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2-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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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뜻밖의 손님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눈송이가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던 주일 오후, 밖에 있는 내게 아내가 두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었지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장은 부등깃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의 분홍빛 생명체였다. 다른 한 장은 눈을 또랑또랑 뜬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비둘기 한 마리였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내 서재에 연해 있는 베란다 창밖에 놓인 실외기 틈에 외로운 생명 하나가 깃들었던 것이다. 저물녘 집으로 돌아가 창문을 열어보니 어미 비둘기는 갑자기 닥쳐온 추위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고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의 등장에 경계는 하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비둘기 배설물이 켜켜이 쌓여 있어 습도가 높은 날에는 그 냄새가 문틈으로 스며들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날이 푸근해지면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여린 생명이 내 창가에서 탄생한 것이다. 차마 그 가족을 내쫓을 수는 없고, 새끼가 날 수 있을 때까지 불편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작고 여린 것들을 대할 때 우리 마음은 말랑말랑해진다. 여린 생명은 종이 무엇이든 우리의 굳은 표정을 녹여 벙싯 웃게 만들지 않던가. ‘작은 것들의 신’으로 알려진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신작 소설 ‘지복의 성자’에 등장하는 안줌은 남녀 성을 동시에 가진 존재다. 그런 이들을 가리키는 말 ‘히즈라’는 신성한 영혼이 깃든 육체라는 뜻을 내포하지만, 일종의 멸칭이라 할 수 있다. 히즈라들의 내면에 깃든 어둠이 깊다. 어느 날 안줌은 계단에 버려진 세 살배기 아이 자이나브를 데려가 키우기 시작한다. 안줌은 한 인간이 타인을 완전하게 사랑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당혹스럽게 자각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현실이었다. 자이나브와의 만남은 안줌의 삶에 카타르시스적 전환점이 됐다. 자이나브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그는 자기 속에 깃든 어둠과 화해해야 했고, 단순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거듭나야 했다.누군가의 품이 되어주려 할 때 사람은 사람다워진다. 거룩해진다. 김준태 시인은 ‘인간은 거룩하다’라는 시에서 새벽에 일어나면 한 그릇의 물도 엎지르지 말고, 한 삽의 흙도 불구덩이에 던지지 말자고 말한다. 차라리 달팽이라도 어루만지고, 풀잎을 가슴에 담고 설레어 보라는 것이다. 시인은 ‘풀여치 지렁이 장구벌레 물새 뜸북새 물방울’을 호명하며 말한다. “땅 위에 살아 있는 것들은 얼마나 거룩하냐.” 인간은 땅 위의 칼들을 녹슬게 할 때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와 만난 사람들이 모두 변화를 경험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더럽혀지지 않는 흙과 같은 존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거룩함이란 구별됨을 뜻하지만, 스스로 거룩함을 자처하는 이들은 정작 거룩함을 알지 못한다. 거룩함이란 잣대를 갖고 다른 이들을 재고 가르는 이들은 예수의 마음에서 가장 멀다.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의 긴장도가 높아졌다. 노골적이든 은밀하게든 특정한 나라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깊어진 것 같다. 최근 외국을 다녀온 이들은 아시아인들이라 하여 기피 대상이 됐던 불쾌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속상해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감염의 위험을 알면서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이들이 있다. 의료진들, 방역을 담당하는 분들, 지원 업무를 하는 분들은 누군가의 품이 되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연약한 것들을 부둥켜안으려는 이들이 늘어날 때 증오와 혐오의 바이러스는 스러진다. 그들이야말로 봄을 선구하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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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0
  • 마테오리치 선교사에서 다산(茶山) 정약용까지
      한문성경이 중국을 통해 조선에 처음 전해진 것은 조선후기이다. 중국에 기독교를 전한 이는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소속 선교사 '마테오리치'다. 그는 중국어를 배워 유교의 경전인 사서(四書)를 라틴어로 번역하고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라는 지도까지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기독교를 중국에 전하기 위해 유교를 공부하여 유교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유학자들의 한계를 찾아내 기독교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하므로 기독교는 ‘서교(西敎)’,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큰 관심거리였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를 반대하였던 조선의 유학자들조차 기독교를 접하게 된다. 조선후기 대표적 유학자로 『성호사설』을 저술한 이익(李瀷)은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읽고 “그 학문은 오로지 천주(天主)만을 위하는데 '천주'란 곧 유가(儒家)의 '상제(上帝)'이다”라고 '상제'와 '천주'를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기독교(천주교), 즉 서학이 유교와 불교사상이 굳건한 조선에 뿌리를 내린 것은 인조 때이다. 숙종 때에는 교세를 자못 떨쳤으며 영.정조 때에는 황해. 강원. 경기. 충청. 전라 등 각처에 성행했다. 특히 영조시대에는 전성기를 맞아 이익(李瀷)을 중심한 서학연구는 그의 제자와 문하생들에게 확산되어 ‘조선서학’이란 학문체계가 수립됐고, 조선후기 실학형성의 중요한 줄기가 되었다. 당시 사회불안 속에서 서학사상은 지식층에게 새로운 개혁의식의 확대와 봉건사회에 대한 개혁의식의 자극제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렇게 서학이 크게 번창하게 되자 '서학서(西學書)'의 반입을 금지시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하지만 서구의 문물을 배운 실학파 학자들이 기독교를 공부하고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 사상(西學)은 조선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조선 봉건사회의 개혁을 이끌려는 실학파가 생겨났고 그 대표적 실학자 이익의 사상적 후계자가 ‘정약용’이다.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났다. 1784년 실학파 선구자인 이승훈은 사절로 북경에 갔다가 귀국 직전 예수회 신부 그라몽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많은 기독교 서적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듬해 그는 명동에 있는 김범우 집에 조선 성당을 건립하고 그의 동지 이벽, 권철신. 권일신 형제와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3형제, 이가환 등과 공동으로 기독교를 포교했다. 당대의 유학자들이 기독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된 것은 성리학으로 표현되는 유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해답이 성경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16세때 이가환 및 매형이 되는 이승훈을 통해 이익의 유고를 얻어 보고 서학에 심취했다. 정약용의 개혁사상과 과학적 지식은 이때 습득한 서학, 즉 기독교 사상이 큰 영향을 끼쳤고 1885년 기독교에 입교하며, ‘요한’이란 세례명을 갖게 된다.    기독교 포교활동이 표면화되면서 조정으로부터 금지령이 내려졌고, 기독교 탄압 시책들이 나오게 된 것이 신유박해(辛酉迫害)이다. 1801년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섭정을 하게 된 정순대비(貞純大妃)는 기독교(서교(西敎)를 사교(邪敎)라며 엄금·근절하라는 금령을 내렸다. 기독교인으로 밝혀진 주문모, 이승훈, 정약종, 권철신, 이가환, 홍교만, 홍낙민, 최창현, 최필공 등 천주교도와 진보적 개혁가 등 100여명이 처형되고 400여명이 유배되었다. 이때 수배되어 토굴에 숨어 지내면서 조선교회를 구하기 위해 흰 명주에다 교회의 박해상황을 알리고 신앙의 자유를 강구하기 위해 황사영이 편지를 쓴다. 당시 베이징[北京] 주교 구베아에게 서한을 작성하여 구원을 요청하였는데, 이것이 발각되어 11월 능지처참을 당한다. 중국인 신부 주문모에게 영세받고 알렉산드르라는 교명으로 신자가 된 이로, 다산 선생의 조카사위였다. 다산 선생의 형제들은 신앙의 순교자가 되었다. 처형당한 정약종,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당했다. 유배에서 풀릴 때까지 18년간 그는 학문에만 몰두했다. 이때 정치기구의 전면적인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했다. 유배생활 가운데서도 그의 개혁의지는 식을 줄 몰랐고, 그의 개혁사상 속에는 기독교 사상이 분출됐다.   1936년 정약용의 사망 후 1839년 기해박해 때는 풍양 조씨 조만영의 주도로 앵베르 주교와 모방과 샤스탕 신부 그리고 정약종의 둘째 아들인 정하상 등 70여명의 교인들이 순교하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철저히 기독교 신앙이 사상적 기초를 이루고 있다. 선생은 『시경(詩經)』 을 통해 분명히 창조주가 있음을 확인하였고, 그것이 '천「天」' 즉, '상제「上帝」'이며, 상제는 인간만사를 강림하는 능력을 가진 세상만사를 주재하는 자라고 보았다. 만물의 근원인「천」즉, 상제는 결코 주자의 리(理)와 같은 자연만물을 지배하는 법칙이나 원리가 아니라, '위격(位格)'을 갖춘 윤리적이며 신적인 존재였다. 우리를 굽어보고 재앙과 행복을 가려주는 이러한 천, 상제를 성심으로 경외하여 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산 선생의 이러한 사상은 국가개혁에 중심적 역할을 감당했고,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등에 잘 드러나 있다. 목민심서에서 ‘애민’은 기독교의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이때, 『마과회통(麻科會通)』으로 백성과 고통을 나눈 다산 정약용의 참 모습을 우리 공무원들이 되새겼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정약용의 가장 큰 업적은 백성을 위해 살아가는 ‘애민’ 정신으로 다산 선생이 후대에 존경받는 이유이다. 수도권 동북부 거점도시 남양주시가 다산 정신을 계승하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다산 선생에게서 성경의 총리 다니엘이나, 숨겨진 신앙인 니고데모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다산은 올곧은 신앙적 가치관과 정신세계로 부패한 관료들의 핍박과 괴롭힘에게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간다. 다니엘처럼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신의 신앙대로 백성을 섬기는 일을 다 했다. “악당들의 유언비어가 더욱 심해졌다”라고 ‘자찬묘비명’에서 표현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18년의 세월을 원망이나 좌절로 보내지 않고 오히려 방대한 저술활동을 통해 척박한 유배지를 학문의 성지로 승화시킨 그 정신과 혜안은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그가 남긴 저서의 내용과 양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500여권에 달하는 책을 집필하였는데, 그의 시(詩)와 글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자신의 절망적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을 슬퍼하고 그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지식인으로 대안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끈기와 열정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다산선생의 자손인 정영진 관장이나 크로스로드를 이끄는 정성진 이사장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다산 정약용을 떠올리며 오늘의 한국을 생각해 보자. 지금 한국사회는 다산선생이 살던 조선 봉건사회와 매우 유사하다. 정치인들의 당파 싸움으로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상실, 관리들의 부정부패 만연,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사회현상, 부동산과 토지문제, 중소업체의 몰락 등 사회개혁의 필요성은 그 때와 같다. 형제를 죽이고, 매형을 죽이고, 조카를 죽인 그 시대를 정약용 형제는 저주하지 않았다. 시대를 저주하는 대신 아파했다. 그러나 애통하는 자(Those who mourn)는 불의한 시대에 위로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시대는 이들과 대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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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9
