무엇보다 아베 내각이 한일합병과 침략전쟁으로 희생되고 유린된 인권은 결코 물질만으로 보상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2. 일본은 독일을 유럽의 지도국가로 서게한 독일 지도자의 무한한 사죄 태도를 배워야 한다.분단 독일이 통일 되도록 한 것은 브란트 독일 수상이 1970년 폴란트 방문시 1943년 1944년 두 차례 나치에 저항한 게토 지역 유대인들 봉기에서 학살당한 희생자 묘역에서 무릎을 끓고 사죄를 구한 태도에서 비롯되었고, 통일 독일이 유럽연합의 지도국 위상에 선 것은 마르켈 총리가 말하는 무한한 사죄의 태도이다. 이에 반해 오늘날 아베의 오만한 태도는 과거의 군국주의 태도에서 반성이 없고 오히려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 일본이 동북아 국가 사이에서 경제동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8월 6일 매슈 굿맨 선임 부회장이 펴낸 한·일 갈등 관련 보고서에서 "일본은 이웃 나라에 대한 공격으로 '경제적 리더' 이미지를 더럽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일은 중국의 역내 강압 및 국제적 규범 침해 행위에 맞서 협력하는 데 있어 공동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며 한·일 갈등이 안보 협력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일본 정부 지도자들은 이러한 지적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3. 정부는 일본을 자극하는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기업이 대응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과거사 문제로 일본의 경제 보복이 오는 것에 대하여 한국 기업은 경제의 실력으로 대응하고 정치인들은 외교력으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기업인들을 불러내어 “임진왜란 때 일본이 탐낸 것도 우리 陶工의 기술력”이라고 정부와 기업이 공동대응을 모색하는 것은 자료를 구입, 생산하고 상품을 파는 기업에 실제로 이로운 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일본은 어디까지나 자유우방으로 그동안 70여 년 간 한국경제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이웃나라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일본의 수출 금지 제품을 국산화할 수 있도록 기업 52시간 근로 시간 규제 등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부품을 일본에 의존했던 산업생태계를 바꿀 기회라고 하지만 말고 우리 중소기업이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글로벌 분업구조에서 비교우위의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2020 도쿄 올림픽 보이콧, 일본 여행 금지 등 민간 교류를 정치외교문제로 금지해선 안 된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 제품불매운동이나 일본 여행 보이콧은 마이너스 될지언정 플러스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미국 싱크 탱크는 8월 6일 보고서는 한국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돈키호테식(quixotic)으로 일본과 경쟁하기 위해 남북 간 평화경제를 주장한 것은 일본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4. 오늘날 편협한 국가주의가 팽배되는 때 동북아 국가들은 헤게모니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오늘날 세계 지도자들은 독일 총리 메르켈이 지난해 11월 11일 파리에서 열린 1차세계대전 종전 1백주년 기념식에서 독일의 과거사를 반성하면서 언급한 인류의 평화와 화합 의미를 새겨야한다. 메르켈은 파리 평화포럼에서 “편협한 국가주의자들의 관점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우려가 있다”면서 “1차세계대전은 고립주의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면서 사죄의 마음을 표현했다. 오늘날 이러한 편협한 국가주의는 일본의 우경화와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력으로 과거사 회피, 중국의 일대일로의 중화 제국주의적 팽창,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러시아의 군사우월주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 한반도는 북한의 핵개발과 선군주의, 한국의 북한 달래기 좌파 포퓰리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일본에 대한 반일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시대에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와 더불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소통과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5. 우리는 대한독립의 정신을 고취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시대적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우리는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 급급하여 사분오열되고 급기야 망국의 길로 내달았던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고 대한독립의 정신으로 단합하여 자유통일의 시대적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 자립자강(自立自彊)이 없이는 가정도 기업도 사회도 바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회 각계각층 모두가 마땅히 안보와 경제와 민생의 거국적 대의를 위해 신명을 다하여 본분과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간도와 하와이와 각지에서 기꺼이 생명과 청춘과 재산을 오로지 독립을 위해 던졌던 우국지사들의 독립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국난극복의 관건일 것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북간도에서 밝은 세상을 꿈꾸며 항산항심(恒産恒心)을 소리 높여 외쳤던 선열들의 기개를 일으켜야 한다. 