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3-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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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백성을 구별하리라
    ▲이정기 목사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될 때, 제일 먼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세기를 띄워 대피시킨 나라가 미국이다. 그리고 연이어 프랑스, 호주, 영국, 일본, 한국이 전세기를 띄워 대피시켰다. 자기 나라 백성이기에 보호한 것이다. 그리고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나라들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켰다. 북한, 대만, 베트남, 필리핀, 인도, 러시아, 몽골, 말레이시아, 싱가폴, 미국, 홍콩, 호주, 이스라엘, 뉴질랜드, 많은 나라들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켰다.일찍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킨 대만이나 러시아 베트남 같은 나라들은 확산이 더딘 반면에,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후베이성에 한해서 금지한 나라는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래서 이제는 세계 180개 국가가 한국발 여행객의 입국을 금지시키는 상황이 되다. 그래서 인천 공항이 텅텅 비어있다. 박항서 감독으로 인해서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베트남 마저도 한국사람들을 피하고 있다. 호텔에서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방을 주지 않고 있다. 유럽도 안일하게 대처하더니 지금은 중국보다 확진자가 더 많아졌다. 이제는 유럽에 있는 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애써야 할 상황이다. 끝까지 힘써야 한다. 대한민국 백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라들도 자기 백성들을 구별한다.  하나님도 자기 백성을 구별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실 때 애굽의 바로왕이 순순히 보내주지 않자 애굽에 재앙을 내리신다. 모세가 지팡이로 하수를 치니 피로변한다. 지팡이를 잡은 손을 운하와 못위에 펴니 개구리들이 올라와 애굽땅을 덮는다. 그런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재앙인 피와 개구리 재앙은 애굽의 술객들도 따라한다. 그러나 세 번째 재앙은 사전 경고도 없었고, 애굽의 술객들도 따라하지 못한다. 지팡이로 땅의 티끌을 치니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생축에게 오른다. 그때서야 애굽의 술객들이 바로에게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출8:19> 고 고한다.  그런데 네 번째 재앙부터는 양상이 달라진다. 애굽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하셔서 애굽 땅에만 재앙을 내리신다. 출 8:20-23절을 보면 '내 백성'이라는 표현이 4번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다. '내 백성을 보내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애굽땅에 파리떼가 가득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땅은 구별하여 파리가 없게 할 것이다.' 내 백성을 특별하게 구별하겠다고 말씀하신다.구별하신 이유는 단순하다. '내 백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다. 사 4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너는 내것이라고 소유 삼아주셨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물가운데 지날때에 물이 침몰치 못하도록, 불가운데 지날때에 불이 사르지 못하도록 지켜주시고,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신다고 말씀하셨다. 다섯 번째 재앙인 가축들이 전염병으로 죽는 재앙에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다.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않았다.<출9:6절>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이 애굽의 모든 사람과 짐승과 밭에 있는 모든 채소 그리고 모든 나무를 꺾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다.<출9:25-26절> 아홉 번째 흑암 재앙이 애굽 온 땅을 덮어 사람들이 3일동안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다.<출10:22-23절> 마지막 열 번째 재앙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었다. 처음 난 짐승들까지 다 죽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개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출11:5-7절> 하나님께서 애굽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를 구별하셨다. 그래서 애굽땅에 재앙이 있을때 고센땅에는 없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구별해주시는 것이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구별해주시는 것이 축복이다.  구별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출애굽기 20장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율법을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상 사람과 구별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먹을 것과 먹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 주셨다. 취할것과 취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주셨다.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주셨다. 날도 구별시켜주셨다. 사람도 구별시켜주셨다. 장소도 구별시켜주셨다. 언어도 구별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것도 구별시켜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십일조이다. 아무리 바빠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주일성수와 기도생활이다. 아무리 힘든 문제가 있어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찬송과 감사이다. 이것이 구별된 삶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다.  성경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씀이 많이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진실하신 하나님 등 많이 있는데 가장 많이 쓰여지는 말씀은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성도'는 '거룩한 무리, 거룩한 백성'이란 뜻이다. 이 "거룩"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코데쉬", 헬라어로 "하기오쉬네"라고 하는데 "구별되다"란 뜻이 있다. 그러므로 구별되게 사는 것이 거룩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구별하신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별하신다. 예배드리는 자와 예배 드리지 않는 자, 순종하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 기도하는 자와 기도하지 않는자, 충성하는 자와 게으른 자, 양과 염소를 구별하신다.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신다. 천국에 갈 자와 지옥에 갈 자를 구별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은 특별히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건져주시고, 응답하시고, 축복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구별되게 살자. 그래서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많이 받으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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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30
  • 새벽예배 나가는 믿음과 사랑을 간구하며
      참빛순복음교회 김영태 목사   새벽예배 드리러 갈 때마다, 대로 앞에 환하게 불을 켜놓은 다른 교회를 지나가는데 언제부터인가 새벽에 불이 꺼져있다. 하루 이틀이야 사정이 있어서 못 드렸을 수도 있지만, 한 달이 넘어가는 것을 보니 코로나19 때문인 것 같다. 큰 교회가 아니라서 새벽예배 인원이 많지 않을 텐데 왜 안 드릴까? 부끄럽게도 개척 후 25년 가까이 새벽예배를 드리지만, 열 손가락 넘는 인원이 참석할 때는 부활절과 특별기도회 때뿐이고, 보통은 다섯 손가락 정도의 인원만 참석한다. 새벽예배 설교를 준비하는데 사용하는 시간과 에너지, 또 이를 위해서 활동을 스스로 제약하는 수고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나의 부족함과 내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뜻 때문에 노력한 것과 결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지만, 죄악 된 인간적 불평이 내 마음 한 곳을 흔든다. 이참에 나도 핑계 삼아 쉴까? 쉬라는 유혹에 지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예배를 포기하는 핑곗거리가 될 것 같고, 또 주님만 바라보고 예배드리는 어떤 분들의 걸림돌이 될 것 같아 두렵다. 그래도 명색이 주의 종인데 새벽예배의 불을 꺼뜨리는 가라지는 되지 말아야지, 최소한 새벽예배의 디딤돌은 돼야지. 나를 다독이며 나간다. 무엇보다도 어떤 이유이든 간에 예배 인원이 적다고 예배 안 드리면, 결과적으로 그동안 내가 예배자가 아니라 예배받는 자였다는 증거가 되므로, 유혹받고 싶은 마음을 회개하며 오늘도 하나님 앞에 나간다. 다니엘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니 이보다 훨씬 고상했겠지! 함께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혼자서 기도했던 다니엘, 다니엘의 지조 높은 믿음을 설교하지만 그 발꿈치도 따라갈 수 없는, 한 없이 부족한 나는 한숨 쉬며 회개하러 나간다.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주의 종의 길에 들어섰건만, 매일 습관을 따라 혼자 기도하셨던 예수님을 본받기에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다니엘이라도 따라잡을 수 있다면… 주님! 오늘도 주님을 예배할 수 있는 일용할 믿음과 사랑을 주옵소서. 김영태 목사(참빛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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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30