  • 성도·건물 없는 ‘서류상 교회’ 부임
    고웅영 제주새예루살렘교회 목사(앞줄 오른쪽 세 번째)와 성도들이 지난해 9월 제주 서귀포항에서 제주 복음화를 위한 기도회를 갖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제주 목회는 하나님께서 여러 개의 관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5년 개척 때 일이다. 제주새예루살렘교회 개척의 문은 수월하게 열린 게 아니었다. 2002년과 2003년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를 둘러봤다. 2004년은 부교역자 시절 청년부와 전도여행을 하면서 제주를 찾았다. 청년 45명과 2004년 1월 제주 전도여행을 했다. 4개의 팀으로 나눠 미션을 주고 제주의 여러 곳에서 예배하고 전도했다. 그때 제주 감리교회 목회자들을 만나 제주 목회의 비전을 나눴다.목회자들은 부정적 반응을 내비쳤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뿐 아니라 제주 전체 교회의 절반 이상이 미자립 상태입니다. 또다시 미자립 개척교회를 세우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이런 반응이 나오자 두 가지 감사가 터져 나왔다. “주님, 제주의 교회와 영적 상황을 실제로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교사로 헌신했던 청년 시절 기도대로 선교지와 다를 바 없는 상황으로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전도 여행을 다녀온 후 하나님은 제주를 향해 더 기도할 마음을 주셨다. 개척과 목회의 문이 열리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부터 영적 도전들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2004년 가을 목사고시가 있었는데, 한 달 전부터 아내에게 혈변과 진통이 찾아왔다. 병원에선 대장의 자가면역 관련 질환인데 평생 안고 가야 할 난치병이라 했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대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난감했다. 교회 사역은 계속해야 하고 목사고시는 다가오고 어린 두 자녀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다. 첫째 아이는 할머니가, 둘째 아이는 교회 권사님께서 맡아 주셨다. 아내는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낮에는 교회 사역을 하고 저녁부터 아침까지는 아내의 병상 옆에서 돌보며 목사고시를 준비하는 생활이 시작됐다.모두가 잠든 밤에도 아내는 수십 차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함께 혈변을 봤다. 아내의 진통이 잦아들면 병원 로비의 수납창구 불빛 아래서 공부했다. 졸지에 아이들도 아내도 나도 어떤 시험 앞에 서 있었다.더 전심으로 하나님을 붙잡는 시간이었다. 목사고시를 보러 대전으로 내려가던 날 아내의 혈변이 멈췄다. 감사하게도 목사고시에 합격하고 돌아온 날 아내는 퇴원했다. 며칠 후 가족은 다시 모였다. 또 한 가지 도전은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교회 담임목사님이 갑작스럽게 임지를 옮긴 것이었다. 개척하면 힘이 돼주시겠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기대도 할 수 없게 됐다. 주님은 사람과 교회를 의지했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셨다. 제주 감리교회의 개척 불가 입장도 넘어야 할 관문이었다. 제주지역 교단 관계자는 새로운 미자립교회가 또다시 세워지는 것이 당시 제주선교 상황에 맞지 않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2005년 4월에 목사안수식이 예정돼 있었다. 교단법에 따라 그 전에 담임할 교회가 결정되지 않으면 안수 자체가 무산되는 상황이었다.그해 1월 황급히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제주 지역 교단 관계자들을 만나 이러한 상황을 알리고 간청했지만, 답은 같았다. 그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목사님, 혹시 감리교 제주지방에 서류상으로는 있지만,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있습니까.” “아, 한 교회가 2년 전부터 목회자 미파송 상태에 있습니다. 전임 목회자가 경제적, 영적으로 타격을 받고 제주를 떠났습니다. 성도도 목회자도 교회 건물도 없는 서류상 교회죠. 한 달 후 지방회에서 영구 폐지할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 교회를 맡으면 어떻겠습니까.” “정말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제주에 오고 싶습니까.” “네.” “좋습니다.”하나님께선 새로운 방법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없어지는 것을 막으셨다. 그렇게 개척의 문이 열렸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도 나름대로 과정이 있고 도전이 있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신다. 실로 주님은 지혜가 한이 없으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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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9
  • 하나님의 창고 연 비결 ‘십의 3조’
      고웅영 제주새예루살렘교회 목사가 2012년 10월 성도들과 함께 제주 상가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포기함으로 얻는 방법 중 세 번째는 소유의 포기다. 그동안 소유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2000년 아버지가 소천하셨을 때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빚을 물려받지 않으려고 상속포기서까지 썼다. 1990년 대학 시절부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신문 배달, 손세차장 세차, 일용직 등으로 일했고 우체국 택배센터와 어린이의류 물류센터에소 일했다. 2002년 감리교신학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시작한 일은 무보수 자비량 사역을 하는 선교단체 간사였다.당시 나는 가난하지 않았고 부요하지도 않았다. 많은 간사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기도하면서 섬기던 시절이었다. 기도해보고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을 찾아가 “내가 당신에게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할 기회를 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찾아간 분의 95%가 후원자와 중보자가 됐다. 하나님은 아굴의 잠언처럼 ‘필요한 양식으로’ 먹이셨다. 1999년 전도사로 사역할 때 첫 월급이 40만원이었다. 당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신대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도 가난하지 않았다. 개척 후 6년 차부터 교회에서 목회비를 받았다. 그 6년 동안 자녀가 셋이 됐고 하나님은 더 풍성하게 채워 주셨다. 비결은 나눠주는 훈련에 있었다. 간사로 섬기던 시절 하나님께서는 후원받은 헌금 일부를 다른 간사들을 위해 헌금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부끄러울 정도로 아주 적은 금액을 매달 후원했다. 전도사 시절에도 다른 간사 가정과 선교사 가정을 후원했다. 그때 우리 가정이 세운 헌금원칙은 십의 3조였다. 십의 1조는 하나님께, 십의 1조는 선교사역에, 십의 1조는 구제가 필요한 이들에게 헌금했다.하나님의 비밀창고는 그때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월급이 80만원이었던 전도사 시절 400만원 가까운 대학원 등록금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이들로부터 계속 채워졌다. 제주도에 교회를 개척할 때 임차계약금 300만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신대로 기도의 후원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전화 한 통화로 20분 만에 계약금을 치렀다. 나머지 잔금 1700만원은 제주로 이삿짐을 싣고 내려오는 날 아침에 몇 분의 권사님들이 모아 주셨다.개척하고 사용하던 승합차가 2007년 도로 한가운데 멈췄다. 600만원을 주고 산 중고차였는데, 견적만 170만원이 나왔다. 그날 미국에서 제주도로 손님이 찾아왔다. 10년 전 간사 시절 2만원씩 딱 1년간 헌금했던 선배 간사 가정이었다. 사업차 한국에 왔다고 했다. 식사 후 봉투 하나를 놓고 갔다. 열어보니 170만원이었다.2008년 교회를 옮기고 강대상을 바꾸고 싶었다. 마음에 드는 강대상이 200만원이었다. 한두 번 뵀던 다른 교단 장로님이 찾아오셨다. “교회를 옮기고 무엇이 필요합니까.” “강대상이 필요합니다.” 그분은 얼마 후 베트남 선교사로 나가신다며 봉투를 두고 가셨다. 200만원이었다. 육지의 대형교회에서 제주도로 청년수련회를 왔다. 제주공항에서 수련회 장소로 안내하는 일을 했다. 버스 안에서 제주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제주도에서 개척목회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을 30분 정도 나눴다. 그 교회는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가며 모든 헌금을 놓고 갔다. 개척 때부터 필요한 목회 서적이 있으면 목록을 적어 놓고 “주님 매달 책을 사주는 후원자를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청년부 제자 중 한 형제가 직장에 들어간 후 지금까지 15년간 매달 필요한 책을 보내주고 있다.제주새예루살렘교회는 아직도 임차 교회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하나님께서 4436㎡(1341평) 예배당 부지를 주셨다. 대출이자만 내고 있는데, 건축의 나머지 과정은 주님의 때에 풍성하게 이뤄주실 것을 알고 기쁘게 기다리고 있다. 현재 6개의 지역교회와 국내 선교기관 4곳, 해외 선교지 8곳을 후원하고 있다. ‘포기함으로 얻는 법’을 배우는 것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최고의 보상이고 상급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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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2
  • 하나님의 비전을 쫓는 삶 4
    ▲여주봉 목사   나는 비전과 관련하여 네 종류의 사람을 살펴보고 있다. 하나님의 비전이 있어야 교회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방향으로 나아갈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처한 영적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비전을 쫓아 사는 삶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비전의 성격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기초한 네 종류의 사람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방랑자.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 못하는 사람.겁쟁이.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만 대가 지불이 두려워서 가지 못하는 사람.성취자.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온 삶으로 달려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룬 사람.리더.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온 삶으로 달려가 하나님의 비전이 그를 통해 성취될 뿐 아니 라, 다른 사람들을 그 자리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람.지난번에는 방랑자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 못하는 방랑자는,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나오는 길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겁쟁이다. 겁쟁이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만 대가 지불이 두려워서 가지 못하는 사람이다.하나님의 비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많은 대가 지불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셨지만 그 비전을 위해 모세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결코 적지 않았다. 또한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는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하면서 수많은 대적과 방해를 극복했던 느헤미야는 어떠한가. 무엇보다, 인류의 구속이라는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예수님께서 치루신 대가를 생각해 보라. 하나님 앞에서 크고 중요할수록 그 비전이 성취되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 영적인 공격과 방해가 클 수 있다. 그런데 겁쟁이는 그 대가 지불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하지 못한다.또한 겁쟁이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의 돌밭과 가시밭과 같은 사람들이다. 