외국에서의 무장독립투쟁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과 동시에 국내에서 일제의 핍박을 견뎌내며 학교를 세워서 인재를 양성하고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문화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의 소중함도 기억해야 하겠다. 국내에서의 이러한 실력양성운동이 있었기에 해방 후의 국가건설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해외의 무장독립정신과 함께 국내의 실력양성의 애국운동을 함께 기억하고 계승해야 하겠다. 6. 우리는 자유와 민주의 기치를 들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새로운 자유대한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우리는 역사의 소용돌이와 도전 앞에서 응전하면서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 왔다. 이제는 부정과 부패, 음란과 우상을 단절하고 분열과 분단을 종식하여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입증하는 “새 대한민국”(New Korea)의 비전을 실현해야 한다.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파괴하고 정의의 이름으로 정의를 파괴하는 동성애 퀴어 운동의 무책임한 거짓 인권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윤리적이고 무법한 헌정 유린을 척결하고, 독립열사들이 마지막까지 생명을 던져서 일깨운 것처럼 무법한 침탈로부터 자력자강(自力自强)을 실현하는 자유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자유를 위한 책임과 역량, 민주를 위한 정직과 윤리를 전수하여 자유대한을 계승할 믿음과 의의 세대를 세워야 한다.우리는 이제 해방 이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대한민국의 저력을 바탕으로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이룩하고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달성에 기여하는 선진국의 대열로 도약해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 체계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면서 "케이 팝"(K-Pop)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문화적인 창조능력을 신장시켜 세계인의 삶을 풍요롭게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다. 7. 우리는 정의와 공법을 세우고 대동단결하여 경제 번영과 문화 융성을 이루어야 한다.우리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서 나라 사랑의 애국 정신으로 대동단결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올바른 윤리도덕을 바탕으로 번영과 융성의 전기로 삼았다. 그러나 최근 반신적이고 비윤리적 동성애 인권화가 혐오와 차별이라는 거짓 인권논리로 둔갑하여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성윤리도덕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문재인 행정부는 시민들과 한국교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여가부, 법무부 국가인권기본계획(NAP) 등으로 동성애 젠더정책에 국민의 혈세를 퍼붓고 있다. 천부적 인권을 천명한 독립정신(獨立精神)을 다시 일으켜서 극단적 이기주의에 편승하는 무법하고 무책임한 동성애 거짓인권의 법과 조례를 개폐하고 윤리입법을 구축하여 사회를 통합하고 국력을 결집하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우리는 광복절을 맞이하여 국가를 올바르게 발전시킬 수 있는 국민의 건전한 윤리덕목을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사회의 지나친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하여 서로를 배려하고 상생하는 정치 문화를 형성해야 하겠다. 한국사회의 불신으로 인한 사회적인 폐단을 극복하기 위하여 신뢰사회를 구현해 나가야 하겠다. 이를 위해 부정부패를 극복하고 정의와 공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고 상호협력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 더 나아가 문재인 행정부는 민생과 경제 파탄이 예상되는 한일갈등을 자초하지 말고 이전 정권들의 패착을 겸허하게 돌아보고 즉각 대화와 외교로서 풀어야 한다. 한일갈등을 이용해서 이를 장기정권을 획책하는 방편으로 삼는다면 국민과 역사의 엄중한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8. 한국교회는 광복절을 맞이하여 한일 간의 진정한 화해를 바탕으로 평화적인 미래관계 형성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식민지배의 압제자였던 일본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이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들은 일본과의 발전적인 국제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세 가지 소재의 수출금지 조치 및 수출우대국 지위 폐기 조치가 내려지면서 온 국민들의 반일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위중한 시기를 맞이하여 일본이 진정한 반성을 하고, 한국 국민들도 일본과의 진정한 화해를 추구하면서 양국이 불행한 과거를 올바르게 청산하고 발전적인 미래관계 수립을 위해 기도하고 실천적으로 노력해야 하겠다. 