  • 하나님이 설계하신 교회 모습은 ‘공동체’
      포항중앙침례교회 성도들이 지난 1월 15일 경주 켄싱턴리조트에서 개최된 전교인 수련회에서 함께했다.  교회는 1년에 두 차례 전교인 수련회를 진행한다. 포항중앙침례교회 제공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너무나 필요한 곳이고 동시에 중요한 곳이다. 안타깝게도 갈수록 교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교회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다 보니 교회를 쉽게 생각하고 이 교회 저 교회를 옮기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설교를 잘하거나, 특별한 무엇을 가진 교회가 생기면 많은 사람이 그런 교회로 수평 이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수평 이동이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그런데 이제 수평 이동 정도는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이유는 아예 교회를 안 나가는 교인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가나안(안 나가)’ 교인들이 많은데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자를 망하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이미 우리 시대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불필요한 곳으로 생각하고 있고 심지어는 교회를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까지 있다. 과연 교회가 필요 없거나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그런 곳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 1:22) 에베소서 1장 20~2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후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으며 또 교회가 그분의 몸이 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구원 역사를 완성하신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는 말은 구원과 교회가 별개가 아니라 구원과 교회는 연결되는 것이며 한 덩어리라는 말이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교회의 일원이 돼야 한다. 이것이 정상이다. 이처럼 구원받은 사람에게 교회가 필요 없을 수 없기에 구원받은 후 교회가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주셨다. 신자에게는 교회가 있다. 교회는 영적인 가정과 같다. 갓 태어난 영적인 유아도 영적인 부모의 양육과 형님 오빠의 도움을 받아 건강하게 자라며 동시에 내면의 상처도 치유 받고 모난 인격도 다듬어간다. 교회는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배려와 축복이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교회가 이런 곳이기에 교회에 속해 지체로 살아가는 사람과 교회 없이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만약 교회가 없다면 이 악한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그런데 교회에 속한다는 말의 의미는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구원을 받은 모든 신자는 몸 안에서 서로 연결돼야 한다. 몇 사람이 모이든 교회는 서로 연결이 되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태생적으로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공동체성을 추구하는 교회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는 당연히 한 몸, 즉 공동체여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설계하신 교회의 모습이다.“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교회는 마디를 통해 모든 사람이 연결되고 결합돼야 한다. 그래서 하나가 되고 진정한 의미에서 한 몸이 되어야 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나와 한 몸을 이루는 지체이기에 나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이다. 그가 존재해야 내가 존재할 수 있고 그가 건강해야 나도 건강할 수 있다. 그래서 신자는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책임감을 가지며 또 연결돼야 한다.그런데 연결이 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인격적으로 ‘공사 중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사 중인 사람과 지내는 것은 불편하고 힘이 든다. 그러나 불편해도 견뎌야 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 되어 사는 법을 익혀가는 곳이 교회다. 교회 안에서는 용납 용서 오래참음 겸손 온유라는 단어가 늘 현실적인 단어가 된다.이 과정을 견디면서 연결해야 한다. 이렇게 연결이 되면 각 지체가 분량대로 역사하여 몸이 자라게 되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두 번째 기초가 된다.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는 옆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만 직통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교회가 조금만 어려워져도 떠날 생각부터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이 많으면 교회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한국교회는 교회의 본질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빨리 가려 하지 말고 모든 신자에게 교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닫게 해야 한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면 잃어버린 교회의 건강성을 되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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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7
  • 코로나 전쟁에서 주목한 두 권의 책
    이효상 원장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 코로나19의 기세가 생각보다 세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구와 수도권 확산에 있어 이단과 사이비가 바이러스 집단 감염과 확산의 온상이 되었지만, 이로인해 개신교 예배로 전파된 예는 극소수로 미미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라는 이유만으로 그 비난을 다 떠 안은 형국이 되었다. 바이러스 확산과 혐오로 번진 불길이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기한 전쟁,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사투는 인류와 인연이 깊다. 이런 바이러스 전염병의 팬데믹(pandemic) 현상은 앞으로도 인류가 맞서야 할 가장 큰 장벽으로 인식된다. 전염병을 '전쟁'으로 비유하며, 현재만이 아닌 앞으로도 꾸준히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전 세계가 전투를 벌이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19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코로나19를 통해 보는 불신과 차별, 배제와 혐오의 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코로나가 한국교회에 주는 과제는 무엇인가? 코로나 앞에서 교회가 이단이나 사이비처럼 처신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공교회성을 지닌 건강한 교회가 절실히 요구된다.   세계적 현상인 바이러스천지, 코로나전쟁 가운데서 시대적 통찰력을 가지고 예견한《바이러스폭풍의 시대(네이션울프,2019,김영사》, 《슈퍼버그(맷 매카시,2020,흐름출판사)》두권의 책을 주목하게 되었다.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는 생물학자이자 세계적인 바이러스 전문가인 네이선 울프가 밝힌 살인 바이러스의 정체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숙주와 바이러스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라서 이야기에 설득력이 있다. 메르스 사스 에볼라 치명적 신종 변종 바이러스들의 시대를 맞아 우리는 무엇을 알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치명적 신종 변종 바이러스가 지배할 인류의 미래와 생존 전략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 독창적 시각으로 예견하고 전염 바이러스에 관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바이러스의 행로를 바꿀 강력한 방안을 논하고 있다.   저자 울프에 따르면 신·변종 바이러스는 인류가 그간 수백만년 전부터 사냥, 요리[불의 발견] 그리고 길들이기[가축, 작물화] 등을 통해 동식물에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범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은 제레드 다이아몬드가《총,균,쇠》에서 가축과 작물화 등 길들이기가 성행하여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여러 질병들이 동물에서 인간에게 감염되고 진화한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 울프는 침팬지와 보노보 등 영장류에 대한 풍부한 관찰 기록과 실험 결과를 토대로 다이아몬드가 놓치거나 생략한 틈새를 메워 준다. 1960년대 AIDS의 대유행이 시작된 맥락도, 그 무렵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한 항공산업과 맞물려 있음을, 이와 함께 도로, 철도 등 도시화와 문명화가 지역적으로 국한되어 있던 바이러스를 전세계로 전파시켰다는 것. 일부 학자들은 1960년대 일회용 주사기가 널리 보급된 사실에도 주목한다. 《슈퍼버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 맷 매카시 의사가 앨러간 박사의 연구팀에 요청하여 진행한 항생제 임상시험의 기록과 과정을 담고 있는데, '슈퍼버그'란 슈퍼 바이러스(super virus)를 줄임말로, ‘슈퍼버그’란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변이된 바이러스를 뜻한다.   저자는 슈퍼버그의 치명적인 위험을 알리는 동시에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과 이를 행하는 의료진들의 고군분투를 보여주며,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변이된 박테리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슈퍼버그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지만 항생제는 197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한다. 