돌밭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말씀으로 인하여 핍박이 오면 말씀을 버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가시밭은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유혹 등이 내려지지 않아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둘은 그 성격이 약간 다를지 모르지만, 두 가지 면에서 비슷하다. 첫째,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둘째, 그들은 말씀의 결실을 맺기 위해 세상 사랑, 돈에 대한 집착, 세상의 목적이 내려져야 했을 때 그것을 원치 않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소위 말씀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을 경험하는 일에는 매우 열정적이었지만, 주님을 따르는 대가 지불은 원치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겁쟁이였다.겁쟁이, 돌밭과 가시밭과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말씀을 깨닫는 자들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들은 깨닫지 못한 자들,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 못한 자들이었다. 만약 그들이 실제로 본 자들이었다면 그들은 좋은 밭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었을 것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떡이라며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면서 예수님을 떠나 다시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8-69).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이 비전을 본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값진 보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비전을 진정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대가를 지불하지 못했던 것이다.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모습으로 회복되어지고, 다가오는 하나님의 부흥의 길을 예비하는 "회복과 부흥"의 비전을 보이셨다.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교회를 세워감에 있어 재정적인 압박, 환경적인 어려움, 하나님의 길과 비전을 보지 못하는 성도들의 비협조, 대적 등 수많은 어려움과 공격에도 나와 아내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선명하게 보여진 하나님의 비전 때문이었다. 내 눈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고 계신 일 가운데 한 나라도 바꿀 수 있을 만한 소중한 것, 우리 부부 인생 전부를 드려도 좋을 만큼의 소중한 것이 보였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우리가 죽기 밖에 더하겠느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었다.교회의 회복도 그렇다. 어떤 목회자들은 하나님 중심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가르치면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지고,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회복될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몇 가지 성경적인 진리를 전한다고 회복되지 않는다. 목회자부터 성도들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비전은 성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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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1
  • 세대 갈등
        심각해지는 세대 갈등 ▲정재영 교수 최근 우리 사회에서 세대 갈등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역 갈등, 계급 갈등과 함께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갈등으로 여겨지고 있는 세대 갈등은 이전에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최근 가장 심각한 사회 갈등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얼마 전에 출간된 ‘90년대생이 온다’는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세대 갈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세대 차이는 보통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았으나 최근의 세대 갈등은 10년 터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1960년대생인 86세대들이 요즘 젊은 세대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해왔는데 이 책에서는 1980년대생들이 1990년대생을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자신의 개인적인 삶보다는 직장 등 사회적인 삶을 중시해온 기성세대는 개인생활이 다소 침해받더라도 조직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당연시해왔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는 직장도 자신의 삶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직장에서 칼퇴근은 당연한 것이고 회식도 좋아하지 않으며 개인의 삶을 즐긴다.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워라밸’을 중시하고 미래든 남을 위해서든 자신을 희생하기를 거부하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욜로’의 삶을 지향한다. 기성세대는 이런 젊은 세대가 못마땅해서 한마디 하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이들을 ‘꼰대’라고 여기며 아랑곳 하지 않는다.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은퇴를 전후한 기성 목회자들은 가정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목회만이 하나님의 일이라 여기며 온 힘을 목회에 쏟으며 매진했지만, 요즘 목회자들은 가정을 돌보는 것도 ‘사역’이라 여기며 목회와 똑같이 중시한다.그런데 젊은 목회자들이나 부교역자들을 보면 이를 넘어서 목회에 대한 소명 자체가 불확실해보이고 목회를 단순히 하나의 직업이라 생각하며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성도들도 과거에는 교회에서 장로가 되는 것을 매우 명예롭게 여기며 헌신의 기회로 삼았지만, 요즘의 장로들은 교회에서 시키니까 마지못해서 하는 경우가 많고 젊은 세대들은 아예 장로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풍토이다.이렇듯 세대에 따른 인식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사회 곳곳에서 그리고 교회에서도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이다.세대에 대한 이해 세대 개념은 사회학자인 칼 만하임을 따라서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문화권에서 태어나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그에 따라 유사한 의식과 행위 양식을 갖는 동시기 출생 집단(birth cohort)을 의미한다.한 세대는 대체로 부모와 자녀의 나이 차이인 30년을 의미하지만 요즘 이야기되는 세대에 대한 담론에서는 비슷한 역사 배경이나 사회에서의 사건들을 경험한 동일 경험 집단을 중심으로 세대를 구분하고 있다.대표적으로 서양이나 우리 사회에서 공통되게 이야기되는 베이비 붐 세대는 전쟁 후에 나타난 출산 장려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급증하는 시기에 태어난 세대들을 말한다. 서양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상을 말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로 1955년 이후 출생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흔히 사용하는 ‘58년 개띠’라는 말도 58년도에 출생아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이때까지 세대 담론은 특별히 갈등을 의미하기 보다는 세대별 특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됐으나 1990년대 이후 ‘신세대’ 담론이 크게 부각되면서 세대 간 의식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갈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1990년대에 시작된 신세대 담론은 주로 1970년대에 출생한 젊은이들의 특징과 관련해 이야기 됐는데, 이전 세대들이 누리지 못했던 경제적 풍요, 정보화와 지구화, 민주화, 교육 자율화, 대중소비 문화의 발달이 배경이 됐다.그 이후에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청년 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표현이 등장했다. X세대는 캐나다 작가의 소설 제목으로 등장인물들이 1960년대에서 70년대 출생 청년들인데서 유래했다. N(Net)세대는 1977~1997년에 태어난 청소년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최근에는 밀레니얼 세대로 표현되는 Y세대를 거쳐서 Z세대에 이르고 있다.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은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따른 과실을 어렸을 때부터 향유했으며, 궁핍했던 경험을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난을 겪어본 기성세대와 문화적 괴리가 상당히 심하다.성장 과정에서 교육정책의 혼선이 빚어지고, 사춘기 또는 대학생 시기에 외환위기라는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으면서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정글 자본주의가 체화돼 이른바 ‘스펙 쌓기’에 골몰하는 양태를 보이기도 한다.몇 년 전에 있었던 가상 화폐 규제와 평창 동계 올림픽 게임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청년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사회 이슈가 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타난 것으로 이해된다.세대 갈등을 극복하려면 사실 세대 사이의 갈등은 모든 인류 사회에 존재한다.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 사이에 역사적인 경험이 다르고 시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의식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특히 전쟁을 경험한 노인 세대들이 여전히 이념에 얽매이고 독재 정권과 민주화 과정을 경험한 ‘86세대’들이 진영 논리에 얽매이는 것을 청년 세대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동의하기도 어렵다. 이것은 살아온 경로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일종의 ‘불가역적인 요인’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대 갈등을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불안감과 국민들이 느끼는 피로감, 그리고 갈등 해소를 위한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세대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성세대는 공감과 소통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새로운 세대의 태도를 못 마땅해 하고 핀잔을 주기보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입장과 태도를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할 필요가 있다.또한 권위를 앞세워 억누르려고 하는 태도를 버리고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꼰대’의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말을 앞세우기보다 스스로 본을 보이는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를 비롯한 기성세대가 말로만 주장하고 실제로 그런 삶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모습에 많이 실망해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젊은 세대들 역시 기성세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상대를 인정해야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기성세대가 이룬 성과와 노력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간혹 주변에 보면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노인들을 보게 된다. 어떤 심리학자는 노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의사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이해한다. 사실 이러한 행동은 대부분의 사회 약자들이 보이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인정받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표출하기 위해서 더 강한 방식을 취하게 마련이다.아울러서 어려운 시기에 처한 청년들의 실존 문제와 사회적 조건에 대한 관심과 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취업이 어렵고 경제적으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에 기성세대가 관심을 갖고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청년들의 삶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청년 세대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일 수밖에 없다. 신앙과 삶은 분리될 수 없으며 바른 신앙인이라면 삶의 문제도 신앙인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청년들의 현실에 실제적인 관심을 가질 때 세대 갈등도 조금씩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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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02-10