한국사회에서 지금 민족주의는 자칫하면 감정적 배타주의를 흘러갈 위험을 안고 있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일본의 참다운 반성 위에서 양국의 평화적인 국제관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하겠다. 9. 한국교회는 북한인권의 조속한 개선과 자유와 복음의 통일을 위해서 합심해서 기도해야 한다.한국교회는 선진들의 기도와 선열들의 희생을 통해서 쟁취한 자유와 해방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기쁨과 감사를 널리 전파하고 전승해야 한다. 우리는 북핵과 공산주의 독재로 폐쇄된 북한 동포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자유통일의 전기(轉機)를 확보하도록 민족적인 결의를 모아야 한다. 특히 현대판 아우슈비츠인 북한의 대규모 정치범 강제수용소들에 갇혀 신음하고 절규하는 북한 주민과 북한교회 성도들의 조속한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합심하여 기도하고 이를 위해 거국적으로 국제적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매년 유엔은 북한인권의 개선을 위해서 결의하고 있는 마당에 당리당략에 급급하여 침묵하고 있다면 한국정부와 한국교회는 역사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광복절을 맞아 삼천리 방방곡곡에 무궁화가 피어나듯이 자유 평화 통일의 감격이 한반도 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그날을 고대하며 소망한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8-12
  • 한국교회 침체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
    ▲여주봉 목사   나는 지난번에 이사야 하반부에 약속된 신약의 교회를 위한 유업 중 열방의 유업에 대해서 나누었다. 이사야 하반부에 약속된 모든 유업은 십자가의 복음에 주어진 유업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신약의 교회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터, 즉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그 교회에 이 놀라운 열방의 유업이 주어질 것이다.오늘 한국교회의 세계 선교는 정체상태에 있다. 일부에서는 이미 줄어들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단순한 숫자의 문제에 앞서 선교사의 고령화는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이것은 선교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교회 전반에 대한 문제이다. 많은 교회가 교회와 성도들이 함께 늙어가고 있다. 반 이상의 교회에 주일학교가 없다. 청년부가 따로 없는 교회는 그보다 더 많다고 한다. 당연히 재정적으로도 한국교회는 전혀 이전과 같이 않다. 한국교회 전반적인 상황이 그렇다 보니 세계 선교에 있어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한국교회 전반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교회의 세계선교에 대해서 위기감을 느끼며 자조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다. 교회가 앞에서 나눈 것처럼 십자가의 복음 위에 철저히 세워질 때 다른 유업들과 함께 열방의 유업이 주어질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의 다음 세대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시다고 믿는다.조그마한 한 예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하고 계신 일의 한 부분을 나누어 보겠다. 수년 전에 한 청년을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로 2년 단기선교사로 파송했다. 십자가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귀하게 세워져 가는 청년이었다. 그러한 청년이 가서 그 나라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을 도우며 섬겼더니 어른들이 하지 못하던 어린이 사역이 되어지고, 청년 사역이 되어졌다.그것을 본 주변 선교사님들이 그 곳을 방문한 우리 교회 해외선교위원회원들에게 그런 젊은이들을 파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우리는 주로 20대의 젊은이들을 1년씩 단기선교사로 파송하기 시작했다. 우선 2명을 한 조로 묶어서 파송했다. 파송할 때 우리의 목표는 그들을 통한 사역이 아니라, 그들의 양육이었다. 그들은 가서 무엇보다 먼저 그 나라 언어를 배웠다. 그리고 그날 배운 그대로 캠퍼스에서 젊은이들과 교제하며 기회 되는 대로 전도했다.그들은 6개월만에 현지어로 간증하고 9개월만에 현지어로 설교했다. 그들은 현지인들을 섬기는 일에도 적극적이었고, 선교사님의 지도 아래 철저한 영성 훈련을 받았다. 같이 함께 지내다 보니 관계적인 면에서 ‘빡센’ 훈련이 되었고, 리더십 훈련도 자동적으로 되었다. 당연히 선교사님의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사역의 훈련이 되었고, 어린이 사역과 청년 사역에 교회 안에서 매우 활발해 졌다. 교회는 한 사람 당 매월 100만 정도를 지원했다.그 정도면 그들이 그곳에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다. 그들을 통해 생각하지 못했던 어린이 사역과 청년 사역이 일어나게 되자 그 선교사님이 그 사역을 지속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우리는 6개월 후 다시 두 명을 동일하게 그곳에 파송했고, 두 명이 1년 기간을 마치고 돌아올 때 다시 두 명을 파송함으로써 항상 그곳에 네 명이 남아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오늘 우리가 2+2 프로젝트가 탄생하게 되었다.그 열매는 일부 나눈 것처럼 참 놀라왔다.