한마디로 개발이 늦어지는 이유는 바로 돈! 새로운 항암제는 높은 가격을 치를 의향이 있지만 비싼 항생제는 대중이 거부감을 갖는다는 논리로 대응한다. 10년 이상 걸려 항생제를 개발해도 금방 슈퍼버그 내성에 따라잡혀 투자비 회수에 난항을 겪는다는 것. 따라서 항생제를 공공재로 인식하고 정부의 지원을 전제로 하다는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항암제는 내성이 생겨도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만 항생제는 내성이 생기면 사회로 전파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이렇게 항생제 내성이 생긴 슈퍼버그는 오늘날 적응력이 더 강해진 악성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코로나 백신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밤잠을 설쳐가며 백신 및 항생제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그렇게 인류는 병원균과 전쟁을 치루고 있다. 코로나19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항생제 개발에 쏟지만 시간이 지나면 개발한 항생제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WHO는 2018년 2월, 인류를 위협할 질병 중 하나로 '질병X'로 선정하며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변종(X)의 위협을 경고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2년 메르스, 1976년 처음 생겨 2014년 강타한 에볼라 바이러스 등 끊임없는 바이러스의 변이는 인류를 위협하며 인류와 공생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언제 또 다른 슈퍼버그가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새로운 바이러스천지에서 물고 물리는 싸움에서 인류가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의학계에 놓인 화두이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코로나19는 징조(sign)이다. 어찌보면, 박테리아, 바이러스, 세균 등은 자연의 질서를 무분별하게 파괴한 인류에게 주는 경고이다. 모두가 두려움에 싸여 있을 때 그래도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시대는 희망이 있다. 과연 크리스천 스스로 주님이 코로나의 ‘백신’이라고 믿고 있는가. 바이러스천지,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책을 읽으며, 울프의 경고에 귀 기울이게 된다. “과거에는 서로 만난 적조차 없던 병원균들이 어디에서든 만나 새로운 모자이크 병원체를 형성하기도 하며, 부모 세대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던 방식으로 확산될지도 모른다. 요컨대 우리는 앞으로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드는 새로운 유행병들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닥칠 유행병들을 더 효과적으로 예측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유행병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할지도 모른다.” 이효상 원장(칼럼니스트/근대문화진흥원/한국교회건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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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7
  •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시각각 어려움이 더해지고 있다. 확진자와 사망자의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행정명령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거리는 날로 황량해지고 자영업자들은 계속 문을 닫고 있다.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한지는 꽤 여러 날이 됐다. 500명 이상 모일 수 없다고 한 지 며칠이 안 돼 50명 이상 모일 수 없다고 했다. 필자가 사는 미국 뉴욕의 상황이다. 뉴욕에 이웃한 뉴저지는 현재 야간 통행금지 중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니, 하나님만 아신다.필자가 섬기는 퀸즈장로교회는 50명으로 숫자를 제한해 사순절 새벽예배를 계속 드리고 있다. 매일 예배를 드리며 미국 대통령과 정부, 한국 대통령과 정부, 각 나라의 의료진과 환자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이럴 때 교회가 사회적 거리 두기에 앞장서며 집에 머무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왜 안 듣겠는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책임과 사회의 안전을 아우르는 의견임에 동의한다. 이런 위기의 때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 있고, 의료진의 생명을 건 역할도 있다. 그리고 교회의 역할도 분명하다.하늘의 문을 두드리며 자복하고 긍휼을 구하는 기도는 교회의 독특한 역할이다.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겠지만, 정부의 방침을 준수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지키심을 구하며 모여서 기도하는 길을 간다.아무튼, 숫자 제한 때문에 예배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다. 성도들은 너무나 예배를 그리워하고 있다. 눈에는 주렁주렁 눈물로, 목에는 타는 목마름으로 예배를 갈망한다. 그렇다. 예배는 갈망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예배를 별 갈망 없이 드린 적이 많았는데, 갈망이 없는 자는 예배자로 적합지 않음을 이번 기회에 온몸으로 깨닫게 됐다.예배자라면 하나님이 초청하시는 영광스러운 예배에 갈망으로 응답하며 나가야 한다. 영혼의 갈망은 물론 육체의 앙모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1~2)예배는 갈망이다. 특별히 무엇을 갈망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임재(presence)를 갈망해야 한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편재(遍在)하신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임재하시지 않으신다. 예배드리면서 나를 갈망할 수 있다. 내가 만족할 예배, 내 필요를 충족하게 해줄 예배, 나를 위로할 예배를 갈망한다. 일견 그럴듯하지만, 예배의 갈망은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임재하신다. 하나님의 임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간이 “쉭쉭” 소리를 내거나 눈물을 쥐어짜면서 조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만들려고 조작하는 것과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전심으로 갈망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임재는 땅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말씀 가운데, 찬양 가운데, 기도 가운데, 성례 가운데, 그리고 모든 예배 순서 가운데 하나님은 다양하게, 강력하게, 따듯하게 임재하신다. 그 임재는 나를 압도해 반드시 나의 생각을 충만케 하고 나의 감정을 뜨겁게 하며 나의 의지를 새롭게 한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나의 전(全) 존재가 ‘업그레이드’ 되므로 명백히 알 수 있다.복음이 확실하게 이해되고 말씀에 찔림이 크고 회개가 쏟아지고 감사가 넘치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삶이 전개된다. 하나님의 임재는 특정 교회와 어떤 시대의 큰 부흥을 통해서도 확실히 알 수 있고 볼 수 있다. 예배는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갈망하는 것이다. <미국 퀸즈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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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4
  • 인생은 긴 여행과도 같습니다
    이선규 목사   생명이 탄생하여 죽음으로 끝이 나는 약 7~80년의 유한한 여행,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나의 영원한 집이 아닙니다. 얼마동안 머무르다가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한때의 여인숙입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육체의 장막은 나의 영원한 몸이 아닙니다. 얼마 후에는 벗어 놓아야 할 일시의 육의 옷이요. 죽으면 썩어버리는 물질의 그릇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지상의 나그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죽음 앞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죽음에서 도피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순례의 길에 어떤 이는 고독한 여행을 하고, 어떤 이는 행복한 여행을 하고,어떤 이는 괴로운 여행을 하는가하면 어떤 이는 즐거운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산다는 것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가는 길이 있습니다. 짐승은 사람의 길을 갈 수 없고 사람은 짐승의 길을 가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인간의 양심과 체면과 도리를 저버리고 짐승처럼 추잡하고 잔악한 행동을 할 때 그는 짐승의 차원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춘하추동의 네 계절의 순서는 절대로 착오가 없고 거짓이 없습니다. 봄 다음에 갑자기 겨울이 오고 겨울 다음에 갑자기 여름이 오는 일은 없습니다. 우주의 대 법칙, 대자연의 질서에는 추호도 거짓이 없고 부조리가 없습니다. 옷이 나의 몸에 맞듯이 인(仁)이 나의 몸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인(仁)은 덕(德) 중에 덕(德)이요, 남을 사랑하는 것이며, 참되고 거짓이 없는 것이요, 진실무망 한 것이며, 사리사욕을 버리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며, 꾸밈이 없이 소박하며 굳센 것입니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설자리를 알고,나의 나아갈 길을 알고,나의 분수를 알며,나의 실력을 알고,나의 형편과 처지를 알고,나의 책임과 본분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선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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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4