실시간 칼럼 기사

  • 뜻밖의 손님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눈송이가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던 주일 오후, 밖에 있는 내게 아내가 두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었지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장은 부등깃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의 분홍빛 생명체였다. 다른 한 장은 눈을 또랑또랑 뜬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비둘기 한 마리였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내 서재에 연해 있는 베란다 창밖에 놓인 실외기 틈에 외로운 생명 하나가 깃들었던 것이다. 저물녘 집으로 돌아가 창문을 열어보니 어미 비둘기는 갑자기 닥쳐온 추위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고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의 등장에 경계는 하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비둘기 배설물이 켜켜이 쌓여 있어 습도가 높은 날에는 그 냄새가 문틈으로 스며들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날이 푸근해지면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여린 생명이 내 창가에서 탄생한 것이다. 차마 그 가족을 내쫓을 수는 없고, 새끼가 날 수 있을 때까지 불편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작고 여린 것들을 대할 때 우리 마음은 말랑말랑해진다. 여린 생명은 종이 무엇이든 우리의 굳은 표정을 녹여 벙싯 웃게 만들지 않던가. ‘작은 것들의 신’으로 알려진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신작 소설 ‘지복의 성자’에 등장하는 안줌은 남녀 성을 동시에 가진 존재다. 그런 이들을 가리키는 말 ‘히즈라’는 신성한 영혼이 깃든 육체라는 뜻을 내포하지만, 일종의 멸칭이라 할 수 있다. 히즈라들의 내면에 깃든 어둠이 깊다. 어느 날 안줌은 계단에 버려진 세 살배기 아이 자이나브를 데려가 키우기 시작한다. 안줌은 한 인간이 타인을 완전하게 사랑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당혹스럽게 자각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현실이었다. 자이나브와의 만남은 안줌의 삶에 카타르시스적 전환점이 됐다. 자이나브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그는 자기 속에 깃든 어둠과 화해해야 했고, 단순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거듭나야 했다.누군가의 품이 되어주려 할 때 사람은 사람다워진다. 거룩해진다. 김준태 시인은 ‘인간은 거룩하다’라는 시에서 새벽에 일어나면 한 그릇의 물도 엎지르지 말고, 한 삽의 흙도 불구덩이에 던지지 말자고 말한다. 차라리 달팽이라도 어루만지고, 풀잎을 가슴에 담고 설레어 보라는 것이다. 시인은 ‘풀여치 지렁이 장구벌레 물새 뜸북새 물방울’을 호명하며 말한다. “땅 위에 살아 있는 것들은 얼마나 거룩하냐.” 인간은 땅 위의 칼들을 녹슬게 할 때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와 만난 사람들이 모두 변화를 경험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더럽혀지지 않는 흙과 같은 존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거룩함이란 구별됨을 뜻하지만, 스스로 거룩함을 자처하는 이들은 정작 거룩함을 알지 못한다. 거룩함이란 잣대를 갖고 다른 이들을 재고 가르는 이들은 예수의 마음에서 가장 멀다.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의 긴장도가 높아졌다. 노골적이든 은밀하게든 특정한 나라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깊어진 것 같다. 최근 외국을 다녀온 이들은 아시아인들이라 하여 기피 대상이 됐던 불쾌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속상해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감염의 위험을 알면서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이들이 있다. 의료진들, 방역을 담당하는 분들, 지원 업무를 하는 분들은 누군가의 품이 되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연약한 것들을 부둥켜안으려는 이들이 늘어날 때 증오와 혐오의 바이러스는 스러진다. 그들이야말로 봄을 선구하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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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0
  • 마테오리치 선교사에서 다산(茶山) 정약용까지
      한문성경이 중국을 통해 조선에 처음 전해진 것은 조선후기이다. 중국에 기독교를 전한 이는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소속 선교사 '마테오리치'다. 그는 중국어를 배워 유교의 경전인 사서(四書)를 라틴어로 번역하고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라는 지도까지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기독교를 중국에 전하기 위해 유교를 공부하여 유교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유학자들의 한계를 찾아내 기독교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하므로 기독교는 ‘서교(西敎)’,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큰 관심거리였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를 반대하였던 조선의 유학자들조차 기독교를 접하게 된다. 조선후기 대표적 유학자로 『성호사설』을 저술한 이익(李瀷)은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읽고 “그 학문은 오로지 천주(天主)만을 위하는데 '천주'란 곧 유가(儒家)의 '상제(上帝)'이다”라고 '상제'와 '천주'를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기독교(천주교), 즉 서학이 유교와 불교사상이 굳건한 조선에 뿌리를 내린 것은 인조 때이다. 숙종 때에는 교세를 자못 떨쳤으며 영.정조 때에는 황해. 강원. 경기. 충청. 전라 등 각처에 성행했다. 특히 영조시대에는 전성기를 맞아 이익(李瀷)을 중심한 서학연구는 그의 제자와 문하생들에게 확산되어 ‘조선서학’이란 학문체계가 수립됐고, 조선후기 실학형성의 중요한 줄기가 되었다. 당시 사회불안 속에서 서학사상은 지식층에게 새로운 개혁의식의 확대와 봉건사회에 대한 개혁의식의 자극제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렇게 서학이 크게 번창하게 되자 '서학서(西學書)'의 반입을 금지시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하지만 서구의 문물을 배운 실학파 학자들이 기독교를 공부하고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 사상(西學)은 조선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조선 봉건사회의 개혁을 이끌려는 실학파가 생겨났고 그 대표적 실학자 이익의 사상적 후계자가 ‘정약용’이다.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났다. 1784년 실학파 선구자인 이승훈은 사절로 북경에 갔다가 귀국 직전 예수회 신부 그라몽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많은 기독교 서적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듬해 그는 명동에 있는 김범우 집에 조선 성당을 건립하고 그의 동지 이벽, 권철신. 권일신 형제와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3형제, 이가환 등과 공동으로 기독교를 포교했다. 당대의 유학자들이 기독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된 것은 성리학으로 표현되는 유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해답이 성경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16세때 이가환 및 매형이 되는 이승훈을 통해 이익의 유고를 얻어 보고 서학에 심취했다. 정약용의 개혁사상과 과학적 지식은 이때 습득한 서학, 즉 기독교 사상이 큰 영향을 끼쳤고 1885년 기독교에 입교하며, ‘요한’이란 세례명을 갖게 된다.    기독교 포교활동이 표면화되면서 조정으로부터 금지령이 내려졌고, 기독교 탄압 시책들이 나오게 된 것이 신유박해(辛酉迫害)이다. 1801년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섭정을 하게 된 정순대비(貞純大妃)는 기독교(서교(西敎)를 사교(邪敎)라며 엄금·근절하라는 금령을 내렸다. 기독교인으로 밝혀진 주문모, 이승훈, 정약종, 권철신, 이가환, 홍교만, 홍낙민, 최창현, 최필공 등 천주교도와 진보적 개혁가 등 100여명이 처형되고 400여명이 유배되었다. 이때 수배되어 토굴에 숨어 지내면서 조선교회를 구하기 위해 흰 명주에다 교회의 박해상황을 알리고 신앙의 자유를 강구하기 위해 황사영이 편지를 쓴다. 당시 베이징[北京] 주교 구베아에게 서한을 작성하여 구원을 요청하였는데, 이것이 발각되어 11월 능지처참을 당한다. 중국인 신부 주문모에게 영세받고 알렉산드르라는 교명으로 신자가 된 이로, 다산 선생의 조카사위였다. 다산 선생의 형제들은 신앙의 순교자가 되었다. 처형당한 정약종,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당했다. 유배에서 풀릴 때까지 18년간 그는 학문에만 몰두했다. 이때 정치기구의 전면적인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했다. 유배생활 가운데서도 그의 개혁의지는 식을 줄 몰랐고, 그의 개혁사상 속에는 기독교 사상이 분출됐다.   1936년 정약용의 사망 후 1839년 기해박해 때는 풍양 조씨 조만영의 주도로 앵베르 주교와 모방과 샤스탕 신부 그리고 정약종의 둘째 아들인 정하상 등 70여명의 교인들이 순교하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철저히 기독교 신앙이 사상적 기초를 이루고 있다. 선생은 『시경(詩經)』 을 통해 분명히 창조주가 있음을 확인하였고, 그것이 '천「天」' 즉, '상제「上帝」'이며, 상제는 인간만사를 강림하는 능력을 가진 세상만사를 주재하는 자라고 보았다. 만물의 근원인「천」즉, 상제는 결코 주자의 리(理)와 같은 자연만물을 지배하는 법칙이나 원리가 아니라, '위격(位格)'을 갖춘 윤리적이며 신적인 존재였다. 우리를 굽어보고 재앙과 행복을 가려주는 이러한 천, 상제를 성심으로 경외하여 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산 선생의 이러한 사상은 국가개혁에 중심적 역할을 감당했고,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등에 잘 드러나 있다. 목민심서에서 ‘애민’은 기독교의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이때, 『마과회통(麻科會通)』으로 백성과 고통을 나눈 다산 정약용의 참 모습을 우리 공무원들이 되새겼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정약용의 가장 큰 업적은 백성을 위해 살아가는 ‘애민’ 정신으로 다산 선생이 후대에 존경받는 이유이다. 수도권 동북부 거점도시 남양주시가 다산 정신을 계승하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다산 선생에게서 성경의 총리 다니엘이나, 숨겨진 신앙인 니고데모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다산은 올곧은 신앙적 가치관과 정신세계로 부패한 관료들의 핍박과 괴롭힘에게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간다. 다니엘처럼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신의 신앙대로 백성을 섬기는 일을 다 했다. “악당들의 유언비어가 더욱 심해졌다”라고 ‘자찬묘비명’에서 표현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18년의 세월을 원망이나 좌절로 보내지 않고 오히려 방대한 저술활동을 통해 척박한 유배지를 학문의 성지로 승화시킨 그 정신과 혜안은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그가 남긴 저서의 내용과 양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500여권에 달하는 책을 집필하였는데, 그의 시(詩)와 글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자신의 절망적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을 슬퍼하고 그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지식인으로 대안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끈기와 열정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다산선생의 자손인 정영진 관장이나 크로스로드를 이끄는 정성진 이사장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다산 정약용을 떠올리며 오늘의 한국을 생각해 보자. 지금 한국사회는 다산선생이 살던 조선 봉건사회와 매우 유사하다. 정치인들의 당파 싸움으로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상실, 관리들의 부정부패 만연,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사회현상, 부동산과 토지문제, 중소업체의 몰락 등 사회개혁의 필요성은 그 때와 같다. 형제를 죽이고, 매형을 죽이고, 조카를 죽인 그 시대를 정약용 형제는 저주하지 않았다. 시대를 저주하는 대신 아파했다. 그러나 애통하는 자(Those who mourn)는 불의한 시대에 위로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시대는 이들과 대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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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9