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으로 무장된 그들이 그렇게 가서 섬기니까 참으로 귀한 일들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그들의 인생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맨 처음 갔던 4명 중에서는 3명이 장기선교사로 지원했다. 그러한 사실을 듣고, 이것이 한국교회 다음 세대의 선교 동원을 위해 매우 중요한 한 방법이 되겠다고 생각한 KWMA의 요청에 따라 나는 작년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있었던 세계선교대회에서 이것을 발표했다. 몇 년이 지나자 그 민족의 경우 99% 이상이 무슬림인 나라에서 청년부가 10명이 넘게 자라났고, 일부 청년들의 삶이 우리 단기선교팀원들과 교제하면서 놀랍게 변했다.한 자매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 하는 자매였는데, 그 1년 기간을 통해 놀랍게 바뀌고 특히 리더십에서 자라났다. 전혀 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1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서 그리고 캠퍼스에서 귀하게 섬기도 있다.지금은 다음 세대 사역을 위해 사단법인 청년선교를 만들었다. 우리는 전국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귀한 자원자들을 모집하고, 그들을 훈련해서 열방으로 파송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고 후원하려고 한다. 지금 현재 두 나라에 젊은이들이 나가 있으며, 이번 9월에는 세 번째 나라로 파송을 시작한다. 우리의 목표는 세계 250 지역으로 매년 1000명의 젊은이들을 파송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일을 함께 할 지도선교사 250명을 찾고 있다. 이 일은 군 선교, 캠퍼스 선교, 직장 선교를 연결하는 다음 세대 큰 프로잭트의 일환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좀 더 나누고, 다른 분야들도 나누겠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7-24
  • 교인수 1,500→150, 충격적 추락 “오히려 감사”
      ▲그동안의 교회사역과 교회 창립 35주년에 대해서 설명하는 좋은마을교회 신원규 목사   올해로 창립 35주년을 맞는 좋은마을교회(구 삼성장로교회) 신원규 목사를 만났다. 그는 교회 이름처럼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마음을 가지고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교회 놀이터에서 밝게 뛰노는 교회 아이들의 모습 때문인지 그의 모습이 더욱 평안해 보였다.     미국 남가주에서 20년 이상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 알만큼 삼성장로교회는 유명한 교회였다. 1984년, 당시 29세였던 신원규 목사와 몇 가정이 함께 시작한 교회는 1990년대에 들어서자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남가주 이민교회에서 최초로 시작한 다니엘 특별새벽기도회는 실로 대단했다. 멀리 샌디에고에서 찾아올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매주 새신자들이 교회로 찾아왔고 한 주에 30~40명씩 몰려오기도 했다. 폭발적으로 교인 수를 늘려가던 삼성장로교회는 1천500명까지 출석하는 남가주 초대형 교회가 됐다. 1990년대 한인교회 가운데 성도수가 1천 명 이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LA 대형교회들도 500명에서 800여명 수준이었기에 삼성장로교회는 더욱 유명세를 타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교회는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보였다. 교회가 사람들로 북적이자 신원규 목사는 1999년 라하브라 지역에 있는 병원 건물을 교회당으로 매입했다. 650만 달러에 구입한 병원 건물은 11개 동이 있을 만큼 규모가 크고, 교통의 요충지에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가격이 뛰었고 10개월 만에 천만 달러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그리고는 2004년 기도원 건물을 또 사들였다. 신원규 목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평가했고, 나의 욕심을 하나님의 꿈과 열정으로 포장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은행에 매달 내야하는 15만 달러에 달하는 이자는 교회 재정의 한계를 부추겼고,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터지자 교회 건물은 하루아침에 은행으로 고스란히 넘겨줘야 했다. 1,500명이었던 교인들도 결국 150명까지 줄었다. 눈부신 교회 성장만큼이나 삼성장로교회의 추락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그러나 신원규 목사는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한다. 고통은 컸지만 그 일을 통해 참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인이민교회 유형적 교회 아닌 선교에 힘쓰는 본질적 교회 돼야 2011년 삼성장로교회는 교회를 잃고, 다른 교회를 얻었다. 외형적 가치를 추구하며 세상에 드러나는 교회를 잃었다면, 하나님을 섬기고 선교에 힘쓰는 본질적 교회를 얻은 것이다. 삼성장로교회는 2015년 교회 이름을 좋은마을교회로 바꾸고 선교적 교회 모델을 따라 선교에 초점을 맞췄다. 교회는 예배당을 잃은 후 8년 전 고아사역을 시작했다.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인도, 케냐, 코트디부아르 등지에서 먹지 못하는 먹지 못하고 방치된 아이들 326명의 아이들을 먹이고 있다. 또 7년 전부터는 제 3세계 목회자 훈련 프로그램으로 PM(preaching ministry)사역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교회가 오래 전부터 펼치던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을 위한 영성훈련 사역 GOG(Garden of Grace)도 순항 중에 있다. 