실시간 칼럼 기사

  • 내 백성을 구별하리라
    ▲이정기 목사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될 때, 제일 먼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세기를 띄워 대피시킨 나라가 미국이다. 그리고 연이어 프랑스, 호주, 영국, 일본, 한국이 전세기를 띄워 대피시켰다. 자기 나라 백성이기에 보호한 것이다. 그리고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나라들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켰다. 북한, 대만, 베트남, 필리핀, 인도, 러시아, 몽골, 말레이시아, 싱가폴, 미국, 홍콩, 호주, 이스라엘, 뉴질랜드, 많은 나라들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켰다.일찍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킨 대만이나 러시아 베트남 같은 나라들은 확산이 더딘 반면에,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후베이성에 한해서 금지한 나라는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래서 이제는 세계 180개 국가가 한국발 여행객의 입국을 금지시키는 상황이 되다. 그래서 인천 공항이 텅텅 비어있다. 박항서 감독으로 인해서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베트남 마저도 한국사람들을 피하고 있다. 호텔에서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방을 주지 않고 있다. 유럽도 안일하게 대처하더니 지금은 중국보다 확진자가 더 많아졌다. 이제는 유럽에 있는 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애써야 할 상황이다. 끝까지 힘써야 한다. 대한민국 백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라들도 자기 백성들을 구별한다.  하나님도 자기 백성을 구별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실 때 애굽의 바로왕이 순순히 보내주지 않자 애굽에 재앙을 내리신다. 모세가 지팡이로 하수를 치니 피로변한다. 지팡이를 잡은 손을 운하와 못위에 펴니 개구리들이 올라와 애굽땅을 덮는다. 그런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재앙인 피와 개구리 재앙은 애굽의 술객들도 따라한다. 그러나 세 번째 재앙은 사전 경고도 없었고, 애굽의 술객들도 따라하지 못한다. 지팡이로 땅의 티끌을 치니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생축에게 오른다. 그때서야 애굽의 술객들이 바로에게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출8:19> 고 고한다.  그런데 네 번째 재앙부터는 양상이 달라진다. 애굽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하셔서 애굽 땅에만 재앙을 내리신다. 출 8:20-23절을 보면 '내 백성'이라는 표현이 4번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다. '내 백성을 보내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애굽땅에 파리떼가 가득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땅은 구별하여 파리가 없게 할 것이다.' 내 백성을 특별하게 구별하겠다고 말씀하신다.구별하신 이유는 단순하다. '내 백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다. 사 4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너는 내것이라고 소유 삼아주셨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물가운데 지날때에 물이 침몰치 못하도록, 불가운데 지날때에 불이 사르지 못하도록 지켜주시고,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신다고 말씀하셨다. 다섯 번째 재앙인 가축들이 전염병으로 죽는 재앙에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다.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않았다.<출9:6절>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이 애굽의 모든 사람과 짐승과 밭에 있는 모든 채소 그리고 모든 나무를 꺾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다.<출9:25-26절> 아홉 번째 흑암 재앙이 애굽 온 땅을 덮어 사람들이 3일동안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다.<출10:22-23절> 마지막 열 번째 재앙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었다. 처음 난 짐승들까지 다 죽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개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출11:5-7절> 하나님께서 애굽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를 구별하셨다. 그래서 애굽땅에 재앙이 있을때 고센땅에는 없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구별해주시는 것이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구별해주시는 것이 축복이다.  구별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출애굽기 20장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율법을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상 사람과 구별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먹을 것과 먹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 주셨다. 취할것과 취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주셨다.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구별시켜주셨다. 날도 구별시켜주셨다. 사람도 구별시켜주셨다. 장소도 구별시켜주셨다. 언어도 구별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것도 구별시켜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십일조이다. 아무리 바빠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주일성수와 기도생활이다. 아무리 힘든 문제가 있어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찬송과 감사이다. 이것이 구별된 삶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다.  성경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씀이 많이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진실하신 하나님 등 많이 있는데 가장 많이 쓰여지는 말씀은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성도'는 '거룩한 무리, 거룩한 백성'이란 뜻이다. 이 "거룩"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코데쉬", 헬라어로 "하기오쉬네"라고 하는데 "구별되다"란 뜻이 있다. 그러므로 구별되게 사는 것이 거룩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구별하신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별하신다. 예배드리는 자와 예배 드리지 않는 자, 순종하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 기도하는 자와 기도하지 않는자, 충성하는 자와 게으른 자, 양과 염소를 구별하신다.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신다. 천국에 갈 자와 지옥에 갈 자를 구별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은 특별히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건져주시고, 응답하시고, 축복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구별되게 살자. 그래서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많이 받으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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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30
  • 새벽예배 나가는 믿음과 사랑을 간구하며
      참빛순복음교회 김영태 목사   새벽예배 드리러 갈 때마다, 대로 앞에 환하게 불을 켜놓은 다른 교회를 지나가는데 언제부터인가 새벽에 불이 꺼져있다. 하루 이틀이야 사정이 있어서 못 드렸을 수도 있지만, 한 달이 넘어가는 것을 보니 코로나19 때문인 것 같다. 큰 교회가 아니라서 새벽예배 인원이 많지 않을 텐데 왜 안 드릴까? 부끄럽게도 개척 후 25년 가까이 새벽예배를 드리지만, 열 손가락 넘는 인원이 참석할 때는 부활절과 특별기도회 때뿐이고, 보통은 다섯 손가락 정도의 인원만 참석한다. 새벽예배 설교를 준비하는데 사용하는 시간과 에너지, 또 이를 위해서 활동을 스스로 제약하는 수고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나의 부족함과 내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뜻 때문에 노력한 것과 결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지만, 죄악 된 인간적 불평이 내 마음 한 곳을 흔든다. 이참에 나도 핑계 삼아 쉴까? 쉬라는 유혹에 지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예배를 포기하는 핑곗거리가 될 것 같고, 또 주님만 바라보고 예배드리는 어떤 분들의 걸림돌이 될 것 같아 두렵다. 그래도 명색이 주의 종인데 새벽예배의 불을 꺼뜨리는 가라지는 되지 말아야지, 최소한 새벽예배의 디딤돌은 돼야지. 나를 다독이며 나간다. 무엇보다도 어떤 이유이든 간에 예배 인원이 적다고 예배 안 드리면, 결과적으로 그동안 내가 예배자가 아니라 예배받는 자였다는 증거가 되므로, 유혹받고 싶은 마음을 회개하며 오늘도 하나님 앞에 나간다. 다니엘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니 이보다 훨씬 고상했겠지! 함께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혼자서 기도했던 다니엘, 다니엘의 지조 높은 믿음을 설교하지만 그 발꿈치도 따라갈 수 없는, 한 없이 부족한 나는 한숨 쉬며 회개하러 나간다.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주의 종의 길에 들어섰건만, 매일 습관을 따라 혼자 기도하셨던 예수님을 본받기에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다니엘이라도 따라잡을 수 있다면… 주님! 오늘도 주님을 예배할 수 있는 일용할 믿음과 사랑을 주옵소서. 김영태 목사(참빛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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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30