  • 성도·건물 없는 ‘서류상 교회’ 부임
    고웅영 제주새예루살렘교회 목사(앞줄 오른쪽 세 번째)와 성도들이 지난해 9월 제주 서귀포항에서 제주 복음화를 위한 기도회를 갖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제주 목회는 하나님께서 여러 개의 관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5년 개척 때 일이다. 제주새예루살렘교회 개척의 문은 수월하게 열린 게 아니었다. 2002년과 2003년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를 둘러봤다. 2004년은 부교역자 시절 청년부와 전도여행을 하면서 제주를 찾았다. 청년 45명과 2004년 1월 제주 전도여행을 했다. 4개의 팀으로 나눠 미션을 주고 제주의 여러 곳에서 예배하고 전도했다. 그때 제주 감리교회 목회자들을 만나 제주 목회의 비전을 나눴다.목회자들은 부정적 반응을 내비쳤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뿐 아니라 제주 전체 교회의 절반 이상이 미자립 상태입니다. 또다시 미자립 개척교회를 세우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이런 반응이 나오자 두 가지 감사가 터져 나왔다. “주님, 제주의 교회와 영적 상황을 실제로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교사로 헌신했던 청년 시절 기도대로 선교지와 다를 바 없는 상황으로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전도 여행을 다녀온 후 하나님은 제주를 향해 더 기도할 마음을 주셨다. 개척과 목회의 문이 열리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부터 영적 도전들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2004년 가을 목사고시가 있었는데, 한 달 전부터 아내에게 혈변과 진통이 찾아왔다. 병원에선 대장의 자가면역 관련 질환인데 평생 안고 가야 할 난치병이라 했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대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난감했다. 교회 사역은 계속해야 하고 목사고시는 다가오고 어린 두 자녀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다. 첫째 아이는 할머니가, 둘째 아이는 교회 권사님께서 맡아 주셨다. 아내는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낮에는 교회 사역을 하고 저녁부터 아침까지는 아내의 병상 옆에서 돌보며 목사고시를 준비하는 생활이 시작됐다.모두가 잠든 밤에도 아내는 수십 차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함께 혈변을 봤다. 아내의 진통이 잦아들면 병원 로비의 수납창구 불빛 아래서 공부했다. 졸지에 아이들도 아내도 나도 어떤 시험 앞에 서 있었다.더 전심으로 하나님을 붙잡는 시간이었다. 목사고시를 보러 대전으로 내려가던 날 아내의 혈변이 멈췄다. 감사하게도 목사고시에 합격하고 돌아온 날 아내는 퇴원했다. 며칠 후 가족은 다시 모였다. 또 한 가지 도전은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교회 담임목사님이 갑작스럽게 임지를 옮긴 것이었다. 개척하면 힘이 돼주시겠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기대도 할 수 없게 됐다. 주님은 사람과 교회를 의지했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셨다. 제주 감리교회의 개척 불가 입장도 넘어야 할 관문이었다. 제주지역 교단 관계자는 새로운 미자립교회가 또다시 세워지는 것이 당시 제주선교 상황에 맞지 않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2005년 4월에 목사안수식이 예정돼 있었다. 교단법에 따라 그 전에 담임할 교회가 결정되지 않으면 안수 자체가 무산되는 상황이었다.그해 1월 황급히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제주 지역 교단 관계자들을 만나 이러한 상황을 알리고 간청했지만, 답은 같았다. 그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목사님, 혹시 감리교 제주지방에 서류상으로는 있지만,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있습니까.” “아, 한 교회가 2년 전부터 목회자 미파송 상태에 있습니다. 전임 목회자가 경제적, 영적으로 타격을 받고 제주를 떠났습니다. 성도도 목회자도 교회 건물도 없는 서류상 교회죠. 한 달 후 지방회에서 영구 폐지할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 교회를 맡으면 어떻겠습니까.” “정말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제주에 오고 싶습니까.” “네.” “좋습니다.”하나님께선 새로운 방법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없어지는 것을 막으셨다. 그렇게 개척의 문이 열렸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도 나름대로 과정이 있고 도전이 있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신다. 실로 주님은 지혜가 한이 없으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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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9
  • 하나님의 창고 연 비결 ‘십의 3조’
      고웅영 제주새예루살렘교회 목사가 2012년 10월 성도들과 함께 제주 상가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포기함으로 얻는 방법 중 세 번째는 소유의 포기다. 그동안 소유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2000년 아버지가 소천하셨을 때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빚을 물려받지 않으려고 상속포기서까지 썼다. 1990년 대학 시절부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신문 배달, 손세차장 세차, 일용직 등으로 일했고 우체국 택배센터와 어린이의류 물류센터에소 일했다. 2002년 감리교신학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시작한 일은 무보수 자비량 사역을 하는 선교단체 간사였다.당시 나는 가난하지 않았고 부요하지도 않았다. 많은 간사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기도하면서 섬기던 시절이었다. 기도해보고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을 찾아가 “내가 당신에게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할 기회를 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찾아간 분의 95%가 후원자와 중보자가 됐다. 하나님은 아굴의 잠언처럼 ‘필요한 양식으로’ 먹이셨다. 1999년 전도사로 사역할 때 첫 월급이 40만원이었다. 당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신대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도 가난하지 않았다. 개척 후 6년 차부터 교회에서 목회비를 받았다. 그 6년 동안 자녀가 셋이 됐고 하나님은 더 풍성하게 채워 주셨다. 비결은 나눠주는 훈련에 있었다. 간사로 섬기던 시절 하나님께서는 후원받은 헌금 일부를 다른 간사들을 위해 헌금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부끄러울 정도로 아주 적은 금액을 매달 후원했다. 전도사 시절에도 다른 간사 가정과 선교사 가정을 후원했다. 그때 우리 가정이 세운 헌금원칙은 십의 3조였다. 십의 1조는 하나님께, 십의 1조는 선교사역에, 십의 1조는 구제가 필요한 이들에게 헌금했다.하나님의 비밀창고는 그때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월급이 80만원이었던 전도사 시절 400만원 가까운 대학원 등록금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이들로부터 계속 채워졌다. 제주도에 교회를 개척할 때 임차계약금 300만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신대로 기도의 후원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전화 한 통화로 20분 만에 계약금을 치렀다. 나머지 잔금 1700만원은 제주로 이삿짐을 싣고 내려오는 날 아침에 몇 분의 권사님들이 모아 주셨다.개척하고 사용하던 승합차가 2007년 도로 한가운데 멈췄다. 600만원을 주고 산 중고차였는데, 견적만 170만원이 나왔다. 그날 미국에서 제주도로 손님이 찾아왔다. 10년 전 간사 시절 2만원씩 딱 1년간 헌금했던 선배 간사 가정이었다. 사업차 한국에 왔다고 했다. 식사 후 봉투 하나를 놓고 갔다. 열어보니 170만원이었다.2008년 교회를 옮기고 강대상을 바꾸고 싶었다. 마음에 드는 강대상이 200만원이었다. 한두 번 뵀던 다른 교단 장로님이 찾아오셨다. “교회를 옮기고 무엇이 필요합니까.” “강대상이 필요합니다.” 그분은 얼마 후 베트남 선교사로 나가신다며 봉투를 두고 가셨다. 200만원이었다. 육지의 대형교회에서 제주도로 청년수련회를 왔다. 제주공항에서 수련회 장소로 안내하는 일을 했다. 버스 안에서 제주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제주도에서 개척목회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을 30분 정도 나눴다. 그 교회는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가며 모든 헌금을 놓고 갔다. 개척 때부터 필요한 목회 서적이 있으면 목록을 적어 놓고 “주님 매달 책을 사주는 후원자를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청년부 제자 중 한 형제가 직장에 들어간 후 지금까지 15년간 매달 필요한 책을 보내주고 있다.제주새예루살렘교회는 아직도 임차 교회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하나님께서 4436㎡(1341평) 예배당 부지를 주셨다. 대출이자만 내고 있는데, 건축의 나머지 과정은 주님의 때에 풍성하게 이뤄주실 것을 알고 기쁘게 기다리고 있다. 현재 6개의 지역교회와 국내 선교기관 4곳, 해외 선교지 8곳을 후원하고 있다. ‘포기함으로 얻는 법’을 배우는 것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최고의 보상이고 상급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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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2
  • 하나님의 비전을 쫓는 삶 4
    ▲여주봉 목사   나는 비전과 관련하여 네 종류의 사람을 살펴보고 있다. 하나님의 비전이 있어야 교회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방향으로 나아갈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처한 영적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비전을 쫓아 사는 삶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비전의 성격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기초한 네 종류의 사람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방랑자.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 못하는 사람.겁쟁이.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만 대가 지불이 두려워서 가지 못하는 사람.성취자.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온 삶으로 달려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룬 사람.리더.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온 삶으로 달려가 하나님의 비전이 그를 통해 성취될 뿐 아니 라, 다른 사람들을 그 자리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람.지난번에는 방랑자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 못하는 방랑자는,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나오는 길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겁쟁이다. 겁쟁이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만 대가 지불이 두려워서 가지 못하는 사람이다.하나님의 비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많은 대가 지불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셨지만 그 비전을 위해 모세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결코 적지 않았다. 또한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는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하면서 수많은 대적과 방해를 극복했던 느헤미야는 어떠한가. 무엇보다, 인류의 구속이라는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예수님께서 치루신 대가를 생각해 보라. 