신원규 목사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낮추시고 겸손하게 다시 교회의 본질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은 특별한 은혜였다"며 "이번 창립 기념일에는 선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베푸신 은혜와 감사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좋은마을교회는 오는 9월 7일(토)부터 8일(주일)까지 창립 35주년을 맞아 MKW 고아사역 8년차 이사회 대회, PM 7년차 사역 감사예배, GOG 영성사역 28주년 감사예배를 가질 예정이다. 아래는 신 목사와의 일문일답 -힘든 시간들을 겪은 후 2011년 선교적 교회를 선포하며 새롭게 시작할 것을 다짐했다. 이후 교회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우리 교회가 교회당을 잃고 떠나온 지 10년 가까이 됐다. 교회를 잃고 밖으로 나와보니 정말 예수님이,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별히 누구에게도 돌봄을 받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고아들이 먼저 보였다. 그래서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인도, 케냐와 서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고아 326명을 돕고 있다. 특별히 캄보디아는 정부차원에서 고아들을 수치라고 생각해서 고아원을 폐쇄하기 때문에 고아들이 방치가 되고, 다른 가정에 위탁되어도 학대를 받기 쉽다. 심지어 장기 매매로 팔려가는 경우도 있다. '마이키즈월드'사역이라고 하는데 우리교회에서 한 아이에게 30-35불을 후원하면 현지 선교사가 식품을 사서 가정에 가져다 준다. 후원 아동으로 인해 한 가정이 음식을 먹게 된다. 또 PM(preaching ministry)라고 현지 목회자 훈련 프로그램을 열심히 해왔다. 일반적으로 목사 혼자 가서 현지 목회자들을 훈련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교회 집사 장로들이 함께 가서 평신도의 관점에서 교회 안내부터 행정, 목회를 전반적으로 돕는다.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매 회기 100명을 대상으로 4학기 과정을 교육하고 있다. PM은 미얀마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오래 전 미국 북침례교회에서 양곤에 집중적으로 선교를 했던 적이 있다. 군부독재시절 교회 소유였던 병원과 학교가 몰수됐었는데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지하교회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고 교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침례교회가 대다수라 장로교 목회자가 교육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1년 가량의 오랜 인터뷰를 통과하면서부터 우리 교회가 양곤지역에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다. 우리교회가 1992년도에 1기를 시작으로 27년 동안 진행해 온 영성훈련 GOG(Garden of Grace)도 선교지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중동의 선교사들을 비롯해 남미,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전세계에서 진행돼 왔다. 한국에서는 1997년도에 농어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 교회 GOG를 경험한 사람들이 1200명일 정도로 많은 목회자들을 섬겨왔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모든 교회의 초점을 선교에 맞추고 구제와 복음전파, 목회자 양성 및 훈련에 맞춰왔다. 교회 건물 유지와 관리에 쏟아야 하는 에너지가 선교로 옮겨졌고 나부터도 개척 초창기처럼 성도들을 더욱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품을 수 있게 됐다. " -교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예전에는 교회가 커야 하나님의 일을 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작은 교회지만 하나님의 일을 예전보다 더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교회 본질로 돌아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할 수 있어 좋아한다. 선교에 집중하면서 부터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내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감사해 한다. " -교회 건축에는 여전히 회의적인가? "어떤 통계를 보니까 미국 전역에 있는 교회 예배당 가운데 75%가 공간활용을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 교회가 외형을 중시하는 가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성도가 모이면 교회부터 지으려는 생각이 아직도 강하다. 또 예배를 많이 만들면 좋은 줄 안다. 100명 모이는 교회가 4부 예배를 드리는 것도 봤는데, 본질이 중요하다. 교회는 양떼를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 건물을 짓는 유혹에 현혹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회 건물을 짖고 교인들이 다 떠나고 없으면 그 교회 건물은 어떻게 처리하게 되나? 중세 사회와 같은 타락이 만연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우리 교회가 이런 것에서 자유롭게 되고, 상한 부분이 있다면 회복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다. 