  • 하나님이 설계하신 교회 모습은 ‘공동체’
      포항중앙침례교회 성도들이 지난 1월 15일 경주 켄싱턴리조트에서 개최된 전교인 수련회에서 함께했다.  교회는 1년에 두 차례 전교인 수련회를 진행한다. 포항중앙침례교회 제공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너무나 필요한 곳이고 동시에 중요한 곳이다. 안타깝게도 갈수록 교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교회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다 보니 교회를 쉽게 생각하고 이 교회 저 교회를 옮기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설교를 잘하거나, 특별한 무엇을 가진 교회가 생기면 많은 사람이 그런 교회로 수평 이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수평 이동이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그런데 이제 수평 이동 정도는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이유는 아예 교회를 안 나가는 교인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가나안(안 나가)’ 교인들이 많은데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신자를 망하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이미 우리 시대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불필요한 곳으로 생각하고 있고 심지어는 교회를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까지 있다. 과연 교회가 필요 없거나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그런 곳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 1:22) 에베소서 1장 20~2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후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으며 또 교회가 그분의 몸이 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구원 역사를 완성하신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는 말은 구원과 교회가 별개가 아니라 구원과 교회는 연결되는 것이며 한 덩어리라는 말이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교회의 일원이 돼야 한다. 이것이 정상이다. 이처럼 구원받은 사람에게 교회가 필요 없을 수 없기에 구원받은 후 교회가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주셨다. 신자에게는 교회가 있다. 교회는 영적인 가정과 같다. 갓 태어난 영적인 유아도 영적인 부모의 양육과 형님 오빠의 도움을 받아 건강하게 자라며 동시에 내면의 상처도 치유 받고 모난 인격도 다듬어간다. 교회는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배려와 축복이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교회가 이런 곳이기에 교회에 속해 지체로 살아가는 사람과 교회 없이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만약 교회가 없다면 이 악한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그런데 교회에 속한다는 말의 의미는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구원을 받은 모든 신자는 몸 안에서 서로 연결돼야 한다. 몇 사람이 모이든 교회는 서로 연결이 되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태생적으로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공동체성을 추구하는 교회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는 당연히 한 몸, 즉 공동체여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설계하신 교회의 모습이다.“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교회는 마디를 통해 모든 사람이 연결되고 결합돼야 한다. 그래서 하나가 되고 진정한 의미에서 한 몸이 되어야 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나와 한 몸을 이루는 지체이기에 나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이다. 그가 존재해야 내가 존재할 수 있고 그가 건강해야 나도 건강할 수 있다. 그래서 신자는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책임감을 가지며 또 연결돼야 한다.그런데 연결이 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인격적으로 ‘공사 중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사 중인 사람과 지내는 것은 불편하고 힘이 든다. 그러나 불편해도 견뎌야 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 되어 사는 법을 익혀가는 곳이 교회다. 교회 안에서는 용납 용서 오래참음 겸손 온유라는 단어가 늘 현실적인 단어가 된다.이 과정을 견디면서 연결해야 한다. 이렇게 연결이 되면 각 지체가 분량대로 역사하여 몸이 자라게 되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두 번째 기초가 된다.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는 옆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만 직통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교회가 조금만 어려워져도 떠날 생각부터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이 많으면 교회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한국교회는 교회의 본질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빨리 가려 하지 말고 모든 신자에게 교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닫게 해야 한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면 잃어버린 교회의 건강성을 되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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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7
  • 코로나 전쟁에서 주목한 두 권의 책
    이효상 원장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 코로나19의 기세가 생각보다 세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구와 수도권 확산에 있어 이단과 사이비가 바이러스 집단 감염과 확산의 온상이 되었지만, 이로인해 개신교 예배로 전파된 예는 극소수로 미미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라는 이유만으로 그 비난을 다 떠 안은 형국이 되었다. 바이러스 확산과 혐오로 번진 불길이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기한 전쟁,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사투는 인류와 인연이 깊다. 이런 바이러스 전염병의 팬데믹(pandemic) 현상은 앞으로도 인류가 맞서야 할 가장 큰 장벽으로 인식된다. 전염병을 '전쟁'으로 비유하며, 현재만이 아닌 앞으로도 꾸준히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전 세계가 전투를 벌이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19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코로나19를 통해 보는 불신과 차별, 배제와 혐오의 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코로나가 한국교회에 주는 과제는 무엇인가? 코로나 앞에서 교회가 이단이나 사이비처럼 처신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공교회성을 지닌 건강한 교회가 절실히 요구된다.   세계적 현상인 바이러스천지, 코로나전쟁 가운데서 시대적 통찰력을 가지고 예견한《바이러스폭풍의 시대(네이션울프,2019,김영사》, 《슈퍼버그(맷 매카시,2020,흐름출판사)》두권의 책을 주목하게 되었다.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는 생물학자이자 세계적인 바이러스 전문가인 네이선 울프가 밝힌 살인 바이러스의 정체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숙주와 바이러스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라서 이야기에 설득력이 있다. 메르스 사스 에볼라 치명적 신종 변종 바이러스들의 시대를 맞아 우리는 무엇을 알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치명적 신종 변종 바이러스가 지배할 인류의 미래와 생존 전략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 독창적 시각으로 예견하고 전염 바이러스에 관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바이러스의 행로를 바꿀 강력한 방안을 논하고 있다.   저자 울프에 따르면 신·변종 바이러스는 인류가 그간 수백만년 전부터 사냥, 요리[불의 발견] 그리고 길들이기[가축, 작물화] 등을 통해 동식물에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범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은 제레드 다이아몬드가《총,균,쇠》에서 가축과 작물화 등 길들이기가 성행하여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여러 질병들이 동물에서 인간에게 감염되고 진화한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 울프는 침팬지와 보노보 등 영장류에 대한 풍부한 관찰 기록과 실험 결과를 토대로 다이아몬드가 놓치거나 생략한 틈새를 메워 준다. 1960년대 AIDS의 대유행이 시작된 맥락도, 그 무렵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한 항공산업과 맞물려 있음을, 이와 함께 도로, 철도 등 도시화와 문명화가 지역적으로 국한되어 있던 바이러스를 전세계로 전파시켰다는 것. 일부 학자들은 1960년대 일회용 주사기가 널리 보급된 사실에도 주목한다. 《슈퍼버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 맷 매카시 의사가 앨러간 박사의 연구팀에 요청하여 진행한 항생제 임상시험의 기록과 과정을 담고 있는데, '슈퍼버그'란 슈퍼 바이러스(super virus)를 줄임말로, ‘슈퍼버그’란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변이된 바이러스를 뜻한다.   저자는 슈퍼버그의 치명적인 위험을 알리는 동시에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과 이를 행하는 의료진들의 고군분투를 보여주며,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변이된 박테리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슈퍼버그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지만 항생제는 197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한다. 