하나님 앞에서 크고 중요할수록 그 비전이 성취되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 영적인 공격과 방해가 클 수 있다. 그런데 겁쟁이는 그 대가 지불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하지 못한다.또한 겁쟁이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의 돌밭과 가시밭과 같은 사람들이다. 돌밭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말씀으로 인하여 핍박이 오면 말씀을 버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가시밭은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유혹 등이 내려지지 않아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둘은 그 성격이 약간 다를지 모르지만, 두 가지 면에서 비슷하다. 첫째,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둘째, 그들은 말씀의 결실을 맺기 위해 세상 사랑, 돈에 대한 집착, 세상의 목적이 내려져야 했을 때 그것을 원치 않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소위 말씀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을 경험하는 일에는 매우 열정적이었지만, 주님을 따르는 대가 지불은 원치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겁쟁이였다.겁쟁이, 돌밭과 가시밭과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말씀을 깨닫는 자들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들은 깨닫지 못한 자들,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 못한 자들이었다. 만약 그들이 실제로 본 자들이었다면 그들은 좋은 밭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었을 것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떡이라며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면서 예수님을 떠나 다시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8-69).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이 비전을 본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값진 보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비전을 진정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대가를 지불하지 못했던 것이다.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모습으로 회복되어지고, 다가오는 하나님의 부흥의 길을 예비하는 "회복과 부흥"의 비전을 보이셨다.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교회를 세워감에 있어 재정적인 압박, 환경적인 어려움, 하나님의 길과 비전을 보지 못하는 성도들의 비협조, 대적 등 수많은 어려움과 공격에도 나와 아내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선명하게 보여진 하나님의 비전 때문이었다. 내 눈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고 계신 일 가운데 한 나라도 바꿀 수 있을 만한 소중한 것, 우리 부부 인생 전부를 드려도 좋을 만큼의 소중한 것이 보였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우리가 죽기 밖에 더하겠느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었다.교회의 회복도 그렇다. 어떤 목회자들은 하나님 중심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가르치면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지고,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회복될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몇 가지 성경적인 진리를 전한다고 회복되지 않는다. 목회자부터 성도들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비전은 성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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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1
  • 세대 갈등
        심각해지는 세대 갈등 ▲정재영 교수 최근 우리 사회에서 세대 갈등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역 갈등, 계급 갈등과 함께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갈등으로 여겨지고 있는 세대 갈등은 이전에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최근 가장 심각한 사회 갈등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얼마 전에 출간된 ‘90년대생이 온다’는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세대 갈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세대 차이는 보통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았으나 최근의 세대 갈등은 10년 터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1960년대생인 86세대들이 요즘 젊은 세대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해왔는데 이 책에서는 1980년대생들이 1990년대생을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자신의 개인적인 삶보다는 직장 등 사회적인 삶을 중시해온 기성세대는 개인생활이 다소 침해받더라도 조직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당연시해왔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는 직장도 자신의 삶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직장에서 칼퇴근은 당연한 것이고 회식도 좋아하지 않으며 개인의 삶을 즐긴다.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워라밸’을 중시하고 미래든 남을 위해서든 자신을 희생하기를 거부하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욜로’의 삶을 지향한다. 기성세대는 이런 젊은 세대가 못마땅해서 한마디 하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이들을 ‘꼰대’라고 여기며 아랑곳 하지 않는다.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은퇴를 전후한 기성 목회자들은 가정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목회만이 하나님의 일이라 여기며 온 힘을 목회에 쏟으며 매진했지만, 요즘 목회자들은 가정을 돌보는 것도 ‘사역’이라 여기며 목회와 똑같이 중시한다.그런데 젊은 목회자들이나 부교역자들을 보면 이를 넘어서 목회에 대한 소명 자체가 불확실해보이고 목회를 단순히 하나의 직업이라 생각하며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성도들도 과거에는 교회에서 장로가 되는 것을 매우 명예롭게 여기며 헌신의 기회로 삼았지만, 요즘의 장로들은 교회에서 시키니까 마지못해서 하는 경우가 많고 젊은 세대들은 아예 장로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풍토이다.이렇듯 세대에 따른 인식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사회 곳곳에서 그리고 교회에서도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이다.세대에 대한 이해 세대 개념은 사회학자인 칼 만하임을 따라서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문화권에서 태어나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그에 따라 유사한 의식과 행위 양식을 갖는 동시기 출생 집단(birth cohort)을 의미한다.한 세대는 대체로 부모와 자녀의 나이 차이인 30년을 의미하지만 요즘 이야기되는 세대에 대한 담론에서는 비슷한 역사 배경이나 사회에서의 사건들을 경험한 동일 경험 집단을 중심으로 세대를 구분하고 있다.대표적으로 서양이나 우리 사회에서 공통되게 이야기되는 베이비 붐 세대는 전쟁 후에 나타난 출산 장려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급증하는 시기에 태어난 세대들을 말한다. 서양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상을 말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로 1955년 이후 출생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흔히 사용하는 ‘58년 개띠’라는 말도 58년도에 출생아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이때까지 세대 담론은 특별히 갈등을 의미하기 보다는 세대별 특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됐으나 1990년대 이후 ‘신세대’ 담론이 크게 부각되면서 세대 간 의식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갈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1990년대에 시작된 신세대 담론은 주로 1970년대에 출생한 젊은이들의 특징과 관련해 이야기 됐는데, 이전 세대들이 누리지 못했던 경제적 풍요, 정보화와 지구화, 민주화, 교육 자율화, 대중소비 문화의 발달이 배경이 됐다.그 이후에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청년 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표현이 등장했다. X세대는 캐나다 작가의 소설 제목으로 등장인물들이 1960년대에서 70년대 출생 청년들인데서 유래했다. N(Net)세대는 1977~1997년에 태어난 청소년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최근에는 밀레니얼 세대로 표현되는 Y세대를 거쳐서 Z세대에 이르고 있다.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은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따른 과실을 어렸을 때부터 향유했으며, 궁핍했던 경험을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난을 겪어본 기성세대와 문화적 괴리가 상당히 심하다.성장 과정에서 교육정책의 혼선이 빚어지고, 사춘기 또는 대학생 시기에 외환위기라는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으면서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정글 자본주의가 체화돼 이른바 ‘스펙 쌓기’에 골몰하는 양태를 보이기도 한다.몇 년 전에 있었던 가상 화폐 규제와 평창 동계 올림픽 게임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청년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사회 이슈가 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타난 것으로 이해된다.세대 갈등을 극복하려면 사실 세대 사이의 갈등은 모든 인류 사회에 존재한다.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 사이에 역사적인 경험이 다르고 시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의식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특히 전쟁을 경험한 노인 세대들이 여전히 이념에 얽매이고 독재 정권과 민주화 과정을 경험한 ‘86세대’들이 진영 논리에 얽매이는 것을 청년 세대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동의하기도 어렵다. 이것은 살아온 경로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일종의 ‘불가역적인 요인’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대 갈등을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불안감과 국민들이 느끼는 피로감, 그리고 갈등 해소를 위한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세대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성세대는 공감과 소통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새로운 세대의 태도를 못 마땅해 하고 핀잔을 주기보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입장과 태도를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할 필요가 있다.또한 권위를 앞세워 억누르려고 하는 태도를 버리고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꼰대’의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말을 앞세우기보다 스스로 본을 보이는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를 비롯한 기성세대가 말로만 주장하고 실제로 그런 삶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모습에 많이 실망해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젊은 세대들 역시 기성세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상대를 인정해야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기성세대가 이룬 성과와 노력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간혹 주변에 보면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노인들을 보게 된다. 어떤 심리학자는 노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의사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이해한다. 사실 이러한 행동은 대부분의 사회 약자들이 보이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인정받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표출하기 위해서 더 강한 방식을 취하게 마련이다.아울러서 어려운 시기에 처한 청년들의 실존 문제와 사회적 조건에 대한 관심과 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취업이 어렵고 경제적으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에 기성세대가 관심을 갖고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청년들의 삶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청년 세대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일 수밖에 없다. 신앙과 삶은 분리될 수 없으며 바른 신앙인이라면 삶의 문제도 신앙인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청년들의 현실에 실제적인 관심을 가질 때 세대 갈등도 조금씩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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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0