교회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지어져야 하겠지만 그것에만 초점을 맞춰져서는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리기 쉽다." -한인 이민자들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한인 교회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인 이민교회에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한인 이민 교회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보진 않는다. 유대인들이 세계적으로 흩어져있는 것처럼, 디아스포라 한인들도 세계적으로 흩어져있다. 하나님께서 전세계로 퍼져있는 한국 민족을 사용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한인 이민교회가 개선할 부분은 목회자들의 권위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들 가운데 목회자의 권위를 과도하게 세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한국적인 전통으로 자신의 의견을 성도들에게 밀어붙이려고 하지만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합리주의 문화에서 성장했다. 권위로 교회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 -한인 교회에 많은 사역이 있다. 오늘날 한인 이민교회가 집중해야 하는 사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민 교회가 1980년도 후반에는 선교의 바람이 불었다. 교회가 경쟁적으로 선교하던 시절이었다. 1990년도에는 교육으로 관심이 옮겨졌다. 교회가 교육관을 세우는데 사활을 걸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혼란 상태가 왔다. 교회가 물론 선교도 열심히 해야 하고, 교육에도 힘써야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의 근본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그 근본이란 '목회자의 마음 속에 소외된 사람들이 모두 담겨지는 것'이다. 교회가 커지면 저녁에 성도들에게 전화 오는 것이 귀찮아진다. 이민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은 '영혼을 가슴에 담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숫자가 목회가 아니다. 성도의 머릿수가 돈으로 계산되면 아무런 소망이 없다. 목회자의 생각과 사명과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목회자의 마음속에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워져야 하다. 오늘날 교회가 집중해야 하는 일은 무엇보다 영혼에 대한 사랑을 충만하게 회복하는 일이다. " -후배 목회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주한인교계에 대형교회 하나가 나타나면 수많은 중소형교회는 문을 닫게 된다. 우리교회도 한 주에 3~40명씩 몰려올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중소형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들의 아픔을 몰랐다. 그러다 교세가 기울고 성도들이 나가는데 그 아픔을 알고 가슴으로 느끼게 되더라. 한창 교만하던 시절 교회가 부흥하니 100명 이하 교회 목사님들하고는 교제도 하지 않았다. 목사라고 했지만 마음의 철이 늦게 들었고, 주의 나라 갈 날이 가까워지니 우리 주님의 마음 '겸손'을 알게 되는 것 같더라. 나에게 30대가 주어진다면 진정한 주님의 목회를 다시 해보고 싶다. 눈에 보이는 유형적인 것에 목회의 사활을 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같이 걷고 싶다. 많은 교회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면서 삶의 터전에서 일을 하신다. 목사님뿐만 아니라 사모님도 일을 하신다. 우버 운전도 많이 하시는데 목회자가 삶의 터전에서 크리스천으로 사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유형적인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니라, 우리 삶 그 자체가 목회다. 우리 삶이 목회가 될 때, 더욱 성도들의 마음의 깊은 곳을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좋은마을교회는 계속 선교적교회를 지향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치과의사가 되어 의료선교를 펼치고 싶다. '지금 65세로 의사가 되면 70세인데 어떻게 선교를 하겠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는데,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 다하는 날까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에 동참하고 싶다." -왜 치과의사인가?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중에 한 아이의 엄마가 퉁퉁 부은 얼굴을 붙잡고 아이를 업은 채로 신음하고 있더라. 너무 안타까워서 살펴보니까 이가 다 상해서 치료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치과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연신 민간요법으로 나무 잎사귀만 씹고 있었다. 치아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 그날 이후 '치과 의사가 되겠다'고 했더니 주위에서 모두 놀라더라. 그렇지만 슈바이처와 같이 사람들을 돕고 아픈 곳을 싸매며 남은 생애를 주님께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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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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