한마디로 개발이 늦어지는 이유는 바로 돈! 새로운 항암제는 높은 가격을 치를 의향이 있지만 비싼 항생제는 대중이 거부감을 갖는다는 논리로 대응한다. 10년 이상 걸려 항생제를 개발해도 금방 슈퍼버그 내성에 따라잡혀 투자비 회수에 난항을 겪는다는 것. 따라서 항생제를 공공재로 인식하고 정부의 지원을 전제로 하다는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항암제는 내성이 생겨도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만 항생제는 내성이 생기면 사회로 전파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이렇게 항생제 내성이 생긴 슈퍼버그는 오늘날 적응력이 더 강해진 악성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코로나 백신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밤잠을 설쳐가며 백신 및 항생제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그렇게 인류는 병원균과 전쟁을 치루고 있다. 코로나19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항생제 개발에 쏟지만 시간이 지나면 개발한 항생제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WHO는 2018년 2월, 인류를 위협할 질병 중 하나로 '질병X'로 선정하며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변종(X)의 위협을 경고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2년 메르스, 1976년 처음 생겨 2014년 강타한 에볼라 바이러스 등 끊임없는 바이러스의 변이는 인류를 위협하며 인류와 공생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언제 또 다른 슈퍼버그가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새로운 바이러스천지에서 물고 물리는 싸움에서 인류가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의학계에 놓인 화두이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코로나19는 징조(sign)이다. 어찌보면, 박테리아, 바이러스, 세균 등은 자연의 질서를 무분별하게 파괴한 인류에게 주는 경고이다. 모두가 두려움에 싸여 있을 때 그래도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시대는 희망이 있다. 과연 크리스천 스스로 주님이 코로나의 ‘백신’이라고 믿고 있는가. 바이러스천지,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책을 읽으며, 울프의 경고에 귀 기울이게 된다. “과거에는 서로 만난 적조차 없던 병원균들이 어디에서든 만나 새로운 모자이크 병원체를 형성하기도 하며, 부모 세대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던 방식으로 확산될지도 모른다. 요컨대 우리는 앞으로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드는 새로운 유행병들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닥칠 유행병들을 더 효과적으로 예측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유행병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할지도 모른다.” 이효상 원장(칼럼니스트/근대문화진흥원/한국교회건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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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7
  •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시각각 어려움이 더해지고 있다. 확진자와 사망자의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행정명령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거리는 날로 황량해지고 자영업자들은 계속 문을 닫고 있다.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한지는 꽤 여러 날이 됐다. 500명 이상 모일 수 없다고 한 지 며칠이 안 돼 50명 이상 모일 수 없다고 했다. 필자가 사는 미국 뉴욕의 상황이다. 뉴욕에 이웃한 뉴저지는 현재 야간 통행금지 중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니, 하나님만 아신다.필자가 섬기는 퀸즈장로교회는 50명으로 숫자를 제한해 사순절 새벽예배를 계속 드리고 있다. 매일 예배를 드리며 미국 대통령과 정부, 한국 대통령과 정부, 각 나라의 의료진과 환자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이럴 때 교회가 사회적 거리 두기에 앞장서며 집에 머무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왜 안 듣겠는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책임과 사회의 안전을 아우르는 의견임에 동의한다. 이런 위기의 때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 있고, 의료진의 생명을 건 역할도 있다. 그리고 교회의 역할도 분명하다.하늘의 문을 두드리며 자복하고 긍휼을 구하는 기도는 교회의 독특한 역할이다.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겠지만, 정부의 방침을 준수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지키심을 구하며 모여서 기도하는 길을 간다.아무튼, 숫자 제한 때문에 예배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다. 성도들은 너무나 예배를 그리워하고 있다. 눈에는 주렁주렁 눈물로, 목에는 타는 목마름으로 예배를 갈망한다. 그렇다. 예배는 갈망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예배를 별 갈망 없이 드린 적이 많았는데, 갈망이 없는 자는 예배자로 적합지 않음을 이번 기회에 온몸으로 깨닫게 됐다.예배자라면 하나님이 초청하시는 영광스러운 예배에 갈망으로 응답하며 나가야 한다. 영혼의 갈망은 물론 육체의 앙모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1~2)예배는 갈망이다. 특별히 무엇을 갈망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임재(presence)를 갈망해야 한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편재(遍在)하신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임재하시지 않으신다. 예배드리면서 나를 갈망할 수 있다. 내가 만족할 예배, 내 필요를 충족하게 해줄 예배, 나를 위로할 예배를 갈망한다. 일견 그럴듯하지만, 예배의 갈망은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임재하신다. 하나님의 임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간이 “쉭쉭” 소리를 내거나 눈물을 쥐어짜면서 조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만들려고 조작하는 것과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전심으로 갈망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임재는 땅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말씀 가운데, 찬양 가운데, 기도 가운데, 성례 가운데, 그리고 모든 예배 순서 가운데 하나님은 다양하게, 강력하게, 따듯하게 임재하신다. 그 임재는 나를 압도해 반드시 나의 생각을 충만케 하고 나의 감정을 뜨겁게 하며 나의 의지를 새롭게 한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나의 전(全) 존재가 ‘업그레이드’ 되므로 명백히 알 수 있다.복음이 확실하게 이해되고 말씀에 찔림이 크고 회개가 쏟아지고 감사가 넘치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삶이 전개된다. 하나님의 임재는 특정 교회와 어떤 시대의 큰 부흥을 통해서도 확실히 알 수 있고 볼 수 있다. 예배는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갈망하는 것이다. <미국 퀸즈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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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4
  • 인생은 긴 여행과도 같습니다
    이선규 목사   생명이 탄생하여 죽음으로 끝이 나는 약 7~80년의 유한한 여행,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나의 영원한 집이 아닙니다. 얼마동안 머무르다가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한때의 여인숙입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육체의 장막은 나의 영원한 몸이 아닙니다. 얼마 후에는 벗어 놓아야 할 일시의 육의 옷이요. 죽으면 썩어버리는 물질의 그릇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지상의 나그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죽음 앞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죽음에서 도피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순례의 길에 어떤 이는 고독한 여행을 하고, 어떤 이는 행복한 여행을 하고,어떤 이는 괴로운 여행을 하는가하면 어떤 이는 즐거운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산다는 것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가는 길이 있습니다. 짐승은 사람의 길을 갈 수 없고 사람은 짐승의 길을 가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인간의 양심과 체면과 도리를 저버리고 짐승처럼 추잡하고 잔악한 행동을 할 때 그는 짐승의 차원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춘하추동의 네 계절의 순서는 절대로 착오가 없고 거짓이 없습니다. 봄 다음에 갑자기 겨울이 오고 겨울 다음에 갑자기 여름이 오는 일은 없습니다. 우주의 대 법칙, 대자연의 질서에는 추호도 거짓이 없고 부조리가 없습니다. 옷이 나의 몸에 맞듯이 인(仁)이 나의 몸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인(仁)은 덕(德) 중에 덕(德)이요, 남을 사랑하는 것이며, 참되고 거짓이 없는 것이요, 진실무망 한 것이며, 사리사욕을 버리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며, 꾸밈이 없이 소박하며 굳센 것입니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설자리를 알고,나의 나아갈 길을 알고,나의 분수를 알며,나의 실력을 알고,나의 형편과 처지를 알고,나의 책임과 본분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선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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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4