  • 하나님을 아는 것
    박현숙 목사   한계를 가진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온전히 알거나 어떤 틀에 맞추어 정의할 수 없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인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량 밖의 것을 고집하지 않고 겸허하게 우리의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르게 무신론자들이 가지는 불가지론적인 이성이 있다. 무신론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우월한 가치로 인정하는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들이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철학적 사변의 대상으로만 간주할 때는 완전주의에 기반한 무기력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이는 이성만을 맹신하는 미혹과 교만의 영의 지배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 속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다:   "나는 어떤 별에 살고 있는 얼굴이 시뻘건 양반 하나를 알고 있어. 그는 꽃 향기를 맡아본 일도 없고, 더하기밖에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어. 온종일 아저씨처럼, 나는 착실한 사람이다, 나는 착실한 사람이다, 하고 되뇌이고 있어. 그리고 그것 때문에 잔뜩 교만을 부리고 있어. 그렇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야. 그건 버섯이야!" 역사상 수 없이 많은 예술적 사상적 엘리트들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불행한 인생을 마감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체질과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당신을 계시하셨고 또 알 수 있게 하셨다.   구약에서는 창조와 외적으로 행하시는 관계 안에서, 신약에서는 가장 완전한 계시의 양식인 성육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스스로를 보이시고 또 인간을 찾아 오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그의 삶(Act)과 말씀(Word)으로써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되셨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완전한 하나님의 계시가 되시는 것은 그가 바로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14:7-9)"하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던 것이다. 우리 인간의 이성은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한 자신을 알리실때 요구하시는 것은 앎 외에 또 다른 것이 있으니 바로 이성을 초월한 믿음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지 머리로만 아는 '무엇에 관한 지식'을 뜻하지 않는다. 구원사적으로 영생이 보장된 앎이며, 가슴이 동반된 전 인격적으로 체험된 앎을 말한다. 하나님 편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곧 믿는 것을 뜻한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14:10-11)" 의심하는 도마에게 부활 후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고 말씀하셨다.     현재 유한한 우리가 무한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최대한 만족스런 방법은 성령의 영감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미리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고 밝히 알려 주셨다. 특별한 경우엔 성경을 읽다가 말씀이 살아 운동력이 있는 실재가 되어 시공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성령의 능력의 역사를 체험할 때도 있다. 성경의 말씀은 죽은 문자나 의사 전달 매체의 하나가 아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살아있는 생명이고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이와 같이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동시에 이루어지며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고 계속 진보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행하시고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옘33:2)의 역사와도 동행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엡4:13)"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성경 속 인물들과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와 교제하시는 주님을 통하여 주님을 이모저모로 점점 알아가게 된다: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너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아1:7)"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빨리...오는구나(2:8)"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2:10)"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요10:14)"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경험의 대상이 아닌 사유의 대상으로만 삼는다면 우리에겐 메마름과 공허와 회의만이 남게 될 것이다.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른들은 친구의 목소리가 어떠하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를 수집하느냐?' 라고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는 몇이냐? 형제는 몇이냐? 몸무게는 얼마냐? 그 친구 아버지는 얼마를 버느냐?' 하는 것이 고작 묻는 말이다. 그래야 그 친구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곱고 고운 붉은 별돌집을 보았다'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생각해 내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1125-26)." 하나님께선 우리가 이성이나 지혜로 하나님 알기를 포기하고, 우리의 한계와 무지를 인정하고, 오로지 맹목적으로 어린아이처럼 주님만을 의지할 대상으로 기댈때 하나님을 더 가까이 느끼고 알게 하시는 은혜를 주신다. 욥은 극심한 고난 속 회개 중에 이렇게 부르짖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2:5-6)"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이 부숴지고 깨어질때 더욱 우리의 영안을 밝히 열어 주신다. 참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신바 되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너무도 감격스런 축복이며 감사이다! 우리가 자신을 비우고 겸손하게 하나님만 의지 한다는 점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아야 되고, 한편 은혜와 믿음과 하나님을 아는 일에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라고 말씀하신다. 어린 왕자는 말한다: "'누가 양을 가지고 싶어하면 그것은 그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 증거가 된다'라고 어른들에게 말한다면, 그들은 어깨를 들먹이며 우리를 아이로 취급할 것이다...어른들은 그렇게 되어 먹었다. 그것을 가지고 어른들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못 쓴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에 대해서 아주 너그러워야 한다." 그렇다.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순수한 어린이들로서 세상의 다른 많은 것들을 의지하는 어른들에 대해 좀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품고 가까이 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자: “하나님이 우리를 찾고 싶어하시면 그것은 하나님이 존재하고 있는 증거가 된다”고…   박현숙 목사(프린스턴미션, 인터넷 선교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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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7
  • 비상한 기도를 시작합시다
     유기성 목사의 예수 동행   나라를 위해 비상한 기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기도모임이 여기저기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형편과 시국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인한 두려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아군 아니면 적으로 여기는 현상이 심각한 사회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4월 15일 총선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 같습니다. 혼란스러운 나라 형편을 보면서 거룩함과 사랑으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돼야 할 교회가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를 깊이 회개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위기와 갈등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다해야 합니다. 미움과 증오에 마음을 빼앗긴 채 어려운 상황을 비방하고 비난만 하며 부정적으로 단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 소망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영원한 진리의 말씀 안에서 하나가 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의 나라 형편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비상한 기도로 이끄심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교회를 섬기며 이로써 사회적 책무도 지고 있는 목회자들의 기도가 절실합니다. ‘기도도 했다’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정말 나를 의뢰했느냐’ 물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힘을 잃어버린 삼손 같은 한국교회를 다시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제목은 너무나 많고 심각합니다. 나라도 세계도 초비상이지만 그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정도로 가정과 자녀, 건강과 재정 등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이들이 주위에 너무 많습니다. 민족의 평화로운 통일을 위한 기도 역시 결코 뒤로 미룰 수 없는 시급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모든 문제보다 더 큰 기도제목입니다. 나라를 위한 답답함으로 시작한 기도는 이렇게 계속 이어지며 통곡하게 됩니다. “하나님, 우리를 살려 주십시오.”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받은 가장 큰 복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하신 말씀은 진정 주님의 약속입니다. 