  • 정상으로의 초대-포르노는 비정상이야!
      문지호 의사(성과학연구협회)   음란물이 범람하는 시대다. 도색잡지를 하나 구하기가 낯 뜨거운 시절이 채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스마트 폰을 통해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심지어 무료로 얻을 수 있다-물론 유료 사이트로 가는 미끼이다-. 음란물(포르노그래피)이란 오로지 성적 흥분만을 위한 주제를 묘사한 것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매춘부(porne)의 삶을 묘사(graphos)한 것이다. 포르노 제작자들은 스크린 속 매춘부를 통해 거짓 만족을 제공한다. 모든 음란물들의 공통된 목표는 오직 돈이다. 이들 성 산업의 규모는 참으로 방대하다. 뉴욕타임즈의 리뷰 편집자인 파멜라 폴은 2010년에 헐리우드에서 연간 400편의 영화를 찍을 동안 포르노영화는 11,000편이 제작된다고 하였다. 이것을 보느라 연간 4조원이 훌쩍 넘는 돈이 소모되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의 1/4이 매월 비정기적으로 음란 사이트를 방문하고, 18세에서 34세 남자의 66%는 정기적으로 방문한다고 보고하였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18년 머니투데이 설문조사에서 68%가 정기적으로 음란물을 즐긴다고 하였다. 청소년들의 상황 또한 주목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발표한 지난 1년간의 ‘청소년 유해매체 이용 경험률’을 보면 남자 초등학생이 19.6%, 고등학생이 53.3%가 음란물을 경험했다고 답하였다.   포르노 예찬론자들은 긍정적 영향을 말하기도 한다. 성범죄가 감소된다거나, 자신의 성에 대해 잘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들이다. 얼토당토 않는 말이다. 낯선 이들 앞에서 알몸으로 촬영 당하는 배우들 자체가 성범죄의 피해자일 수 있다. 또한 성을 이해하기는커녕 잘못된 성행위 영상을 보고 혼란에 빠질 위험이 매우 높다. 포르노는 인격을 파괴하는 악이다. 더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기 위해 인신매매와 성 착취를 한다. 한 때 순진무구한 아가였던 소중한 몸을 발가벗겨 탐욕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포르노 사용자는 배우들을 인격이 없는 살덩어리로 여기는 것을 그쳐야한다. 배우들뿐 아니라 사용자도 피해자다. 포르노를 보며 스스로를 인격은 없고 동물적 시각에 만족하는 존재로 격하시키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더욱 심각하다. 2013년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의 보고에 따르면 아이들은 음란물을 본 후, 변태적인 장면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16.5%). 이성친구가 성적 대상으로 보이고(7.9%), 성추행이나 성폭행 충동을 느꼈다고도 답했다(5%). 성인물을 본 후 더 자극적인 성인물에 집착하게 되거나(14%) 안 보면 허전함을 느끼는(16.1%) 중독의 증상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교육부는 음란물이 성에 대해 잘못된 가치관을 갖게 하여 정상적인 이성교제를 방해한다고 하였다. 음란물은 실제 파트너와의 성관계에도 흥미를 잃게 하여 결혼 생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하였다. 무엇보다 경계할 것은 포르노의 중독이다. 중독의 두 가지 기준은 내성(tolerance)과 금단증상(withdrawal)이다. 하면 할수록 더 많이 하고 싶고, 못할 경우 초조와 불안이 동반되며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포르노는 약물과 관계없음에도 불구하고 뇌에서 약물 중독과 같은 생화학적 반응이 일어난다. 포르노를 보는 동안에는, 수고를 안 하고도 즉각적으로 쾌감을 느끼는 뇌가 활성화 된다. 그렇게 되면 실제로 수고한 후에야 만족감을 느끼는 정상적인 자기보상 시스템이 무너진다. 이런 비정상적 쾌락 자극이 지속되면 분별의 영역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줄어든다. 결국 판단력이 떨어져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리는 포르노 보기를 그쳐야 한다. 첫 번째는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성행위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그리고 거짓 만족에 탐닉하는 뇌의 반응이 비정상적이다. 두 번째는 범죄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르노를 보는 것은 성을 착취하는 범죄자들에게 끊임없이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존귀한 인격을 동물적 존재로 폄하시키는 데에 동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기뻐하며 만족하셨다. 그리고 인간에게 하나님과 함께할 때 그 만족을 동일하게 누리게 하셨다. 비록 그들이 선악과를 먹어 죄인이 되었을 때에도, 몸이 수고한 대로 보상을 받는 기쁨을 누리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성령님을 보내셔서 내 안에 기쁨이 샘솟게 하셨다.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영원한 기쁨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끝없이 기쁨과 만족을 주시는 분이다. 우리의 만족은 비정상적인 것을 보는 것에서 오지 않는다. 오직 예수님을 아는 것으로부터 온다. 용기를 내어 포르노를 버리고 예수님의 기쁨의 초대에 응하기를 바란다. 죄의 자리를 떠나 예수님의 진짜 행복을 누리길 바란다. 문지호(한국성과학연구협회 팀장, 온누리교회 안수집사, 이비인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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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4
  • ‘미스터트롯’이 한국교회에 주는 도전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지구촌 모든 사람이 공포에 떨고 있다. 그런 공포는 우리나라에서 더 극대화되고 있다. 지금은 해외 어느 나라로도 피할 곳이 없다. 하물며 국내 어느 곳이라고 안전하겠는가. 사람도 믿을 수가 없다. 심지어는 자기 가족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은 교회도 믿을 수 없는 곳이 돼 버렸다.코로나 위기가 끝나면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공포는 철저히 자기중심의 사회를 이루게 할 것이다. 집단적인 공동체 문화는 철저하게 무너지고 개개인 중심, 현물 중심의 사회로 변하게 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교회는 영적인 회복을 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약해져 버렸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미스터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을 아는가. 미스터트롯은 방송 역사상 예능프로그램 중 최고의 시청률을 올린 새로운 포맷 방송이었다. 오죽하면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미스터트롯을 보는 재미로 세상을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겠는가.우리는 트로트에 아주 익숙하다. 아무리 유명한 트로트 가수가 노래를 불러도 “아, 저 가수, 저 노래” 하며 당연시했다. 그리고 은연 중 트로트는 올드 포맷이 됐고 전형적인 노래로 여겨졌다. 그러나 방송사는 전혀 다른 형태의 트로트, 즉 21세기형 새로운 트로트의 포맷을 구상했다.이 프로그램을 준비하는데 50여명의 인력이 투입됐다고 한다. 그 인력이 프로그램을 설계하는데 3개월, 참가자를 면접하는데 3개월이 걸렸다는 것이다. 모두 1만2000명이 지원해 그중 101명을 선발했다. 선발기준은 노래도 잘해야 하지만 눈물겨운 사연과 감동의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그리고 이 101명을 집단 합숙을 시키며 새로운 감성과 이야기를 입혀 노래를 부르도록 훈련을 시켰다. 더 중요한 것은 지상파방송이 간과했던 부분을 종편방송이 황홀한 감동과 전율의 프로그램으로 제작해낸 것이다.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으면 시청자를 3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게 할 정도로 사로잡았겠는가. 최종결선에서 700만명이 넘게 투표하다 서버가 다운돼 버릴 정도였다.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거다!” 하고 무릎을 쳤다. 어느 곳으로도 피할 수 없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갈수록 진짜 믿을 수 있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가 다시 그런 곳이 되게 할 수는 없을까. 일제강점기에 교회가 민족의 소망이었고 산업화와 근대화 시대에 교회가 사람들의 위로처, 피난처가 됐던 것처럼.문제는 교회의 예배와 메시지에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당연하게 예배를 드려왔다. 당연하게 드렸던 예배는 그 소중함과 가치를 잃어버리게 했고 강단의 메시지 역시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성경공부나 제자훈련도 어느새 매뉴얼화되고 프로그램화됐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코로나 위기에 이렇게 교회의 예배가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한국교회도 21세기형 새로운 포맷의 교회로 거듭나 보자. 지금껏 당연히 드려왔던 예배를 더 새롭고 전혀 다른 감동의 예배로 바꾸어 보자. 설교에도 다시 한번 생명의 동력을 불어넣어 보자.지금은 온라인예배의 찬반을 논하기보다 우리 자신이 어떻게 변화하느냐를 고심해야 한다. 같은 교회, 같은 예배, 같은 설교자, 같은 교인이라도 의례적인 매뉴얼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포맷,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마인드로 다시 태어나 보자. 그럴 때 한국교회는 개인중심, 현물중심을 넘어서는 새로운, 그리고 진정한 영적 공동체로 비상할 것이다.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예장합동 부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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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3
  • 팬데믹 위기와 기독교
      ▲김명전 대표이사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다. 감염된 국가가 120여개 국,감염자도 13만 명에 이른다. 코로나19 감염자가 가장 많은 국가는 현재 중국, 이탈리아, 이란 순이다. 21세기들어 5번의 대형 감염병이 발생했다.첫째는 2002년 중국 광동성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다. 두번째는 2009년 3월에 북미대륙에서 발생한 신종 인플루엔자(H1N1)로 214개국에서 최고 20만 3,000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어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메르스 코로나(MERS-CoV)와 2014년 서아프리카의 치사율 60% 에볼라(ebola)가 발생했다. 그리고 2019년 코로나19다. 바이러스 위기가 다시 왔다.코로나19의 특징은 빠른 전파속도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니얼 퍼거슨 교수는 이 현상을 ‘네트워 크 효과’로 설명했다. 세계가 하나의 글로벌 공동체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사회연결 망’이 감염병의 확산 범위를 빠르고 넓게 하는 것은 확실하다.퍼거슨 교수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감염병으로 인한 “네트워크 효과로 세계 제조업의 공급망(글로벌 가치사슬)이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방역을 위해 경제교역과 여행 등 국제 교류를 중지한 결과다. 코로나 19는 다가 올 바이러스 대재앙을 예고한다.바이러스는 경계가 없다. 국경도 면역망도 그 앞에서는 무력하다. 인간의 방역체계보다 빨리 진화한다. 이제 일상적으로 바이러스 감염 공포 속에 살아야 한다. 바이러스는 기후에 민감하다.지난 겨울은 역대 최고로 따뜻했다. 평균 기온이 3.1℃로 1973년 이래 가장 높았다.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러시아, 호주, 노르웨이, 브라질은 이상고온에 시달렸다. 이탈리아, 이집트, 파키스탄, 태국, 캐나다는 이상저온과 폭설에 갇혔다. 포루투갈, 스페인, 프랑스, 호주는 폭풍과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기후 현상이다. 그때마다 바이러스도 함께 왔다.기후변화가 악(바이러스)의 연결고리다. 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사점을 준다. 바이러스가 중국의 산업 거점도시를 공습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 제조업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올 겨울은 한반도에서 미세먼지 고통이 줄었다. 깨끗한 겨울 공기를 누렸다. 에너지와 청정공기연구센터(CREA)가 2020년 1월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이 25% 줄었다고 발표했다.코로나19로 많은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에너지 소비가 줄고 항공, 육상운송 등 물류가 대폭 감소한 결과로 분석했다. 바이러스가 공기오염을 줄인 역설이다.코로나19가 일으킨 팬데믹 사태는 인류 문명사의 획을 긋는 분기점이다. 전혀 다른 사회로의 진화를 예고한다. 그 분기점을 세울 단초는 인류 자신에서 찾아야 한다. 1998년 퓰리처상을 받은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총·균·쇠’에서 인류의 문명화가 가져온 질병, 각종 변종 바이러스의 대유행을 예견했다.인간과 동물의공통전염병(인수공통전염병)출현이다. 인간이 노동력과 식량 확보, 즐거움을 충족하기 위해 동물과의 동거를 시작하면서다.창조의 질서, 자연의 섭리는 인간에게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절제라는 예절을 요구한다. 특 히 종교적 차원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단 신천지를 공습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코로나19가 한국 기독교의 위기 상황을 들춰 내 보여주었다.신천지로 인해 건강한 기독교, 교회성도들이 감염되어 투병 중이다. 한국교회의 예배까지 중지시켰다.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일까? 이 신호를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금은 신천지와 같은 이단 바이러스가 오염시킨 복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다. 종교의 힘만이 인간의 탐욕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역설이다.코로나19는 종교를 넘어 인류 문명사를 새롭게 재단할 것 같다.인류의 문명화, 산업화는 창조의 질서인 자연 생태계를 교란시켰다. 수억 년의 세월이 농축된 화석연료를 캐내어 에너지로 쓰고 있다. 그 열이 지구를 따뜻하게 만들고 남·북극의 빙하를 녹였다. 지구 온난화다. 석유·석탄과 빙하 속에 잠들어 있던 바이러스를 깨웠다.돌연변이 바이러스들이 속출하고 있다. 기후변화다. 글로벌바이러스네트워크(GVN)는 “사람과 동물, 자연생태계를 하나로 연결하여 다층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지구 생태계는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어 있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이러스가 가리키는 곳을 봐야 답이 보인다. 기후위기다. 기후변화협약만으로는 부족하다. 바이러스·세균의 무기화도 금지하고 감시해야 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국제감염병협약’ 같은 강제력 있는 기구와 국제법이 필요하다.기후와 환경오염, 세균과 바이러스의 파괴력에 공감하고 방법을 찾자. 인류와 생명의 터전, 지구를 지킬 유일한 방법이다.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종교, 기독교의 소명 또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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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3
  • “코로나에 한 번, 헌금 비난에 또 한 번 운다”
        지난달 23일 사랑의교회 주일예배에서 한 교인이 마스크를 쓴 채 기도하고 있다(기사 내용과 무관). ⓒ사랑의교회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많은 교회들이 주일예배 등 공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했고, 또 전환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신학적·목회적 논란이 없지 않지만 다수가 밀집하는 곳에서 감염 위험이 커지는 만큼, 가능한 접촉을 줄여 성도와 이웃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때아닌 ‘헌금’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여전히 공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에게 “헌금 때문”이라거나, 온라인으로 예배를 전환한 교회들에도 “헌금이 줄까봐 걱정한다”는 식으로 비꼬는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대형교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개척교회 등 작은 규모의 교회에서 목회하는 이들의 가슴에 마치 비수처럼 꽂히고 있다. 이들이 그저 헌금 때문에 예배를 강행한다는 듯이, 너무 쉽게 판단하는 까닭이다. 유연식 서울시청 문화본부장은 19일 정례브리핑에서 “지역의 중소교회들이 현장 예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겠지만, 상당한 요인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원순 시장이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에게 교단(기하성) 차원에서 이런 교회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고, 이 목사가 여기에 동의했다고 했다. 예장 통합 등 다른 교단들도 동참한다고.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많은 교회들이 주일예배 등 공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했고, 또 전환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신학적·목회적 논란이 없지 않지만 다수가 밀집하는 곳에서 감염 위험이 커지는 만큼, 가능한 접촉을 줄여 성도와 이웃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때아닌 ‘헌금’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여전히 공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에게 “헌금 때문”이라거나, 온라인으로 예배를 전환한 교회들에도 “헌금이 줄까봐 걱정한다”는 식으로 비꼬는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대형교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개척교회 등 작은 규모의 교회에서 목회하는 이들의 가슴에 마치 비수처럼 꽂히고 있다. 이들이 그저 헌금 때문에 예배를 강행한다는 듯이, 너무 쉽게 판단하는 까닭이다.   유연식 서울시청 문화본부장은 19일 정례브리핑에서 “지역의 중소교회들이 현장 예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겠지만, 상당한 요인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원순 시장이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에게 교단(기하성) 차원에서 이런 교회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고, 이 목사가 여기에 동의했다고 했다. 예장 통합 등 다른 교단들도 동참한다고. 그런데 단순 표현만 보면, 자칫 작은 교회들이 “헌금 때문에 예배 드린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만 하면 예배를 드릴 이유가 더 이상 없다는 발상 같아서 불편하기 짝이 없다.   경기도 시흥에서 교회를 개척한 한 목회자는 “예배를 드리지 않을 경우 작은 교회가 큰 교회에 비해 재정적인 타격을 입는 건 사실이다. 개척교회 목회자들에게 그런 걱정이 아주 없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거짓말일 것”이라며 “그렇다고 단지 헌금 때문에 예배를 드린다는 말도 옳지 않다. 교회의 공예배를 너무 쉽게 물질적인 것과 연결시키는 것 같아서 화가 난다”고 했다. 감히 말하건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작은 교회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은, 이들이 공예배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 둘을 직접 결부시키는 일각의 비뚤어진 언사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땅의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물론 작은 교회들을 돕기로 한 교회와 교단들에 그런 생각과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 보진 않는다. 최근 작은 교회들을 지원하기로 한 교회 목회자는 “그들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해해 돕긴 하지만 공예배를 드릴지 말지는 전적으로 개별 교회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부디 다른 교회와 교단들도 이런 입장이길 바란다. “코로나19 사태로 한 번, 세상의 시선에 또 한 번 운다”는 어느 개척교회 목회자의 서러움이 유난히 안쓰럽다. 이제 교회를 향한 왜곡된 시선은 거두고, 모두가 힘을 합쳐 이 난관을 하루빨리 극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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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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