우리에게는 나라와 민족과 열방을 위해 기도할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지금이야말로 비상한 기도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우선 가장 힘겨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와 의심환자들, 방역 당국과 의료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중국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4월 총선을 위해서도 비상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말씀을 존중하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고 국민의 마음이 갈라져 서로를 적대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신종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일입니다.‘기도만 하면 다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기도하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기도하는 이들은 공감하겠지만 기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목회자들도 기도의 부족을 느끼며 불안해하지만 그런다고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행동이 곧 기도’ 라는 말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기도와 행동은 다른 영역입니다. 골방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없습니다.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오랜 시간 기도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과 순종이 없다면 기도를 시작할 수도 없습니다. 억지로라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승리입니다. 나라를 위해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들을 응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뻐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히 11:6) 기도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은 기도의 영이십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도의 기쁨을 주시지 않으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응답되지 않는 기도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내일 응답하시기로 결정하실 수도 있기에, 저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실 때, 제가 준비되어 있는지가 두려울 뿐입니다.나라의 어려움으로 더 기도하게 됐지만 이로 인해 기도하는 이들이 더 많이 일어나고 한국교회가 기도의 능력을 가진 교회로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 이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기도하는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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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7
  • 에베소서가 가르치는 구원의 진리
      김병구 장로 ©바른구원관선교회   에베소서는 아래와 같이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에 의한 믿음으로 받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 8-9) 그런데 그 뒤를 바로 잇는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목적과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이 말씀을 NIV 로 보면 더욱 분명합니다. For we are God'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to do good works, which God prepared in advance for us to do.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하여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를 칭의(JUSTIFICATION)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자는 그 순간 죄가 없는 의인으로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이를 칭의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칭의구원을 받은 자는 반드시 선한 일,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는 일을 해야 함은 아레 구절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 5-9) 그러므로 에베소서가 기록한 구원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을 때에 주님께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죄가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구원의 시작임에 유의 해야 합니다. 이 칭의구원을 이미 받은 신자는 현재 진행형의 구원 곧 말씀에 순종하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함에 이르는 성화(sanctification)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 에배소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고백은 그가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 갔는지는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7) 바울 사도 시절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바울 사도가 저주한 다른 복임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편파적으로 묵상한 루터의 오직 믿음구원론 이나 한번구원 영원구원론의 원조인 칼빈의 구원론에 속지 마시고 오직 성경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온전한 복음과 온전한 구원론에 확신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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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6
  • 성별표시란에 ‘여자 남자 기타 등’ 적힌 뉴욕시 출생증명서
      한국가족보건협회 대표 김지연 약사가 지난 9월 21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 열린 사자 그라운드 주최 포럼에서 성경적 성가치관과 결혼관을 강의하고 있다. 이날 700석이 모두 매진되었다   "여자, 남자가 아닌 기타의 여러 가지 성별이 수십 가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늘어난들 그것이 공적인 영역에서는 영향을 주지 못 할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녀 성별은 너무나 뚜렷한 차이가 있고 과학적으로도 성별은 두개니 남녀 성별 즉 2개의 성별로만 구성되는 현재의 모든 사회 정치 경제 문화에 어떤 악영향도 크게 미치진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가 않다.” 라는 것이 문제이다. 성별이 수십 가지가 있다며 정신 승리하는 사람들의 친교모임에서만 그들의 독특한 성적 취향이나 정체성을 교류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까지야 어쩔 수 없지만 그러한 잘못된 젠더 사상을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라고 받아들이라고 공적인 영역에서 강요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지구상에는 이미 여성 남성 이외의 기타 본인이 원하고 느끼는 정체성에 따른 성별을 모두 인정하는 공문서가 발행되고 화장실과 락커룸이 수십 가지 성별을 포용하기 위한 성 중립적으로 변하고 있는 도시와 나라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남성(male) 또는 여성(female)이 아닌 제3의 성(性)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합법적으로 바꿀 수 있다"라는 미국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2017년 6월 미국 오리건 주의 한 지방법원이 성전환 제이미 슈프(52)의 청원을 받아들여 그에게 '여성' 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남녀 아닌 제3의 성별(넌바이너리,non-binary)'로 성을 표기하도록 승인한 것이다. 원래 바이너리(binary)는 '두 개'라는 뜻으로 여기에선 남성과 여성을 의미하며 넌바이너리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별 혹은 그런 성별을 가진 자를 지칭한다는 것이다. 보통은 성별 정정을 원하는 경우 남성에서 여성으로 혹은 여성에서 남성으로 정정을 하는 바이너리 즉 두성을 오가는 정정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자신의 성이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는 느낌이 든 슈프는 2017년 봄에 남녀가 아닌 전혀 다른 알 수 없는 새로운 성으로의 교체를 법원에 요청했다. 동성애를 포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의 일종인 혐오 표현 금지법이 통과된 오리건 주의 판사는 결국 슈프에게 '넌 바이너리'로 성 정체성을 표기하도록 판결했다. 오리건 주는 이미 수년 전부터 법원에 성 교체를 요청할 수 있고, 비교적 복잡한 과정 없이 개인의 성별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더 큰 문제는 "성별 교체 역시 남성 또는 여성 등 두 가지로만 특정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심지어 의사의 진단서 없이도 성 교체를 결정할 수 있다. 미국 육군 출신 남자 슈프는 전역 후 2013년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남성과 여성이 혼재된 자신을 제3의 성으로 인식 한다"며,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성별을 바꾸는 법적 절차를 밟은 것이다. 미국 언론은 제3의 성을 인정한 미국 내 첫 판결이었고, 이후 유사한 판례가 우후죽순 미국 내에서 나왔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 문제이다. 화장실도 정체성대로 골라가다 보니 수십 가지 성별 종류대로 화장실을 만들 수가 없어서 결국 수십 가지 성별이 모두 사용가능한 이른바 성 중립 화장실이 설치되고 있다. 올여름 스웨덴 스톡홀름 한인교회 요청으로 성경적 성가치관 교육을 위해 초빙되어 방문한 적이 있다. 스웨덴은 90년대에 차별금지법 유사법안을 통과시키고, 2004년 동성애를 죄라고 설교한 목사에게 1심에서 징역을 언도했으며, 이후 동성 결혼 법까지 통과시킨 나라이다. 그곳은 수십 가지 성별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라 불리 우는 이른바 성 중립 화장실을 채택하고 있다. 스웨덴 공공 도서관도 마트도 모두 성 중립 화장실이고, 도저히 남자전용 혹은 여자 전용 화장실을 찾을 수가 없다. 남녀가 구별된 보통 화장실은 없냐고 물었더니, 공공 도서관 직원이 성 중립 화장실이 정상(normal)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성별이 여자로 바뀐 것 같다"고 주장한 와이오밍 주의 '미겔'이라는 남성은 자신의 이름을 '미셀'이라는 여자이름으로 바꾸고,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차별하지 말라"는 와이오밍 주의 차별 금주 법을 통해 여성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그는 분명 자신이 "여성이라고 느껴지며 남자가 아니다"라고 일관성 주장을 했고, "남성의 성기가 자신에게 있고 없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즉, "남성의 외부성기를 다가지고는 있지만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10살 여아를 여자 화장실에서 성폭행하고야 말았다. 성 중립 화장실을 이용하는 이른바 '성소수자'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남성들이 화장실에서 여자를 성폭행하는 일들이 보고되고 있다. 조지아 주에서도 '트랜스젠더'라며 여자 화장실을 드나들던 남자가 결국 5세 여아를 성추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자신을 여자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케이티'라는 남성이 10세 여아를 성폭행하고도 이른바 성소수자에게 더욱 관대할 것을 강요한 영국의 분위기 때문에 그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게 됐다. 그는 이와 유사한 일을 더 시도했지만 매번 보호받았다. 이런 뉴스들이 계속 나오는 와중에 캐나다에서는 성 중립 화장실에 불편을 느낀 여학생들이 화장실 가기를 미루다가 방광염에 걸리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그래서 화장실을 남녀 화장실로 분리해서 만들어 달라고 하면 어떤 일이 돌아올까. "남녀를 구별하며 두 가지 성별 만 인정하는 젠더 감수성이 없는 인간"이라며 "성 소수자 혐오 자"라는 낙인을 찍어 버린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에도 불구하고 성중립 화장실을 찬양해야 관대하며 마음 넓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게 된다. 우리는 이런 서구의 모습을 보며 타산지석 삼아 인류가 가진 기본적인 명제들을 강제로 부인하게 만들며, 영적인 정신 분열을 공적인 영역에서까지 강제하는 젠더이데올로기를 막아낼 중요한 방편으로 성경적 성교육의 실시를 꼽을 수 있다. 전문적인 성경적 성교육 매우 절실하며 이러한 교육을 실시할 때 현장에서 실제로 교육 효과가 즉각적이고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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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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